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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자! 미래유산] ⑫의정부 ‘KSC 노동회관’, 미군 부대 한국인 노동자의 애환 품은 집결지
문화 지키자! 미래유산

[지키자! 미래유산] ⑫의정부 ‘KSC 노동회관’, 미군 부대 한국인 노동자의 애환 품은 집결지

▲ 의정부시 의정부동 상가 거리에 위치한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KSC' 전경.
▲ 의정부시 의정부동 상가 거리에 위치한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KSC' 전경.
여러분은 근대건축물을 어떻게 보시나요. 누군가는 미래유산으로 보고, 누군가는 흉물로 볼 테죠. 견해가 서로 다른 까닭에, 그동안 수많은 근대건축물이 보존이냐, 철거냐 기로에 서서 온갖 수난을 겪어내야 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개중에 문화재로 가치가 높은 것들이 소실됐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귀중한 근대문화유산을 앞으로 얼마나 더 허무하게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그래서 시작합니다. 꼭 지켜야 할 미래유산을 찾아가는 여정을. 1876(개항기)에서 1970년 사이에 지어진 경기도의 근대건축물을 중심으로 문화재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미래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들을 발굴해 보존 대책을 찾아보려 합니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그대로 우리도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줄 수 있길 바라며. 편집자주

 

반세기 이상 미군 기지가 주둔했던 의정부시. 8개의 부대가 모두 떠나고 최근에는 방치됐던 공여지까지 전부 반환 결정되며 도시재생 훈풍이 불고 있다. 오랫동안 각인돼 있던 군사도시 이미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날이 얼마 안 남은 셈이다.

그나마 미군 부대에서 일했던 한국인 노동자 단체 사무실이 남아 꿋꿋하게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지키자! 미래유산> 열두 번째에 소개할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KSC(이하 KSC 노동회관)’.

 

선정적으로 보이지만 의미 있는 노동회관

▲ KSC 노동회관 건물 전면에 새겨져 있는 노동자상 부조는 제3공화국 시기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면 매우 선정적이다.
▲ KSC 노동회관 건물 전면에 새겨져 있는 노동자상 부조는 제3공화국 시기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면 매우 선정적인 모습이다.

KSC 노동회관은 의정부동 중심가에 위치해 있다. 미군 기지 캠프 레드클라우드와 캠프 스탠리의 부지 반환 소식으로 떠들썩했던 3월 중순께 찾은 이곳 일대는 도시재생과는 거리가 먼 듯 다소 침체된 분위기였다.

활기없는 상가 거리를 걷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여느 상가 건물과 달리 전면에 단체 로고를 내걸고, 커다란 인물 부조까지 달고 있는데, 여기가 바로 KSC 노동회관이다.

건물 앞에 서서 올려다보니 부조가 꽤 선정적이다. 중요 부위를 나뭇잎으로만 가린 알몸의 남성 세명을 상당히 입체감 있고 도드라지게 표현했다. 누군가는 낯부끄럽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 부조는 이곳의 상징이다. 미군 부대에서 노예 노동으로 피눈물 흘린 한국인 노동자들이 집결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부조에서 양 끝 남성의 손도 주목해야 한다. 숫자 2 5를 각각 나타내고 있는데, KSC 노동회관 지부 결성일인 1964 2 5일의 날짜를 뜻하는 것이다.

당시 지부 결성부터 건물 설립까지 목전에서 지켜본 KSC 노동회관 2대 지부장 김규호(85)씨는 전란 후 미군 부대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의정부뿐만 아니라 판문점, 부산까지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임금도 제대로 못 받고 대우도 형편없으니 모여서 대책 회의할 공간이 필요했다. 1964년에 우리 노조가 결성되면서 4천여 명의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이곳에 지부 건물을 지어 올렸다. 공사비만 780만 원이 들었다. 당시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한국인 노동자가 뭉쳤다는 것을 알리려고 건물에 노동자상을 새겨 넣고 결성 날짜를 손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체로 표현한 이유에 대해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있다고 덧붙였다.

3공화국 시기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면, 노동조합 결성 및 지부 건물을 갖춘다는 것은 놀랄만한 사건이다. 그만큼 의정부에서 주한 미군에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의 세력이 매우 컸음을 시사한다.

게다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형태의 건물은 완공 후 사회에 큰 혼란을 야기했을 테다. 하지만 주한미군 한국인 노조사무실이라는 특성상 정부가 용납한 것으로 보인다.

 

인권 짓밟힌 굴곡의 역사 속에 탄생

▲ 설립 당시 현판이 걸려있는 KSC 노동회관 출입문.
▲ 설립 당시 현판이 걸려있는 KSC 노동회관 출입문.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는 6·25 전쟁이 발발하고 미군이 주둔하며 탄생했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조합 20년사>에 따르면, 미국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후 작전업무를 지원할 노동력이 절실히 필요했다그러나 전투지역에서는 많은 주민이 피난 가고 노동인력 조달은 어려웠다. 1950 7 14일 전시 근로 동원법이 공포됐고, 길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끌고 가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제 징용된 이들을 한국노무단(Korean service corps)’이라 불렀다. 일정한 복무기간도 없이 징용당한 그들은 탄약 및 보급품 수송, 도로건설 및 보수, 전사자 및 부상자 후송 등의 일을 했다. 한국노무단이 작전수행에 이바지한 공로는 컸지만 보상은 물론  국가적 인정도 받지 못했다.

1953 7월 휴전이 성립된 후에도 한국노무단은 101노무단에 편성돼 유엔군의 일을 계속 도왔다. 그들에 대한 처우는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정도로 열악했다. 외래미와 콩나물국 한 사발 지급이 전부였고, 낡은 막사에 집단 수용되며 노예처럼 부려졌다. 근무 중 사망하거나 불구자가 돼도 보상은커녕 길거리에 내던져졌다.

이 같은 참상은 1955년 사회에 알려졌고 징발보상령 자유징집제가 공포됐다. 한국노무단은 자유노동자의 신분이 됐지만 인권과 처우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미 행정협정이 체결되지 않아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의 정당한 법 적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 내부 복도에는 오래전 KSC 노동회관 조합원의 전체 모습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 내부 복도에는 오래전 KSC 노동회관 조합원의 전체 모습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미군을 상대로 한 노동쟁의는 빈번해졌고, 1959년 ‘전국미군종업원노조연맹’의 창설로 이어졌다. 이후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해산됐다가 ‘전국외국기관노동조합(이하 외기노조)’으로 명칭을 바꿔 재건됐다.

중앙 노조가 재건되자 지역 노조의 창설도 잇따랐다. 1965 2 5일 의정부, 동두천, 파주 지역의 노무단이 결성해 의정부동 현 위치에 설립한 게 바로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KSC’ 지부다.

설립 당시 조합원은 4천여 명(전체 종업원의 약 80%에 해당)에 달했다. 전국에서 세 번째로 큰 지부였다. 이들은 결성 이후 임금 인상과 부당 해고 철회 등 미군에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의 권익보호 활동을 했다.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KSC’ 지부에는 현재 총 2180명의 근로자 중 조합원 1500명이 남아있다. 이들은 주한 미군이 의정부에서 철수하고 화성, 평택 등으로 이전하자 함께 옮겨 가 근무하고 있다.

 

세월의 흔적 역력한 모더니즘 양식

▲ 1. KSC 노동회관 건물 후면은 세월의 풍화를 맞아 균열이 나고 군데군데 움푹 패여 있다. 2. 건물 내부 사무실에 있는 나무 벽장. 3. 창문을 보수한 회의실. 4. 60년대 미군 부대 목수로 근무했던 노동자가 만든 단상.
▲ 1. KSC 노동회관 건물 후면은 세월의 풍화를 맞아 균열이 나고 군데군데 움푹 패여 있다. 2. 건물 내부 사무실에 있는 나무 벽장. 3. 창문을 보수한 회의실. 4. 60년대 미군 부대 목수로 근무했던 노동자가 만든 단상.

한국노무단의 간절함으로 탄생한 건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전면은 조합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독특한 디자인이지만, 전체적으로 기능에 충실한 3층 높이의 모더니즘 양식이다. 규모는 321 크기의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형태다.

외벽은 세월의 풍화를 맞아 균열이 나고 페인트칠이 벗겨졌다. 건물 뒤편은 더욱 심각하다. 부식된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 벽면 군데군데 움푹 패여 있다.

현재 1층에는 오토바이 판매 업체가 들어와 사용하고 있다. 그 많던 주한 미군 노동자들이 이제는 의정부에 없는 탓에 사무실 공간을 줄이고 임대를 준 모양이다. 사무실은 지부장 및 간부들이 오가며 2층만 활용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 봤더니, 역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곳곳에 금이 가고 60년대 유행하던 나무 벽장도 그대로다. 회의실에는 60년대 미군 부대에서 목수로 근무하던 조합원이 직접 만들었다는 단상도 남아있다. 목재였던 창문만 샤시로 교체했다고 한다. 창문이 변형 됐지만 건물 전체의 구조는 신축 당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보존 가치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동조합사 및 사회적 가치 큰 문화유산

▲ 여인천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KSC 지부장이 건물 보존에 대한 의견을 전하고 있다.
▲ 여인천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KSC 지부장이 건물 보존에 대한 의견을 전하고 있다.

어두운 시대적 상황에서 건설된 KSC 노동회관. 미군 부대 노동자들의 아픈 역사가 담긴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2014년에는 아름다운 경기건축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이 건물이 근대문화유산으로 가치가 크기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되길 바라고 있다.

안창모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전쟁 후 외국 기관에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한인 사회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건 불법이거나 반정부 운동이라 인식됐다. 그 시절 조합을 결성하고 건물을 지은 것은 노동조합사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가 아주 크다. KSC 노동회관 건물은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여인천 전국주한미군한국인노동조합 KSC 현 지부장은 많이 낡았지만 전통이 있는 노동회관이라 최대한 보존하려 하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등록문화재 지정에 대해선 조합원 모두와 의논하고 고민해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주한 미군 노동자의 역사를 짧게 훑기만 해도 숨찰 정도로 KSC 노동회관 건물에는 격동의 한국사가 응축돼있다. 미군 부대도 한국인 노동자도 지금은 의정부에 없지만, 건물은 역사를 품은 현장을 보존하며 지역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버티고 있다. 머지않아 발생할 재개발 물결 속에 훼손되지 않도록, 안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사진=황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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