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로고
[이야기 세상, Today] 기록되지 않은, 그럼에도 ‘있어야 할 아이들’
사회 이야기 세상, Today

[이야기 세상, Today] 기록되지 않은, 그럼에도 ‘있어야 할 아이들’

일곱 번째 이야기 :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림자 속에 산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서류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아플 땐 병원에 가야 한다'는 당연한 일상은 미등록 이주아동에겐 너무나 먼 이야기다. 유동수 화백
미등록 이주아동은 서류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아플 땐 병원에 가야 한다'는 당연한 일상은 미등록 이주아동에겐 너무나 먼 이야기다. 유동수 화백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존재를 부정당한 아이들이 있다.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을 우리는 ‘미등록 이주아동’이라 부른다. 한반도에서 태어나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한글로 자신을 표현하며 살아가지만, 정부는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처럼 당연한 일상이 이들에겐 누릴 수 없는 사치다. 부모가 한국에 불법체류 중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다. 경기일보는 미등록 이주아동이 한국에서 겪는 처참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 다를 바 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1.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생일을 인정받지 못한 아이들


‘응애’

엄마의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온 아기가 내는 첫소리, 넘치는 축복과 사랑을 받아야 할 순간을 알린다. 그러나 같은 순간, 누군가는 생존을 고민해야 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체류자격에 의해 운명을 결정당한 탓이다. 부모가 불법체류 상태라면 아이는 출생신고조차 할 수 없고 체류자격을 얻을 수도 없다.

세상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꿈을 가진 ‘미등록 이주아동’ 메이(21ㆍ가명)는 지난 2001년 한국에서 태어났다. 미얀마 국적을 가진 그의 부모는 지난 2000년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고국을 떠나 이곳으로 망명했다. 어렵사리 초ㆍ중ㆍ고 교육 과정을 이수한 메이는 고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메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체류자격을 인정받지 못해 휴대전화도 자신의 명의로 만들지 못했다. 미등록 이주아동을 품어주는 교장을 만나 학교에 진학했지만, 어느 학생이나 들을 수 있는 EBS 강의를 듣는 것도 어려웠다. 이메일로 계정을 만들어야 하나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니 그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계좌를 개설할 수도 없어 학교에 돈을 내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메이 홀로 현금을 들고 갔다. 수학여행을 갈 때나 학교에서 단체행사가 있어 보험을 들 때도 생년월일만 써내면 되지만, 메이에겐 ‘생일’이 없어 매번 선생님께 불려가야 했다. 다른 아이들의 미심쩍은 눈초리를 감당해야 하는 건 오로지 소년의 몫이었다.

 

어린이집에서 놀고 있는 이주아동들의 모습. 연합뉴스 (본 기사 내용과 무관)
어린이집에서 놀고 있는 이주아동들의 모습. 연합뉴스 (본 기사 내용과 무관)

미소가 해맑은 소녀 지나(9ㆍ가명)의 삶은 더 처참했다. 지난 2008년 우간다를 탈출했던 지나의 부모는 한국에 들어온 지 4년 만에 지나를 낳았다. 지나의 엄마는 삼남매를 모두 자연분만으로 출산했다. 건강해서가 아니라, 보험을 들지 못해 제왕절개나 수혈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목숨을 건 것이다.

여섯 살 되던 해, 지나는 ‘제대부(배꼽) 탈장’으로 서둘러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제대로 걷는 것조차 힘겨울 만큼 고통스러운 지나를 안고 엄마는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원무과에서 아이의 입원 수속을 막아섰다. 신분이 증명되지 않으니 한국인 보증인을 세우거나 선납금을 걸라고 요구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나의 아빠는 난민 신청을 하려다 불법체류 사실이 발각돼 강제출국을 당한 터였다. 결국 지나의 가족은 ‘살기 위해’ 출국을 결정했다. 떠나는 것도 맘처럼 쉽지 않았다. 정식 여권을 만들지 못해 여행증명서를 받아야 했다. 존재를 부정당한 채 비행기에 올라탄 지나의 가족이 남긴 마지막 말은 이렇다.

 

우린 결국 중간 경유지에서 또 다시 탈출해야 해요

이주 관련 단체들이 미등록 이주아동의 기본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 관련 단체들이 미등록 이주아동의 기본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결국 도망쳐야 하는 ‘미등록 이주아동’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평범한 일상은 허락되지 않는다. 학교에 다니는 것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아파도 병원 대신 약국을 찾아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은 존재를 드러내는 것조차 꺼린다. 언제든지 한국에서 쫓겨날 수 있는 처지에 놓인 탓이다. 앞선 메이와 지나의 이야기 역시 은수연 안산시글로벌청소년센터 기획실장의 입을 통해 마주한 현실이다. 은 실장은 “다른 아이들은 꿈을 키울 때 미등록 이주아동은 생존을 고민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이후 보편화된 QR코드를 찍는 일조차 이들에겐 어려운 과제”라고 털어놨다.

■현황 파악조차 어려운 그림자 속 아이들

19일 법무부의 2020 출입국ㆍ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불법체류 외국인은 지난해 기준 39만2천명, 이 가운데 19세 이하 미등록 이주아동은 7천447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입국 기록이 남은 이들 중 체류기간이 만료된 경우만 산출한 것으로, 한국에서 태어난 미등록 이주아동은 모두 배제돼 있다.

관련 단체들은 최소 2만명의 미등록 이주아동이 한국에 살고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214만6천명 중 경기도에 거주하는 수는 71만5천명, 그 비율은 33.3%를 차지한다. 이 같은 지역별 분포를 미등록 이주아동 추산치에 대입하면, 약 6천600명의 아이들이 경기도에 거주할 것으로 예측된다.

■아파도 병원 갈 수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

경기도는 지난 2019년 1~10월 도내 미등록 이주아동 468명을 대상으로 건강권 지원을 위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도내 24개 시ㆍ군에 살고 있는 29개국 출신이 참여했으며, 미등록 이주아동의 부모 372명도 조사에 함께했다. 조사 결과, 산후조리를 집에서 받거나 전혀 받지 못한 경우가 91.3%에 달했다. 아이들의 건강검진이나 예방접종을 무료로 받지 못한 사례는 57.9%를 차지했으며, 특히 자녀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경우는 52.1%에 달했다.

경기도 외국인정책과 관계자는 “도 차원에서는 초등학생 치과 주치의 사업이나 국가 예방접종 사업을 통해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며 “지자체 단위에선 제도 개선에 한계가 있는 만큼 통계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정부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 “체류자격 부여” vs. 법무부 “조건부”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같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지난해 5월 법무부에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세부적으로는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무조건적 강제퇴거를 중단하고, 체류자격을 신청해 심사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되 그 이전에라도 현행법상 가용 절차를 활용해 체류자격 부여를 심사할 것을 요청했다.

이후 법무부는 지난 4월 국내 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을 발표했다. 대상은 올해 2월28일 이전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자로서 ▲국내 출생 ▲15년 이상 국내 체류 ▲신청일 기준 국내 중ㆍ고교 재학 중 또는 고교 졸업자 등으로, 구제 신청기간은 지난 4월19일부터 오는 2025년 2월28일까지로 한정했다.

그러나 이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국내 미등록 이주아동은 500명에 불과하다. 또 4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탓에 형제자매 사이에서 체류자격 부여 기회가 다르게 적용되면 말 그대로 생이별하는 사례가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동 권리 위한 인도주의적 관점 필요”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정부의 융통성이 필요한 분야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불법체류자 또는 미등록 이주아동 역시 돌아갈 곳이 있고, 돌아갈 기회가 있다면 진작 한국을 떠났을 것”이라며 “언어도 한국어밖에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내쫓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속인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국적을 내주는 게 맞느냐를 놓고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법무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며 “적어도 아동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다만 법무부는 아직까지 유보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미등록 이주아동이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나, 지난 4월에 발표한 구제대책 이후로는 이렇다 할 변경사항은 없다”면서도 “다만 내부적으로 어떤 점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할지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의 저자 은유 작가 (사진=은유 작가 제공)

#3. “존재 증명해낸 아이들의 이야기, 이젠 사회가 귀 기울이길”


 [특집 인터뷰] 은유 작가 

국가인권위원회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도서 출판을 기획했다. 국가인권위로부터 제안을 받은 은유 작가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하나의 글로 엮어냈고, 지난 6월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펴냈다. 집필 과정에서 마리나와 카림, 페버 등의 처참한 현실을 직시하게 된 은유 작가는 다시 한 번 이주인권활동가, 변호사를 만나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경기일보 취재진은 세상에 기록된 적 없던 아이들의 목소리를 처음 글로 남긴 은유 작가를 만나 그 소회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Q. 책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A. 나름대로 사회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미등록 이주아동이 처한 현실을 알게 된 뒤로 깊이 반성했다.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은 아이들은 고통마저 감춘 채로 살아가야 했고, 이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전에도 성폭력 피해여성, 특성화고 학생 등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다뤘는데, 그보다 밑바닥에 이런 아이들이 있다는 게 너무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Q. 미등록 이주아동의 현실을 마주한 소감은.

A.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언어 탓에 소통이 잘 안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많았지만, 누구보다 자기표현을 잘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존재를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고민하며 살아왔기에 정돈된 언어로 자기 생각과 경험을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아이들을 ‘피해자’라고만 정의하고 싶진 않다. 물론 미흡한 법 체계에서 유령처럼 살아야 했으니 피해를 당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회에서 ‘나’를 설명해가며 살아냈다. 포기하지 않고 존재를 지켰다는 점에서 배울 점이 정말 많았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현실을 담은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
미등록 이주아동의 현실을 담은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

Q. 가장 기억에 남는 이주아동이 있다면.

A. ‘마리나’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표상과도 같은 아이였다. 몽골에서 온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소녀였는데, 우리나라 아이와 전혀 다른 점을 느낄 수 없는 ‘선주민’ 아이로 기억한다. 삶의 조건은 누구보다 열악했지만, 그 아이가 살아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또 ‘내가 부모를 키웠다’고 당차게 말하던 그 모습이 기특하고 미안했다. 미등록 이주아동이 아닌 경우에도 부모에게 양육능력이 없어 거꾸로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의 목소리까지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정말 ‘건강한’ 아이였다.

Q. 아이들을 위한 사회적 과제를 제시한다면.

A. 법무부의 구제대책은 ‘있지만 없는 법’으로 느껴진다. 앞으로 이민은 더 활발해질 테고 이를 위한 정책과 행정이 마련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외국인을 단지 값싼 노동력으로만 인식하고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건 비겁한 처사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며, 이를 통해 아이들의 존재가 세상 밖으로 더 드러나야 한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꼭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희준ㆍ김정규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