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철 칼럼] 사과하는 경제학자와 그렇지 않은 경제학자

경제학자란 경제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생활해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들은 여러 가지의 경제현상을 연구하고 이론을 만들어 후학들에게 가르치기도 하고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자기 지식을 토대로 제안하기도 하며 때로는 평가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장래의 경제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예측도 한다. 경제현상들은 너무나 복잡할 뿐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고 있어 설사 어떤 경제이론에 기초한 경제정책을 강구한다 해도 제대로 실효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경제 예측은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바 있는 폴 크루그먼 교수가 지난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책으로 마련한 1조9천억 달러(약 2천498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에도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었는데 실제로는 41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에 빠져들어(6월 현재 9.1% 급등) 그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러자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예측이 틀린 것에 대해 반성문을 써 공개사과를 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예측은 어디까지나 예측인데 공개사과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하거나 가볍게 넘길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노벨상을 받기까지 한 경제학계에 비중 있는 인물의 경제예측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장래를 잘 내다보지 않고서는 경제활동을 제대로 해나가기가 어렵다. 따라서 경제인이나 일반국민들은 장래의 경제상황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계에 비중있는 인물의 경제예측은 국민들과 경제인들의 경제활동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의 말을 믿고 행동한 사람들 가운데는 이득을 보지 못했거나 손실을 본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폴 크루그먼의 공개사과는 양식 있는 그리고 양심적인 학자의 태도였다고 하겠다. 경제학자들도 신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오판을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오판의 예로는 카를 마르크스를 들 수 있다. 마르크스는 유명한 그의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망할 것이라고 설파했다. 그런데 그의 자본론을 따른 사회주의 국가들은 80년을 지탱하지 못하고 지구상에서 다 멸망하고 오로지 북한만이 아직도 그를 추종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1883년에 사망했으니 사과를 받을 길이 없다. 우리나라 경제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경제학자들의 대표적인 오판은 1960년대 말에 뜨겁게 불붙은 매판자본론과 종속이론이었다. 이들 이론을 내세웠던 학자들은 외국자본과 기술을 도입해 경제발전을 도모하려 해도 결국 선진국 자본에 예속 내지 종속됨으로써 국가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며 결국 변방경제로 전락할 뿐 중심국가는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은 우리 경제는 경제 규모와 무역 규모는 세계 10위권에 도달했고 중심국은 물론 선진국으로 진입했으니 그들의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우리 기업들의 2000년 이후의 해외투자는 무려 689조원에 달하며 미국 대통령마저 우리 기업들에게 대미투자를 애원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자본수입국에서 어엿한 자본수출국으로 변모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편 학자들은 사과는커녕 입을 다물고 있다. 또한 최근에 소득주도성장을 주장했던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5년간 시험했던 소득주도성장은 처참한 결과만을 남겼다. 과격 강성노조와 지나친 규제 등으로 기업들이 국내투자는 기피하고 해외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판에 정부가 돈을 쏟아붓는다고 경제가 좋아질 리 없다. 시험이 실패했는데도 잘못했다고 사과하지 않는다. 우리 학계의 이런 풍토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정재철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정재철 칼럼] 바람 잘 날 없었던 세계경제 100년

지난 100여년간의 세계경제를 돌아보면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를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첫째로, 일찍이 칼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1917년에 소련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 세계경제는 기존 단일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두 개의 양분된 체제로 변화됐다. 이런 사태가 영향을 미쳤는지 또는 자유방임적인 시장경제의 한계였는지 1929년에 대공황이 발생했다. 둘째,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제국주의 국가들의 약육강식 시대에 식민지였던 우리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종전과 더불어 해방과 독립을 맞았다. 셋째, 2차 대전 후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체제 국가들은 존 케인즈 경제학의 유효수요이론을 경제정책에 활용해 괄목할 성장을 이뤘다. 자본주의 체제의 성공사였다. 넷째, 2차대전 후 미국 달러화 35달러당 금1온스를 교환해주기로 한 기축통화제도를 1971년 8월15일 폐기하기로 해 닉슨쇼크가 발생했다. 또한 미국의 대일무역 적자 누적 해소책으로 일본엔화를 1달러당 360엔에서 308엔으로 대폭 절상했고 1985년에도 플라자 합의를 통해 더욱 절상시켰다. 다섯째, 1973년에 시작된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를 가장 심각한 불황으로 몰아넣었다. 1974년 1월부터 석유 1배럴당 5.12달러에서 11.65달러로 파격적으로 인상함으로써 우리를 포함한 미국과 일본 등 대부분 나라들의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전후 최대의 불황을 겪었다. 불황 가운데 물가가 치솟아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의 물가상승)이라는 용어가 최초로 등장했다. 그 후 1979년에 다시 제2차 오일쇼크가 발생, 1981년에는 배럴당 34달러까지 상승해 또다시 세계경제를 불황으로 몰아넣었다. 여섯째, 1989년 동독의 패망으로 독일이 통일되고 1991년 사회주의국가인 소련체제가 붕괴돼 15개의 독립국가가 생겨난 대변혁이 생겨났고 이들도 자본주의 체제로 회귀됐다. 또한 사회주의경제 세력의 두 축의 하나인 중국마저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낙오되자 자본주의 생산방식으로 방향 전환을 함으로써 이제까지 양분된 시장이 다시 단일의 시장으로 회귀하는 세계경제사에 대변혁의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이들 국가들은 개방화와 세계화를 통해 높은 성장을 이뤘고 탈냉전의 시대가 열렸다. 일곱째, 1997년에는 우리를 포함해 고도성장을 해온 동남아 중진국들이 개방화와 세계화에 노출되고 국가가 경제를 현명하게 관리하지 못함으로써 동남아외환시장의 위기를 자초했다. 달러가 바닥나고 대기업들이 줄도산하고 대량의 실업사태가 발생해 경제가 추락했다. 여덟째, 2008년의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는 세계공황을 야기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위기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아홉째, 2019년에 발생한 코로나19로 인한 대역병 사태는 세계경제를 마이너스 성장으로 몰아넣었다. 코로나19는 세계화 개방화에 따른 일일생활권의 영향으로 빠르게 세계를 점령, 종전에 볼 수 없었고 경험하지 못한 대역병으로 발전했다. 또한 이로 인한 불황 저지를 위한 과잉유동성공급은 고율의 인플레를 일으켰다. 열째, 2022년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에너지와 곡물가격 파동을 일으켰고 코로나로 시달리고 있는 세계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나아가 냉전시대로의 회귀 또는 모처럼 이룩한 세계화와 개방화를 저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재철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철 칼럼] 윤정부는 목적세인 국세교육세와 지방교육세 하루빨리 폐지해야

교육재정의 확충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된 교육세는 국세이자 목적세로 1982년에 5년 한시적으로 도입된 이래 계속 연장돼오다가 1992년에 영구세로 전환됐다. 국세인 교육세는 독자적인 세원에 과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세 또는 지방세액에 덧붙여서 부과하는 부가세 형태로 부과한다. 목적세는 공공서비스의 편익에 따라 조세부담을 과징하는 것으로 일종의 응익(應益)과세인데 만일 편익에 따른 부담배분이 가능한 경우라면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옹호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실시해오다가 1991년에 폐지된 방위세를 비롯 현행의 목적세인 교육세는 사용목적, 즉 용도가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만 목적세일 뿐 사실상 응익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단적인 예로 교육세는 과세대상인 술과 교통에너지가 교육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잘 입증되고 있다. 지방교육세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의 목적세는 말로만 목적세지 실질적인 목적세가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목적세의 도입목적은 증세를 위한 수단이거나 특정목적에의 지출보장수단으로 활용돼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목적세는 일반적으로 근대예산제도의 통일성 원칙에 저촉될 뿐만 아니라 세정을 복잡하게 하고 경직적이며 지출의 효율을 저해하므로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채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출의 효율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지출 대상을 함께 고려해 지출을 결정하는 것이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즉 1원을 지출해야 하는 경우 여러 가지의 용도에 있어서 그것이 가져다 줄 한계편익이 최대로 되는 것에 지출해야 한다. 그러나 목적세를 통한 재정지출은 수입에 의해 지출이 결정되기 때문에 설사 더 큰 편익이 주어지는 다른 용도가 있다 하더라도 그 용도에의 지출을 막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이와 반대로 목적세를 통한 지출부문에 더 많은 지출이 요구되는 경우 지출증대가 어려워진다. 또한 필요 이상으로 세수가 확보되는 경우에는 낭비적으로 쓰여져 비효율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육이 국가의 100년대계를 이룬다고 하는 지상의 과제를 달성하고자 하는 취지 하에 이 제도를 도입·실시해왔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도 여러 가지 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으므로 더 이상 교육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비효율적인 목적세 제도를 존치시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된다. 이제 그 이유를 들어보기로 하자. 첫째, 교육부는 대학 등록금을 14년째 동결시켜 대학재정을 피폐화시키면서 목적세수로 거둬들인 재원으로 대학을 지원한다는 미명 하에 여러가지 명목으로 꼬리표를 달아 떡고물 나누어주는 식으로 대학을 통제하고 있다. 대학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교육부에 의존케 하는 시스템을 더이상 존치시켜서는 안된다. 특히 교육세의 재원 중 교통에너지환경세수가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유가가 하락 내지 안정된 지난 7년동안 교육세수는 제자리였고 최근과 같이 유가가 급상승하는 경우에는 교육세수가 크게 늘어나게 돼 불안정한 세수라는 것도 문제다. 둘째, 지방교육세도 똑같이 비효율적이다. 지방교육세는 국세인 교육세중 지방세에 부가하여 징수하던 교육세를 지방세법에 이관해 징수하는 제도이다. 학령아동은 계속 줄어드는데 세수는 계속 늘어(지난7년간 56%증가)낭비적으로 쓰일 수 밖에 없다. 특히나 이에 더해 내국세수의 20.79%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배정토록 돼 있어 각 교육청은 넘치는 재원으로 흥청망청 쓰고 있다 한다. 시골의 어떤 초등학교는 학생수는 40명에 불과한데 교장실에는 대형 TV가 설치되어 있는가 하면 멀쩡한 건물을 보수하거나 태블릿 PC를 무상으로 지급하는등 예산이 낭비적으로 쓰인다고 한다. 우리는 더이상 목적세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도 교육세의 목적세 제도를 즉각 폐지해아 한다. 폐지에 따른 세입부족액은 부과세목 세율조정으로 보완하면 된다. 정재철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철 칼럼] 거꾸로 가는 지방재정 자립, 지방자치제 의미 퇴색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 실현의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실질적인 기반, 즉 풀뿌리민주주의라는 점에서 국민들이 오랫동안 그 실시를 염원해왔다. 그랬던 지방자치제가 실시된지 30년이 됐다. 지방자치제는 지역주민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그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공공서비스를 그들의 요구에 따라 공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의식을 고취함으로써 그들의 부담을 정당화할 수 있고 또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통해 지역간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등 많은 이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그동안 정치경제의 중앙집권내지 중앙집중은 우리 경제사회에 많은 폐해를 가져다줬다는 점에서 지방자치제에 거는 기대는 자못 컸었다. 그러나 이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자지단체간 경제력 격차가 워낙 크고 그에 따라 재정력 격차도 몹시 커서 재정재원의 자주적 확보가 어려운 처지의 지방단체가 허다하다는 점에서 과연 지방자치제가 명실상부하게 실시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됐던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지방단체의 재정자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명실상부한 자치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치제 실시 후 현시점에서 지방재정의 자립도가 어느 정도 향상됐는지를 살펴보자. 전국평균 재정자립도(순계)는 1997년 63%였는데 2021년에는 48.7%로 14.3%나 낮아졌다. 이 기간 중 특별시와 광역시(총계)는 89.4%에서 58.9%로 무려 30.5% 낮아졌고, 도는 42.5%에서 36.5%로, 시는 53.3%에서 32.3%로, 군은 21.2%에서 17.3%로, 자치구는 51.6%에서 28.5%로 근 1/2수준으로 각각 낮아져 재정자립도가 오히려 악화됐음을 볼 수 있다. 즉 자치제를 실시하고 난 후 재정자립도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크게 악화됐음을 볼 수 있다. 또한 2021년의 경우 인건비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자치단체가 전체의 1/4에 해당하는 63곳이나 되고 이들 가운데는 군 단위가 51곳, 시 단위가 4곳, 자치구가 8곳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재정자립도가 31%미만이 173곳이나 된다. 경기도에서도 30%이하인 단체가 9개나 된다. 이같은 현상을 놓고 볼 때 기대가 컸던 우리의 지방자치제는 허울만 자치제지 실질적으로는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치제가 실시된 후에도 중앙정부의 재정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그들의 재정재원을 자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중앙정부에 크게 의존해오고 있다. 자치단체의 재정자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첫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2로 중앙에 편재돼 있고, 둘째, 지방재정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인 지방교부세율을 계속 19.24%로 묶어놓고 있으며, 셋째, 수도권의 경제력 집중이 심하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 2021년에 재정자립도가 50%를 넘는 자치단체는 서울본청이 80.6%이고 세종시가 64.0%, 경기도 63.7%, 인천 56.1%, 울산 54.4로서 수도권 지역의 자치단체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결국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대도시만이 풍부한 경제력을 뒷받침으로 해 그나마 높은 재정자립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기타 지역들은 중앙정부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따라서 진정한 자치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지역간 경제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보다 근본적이고도 과감한 대책(수도권 집중 억제 및 분산정책)이 필요하며, 국세 중 상당 부분을 지방정부에 이양할 필요가 있고, 현행 지방교부세율 19.24%를 25% 또는 그 이상의 수준으로 높이도록 해야 하며, 지역개발과 공업분산화 정책을 위한 지방세 감면제도를 국세에서 감면해주는 제도로 바꿔야 할 것이다. 정재철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철 칼럼] 文정부, 재정 씀씀이 나쁜 선례 남겨

문재인 정부의 지난 5년간 재정상황을 보면 예산규모는 407조원에서 무려 50%가 증가한 604조로 늘었고 국가부채는 1천433조원에서 53%가 증가한 총 2천200조원에 달해 엄청난 재정팽창을 보였다. 이러한 엄청난 재정지출의 증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상시국에서 불가피했다’고 하는 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친 재정의 확대와 적자재정 누적은 국민부담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물가 상승의 주범이라는 점에서 극도로 자제되고 경계됐어야 함에도 지나치게 방만하게 운영된 감이 들어 매우 안타깝다. 재정지출 재원은 엄연히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혈세를 통해 조달되는 것이므로 절대로 낭비적으로 쓰여져도 안되고 반드시 효율적으로 쓰여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재정 씀씀이를 몇가지 사례를 통해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을 볼 수 있어 씁쓸하다. 첫째, 제1차 재난지원금을 소득에 관계없이 1인당 무조건 25만원씩 지급한 것이라든지 자영업자 손실보상금(2차)을 모두에게 300만원씩 지급한 것은 형평의 차원에서 보면 잘못된 조치였다. 코로나 사태하에서 소득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거나 소득이 증가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25만원을 줄 필요는 없었다. 같은 논리로 자영업자 손실보상금도 모두에게 똑같이 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돈 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예산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둘째,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보상금 지원은 더욱 가관이다. 고무줄 보상이라고 하면 딱 맞을 것 같다. 코로나로 사망한 장례지원금은 최초에는 1천만원을 지급하다가 최근에는 300만원으로 낮아졌다고 한다. 얼마의 인원이 코로나로 죽을지 예상을 할 수 없었으니 정확한 예산 책정이 어려울 수 있었겠지만 그렇더라도 1천만원과 300만원은 너무나 차이가 크다. 도대체 어떤 원칙과 기준에서 책정된 금액인지 의아하다.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지원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에 걸린 2인(부부)의 경우에는 무려 137만원이 지급됐는데 올해 3월16일 이전에 걸린 2인의 경우에는 41만3천원, 3월16일 이후에 걸린 2인은 15만원이 지급된다고 한다.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주먹구구식 대처나 다름없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셋째, 재정투융자의 경우에는 철저한 편익 비용분석이 필수적이건만 이를 무시하고 재정을 집행하는 것은 효율성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경제적 타당성을 무시하면 비효율적이거나 낭비적일 수가 있다. 그런데 부산 가덕도공항건은 이미 사업타당성 검토를 통해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됐음에도 정치적으로 이를 뒤집었으며 예비타당성 검토를 거치지 않고 지역균형발전 또는 다른 명분으로 추진된 사업이 총 100조원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는 경제적 효율을 무시한 편법적인 지출로 정상적이지 않다. 재원은 한정돼 있는 만큼 우선순위를 정해 효율적인 사업에 지출되는 것이 필수적인데 편법에 의한 지출은 낭비를 야기함은 물론 결국 국민들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안긴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넷째, 공무원수를 13만명이나 늘린 것은 경제상황을 도외시한 무모한 짓이었다. IT부문의 발달로 정부도 인력확충이 필요없음에도 고용창출을 내세워 공무원을 대폭 늘린 것은 전혀 잘못된 처사다. 치열한 국제경쟁 사회에서 민간부문만 경쟁력을 필요로 하는게 아니라 정부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정부가 경쟁력이 없으면 결국 민간부문의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결국 재정이 낭비적이거나 비효율적이면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극도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재정지출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행태는 더이상 반복되거나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새 정부는 이 점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전 정부의 전철을 다시 밟아서는 안된다. 정재철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철칼럼] 지난 46년간 소비자물가 韓 10.8배, 日 1.8배 올라

지난 46년간 우리와 일본의 물가상승 추이를 비교해보니 우리의 물가가 너무 올라 물가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우리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5천달러에 달해 일본의 4만달러에 육박해 우리가 놀랄만큼 성장해왔다. 즉 1975년에 우리의 1인당 GDP는 646달러였는데 일본은 4천600달러여서 일본이 우리의 7배에 달했는데 현재는 거의 비슷한 수준에 달했으니 우리의 성장이 월등했음을 볼 수 있어 우쭐한만도 하다. 다시 말해 우리의 현재 1인당 GDP는 1975년에 비해 54배가 늘었는데 일본의 1인당 GDP는 8.8배만큼만 늘었다. 이런 수치만 보면 우리의 국민후생이 엄청나게 향상됐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간 중 양국의 소비자물가 상승추이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음을 알 수가 있다. 즉 이 기간중 우리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무려 10.8배인데 일본의 그것은 1.8배에 그쳤다는 것이다. 즉 일본의 물가는 우리에 비해 극도로 안정됐다는 점이다. 거의 반세기동안에 일본의 물가는 배도 안되는 수준으로 올랐다니 상상이 안될 정도다. 필자는 1975년에 일본에 체재했는데 점심 한끼를 450엔 정도로 해결하곤 했다. 그런데 2년 전에 일본에 가서 점심 한끼를 1천엔 정도로 해결할 수가 있어 놀라웠다. 또 놀란 것은 1975년에 통용되던 1엔, 2엔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으니 물가가 얼마나 안정돼 있는지를 실감할 수가 있었다. 이에 반해 우리의 물가는 상대적으로 너무나 올라 경제가 크게 성장했으나 국민들의 후생은 그만큼 좋아지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1970년에 비해 현재의 주요 물가를 비교해보면 시내버스 요금은 120배(10원에서 1천200원), 자장면은 50배(100원에서 5천원), 쌀은 33배(40㎏ 2천880원에서 9만6천200원) 올랐다. 최근에는 10원짜리가 아예 쓸모가 없이 사라졌고 100원짜리도 거의 쓸데가 없어졌으며 최근의 물가상승 추세로 보아 500원짜리도 곧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즉 물가가 너무 올라 화폐가치가 크게 떨어졌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는 물가가 어떻게 그렇게 안정될 수 있었는가? 첫째는 환율의 지속적인 절상이 한몫을 했다. 일본은 지속적인 국제경쟁력 강화에 힘입어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계속 누적되자 미국이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 일본엔화의 절상을 요구한 것이 수입물가 안정을 통한 국내물가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즉 일본엔화의 대미달러 추이를 보면 과거 1달러에 360엔 하던 대미환율이 현재 1달러에 118엔을 기록하고 있어 일본의 수입물가 안정에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국내자원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엔화의 지속적인 절상은 일본국내의 물가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둘째 일본의 노사관계의 안정이 물가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일본은 노사관계가 매우 안정되어 있어 매년 임금인상이 극히 낮은 수준에서 결정돼 임금이 물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도 물가안정 요인이다. 그런데 우리는 1973년에 1달러에 397원하던 것이 현재 1천240원으로 거의 3배가 절하됐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환율의 절하가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노조의 지속적이고도 과격한 임금인상 투쟁은 임금의 급격한 상승을 초래하고 여기에 정부의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더해져 물가상승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고도성장을 추구해오는 과정에서 수요초과 인플레 현상이 빚어진 것도 한 원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소득이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증가했으나 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비자물가는 너무 올라 우리 국민의 후생이 일본에 비해 소득이 는 만큼 좋아졌다고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최근의 소비자물가는 4% 상승에 달해 물가상승이 심각한 수준이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의 후생증진을 위해 물가안정 정책에 보다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 정재철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정재철칼럼] 급격한 인구 감소, 경제 위협 요소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중장기적인 요인들을 들라 하면 인구감소와 고령화를 들지 않을 수 없다.이미 우리 사회는4년 후면 고령자(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20%를 점하는 초고령사회가 된다.고령자 문제는 우리 경제에 큰 짐으로 중요한 경제 이슈지만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인구의 급격한 감소다. 생산의3요소란 토지노동자본으로, 인구는 바로 노동의 공급원으로 국민경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오늘날 세계경제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나라들이 바로 인구대국들이다.중국,미국,일본과 같은 인구대국들은 물론이고 독일8천400만,영국6천900만,프랑스6천600만 등 경제대국이 되려면 국토도 넓어야 하지만 인구가 어느정도 받쳐주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도 비록 국토는 작아도 인구가5천만 수준에 이른 것이 세계10대 경제 강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중요 요인이었다.우리는 경제개발 초기에는 급격한 인구증가가 생산보다는 소비주체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는 점에서 경제발전에 장애요인으로 지목, 산아제한에 열을 올렸다.그러나 경제규모가3만달러 수준에 달한 지금의 경제상황에서는 인구감소가 오히려 경제성장과 발전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결혼 건수의 추이를 보면2011년33만건에서2020년21만건으로 약36%감소했고,총 출생아수는2010년47만명에서2020년27만명으로43%가 감소했다.또한 이 기간 중초등학교 진학자 수만 보더라도65만명에서47만명으로28%가 감소했다.지금의 인구출산율이0.81에OECD꼴찌라니 그 도가 심하다.이런 추세대로 간다면 출생아수10만명도 멀지 않다고 한다.재정을 수백조원 들인 출산장려책의 결과가 이렇다니 더욱 놀랍다.통계청 전망에 따르면2070년에는 우리의 인구가3천700만명 수준이라 하니 장래가 심히 우려된다. 인구는 생산의 주체인 노동력의 공급원일 뿐 아니라 동시에 소비의 주체이고 병력자원이라는 점에서 경제 사회에 미치는 효과가 매우 중요하다.최근의 급격한 인구감소는 무엇보다도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고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것이 가장 커다란 원인이다.그런데 저성장의 원인이 주로 외생적인 요인이 아니라 내생적인 경제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즉 과도한 급격한 임금인상,지나친 친노동 정책,지나친 규제입법 남발은 경제의 활력을 잃게 한 중요 요인이다.저성장으로 일자리 얻기도 어렵고,좋은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주택정책 실패에 따른 주택가격 폭등마저 빚어져 장래가 불확실한 것이 결혼기피와 저출산의 가장 커다란 요인이라 생각된다. 이들 경제요인 외에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바뀐 것도 한 요인이다. 지인한테 들은 이야기지만 수 년 전 결혼한 자녀에게 아이 하나 낳으면 한 아이당5억원을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즉 돈 때문에 아이를 출산하지 않는 것만도 아니고 단순히 편하게 살고자 하는 심리도 강하다는 점이다. 또한 결혼기피 현상도 저출산의 중요 요인인데 요즘에는 생활도구가 매우 발달되고 먹거리도 쉽게 구할 수 있어 혼자서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점,선진문화의 유입과 더불어 성생활이 자유로워진 점,그리고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 취업기회가 늘고 남자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점,결혼한 후에도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면 쉽게 이혼으로 이어지는 점들도 결혼 기피요인으로 볼 수 있다.이들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저출산과 인구감소를 야기하고 있어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그러니 아이 하나 낳으면100만원을 준다느니 저렴한 임대주택을 준다는 등의 웬만한 유인책으로 인구를 늘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그렇다 하더라도 인구감소를 막는 최선의 방책은 시혜성 재정지원보다는 경제가 활력을 찾도록 해 지속적인 성장이 확보됨으로써 젊은이들의 장래가 확실하게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정재철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철칼럼] 2022 우리경제 심히 우려된다

새해 들어선지 한달이 지났다. 지난해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공급,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투입, 국내대기업들의 수출신장에 힘입어 4% 정도의 성장이 이루어졌다. 재작년 성장이 마이너스 1%였으므로 기저효과도 한몫 했다. 그러나 올해는 국내외적으로 여러 악재들이 도사리고 있어 경제 성장이 결코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사태도 오미크론의 창궐로 새로운 복병으로 등장해 우리들을 다시 위협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금년 우리경제에 어떤 난제들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물가문제가 심상치 않다. 올 1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비 3.6% 올랐으나 서민들의 체감물가와는 상당 동떨어져 있다. 설렁탕과 갈비탕, 자장면 등을 비롯해 각종 생필품 가격이 10% 이상 줄줄이 올랐다. 더욱이 그동안 미룬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이 대기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적 과잉 유동성에 따른 원자재 및 국제농산물가격 급등,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교란, 지난해 우리의 생산자물가가 6.4%나 오른점, 그리고 중국의 생산자물가도 9.7%나 올랐으므로 금년의 우리 물가는 심상치 않다. 둘째,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긴축정책으로의 방향전환이 필수인데 그에 따른 여파도 만만치 않다. 미국은 과거 소비자물가가 2%만 올라도 즉각 긴축적인 재정 금융정책을 실시해왔던 나라다. 그런데 지난해 소비자 물가가 7%나 올랐다. 이는 비상사태다. 결국 유동성 축소와 금리인상이 불가피해졌으며 금리는 연말 안에 1% 아니 그 이상까지 올릴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1.25%로 올렸으나 연말 안에 2%까지 올릴 가능성마저 있다. 이는 1천9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에 큰 부담을 안길 것이고 이는 소비지출 억제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예고에도 불구하고 이미 국내 주가지수는 전 고점인 3,300에서 2,600수준으로 크게 하락했다. 만일 미 금리 인상으로 해외자금이 빠져나가는 현상이라도 발생한다면 국내주식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이며 이 또한 국내경제에 침체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셋째,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값이 치솟음으로써 무역수지의 적자를 위협할 것으로 전망되는 점 또한 우려된다. 이미 지난 12월에 5억9천만 달러, 1월에는 49억 달러의 2개월 연속적자를 기록한 데다가 적자폭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만일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면 환율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어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환율은 10%에 가까운 절하로 1천200원대에 진입했는데 이 또한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넷째, 그동안 천정부지로 올랐던 부동산시장은 금리 인상과 대출억제를 통한 긴축기조의 정책전환과 과다한 각종 세금부담 등으로 위축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은 꺾일 수밖에 없는데 과연 어디까지 내려갈지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기 마련이어 그 충격도 걱정된다. 정부의 긴축정책이 부동산 가격을 연착륙시킨다면 다행이나 그렇지 못하고 경착륙으로 간다면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줄 수도 있다. 다섯째, 정부는 내년도 설비투자를 3% 증가로 전망하나 중대재해 처벌법 시행을 비롯해 고임금, 노동시간 억제, 강성노조 등 투자환경이 전혀 우호적이지 않아 목표달성이 의문시된다. 여섯째, 대통령선거전이 여야를 막론하고 오로지 정권욕에만 사로잡혀 포퓰리즘적인 공약을 남발하고 있는데 만일 그들 공약을 지키려 한다면 재정은 파탄나지 않을 수 없으며 물가를 잡기 위한 긴축도 효과를 발하지 못할 것이므로 경제는 극도의 위험에 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처한 이상의 제반 문제점들을 고려해볼 때 금년의 우리경제는 우울한 한해가 될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3%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는가 본데 그 달성이 쉽지않을 것으로 보여 보다 치밀하고 현명한 대처가 절실한 상황이다. 정재철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철 칼럼] 종부세는 ‘악세’, 폐지하는 것이 옳다

현행 종부세법은 부동산보유에 대한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의 가격안정을 도모한다고 명시됐다. 노무현정부 들어 만들어진 종부세법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긴커녕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집값이 폭등, 애꿎은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이 말살됨과 아울러 주택소유자들은 종부세 폭탄을 맞고 신음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집값 안정은 세제로 이룩하는 게 아니라 주택의 수요ㆍ공급 관련된 제반 정책, 이를테면 금융정책과 주택공급정책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엉뚱하게 조세정책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접근법이었다. 결국 종부세는 중산층에게 징벌적 세금폭탄만 안겨주고 세수확충의 기능만 충실히 해주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종부세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나. 첫째, 종부세가 부동산 가격의 안정을 도모해준다고 했는데 안정을 시키기는커녕 폭등에 폭등을 거듭해왔으니 종부세의 취지 자체가 사라졌다. 둘째, 종부세가 부담의 형평성을 기한다고 해놓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종부세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졌는데도 강남의 수십억 고가주택은 고령자이면서 장기보유자는 최근 종부세 부담이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이는 또 다른 형평성의 문제를 일으킨다. 셋째, 정부는 과중한 세금을 부담하기 싫거나 부담할 능력 없으면 팔고 이사 가라는 식인데 서울의 종부세 해당자 48만 세대가 한꺼번에 이사 갈 수도 없거니와 세금 중과로 주거지의 강제 이전을 유도한다는 것도 지극히 비윤리적이다. 더구나 집값이 다 올라서 팔고 이사하려 해도 장기보유자나 고령자가 아니면 팔아서 양도소득세 물고 나면 평수만 줄뿐 이득이 없으므로 이사도 갈 수 없고 앉아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세금만 물 수밖에 없다. 넷째, 정부의 정책 실패로 집값이 폭등했는데 갑작스레 생긴 미실현이득을 과표로 삼아 세 부담을 폭증시키는 것은 정상적인 과세로 보기 어렵다. 다섯째, 집을 늘리거나 좀 더 나은 환경의 집을 구하려는 서민들도 과중한 보유세 부담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들며 또한 신분상승의 기회마저 박탈하게 된다. 여섯째, 주택에 대한 중과세는 결국 그 부담을 전 월세입자들에 전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전세금이나 월세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무주택자들의 생활을 더욱 곤궁하게 만들 것이므로 이 또한 형평에도 어긋난다. 일곱째, 다주택자들에게 세금폭탄을 가한다면 결국에는 임대주택 공급이 줄어들어 임대료 인상을 가져다 줄 것이므로 이 또한 결국에는 서민인 임차인들만이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여덟째, 세금은 부담능력도 고려해야 하지만 지급능력도 고려해야 하며 예측성도 고려해야 한다. 집값을 갑자기 폭등시켜놓고 일시에 세금을 폭증시키면 별도의 소득이 없는 한 감당하기 어렵다. 아홉째, 세제는 단순하고 명료해야 하는데 하나의 과세물건에 재산세와 종부세를 이중적으로 부담시키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으며 세무행정의 복잡성을 야기할 뿐 아니라 납세자들에게도 세금 응대 비용 부담을 안겨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행 종부세는 취지를 살리지 못할 뿐 아니라 국민에게 희생과 부담만 안기는 악세다.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데다가 코로나19 사태로 경제 상황이 극도로 어려운 형편에 국민에게 세금부담을 폭증시키는 처사야말로 중산층은 물론 무주택자들까지 다 같이 곤궁하게 만드는 처사다. 따라서 징벌적 성격의 종부세를 폐지하고 재산세만으로 적정한 세율로 종합 누진 과세하는 제도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재철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철 칼럼] 경제심리 도외시한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

인간은 사회적 동물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동물이다. 인간의 일상생활은 바로 경제활동이고 하루, 아니 한시도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즉 인간은 살아감에 있어 재화를 획득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고 그들 재화를 획득하고 소비하기 위해선 반드시 경제활동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생산활동과 소비활동을 함에 있어서 심리적인 요소가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우리는 경제생활에 있어 소비심리, 투자심리, 투기심리라는 용어를 자주 쓰는데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않는다든지, 투자심리가 살아나지 않는다든지 또는 얼어붙었다든지, 또는 부동산 투기심리가 팽배하고 있다든지 하는 말을 자주 쓴다. 즉 인간의 각종 경제활동은 심리를 통해 표출되기 때문에 경제와 심리 간에는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경제를 운영하거나 경제정책을 실행함에는 절대로 생산자들이나 소비자들의 심리적인 요인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거 정책결정을 함에 있어 이러한 심리적인 요인들을 간과해 정책이 실패한 예들을 살펴보자. 노태우 정권이 서해안 개발을 하겠다고 선언하자마자 부동산투기를 불러일으켜 서해안 일대의 땅값이 마구 오르더니 마침 88올림픽의 개최와 맞물려 부동산 투기의 광풍이 불어 서울과 수도권의 땅과 집값이 폭등했다. 이와 똑같은 현상이 노무현 정부에서도 발생했다. 노무현 정부는 행정수도 이전과 혁신도시개발, 국영기업들의 지방이전, 관광레저단지 조성 등 각종 국토개발정책을 쏟아내자 투기적인 바람을 불러 일으켜 전국의 부동산가격이 치솟았다. 만일 투기적 심리 요인을 고려했더라면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투기적인 심리를 차단하기 위한 근본대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더군다나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지 않고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꺼리는 것도 심리적인 요인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중소기업이 좀 될만하면 대기업이 뛰어들어 중소기업을 고사시키든가 흡수해버리는 풍토가 자리 잡는다면 중소기업을 할 의욕을 꺾어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기도 한다. 강성노조가 기승을 부려도 사업의욕과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 정부가 투자를 적극 장려하고 기업하기 좋은 풍토를 조성하고 노사가 협력하는 풍토를 조성해주는 일이야말로 투자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최저임금을 단기에 무리하게 인상한다거나 노동시간을 지나치게 축소시키는 일은 당연히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것이고 나아가 성장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임이 분명하다. 소비심리도 마찬가지다. 투자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늘어나고 고용이 안정돼야 사람들이 지갑을 열 것이지만 투자가 늘지 않고 구조조정마저 일어나는 불안정한 고용환경 속에서는 소비심리가 위축돼 소비의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노사가 화합해 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고용이 안정되는 풍토가 조성돼야 소비가 늘 수 있다. 소비도 성장의 한 축이므로 소비심리도 경제에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경제정책 결정에 중요시해야 할 요인이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자 금리를 초저금리로 인하한 것은 수긍이 가나 부동산 대출금리마저 초저금리로 인하한 것은 부동산투기를 부추긴 정책 실패다. 왜냐하면 돈도 엄청나게 푼데다가 마땅한 투자처도 없는 터에 금리마저 종전에 보지 못한 초저금리니 부동산투자 내지 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임대차 3법도 심리를 무시하긴 마찬가지다. 전세금을 못 올리면 월세로 전환하거나 반전세로 전환하려 함은 뻔한 이치다. 또한 부동산투기를 막고 주택가격안정을 기하고자 다주택자들에게 징벌적 종부세를 부과하고 양도소득세를 중과하여 주택매각을 촉진하려 하나 다주택자들은 주택을 매도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유는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뀔 것을 기대하는 심리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경제심리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결정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실패하기 십상이다. 정재철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정재철칼럼] 서울집값 폭등과 신도시 개발의 악순환

필자는 1984년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수도권 인구집중의 문제가 심각함을 지적하고 그 원인이 정부활동 및 국가재정과 관련이 있음을 밝히며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정부는 실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은 물론 오히려 격차를 벌여왔다. 즉 1984년에 수도권의 인구 비율은 38.4%였는데 2020년에는 전체인구의 1/2이 넘는 50.1%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 서울의 인구밀도는 무려 1만5천865명으로 도쿄의 3배, 뉴욕의 8배에 달해 인구 밀집이 지나침을 실감할 수가 있다. 또한 수도권의 면적은 전국토의 12%에 불과한데 총인구의 1/2이 모여 살고 있으니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2020년의 수도권인구가 1984년에 비해 1천만명 는 사이에 전남의 인구는 200만명, 충남 80만명, 전북 46만명, 경북 40만명씩 각각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는데 이들 지역에서 빠져나온 인구만도 380만명에 달해 결국 이들이 수도권으로 몰려들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1988년에 집권한 노태우 정부는 서해안 개발을 선언하자 서해안 지역의 부동산값이 뛰기 시작, 서울의 집값까지 폭등해 사회문제로 비화했다. 정부는 부랴부랴 부동산가격 안정화 정책으로 수도권의 일산, 안산, 분당지역에 신도시를 건설 200만호를 공급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수도권에 이러한 대량의 주택공급은 엄청난 일자리와 소득창출을 야기함으로써 수도권 인구집중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는 노태우정권 5년 동안에 수도권 인구가 무려 220만명이나 증가했다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2003년에 집권한 노무현정부는 지역격차의 심각성과 수도권인구 집중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극약처방으로 세종시에 행정수도를 신설, 정부기관들을 이전시킴과 아울러 국영기업체들을 전면적으로 지방으로 이전시키는 과감한 조치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구 분산정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값을 폭등시켰고 폭등한 부동산값의 안정책으로 성남, 김포, 화성, 파주, 검단 등 10곳에 2기 신도시를 건설함으로써 실질적 분산효과를 기하지 못했다. 서울의 인구는 2003년에 1천4만명에서 2020년에 960만명으로 약 40만명이 줄었으나 오히려 수도권 인구는 2천270만명에서 2천600만명으로 330만명이나 증가(2.6%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지나친 저금리정책과 주택공급 소홀로 서울의 집값이 폭등하자 전가의 보도처럼 3기 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역대 정부는 번번이 정책실패로 부동산값을 폭등시키고 그 안정책으로 수도권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악순환정책을 판박이로 시행, 인구를 분산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수도권에 인구를 집중시키는 우를 빚고 있다.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면 주택, 환경, 도로, 교통, 교육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하게 되며 그들을 해결하려면 결국 더 많은 재정투자와 사회적 비용이 소요되며 그들 투자가 이루어지면 일자리와 소득이 생겨나 다시 인구가 유입되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결국 수도권의 인구집중을 막고 인구분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인구 50만 정도의 자족적인 도시들을 다수 건설해 인구를 흡수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지금처럼 수도권에 지속적으로 신도시를 건설하고 환경과 교통수단을 개선해주는 등의 조치를 계속 실시하는 한 수도권은 더욱 과밀해지고 사회적 비용은 가중되고 지역주민들의 생활은 더욱 궁핍해질 것이다. 수도권의 인구과밀은 정치집단도 비대시키기 마련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자기들의 지역에 더 많은 재정투자를 배분하려 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수도권의 집중문제는 물론 지역격차도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생산의 주체인 기업들도 인구가 과밀한 지역이 주 소비지역이므로 수도권에 위치하려고 하는 욕구를 갖는다. 게다가 사회적 인프라를 잘 갖추어 놓으면 사람들은 더더욱 수도권을 선호할 것이다. 진정으로 수도권 인구집중을 막고 주민들의 후생을 증대시키려면 근본적이고도 과감한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재철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정재철 칼럼] 곳간에 곡식을 쌓아두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과 답변

얼마 전 국회에서 고민정 의원의 곳간에 곡식을 쌓아두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홍남기 부총리는 곳간이 비어간다고 했다가 금방 재정이 탄탄하다고 말을 뒤집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국가빚이 1천조원에 이르고 준공공기관의 빚도 550조원 이상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 두 개만 합쳐도 거의 우리의 1년치 국내총생산액(GDP)수준이다. 이런 판에 곳간에 쌓아둔 곡식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지 어안이 벙벙하다. 재정이 탄탄하다는 말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올해 1/4분기 나라빚 상황을 보면 가계빚이 1천765조원, 기업빚이 2천461조원, 국가빚이 860조원으로 총계가 5천86조원에 달한다. 이는 우리 GDP의 약 3배에 달하는 것으로 다 갚으려면 3년 동안 생산한 금액을 한푼도 안써야 할 만큼 엄청난 금액이다. 코로나 팬데믹이라고 하는 비상사태로 5차에 걸쳐 48조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따른 시혜성 고용창출정책의 영향도 컸다고는 하지만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는 408조원이 늘어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에서 늘어난 총 350조원을 58조원이나 초과하고 있다. 올해 태어날 신생아는 18년 후 1인당 1억원 넘는 국가빚을 떠안게 된다고 하니 앞으로 나라빚 관리가 큰 걱정거리다. 예산 규모는 문재인 정부 출범시 407조원에서 5년만인 내년에는 50%가 늘어난 604조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코로나로 인한 재난지원금도 예산 팽창의 큰 요인이었으나 저성장 늪에 빠진 경제에도 불구하고 정부예산만은 대폭 증가해 비싸게 먹히는 정부로 내달리고 있어 문제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한 엄청난 생산성 향상으로 정부인력을 늘릴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워 지난 4년 동안 공무원을 10만명 늘림으로써 비싸게 먹히는 정부를 자초하고 있다. 이는 당장의 인건비 부담 증가도 문제지만 앞으로 공무원연금 부담을 늘린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공적연금 재정은 이미 펑크가 나 내년에 공무원과 군인 연금재원 충당을 위해 총 8조원(공무언 5조, 군인 3조)을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형편이다. 여기에 사학연금도 2년 뒤 적자로 예상돼 이 역시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형편이다. 또한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부담도 16조원에 달하리라 한다. 8대 사회보험에 대한 국가지원금도 근 2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폭증하는 재정부담과 국가부채를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국가부채의 대 GDP 비율이 50% 정도라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양호한 편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하나 문제는 우리 경제가 당면한 여건을 고려해 보면 결코 낙관할 수 없다. 첫째, 빚이 늘어나도 경제성장 잠재력이 크다거나 경제성장률이 높다면 덜 문제겠으나 초저출산(합계출산률 0.84)에다 고령화사회(총인구의 19.3%) 진입, 기업활동에 대한 넘치는 각종 규제 등으로 성장잠재력이 크게 낮아진 데다가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라 재정이나 경제력에 적신호가 켜지면 선진국 자본의 급속한 이탈을 불러와 경제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코로나 여파로 우리를 포함한 세계가 유동성을 너무 늘려 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는 것도 문제고 특히 우리의 부동산버블이 하늘을 찌를 정도인 점은 크게 우려된다. 만일 부동산버블이 꺼지기라도 한다면 우리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넷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모든 후보들이 엄청난 재정부담을 안길 포퓰리즘적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데 가뜩이나 재정이 어려운 판에 이는 설상가상격이어서 심히 우려된다. 자유당정권 때는 고무신 1켤레에 한 표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지금은 몇천만 원 내지는 1억원까지, 그것도 자기 돈이 아니라 나랏돈으로 주겠다고 하니 만일 이를 시행한다면 재정만이 아니라 경제가 파탄나고야 말 것이다. 재정은 정부가 생산해 얻은 것이 아니라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다. 정부는 소비의 주체이지 생산의 주체가 아니다. 생산이 부진한데 소비만 늘린다면 곳간은 거덜나게 마련이다. 국민경제와 재정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므로 재정은 현명하게 관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재철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정재철 칼럼] 장년노조가 변해야 하는 이유

노조활동이 자유로워진 지도 어언 35년이나 됐다. 나이로 따지면 청년기를 지나 장년기에 들어섰고 머지않아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게 된다. 노조도 나이를 먹고 성숙해지면 체면도 차리고 남도 배려할 줄 아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기업 노조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노조가 허용되면서 근로자들은 개개인이 기업가와 1대 1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가 기업가와 1대 1로 상대하게 됨으로써 사측과 대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근로자들의 권익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다른 한편으로 대기업 노조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극단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는 파업을 매년 연례행사처럼 벌임으로써 우리의 사회 경제에 많은 희생과 수업료를 지불하도록 했다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대기업 노조는 극도의 이기주의에 빠져 파업이라는 무기를 최대한 활용, 사측은 노사간의 협상에서 100전 100패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여북하면 그들 대기업 노조들을 일컬어 귀족노조니 황제노조라고 하는 말까지 붙여지고 있는 데다가 각종 비위와 부조리까지 저지르고 있어 질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시 가장 커다란 희생을 당한 기업들은 바로 이들 대기업이었다. 파산이라는 회오리바람 속에서 엄청난 구조조정을 당한 기업들이 특히 이들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들과 연관된 많은 중소기업도 따라서 피해를 입었다. 그 후유증으로 우리 경제는 아직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대기업 노조는 여전히 변함없이 이익 극대화에 몰입하고 있다는 감이 들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제 장년기에 들어선 노조가 변하지 않고는 한국경제의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폐쇄된 경제사회에서는 노조가 자기들의 이익만을 챙기고자 극단적인 행동도 불사할 수 있지만 세계화 시대라고 하는 무한경쟁시대에는 그렇게 해서 이익을 챙길 수 없다. 그렇게 하다간 경쟁에서 낙오되기 십상이다. 극단적인 노동운동이 외환위기의 단초를 제공했음은 물론 뼈아픈 엄청난 구조조정을 당하는 계기가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경쟁상대인 미국이나 일본의 노조활동이 유연해진 지 이미 오래며 중국은 노조활동이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오늘날 특히 독과점적인 대기업들은 생산의 우회도가 크기 때문에 노조의 파업이나 임금인상이 자기들 기업의 경영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고 수백개의 관련기업들에게 직접 및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결코 자기이익만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딸린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이 확보돼야 자기들의 경쟁력도 커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결코 독불장군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대기업 노조들은 관련 중소기업들의 처지도 배려해 상생의 길을 걷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 중소기업들의 죽음 위에 대기업들만이 존립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가 너무 커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넷째, 우리의 임금수준이나 근로조건은 과거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개선됐다. 주 2일 휴무제, 주 52시간 근무제에다 의료보험, 실업보상제도, 국민연금 등 각종사회보장도 과거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이런 제도들이 확립되지 않았을 때의 노조와 현재의 노조는 분명 달라져야 마땅하다. 자동차회사의 생산직 연봉이 1억원이라는데 28년을 유지해온 한 부품회사의 대표는 더 이상 견디다 못해 회사를 운영할 수 없다면서 매각하려 해도 원매자가 없다고 푸념하는 것을 듣고는 마음이 씁쓸했다. 정녕 우리의 대기업 노조는 변할 수 없는 것일까? 정재철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