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로고
[집중취재] 최저임금·보험... 열심히 일해도, 기본권도 못 누린다
경제 경제일반

[집중취재] 최저임금·보험... 열심히 일해도, 기본권도 못 누린다

IT 개발·영상제작자 등 느는데 법적 장치는 전무... 환경 ‘열악’
프리랜서 성격 짙어 문제 발생시 민법으로 해결... 대출 어려움도
“불안한 하루하루”... 허탈·한숨

image
웹기반형 플랫폼 노동자 A씨가 9일 김포시 자취방에서 디자인 작업을 마치고 책상에 얼굴을 파묻은 채 쉬고 있다. 조주현기자

“일은 하고 있는데...하루하루가 불안함의 연속이죠.”

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노동시장이 급격히 성장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인해 급속도로 늘어난 배달노동자 등에 대해선 내년 7월부터 산재보험을 적용받게 하는 등 제도적 보호장치도 점차 마련되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수가 적어 소외됐던 웹기반형 플랫폼 종사자들은 여전히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등 법적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다.

9일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게시한 ‘웹기반형 플랫폼 노동과 정책과제’ 보고서(2022년 10월17일)를 보면 웹기반형 플랫폼 종사자들은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보고서는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실시한 웹기반형 플랫폼 노동실태조사에 응답한 1천23명의 답변을 토대로 작성됐다.

플랫폼 노동은 크게 지역기반형 플랫폼 노동과 웹기반형 플랫폼 노동으로 분류된다. 지역기반형 플랫폼 노동이란 흔히 알려진 배달과 택시, 퀵서비스 등의 노동을 뜻한다. 웹기반형 플랫폼 노동은 정보기술(IT) 개발자를 포함한 웹디자이너, 영상제작·편집, 단순한 클릭 작업 등을 의미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온라인(앱 주문·노동 요청)과 오프라인(배달 등)을 통해 노동이 이뤄지는 지역기반형 플랫폼과 달리 웹기반형 플랫폼은 온라인상에서 일을 주문하고 작업자가 이를 받아 온라인에서 진행하게 된다. 이 때문에 노동이 노출되지 않고 일종의 외주와 유사하게 일이 처리된다.

또 프리랜서 성격이 짙어 보수나 계약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노동법이 아닌 민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노동법으로 근로자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법상 계약 관계를 보장받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런 탓에 이들은 최저임금이나 사회보험 가입 등 노동자의 기본권리를 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은행 대출 등 사회·경제적 울타리에서도 외면받고 있다.

포스터, 웹디자인 등을 주로 하는 30대 여성 A씨는 “각종 포스터 등 디자인 같은 경우 공모전 방식으로 보수가 지급되는 경우가 많아 며칠 동안 작업을 해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보수는 결국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인데, 작업 이후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할 땐 정말 허탈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만 앞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영상 편집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30대 B씨는 “급하게 생활자금이 필요해 은행에 갔는데 일을 하고 있는 데도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결국 이자가 훨씬 높은 2금융권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가끔은 ‘난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생각도 든다”고 토로했다.

한국고용정보원 조사 결과, 대출을 시도했던 웹기반형 플랫폼 노동자의 73.3%가 대출 시 소득증빙이나 재직증명 등 서류증빙의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의 고용보험(실업급여) 가입률은 25.1%,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가입률은 각각 50.0%, 69.6% 수준에 불과했다. 심지어 이마저도 현재 일자리가 아닌 이전 직장에서 가입하거나 지역가입 또는 가족을 통해 가입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법망 벗어난 플랫폼 노동자들... 제도적 안전장치 필요

전문가들은 웹기반형 플랫폼 노동자들의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법률상 임금구조자 지위를 부여하거나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노동자로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 마련의 기반이 되는 웹기반형 플랫폼 노동자의 규모나 수치도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9일 본보 취재 결과, 웹기반형 플랫폼 노동자의 규모 파악은 통계청의 1인 자영업자 수치 등을 직업별로 구분하거나 경제활동 인구 표본 조사로 인한 추정치 파악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범주가 불명확한 탓에 조사 기관별 통계치도 천차만별이다.

경기도에서도 2020년 10월 플랫폼노동지원팀을 신설해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나, 도내 웹기반형 플랫폼 노동자의 규모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해외에서는 플랫폼 노동자 수 증가에 따른 이들의 권리와 사회적 안정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프랑스는 ‘피고용인’과 ‘자영업자’만을 구분하는 기존의 이분법적 노동 시장 체계에서 독립 근로자가 병가 및 해고 보호 등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중간 범주’의 지위를 만들었다. 이후 이들에게 △직장 내 사고에 대한 보험 혜택 △플랫폼이 책임지는 전문 교육을 받을 권리 △노동조합 구성, 집단행동을 취할 권리 등을 부여했다.

영국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 보호 혜택을 강화했다. 영국은 노동법에 피고용자와 자영업자가 아닌 ‘중간 노동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명시하고 이에 따른 권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기본 안전보건권, 국민최저임금, 근로시간 등의 기본적인 권리부터 병가, 출산 휴가, 출산 급여, 부당 해고에 대한 보호 등 노동자들의 권리까지 갖추고 있다.

이와 관련, 권혜자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현재 노동법에서도 근로자 지위를 다투는 사안이 많아 웹기반 플랫폼 노동자들을 노동법에 적용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어 보인다”라며 “노동법과 별개로 다양한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종훈 법무법인 마당 변호사는 “웹기반형 플랫폼 노동자의 증가로 자신들이 제공한 노동이나 결과물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지급받지 못한 사람들과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전통적 사업 영역과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이 분야의 특수성과 개별성을 고려해 기존 계약법 및 관련 판례 등을 적극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이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은 지난달 18일부터 ‘플랫폼종사자 직종별 근무실태와 정책과제 연구’의 일환으로 ‘전국민 경제활동 현황 조사’와 ‘플랫폼종사자 근무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수진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