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의정 이집의 아들로 태어난 이주진은 조선후기 병조판서, 예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22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합격했으며 검열, 대교, 봉교 등을 역임했는데 대교로 재임하던 당시 궁핍한 백성들의 생활을 개선하고자 경천, 휼민, 전학, 납간, 임현, 진강 등 6개조를 들어 상소했다. 이어 전라감사, 한성부우윤 등을 거쳐 대사헌, 예조참판 등 요직에 올랐다. 그는 1746년 54세의 나이에 경기도관찰사로 부임하며 도와 인연을 맺었다. 비용을 절감해 국력과 도의 내실 다지기에 충실했고 불편부당의 자세로 소신껏 진언해 충정(忠靖)이라는 시호를 얻었다. 이 같은 그의 족적은 영조실록, 국조방목, 보만재집, 청선고 등에 남겨져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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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19-04-22 2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