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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한국 채색화의 역할은?’…국립현대 과천관 '생의 찬미'
문화 리뷰

[전시리뷰] ‘한국 채색화의 역할은?’…국립현대 과천관 '생의 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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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생의 찬미' 언론공개회에서 왕신연 학예연구사가 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화, 궁중회화, 종교화 등 한국의 채색화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복을 불러들이며 교훈을 전하고 역사를 기록하는 등 우리 곁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채색화는 수묵 감상화 위주의 미술사 서술이 주를 이루고 역할을 지닌 회화를 순수예술로 보지 않았던 탓에 오랫동안 미술사에서 소외됐었다. 이제는 한국의 채색화와 그의 역할을 조명하며 기울어진 한국미술사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떨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야심차게 선보이는 한국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에서는 채색화의 전통적인 역할에 주목했다.

<생의 찬미>라는 전시 명은 우리나라 최초 여성 성악가인 윤심덕이 인생의 허무함을 담아 불렀던 ‘사의 찬미’와 반대되는 의미로 지어졌다. 채색화는 새해 첫날, 돌잔치, 결혼식 등 삶의 여러 순간을 축하하는 의미로 쓰였기에 복을 불러일으키고 축복하는 채색화의 역할을 조명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번 전시는 전통회화의 역할을 ‘벽사’, ‘길상’, ‘교훈’, ‘감상’ 등 4가지 주제로 설정해 ▲마중 ▲문앞에서 : 벽사 ▲정원에서 : 십장생과 화조화 ▲오방색 ▲서가에서 : 문자도와 책가도, 기록화 ▲담 너머, 저 산 : 산수화 등 6개의 섹션으로 구성했다. 왕신연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채색화의 역할에 방점을 두고 기획한 전시며 ‘이 시대의 채색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이기도 하다”며 “역할 자체를 들여다 봄으로써 한국화의 기능을 확대하고 우리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기획의도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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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존스턴 作 '승화, 2021, 4채널 영상, 사운드 설치, 12분'

첫 번째 ‘마중’에선 가장 한국적인 벽사 이미지인 처용을 주제로 한 스톤 존스턴 감독의 영상 ‘승화’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국립무용단이 만든 4명의 처용은 춤으로 역신(疫神)과 인간의 폭력성을 정화시킨다. 춤이 시작되면 공간 가운데 있는 관람객이 중심을 상징하는 노란색 처용이 돼 벽사에 동참할 수 있다. ‘문앞에서 : 벽사’에선 신상호 도예가의 ‘토템상’을 볼 수 있다. 길상과 벽사의 의미가 담긴 장승, 솟대 등 한국의 전통 조형물과 아프리카의 원시적이고 과감한 아름다움을 결부한 작품이다. 또한 ‘오방신도’, ‘호작도’, ‘수기맹호도’ 등 전통적인 도상들이 한애규의 ‘기둥들’, 오윤의 ‘칼노래’ 등과 합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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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교 作 '사방호'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정원에서 : 십장생과 화조화’다. 전통적인 길상화인 십장생도와 모란도 등 19세기 말 작품부터 길상의 의미와 표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최근의 회화까지 폭넓게 감상할 수 있다. 접시꽃, 모란 등이 화려한 색과 어우러져 한국 채색화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이외에도 오방색을 소재로 한 김신일의 ‘오색사이’, 거대한 4마리의 호랑이가 있는 이정교의 ‘사·방·호’, 8명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문자도와 책가도 등 격변의 시기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기록화를 경험하며 채색화의 변주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오는 9월25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는 강요배, 박대성, 박생광, 송규태, 이종상 등 총 60여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윤범모 관장은 “단청, 불화, 민화 등으로 꾸준히 채색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채색화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동안 미술사에서 채색화가 다뤄지지 않은 것을 반성하고 우리 민족의 회화 역사를 재조명하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은 전통의 채색화를 현대적으로 톺아보고 미래를 논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지점에서 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관람객 박소진씨(42)는 "채색의 전통이 특정한 분야, 민화 등 다양한 형태로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데 한국 채색화의 역사와 이야기를 마치 역사책을 읽는 듯 알게 됐다. 전시의 좋은 기획과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며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한국 채색화의 다양한 쓰임을 논하는 일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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