[문화카페] 영화에 관한 본질적 질문이 시사하는 것

지지난주 토요일인 11월 26일,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색다른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한국영화학회의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된 이 행사에서는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국내외 총 24인의 발표자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해 각자의 견해를 소개했으며 이에 대한 질의응답이 뒤따르기도 했다. 한국에 있는 영상(학) 관련 학회 중에서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영화학회 창립 5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영화의 정체성을 둘러싼 ‘대토론회’가 펼쳐진 것이다. 영화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이 모인 뜻깊은 자리에서 영화에 대한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인 물음이 화두를 장식하게 된 데에는, 관련 기술의 발달과 산업 환경의 변화로 대변되는 최근의 동향이 그 배경으로 자리한다. 단적으로, 오랫동안 필름(film)을 매개로 해왔던 영화의 제작과 유통은 2000년대 이후 디지털화됐고, 2020년부터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OTT(Over The Top) 서비스가 급속히 확산됨에 따라 영화관(cinema)이라는 전통적 상영 공간이 상당 부분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더불어, 영화/텔레비전 제작물/비디오용 영상물 등으로 구분됐던 매체별 영상 콘텐츠 간의 경계 역시 차츰 허물어져가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영화에 관한 본질적 질문, 즉 영화의 개념과 범위를 둘러싼 일차원적 의문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하겠다. ‘필름’과 ‘시네마’, 혹은 ‘무비(movie)’로 일컬어져온 영화가 자신의 이름에 부합하지 않을 정도로 급격하고 거대하게 의미 변화와 범주 확장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학계에서는 (타 매체와 구별되는) 영화(고유)의 특성을 중시하거나 그것을 해체시키는 작업을 통해 영화를 둘러싼 근본적 질문을 향한 답변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명쾌한 해법이 제시되거나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으며, 오히려 논의가 거듭될수록 영화의 정체성을 구명하는 데 혼돈이 가중되는 양상이 전개되기까지 한다. 기실 130여년에 이르는 세계 영화사에서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늘 있어왔다. 예컨대, 19세기 말 탄생 과정에서 영화는 1분 남짓의 흑백-무성 필름으로 촬영된 영상물의 형태로 여러 편의 프로그램에 포함되거나 단편으로 구성되어 극장 및 야외 공연장에서 영사기를 통해, 또는 별도의 실내 공간에서 1인용 기계 장치 등을 통해 대중들 사이로 파고든 바 있었다. 이후 영화는 장편화, 유성화, 컬러화를 거쳐 디지털화됐고, 텔레비전, 비디오, 인터넷 매체 등과 경쟁 관계에 놓이기도 했다. 주목되는 바는, 그 과정에서 영화를 둘러싼 재고찰과 재규정을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동반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흐름은 여느 때보다 영화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현 시점으로도 이어진다. 혼란의 당사자 및 노력의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사람(人間)이다. ‘인간’의 세계를 “반영하여 그린다”는 점에서 ‘영화(映畫)’라는 명칭에 수용된 본질적 성격 역시 궁극적으로는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에 관한 본질적 질문이 시사하는 것은, 결국 인간 스스로가 이에 대한 명확한 답안을 내놓으리라는 상당히 중요한 사실 그 자체라 할 만하다. 함충범 한국영상대 영화영상과 교수

[문화카페] 인생 3막의 가능성

나이 60세에 뮤지컬 작곡가로 데뷔한 여성이 있다. 그런데 그 데뷔작으로 뮤지컬 분야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 작곡상을 받았다. 놀랍도록 성공적인 인생 재도전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1980년대의 팝 아이콘이었던 ‘신디 로퍼’라는 것이다. 1985년 ‘She's So Unusual’로 그래미상 5개 부문을 휩쓸었고 앨범 한 개에 담긴 4곡이 빌보드 싱글 톱에 오른 싱어송 라이터인 신디 로퍼가 30년 만에 뮤지컬 작곡가로 길을 바꿔 단숨에 토니상 6개를 휩쓰는 흥행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뮤지컬 ‘킹키부츠’! 열일곱살에 무작정 가출해 음악으로 세계를 뒤흔들었던 그녀의 역경 속의 성공 스토리와 닮은 뮤지컬이다. 망해 가는 신발 공장을 물려받은 아들이 아버지의 가업을 성공시킬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만난 드랙퀸(여장 남성)의 타고난 디자인 감각을 빌려 남성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단단한 강철굽의 킹키부츠를 개발해 내는 이야기인데 주인공들의 성장 스토리다운 성공과 희망 메시지가 극 전체를 감싸고 있다. 거기에 작사와 작곡을 맡은 신디 로퍼의 경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음악이 자칫 교훈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완성시켜 준다. 실패를 극복하는 젊은 패기가 가득한 뮤지컬 ‘킹키부츠’는 그래서 최근 삶이 고단한 우리나라 관객들을 열광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3년 전, 한국의 대표적인 원로 연극배우인 박정자 선생님의 연극 인생을 회고하는 1인극 ‘노래처럼 말해 줘’를 연출하면서 물리적인 나이가 사람의 실질적인 에너지와 감각, 건강 상태를 규정할 수 없음을 실감한 경험이 있다. 당시 78세의 여배우는 여전히 젊게 설렜고 여전히 열정적이었고 여전히 강렬했고 여전히 아름다웠고 여전히 힘이 넘쳤다. 매일 긴밀하게 함께 연습할 때마다 속으로 저 강력한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결론은 정신력과 자기 확신의 산물이라는 거였다. 함께 작업하는 기간 동안 박정자 배우는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나이와 시간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고 배우로서 실존적이고 초월적인 자아로 일상마저도 충실했다. 새로운 존재론이었다. 최근에 창작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계 및 대중문화 관련 직업의 특성인 무정년, 무은퇴가 주목 받고 있다. 70대에 글로벌 무대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원로들의 행렬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앞으로 15년 후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3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이르고 그 가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란다. 평균수명이 100세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현실이 됐다. 이제 60세를 넘기면서 새로운 직업과 새로운 재능에 도전해 객관적인 결실을 얻는 인생 3모작의 전문가들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앙코르 커리어! 미국의 은퇴설계 지원 비영리단체 시빅 벤처스의 창시자 마크 프리드먼 대표는 100세 시대에는 사람들이 50세를 기점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해 75세까지 25년은 더 일하게 될 것이고 퇴직자들은 일로부터의 해방(Freedom form work)’이 아닌 ‘일할 자유(Freedom to work)’를 원한다면서 앙코르 커리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최근에 문화계에서 증명되는 인생 2모작, 인생 3모작의 주인공들은 우리 사회 전반의 노년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에 대한 희망적인 단서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도 어느새 중장년층의 은퇴 후 남은 반평생의 잉여 시간이 사회적 부담과 책임이 되고 있는 현실에 직면했다. 선진국처럼 앙코르 커리어에 대한 노년의 사회적 제도와 정책이 본격화돼야 하는 시점이다. 이유리 서울예술단 단장 겸 예술감독·서울예술대 예술경영전공 교수

[문화카페] 경지하다… 지경하다 <1>

춤이 절로 나왔다. 그림을 보는 순간 크게 웃었다. 태어난 지 22개월 된 아이가 세상에 와서 처음한 황칠이었다. 당장에 밑 칠해 두었던 하얀 캔버스를 벽에 세워 두었다. 두발로 직립하고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아이는 왔다 갔다 하면서 찌르고 긋고 두드렸다. 열흘 남짓 되었을까 상상 밖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감동이었다. 의식과 도식이 흉내 낼 수 없는 본성과 본능의 향연, 무아의 경지였다. 아이가 의식의 통제를 받으며 선을 긋거나 현대미술의 흐름을 읽고 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이 궁금했지만 헤아릴 길 없다. 10년 전의 일이다. 손녀의 황칠은 경지(境地)와 지경(地境)에 대한 절절한 화두가 되었다. “벽에 똥칠하기 전에 죽어야지!” 노망을 예비하는 노년의 시린 독백이지만, 생에 대한 강한 의지의 역설이다. 무아의 경지 황칠과 지경의 표정 똥칠은 닮았다. 둘 다 의식의 통제밖에 있다. 아이의 황칠은 인문의 시작이며 창의적 본성의 싹이다. “그냥”하는 예쁜 짓이다. 어른의 “그냥”은 멀쩡한 의식이 허하지 않지만, 아이는 단박에 해치운다. 똥칠은 슬픈 해프닝이다. 우주를 방황하는 혜성이다. 인간은 황칠에서 그림으로 진화하여 꽃이 되었다가 의식의 경계에서 추방되어 똥칠로 생을 마감한다. 본래로 돌아간다. 황칠과 똥칠, 여기가 화양연화의 실경이다. 35년 전, 정신병원에서 정신이 마실 나간 많은 사람을 만났다. 무쏘의 불처럼 의지가 의식에 앞섰던 살 불 살 조의 시절, 인간의 정신을 보겠다고 덤벼들었다. 융과 프로이트의 의식과 무의식의 텍스트가 미덥지 않았던 터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나?” 지경을 위로하는 비감한 말이다. 다빈치의 후예들이 있다. 칸딘스키다. 피카소다. 죽었거나 살았거나 그들의 붓질도 결국은 경지를 탐하는 여정이다.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리기 위해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피카소의 고백이다. 황칠처럼 마음 가는 대로 칠한 것 같지만, 잭슨폴록도 바스키야도 산발한 의식의 패치워크다. 치밀하게 의식을 제어한다는 말이다. 변기를 예술로 둔갑시킨 뒤샹은 서명 하나로 의식을 개념으로 만들었다. 회화의 외연을 캔버스 밖으로 확장한 혁명적 사건, 회화의 파앤드어웨이다. 하지만, 뒤샹의 서명도 의식의 변주다. 서명은 문명사회에서 성문화된 자의식의 아바타이다. 경지와 지경을 가늠하는 일은 제정신으로는 불가하다. 양자역학으로도 증명할 수 없다. 피카소의 고백도 “아이처럼” 황칠하고 싶은 희망 사항이듯 경지와 지경은 스스로 자기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자유가 스스로 자유라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자유라 말하는 순간 자유에 구속되기 때문이다. 이는 “진리는 길 없는 경지다”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말과 어순만 다를 뿐 같은 맥락이다. 분명한 것은 습(習)에 물든 어른은 황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정신줄을 놓아야 한다. 용맹정진, 기적처럼 그 경계를 넘어서면 그 순간, 벽에 똥칠하게 된다. 일장춘몽이다. 그 얄궂은 위치가 경지와 지경이다. 경지와 지경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밖에 있다. 돌아갈 수 없다. 건너뛸 수 없다. 둘 다, 제정신이 완벽하게 디가우징된 불가역적 세계다. 어찌하오리까? 무애(無㝵)다. 원효의 화쟁(和諍)터로 간다. 의식과 무의식, 경지와 지경, 황칠과 똥칠, 모든 정체들의 화해가 화쟁의 참모습이다. 씨 뿌리는 일, 쌀 씻는 일, 설거지하는 일상이 무애다. 그냥 하는 막춤이 무애의 춤이다. 이를 넘어설 재간은 없다. 순간을 경배하는 일, 여기가 화양연화의 진경이다. 생의 모든 순간이다. 춤이 절로 한다. 김아타 사진작가

[문화카페] Art is Just Around the Corner

일상에서 우리는 예술의 숨결을 흔히 느낄 수 있다. 빌딩 앞에 설치된 거대한 미술품이나 아트가 가미된 간판, 정거장에서 홍보되는 디자인된 광고물, 담벼락을 수놓은 그래피티(graffiti) 등 동시대에 와서 길모퉁이를 돌면 어느 곳에나 쉽게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즉, 행인을 잠시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끌어들이는 예술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편재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행인에서 관객으로 변화해 어떤 작품 일부가 돼보는 경험도 가능하다. 이는 길을 가다 의도치 않게 어떤 작품 속 일부가 돼버린 행인마저 관객이 될 수 있다는 ‘동시대 문화예술의 관객성’과도 궤를 같이한다. 문화예술은 이처럼 동시대에 와서 이전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이해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새롭게 재해석된 동시대 문화예술은 더 이상 작품의 창작자, 즉 예술가 중심이 아닌 작품을 보고 즐기는 관객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변의 현상을 예술의 일상성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환영해야 할 것이다. 한편 세계의 도심이자 그 자체가 예술로 여겨지는 뉴욕 맨해튼은 이러한 예술의 일상성이 두드러지는 대표적인 도시다. 이 도시를 거니는 것만으로 하나의 예술적 행위를 하는 중이라는 기분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니 말이다. 필자가 코로나 팬데믹 직전 뉴욕을 방문했을 때 길가에서 사람들의 유쾌한 비명을 들었고, 그 소리를 따라간 길목에서 놀라운 광경을 본 경험이 있다. 으레 차가 다녀야 할 도로가 통제되고 한가운데 설치된 거대한 시소 놀이터가 그것이었다. 맨해튼의 중심가인 37가와 38가 사이 브로드웨이에 누구나 이용 가능한 12개의 대형 시소 예술품이 설치돼 있었다. ‘충동’ 혹은 ‘자극’이라는 뜻을 지닌 ‘Impulse’가 바로 이 작품의 제목으로 단순한 시소가 아닌 5~8m의 다양한 길이로 제작돼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빛을 내는 시소로 이용자들의 튕기는 탄성에 의해 내장된 스피커에서 무작위적 사운드 시퀀스를 방출하는 예술작품이었다. 목적 없이 길을 걷던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휴대폰을 들어 카메라를 켜게 하며 자연스럽게 예술작품의 행위자가 되게 하는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보는 이도, 시소를 타는 이도 모두 흥분된 기분으로 낯선 사람들과 마주 본 상태로 시소 예술을 즐겼다. 나이도 인종도 알 수 없는 처음 본 상대방의 운동성을 믿고 의지하며 함께 즐기는 찰나에 아마도 어떤 이들은 놀이터에서 시소를 타던 각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것이다. 필자는 당시 도시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함박웃음을 본 것만으로도 그 순간 형언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이렇게 불특정 다수와 함께 의도치 않게 즐거움을 나누는 경험은 과연 예술이 아니라면 가능할까. 그렇다. 동시대에 와서 예술은 우리 일상 곳곳에 깃들어 있고 우리는 다양한 시공간에서 예술을 접하는 경험을 한다. Art is just around the corner. 예술이 우리가 예상치 못한 사이에 항상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박성연 호원대 공연미디어학부 교수

[문화카페] 필름이 지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10월27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시청각 유산의 날’이다. 1980년 10월 27일 세르비아 벨그라드에서 개최된 제21차 총회에서 ‘시청각 기록의 보호와 보존에 대한 권고문’을 채택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2005년부터 유네스코 회원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서 관련 행사가 펼쳐져 왔다. 한국의 경우 2019년과 2020년에 오프라인 행사가, 2021년에는 온라인 행사가 있었다. 올해에는 한국영상자료원과 새공공영상유산정책포럼의 공동 기획 하에 10월 27일 오후 2시부터 5시 30분까지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제2관에서 2년 만에 오프라인 행사가 열렸다. 테마는 ‘필름 아카이빙을 말하다’였다. 이번 행사는 다양한 시청각 유산(Audiovisual Heritage) 중에서도 영상 매체, 특히 영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1부에서는 이네스 토하리아 테란(Ines Toharia Teran) 감독의 <필름, 우리 기억의 살아있는 기록(Film, the Living Record of our Memory)>(2021)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됐고, 2부에서는 한국영상자료원 성연태 대리와 기록문화보관소 박주원 실장의 전문가 대담이 마련됐다. 대담의 진행은 필자가 맡았다. 이를 통해 필름 아카이빙의 개념과 필요성, 국내외 필름 보존 및 보관, 영상 복원 및 디지털화 작업의 공정과 업무의 특수성 등에 관한 개괄적이고도 구체적인 논의와 설명이 이뤄졌다. 알려진 바대로, 19세기 말 영화가 등장하고 정착하게 된 데에는 필름의 개발과 상용화라는 기술적, 산업적 배경이 자리해 있었다. 이후에도 무려 100여 년간 영화는 촬영, 현상, 배급, 영사 등의 전 과정에서 ‘필름’이라는 물리적 기반을 토대로 삼았다. 영화(Film)의 역사가 곧 필름(film)의 역사였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적어도 20세기만큼은 영화 필름에 지나간 세월의 흔적(歷史)이 생생하게 담겨졌다. 인류 역사의 바탕에 인간의 기록 행위가 전제돼 있음을 떠올리건대, 동시기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영상 매체로서의 지위를 누렸던 영화 필름이 지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상당히 크다고 하겠다. 필름은 외부 환경에 따라 쉽게 변질되고 손상되는 물질적 속성을 띠기도 한다. 때문에, 소중한 문화유산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적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그것을 철저히 관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필름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10월 27일은 한국 ‘영화의 날’이기도 하다.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한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연쇄극 <의리적 구토>가 개봉된 일을 1960년대부터 기념해 온 것인데, 이 작품의 필름 자료는 소실된 상태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영화 필름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반전은 의외로 필름 시대의 종말을 고하던 때에 일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필름 발굴, 복원, 데이터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행해져 과거의 명작들이 소생하게 된 것이다. 또한 필름 아카이빙도 보다 체계화됐고, 관련 전문가들이 양성되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다. 젊고 유능한 인력의 확충과 더불어 국가 기관, 민간 업체, 개인별로 흩어져 있는 방대한 자료를 아우를 만한 통합적 관리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매체의 근본적 변화가 추동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공공의 재산인 필름이 지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식하고 환기시키려는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함충범 한국영상대 영화영상과 교수

[문화카페] 자발적인 축제 기획

매년 8월 마지막 주에 미국의 네바다 사막은 신기루처럼 한 도시가 탄생했다가 일주일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 도시의 시민들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자유로운 사고로 대형 조형 예술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 서로의 손재주와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다양한 물물 교환으로 생활한다. 단 일주일만 존재하는 예술가들의 블랙 록 시티(Black Rock City) 모습이다. 블랙 록 시티는 네바다 주의 사막 도시의 지명이면서 일주일만 존재했다 사라지는 축제를 위한 가상의 도시명이기도 하다. 일주일의 삶이 끝나면 블랙 록 시티의 시민들은 거대한 인간 조형물을 불태우며 스스로 공을 들인 예술 창작물과 스스로 건설한 집과 관계들을 스스로 파괴한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1986년에 시작되어 36년의 역사를 유지하는 세계적인 축제인 버닝맨 페스티벌(Burning Man Festival) 축제 얘기다. 이 축제는 축제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술 축제로 여겨진다. 한국의 10월, 축제의 계절이다. 전국 곳곳이 다양한 지역 축제로 다채롭다. 형형색색 변해가는 자연은 사람들을 모으고 사람들은 그 자연에 신명나는 집단 문화를 프로그래밍 한다. 10월에 사람들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서의 본성에 충실해진다. 모든 인간은 노는 존재이며 그 원동력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비일상성을 향한 인간의 원초성이라는 이 호모 루덴스 개념을 주창한 요한 호이징가 (Johan Huizinga)는 그 유희적 본능이 문화적으로 표현된 것이 축제라고 했다. 최근에 한국의 축제 현장은 대표적인 호모 루덴스를 잃었다. 한국의 전통을 대중과 밀착시키고 세계화 시킨 한국축제감독위원회 회장인 주재연 축제 감독의 돌연사는 한국의 축제 분야 뿐 아니라 전통예술 분야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특히,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면서 집단성과 현장성을 기반으로 한 축제가 가야하는 새로운 길에 대한 모색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행동했던 전문가였기에 포스트 코로나에서의 한국 축제 분야는 나침반이 흔들린 것과도 같았다. 그런데 한 소셜 미디어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주재연 감독에 대한 추억 다지기와 기리기는 최근 들어 온라인 축제의 방향성에 대해 유난히 고심했던 주재연 감독의 죽음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온라인 축제와도 같았다. 누군가 주재연 감독과 함께 한 추억의 사진을 업로드했고 또 다른 누군가 또 다른 추억의 사진을 업로드하며 자연스럽게 주재연 감독과의 동반 사진이 릴레이로 줄을 이었다. 제각각의 추억들 속에서 주재연이란 인물의 인간미와 역사와 업적이 연작 드라마처럼 되살아났는데 지켜보면서 자발적인 크리슈머들에 의한 자연스런 온라인 축제로구나 감탄했다. 버닝맨 페스티벌처럼 흔적도 없이 스스로를 강렬하게 불태우고 떠난 주재연 감독은 그렇게 소셜 미디어 속에서 그를 추억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환생한 것이다. 신명과 놀이에서는 지구상에 따를 자가 없는 우리 민족 기질이 낳은 또 하나의 감동적인 온라인 축제 콘텐츠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이런 자발적인 집단 기획은 사실 우리 일상 속에서 곳곳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다. 선행 미담을 낳는 업소에 줄줄이 ‘돈쭐내는’ 문화와 신조어의 탄생에서부터 돌아보면 우리는 스스로가 기획하는 축제 속에 살고 있다. 이 가을에 스스로 잊고 지냈던 호모 루덴스로서의 본성을 되찾아 보자. 이유리 서울예술단 단장 겸 예술감독·서울예술대학교 예술경영전공 교수

[문화카페] 너 자신을 혁명하라

함석헌 선생께서 즐겨 쓴 말이다. 스승 다석(多夕) 선생의 한시 ‘生命(생명)’의 요강이다. 들숨과 날숨처럼 공명한다. 두 종류의 혁명이 있다. 외적 혁명과 내적 혁명이다. 하늘에서 내린 명(命)을 새롭게(革) 하는 것이 혁명의 참 의미이지만, 외적 혁명은 나라를 바로 세우는 명분으로 체제 전복이 목적이기에 폭력적이다. 내적 혁명은 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작가로 평생을 혁명하고 파격했다. 언감생심, 닭 모가지도 비틀지 못하는 내가 어찌 세상을 혁명 하나, 대신 나를 혁명하고 파격했다. 하지만, 혁명하고 파격 하는 일은 모든 것을 담보해야 한다. 창조가 존재 이유인 작가들에게 혁명이란 어떤 의미일까? 의식의 진화를 박제하지 않는 일이다. 동물과 다른 인간의 위대함은 창조에 있다. 모든 인간의 정체성은 다르며 독창성은 현대미술의 전부다. 내적 혁명의 주체인 창조적 의식의 진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벽은 ‘쩐의 전장’, 시장이다. 시장은 작가들의 생명을 연장하는 빵을 제공하지만, 의식의 진화를 박제하는 유리 상자가 되기도 한다. 쩐에 경도되면 시장이 원하는 꼴만 생산하게 된다. 쩐을 초월하면 예술 행위를 계속할 자유의지를 보장받지 못한다. 작품은 세상과 소통하고, 유통해야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삭막한 비유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이미 잘 알려진 작품을 계속하지 않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것을 자살 행위라 말한다. 새 작업이 유통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30년 40년, 죽을 때까지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혹자는 이를 두고 무한 반복의 미학이라 미사여구 하지만, 현대미술에서 금기시하는 자기복제의 무한 반복이다. 장인정신으로 전통을 고수하는 무형문화재와 대척점에 있어야 할 현대미술은 창의성이 생명이다. 대단한 화두라도 5년, 10년을 몰입하면 대부분 해체(Deconstruction)된다. 여기서 해체는 새로움의 다른 말이며 이미 해체(Destruction)된 작업의 창의성은 소멸된다.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듯이 현대미술은 죽은 의식으로 실존을 장식하는 영역은 아니다. 장인정신으로 철갑을 두른 노회한 작가들이 시장을 잠식했다. 피 끓는 젊은 작가들의 파격적인 창의성은 고사됐다. 시장통은 장식의 도가니가 되고 세계의 호구가 됐다. 몸과 마음의 관계를 뜻하는 심신 상관성의 어원처럼 몸과 마음은 매우 민감한 상호작용으로 연결된다. 몸이 없는 정신은 뜬구름이고 정신이 부재한 몸은 마루타가 되듯이 몸과 마음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현상이 실존이다. 작가들은 자의식이 매우 강한 부류의 사람들로서 자존감을 생명의 근간으로 삼는다. 이를 부정할 아티스트는 없다. 하여 예술 행위를 자신의 철학과 의식의 배설로 인식한다. 가혹한 말이지만, 평생을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것은 자신의 똥을 먹는 것과 같다. 세상은 시장에 함몰돼 모른 체하더라도 내 배설이 장식인지 창조인지 자신은 안다. 씨와 DNA는 스스로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한다. 햇빛과 온습도 등, 환경의 영향으로 발아하고 생장한다. 모든 존재는 스스로 완성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자연법이다. 우주를 통째로 씹어 먹어도 성에 차지 않을 젊음의 자유 의지가 활화산처럼 폭발하게 해야 한다. 그 파편이 세상을 장식하게 해야 한다. 김아타 사진작가

[문화카페] 동시대 문화예술과 관객성

동시대 문화예술의 트렌드는 ‘관객성’이다. 예술작품 그 자체, 창작자 혹은 연출자, 그리고 작품의 일부인 공연자들만큼이나 작품을 향유하는 관객의 역할과 위치가 작품의 완성도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또한, 동시대 관객의 성향이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창작자 관점에서 작품에 관여하여 예술을 경험하고, 작품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기를 희구한다는 점이 그렇다. 즉 관객은 더 이상 창작가 표현하고자 했던 관념을 이해하는 제 3자가 아닌, 해당 작품의 주체가 될 때 가장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자신의 느낌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재생산한다. 대표적인 예로 아르떼 뮤지엄과 같은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의 관객은 어느 순간 작품의 주인공이 된 듯 동화되는 몰입을 경험한다. 관객성은 예술작품을 접하는 시기 관객의 성격이나 성향, 역할 등으로 설명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관객은 공연예술에서의 관객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앞선 예시처럼 뮤지엄을 관람하는 관람객도,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도, 길을 지나가다가 의도치 않게 어떤 작품의 일부가 되어버린 행인마저도 관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동시대 문화예술에서 설명하는 관객성의 요지다. 그만큼 동시대 문화예술에서 관객을 만나는 예술 창작자들의 인식이 변화했고 예술작품에 대한 능동적인 관객 참여가 많아졌으며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상당 부분 허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관객성은 왜 동시대에 와서 중요성을 띠게 된 것일까? 애초부터 관객을 하나의 주요소로 인식하는 공연예술에서 그 의미를 제고(提高)해 본다면 과거와는 다른 변화를 확인해볼 수 있다. 공연예술에 있어 극작가들의 작품 집필 실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그리스 시대, 배우 개개인의 연기적 역량이 중요해진 르네상스 시대, 이후 다양한 극작품들을 토대로 세기의 공연작품들을 탄생시킨 19~20세기의 연출가의 시대, 자본력이 곧 예술의 척도가 되었던 프로듀서의 시대, 그리고 작품에 있어 무엇보다 관객의 주체성과 관객과의 화합이 요구되는 동시대, 바로 관객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전에는 예술에서 작품 자체와 창작자가 그 어떤 요소보다도 중요했다면 동시대 문화예술에서는 작품과 그 작품을 향유하는 관객 사이에, 그 작품을 창조한 예술가의 창작과정과 그 순간들 사이에, 그리고 작품과 어우러지는 관객과 관객 사이에 작품의 의미가 담겨지게 되었다. 이처럼 동시대 문화예술에서 관객과의 소통이 중요성을 지니기 시작하면서 문화예술계의 전반적인 컨셉과 방향성이 달라진 것이다. 예술작품에 대한 관객의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고 관객의 감상은 미완성의 작품을 완성하는 매개가 되었다. 이에 더해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의 급진적인 발전은 예술작품에 관한 자기 생각과 감상을 가감 없이 공유하게 되는 하나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특히 MZ세대들 가운데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소위 예술의 ‘자발적 재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예술작품에 관한 생각과 감상은 해시태그로 확장되고 그들에 의해 다양한 색깔이 덧입혀져 새로운 예술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해당 예술작품의 작가나 작품의 주최 측에서 요청하거나 부탁한 것이 아닌 관객이 자발적으로 행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결국, 이렇게 관객에 의한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하나의 예술적 과정과 감상법을 통해 과거에 대비하여 동시대의 관객성이 얼마나 확장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포스팅 하나로 관객이 예술작품의 일부가 되거나 해당 작품의 예술적 과정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된다. 필자는 동시대의 관객성 확장과 같은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예술의 유구한 역사를 통틀어 가장 바람직하고 값진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예술은 이제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진일보했으며 예술가와 작품, 그리고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동등해진 관계는 우리의 일상을 더없이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박성연 호원대학교 공연미디어학부 조교수

[문화카페] 인연으로 뜻깊어진 배창호 감독의 특별전

지난주 목요일, 필자의 소속 학과에 출강하는 안재석 교수로부터 최근 출간된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제목은 ‘배창호의 영화의 길’이었다. 책 속에는 1980~90년대를 풍미한 배창호 감독의 인생 여정이 작품 활동에 따라 크게 다섯 시기로 나뉜 채 안재석 교수와의 대담 형식을 통해 서술돼 있었다. 안재석 교수는 21년 전 우연히 TV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한 이후 배창호 감독과 줄곧 가깝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책의 내용도 그러했지만 두 사람의 만남을 둘러싼 일화가 더욱 흥미로웠다. 다음 날, 학과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각자의 주말 일정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김용찬 교수로부터 이틀 뒤 가족들과 함께 ‘배창호 감독 특별전’에 갈 계획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김용찬 교수와는 서로 옆 연구실을 쓰는 사이라 그가 영화 ‘흑수선’(2001년)에서 조감독 일을 하며 맺게 된 배창호 감독과의 친분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들은 바 있었지만 일부러 휴일에 맞춰 가족들을 대동하고 세종에서 서울까지 간다는 말이 다소 놀랍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지난 며칠간 인터넷 공간을 장식한 ‘배창호 감독 특별전’ 관련 기사들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배창호 감독의 데뷔 4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이번 특별전 기간인 2주 동안 전국 5곳의 CGV에서 그의 대표작 7편이 상영되고 있는데, 더불어 마련된 부대 행사를 통해 해당 영화에 주연을 맡았던 과거 은막의 스타들이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언론의 관심을 더욱 이끌게 된 듯 보였다. 특히 화제를 모은 것은 배우 안성기씨가 지난 15일 거행된 개막식 무대 인사 및 17일에 진행된 ‘깊고 푸른 밤’(1985년)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참여한 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가 1년 넘게 혈액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고, 그의 쾌유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이름 앞에 ‘국민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안성기씨는 1980년대부터 수십년간 영화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였다. 때문에, 그가 출연한 수많은 작품들을 보고 자란 필자에게도 그의 투병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본인의 말대로 건강 상태가 호전되고 있으니 공식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곧 다음과 같은 질문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데 왜 하필 배창호 감독 특별전을 통해서였을까?’ 그 이름을 빼놓고 한국 영화를 논하기 힘들 정도로 1980년대 배창호 감독의 존재성이 매우 컸음은 부정할 수 없겠으나 1990년대 이후 그 활약상이 현저히 미미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데뷔 40주년을 맞이해 특별전이 열리게 됐고 이를 통해 안성기씨를 비롯해 김희라 김보연 최불암 황신혜씨 등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배우들이 다시금 스크린 앞에서 팬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감독이 움직이니 배우들도 따라 움직이게 된 셈이다. 배우들뿐만이 아니었다. 여러 평론가와 감독, 기자들이 행사를 통해 배창호 감독 영화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안재석 교수나 김용찬 교수의 경우처럼 배창호 감독과 사적으로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은 삼삼오오 객석을 채우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배창호 감독 영화들을 재차 들여다보니, 그 속에는 언제나 사람들과 그들의 관계(인연·因緣)가 자리하는 듯 보인다. 뜻깊은 인연이 매개될 때 작품이 더욱 빛날 수 있음을 배창호 감독 특별전을 통해 새삼 절감하게 된다. 함충범 한국영상대 영화영상과 교수

[문화카페] 공연 콘텐츠의 새로운 광장

모든 새로운 콘텐츠는 시대의 반영이고 시대의 해결책이다. 코로나 19에 대응하기 위한 인류의 모색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면서 다양하고 낯선 콘텐츠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공연 시장만 보더라도 온택트 공연, 랜선 공연, 온라인 공연 등 공연 온라인 스트리밍서비스에 대한 신조어도 다양하게 생겨났다. 물론 공연 영상화는 해외에서는 공연 콘텐츠의 부가 가치 수단으로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존재했고 대안 콘텐츠라는 공연 기반 새로운 콘텐츠 모델로 자리매김한 개념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공연장이 유일한 플랫폼인 현존성을 공연의 절대적인 가치로 몰두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휩쓴 지난 3년 간 한국의 공연 시장은 공연장을 벗어난 새로운 공연 플랫폼 개발과 유료 콘텐츠로의 모색에 발 빠를 수밖에 없었다. 사회 급변에 시시각각 대응하고 적응하고 심지어 즐기는 관객들을 향하려면 필연적인 생존책이었다. 관객들은 이미 동영상 기기, 게임콘솔, 스마트패드, 모바일 기기 등 콘텐츠를 접할 새로운 플랫폼을 일상 속에서 끝없이 만나고 있기에 공연 생태계는 자연히 '공연의 미래는?'이라는 암울한 화두에 직면한 것이다. 자연히 '온라인 플랫폼들이 공연의 대체재가 될 수 있나? 보완재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도 많다. 그래서 지난 3년 간 코로나의 태풍 속에서 공연 취소를 반복하며 살아 온 공연 종사자로서 공연의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인식과 모색은 내게도 심각한 본질적인 명제였다. 그 사이에 많은 공연 종사자들이 공연 시장을 떠났고 여전히 공연은 관객과 대면하는 현장예술로서만 가능하다고 확신하기도 한다. 또, 공연 플랫폼의 변화는 관련 법제, 시스템, 전문 인력의 필요성 등 새로운 과제들이 뒤따른다.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서울예술단이 최근에 ‘웹뮤지컬 공모전’을 꾸준히 개최하고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서 다양한 뮤지컬 커뮤니티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도 공연의 미래를 향한 암중모색일 수 있다. 그런데 서울예술단의 레퍼토리인 ‘잃어버린 얼굴 1895’를 ‘메타버스 뮤지컬’ 콘텐츠로 개발한 최근 작업에서 공연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나침반을 발견했다.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해 공연 이벤트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시도한 온라인 행사였는데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중 한 장면을 모션 캡쳐와 볼류매트릭 촬영 기술로 프로그래밍해 유저들이 클릭을 하면 자신의 아바타가 그 장면의 안무를 직접 춤으로 표현할 수 있는 콘텐츠가 특히 주목 받았다. 배우들이 긴 시간 연습하며 익힌 노래와 춤을 클릭만으로 똑같이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의 무대 의상을 다양하게 응용해 착용한 100명에 가까운 아바타들이 뮤지컬 속 한 장면을 배우들과 동일한 군무로 구현하는 모습은 낯선 장관이었는데 그 생경한 볼거리에서 공연 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 것이다. 공연장에서는 객석과 무대가 분리돼 있고 배우들의 일방적인 전달을 관객들은 바라보지만 온라인 플랫폼 안에서 새롭게 개발될 공연 콘텐츠에서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도 단절도 없이 관객과 배우가 실시간으로 창조적인 소통을 하며 관객이 상상하는 대로 스스로를 공연 속의 인물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낳은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은 특히 공연 종사자들에게 관객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자극제일 수 있다. 공연장이 유일한 생존의 장이었지만 새로운 각도로 눈을 뜬다면 온라인 플랫폼은 예술가와 관객이 경계 없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공연의 새로운 광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유리 서울예술단 단장 겸 예술감독·서울예술대학교 교수

[문화카페] 사유의 힘

1592년 임진년 4월, 칼로 일본 열도를 제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은 조선을 향했다. 명을 치기 위해 길을 열라는 명분은 시비였다. 부산포에 상륙한 지 20일 만에 도성이 함락됐다. 임금은 왜(倭)의 총칼에 도륙 당하는 백성을 버리고 나라 끝까지 도망을 갔다. 그해 7월, 백척간두에 선 절체절명의 시간, 조선의 존망이 걸린 해전이 한산대첩이다. 명량해전과 시제(時制)가 다를 뿐 풍전등화 같은 조선의 운명은 같다.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왜(倭), 오직 혼자 결정해야 하는 절대 고독의 순간, 장군 이순신이 있었다. 모함과 시기, 파직과 백의종군, 칠흑 같이 어두운 절망적 현실과 대적했다. 판옥선에서, 수루에서, 꿈속에서도 장군의 사유는 계속됐다. 절망적 환경은 바람에도 길을 묻는다. 울돌목의 급류, 병의 목처럼 긴 견내량의 협수로, 항아리처럼 생긴 옥포만, 작은 섬들로 직조된 남도의 자연 등 장군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장군의 배가 됐다. 사유는 눈앞에 닥친 현상만 보지 않고 전체를 보게 한다. 한산대첩의 결정적 승기인 학익진은 지독한 환경을 우군으로 승화시킨 사유의 완성이다. 여진족 기병의 기습으로 큰 피해를 입은 녹둔도 전투가 장군의 꿈에서 영화 ‘한산’의 미장센으로 소개된다. 손자병법에도 없는 진법이 학익진이다. 장군의 인문주의가 그것을 완성했다. 인문이 무엇인가? 인간의 조건을 완성하는 창의적인 인간의 가치다. 전쟁은 죽지 않고 살 수 없는 가장 야만적인 게임의 법칙이다. 살신성인하는 그것이 사유의 절정, 사즉생(死則生)이다. 모든 인간은 절망의 순간 현자가 된다. 장군의 시간, 사유의 흔적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먹의 농담(濃淡)으로 남았다. 8년 전 강연 날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은 몇 척의 배가 남았습니까? 파격적인 작업을 계속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나는 한 척의 배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지점이 내 좌표입니다. 나를 살게 한 것은 오직 사유, 사유의 힘입니다.”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물음이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나에게 한 척의 배도 남아 있지 않다. 여기가 사유의 시작이다. 절망과 대적했던 내 사유의 열반이 배로 부활한다. 비로소 수백, 수만 척의 배가 된다. 사유는 추상이 아니다. 구상이고 실존이다. 모든 에너지를 작업에 쏟았다. 여분의 배가 남을 리 없다. 파격은 그냥 오지 않는다. 파격은 내적 혁명이며 내적 혁명은 사유의 꽃이다. 2022년, 조선의 귀선(龜船)은 무엇인가? 반도체다. 칩 4가 그것을 입증한다. 대만에서 반도체 산업은 호국 신기(護國神器)라 불리듯이 그 핵심은 반도체이다. 과거도 현재도 한국과 대만의 입지적 환경은 엄혹하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더 작은 것에 더 많은 것을 집적하는 일, 그것이 반도체다. 이는 절망적 환경에서 연전연승했던 위대한 장군의 부활, 사즉생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하고 경영하는 대한국인들의 사유의 힘이다. 조선의 생살 여탈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장군께서 대한민국에 묻는다. “몇 척의 배가 남았는가?” 김아타 사진작가

[문화카페] 호계서원의 정상화를 촉구한다

‘한국 유학문화의 진흥’을 기치로 경북도와 안동시가 65억원을 들여 안동 도산의 국학진흥원 근처에 복설한 호계서원(虎溪書院)에서 지난해 9월에 사태가 발생한 이래, 아직도 해결의 기미가 없다. 여러 시비가 착종돼 대립하는 양측이 먼저 시도에 나서기 어려운 듯하고, 양측의 입장에 편차가 커 오해가 개입할 우려에 중재하려는 동향도 보이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방관과 외면의 분위기에 관심과 조소의 기운이 혼재된 모순의 시간이 길게 흐르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양측은 후유증에 충격이 컸고 문제 성찰에도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지만 이제 국민들의 유감을 헤아리고 대안을 마련해 대화를 시도할 것으로 기대한다. 양측과 무관하며 호계서원의 위상과 역사성을 아끼고 21세기 유학 문물의 쇄신과 활용을 염원하면서 조속한 해결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없을 수 없다. 그들 사이에서 거론된 호계서원 정상화 방안을 이 자리에 소개해 양측뿐만 아니라 모든 관심 있는 분들의 참조와 검토에 부응하고자 한다. 첫째, 위패 배열. 1620년 방식으로 세 선생의 위패를 배치하고, 대산 이상정 선생의 위패도 위치를 변경해 존치한다. 즉, 제1열 중앙에 퇴계 이황 선생, 제2열 좌측에 서애 류성룡 선생, 같은 열 우측에 학봉 김성일 선생의 위패를 설정하고, 지난 병호시비(屛虎是非)에서 오랜 숙제였던 대산 선생의 위패를 제3열에 설치해, 사제관계를 보다 분별하면서 화합의 취지를 재차 구현한다. 둘째, 위패를 배치하는 사정과 관련 시비를 영구 종식한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화합의 고유제를 지낸다. 셋째, 서원 운영. 현재 운영위원회와 반대 측, 그리고 유학 학자들을 포함해 양측과 무관한 인사들이 같은 수로 참여하는 새 운영위원회를 구성한다. 넷째, 새 운영위원회는 즉각 한국의 가정과 사회윤리 개선에 기여할 ‘양사(養士)’ 방안과 관련 프로그램을 널리 여론을 경청해 모색하고 적극 실천한다. 이상 절충안은 특별하지도 새롭지도 않다. 해결을 촉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도출할 수 있고, 양측도 이후 성찰에서 내심 정리한 대책일 것이다. 사정이 없지 않았지만 서애 학봉 선생과 무관하게 후학들이 불화하다가 200여년 만에 화합 기회를 마련하고서 도리어 퇴계 선생까지 끌어들여 그 이전만도 못하게 한 희대의 이 아이러니. 더 시간을 끈다면 무책임한 방치이다. 빨리 정상화하지 않는다면 크게는 다문화시대를 맞아 재정립과 분발이 요구되는 한국 유학문화 전체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악재가 될 것이고, 작게는 네 분 선현의 그 아름다운 관계와 학덕뿐만 아니라 호계서원의 기맥을 협동학교에 이어 신흥무관학교에 전수한 일제강점기 선열들의 푸른 기개와 의리를 훼손하는 무모한 아집으로 양측은 비판받을 것이다. 김승종 시인·전 연성대 교수

[문화카페] 연극은 필요하다

비대면의 시대가 가속화 되면서 연극이 설 자리는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연극인들의 제작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다. 내 주변의 동료 연극인들이 연극 한 편을 올릴 때마다 그들의 뻔한 살림살이가 걱정돼 늘 ‘관객은 많아?’라는 말로 서로의 안녕을 묻는다. 20여년 전 연극 시장은 그래도 좋은 연극에는 관객이 줄을 지었다. 굳이 인기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아도 좋은 연극에는 늘 관객들이 모였다. 이즈음 연극은 극단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열을 내며 생산됐다. 인터넷 예매도 어려웠고 모든 것이 다 불편했던 이 시기 오히려 연극은 더 빛을 내고 있었다. 가끔 그 시절에 연극 한 편을 보기 위해 불편하게 줄을 지어 기다렸던 관객의 행렬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은 연극 제작 시스템이 매우 선진화됐고 다양한 방법으로 공연을 알릴 수가 있지만 연극을 보러 극장을 찾는 관객의 숫자는 매우 줄었다. 일부 소수의 인기 배우의 팬덤에 의지한 공연 이외에 순수하게 좋은 연극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극단의 공연들은 관객의 외면을 받고 있다. 극단들은 순수하게 관객 수익만을 고려해 공연을 제작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극단은 지원금에 의지해 연극을 간신히 제작하는 상황이며 지원금마저도 부족해 공연을 하고 나면 극단은 적자에 허덕인다. 일부 상업 연극 시장을 제외하고 순수 연극이 설 자리는 더 줄어들고 있다. 연극을 전업으로 했던 훌륭했던 그 많던 배우들은 OTT 드라마, 영화 그리고 TV 드라마로 다수 이동해서 연기하고 있다. 연극을 지키는 훌륭했던 예술가들도 더는 지금의 연극 제작환경에서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다. 첨단의 시대로 접어드는 지금 이때 왜 연극이 필요한가? 연극은 과연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가? 연극은 어떻게 보면 참 불편한 장르다. 정해진 공간에 정해진 시간에 모두 모여야 성립이 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식당에 가도 반갑게 맞이하는 인간 대신 키오스크로 다양한 메뉴를 선택하고 주문하는 시대다. 이런 키오스크의 등장이 처음에는 매우 낯설고 불편했지만, 지금은 키오스크의 주문이 훨씬 편안함을 준다. 인간은 점점 더 인간을 대면하는 일에 불편해하고 고립을 즐기고 있다. 인간 고립의 속도는 매우 빨라지고 메타버스의 세계에 인간들은 열광한다. 고립의 시대에 고독해지는 인간은 과연 안전한가? 이대로 옳은 것인가? 연극은 더욱이 순간에 타올라 사그라드는 불꽃과도 같은 예술이다. 고립이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연극은 인간 대면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극은 불편하지만 인간 대면을 요구하고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점유하여 시대의 공감을 이끈다. 바로 이점이 우리에게 연극이 필요한 점이라 생각한다. 연극은 고독한 인간을 구원하고 인간이 함께하고 공유하는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예술이다. 다양한 기기를 통한 동영상의 홍수 속에서 인간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식이 꼭두각시가 되어가는 지금 더욱더 사유를 제공하는 연극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객 저변이 확보되지 않으면서 단순 정부의 지원만으로는 우리의 아름다운 연극이 생존하기는 어렵다. 관객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이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돼야 할 것이다. 더 좋은 연극이 만들어지도록 정부는 상업적인 목적을 완전히 배제한 연극 전용 공간 마련에도 힘을 써야 한다. 상업적인 이유로 연극을 더는 사지로 내몰아서는 안 될 일이다. 새로이 건립될 연극 전용 국립극장도 연극인들과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의 열망을 담아 상업적인 논리를 완전히 배제한 제대로 된 국립극장을 건립해 우리의 연극을 제대로 지켜주길 바란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인천대학교 공연예술학과 교수

[문화카페] 베트남 피아니스트의 애이불비

중학교 국어 시간에 외우듯이 배운 표현이 있다. 바로 애이불비(哀而不悲). 마음이 슬퍼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으로 선생님은 이게 한국 예술의 정수이자 본질이라고 했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묵묵히 견디며 속으로 삭이는 태도. 그 이면에는 한국인 고유의 한(恨)이 있다며 외국인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고 가르쳤다. 그땐 그러려니 했고 시험 답안에도 그렇게 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난 이를 믿지 않게 됐다. 오히려 냄비 근성 같은 표현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한국인은 후끈 달아올랐다가 금세 식기 일쑤였고, 그걸 표현하는 방식 역시 속으로 삭이기보다는 겉으로 터뜨리는 게 더 흔했다. 예술도 그런 게 주류다. ‘어때? 이래도 안 울 거야? 울어!’라고 강요하는 듯한 신파 속성을 빼놓고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대중음악 역시 구성지게 꺾는 트로트, 신나게 한판 벌이는 댄스, 감동의 끝을 보여주려 하는 발라드 등이 중심이다. 소위 예술성을 중시하는 이들은 이를 외면하고 이따금 경멸의 시선도 보내지만, 한국인의 보편적인 취향을 생각하면 오히려 유난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허세나 허영 같다고나 할까? 클래식 음악회도 비슷하다. 난 한국인 연주자 상당수에게서 고양과 과장의 정서를 느낀다. 테크닉이 두드러지는 대목은 한껏 과시적으로, 화려한 대목은 기세 좋게 폭발적으로, 서정적인 대목은 가히 흐느끼는 수준으로. 자신의 예술세계에 완벽히 몰입한 듯 잔뜩 찌푸린 미간과 격정적인 몸짓은 덤이다. 어제(16일) 한 방 맞았다.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의 리사이틀에서. 그의 음악은 내가 어릴 때 배운 애이불비 그 자체였다. 음 하나하나에 한이 밴 것처럼 느껴지기조차 했다. 이날 그는 쇼팽, 라벨, 드뷔시, 프랑크를 연주했는데 모두 익히 들어온 것과는 결이 달랐다. 자기만의 정서와 해석, 오랜 조탁이 어우러져야만 나올 수 있는 숙성된 연주였다. 무대 위, 사인회장에서 본 그의 태도와 표정 또한 담담하고 조용했다. 이쯤에서 나는 신파의 유혹에 빠진다. 그의 배경 때문이다. 당 타이 손은 1958년생 베트남인으로 1955~75년에 벌어진 베트남전쟁을 온전히 겪었다. 그의 유년기, 청소년기는 드라마 못지않은 극적인 위험과 가난으로 가득하다.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벗어나 제대로 음악 공부를 하게 된 건 전쟁이 끝난 이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소련으로 유학을 떠났고 1980년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연주였다. 모든 음에 애잔한 슬픔이 묻어 있었는데 이는 품격, 우아함 같은 상투적인 표현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보다는 온갖 고통을 인내하고 삭임으로써 빚어낸 어떤 고귀한 결정체 같았다. 글로는 차마 설명하기 어렵다. 불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의 배경을 거론하며 ‘삶이 느껴졌어!’라고 호들갑 떨 수밖에 없는데 어딘지 신파 같아서 미안하고 머쓱한 마음이다. 홍형진 작가

[문화카페] 최후의 만찬(2)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3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다. 작품을 의뢰받은 후 기한에 맞춘적이 거의 없던 레오나르도는‘최후의 만찬’을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당시 전해지는 일화에는, 레오나르도가 받침대에 올라 화면을 유심히 바라보며 붓 한번 대지 않고 팔짱을 낀 채 하루 종일 같은 자세로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작품 제작은 지연되었지만 사실상 이러한 사색이 ‘최후의 만찬’에서 나타나는 증오나 분노, 배신, 종교적 계시 등 다양한 은유들이 가능하게 하였다. 그래서 지속적인 복원이 필요할 정도의 희미해진‘최후의 만찬’이지만 작품의 감동은 여전했고, 인간의 천재성이 만들어낸 기적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그림을 단순히 텍스트에 대한 설명이나 종교적 상징을 넘어 예술가의 독창성과 예술성을 강조하였다. 그러한 혁신이 오늘날 예술로서의 미술이라는 체계를 확립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레오나르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림 속에 수많은 은유를 설정함으로써, 그림이 단순히 심미감을 넘어서 ‘예술적 진리’라는 인간 사유의 포괄적인 영역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최후의 만찬’은 템페라 기법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그림의 훼손의 정도가 심해졌다. 그림의 완성 후 수 차례 복원이 이루어졌고 최근의 복원은 1999년에 시행되었다. 이러한 복원을 통해 ‘최후의 만찬’의 음식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빵과 포도주 등의 음식은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의견이 분분한 것은 도마의 앞에 놓인 접시의 내용물이었다. 명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 내용물은 생선과 레몬으로 특히 생선은 장어라는 것이었다. 구석기 시대의 벽화에 물고기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인류의 등장과 함께 생선은 인간의 주요 식량원이었다. 로마시대에 대규모 생선 시장이 등장하였고,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책에는 생선 요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또 카이사르의 승리 기념 연회에는 6천마리의 곰치 뱀장어가 요리되어 식탁에 올랐다는 기록도 있다. 그 외에도 고대 벽화에는 다양한 생선 그림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것이 연어이다. 그리고 송어, 농어, 뱀장어 등이 그 뒤를 따른다. 연어는 예나 지금이나 귀족 생선이었다. 일단 최후의 만찬에 물고기가 사용된 것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 신의 아들, 구원의 주(lesus Critus Theoun Uios Soter)의 첫 글자를 이으며 ‘이쿠타스(ICTUS)’로 물고기를 뜻하는 말이 된다. 즉 생선이 곧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생선은 물밑에 있다가 떠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뱀장어일까? 레오나르도는 일상사와 여러 가지 생각들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메모 수첩은 약 4천장에 이른다. 여기에는 일기와 그림들, 다양한 어록들이 전해진다. 이 수첩들 중에 레오나르도가 뱀장어를 사서 제자들과 먹고 그것을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복원된 그림의 생선은 껍질은 미끈미끈하고 둥글게 토막 친 것처럼 보인다. 레오나르도는 다양한 직업을 가졌는데 그 중의 하나가 요리사였다. 직접 음식점을 운영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뱀장어 요리 역시 레오나르도가 즐겨 요리하던 재료로 예수의 생존 시대와 상관없이 자신의 취향에 맞춰 요리된 뱀장어 그림을 그렸다는 추측이 있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접촉 공포를 넘어서

2일 밤 9시 기준 코로나 확진자가 11만5천여명이었다. 이쯤 되면 코로나 재유행상황으로 판단한다. 2020년 처음 발생한 이후, 확진자가 발생하면 감염경로를 파악하여, 접촉자에 한해서 pcr 검사를 진행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대상이 특정되다 보니, 사회적으로 ‘금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마치 누구에게라도 접촉하거나 만나게 되었을 때, 코로나 확진자가 되지 않을까 서로 의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필자는 2020년 열심히 지역의 문화공간을 준비, 10월 문을 여는 개관식을 준비했다. 오후 5시 오프닝을 멋지게 준비하고 있는데, 그날 일을 도와주던 아르바이트생이 급하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금 확진자 접촉 문자를 받아서 당장 pcr 검사를 받아야합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공식 행사를 불과 3~4시간 앞두고 받은 통보였다. 행사를 주최하는 입장에서 방역당국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확진자와 접촉을 했으며, 그 문자를 받은 친구가 확진이 될 경우, 그 공간에 함께 있었던 모든 이가 pcr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행사는 급하게 취소했다. 잔칫집이 한순간에 초상집이 됐다. 일 년간의 수고를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날이었지만 그렇게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다. 뼈아픈 경험이었지만 그것 또한 큰 경험과 자산이 됐다. 그 전까지는 느슨하게 지키던 마스크 쓰기와 손 씻기를 철저하게 지키게 되었다. 그리고 행사를 준비함에 있어서 방역당국의 지침을 두세 번 검토하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특히나 예술계 입장에서는 코로나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초창기에는 갑자기 닥친 코로나라는 전염병 환경 속에서 막무가내로 만나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것으로 생각했다. 아주 초창기에는 모든 예술 프로그램이 취소가 됐다. 그 당시, 필자에게 익명으로 페이스북 메시지가 오기도 했다. 본인은 연극배우인데, ‘모든 연극이 취소가 됐다. 단순 아르바이트를 시켜달라’는 메시지였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전염병 사태가 예술계가 얼마나 취약한 노동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었다. 모든 예술 프로그램 취소 이후에는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아주 소수의 인원을 초청해 영상을 제작하고 배포하거나 온라인을 기반으로 다양한 소통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예술의 본질이라는 것이 실제로 얼굴을 보고 그들의 감정을 어루만지고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언제까지 비대면으로 작품을 온라인으로 감상하면서 예술적 경험을 공유할 수는 없다. 2022년 현재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확진자가 나와도 금기하거나 공포에 떨기보다는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전염병으로 인식 중이다. 팬데믹을 너머 엔데믹(풍토병)으로 정착 중이다. 지난 2년여 간의 문화예술계의 팬데믹 경험이 어느 정도 축척되어 있다. 무조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취소하는 것만이 혹은 만나지 않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삶이 있으면 그 희노애락을 담아, 옆의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예술계도 존재해야한다. 접촉의 공포를 넘어, 전염병 속에서도 소통하고 만날 수 있는 묘수를 낼 때다. 이생강 협업공간 두치각 대표

[문화카페] 헤어질 결심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의외로 흥행이 부진하다. 120만 언저리에서 한 출연 배우가 ‘가자, 200만으로!’라고 했다는데, 한 500만은 넘어야 칸의 평가에 부응하고 한류의 진전에도 조력이 되지 않겠는가. 어떤 비평가는 〈헤어질 결심〉의 부진을 “극장의 스크린으로 볼 영화가 아니라서”라고 진단했다. ‘블록버스터가 아니기에 관객들이 굳이 극장에 가지 않으려 한다, 삶과 인간의 어떤 미묘한 세부를 주목하며 그 현상의 복잡한 이면까지 드러내기에 OTT 화면에 어울려서 그렇다’는 견해가 아닌가 한다. 이분법 재단에 동의하기 어렵다. 대중들에게 밉상이 되더라도 한국의 어떤 흥행 풍토를 점검하거나, 〈헤어질 결심〉에서 그 이유를 찾든지, 아니라면 왜 〈헤어질 결심〉이 볼만한지 적극 권장해야 할 것이다. 한편 관람후기엔 이런 촌평이 있다. “기껏해야 결국 불륜극 아닌가?” 반론도 있다. “작품의 결말을 보면 그렇지 않다.” 댓글 형식의 익명 토로지만 아무래도 안타깝다. 픽션의 불륜과 현실의 불륜은 미적 거리의 개재와 관점에 따라 다르게 접근할 수 있고, 좋은 픽션의 불륜은 현실의 불륜 너머의 세계를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은 그런 영화이며, 뭐든 그렇듯 그 부진에도 몇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의 교육체계에서 예술향유의 커리큘럼이 영락한 사정과도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세계가 아는 대로 대학진학률 세계 최고인 교육대국 이 나라에서 중등 교과과정뿐만 아니라 대학 교양과정에서도 문학작품을 위시하여 영화 음악 회화 조각 등 예술 감상 과목이 위축을 거듭해왔고, 근년 이래 그 잔존 과목도 실용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인문계 졸업생의 취업률 저하에서 이 현상이 야기됐고, 유감스럽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고 그대로 수용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반도체 인력양성 확대와 더불어 대학교육 지원이 다시 논의되는 이 때, 다시 물어보자. 그 저하와 일반 인문학교육 배제에 대체 무슨 상관이, 무슨 인과가 있었나? 지금도 의아하기만 하다. 아니 제대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오히려 인문학 교육을 확충했어야 하지 않았나? 인문학 교양은 장식이나 도구가 아니다. 인문학 교양과 향수(享受)가 동반되지 않는 공리(功利)와 효용 추구는 인간을 가볍게 하고 결국 사회를 필요 이상으로 건조하고 각박하게 한다. 인간 자체가 지식과 정서와 의지가 하나로 통합돼 있는 존재, 어느 하나가 결여되거나 부족하면 가치 추구와 판단이 원만하기가 쉽지 않다. 일회성에 제한되는 인간 개체, 하지만 그 막중하고 도저한 운명의 궤적은 그 셋의 교호과정에서 결정된다. 삶의 이면과 내면도 다양하게 통찰하는 경험을 쌓아 휴머니티를 기르는 인문학이 한국 영화에서도 꽃피울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그 북돋는 환경 조성에 나섰으면 한다. 김승종 시인·전 연성대 교수

[문화카페] 엔데믹을 준비하자

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고 이제 세계 각국은 엔데믹을 맞이해서 사회 각 분야마다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다. 특히 관광 여행 분야는 각국이 많은 준비를 서둘러 하고 있다. 그러나 팬데믹의 기간 동안 각국의 관광 인력과 컨텐츠가 현격히 줄어 폭발적으로 늘어날 미래 관광시장에 대비할 여력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공연관광의 시장 또한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늘어날 수요에 감당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팬데믹의 기간동안 우리나라는 OTT시장에 매우 훌륭한 성과를 거뒀고 전 세계인이 한국을 주목하게 했다. ‘오징어 게임’, ‘기생충’ 등의 드라마와 영화를 비롯해 ‘BTS’의 신드롬으로 단번에 한국은 가장 가고 싶은 매력적인 국가가 됐다. 유튜브에는 한국을 방문한 여행 블로그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발전한 한국의 현재 모습에 전 세계인이 감탄하고 있다. 엔데믹을 맞이해서 한국 정부도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비자 발급 업무를 다시 시작했고 여행업계도 분주하게 손님 맞이를 준비하고 있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고 이번 팬데믹의 긴 기간 동안 오히려 우리의 저력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됐고 세계의 중심의 나라가 됐다. 우리의 문화에 깊은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린 지금 이때 더 정교하게 엔데믹을 준비해서 우리 문화의 저력을 세계에 알려야 할 때라고 본다. 다만 지금 세계에 주목을 시킨 문화는 매우 패션이 있는 분야이다. 지속가능성을 놓고 보았을 때 과연 이런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내 주변의 외국인 지인들은 최근 높아진 한국문화에 정말 한국적인 것, 한국을 대표할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우리 문화의 저력을 지속 가능하게 세계에 알리는 것이 지금은 중요하리라 본다. 한국을 방문해서 우리의 음식을 먹고 과거와 현재를 함께 경험하게 하고 우리 문화의 유니크함을 보여줘야 함에 있어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보여 줄 수 있을지 의문해 본다. 과연 그런 준비가 돼있는지를 반문해 본다. 엔데믹을 향하고 있는 지금 시기가 최고의 기회라 여기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인천대학교 공연예술학과 교수

[문화카페] 추억팔이는 이렇게

‘그래, 영화는 역시 로망이지!’ 보는 내내 이렇게 생각했다. <탑건: 매버릭> 이야기다. 워낙 인기 있는 작품인 만큼 영화에 대해선 특별히 보탤 말이 없다. 다만 톰 크루즈 예찬만큼은 몇 자 얹어야겠다. 그는 전성기를 지나 원숙기로 접어들던 시기의 마라도나와 메시 같았다. 정상급 실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자신의 나이든 면모를 긍정적으로 발현해 팀을 특별한 경지로 끌어올린 이들. 톰 크루즈도 그랬다. 이런 속편 성격의 작품은 조금만 삐끗하면 ‘추억팔이’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한때 멋지고 탁월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고루하고 식상해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전혀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로맨틱하다며 젖어들었다. 예전에 열광한 대목은 더욱 두근두근해졌고, 세월과 나이듦을 녹여낸 서사도 뭉클했다. 시대상을 반영해 젠더 등 여러 감수성을 업데이트한 것도 세련되게 다가왔다. ‘고스트 버스터즈’ 시리즈와 비교된다. ‘탑건’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를 상징하는 메가 히트작이다. 역시 30여 년이 지난 2016년에 부활해 극장에 걸렸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 원작 내용을 잇지 않고 새로 시작하는 ‘리부트’ 방식을 택했다는 것. 괴짜 집단이 유령을 사냥한다는 큰 줄기 외엔 싹 갈아엎었다. 주인공 네 명 역시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고, 심지어 과거 주인공 역의 배우들은 별다른 비중 없는 카메오로 등장했다. 등장한 지 1분 만에 죽거나, 지나가던 택시기사로 잠깐 나오거나... 이러면 추억을 팔기보다는 오히려 배신하는 쪽에 가깝다. 결과는 ‘폭망’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심지어 괜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주인공의 성별이 바뀐 점에 집착해 영화를 페미니즘과 엮으며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벌인 것이다. 실제 영화는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수준이었지만 과도하게 추앙하거나 매도하는 이가 많았다. 평론가들마저 이를 부추겼다. 결국 소니는 이 2016년 버전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아예 없었던 것으로 간주하고 1980년대 원작의 내용을 잇는 진짜 속편을 만들었다. 원작 주인공의 손녀와 친구들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삼아 세대를 교체했고, 70대가 된 예전 배우들 역시 큰 비중으로 등장해서 활약했다. 그러자 비로소 대중이 호응했다. 추억을 환기하며 즐겼고 팬데믹 와중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작품성이 아쉽다는 평론가들의 지적은 다들 그냥 흘려들었다. 속편을 만드는 데에 뚜렷한 공식은 없다. 다만 하나는 확실해 보인다. 사람들은 한때 좋아했던 무언가를 추억으로 이름 붙여 기억하고, 가급적 그걸 지키며 소중히 여기길 바란다는 것. 사랑받은 속편, 나아가 프랜차이즈를 구축한 시리즈는 대체로 이 점을 존중해왔다. 사람들은 추억팔이를 손가락질하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추억팔이를 갈망한다. 어쩔 수 없다. 추억 또한 인간의 핵심 동력이니까. <탑건: 매버릭>은 훌륭한 추억팔이의 사례로 오래 기억될 만하다. 추억팔이는 이렇게 해야 한다. 홍형진 작가

[문화카페] 최후의 만찬(1)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다양한 일화를 많이 남겼지만 그가 천재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레오나르도는 뛰어난 미술가로 알려져 있지만 자료를 통해 인정받은 작품은 열점 내외이다. 그리고 그의 일생 중 그림을 그린 시기는 매우 짧았으며 오히려 과학, 수학, 건축, 해부학 등 다양한 분야에 몰두하고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스스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레오나르도가 받은 교육은 장인(匠人)의 도제교육뿐이었는데, 이후 독학을 통해 풍부하고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였다. 또 그가 활동했던 피렌체의 메디치가에는 많은 인문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드나들었는데,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당대 최고의 지식도 습득할 수가 있었다.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 식당 벽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1498)>은 <모나리자>와 더불어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성경의 내용 중 “너희 가운데 하나가 나를 배반하리라”라고 한 예수의 말에 대해 제자들이 깜짝 놀라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레오나르도는 당시 벽화작업을 할 때 주로 사용하던 프레스코 기법(회벽을 바르고 마르기 전에 물에 안료 가루를 개어서 벽에 그리는 기법) 대신 템페라 기법을 사용하였다. 프레스코 기법이 회벽이 마르기 전에 빨리 그려야 된다는 압박감이 있는 반면에 템페라 기법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템페라 기법은 시간이 지나면 물감이 떨어져 나가는 등 빨리 훼손 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그림을 완성한지 20년 후에 그림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서 계속적으로 복원과 훼손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가 템페라 기법을 사용한 것에 대해 그림 속에 암호를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뒤따른다. 실제로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는데 7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화면의 구도는 풍부했고 등장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은 개인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이 그려진 이후 지금까지 이에 대한 수많은 해석이 나타나고 있다. 예수와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은 모세와 유대인들의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踰越節)의 식탁이다. 예루살렘 남서쪽 예수의 친구 집에 차려진 유월절 만찬에는 빵과 포도주 그리고 형태를 알기 힘든 음식이 차려져 있다. 예수는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눠주며 “이것은 내 몸과 피이다”라고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예수 앞에 놓인 접시 위의 희미한 물체는 생선처럼 보인다. 보통 서구나 중동의 만찬에는 양고기가 등장하는데 최후의 만찬에는 생선이 등장한 것이다. 왜 생선일까?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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