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공간에 정서를 투영하는 법…‘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리뷰]

한 남자가 오고가며 자신의 눈에 담겼던 공간을 캔버스 위로 불러낸다. 그의 눈에 비친 세계는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기억과 상상이 뒤섞인 그의 공간은 현실에 있지만,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곳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2023년 해외소장품 걸작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가 지난 20일부터 서소문본관에서 개막해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해 선보이는 작가의 첫 국내 개인전으로 화제를 모은다. 미국의 국민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 160여점, 산본 호퍼 아카이브의 자료 110여점을 7개 섹션으로 나눠 선보이는 전시다. 관람객들은 이번 전시에서 프랑스 파리에서 구도와 화풍에 변화를 줬던 호퍼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뉴욕이라는 도시가 지닌 시공간적 특성의 빈틈을 파고들었던 작업 스타일도 엿보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호퍼는 자신의 눈에 담긴 장면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 그가 캔버스에 풀어낸 공간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연이 깃든다.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등 대도시부터 여행지 속 자연까지 호퍼는 일상 속에서 자신이 갔던 곳을 소재로 예술 세계를 표현해냈다. 사실 관람객은 ‘퀸스버러 다리’ 등의 작품을 볼 때면 그가 강 위의 배에서 강 건너의 풍경을 봤을지 배의 창문을 통해서 비친 풍경을 봤을지 알 수 없으며, ‘황혼의 집’, ‘밤의 창문’과 같은 작품을 통해선 그가 옥상에 서서 건너편 건물의 창가를 응시했을지 건물 안의 창문을 통해서 맞은편 사람을 바라봤을지도 예상하기 힘들다. 이처럼 그가 무심코 바라 봤던 교각의 돌출부, 목장의 지붕, 극장의 장식물 등 각 공간이 지닌 입체적인 특성뿐 아니라 그가 당시 장면을 바라봤던 위치와 구도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도록 모호하게 표현돼 있다는 점이 그림의 매력을 더한다. 호퍼의 그림 속 공간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전시장을 수놓는 호퍼의 그림들은 대부분 수직 구도보다 수평 구도에 맞춰져 있다. 눈의 시야각에 맞춘 영역까지만 표시하는 그의 그림은 그래서 사실주의의 흔적이 짙게 묻어나지만, 한편으로 그는 자신이 그리기로 결정한 이미지들에 대해서 장소와 연결되는 감정과 생각을 결합해 새로운 상상지대를 만들어낸다. 그 영향 때문에 배경의 세부 요소가 모호하게 뭉개지거나 빛과 그림자로 둘러싸인 채 본래의 형상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호퍼의 그림 속 사람들은 대개 뒷모습이거나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공간을 차지한다. 상당수 그림에서 그의 눈에 들어온 일상의 공간이 그림이 자아내는 분위기를 우선 매만지고 있지만 사람들 역시 그의 그림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다. ‘푸른 저녁’은 시간대를 특정할 수 없는 모호한 기운이 맴돌고 있다.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로도, 사물이 만드는 그림자로도 지금이 어스름한 저녁인지 자정이 지난 시점인지도 알 수 없다. 이곳 카페를 찾은 사람들은 서로 대화나 교감이 전혀 없다. 생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우울한 색채보다 더 짙은 적막감을 만든다. 파리에 있던 호퍼가 뉴욕으로 돌아온 뒤 그 당시의 생활을 떠올리면서 만들어낸 그림이라는 점에서, 어디까지 호퍼의 상상이고 어디까지 실제 카페 속 풍경인지 감상자는 확인할 수 없다는 점 역시 그림의 모호한 정서를 극대화한다. 이승아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에드워드 호퍼는 20세기 초 현대인이 마주한 정서를 예리하게 포착해 화폭에 담아내 현재까지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며 “이번 걸작전이 팬데믹 이후 고립과 단절, 소외가 만연한 오늘날에 필요한 전시로서,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이해를 넓힐 뿐 아니라 고단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시공을 뛰어넘는 위안과 공감을 선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8월20일까지.

상상속 동물 기린… 민화, 공예품, 현대작품까지 특별전 열려

상상 속 동물 ‘기린’을 주제로 한 민화와 공예품, 현대작품 등 시대별 기린과 관련된 다양한 작품을 둘러보는 전시가 열린다. 양주시립 회암사지박물관은 5월 3일 박물관 1층 로비에서 특별전 ‘기린말고 기린(Not Giraffe, but Qilin)’ 전시회를 개막한다. 이번 특별전은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동물원 속 긴 목을 가진 기린이 아니라 상상 속의 전설적인 동물 기린을 살펴보는 전시회다. 전시는 1부 ‘기린, 상상하다’, 2부 ‘기린, 상징하다’, 3부 ‘기린, 발견하다’로 구성해 시대별 기린과 관련된 작품을 배치했다. ‘기린’는 고대 중국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상서로운 동물로 중국 명나라 때 대규모 원정대가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목이 긴 동물을 보고 전설 속 ‘기린’과 유사하다 해 붙인 이름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인의 출현과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동물로,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이마 한 가운데 긴 뿔과 화염 모양의 큰 갈기, 사슴의 몸과 말의 다리를 지닌 모습으로 묘사돼 왔다. 정치적으로는 왕도정치를 상징하고 종교적으로는 최고 가치의 격을 지녀 옛 기록에 ‘용, 봉황, 거북과 함께 사령(四靈) 중 하나이며, 그 중에 가장 으뜸’이라고 전해져 왔다. 특히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양주 회암사지 사적에서도 기린을 찾아볼 수 있어 조선왕실과 당대 불교계에서 회암사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가족도, 저런 가족도 모두 정상 아닌가요?…수원시립미술관 ‘어떤 Norm(all)’ [전시리뷰]

어떨 때 ‘정상’이고 어떨 때 ‘비정상’인가. 한국 사회는 임의로 설정된 기준과 규범에 따라 끌어안을 요소와 배제할 요소들을 선별한 뒤 차별을 정당화한다. 정치, 경제, 환경, 외교 등의 거대 담론이 아닌 피부로 와 닿는 일상조차도 ‘강요된 정상성’에 물들어 있다. 식생활, 외모, 패션, 주거 형태….그 중에서도 ‘가족’을 바라보는 통념은 오랜 기간 갇힌 틀을 맴돌며,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과 그 형태에 정답이 있는 듯 각자의 미디어 환경을 비롯한 일상에 영향력을 떨쳐왔다. 지난 18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현대미술 기획전 ‘어떤 Norm(all)’은 ‘어떤 가족이 정상인지’ 관람객들에게 질문한다. 강태훈, 김용관, 문지영, 박영숙, 박혜수, 안가영, 업체eobchae(김나희, 오천석, 황휘), 이은새, 장영혜중공업, 치명타, 홍민키 등 분야를 막론하고 활발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가들이 참여했다. 다큐멘터리, 회화, 사진, 설치 등 다채로운 분야의 작품들이 3부로 구성된 전시장 곳곳을 수놓고 있다. 이곳에 모인 작품들은 저마다 결이 다르고 지향점도 다르지만, 모두 관람객과 상호작용할 때 작품의 의미가 완성이 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품고 있다. 1부의 작품들은 전통 속 가족의 모습을 조망하면서 그 이념을 해체하려는 작업의 전초전을 위해 모였다. 강태훈 작가의 ‘나쁜 피’는 사회에서 작동하는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은유적인 오브제를 통해서 들추는 작업이다. 박혜수 작가의 ‘우리 친밀도 검사’를 통해선 관람객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가족에 대해 어떤 인식을 지녔는지 확인해볼 기회다. 2부에선 정상성의 폭력이 만들어낸 그늘 속에 늘 존재해왔던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만난다. 문지영 작가는 ‘엄마의 신전’ 회화 연작으로 개인의 경험을 캔버스로 끌고 와 정상과 비정상을 어떤 척도로 나눌 수 있는지 반문하고 있다. 그의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문제 제기뿐 아니라 그 다음 단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 느껴진다. ‘엄마의 신전 Ⅴ’ 속 남자가 사라진 공간에 어머니와 장애를 지닌 아이가 서로 의지한 채 서 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가족 사진처럼 보인다. 이들을 가족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떻게 불러야 할까? 문 작가의 작품을 통해선 정지된 회화가 사회 문제를 머금었을 때 어떤 생명력으로 둘러싸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작법을 활용해 만든 홍민키 작가의 ‘들랑날랑 혼삿길’ 역시 성소수자 민기, 그의 연인과 가족들의 생각을 교차해서 담아내며 다양한 목소리와 생각을 관람객들과 나누고 있다. 이어지는 3부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가족을 정의하고 구성하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생각들이 엿보인다. 김용관 작가에겐 서로가 서로를 익숙하게 받아들여야만 가족이 성립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의 믿음이 반영된 설치 작품 ‘무지개 반사’는 다양성과 평화를 상징하는 무지개 색상을 관람객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작됐다. 김 작가는 “작품에 깃든 그래픽 요소에 대한 가치 판단보다 그것들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될 때 화합과 공존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를 기획한 장수빈 큐레이터는 “최근 몇 년 간 혼란에 빠진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이슈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족’에 관한 이야깃거리였다”면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 속 가족의 의미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동시대 작가들의 관점을 빌려 조명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8월20일까지.

연령대별로 골라보는 맞춤형 공연, '부천 페스타'

부천문화재단이 ‘부천시 시 승격 50주년 기념 공연 페스타’를 앞두고 24일부터 티켓을 오픈했다. 오는 6월 3일부터 7월 1일까지 한 달간 복사골문화센터와 부천시민회관에서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공연은 총 6편으로 ▲0~24개월 영아와 양육자를 위한 음악 공연 ‘0세 힐링 콘서트’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팀인 밴드 ‘바람’이 선보이는 뮤지컬 ‘바람으로의 여행’ ▲프로젝션 맵핑(물체의 표면에 영상을 투사하는 예술)을 이용한 미디어아트극 ‘폴리팝’ ▲여성의 음역을 가진 남성 가수로서 가혹한 운명을 살았던 파리넬리의 삶을 그린 뮤지컬 ‘파리넬리’ ▲‘브라소닛 빅밴드’의 연주에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춤을 더한 융복합 공연 ‘바디 앤 보이스’ ▲경전 ‘티벳 사자의 서’를 모티브로 창작한 오리엔탈 판타지 뮤지컬 ‘바르도’ 등이다. ‘바람으로의 여행’은 제19회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팀으로 대학시절 꿈과 사랑, 우정의 시간을 함께 보낸 밴드 ‘바람’의 이야기다. 자신들의 인생에서 꿈을 꾸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함께 이들은 밴드 활동을 평생하겠다고 약속하지만 군대, 취직, 결혼, 육아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자 자연스럽게 활동을 중단한다. 20년이 훌쩍 지나고, 이들은 누군가의 편지가 라디오 DJ의 목소리로 나오는 것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노래 '바람으로의 여행'이 흘러나온다. 소극장의 아련한 추억과 잔잔한 이야기와 노래가 펼쳐진다. ‘0세 힐링 콘서트’는 ‘아기 공연’이 특화된 부천문화재단만의 콘텐츠로 0세 아이들과 보호자에게 특별한 시간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연 페스타는 시 승격 50주년을 맞아 시민들이 문화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부천시민을 대상으로 관람료를 반값에 할인한다. 이달 30일까지 미리 예매하면 관람료 30%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낮이든 밤이든… 수원 행궁동서 다채로운 음악 공연 만나요

봄꽃이 만발한 이달부터 가을까지 주말을 장식할 다채로운 무대가 수원 행궁 일대를 수놓는다. 수원문화재단은 오는 9월까지 주말마다 수원전통문화관 야외 잔디밭과 화성행궁 유여택에서 풍성한 무대를 선보인다. 먼저 행궁동의 밤을 수놓는 공연이다. 오는 28일부터 9월9일까지 격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7시에 ‘한옥 속 달빛의 노래’가 시민들을 찾아간다. 한옥을 배경 삼아 펼쳐지는 이번 공연은 무료이며, 수원전통문화관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개방형 무대로 진행된다. 전통국악뿐 아니라 퓨전국악, 클래식과 대중음악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한옥에 깃든 고즈넉한 정서와 엮여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전통국악을 선보이는 ‘타악연희단 꼭두’, 퓨전국악에는 ‘놀플라워’와 ‘소올’, 싱어송라이터 밴드인 ‘주로키’와 ‘더뮤엘(클래식)’까지 다채로운 라인업이 준비돼 있어 반복되는 일상의 따분함을 지워내는 설렘을 맛볼 수 있다. 행궁동의 낮에도 역시 즐길 거리가 많다. 화성행궁 유여택에선 색다른 관람 프로그램과 공연을 접할 수 있다.  문화유산 특별 관람 프로그램 ‘화성행궁의 오후’가 5월5일부터 9월16일까지 격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4시에 화성행궁 유여택에서 진행된다. 프로그램 1부는 화령전과 관련된 옛이야기를 해설극으로 재미있게 풀어놓은 화성행궁 ‘화령전 이야기’다. 이어지는 2부는 퓨전국악과 클래식, 한국무용 등 다채로운 장르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국악인가요’, ‘연화무용단’, ‘아름드리’, ‘파라칸사스’, ‘FROM310’ 등의 출연진이 시민과 만난다. 행궁 일대를 돌아보는 방문객들의 감상의 폭과 깊이를 풍성하게 가꿔준다. 편안한 관람을 위해 24일 오전 10시부터 선착순으로 사전 등록할 수 있다. 수원문화재단 관계자는 “전통이 깃든 한옥과 문화유산을 활용해 수원 시민들의 문화 생활에 더 가까워질 방법을 늘 고민하고 있다”면서 “날씨도 풀려 나들이객이 많아진 만큼, 밤낮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통해 행궁의 매력을 만끽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연금술 실험'…조기주 ‘스미는 순간’ 展 베카 갤러리서

오랜 시간 ‘지속하는 생명성’을 주제로 작업해 온 조기주 작가의 ‘스미는 순간’展이 26일부터 서울 베카 갤러리에서 열린다.  조 작가는 ‘생명과 조화, 우주와 순환’이라는 주제에 매료돼 ‘계절의 변화’나 ‘밀물과 썰물의 반복’, ‘별의 탄생과 죽음’이 상기시키는 생명의 ‘상호 연결성’과 그 사이에 존재하는 ‘섬세한 균형’을 찾는 실험에 몰두해 왔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연금술 실험’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매체 실험’으로 여러 회화 재료들 뿐만 아니라 구리나 금 같은 산업용 재료들, 시효가 다해 버려진 도시의 잔재들과 작업실 구석의 먼지까지, 다양한 물질들을 조합하며 그것들에 생명을 불어넣거나 그 안에 숨겨진 생명성을 불러낸다. 그 과정에서 얻은 ‘조화’와 ‘균형’ 또는 ‘지속하는 생명성’은 작가 예술 세계의 근간에 해당한다. 실험을 통해 작가는 생명이 ‘조화와 균형’ 없이는 지속될 수 없고 모든 생명은 비(非)독자적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는 독일의 생물학자 윅스퀼(Jacob von Uexkull, 1864년~1944년)이 ‘주변세계(Umwelt)’라는 개념을 통해 생물계가 구성하는 ‘대위법적 조화’에 대한 주장이 떠오른다. ‘대위법적 조화’는 생물계 속 다양한 생물군이 각각의 세계에 집중하면서도 서로 어울려 ‘공생’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연결’과 ‘공생’을 전제하는, 다르지만 닮은 둘의 사고는 ‘비독자성’, 여기에서 비롯해 다양하게 변주하는 넓은 가능성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다. 작가는 “주변의 사물이나 대상이 지녔던 의미를 다양한 관점과 관계 속에서 새로이 엮어 재구성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이 연결됐다’라는 한 가지의 법칙을 말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작품들 속 다양한 재료와 기법이 새로운 조화와 균형의 화음을 이뤄 생동하듯, 관객들에게 닿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조기주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명예교수이다. 서울, 뉴욕 등 국내외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37여회 개인전을 열었으며 다수의 그룹전에 참가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시는 5월9일까지.

소리꾼 이희문 "‘시나위 악보가게’서 '현실 고증' 가득한 경기소리에 빠져보시죠" [인터뷰]

“직장인의 애환이 담긴 경기소리로 무대에서 신명나게 함께 놀아보시죠.” ‘조선의 아이돌’ 경기소리꾼 이희문이 22일 오후 3시와 6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경기국악원 국악당에서 직장인의 애환을 한바탕 무대로 펼친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2023 시나위 악보가게’ 연출과 음악감독을 맡은 이희문은 최근 경기일보와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기존에 극장이 무대와 관객석으로 나뉘어 있지만 이번 공연에선 관객석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 좌석을 만들어 그 곳에 관객을 앉히고 무대 위에서 함께 공연과 관람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관객석을 닫고 무대 위에서 공연의 모든 것이 진행되는 이유는 소리의 울림을 위해서다. 악기도 최대한 적게 편성해 소리 자체의 질감을 잘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그 탓에 소리하는 사람들에겐 꽤 어려운 공연이 예상된다. 이희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리하는 사람들이 무대에서 기댈 곳 없는 공연”이다. “경기소리와 시조, 가곡은 소리가 섬세한데 이런 느낌을 잘 구현하고 관객에게 소리의 질감과 울림을 잘 들리게 하기 위해 객석을 무대 위로 끌어 올렸습니다. 소리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웅장함이 없고 기댈 곳이 없다 보니, 소리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꽤 어려운 공연이 될 것 같아요. 공연자들이 어려울수록 관객들의 즐거움은 더 커지고 소리의 질감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경계도 허물어져 몰입도도 더욱 높아지겠죠.” 그가 선보이는 무대는 경기국악원의 가장 안쪽 건물 2층에 있는 시나위오케스트라의 민요연습실. 그곳에선 시나위오케스트라 성악 앙상블 ‘소리봄’ 단원들이 매일 연습을 하며 공연을 준비하는데, 이 ‘치열한 일터이자 예술의 꽃피는 애환이 담긴’ 장소를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안에 편성된 민요단은 1997년 창단 이후 쭉 이어져 왔다. 그 곳에서 ‘예술적인 노동을 하는 특별한 직장인’, 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나오는 노랫말과 가사도 ‘현실 고증’의 절정이다. 다양한 콘텐츠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해 온 이희문만의 전달력이 옮겨졌다.  “경기민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노래 가락 멜로디에 예술인이지만 직장인인 이들이 직장생활을 하며 경험한 에피소드, 또 선후배 간 위계질서 등 이러한 이야기를 단원들이 직접 가사로 녹여냈습니다. 한 아이의 엄마이면서 예술인이자 직장인으로 살아내는 모습, 또 이 곳에서 서로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또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자기들의 이야기를 가사로 써서 관객에게 전해지는 전달력과 공감대가 있을 것 같아요. 직장의 모습은 다르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겪는 희로애락은 비슷하잖아요.” ‘애환’을 풀어내는 자리라고 하지만 이희문답게 파격적이고, 신명나는 무대가 예상된다.  그는 “원일 감독과의 인연으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두 번째 무대를 함께 하게 됐는데, 단원들이 믿고 따라 주셔서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해 왔다.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서로 다져지고 둥글게 만들어 나가는 게 공연이고 무대란 생각을 한다”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단원들이 몰두해주시는 만큼 멋진 공연, 무대를 관객분들께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사회의 다양성을 포용하는…소다미술관 ‘PALETTE:우리가 사는 세상2023’ 展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에서 공존과 연대를 생각해 보는 ‘PALETTE:우리가 사는 세상2023’ 기획전시가 화성 소다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PALETTE:우리가 사는 세상2023’ 전시는 장애 예술가와 비장애 예술가로 구성된 시각예술 작가 6인(박태현, 이겨레, 이지양, 지후트리, 최서은, 홍세진)과 영화 감독 4인(권순모, 김동찬, 김현주, Jacob Frey)이 함께했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포용력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고자 마련됐다. 전시실에는 총 47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그중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크게 그려진 ‘방문자’라는 작품이 눈에 띈다. 선천적 시각장애인 이겨레 작가가 그림을 그렸을 당시 공동 작업실을 쓰면서 방문한 사람을 담았다고 한다. 작가는 작업실에 방문한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운 상황에 큰 몸짓과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던 방문자의 모습을 굴복하거나 뛰어넘는 태도가 아닌 보이는 그대로 화폭에 옮겼다. 소리를 내는 기계의 금속 부품과 복잡하게 널린 전선 등의 이미지를 담은 홍세진 작가의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작품에선 여려 겹으로 덧칠해져 있거나 날카로운 무언가로 긁힌 자국들이 보인다. 청각 장애가 있는 홍세진 작가가 인공와우와 보청기를 사용하면서 기술발전에 따라 사라지거나 새로운 소리가 생겨나는 과정이 있는데 새로운 소리를 들었을 때 공사장에서 철심이 잘리고 부딪히는 소리와 닮았고, 자연스럽다고 하는 파도나 바람 소리도 공사장 소리와 비슷하게 들렸다고 한다. 이러한 본인이 경험했던 감각의 세계를 캔버스에 옮겨 담아냈다. 전시를 기획한 경선화 큐레이터는 “참여한 모든 작가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표현 기법이나 사용한 매체도 달라 그런 점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며 “내가 사는 세계에서 ‘나’로 시작하지만 결국 ‘우리’로 향한다는 점이 모든 작가들의 공통점이며 주제다. 다양한 세계의 모습을 감상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포용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느끼고 알아가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조각작품과 4명의 영화감독이 제작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으며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신미선 ‘여행자의 시간’, 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에서

삶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 오늘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아름다운 꽃에 비유했다. 작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근원적인 고뇌가 담겼다. 삶의 이유와 방향성을 끊임없이 고민해 작품에 담은 신미선 작가의 ‘여행자의 시간’이 성남문화재단 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에서 14일 개막한다. 6월 1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지역의 중장년 예술가를 새롭게 환기하고 작품 활동을 조명하는 성남문화재단의 ‘2023 성남중진작가전’ 첫 번째 전시다. ‘성남중진작가전’은 성남지역에서 활동하는 45세 이상, 60세 이하 중진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망하는 성남큐브미술관의 대표 기획전이다. 2020년 시작해 매년 지역 예술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중진작가들을 꾸준히 소개하며 지역 예술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데 역할을 해왔다. ‘여행자의 시간’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인생의 여행자로서 지나온 삶의 여행지를 기록하고 오늘을 사는 나의 시간, 내일을 살아갈 힘은 무엇인지 성찰하는 작품이 내걸린다. 작가의 예술적 원천인 신앙을 바탕으로 성경을 묵상하며 그린 ‘로고스 채널’ 시리즈와 ‘엑소더스 더 웨이’ 시리즈, ‘존 버니언과의 대화’ 시리즈 등 최근 작품과 작가 자신의 인생을 관찰자로서 기록한 작품 등 3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누구나 무료로 관람 가능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성남문화재단 관계자는 “‘중진작가전’ 외에도 ‘청년작가전’, ‘성남의 얼굴전’, ‘신진작가 공모전’ 등 청년부터 중장년 작가를 아우르는 전시 기획을 통해 지역 예술가들에게는 창작활동의 기반을, 시민들에게는 지역 예술과의 밀접한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공연 만드는 과정 살피며…더 폭넓은 감상 ‘만끽’

“연습실에만 있다가 공연장에 올라오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요. 하하하.” 2012년 독일 오페레타상 지휘자상을 동양인 최초로 수상한 지휘자 지중배는 지난 13일 오후 3시 경기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열린 오픈리허설에서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4월 정기공연으로 ‘경기필 마스터피스 시리즈 VI –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을 13일 저녁 수원 경기아트센터,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선보이기 전 리허설 무대에 관객을 초대해 연습장면을 공개한 자리다.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 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는 공연 전 또는 당일에 관객들에게 연습 장면을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이 자리는 경기필이 창단 이후 최초로 마련된 정기공연 오픈리허설이다. 관객에게 클래식에 대한 부담을 낮추고 공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마련돼 더욱 뜻 깊었다.  오픈리허설에선 지휘자로 나선 지중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협연자로 나서는 에스메 콰르텟 그리고 관객이 함께 공연을 만드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공유했다.  공연장엔 사전신청을 통해 모집된 관객 50명이 마치 본 공연을 감상하듯 진지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조명이 어두워지자 지휘자가 손을 올렸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의 선율이 울려 퍼지며 연습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숨죽인 채 연주에 집중했다. 무대 위의 지중배 지휘자는 곡이 끝나고 난 뒤 악장별로 완성도를 점검하면서 현악과 금관 등 각 파트에 지시사항을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중배 지휘자는 객석으로 내려와 편안한 분위기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관객들은 프로그램 구성을 비롯해 오케스트라 각 파트의 운용법,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와 협업할 때 신경 써야 하는 사항 등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지 지휘자 역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소탈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이날 연습을 마친 지중배 지휘자는 “매 공연 때마다 저만의 스토리라인을 구현한 뒤 그걸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한다. 무대 전반을 이끌어가면서 한 편의 영화를 연출하듯 연주자들, 또 관객들 사이에 스며들고 싶은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케스트라마다 지닌 강점과 색채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경기필과는 이번이 두 번째 작업인데, 한번 경험해본 단원들이라 이번엔 손발이 맞아 들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웃어 보였다. 이날 오픈리허설에 참여한 김주향씨(47)는 “예전에 공연을 볼 땐 사전 지식 없이 그냥 갔다 오니까 공연장을 벗어나는 순간 감정과 생각들이 쉽게 잊혀졌다”며 “하지만 이번엔 연주곡을 미리 찾아서 들어보고, 베를리오즈에 대해 검색도 하고, 오픈리허설도 신청해서 듣고 나니까 공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것 같아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휘자가 설명해준 것처럼, 나만의 세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더 마음에 오래 남는 공연이 될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공연 출연진과 관객들이 소통하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문화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