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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복 수원대 미술대학원장, “틀에서 벗어난 생각과 굳은 신념으로 살아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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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복 수원대 미술대학원장, “틀에서 벗어난 생각과 굳은 신념으로 살아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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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복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장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주저않고 도전하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그게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아닐까요?”

이재복 수원대 미술대학원장(64)을 지칭하는 수식어는 많다. 작가, 교수, 사업가, 정치인, 아버지 등이다.

이 원장은 대학 시절부터 미술계의 이단아로 불리며 기득권에 의문을 표하고, 신념에 따라 행동해 오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활동해 왔다.

그는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지만 자신이 ‘인간 이재복’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으려 한다. 통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이 원장의 삶 속에는 언제나 확고한 행동의 기준과 신념이 배어 있었기에, 그는 다양한 분야를 겪으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홍익대 미대 재학 시절, ‘지필묵’을 강요하던 동양화과 교수들에게 의문을 제기하며 한국적인 것을 얼마든지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수들과 마찰을 빚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졸업식을 거부하고 파리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동양화과 출신이 파리로 유학 가는 것 자체도 드문 일이었다. 언제나 틀을 깨는 듯 보였던 그의 움직임은 사실 주먹구구식의 충동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합당한 근거와 논리에 따른 데서 시작됐다. 이후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해외에선 널리 이름을 알렸다. 1995년엔 전 세계를 돌면서 전시를 무려 28회나 열기도 했다. 그렇게 20여년을 활동하다 보니 인지도를 쌓아 갔고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49세에 문득 예술은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오랜 기간 홀로 높은 경지에 올라갈 생각만 했는데 50세를 앞두고 예술가는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고 할까요.”

이후 이 원장은 경계를 허물고 예술뿐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다녔다. 경기다문화사랑연합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봉사에 힘을 쏟고 민선 8기 수원특례시장 예비후보로 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수원중·고등학교 제21·22대 총동문회장을 맡는 등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 힘을 예술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간 치열하게 살아온 이 원장은 교수 정년 퇴임이 1년 남짓 남은 이 시점에 자신의 품을 거쳐 가는 후학 양성뿐 아니라 동문 네트워크 강화에도 역할을 다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지난 15일 개막해 오는 30일까지 수원대 개교 40주년을 기념해 수원대 고은미술관에서 열리는 미술대학 동문 작가 전시회 ‘아트로 미래로(ARTRO MIRAERO)’ 역시 그의 간절한 바람이 녹아 있는 자리다.

다양한 영역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궤적을 돌아보면서 그는 삶이 ‘여행’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충동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있고, 그것이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면서 “과거와 미래보다 중요한 건 지금도 흘러가고 있는 이 순간인 만큼, 언제나 후회 없는 결심과 선택으로 살아가고자 한다”고 전했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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