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안드리스 리파겐

뭔가 미심쩍었다. 그래도 믿었다. 애초부터 동포의 또 다른 선의(善意)라고 판단한 게 착각이었다. 타 민족의 압제 속에서 재산을 보호해준다고도 했다. 그래서 스스럼 없이 맡겼다. 침략자에 맞서는 동료들의 신상도 거침없이 넘겼다.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궤변(詭辯)에도 깜빡 속았다. ▶그렇게 몇년이 흘렀다. 그런데 아니었다. 뒤통수를 맞았다. 한마디로 철저한 계산 속에 이뤄진 사기였고, 매국행위였다. “조국을 위한다”는 입발림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오로지 자신의 입신영달(立身榮達)을 위해서였다. 민족을 팔아 몇해 못 갈 싸구려 권력에 엄청난 재산까지 모았다. 이 때문에 숱한 동포들이 스러졌다. 그들의 인생 자체가 무너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네덜란드 비밀경찰이었던 안드리스 리파겐(Andriss Riphagen)의 수치스러운 행적이다. 그는 나치가 점령한 조국에서 유대인·레지스탕트 은신처를 찾아내고, 그들의 재산을 빼돌렸다. 리파겐은 민족반역자들 가운데 우두머리였다. 원래는 네덜란드의 갱스터이자 정치 깡패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치가 들어오자 부역자로 변신했다. ▶1939년 이후에는 게슈타포 앞잡이 노릇도 했다. 유대인 3천190명이 그의 손에 의해 나치에 넘겨졌다. 많은 레지스탕스 조직도 와해됐다. 유대인들을 색출하는 일도 맡았다. 유대인들을 속여 안심시킨 후 그들의 재산도 빼돌렸다. 다른 부역자들이 유대인 재산을 넘겨주면 그 수익을 일정량 나눴다. ▶종전 후 수배됐지만 독일의 정보를 넘기는 조건으로 민간 포로 신분이 됐다. 그래도 자신의 민족반역행위를 뉘우치는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나 보다. 1946년 타인의 여권으로 벨기에와 스페인 등을 거쳐 아르헨티나로 탈출했다. 네덜란드 정부가 그를 추적했지만, 이미 1973년 스위스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75년 전 네덜란드의 역사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행적을 따라 가보면 숱한 친일파들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튤립과 풍차와 거스 히딩크 등을 빼놓고 우리는 네덜란드에 대해 과연 어느 정도나 알고 있을까. 오늘은 이 나라와 수교한지 61년째를 맞는 날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당선인 핵심 키워드

인터넷 정보 검색시 포털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해 정보를 얻는다. 구체적인 핵심 단어를 입력해야 정보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키워드가 부정확할 경우 때로는 엉뚱한 검색 결과가 나와 황당할 때도 있다. ▶6·1지방선거가 마무리 되고 지자체 인수위원회가 꾸려졌다. 지자체 인수위는 당선인이 임기 내 실천한 공약 사항 등을 점검, 최종 결정한다. 이와 함께 정책, 사업 분야 등 핵심 키워드 발표를 통해 당선인의 향후 정책 방향을 알려주기도 한다. 6·1 지방선거 단체장 당선인들의 주요 핵심 키워드 보면 경제, 일자리, 균형발전, 소통 등이다. 당선인 핵심 키워드 속에는 시민과 지자체를 위한 의지가 담겨 있다. 자신이 앞으로 무엇에 비중을 두고 정책을 추진할 것인지 한 단어로 알려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다양한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뀐 곳이 많다. 경기도내 31개 기초단체장 선거는 국민의힘 22곳, 더불어민주당이 9곳을 차지했다. 지난 2018년 지방 선거에서 국민의힘 단체장이 31개 시군 중 단 2곳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전세 대 역전이다. ▶선거 결과를 보면 지자체 정책기조에도 큰 변화가 예고된다. 정권이 바꿨으니 정책이나 사업 변경은 어쩌면 불가피한 수순일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 전임자 사업을 뒤집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권력을 잡은 당선인이 전임자의 사업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정치인들은 무엇이든 자신이 처음 벌이는 일을 좋아한다. 전임자 사업은 자신이 주체가 돼서 한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사업도 자신의 공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 또 선거 과정에서 지나친 네거티브와 경쟁으로 사이가 틀어질수록 전임자 정책은 철퇴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벌써부터 일부 지자체에서 전임 단체장 사업이나 정책을 백지화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사업 초기의 경우 정책 뒤집기가 수월할 수 있지만 수십억, 수백억원 예산이 투입되고 시민 의견이 반영돼 진행된 사업에 대해 무리한 뒤집기는 독이 될 수 있다. 예산 낭비 등으로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소통, 경제, 일자리 등 당선인 핵심 키워드만 보면 모두 시민 중심이다. 전임자가 한 정책이나 사업도 시민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기억하고, 진행된 사업 변경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대륙폐의 부활?

‘벙커힐 전투(Battle of Bunker Hill)’. 미국 독립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였다. 메사추세츠주 찰스타운에서 일어났던 벙커힐 전투가 미국 근대 경제사의 흐름을 바꿨다. 전투를 화두로 꺼낸 까닭이다. 당시 미국 민병대는 보스턴 항구를 점거하고 있던 영국군을 공격했다. 민병대는 450명이 숨졌지만, 영국군 사상자는 1천54명이었다. ▶헨리 클린턴 영국군 장군은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 같은 승리가 반복된다면 영국의 신대륙 지배는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보급 등이 충분했다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제2차 대륙회의에서 대륙폐(Continental Currency) 발행안 의결로 이어졌다. 1775년 오늘이었다. 벙커힐 전투 사흘 후였다. ▶대륙폐는 전쟁비용 지원용 채권이었지만, 실제로는 불태환 지폐였다. 주(州)들은 대륙폐 발행 자체에 의구심을 품었다. 대륙회의가 단순한 합의체를 넘어 주(州)보다 상위의 연방정부로 발전할 가능성을 경계한 것이다. 세금 부담도 급증했다. 독립전쟁 이전 부과된 세금은 1인당 연평균 0.016 파운드로 연간 소득의 0.5% 정도였다. 독립 이후 연방정부가 매긴 세금은 영국이 식민지 시절 부과했던 금액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발행액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1차분 200만 달러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연말까지 2차례에 걸쳐 600만달러가 추가로 발행됐다. 결국 1779년까지 2억4천155만달러 어치 대륙폐가 뿌려졌다. 영국군도 위조지폐를 마구 찍어대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미국은 대륙폐 남발 폐해를 톡톡히 치렀다. 결국 대륙의회는 대륙폐를 폐지했다. 1779년이었다. ▶연방정부가 화폐주조권을 갖지 못한 건 대륙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었다. 의미있는 반전이었다. 대륙폐는 과연 ‘과거 완료형’일까. 대륙폐는 오늘날의 달러와 구조적으로 다를 게 없다. 불태환 지폐라는 점이 그렇고, 발행이 남발된다는 점도 그랬다. ▶또 있다. 대륙폐가 건국 초기 연방정부 권한을 강화한 것처럼, 달러도 세계 무역을 볼모로 미국의 글로벌 지배를 보장하는 도구가 됐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가 대륙폐 발행 의결 전으로 회귀하는 건 아닐지 걱정되는 건 괜한 기우(杞憂)일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커지는 경제고통지수

경제고통지수는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계량화해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고안한 지표로,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합해 계산한다. 경제고통지수 수치가 높다는 것은 물가 상승률이나 실업률이 높아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반적으로 물가가 상승할 경우 국민은 이전보다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 임금이 올라 가계소득이 증가한다 해도 물가상승률이 소득증가율보다 높으면 가계의 경제적 고통이 커진다. 실업 역시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이 많아지면 당장 소득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요즘 치솟는 물가에 장보기가 겁난다는 사람이 많다. 지난 5월 기준 우리나라 경제고통지수는 21년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경제고통지수는 8.4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5.4%에 실업률 3.0%를 더한 수치다. 고용지표가 계절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동월 기준으로 비교하면, 지난달 경제고통지수는 2001년 5월(9.0) 이후 최고치다. 이는 물가 급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8년 8월(5.6%) 이후 13년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6.7% 올라, 2008년 7월(7.1%)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 새정부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4.7%로 올려잡았다. 실업률은 작년(3.7%)보다 하락한 3.1%로 전망했다. 정부 전망대로라면 올해 경제고통지수는 7.8이 된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7.9) 이후 연간 기준 가장 높다.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빠르게 올라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한다. 정부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민의 경제고통을 줄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금 국민들이 숨 넘어가는 상황”이라며 초당적 대응을 당부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노노 학대

6월 15일은 ‘노인학대 예방의 날’이다. 노인복지법에 따라 제정, 올해 6번째를 맞았다. 노인복지법에선 ‘노인에 대해 신체적·정신적·정서적·성적 폭력 및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행위를 하거나 유기 또는 방임하는 것’을 노인학대로 정의했다. 노인학대가 해마다 늘고 있다. 노인이 노인을 학대하는 ‘노노(老老)학대’가 많다. 노인인 자녀나 배우자가 노인인 부모나 배우자를 괴롭히거나 가혹하게 대하는 것이다. 고령화와 함께 나이 든 자녀의 부양 능력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경제적 어려움이 노노학대 원인 중 하나다. 자신도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노년기에 더 연로한 부모를 모셔야 하는 경우 부양 스트레스가 학대로 나타난다. 고령 부부의 배우자 학대도 많다. 노인끼리 사는 가구가 늘면서 갈등을 중재할 가족이 없고, 배우자 부양과 돌봄에 대한 부담이 커져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노인부부 가구는 2008년 47.1%에서 2020년 58.4%로 상승했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한 노인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불만이 쌓이면서 욕설과 폭력 등이 늘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2년 차인 지난 한해 신고를 통해 노인학대로 확인된 사례는 6천774건이었다. 2019년 5천243건, 2020년 6천259건 등 매년 증가 추세다. 작년엔 배우자 학대 건수가 늘었다. 그 전까지 가장 많았던 아들의 학대는 2020년 2천288건에서 2021년 2천287건으로 비슷한 반면, 배우자의 학대는 2천120건에서 2천455건으로 15.8% 늘었다. 학대 사례는 가정 내(5천962건·88.0%)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UN은 노인학대를 가장 은폐된 학대로 보고 있다. 노노학대는 가해자가 배우자나 자녀인 경우가 많아 대부분 사실을 숨긴다. 이것이 상습적 학대로 이어지게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학대 상황에 놓인 위기 노인 발굴에 힘써야 한다. 노인학대는 사회문제라는 인식하에 보호책과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정조대왕함’

선비가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글을 읽는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곰곰이 들여다 보면 옷매무새가 남다르다. 여염집 글쟁이는 아니다. 누가 눙을 쳐도 거들떠 보지도 않을 태세다.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실루엣이다. ▶백성을 하늘처럼 섬겼던 어진 군주였다. 병자호란 이후 서양문물 수입이 본격화됐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대를 통치했던 군주가 아니라는 뜻이다. ▶수원 남문시장 입구에는 흥미로운 조형물이 있다. 술상 앞에 앉아 있는 정조대왕의 동상이 외지인들을 맞이하고 있어서다. ‘불취무귀(不醉無歸)’라는 문구도 적혀 있다. ‘취하지 않으면 집에 못 간다’는 뜻이다. 백성들이 술에 취해 흥겨울 정도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정조대왕은 조선 후기 문화부흥과 부국강병 등에도 힘썼다. 18세기 격변의 정세 속에서 균형 잡힌 외교정책을 시행한 임금으로도 평가 받는다. 아름다움만이 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근사한 말씀도 남겼다. 그래서일까. 그가 남긴 수원 화성 자태도 곱다. ▶해군이 8천100t급 차세대 이지스구축함 명칭을 ‘정조대왕함’으로 결정했다. 해군은 “구축함의 명칭은 국민으로부터 영웅으로 추앙받는 역사적 인물과 호국 인물 등을 선정해 제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지스(Aegis)라는 명칭은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가 그의 딸 아테나에게 준 방패에서 따왔다. 이지스 시스템이 장착된 구축함이 이지스함이다. 이지스 시스템은 방공중심의 해상전투·무기체계다. 첫 이지스 구축함은 1983년 미국의 타이콘데로가호다. ▶인도시기는 2024년이다. ‘정조대왕함’이 취역하면 ‘세종대왕함’ 등에 이어 네번째다. ▶북한 탄도미사일 요격용 장거리 함대공유도탄도 갖춘다. 조선후기 개혁군주의 묘호(廟號)로 명명된 구축함이 늠름하게 우리 바다를 지킬 날도 멀지 않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민선 8기 경기체육 ‘기대 반, 우려 반’

경기도 민선8기 ‘김동연號’가 보름 뒤면 출범한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김동연 경기지사 당선인에게 거는 도민들의 기대가 크다. 글로벌 경제 위기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민들은 민생경제 회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김 당선인의 경륜, 능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당선인 역시 진영과 이념을 뛰어넘어 오직 민생 살리기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체육계 역시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7기 때 민선 도체육회장 취임 후 도·도의회와의 극심한 갈등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었기 때문이다. 당시 경기도의 특정감사 결과 22건의 위법 부당행위가 적발되면서 도의회는 지난해 도체육회 사무처 운영예산 40억원을 삭감했다. 4개 체육시설과 도청 직장운동부 관리 위탁사업 등 8개 주요 사업을 도가 직접 추진토록 했다. 체육회장이 거리로 나가 1인 시위로 맞대응했다. ▶이에 체육계는 지난 6·1 지방선거를 주시했다. 도체육회는 지난 5월 18일 ‘경기지사 후보 초청 경기도체육인 한마당’을 열어 각 후보들에게 체육계 현실을 설명하고 다양한 정책을 제시했다.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이 행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자리였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행사와 특정 후보 지지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증언도 잇따른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동연 당선인이 도체육회장에게 전화한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자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도체육회는 앞으로 도와의 관계가 훈풍이 불 것으로 예상했지만, 당선인 캠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다르다. 의례적인 도 단위 기관장에 대한 인사를 과대 해석해 여론화 하고 있는데 따른 불쾌감을 밝히기도 했다. 자꾸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분위기다. ▶상당수 체육인들은 도지사 당선인의 인품과 체육에 대한 남다른 식견 등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특정 후보를 지지했던 것을 잊은 채 성급하게 여론몰이를 하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으므로 자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도지사가 취임도 하기전 자의적으로 예단하고 성급하게 해석해 여론화하기 보다는 순리적으로 관계를 풀어가는 접근 방식이 필요한 때다.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지지대] 자이언트 스텝

두렵다. 하룻밤 자고 나면 들려오는 나라밖 경제소식 탓이다.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인플레이션은 이제 약과다. 경기가 침체되면서도 물가가 오른다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도 익숙하다. ▶지구촌 가상화폐 시가 총액이 1조달러(약 1천288조원)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1년5개월 만이다.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지난해 11월 2조9천680억달러(3천823조원)로 정점을 찍었지만, 7개월 만에 2조달러 이상이 증발했다. 경제학자들은 매우 이례적인 사태라고 경고한다. ▶비트코인 가격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해 들어서만 50% 추락했다. 비트코인 다음으로 시가총액이 큰 이더리움도 15% 이상 떨어지면서 1개당 1천200달러대에서 거래 중이다. 외신은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현실로 다가오면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심한 멍이 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 가상화폐 급락세는 새삼스럽지는 않다.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등 거시 경제적 요인 등이 겹쳤기 때문이다. ▶물가인상 고공행진 사태도 심상찮다. 물론 아직은 남미 등 일부 국가에 국한되고 있지만, 일부 품목의 경우 국내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은 물가 상승세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더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연준이 다음날부터 이틀 동안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금리 0.75%p 인상을 고려할 가능성도 있다. 이른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이다. 지난 1994년 이후 처음이다. ▶금리를 한꺼번에 0.75%p 인상할 때 흔히 자이언트 스텝이라고 부른다. 연준은 통상적으로 경제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리를 0.25%p씩 올린다. 인플레이션 등의 우려가 커질 때는 이보다 큰 폭으로 금리를 인상한다. 이번이 그런 경우인 셈이다. ▶미국 연방은행 측의 선제적인 조치가 이를 예고했었다. 미국 연방은행은 앞서 지난 4월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너무 높다”며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3.5%p로 올려야 한다고 밝혔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자이언트 스텝으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처럼 살인적인 경제상황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수박’ 논쟁

수박은 참외와 함께 여름철 대표 과일이다. 그냥 먹어도 달고 시원해 좋고, 얼음을 곁들여 수박 화채로 먹어도 맛있다. 예전엔 여름 철렵이나 피서(避暑)에 수박은 필수였다. 계곡물에 둥둥 띄워 놓았다가, 물속에 발을 담근 채 수박 한쪽을 베어 물면 더위가 싹 가셨다. 수박은 아프리카가 원산으로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재배됐다고 한다. 한국엔 조선시대 〈연산군일기〉(1507)에 수박 재배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수박은 여름 과일이지만, 요즘은 시설원예를 통해 연중 재배한다. 한방과 민간에서는 구창·방광염·보혈·강장 등에 쓴다. 꽃말은 ‘큰 마음’이다. 정치권에서 ‘수박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 친명계(친이재명계)가 비명계를 대상으로 문자폭탄 등 과격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한 것이 발단이다. 갈등이 격화하면서 수박이 등장했다. 겉은 초록이지만 속이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과 같다는 뜻이다. 주로 친명계 지지자들이 이낙연 전 대표 측의 인사들을 공격할 때 쓰고 있다. 수박 논쟁은 친정세균계 3선인 이원욱 의원이 최근 페이스북에 수박 사진과 함께 “수박 맛있네요”라고 올린 데서 시작됐다. 친명계가 비명계를 대상으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멸칭으로 ‘수박’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를 비꼰 것이다. 친문·친이낙연계, 친정세균계 의원들은 “정치 훌리건을 방치하고 있다”며 친명계를 비난했고, ‘수박’ 단어를 놓고 주말 내내 계파 간 설전이 이어졌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각 계파가 당권 투쟁을 본격화한 모습이다. 이에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수박이라는 단어를 쓰는 분들은 가만히 안 두겠다”고 했다. 수박이 정치권에서 혐오 언어로 변질됐다. 극심한 계파 갈등을 보이는 민주당은 수박을 끌어들여 편을 가르고, 조롱·비하하는 행태를 당장 멈춰야 한다. 치솟는 물가와 유가, 화물연대 파업, 의혹 많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 시급한 현안이 얼마나 많은데 권력 다툼이나 하고 있다니, 한심스럽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코로나19 후유증 ‘롱코비드’

코로나19에 걸린 뒤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많다. 완치 판정 후에도 오랜기간 신체적 이상 징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확진 후 최소 2개월 이상 지속되는 증상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감염 시점으로부터 4주 후에 보이는 증상을 ‘롱코비드(Long Covid)’로 정의했다. 롱코비드 증상은 피로감, 무기력증, 호흡곤란, 기침, 근육통, 두통, 흉통, 어지러움, 후각·미각 상실, 우울·불안, 수면장애, 발열, 탈모, 인지장애, 성기능장애 등 신체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중증도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염 직후부터 증상이 발생해 회복 후 수주간 이어지거나 감염 직후 없었던 증상이 회복 후 새롭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다수 확진자는 후유증을 회복하지만 20% 정도 환자는 다양한 증상을 중장기적으로 경험한다. 코로나19 후유증은 국내외 연구 결과로 확인되고 있다. 국립보건연구원이 국립중앙의료원, 경북대병원, 연세대의료원과 각각 실시한 후유증 조사에서 피로감·호흡곤란·건망증·수면장애·기분장애 등이 가장 많이 나타났으며, 조사 대상자 20∼79%가 후유증을 겪었다고 했다. 미국 CDC가 5월에 발간한 주간지(MMWR) 최신호에도 감염자 중 최소 5명 중 1명꼴로 후유증을 앓는다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2020년 3월부터 18세 이상 감염자 수십만 명의 건강상태를 최장 1년간 추적한 결과다. 롱코비드는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차원을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함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정부가 코로나19 후유증에 대해 소아·청소년부터 일반 성인까지 포함한 국민 1만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치료·관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했다. 올 하반기에 추적 조사에 착수해 내년 상반기에 마무리 예정이다. 원인·증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치료를 하는 지침이 없어 안타까웠는데 다행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는 표준화한 정밀 자료를 확보하고 지침을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데이터를 근거로 한 ‘과학방역’으로 재유행에 대비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효순·미선 20주기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대회여서 더 그랬겠다. 마침 조별 리그 3차전인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사고가 난 건 딱 그때였다. 경기북부지역의 한 시골길을 걷던 여중생 2명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미군 장갑차가 두 소녀를 덮쳤기 때문이다. ▶2002년 6월13일 오전 10시30분께였다.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56번 국도 갓길에서 주한미군 부교 운반용 장갑차가 법원리 쪽에서 내려와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맞은편에선 전투용 장갑차 5대가 덕도리에서 무건리 훈련장으로 오고 있었다. 사고가 난 도로의 너비는 3.3m인데 반해, 사고를 낸 장갑차의 폭은 3.65m였다.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주한미군은 바로 수습에 나섰다. 유감을 표명했고, 분향소를 방문해 문상했다. 유가족에게 각각 조의금 명목으로 100만원씩을 전달했다. 주한미군은 보상금으로 각각 2억원 정도의 금액을 보냈다. 하지만 조의금을 보상금으로 오해한 유가족들이 항의하자, 주한미군은 장례식부터 먼저 치르자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그들의 입장은 ‘고의적이거나 악의적인 게 아닌 비극적인 사고’였다. 사고는 간단하게 보도됐고, 관심도 받지 못했다. 월드컵이 진행 중이어서, 국민들의 관심은 사고 다음날 치러진 한국 대 포르투갈전에 쏠려 있었다. 그 경기에서 한국이 승리하고 16강에 진출하면서 사고는 묻혔다. ▶5개월이 지났다. 그해 11월20~22일 열린 군사재판에서 사고를 낸 주한미군 2명에 대해 각각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 사건이 확대된 건 이 판결이 알려진 이후였다. 그해 11월 국민들이 촛불을 켜고 뭇매를 들었다. 주한미국대사가 대통령 사과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두 여중생의 20주기를 맞아 사고 관련 기록관 건립이 추진된다. 장소는 효순미선평화공원 인근 부지다. 사고 30주기인 2032년 완공이 목표다. 두 여중생이 세상을 뜬 후 벌써 강산이 2차례나 바뀌었다. 제2의 효순·미선양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를 위해 그동안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이재명 의원의 2027 대선 로드맵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열린 2019년 2월27일.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신임 대표로 당선됐다. 황 대표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총득표율 50.1%(6만8천713표)의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국민 여론조사에서 황 대표는 37.7%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50.2%)에게 12.5%p 뒤졌다. ‘당심(黨心)’에서 이겼지만 ‘민심(民心)’에서는 진 셈이다. 황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대선 패배로 침체한 당 재건에 전력을 쏟았다. 하지만 21대 총선에서 패해 싸늘한 민심을 체감해야 했다. 당시 전당대회 경선규칙은 선거인단 70%, 국민 여론조사 30%이다. 만약 국민 여론을 좀 더 반영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보수·중도 민심을 돌리는 데 5년 걸렸다. 더불어민주당 혁신형 비상대책위원장에 4선의 우상호 의원이 선임됐다. 우 의원은 당내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 학생운동권)의 맏형격 중진 의원으로 꼽힌다. 우 위원장은 대선, 지방선거까지 연이어 패한 당을 수습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맡지만, 당 안팎의 과제가 녹록지 않다. 당내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과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문, 반명과 친명간 계파 갈등이 점점 치열해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이재명 의원이 있다. 친문계인 홍영표 의원은 “사욕과 선동으로 사당화시킨 정치의 참담한 패배”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자생당사’ 자기는 살고 당은 죽는다”(박지원 전 국정원장), “이송역(이재명~송영길)에서 출발해서 윤박역(윤호중~박지현)에 비상 정차했다가 김포공항에서 끝난 선거”(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라고 일갈했다. 온라인에서는 ‘李혼자산다’, ‘이재명 1명 구하기’ 등 패러디가 속출했다. 이처럼 ‘이재명 책임론’이 들끓지만 여전히 자신은 모른 척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국회 첫 등원에서 “(지지자들의 의견을) 낮은 자세로 겸허하게 열심히 듣고 있는 중입니다. 전당대회 부분에 대해서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2027 대선’ 로드맵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 ‘인천 계양을’ 당선 기반으로 당대표 도전은 예견된 일이다. 총선 공천권을 갖고 당내 세력을 규합하고 각종 사법적인 리스크는 방탄국회를 통한 정치탄압 프레임으로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국민을, 민심을 너무 쉽게 보는 건 아닐지. 김창학 정치부 국장

[지지대] 타이완 관계법

한 때는 대만(臺灣)이라고 불렀다. 한자의 우리식 발음이다. 정식 명칭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명칭은 잊혀지고, 중국어 발음으로 ‘타이완’이라고만 불린다. 나라에서 섬으로 전락한 셈이다. ▶장제스(蔣介石)가 이끄는 국민당은 중국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타이완으로 쫓겨왔다. 1949년이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유엔 안보리 이사국이었다. 이후 핑퐁 외교로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그 지위는 상실됐다. 지구촌에서 타이완과 수교하는 나라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벌써 4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외교 소식통들은 전쟁 발발 가능성 0순위 지역으로 타이완을 꼽는다. 그만큼 중국과 타이완과의 관계는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놓고 타이완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그런 중국에 맞경고를 보내고 있다. ▶타이완과 활발하게 교류 중인 국가가 미국이다. 외교적으로 어떻게 가능할까. 타이완 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이란 법이 있기 때문이다. 1979년 4월 제정됐다. 미국은 앞서 1978년 12월 미중 공동성명에 의해 다음해 1979년 1월1일 이후 중국을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하지만 공동성명에는 미국이 타이완과 문화·통상 등에 관한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내용에 의해 제정된 게 타이완 관계법이다. 타이완의 자위에 필요한 무기와 군사기술 제공, 타이완의 미국에 존재하는 자산에 관한 소유권 등이 규정됐다. 중국 견제를 위해서다. 중국은 ‘2개의 중국’을 인정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중국이 올 가을로 예정된 공산당 제20차 당대회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3연임 확정시까지 타이완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른바 ‘회색지대 전술’ 기조를 보일 것이라는 것이다. 회색지대 전술은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나 민간을 활용해 도발하는 전술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타이완이 포스트 우크라 전쟁의 중심지로 부각하고 있다. 타이완 주민들의 88%가 중국과의 병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중국과 타이완에 대한 잣대를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한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대통령 관저

청와대(靑瓦臺)는 2022년 5월9일까지 사용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본관 지붕이 청기와(靑瓦)여서 ‘푸른 기와집’이란 뜻으로 청와대라 했다. 이 명칭은 1960년 윤보선 대통령이 입주하면서 그 전까지 ‘경무대(景武臺)’라 했던 것을 바꾼 것이다. 청와대는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때문에 철옹성, 구중궁궐, 금단의 땅이라고 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청와대 개방을 약속했다. 조금씩 개방의 폭은 넓어졌으나 여전히 접근이 어려웠다. 얼마 전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을 옮기면서 지난 5월10일부터 국민에 개방됐다. 윤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용산의 전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이전했다. 대통령실은 새 대통령 집무실 이름을 공모, 한 달간 3만여건이 접수됐다. 새 이름 후보로 ‘국민의집’ ‘국민청사’ ‘민음청사’ ‘바른누리’ ‘이태원로22’ 등 5개가 압축됐다. ‘국민의집’은 국민이 대통령실 주인이고, 대통령실은 국민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란 뜻이다. ‘국민청사’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聽) 국민을 생각한다(思)는 의미를 가졌다. ‘민음청사’는 국민의 소리(民音)를 듣는 관청이란 뜻이다. ‘바른누리’는 바르다는 뜻을 가진 ‘바른’과 세상을 의미하는 ‘누리’를 결합한 순우리말로, 공정한 세상을 염원하는 국민소망을 담았다. ‘이태원로22’는 대통령 집무실의 도로명 주소다. ‘다우닝가10번지’로 불리는 영국 총리 관저의 작명 방식을 따른 것 같다. 국방부청사 2층 대통령 주 집무실은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달 중 마무리 해 청와대 개방 경과를 소개하는 ‘대국민 보고대회’를 열 계획이다. 용산시대 개막을 정식으로 알리는 일종의 ‘집들이’다. 청와대 개방을 반기는 한편 집무실 이전, 관저명 공모, 집들이에 많은 예산과 열정을 쏟을 일인가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지금 시급한 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나 집들이가 아니다. 집무실 명칭은 그냥 ‘대한민국 대통령 청사’면 된다. ‘국민’을 자꾸 들먹이는 말잔치 말고, 진정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국경선, 전쟁으로 바꿀 순 없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지구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들이다. 흔히 G7으로 부른다. 대한민국은 아직 포함되지 않았다. G7 외무장관들이 최근 의미심장한 선언을 공포했다. ▶핵심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바꾸려는 국경선 불인정이다. 러시아를 우회 지원하는 중국에 대해선 돕지 말라고 경고했다. 선언이 발표된 장소는 독일 북부 함부르크 바이센하우스다. 사흘 동안의 회동 결과이기도 하다. 이들은 “크림반도를 포함해 우크라이나의 영토주권을 지지한다”고도 밝혔다. ▶발표는 러시아가 돈바스와 헤르손주, 자포리자주 등 우크라이나 점령지 병합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나왔다. 이들은 러시아 경제·정치적 고립 강화에도 뜻을 모았다. 그러면서 “단일대오로 뭉쳐 러시아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분야에 대한 추가 제재도 예고했다. ▶구체적으로 러시아산 석탄·석유 수입도 금지하고 러시아 에너지 의존을 종식시키려는 노력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확대도 결의했다. 중국과 벨라루스 등 러시아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국가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도 보냈다. 특히 중국을 겨냥한 강성 발언이 두드러졌다.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 등을 지지해달라”. 벨라루스에 대해선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라”고 꼬집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지구촌 식량 부족문제도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였다. 올해 G7 의장국인 독일의 안나레라 배어복 외무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지구촌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라는 절박한 질문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음 수확 전까지 우크라이나 식량창고 내 식량을 다른 지역으로 수송하기 위한 물류문제 해소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 연장선에서 인도 정부의 식량안보를 내세운 밀수출 금지결정을 비판하기도 했다. ▶인류는 땅을 넓히려고 전쟁을 벌여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도 겉으로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반대이지만, 실제 이유는 영토 확장이다. 전쟁으로 국경선을 바꾸려는 ‘어리석은’ 역사는 결코 멈출 수 없는 걸까. 집권당의 압승으로 끝난 6·1 지방선거를 지켜보며 드는 부질 없는 생각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금리인상 이후, 부동산은

지구촌 각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조짐이 심상찮다. 금리인상의 쓰나미가 한반도 부동산시장까지 덮치는 건 아닐까. 미국이 빅스텝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세계 각국도 경쟁이라도 하듯이 금리를 올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연말에는 2.5%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면서 연초부터 금리는 꾸준히 오르고 있다. 그 여파로 증시의 낙폭은 커지고 있고, 가상화폐는 폭락 수준이다. ▶전 세계 부동산이 요동친다. 최근 몇 년간 세계에서 집값 버블 1·2위를 기록한 뉴질랜드와 캐나다의 부동산이 급락세다. 작년 6월 블룸버그 통신이 발표한 주택버블 순위 1위가 뉴질랜드, 2위가 캐나다, 3위가 스웨덴이었다. 한국은 19위였다. 뉴질랜드는 최근 석 달 간 전국 기준으로 3.5% 하락했다. 뉴질랜드부동산연구소(REINZ)에 따르면 최근 3개월 간 오클랜드는 5.4%, 웰링텅 시티는 9.4% 하락했다. 수년간 집값이 폭등했던 캐나다 광역 토론토 지역의 단독주택 평균 거래가격은 2월 165만달러에서 4월 145만달러로 12.1% 떨어졌다. 금리 인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캐나다중앙은행은 3월 기준금리를 0.25%, 4월 0.5% 인상했다. 6월에도 0.5% 인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캐나다 5년 고정 모기지 금리는 3%대인데, 내년에는 7%까지 오를 수 있다. 뉴질랜드도 마찬가지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서울 아파트의 청약불패가 또다시 깨졌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브랜드 아파트는 최근 수백가구의 일반분양에서 7대 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그러나 청약 당첨자의 42%가 계약을 포기했고 예비 당첨자도 이를 포기, 무순위 청약까지 이어지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10년 청약 불가’라는 패널티까지 감수했다는 점이다. 다소 높게 책정된 분양가도 이유겠지만 무엇보다 강화된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등이 부담으로 적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명관 경제부장

[지지대] 러시아 소금봉기

수많은 군중이 궁궐 앞으로 모여 들었다. 수천명이었다. 이들은 소금을 살 때마다 가혹하게 부과되는 세금이 부당하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분노는 갈수록 치열해졌다. 시위대는 성문을 열고 진입했다. 친위대에게 진압 지시가 떨어졌다. ▶명령은 통하지 않았다. 모든 병사가 거부했다. 일부 병사는 아예 총을 버리고 대열에 끼었다. 일부 하급 관리까지 가세했다. 시위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었다. 석양이 뉘엿뉘엿 질 때 인파는 수만명으로 늘었다. 군중의 함성은 더욱 높아지고, 거세졌다. 구호도 “소금세 반대”에서 “탐관오리 축출”로 바뀌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황제는 결국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 자체가 그렇게 흘러갔다. 각료급 책임자 2명을 처형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황제의 스승도 몰아 냈다. 하지만, 시위대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시장도 무참하게 살해됐다. 시신도 찢겨졌다. 성난 군중은 지주들도 공격했다. 관료와 병사들은 그동안 급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지급을 촉구했다. ▶황제가 마침내 두손을 들었다. 그 악명 높은 소금세가 취소됐다. 관료와 병사들의 밀린 급여도 일괄 지급키로 결정했다. 급여를 올려 주겠다는 약속도 나왔다. 귀족과 성직자, 관료, 상인 대표 등으로 구성되는 신분제 의회 구성도 제시됐다. 궁여지책이었다. 1천800여명의 목숨과 주택 2만여채 소실 등을 대가로 받은 전리품이었다. 그러는 사이 시위는 들불처럼 확산됐다. 약속은 과연 지켜졌을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 갔다. 황제는 되레 기득권 강화에 나섰다. 주동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소금세보다 더 농민 삶을 옥죄는 악법을 만들었다. 그 이전에는 빚이 없는 농민은 땅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법이 제정되면서 불가능해졌다. 농노제가 강화됐다. 농민들의 삶은 이전보다 더 피폐해졌다. 나라 곳곳에서 크고 작은 봉기들이 잇따랐다.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었다. 역사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250여년 후 러시아혁명으로 이어졌다. 1648년 오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일어난 얘기다. 무릇 정치가 민심을 거스르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기 마련이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 그랬다. 오늘 치러지는 지방선거가 중요한 까닭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임금피크제 논란

‘임금피크’는 근로자가 일정 나이에 도달한 이후 임금을 줄여 고용을 유지하는 제도다. 기본적으로 정년보장 또는 정년연장과 임금 삭감을 맞교환하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임금피크제라는 용어는 한국에서만 사용되지만 제도의 기본 틀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우리의 임금피크제는 금융권에서 시작했는데 2003년 신용보증기금이 도입한 것을 시초로 보고 있다. 당시는 정리해고나 조기퇴직에 대한 압박이 강했던 시기로, 고용불안 해소를 위해 정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가 대다수였다. 이후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을 통해 ‘60세 이상 정년’이 법제화되면서 제도 활용 논의가 활발해졌다. 정부는 2015년 5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제시하며 공공기관을 필두로 한 제도 도입을 강력 추진했다. 대법원이 지난 26일 나이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한 연구기관에서 일했던 연구원이 정년은 61세로 유지하면서 55세 이상 직원의 임금을 삭감하는 취업규칙이 ‘고령자고용법’ 위반이라며 깎인 임금을 요구한 소송에서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임금피크제가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나 노동자가 되려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임금피크제의 합리성 판단 기준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노동자들이 입는 불이익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보상 여부 △절감된 인건비가 도입 목적에 맞게 사용됐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했다. 임금피크제 관련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 전반에 관해 합법성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요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 때마다 정책을 뒤집으며 허송세월한 정부 탓이 크다. 이번 판결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에서 노조의 단체협약 개정 요구가 잇따르게 될 것이다. 협상 결과에 따라 노동자나 노동조합의 줄소송도 예상된다. 큰 혼란이나 갈등이 없도록 노사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고용부도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선거가 괴로운 공무원

지방선거 때마다 일부 공무원의 대필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현직 기초단체장이나 전·현직 지방의원들이 특정 정당에 유리하거나 자신의 정치 기반을 다질 목적으로 공무원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실제 모 지자체 소속 공무원이 전직 의원으로부터 정당 경선 심사에 필요한 공약 내용을 양식에 맞게 정리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자료를 편집해줬고, 선거 공보물 등 각종 자료 초안을 검수한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시의회에서는 시의원이 제시하는 양식에 맞춰 300페이지 넘는 분량을 작성한 공무원이 있었고, 부산시의회에서는 공무원이 실수로 자신의 이름을 파일명으로 넣어 평가서를 전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대 대통령선거 당시엔 한 기초의원으로부터 특정 대선 후보의 지지선언문 초안을 작성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공무원도 있다. 공무원들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준수해야 하는 걸 알지만, 선출직인 기초의원이 직급상 상급자에 해당돼 지시를 거절하기 힘들다고 한다. 선거철마다 이런 요청이 들어올 때면 너무 괴롭다고 하소연한다. 6·1지방선거에서도 일부 공무원들은 갖가지 요청에 시달렸다. 공천평가서나 출마선언문 작성뿐 아니라 출마 예정자의 보도자료를 공보관실을 통해 언론에 배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선거 준비 과정에서 정책 수립을 목적으로 민감한 시정 정보를 요구하는 정치인도 있었다. 정보공개 청구 등 공식 절차가 있지만 손쉽게 정보를 얻기 위해 공무원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현재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직무, 지위와 관련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 현역 정치인이라면 이러한 지시나 요구는 공직선거법을 위반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담당 공무원 역시 직무상 벗어난 행위로 선거법에 저촉된다. 공무원 입장에선 상부 지시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요구가 들어오면 암암리에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특히 당선이 유력한 후보의 부탁이면 나중에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느낀다. 선거에 공무원을 끌어들이고 괴롭히는 구태는 없어져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미국의 분유대란

분유의 40% 이상이 마트 등지에서 종적을 감췄다. 매장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분유’의 ‘분’자도 없다.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암시장에선 비공식적으로 한통에 무려 18만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당국이 특정 기업 생산공장 자체를 폐쇄한 탓이란다. 미국 얘기다. ▶외신은 이번 사태 배경에는 분유와 인공모유와의 경쟁도 한몫 했다고 분석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생후 6개월까지 모유를 먹는 유아는 세계적으로 3명 중 1명에 그친다고 발표했다. 세계 분유시장은 지난해 기준으로 65조9천억원대 규모다. 미국에서 모유은행을 통해 구한 모유로 수유하는 데는 하루에 12만7천원 정도 든다고 한다. 서민 입장에선 벅찰 수밖에 없다. 분유업체인 애벗(Abbot)사의 리콜까지 겹쳤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앞서 애벗사 분유를 먹은 뒤 세균감염으로 영유아 2명이 사망했다며 조사에 나섰다. 해당 공장서 박테리아균을 발견했다며 리콜 대상으로 지정하고 공장도 폐쇄했다. 애벗사는 사실 무근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를 공격하는 소재로 사용하려고 벼른다. 분유대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독일로부터 분유를 긴급 공수해왔다. 외신은 분유 3만1천800여㎏을 실은 미 공군 수송기 글로브매스터3이 이날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국제공항에 착륙했다고 보도했다. 공수된 분유는 우유 단백질에 대해 과민증이 있는 아기에게도 먹일 수 있는 의료용 저자극성 특수 분유제품이다. 이번 조치는 분유의 신속한 공급 확대를 위해 조 바이든 행정부가 벌이고 있는 분유공수작전의 일환이다. ▶이번에 수송된 분유는 영아 9천명과 유아 1만8천명을 일주일 동안 먹일 수 있는 분량으로 파악됐다. 백악관은 조만간 네슬레 자회사인 미 유아식품 회사 거버의 분유제품도 배포할 계획이다. 이 둘을 합치면 226g 용량의 분유병 150만개를 채울 수 있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 국가를 제어할 수 있는 뭔가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텍사스 초등학교 총기참사 등 바람 잘 날 없는 미국의 민낯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