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세대를 잡아라’. 문화예술 교육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지역 문화재단에서는 영유아·어린이들을 위한 맞춤형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지역의 수요에 발맞춰 제작하는 특화된 문화예술 공연을 찾아봤다. 부천문화재단은 지난 2008년 경기지역 최초로 상설어린이공연장인 부천판타지아 극장을 개관하면서 어린이 공연 공모를 통해 15년째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지역 극단과의 상생을 위해 이들과 프로그램을 함께 개발하고 아동 뇌과학 발달 전문가 등 전문가 집단이 함께 참여하는 것도 특징이다. 올해는 공모에 접수된 총 90편의 작품을 대상으로 작품성, 관객 적합도, 사회문화적 영향 등 다각도의 전문가 심의를 거쳐 7편을 선정했다. 예술 체험의 다각화가 가능한 공연, 환경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공연, 무장애(barrier-free) 공연 등이 중심이다. ▲극단 나무 ‘늙은 개’(4월21~29일) ▲신비한 움직임 사전 ‘계단의 아이’(5월19~27일) ▲극단 로.기.나.래의 ‘우리음악과 함께-별길따라 별별이야기’(7월21~29일) ▲극단 모이세 ‘그림자야 놀자’(9월15~23일) ▲무릎베개 ‘아 글쎄 진짜?!’(10월20~28일) ▲인형극연구소 인스 ‘세친구’(11월10~18일) ▲휠러스 ‘I HAT U!’(12월1~9일) 등의 무대가 펼쳐진다. 2016년부터 선보이는 아기공연도 부천문화재단만의 특화 콘텐츠다. 생후 24개월까지의 영아 눈높이에 맞춰 제작된 공연으로 기존 아동극과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 없이 움직임과 소리를 중심으로 공연이 펼쳐진다. 지난해엔 영유아의 문화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찾아가는 공연’을 진행했다. 부천문화재단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지역의 어린이집을 방문해 120회의 출장공연을 선보였는데, 이는 부천시 보육기관에 다니는 아동 10명 중 8명이 공연을 관람한 수치”라며 “올해도 찾아가는 공연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용인문화재단은 48개월 이상 어린이들을 위한 ‘토요키즈클래식’을 2013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토요키즈클래식’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친근하게 다가가는 클래식 공연으로 매 공연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공연 문의가 잇따르자 재단은 올해부터 회차를 기존보다 두 배 늘려 12회(1일 2회) 편성했다. 첫 무대는 3월 25일 오전 11시와 3시 ‘클래식으로 만나는 명작 애니메이션’이다. 디즈니의 명작 ‘신데렐라’, ‘겨울왕국’, ‘미녀와 야수’의 대표곡과 애니메이션 명가 지브리의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주제곡 등 모두에게 익숙한 애니메이션 OST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미술과 문학을 주제로 클래식 음악과 해설을 곁들인 라이브 콘서트가 열린다. 용인문화재단은 오는 3월부터 11월까지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전 11시 용인시문예회관 처인홀에서 ‘(친절한) 더 클래식 하우스 콘서트’를 선보인다. 상반기 주제는 ‘클래식으로 만나는 미술’이다. ▲빈센트 반 고흐, 열정의 랩소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델프트에서 온 편지 ▲오귀스트 르누아르, 색채의 교향곡 ▲구스타프 클림트, 관능의 멜로디 등 다양한 작가와 미술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공연장 로비에 작은 전시도 마련해 ‘음악이 보이고 미술이 들리는’ 공감각적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7월부터 11월까지 하반기에는 ‘클래식으로 만나는 문학’을 주제로 한다. ▲놀라운 추론의 영감, 셜록 홈스의 바이올린 ▲빅토르 위고 vs 빅토르 위고 ▲백석 시인과 라 트라비아타 ▲시, 음악으로 말하다 등 해박한 식견과 재치 있는 김이곤 해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오는 3월 공연 ‘빈센트 반 고흐, 열정의 랩소디’에선 순수한 영혼의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의 인생에 함께 들어가 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무대를 가득 채우는 반 고흐의 아름다운 작품과 음악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초등학생 이상 관람가로 티켓 금액은 전석 1만 5천원이다. 자세한 사항은 용인문화재단 누리집 등으로 문의하면 된다.
편지 낭독극부터 웃음과 감동을 전하는 연극까지. 일상과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 여섯편이 ‘1만원’에 관객과 만난다. 성남문화재단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명품연극이나 대학로 화제작 등을 선정해 선보이는 ‘2023 연극만원(滿員)’ 시리즈의 연간 공연 일정을 공개했다. 전석 1만원의 착한 가격에 다양한 장르의 연극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올해 시리즈의 첫 문은 3월 25~26일 연극 ‘러브레터’가 연다. 50여 년 간 두 남녀가 주고받는 편지를 소재로 한 편지 낭독극이다. 미국의 극작가 A.R 거니(A.R. Gurney)의 대표작으로, 미국의 연극상인 드라마 데스크상 4회 수상, 퓰리처상에 2회 노미네이트 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오랜 친구로 지내온 두 남녀가 편지 속에 녹아있는 삶과 추억을 통해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깨닫는 과정을 담백하고 유쾌하면서도 저린 대사들로 펼쳐낸다. 자유분방한 예술가 멜리사 역에 배우 배종옥, 안정과 모범적인 삶을 추구하는 앤디 역에 배우 장현성이 공연한다. 이어 4월 29~30일에는 웃음과 감동이 함께 하는 가족 드라마 ‘복길잡화점’이 관객과 만난다. 3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복길잡화점’을 배경으로 자식과 아버지 세대의 갈등, 치매를 극복하고 삶을 이어가려는 노부부의 사랑을 유쾌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독특한 연극을 즐기고 싶다면, 실제 독일 베를린 여행 이야기를 토대로 한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베를린’(5월 27~28일)과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을 각색한 음악극 ‘붉은머리 안’(9월2~3일)을 추천한다. ‘클럽베를린’은 출연 배우 3인이 유럽을 여행 하며 촬영한 영상과 여행 에피소드가 중심이다. 춤과 노래, 즉흥연기를 더해 관객들에게 연극과 현실, 쇼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새로운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붉은머리 안’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을 각색한 음악극이다. 한 가정에 실수로 입양된 고아소녀 앤의 좌충우돌 성장 스토리를 리듬감 있는 말과 움직임, 손악기의 효과음 등 시청각적인 재미를 더해 신선하고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현실의 삶을 짙은 농도로 그려낸 연극도 있다. 연극 ‘고시원’(6월24~25일)은 미래에 대한 기대도, 확신도 없이 살아가는 이 시대 소시민들의 초상을 그렸다. 고시 공부를 위한 한시적 주거공간이 아닌, 도시 월세살이의 마지노선이 된 낡고 오래된 고시원을 배경으로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회의 주택문제와 소시민의 삶을 다룬다. 11월 25~26일 무대에 오르는 ‘우리읍내’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미국의 극작가 손튼 와일더의 작품을 원작으로 해 1900년대 초, 미국 시골마을의 한 소녀의 첫사랑과 결혼, 죽음을 통해 특별한 것 없는 삶의 순간들과 그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소중함을 생각해보게 한다. 티켓은 14일 오후 2시부터 성남아트센터 누리집 혹은 인터파크티켓을 통해 예매할 수 있다.
가상의 배역을 통해 허구의 세상을 연기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대 위가 삶보다 더 진짜 같은 삶의 현장이 될 수 있다면? 수원시청소년뮤지컬단의 생기로 가득했던 무대는 그 가능성이 실현되는 곳이었다. 지난 10일과 11일 양일간 수원청소년문화센터 온누리아트홀에서 수원시청소년뮤지컬단의 제6회 정기 공연 ‘스노우 데이’가 관객들과 만났다. 공연엔 중·고등학생 위주로 구성된 14명의 단원이 무대에 올라 1년가량 연습한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틈만 나면 공상에 빠져 살고 엉뚱한 생각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대니. 폭설로 휴교가 됐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는 대니에게 정말 상상이 현실이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뮤지컬단원들은 지난해 수원특례시 제27회 양성평등주간 기념식 공연, 옴니버스 뮤지컬 ‘대한제국의 비극, 그들의 선택 그리고 나’, 수원시청소년예술단 연합음악회 ‘어깨를 나란히 꿈을 향해’ 등 세 차례의 무대에서 이번 정기 공연의 ‘My World’와 같은 넘버들을 일부 활용해 공연을 펼쳐왔다. 여기에 더해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단원들이 동선과 안무를 일사불란하게 선보이면서 높은 완성도의 무대를 이끌어냈다. 이어 무대를 수놓는 모습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법한 일상의 학교 풍경이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왁자지껄 떠들고, 정돈되지 않은 교실 분위기를 한순간에 휘어잡는 선생님이 등장한다. 주인공 대니는 자꾸만 지각을 일삼고 친구들, 선생님과 원만한 관계를 쌓아가지 못한다. 혼자 있을 때 지붕 위로 올라가 공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대니는 학교에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정신을 못 차린다는 꾸중을 듣기도 한다. 대니는 자꾸만 위축되고 작아진다. 이런 대니가 겪는 내면의 혼란, 청소년기에 직면한 다양한 고민들이 관객에게 잘 전달된 이유는 단원들이 몸에 맞는 연기를 소화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일상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나의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삶의 조각들이 무대 위에 펼쳐졌다. 청소년기에 으레 할 법한 고민들, 학교생활,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들과 어울리는 문제들,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맞닥뜨리는 갈등들 말이다. 이러한 이유에선지 객석엔 무대에 오른 단원들을 격려하고 응원하고자 공연장을 찾은 가족들과 친구들 외에도 뮤지컬단의 공연을 보기 위해 시간을 내 관람한 중·고등학생들이 꽤 많았다. 이들은 커튼콜에서 단원들에게 열띤 환호를 보내며 함께 호흡했다. 정유진 예술감독은 이번 공연에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각색해 이야기를 구성했다. 그가 뮤지컬단을 운영해오던 철학에 따라 이번 공연 역시 ‘공연으로서의 공연’이라는 기능적인 측면만 강조되는 무대가 아닌, 학생들의 삶과 함께 호흡하고 삶의 일부로 스며드는 무대가 된다는 점에서 특별한 결실이라고 설명한다. 정 예술감독은 “늘 흔들리고 요동치는 학생들의 내면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치유와 성장을 거듭해갈 수 있었다”며 “우리 작품은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외롭고 답답함을 느끼던 이가 친구가 생길 때의 순간, 더 나아가 함께하는 가치를 느끼는 과정을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진심으로 뮤지컬을 사랑하는 열 넷 배우들의 반짝이는 이야기를 많은 관객들과 나눌 수 있어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강조했다.
군포문화재단은 오는 25일 저녁 7시 군포문화예술회관 수리홀에서 창립10주년 기념 특별 공연 ‘김창완밴드 콘서트’를 개최한다. 대한민국 락의 전설 ‘산울림’은 가수 겸 배우 김창완이 2008년에 결성한 밴드다. 풍부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부터 산울림에 대한 그리움을 가진 기성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명실상부한 락 밴드로 불려진다. 이번 콘서트에서 김창완밴드는 그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을 통해 세대 구분없이 관객들이 함께 열광할 수 있는 감동의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창립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콘서트인 만큼, 재단은 시민들이 부담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특별 할인을 제공한다. 문화예술회관 유료회원인 문화회원은 1인 2매 50% 할인을 제공하고 군포시 국가유공자 및 장애인, 의사상자, 장기기증자, 병역명문가, 성실 납세자 등에게도 50% 할인혜택을 제공한다. 공연의 입장료는 R석 8만원, S석 6만원이다.
수원미술협회 소속 작가들의 4인 4색 개인전이 수원 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지난 7일부터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동숙, 장철익, 최경숙, 손순옥 작가는 자신의 세계를 수놓는 작품들을 저마다의 관점과 생각으로 다시 배치해 전시장에 녹여냈다. 누군가는 초기작을 다시금 꺼내들면서 회상에 잠기기도 하고, 누군가는 새롭게 시작하는 작업물을 선보이는 포부를 드러내는 등 작가마다 각기 다른 시간의 궤적을 선보이는 자리라는 점에서 매력이 넘친다. 먼저 1전시실엔 이동숙 작가의 21번째 개인전이 마련돼 있다. 이 작가는 소나무, 의자 등의 대상을 매개로 삶과 관계에 관한 생각을 펼쳐 놓는다. 특히 그의 손에서 소나무는 다양한 의미를 획득하는데, 때로는 자연 그 자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인격체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때 중요한 건 소나무의 형상 자체보다 소나무를 통해 발견되는 가치와 지향점이라고 말한다. 이 작가는 “대상이 예술이 될 때, 대상은 외관의 재현 단계에만 머무를 수 없다”면서 “소나무를 그리지만 그를 통해 나타나는 공존의 가치와 형태에 주목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캔버스에 스며든 소나무들은 온전한 나무의 형상이 아닌, 솔잎, 나무의 일부 등으로 세분화되는 듯 하다. 그가 그린 소나무들이 이미 다른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었던 ‘공존’ 등과 같은 기존의 작품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는 데서도 매력을 찾아낼 수 있다. 전시실을 나와 눈을 돌리면 거대한 고래 형상이 눈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온전한 형상이 아닌, 14개의 캔버스에 조각 조각 들어차 있는 형태다. 장철익 작가는 이번 ‘고래’ 작업이 장기 프로젝트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은 14개지만, 향후 49개의 캔버스로 빚어낸 거대한 혹등고래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고래를 구성하는 캔버스가 추가될수록 전시 규모에 맞는 전시장 구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며 “바닥에 캔버스를 늘어뜨리는 등의 배치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포착한 고래의 일부분, 즉 미완의 고래를 들여다 볼 때 캔버스를 통해 드러난 부분과 아직 표현되지 않은 영역을 오가면서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작가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존재인 고래에게 바다라는 제한 공간을 두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의 의중이 캔버스에 녹아들기 시작하면서, 고래는 또 다른 생명력을 얻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공간에서 최경숙 작가는 모두에게 익숙한 옛날 이야기나 동화를 작품 세계로 끌어들인다. 그림 속 화자는 오랜 기간 숲을 지켜온 나무들이다. 동화 ‘빨간 망토’ 속 소녀와 늑대, 소설 ‘어린 왕자’의 여우가 숲 속에서 연결되거나 맞닥뜨리는 순간이 펼쳐진다. 결국 다양한 이야기가 뒤섞이면서 공유되는 무대 자체를 바라볼 때, 작가의 작품을 더욱 깊게 음미할 수 있다. 최 작가는 “시간이나 배경, 등장인물 간 갈등의 원인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결국 작업 대상은 모두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 속 풀과 나무 등의 자연물은 겹겹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지워내는 듯 긁힌 자국을 드러낸다. 그는 “긁는 작업이 숨겨진 시공간을 보여주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오랜 시간 접해온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구전되고 누군가에게 전해진다. 다만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과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면서 의미의 재생산과 재구성이 발생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최 작가의 작품을 뒤로 하고 이어지는 전시 공간에는 손순옥 작가가 빚어낸 동심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그의 작품은 어린 시절 즐겨 했던 놀이에 대한 현대인들의 그리움을 담고 있다. 추억처럼 떠올릴 법한 이미지들이 맴돈다. 작가는 딱지, 종이비행기, 구슬, 종이배, 팽이 등의 다섯 가지 소재로 동심을 향한 마음을 형상화했다. 추억의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자니 문득 밑으로 보이는 빽빽한 글씨들이 캔버스를 가득 메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손 작가는 이런 표현 방식에 관해 “어릴 적 흥얼대던 동요의 노랫말을 적어놓았다”면서 “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생각하다보니 질감을 다변화하거나 표현법을 다양하게 만드는 시도가 동원됐다”고 설명했다. 각자의 개성으로 무장한 작가 4인의 개인전은 12일까지 열린다.
작가의 정성스러운 바느질은 예술적 감성이 더해져 화면을 가득 채운다. 강렬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또 정갈한 항아리와 그릇으로 탄생했다. 바느질로 그림을 그리는 ‘회수(繪繡)’ 작업으로 독창적인 세계를 일궈온 김순철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서울 인사동의 희수갤러리는 오는 23일까지 김순철 작가의 35번째 개인전, ‘About wish - golden age’를 선보인다. 인고의 바느질로 ‘황금기(golden age)’를 피워 올린 작가의 염원이 담겨 있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김 작가는 한지 위에 채색과 바느질로 작업을 한다. ‘About wish’는 요철감 있는 수제 한지에 채색과 바느질 기법으로 실의 물성을 응용한 회화 작품이다. 작가는 1997년부터 바느질로 그림을 그리는 ‘회수(繪繡)’ 작업을 시작했다. 동양화에선 선을 중요시 하는데, 그 선을 어떻게 하면 더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바늘땀을 생각해 낸 것. 그의 작품은 한 땀 한 땀, 한 점 한 점 느린 작업의 결과물이다. 고단하게 반복되는 긴 시간의 노동은 몰입하게 하고, 성찰하게 하고, 비워내게 하고, 편안함을 안겨준다. 그녀에게 작업은 치유이며 명상이다. 김 작가는 “화면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확산되는 바느질의 흔적은 주변과의 연결과 소통의 의미이며, 짧고도 긴 호흡처럼 이어지는 일상의 운율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활짝 피어 절정을 이룬 꽃의 이미지는 중심에서 주변으로 퍼지는 기운의 확산을 의미한다. 항아리와 그릇 역시 좋은 기운과 생각을 가득 담았다. 그의 작품이 각종 아트페어나 전시에서 관람객들의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테다. 김 작가는 “About wish 작품에서 나오는 밝은 긍정의 기운이 삶의 위로와 격려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오산문화재단이 오는 3월 11일 클래식 오페라 ‘봄이 오는 소리’를 오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공연한다. 공연의 주제는 성인과 청소년 모두의 눈높이에 맞춰 ‘알기 쉽고 재미있는 클래식 음악’이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뮤지컬 넘버, 아름다운 가곡, 오페라 아리아의 곡들로 구성해 음악적 공감과 만족감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준비했다. 바리톤 박제승, 소프라노 윤혜선, 바리톤 박정민 등이 출연하는 아르떼 오페라단의 이번 공연은 좀 더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무대로 꾸며진다. 이번 공연에는 오산문화재단 뮤지컬단 라무르앙상블 출신의 시민 배우들이 모여 지난해 결성한 오뮤즈 팀이 특별 출연해 안정적인 호흡과 균형 있는 환상의 하모니를 선사할 예정이다. 재단 관계자는 “정통 오페라 ‘아르떼 오페라단’과 팝송이 가미된 팝페라 ‘오뮤즈’ 팀의 특별 출연으로 더욱 다양하고 풍부한 음악적 구성이 매력적인 관람 요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루를 나타내는 ‘24’시간과 사람 ‘사이(42)’.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두 객체를 작품으로 담아낸 전시가 열리고 있다. ‘242: 하루사이’ 전이 안양 온유갤러리에서 오는 25일까지 관람객과 만난다. 온유갤러리는 회화, 조각, 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의 무대를 마련해왔다. 이번엔 3인의 여성 작가가 결성한 ‘Studio ON’ 팀과 함께한다. 전시 공간 곳곳에서 평면을 벗어난 내면의 풍경이 공간과 사람 사이로 퍼져나간다. 이태희 기획자와 김수연 섬유 작가, 신재연 회화 작가로 구성된 ‘Studio ON’ 팀은 평소 평면을 공간으로 확장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내면의 감정이 확장되는 형태, 바깥 공간에서 형성되는 관계를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 자연에서 찾은 일상의 재발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재형성. 이 같은 키워드들이 전시 공간 곳곳에 일관되게 녹아 있다는 점이 작고 아담한 규모의 전시의 존재감을 한껏 키워준다. 신재연 작가의 설치 작품과 회화가 맞이하는 도입부 통로를 지나 전시 공간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면 왼편에 김수연 작가의 ‘낙화’가 발길을 붙잡는다. 띄엄띄엄 놓인 세 개의 캔버스, 그 위를 가득 메우는 붉은 실이 마치 나무에 만개한 꽃들처럼 보인다. 기다란 실이 묶음으로 캔버스 아래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 자체보다도 떨어지는 꽃잎들이 만들어내는 시간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같은 낙화 현상을 바라봐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진다는 점이 형식과 소재를 달리하면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셈이다.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눈에 띄는 건 쉬폰 천에 프린팅된 회화, 캔버스를 수놓는 회화 등의 작품에서 보이는 동물들이다. 벌과 물고기, 고양이 등의 생물들은 개인과 집단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을 은유하는 요소처럼 느껴진다. 두 작가가 협업한 ‘물결2’, ‘Percolate’, ‘242’ 등의 작품들을 통해선 각자 다른 시선이 만나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기획자는 “자연물과 맞닿은 김 작가의 섬유 작업물이 신 작가가 활용하는 다양한 채색 재료들과 어떻게 호응하는지를 살필 때 폭넓은 감상이 가능하다”며 “평면의 틀에서 벗어난 작품들이 어떤 방식으로 공간을 채워서 관람객들의 내면에 가닿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덧붙였다. 거대한 협업 구조물인 ‘Percolate’는 ‘스며들다’라는 뜻으로, 김 작가가 신 작가의 ‘POACH IN SILENCE’가 인쇄된 쉬폰 천 위에 실을 엮어내고, 주변 바닥에 터프팅 오브제를 설치해 탄생한 작품이다. 두 작가는 작품에 대해 개인과 타인을 나타내는 생물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내면의 감정이 충돌하며 안팎의 경계를 허물고 분출될 때의 변화를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이태희 기획자는 이번 전시에 대해 “내면의 감정에 집중하던 두 작가의 협업으로 외부의 관계가 내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는 기회”라면서 “사회 속 우리가 맺는 다양한 관계에서 파생된 요소들을 살펴볼 수 있다. 감상자 각자가 다양한 주체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예술계에 한동안 가상공간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2020년부터 대면 전시가 제한되자 메타버스(Metaverse) 플랫폼에서 NFT(대체불가능토큰)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됐다. 메타버스는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가상과 현실이 융합된 공간에서 경제·사회·문화적 가치를 창출한다. 특히, 코로나19로 비대면 콘텐츠의 이용이 늘어나며 다양한 비대면 만남을 주도하는 기술로서 각광받았다. 메타버스는 여전히 예술계를 포함한 전 사업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으로 보고 주목하고 있다. 그런 시점에서 현재 우리는 이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을까. 성남 헤드비갤러리가 지난달 30일부터 선보인 안토니오 리 작가의 ‘조우 : 다름을 포용하다’는 이런 기술을 이용한 NFT 전시다. 이용자들은 헤드비 갤러리와 작가의 SNS에 게시된 링크로 접속하면 ‘spatial’이란 메타버스 플랫폼에 들어가게 된다. 접속에 앞서 자신의 분신이 될 캐릭터의 이름을 설정하고 캐릭터 외형까지 고르면 준비 완료. 모니터 속 ‘나’는 바다로 둘러싸인 전시장에 몸을 던진다. 본격적으로 전시장을 둘러보려 하다가 당혹감을 맞닥뜨린다. 마우스 또는 키보드 자판을 사용해 전시장 안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이 작동법을 익히는 데 무려 20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옆 작품으로 이동하려다 애먼 작품 앞에 서 있거나 별안간 천장을 바라보기도 했다. 작품을 감상하기 적절한 위치로 이동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 모니터 가득 그림을 보려고 마우스 휠을 돌리면 의도한 것보다 더 확대돼 그림의 일부만 보이기도 했고, 내 분신이 아바타가 시야를 가려 작품 감상을 방해하기도 했다. 최적의 감상법은 각 작품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 캡션을 누르는 것이었다. 캡션을 누르면 고화질의 작품이 이미지로 제공돼 온전히 작품을 즐길 수 있었지만, 전시를 관람한다는 현장감과 생생함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모바일로 제공하는 AR 기능은 관람에 재미를 더해 아쉬움을 달랬다. 모바일로 전시장에 접속하면 AR(증강현실) 이용이 가능하다. 하단에 있는 눈 모양 아이콘을 터치하면 핸드폰 뒷면 카메라가 비추는 곳이 전시장 배경이 된다. 핸드폰 화면을 통해 자신이 실제 몸담은 공간에 메타버스 전시장에 걸려 있던 그림이 걸려 있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이 걸려 있는 장면 그뿐, 화면에 비친 작품 앞으로 간다고 해서 실제 거리가 좁혀지지는 않았다. 메타버스 전시는 시공간 제약 없이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뿐만 아니라, 이전엔 마우스 클릭만으로 쉽게 복사돼 가치를 지니기 어려웠던 인터넷상 작품이 NFT 기술 적용으로 가치를 회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오프라인 전시장처럼 다양한 감각을 사용해 관람할 수 없다는 단점은 분명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한계점을 보완해 나간다면 차세대 전시문화 트렌드로 주목받기엔 충분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