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만평] 심히 유감...

[사설] 고졸은 안 되는 청년행정인턴, 학력 차별 시정해야

취업난 속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 이른바 공시생들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청년행정인턴 프로그램도 호응을 얻고 있는데 응시자격이 대학생에 한정돼 고졸자 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공무원이 되려면 대학 졸업이 필수가 아닌데 대학생들만 체험 기회를 줘 불공평하다는 지적이다. 청년행정인턴은 자치단체 개별 사업이다. 각 지자체가 여름·겨울방학 기간에 시청과 구청, 동 행정복지센터 등에서 한 달 동안 시행한다. 만 18~34세 대학생(재학생·휴학생)이 대상이다. 업무는 간단한 문서 작성이나 서류 정리 등이 대부분 이다. 업무수행 능력을 가늠하기보다 공직생활을 미리 경험해보는 취업 지원 제도다. 지원자들은 이 사업 참여를 통해 최저시급과 같거나 많은 임금에다 주휴수당까지 받는다. 취업 시 경력란에 사업참여 경력을 게재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때문에 ‘꿀알바’라고 불리며 선호도가 높다. 실제 청년행정인턴의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 7월 수원특례시는 8 대 1(202명 모집에 1천500명 지원), 고양특례시 11대 1(88명 모집에 925명 지원), 동두천시 4.5 대 1(50명 모집에 145명 지원)의 경쟁률을 보였다. 문제는 대부분의 지자체가 청년행정인턴 대상을 대학생으로 한정, 고졸 청년들을 차별하고 있다. 고졸자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이는 사업주가 근로자 채용 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이나 학력 등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고용정책기본법(제7조)에 위배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9년 학력 제한 금지를 권고했는데도, 앞장서야 할 지자체들이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본보가 이런 실태를 집중 보도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적정성 여부를 따져보고 있다. 앞서 전남 여수시와 광양시도 청년행정인턴 사업의 신청 자격을 대학생으로 제한했다.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차별이며 평등권 침해라고 주장하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청년행정인턴은 고졸의 취업 준비생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 학력을 잣대로 어떤 일을 경험조차 할 수 없게 배제하는 것은 부당하다. 다행인 것은, 본보 보도 이후 청년행정인턴 지원 자격을 대학생으로 제한하지 않고 미취업 청년으로 바꾸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파주시가 나섰다. 수원특례시도 학력 제한 폐지를 도입할 예정이며, 포천시도 개선 여부를 검토 중이다. 지자체의 개선 조치는 상당히 바람직한 일이다. 이 같은 움직임이 경기지역 전체로 확대되고, 전국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

[사설] 청담동 등 거짓말 정치는 逆국정농단/경기도 유권자가 낙선으로 퇴출하자

‘청담동 첼리스트’를 비난할 수 있을까. 법률적 책임을 강제할 수 있을까. 이른바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거의 밝혀져 간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이 등장한 스캔들이다. 청담동의 고급 술집에서 향연이 있었다고 했고, 굴지의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30여명과 어울렸다고 했다. 의혹의 출발이 첼리스트 A씨의 입이다. 그가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수사한 경찰이 진술 내용을 전했다. ‘그 내용은 다 거짓말이었다’고 했다고 한다. A씨의 진술 외에도 거짓을 증명할 경찰 수사 결과는 많다. ‘고급 바’로만 알려졌던 술집을 경찰이 특정했다. 주인과 종업원들의 진술도 모두 확보했다. A씨의 휴대폰도 포렌식해 분석했다. 그 결과가 모두 ‘거짓말’을 향하고 있다. 당일 A씨는 오후 10시께 술집을 나섰다고 한다. 대통령이 참석했다는 오전 1~3시에 다른 곳에 있었다고 한다. 함께 있었던 사람까지 경찰은 확인했다고 한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 앞에 ‘거짓말’이 실토된 것 같다. 기본적으로 A씨의 사생활이다. 거짓말을 한 이유, 그날 밤 행적이 전부 그렇다. 평범한 남녀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다툼·갈등이다. 신문 귀퉁이 단신(短信)도 안 될 애정 싸움이다. 문제는 이걸 정부 전복의 무기인 국정농단으로 몰고 가려 했던 정치다. 10월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 감사장에서 김의겸 의원이 폭로했다. 훗날 김 의원과 민주당 측은 ‘질의도 못하냐’고 하던데, 말장난이다. 전 국민 앞에 녹취록까지 틀어 댄 대형 폭로였다. 민주당 최고위원회가 녹취록을 또 틀었다. 국감장에서 틀었던 내용이다. 궁금하면 개인적으로 들으면 될 일이다. 그걸 최고위원회에서 방송사 모아 놓고 틀었다. 몰아가기 장인들이 가세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한동훈 장관이 문제 소지가 크고’ ‘대통령까지 같이했다면 문제’라고 했다. 우상호 의원은 ‘대통령 밤늦은 술자리 제보가 많이 온다’고 했다. 압권은 김성환 정책위의장이다. ‘제2의 국정 농단에 해당할 만큼 엄청난 사건’이라고 했다. 발언에 주목할 점이 있다. 하나같이 ‘사실이라면’이라는 전제를 깔았다. 왜 그랬겠나. 진실에 대한 자신이 스스로 없었던 것이다. 거짓일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국정농단으로 끌고 가 보려는 ‘작업’을 해댄 것이다. 역(逆)국정농단이다. 박근혜 국정농단 추억을 살려 전 국민을 선동하려 했던 정치 공작이었다. 국정농단이라던 박 전 대통령은 징역 22년을 받았다. 그 논리면 역국정농단도 똑같이 중형에 처해야 맞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저들에겐 ‘면책특권’이라는 철갑옷이 있다. 어영부영 넘어갈 것이고, 계속 세비 받을 것이다. 근래 거짓말 정치의 공식이 이래 왔다. 이쯤 되니 방법은 하나다. 유권자가 퇴출시켜야 한다. 투표로 낙선시켜야 한다. 마침 2024 총선이 있다. 거짓말 정치인의 명부를 만들자. 그들에 대한 낙선 운동을 공개적으로 벌이자. 과거엔 부패·무능·지역이 정치를 망쳤다. 지금은 거짓말이 그 짓을 하고 있다. 거짓말 정치인이 어디 김의겸 의원뿐인가. 거짓말을 직업 삼는 정치인은 우리 주변에도 있다.

[지지대]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6·25전쟁의 휴전회담 장소는 원래는 개성 북쪽 내봉장(來鳳莊)이었다. 이를 바꾸게 만든 동인(動因)은 북한군의 무력시위였다. ▶판문점(板門店)은 그렇게 질곡(桎梏)의 현대사 무대에 데뷔했다. 그리고 휴전협정 이후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곳으로 이어졌다. 우리에게는 서글픈 현실이었지만, 이방인들에게는 동물원 구경처럼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이를 위해 설치된 기구가 판문점 견학지원센터다. ▶최근 해당 시설의 권한 이관을 놓고 경기도와 파주시의 물밑접촉이 치열(경기일보 11월3일자 10면)하다. 평화·안보관광 인프라 구축 완성을 위해선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권한 확보가 필수적이어서다. 앞서 파주시는 2020년 판문점 등 비무장지대(DMZ) 일원 미등록 토지에 대한 주소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로 복구했다. 67년 만이었다. ▶경기도의 명분도 DMZ 일원에 대한 평화안보관광 인프라 구축이다. 해당 시설의 관리는 통일부로 일원화됐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및 9·19군사합의 후속조치로 2020년 상반기부터 국내외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전에는 국가정보원 및 통일부, 국방부 등의 소관이었다. ▶파주시는 이와 관련해 늘 경기도에 앞서 있었다. 민통선 북쪽 제3땅굴 등을 운영하면서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통일부에 권한 이관을 요청해와서다. 최근에는 통일부 담당자를 직접 만나 이를 다시 적극적으로 건의한 바 있다. ▶판문점을 포함한 DMZ 관광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지는 이미 10년이 지났다. 관광객도 코로나19 이전에는 해마다 국내외에서 800만~1천만명이 방문하고 있다.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권한 이관은 그 흐름의 한복판에 있다. 권한이 어디로 귀속되든, 판문점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서사(敍事)다. 그 처절한 아픔을 늠름함으로 바꿔야 할 자산(資産)이어서 더욱 그렇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기고] 해양기상서비스, 소통이 답이다

올해 4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인천 앞바다의 섬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증가했다.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연안여객터미널 이용객은 42만1천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2.3% 증가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상반기(46만6천여명)의 90% 수준으로 회복된 값이다. 낚시나 서핑 등 해상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의 활동 범위가 다시 넓어짐에 따라 해양기상서비스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해양기상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고객은 다양하다. 해상교통 이용객, 어업 종사자, 해상교통 관련 종사자, 해경, 해군 등 바다를 즐기려는 사람들과 해양위험 기상으로부터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사람들이다. 특히 바다가 삶의 터전인 어업인들에게 해양기상정보는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정보다. 선박 운항에 날씨가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원하는 정보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해양기상서비스의 목표다. 이에 수도권기상청은 해상업무 관계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해양기상정보에 관한 의견을 듣고 있다. 실제로 여기서 나온 의견들을 모아 2019,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서해중부해상의 특보구역을 세분화했다. 그리고 직접 청취하기 어려운 국민의 생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만족도 조사로 듣고 있다. 요즘같이 급변하는 시대, 국민이 해양위험 기상정보를 빠르고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수도권기상청은 서해중부해상의 특보상황, 위험기상정보 등을 밴드 등 SNS를 통해 국민과 관계자들에게 수시로 제공하고 있다. 대(對)국민 밴드에 제공하는 가독성 높은 지역 맞춤형 자료들은 인천운항관리센터 등 다른 관련 SNS로도 공유된다. 다양한 해양기상정보를 접할 수 있는 해양기상정보 포털도 해양기상 서비스에서 빼놓을 수 없다. 기상청이 2019년부터 운영 중인 해양기상정보 포털은 항만, 항로, 레저, 어업, 안전, 안보, 해무 등 7개 분야에 대해 중요 지점별 해상실황, 해상예보, 해상예측정보, 조석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다. 또 해무로 인한 대형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수도권 3개 대교(영종, 인천, 서해대교)의 해무정보, 천리안위성을 활용한 실시간 해양기상 위성방송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바다에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바다로 향할 때는 해양기상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며 특히 서해중부해상은 11월부터 날씨가 나빠지므로 지금은 해양기상정보의 중요성이 더욱 큰 시기라 할 수 있다. 바다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기상청은 해양정보 수요자와 적극 소통하며 해양기상서비스를 꾸준히 개선할 것이다. 많은 목소리가 모여 더욱 질 높은 서비스로 나아가기를 기대하며, 기상청은 그 중심에서 해양기상서비스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든든한 안전망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유희동 기상청장

[김남희의 길 위에서] 눈부시게 번듯한 오스트리아 수도 ‘빈’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북부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광대한 제국.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하이든, 슈트라우스, 말러가 활약한 음악의 수도. 영화 ‘비포 선라이즈’. 아인슈페너. 이 정도면 짐작할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대해 말한다는 사실을. 올해 어쩌다 보니 빈을 두 번 왕복했다. 여름에는 인스브루크와 잘츠부르크를 거쳐 빈까지 다녀왔고, 이번 가을에는 동유럽 여행의 시작과 끝이 빈이었다. 사실 나는 빈이라는 도시에 큰 애정이 없었다. 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단지 취향의 문제일 뿐. 이 도시는 내 취향에는 너무 화려하고, 깔끔하고, 질서정연하다. 거대한 제국을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640년 수도로서 긴 황금기를 누렸던 도시. 몰락했으나 몰락의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곳이 빈이다. 역시 대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은 도시의 거의 모든 곳에서 몰락의 흔적을 마주하게 되는데 빈은 여전히 눈부시게 번듯하다. 아무래도 나는 무너지고 바스러지는 것들, 폐허로 남은 과거의 영광, 사라진 광휘, 이런 것들에 흔들리는 사람이어서 빈은 늘 심심했다. 과장되게 말한다면 로마의 혼돈 속으로 뛰어들고 말지 빈의 질서 속으로는 투항하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반듯하기만 해서 살짝 지루한 모범생을 보는 것 같다. 게다가 물가도 비싸 지갑이 얄팍한 여행자를 옹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졌다는 슈테판 대성당도, 제국의 심장이었던 호프부르크 왕궁도 아닌, 영구 임대주택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였다.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던 건축가의 철학이 드러난 공동주택은 부드러운 곡선과 다채로운 색상으로 시선을 끌었다. 이렇게나 재미있고 참신한 영구임대주택이라니! 가우디가 설계한 카사바트요의 서민 버전 같았다. 당연하지만 빈에도 올 때마다 나를 설레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클림트와 실레의 그림이다. 클림트의 그림은 이 도시와 잘 어울린다. 금가루를 아낌없이 뿌린 화사하고 관능적인 그림들. 그의 삶조차도 그랬다. 큰 고생은 해본 적 없이 거의 삶 내내 전성기를 누렸던 화가. 생긴 건 수더분한 동네 아저씨 스타일인데 수많은 여인과 염문을 뿌렸고,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은 채 자유연애를 즐겼다. 거기에 더해 영원한 연인 에밀리 플뤼게까지 있었던 복 많은 남자다. 사망한 후 14건의 양육비 청구 소송을 당하기도 했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키스’나 ‘유디트’ 같은 그의 대표작도 좋지만 나는 초록에 둘러싸인 작은 집들을 그린 그림을 더 좋아한다. 몽환적이며 에로틱한 클림트의 그림은 자연히 눈이 가지만 내 영혼이 이끌리는 곳은 실레다. 강렬한 선들, 어두운 색채, 기괴한 포즈들, 대범한 노출. 어딘가 뒤틀린 내면을 응시하는 것 같은 그림들이다. 서로를 존경하며 좋아했던 두 화가는 20세기 초 빈 미술의 황금기를 공유했다. 그 시절 빈에는 수많은 예술가와 철학자가 활약했다. 그림에서는 클림트와 실레, 코코슈카 같은 이들이, 건축에서는 오토 바그너와 요제프 호프만, 아돌프 로스, 디자이너 콜로만 모저, 문학의 카를 크라우스나 슈테판 츠바이크, 철학의 비트겐슈타인, 의학의 프로이트, 음악의 구스타프 말러 등. 그들은 카페 센트럴이나 데멜에 모여 저항을 도모하고, 관습을 거부하고, 인간의 심연을 응시했다. 때마침 빈의 레오폴트 박물관에서는 이들이 활약하던 1900년을 주제로 한 전시가 한창이었다. 빈에서의 마지막 날은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다녔다. 걷다 보니 흰색 건물 위에 황금색 월계수 잎이 촘촘히 박힌 둥근 돔이 눈에 들어왔다. 빈 분리파의 성전 제체시온이었다. 낡은 인습에 빠져 있던 빈 미술가협회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며 결성된 빈 분리파. 귀족과 왕실, 부르주아만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예술을 추구해 노동자계급에게는 입장료도 받지 않았다는 곳. 그 시절의 빈은 지금보다 훨씬 활기찼을 것이다. 옛것과 새것, 전통과 혁신이 충돌하며 새 시대를 향해 열정을 쏟아붓는 예술가들이 있었으니. 제체시온의 지하에서 눈물을 쏟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베토벤 프리즈’를 보러 온 건 두 번째였기에. 베토벤 프리즈는 클림트가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의 마지막 악장 ‘환희의 송가’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행복을 향한 염원이 적대적인 힘을 넘어 시를 통해 이뤄지는 과정을 묘사한 길이 34m의 프레스코화 대작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한 편에 헤드폰 세트가 걸려 있었다. 헤드폰을 쓰고 맨 오른쪽 벽, 행복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그림 ‘온 세상을 향한 입맞춤’ 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음악을 들었다. 노래도, 그림도 지나치게 생생했다. 귓전을 터뜨릴 듯 격렬하게 송가가 울려 퍼지고, 눈앞에는 클림트의 황금색이 빛나고 있었다. 부드럽고 상냥한 광채가 가득한 그림이었다. 노래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갈수록 내 감정도 격렬히 고조돼 갔다. “환희여! 신의 아름다운 불꽃이여! 온 세상에 입맞춤을!” 합창단원의 노래가 절정을 향해 치달을 때 울음이 터졌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더는 누리지 못하는 엄마 생각이 나서였다. 삶을 향해 온몸으로 입 맞추며 살았던 엄마. 두 달 전 세상을 떠난 엄마에게 이 그림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엄마는 클림트의 그림을 좋아했을 게 틀림없다. 함께 여기 나란히 앉아 쏟아지는 삶의 환희를 누리고 싶었다. 고단한 날들에도 살아있음의 축복을 매 순간 누리며 살았던 엄마는 사라지고, 남은 생에 아무런 미련이 없는 나만 살아있는 현실이 거짓말 같았다.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렇게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 이의 의지는 또 얼마나 경이로운지. 눈물을 멈추지도 못하고 한바탕 울고 나오니 막혀 있던 가슴 한 편이 조금은 뚫린 것도 같았다. 사람이 위로해 주지 못하는 상처를 때로는 그림이나 음악이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나는 그 찰나의 시간을 통해서야 뒤늦게 빈의 저력을 인정하게 됐다. 그날 오후에는 오스트리아 남자와 결혼해 빈에서 사는 지인을 만났다. 그녀는 이 도시가 살수록 좋은 곳이라며 극찬했다. 잘 갖춰진 사회보장제도에 더해 이 도시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가 있다고, 여기서 살기를 잘했다고. 나는 아무래도 빈을 사랑하게 된 걸까? 때마침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 티켓을 끊으려는 걸 보니. 늦가을 아인슈페너 한잔과 함께 빈의 정취에 빠져 봐야겠다. 김남희 여행작가

[천자춘추] ‘유치원 자율경쟁’이 미래교육의 답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아이가 태어나 가정에서 양육과 교육이 이뤄지던 것이 산업화된 현대에 들어서는 어린 시기부터 교육기관에서 보육과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교육기관이 유치원이며 상당 부분 민간이 설립한 사립유치원에서 책임지고 있다. 우리나라 유아교육의 중심에서 유아교육을 책임지고 이끌어 왔던 사립유치원이 여러 상황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는 곧 우리나라 유아교육의 위기라 볼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세계 선진국 대열에서 선전할 수 있는 것은 열정적인 교육열의 힘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특히 사립유치원은 생의 첫 교육기관으로서 11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발전해 왔다. 시대마다 그 시절의 인재를 양성하는 초석의 역할을 해왔으며 앞으로도 교육의 견인차 역할을 해낼 것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이 발달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에게 과연 어떠한 교육이 필요할까. 현재 유치원은 국공립과 사립유치원을 통틀어 누리놀이과정의 교육과정이 있다. 유아교육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강조되는 현 시대에는 교육의 일률적인 교육과정보다는 유연성과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오랜 기간 각 기관의 특성을 살려 교육을 담당해 온 사립유치원은 학부모들과 소통하며 학부모의 요구에 적극 공감하면서 각 유치원의 교육과정을 창의적으로 실현하고 있으며 선의의 경쟁 속에서 성장해 왔다. 그 결과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에 있어 어떠한 교육기관보다 월등한 경쟁력이 있으며 축적된 교육 노하우를 갖고 있다. 반도체산업 또는 케이팝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우리 유아교육기관이 갖고 있는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은 미래 사회에는 더더욱 중요한 교육 영역이 될 것이다. 유아기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미래 사회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립유치원이 가진 교육적 자산은 높이 평가돼야 할 것이며 이는 오랜 기간 서로의 발전을 독려하며 성장해온 우리 나라 사립유치원의 발전의 산물이며 자랑거리다. 본인은 오랜 기간 사립유치원의 교육을 담당해온 전문가로서 유아들의 미래를 위해, 위기를 맞고 있는 사립유치원의 교육적 자산이 사장되거나 폄하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사립이나 공립의 기준이 아닌 교육 그 자체의 척도로 유아교육을 바라보길 바랄 뿐이다. 박정순 수원시 유치원연합회장

[사설] 전세 사기와의 전쟁,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사는 집이 경매에 넘어갔대요. 제 전세금 어떻게 하죠.” 지난해부터 사회문제화한 전세 사기 피해가 갈수록 확산하는 추세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을 날리게 된 서민들은 추워 오는 날씨 속에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최근 전국적으로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전세금을 떼이는 이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전세금이 집값에 근접하거나 오히려 집값을 넘어서는 역전 현상도 나타나서다. 최근 3년간 발생한 전세금 반환보증 사고의 10건 중 8건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다세대·연립주택이 많은 인천 미추홀구의 경우, 전세 다섯 집 중 한 집꼴로 전세금을 떼일 정도라고 한다. 지난 22일 인천 미추홀구청에 ‘전세 사기 피해주민들을 위한 법률지원 접수처’가 문을 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법률 자문을 구하려는 이들의 줄이 시작부터 길게 이어졌다고 한다. 전세금 8천500만원을 떼이게 된 한 세입자는 지난해 말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런데 몇 달 후 법원 경매에 넘어가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아파트 31가구가 똑같은 처지에 놓였다. 미추홀구 숭의동의 한 아파트에 전세를 든 100여가구 주민들도 근저당 때문에 전세금을 날릴 처지다. 인천경찰청이 지난 7월부터 전세사기 특별단속을 벌여 모두 815건을 적발했다고 한다. 이 중 미추홀구에서는 모두 19곳에서 618건이나 발생, 피해가 집중돼 있었다. 피해 규모가 426억원이다. 지난 8월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도 그랬다. 전국 75개 지자체 511건의 전세금 보증사고 중 53건이 미추홀구에서 발생했다. 이곳 보증사고율은 21%, 즉 5가구 중 1가구 이상이다. 전세 사기는 인천이 특히 취약하다. 인천의 전세가율(전세가/매매가)은 88%로 전국 평균(83%)을 훌쩍 넘는다. 지난 9월 정부는 ‘전세 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방지 및 피해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주에는 후속 대책도 내놓았다. 세입자의 전입신고 다음 날까지는 집주인이 새로운 담보권을 설정할 수 없게 하거나 집주인에게 납세 내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이다. 선순위 보증금 정보를 확인하려고 할 때 집주인이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최근에는 심신 미약자를 꾀어 바지 집주인으로 올리는 사기 수법까지 등장했다. 전세 사기는 우리 사회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다. 이래서야 마음 놓고 집 한 칸 제대로 얻어 살 수 있겠는가. 서민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서도 아무 탈 없다면 제대로 된 사회가 아니다. 전세 사기와의 전쟁,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사설] 오류·훼손 많은 국가지점번호, 일제 조사·정비 시급하다

비거주지역에서 응급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을 돕기 위해 부여한 ‘국가지점번호’가 잘못 표기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표지판 훼손이나 망실도 많다. 위급 상황 시 인명구조를 위해 부여한 국가지점번호가 엉터리라면 심각한 문제다. 국가지점번호는 전 국토의 위치 안내 및 표시 방식을 통일해 재난재해 등 긴급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한 국가안전망이다. 건물이 없어 도로명주소가 부여되지 않은 지역 등에 지점번호를 부여한 것으로, 산림·해양 등 비거주지역의 위치를 나타낸다. 경찰·소방·산림청 등 기관·지역별 서로 다른 위치표시체계를 통일해 재난·사고 등 응급상황 발생 시 신속한 위치 안내와 인명구조 등 관계기관이 공동 활용한다는 의미에서 효율적이다. 국가지점번호는 전 국토를 격자형으로 구획해 한글 두 자와 숫자 여덟 자리를 조합해 표기했다. 번호판은 전국에 7만4천여개가 설치돼 있다. 행정안전부는 주소정보 홈페이지(www.juso.go.kr)와 모바일 서비스를 통해 국가지점번호를 공개하고 있다. 홈페이지 ‘국가지점번호’ 메뉴에 들어가면 자신의 위치를 인근 국가지점번호판의 위치, 거리 정보와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보안을 이유로 인터넷 지도를 공개하지 않았는데 신고자가 지점번호를 활용해 신고하려면 번호판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올해부터 서비스하고 있다. 문제는 국가지점번호가 잘못됐거나 번호판이 훼손돼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신속 대응이 어렵다는데 있다. 엉터리 번호판과 허술한 관리는 생존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경기도에는 총 8천2개의 국가지점번호가 설치돼 있다. 경기도가 지난 3월부터 1천742개를 조사, 현재까지 171개의 오류 사항을 발견했다. 망실 86건, 훼손 68건, 표기오류 14건, 기타(위치 오류 등) 3건 등이다. 도내 전체의 40% 정도만 점검한 것으로, 나머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전체를 조사하면 문제 있는 표지판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국가지점번호의 관리 권한은 지난해 도지사에게 위임됐다. 도는 지난해 71건의 오류 사항을 발견했음에도 23건(32.4%)은 개선 조치를 완료하지 못한 상태다. 시간을 다투는 위급 상황에서 국가지점번호의 정확도는 도민 생명과 직결된다. 지점번호 중복 등 표기 오류, 망실, 훼손 등은 인명 관련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하루라도 빨리 전수 조사를 해 정비해야 한다. 국가지점번호 설치 이후 실태 조사와 사후 관리는 도 차원의 일원화된 시스템을 구축해 오류 등을 개선해야 한다. 전문인력을 활용해 스마트 기술로 정확한 일제 조사부터 시행할 필요가 있다. 안전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선제 대응해야 한다.

[문화카페] 인생 3막의 가능성

나이 60세에 뮤지컬 작곡가로 데뷔한 여성이 있다. 그런데 그 데뷔작으로 뮤지컬 분야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 작곡상을 받았다. 놀랍도록 성공적인 인생 재도전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1980년대의 팝 아이콘이었던 ‘신디 로퍼’라는 것이다. 1985년 ‘She's So Unusual’로 그래미상 5개 부문을 휩쓸었고 앨범 한 개에 담긴 4곡이 빌보드 싱글 톱에 오른 싱어송 라이터인 신디 로퍼가 30년 만에 뮤지컬 작곡가로 길을 바꿔 단숨에 토니상 6개를 휩쓰는 흥행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뮤지컬 ‘킹키부츠’! 열일곱살에 무작정 가출해 음악으로 세계를 뒤흔들었던 그녀의 역경 속의 성공 스토리와 닮은 뮤지컬이다. 망해 가는 신발 공장을 물려받은 아들이 아버지의 가업을 성공시킬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만난 드랙퀸(여장 남성)의 타고난 디자인 감각을 빌려 남성의 몸무게를 지탱하는 단단한 강철굽의 킹키부츠를 개발해 내는 이야기인데 주인공들의 성장 스토리다운 성공과 희망 메시지가 극 전체를 감싸고 있다. 거기에 작사와 작곡을 맡은 신디 로퍼의 경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음악이 자칫 교훈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완성시켜 준다. 실패를 극복하는 젊은 패기가 가득한 뮤지컬 ‘킹키부츠’는 그래서 최근 삶이 고단한 우리나라 관객들을 열광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3년 전, 한국의 대표적인 원로 연극배우인 박정자 선생님의 연극 인생을 회고하는 1인극 ‘노래처럼 말해 줘’를 연출하면서 물리적인 나이가 사람의 실질적인 에너지와 감각, 건강 상태를 규정할 수 없음을 실감한 경험이 있다. 당시 78세의 여배우는 여전히 젊게 설렜고 여전히 열정적이었고 여전히 강렬했고 여전히 아름다웠고 여전히 힘이 넘쳤다. 매일 긴밀하게 함께 연습할 때마다 속으로 저 강력한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결론은 정신력과 자기 확신의 산물이라는 거였다. 함께 작업하는 기간 동안 박정자 배우는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나이와 시간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고 배우로서 실존적이고 초월적인 자아로 일상마저도 충실했다. 새로운 존재론이었다. 최근에 창작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계 및 대중문화 관련 직업의 특성인 무정년, 무은퇴가 주목 받고 있다. 70대에 글로벌 무대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원로들의 행렬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앞으로 15년 후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3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이르고 그 가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란다. 평균수명이 100세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현실이 됐다. 이제 60세를 넘기면서 새로운 직업과 새로운 재능에 도전해 객관적인 결실을 얻는 인생 3모작의 전문가들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앙코르 커리어! 미국의 은퇴설계 지원 비영리단체 시빅 벤처스의 창시자 마크 프리드먼 대표는 100세 시대에는 사람들이 50세를 기점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해 75세까지 25년은 더 일하게 될 것이고 퇴직자들은 일로부터의 해방(Freedom form work)’이 아닌 ‘일할 자유(Freedom to work)’를 원한다면서 앙코르 커리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최근에 문화계에서 증명되는 인생 2모작, 인생 3모작의 주인공들은 우리 사회 전반의 노년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에 대한 희망적인 단서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도 어느새 중장년층의 은퇴 후 남은 반평생의 잉여 시간이 사회적 부담과 책임이 되고 있는 현실에 직면했다. 선진국처럼 앙코르 커리어에 대한 노년의 사회적 제도와 정책이 본격화돼야 하는 시점이다. 이유리 서울예술단 단장 겸 예술감독·서울예술대 예술경영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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