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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용의 더 클래식] 신중한 음악가 브람스의 진지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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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용의 더 클래식] 신중한 음악가 브람스의 진지한 음악

성실하고 정직했던 음악가 브람스. 대부분 음악가들이 미래를 지향해 나아가는 가운데, 그는 홀로 뒤돌아 과거의 음악을 지향했다. 특히 그는 선배 음악가 베토벤에 대한 존경이 대단했다. 그가 처음으로 내 놓은 교향곡이 구상한 지 무려 15년 만에 완성된 것 역시 베토벤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내 등 뒤에는 항상 베토벤이 거인처럼 버티고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참으로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고, ‘내가 감히 그 거인에 버금가는 작품을 쓸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홉 개의 교향곡 속에 방대한 우주를 담아낸 베토벤. 그를 능가하는 교향곡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란 강박관념이 브람스를 그토록 오랜 세월 고뇌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다행이 그 길고 긴 고뇌의 산물은 베토벤의 교향곡만큼 훌륭했고 많은 이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브람스의 친구이자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한스 폰 뵐로는 그의 교향곡을 칭해 ‘베토벤 교향곡 10번’이라고 불렀다. 비록 대단한 칭찬이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브람스만의 개성과 고유한 특징이 없이 베토벤의 것을 따라했다는 의미로 들려 브람스는 마냥 좋게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정확하게 하고 싶었던 그의 성격 때문에 그는 함부로 교향곡을 쓸 수 없었고, 그는 죽는 날까지 단 네 편의 교향곡만을 남겼다.

사랑보다 더 큰 우정을 나누었던 클라라가 죽은 이듬해인 1897년 간암으로 죽음을 맞이한 브람스. 고전 형식의 뼈대 위에 신선한 예술미와 새로운 기교의 살을 붙여 절대음악에 정진했던 그는, 현재 빈 외곽 공동묘지에 평생 사이좋은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나란히 묻혀 있다.

정승용 작곡가ㆍ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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