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식민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영국의 인식

콜럼버스가 쏘아 올린 신대륙 발견이라는 작은 공이 현대 인류와 역사에까지 연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평소에 인식하고 있을까. 유럽인들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면서 16세기부터 시작된 식민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과거에 머물러 있는 역사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현대인으로서, 특히 한국인으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앞서 언급한 콜럼버스의 신항로 개척은 스페인을 시작으로 17세기 영국과 프랑스까지 식민화를 본격적으로 개시할 수 있도록 초석을 깔아준 역사적 사건이다.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 북아메리카 지역을 정복한 것에 잇따라, 특히 1780년대에는 영국인이 인도 전체를 식민지화해 유럽의 산업혁명을 발전시켰다. 이렇게 식민화를 통해 강대국으로 성장하던 영국은 19세기에 빠른 속도로 아프리카 지역까지 식민지화해 신제국주의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이룬 당시 영국은 런던 항구에 전 세계의 물자를 가득 채운 선박과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에서 팔려온 노예들이 상품처럼 줄을 이었고 세계에는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사상이 만연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서구식 근대화를 이루고 있던 일본은 이를 선망해 영국처럼 제국주의를 토대로 동아시아의 나라들을 닥치는 대로 정복하며 ‘동양의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꿈을 이루고 싶어 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세계는 지배 국가들의 속국 투성이었다. 이러한 인류의 식민주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고 1900년대 중반까지도 끝까지 식민지를 내놓지 않으려 했던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나라로 인해 장기간의 식민지 해방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인류의 끔찍한 역사의 잔재는 지금도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표면적으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직까지 뿌리 깊이 존재하는 인종차별주의와 외국인 차별 같은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해방 이후로도 가난함을 벗어나기 힘들어 아무리 노력해 봤자 현실적으로 국가의 독립성을 여전히 얻기 힘든 전 식민지 국가들이다. 오히려 식민지 해방 이후 과거 제국주의로 빠른 경제적 성장을 이룬 나라들과 제3세계 국가 간의 빈부 격차가 더 심해졌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며 전 식민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문화적, 경제적 성장을 달성했지만 언어 습관에서 여전히 일제의 잔재를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 같은 현재 인류세의 가장 큰 전 지구적 문제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나라들은 대부분이 식민지 개척자들이지만 이의 후폭풍은 제3세계 나라들이 그대로 직면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환경에도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람들의 보통 현재 세계에 대한 인식과 역사, 학문까지도 유럽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러한 제국주의의 잔재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현대 영국의 인식은 각양각색인데, 하나는 ‘좋았던 날’을 회상하며 과거를 찬미하는 시각과 또 하나는 과거의 잘못을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의 시각이다. 영국의 현대 교육은 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세계의 많은 이슈를 파보면 파볼수록 제국주의의 영향이 뿌리 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실제로 다양한 과목에서 이러한 교육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나는 과거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학생으로서 이러한 영국의 고등교육을 경험해 나가는 과정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의 폭이 넓혀짐을 느꼈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학살과 피로 얼룩진 시신들을 밟고 높게 서 있는 과거 지배자들인 ‘선진 국가’들을 향한 동경과 유럽 중심적 세뇌를 멈추고 진정으로 제국주의의 잔재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것일까. 이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식민주의가 이미 끝난 머나먼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가 현대 사회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는 지금] 게임 강국을 꿈꾸는 사우디아라비아

올해 9월에 열리는 항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최초로 채택​됐다. e스포츠는 일반적인 스포츠와 달리 육체적인 능력보다는 정신적인 능력을 위주로 펼쳐 나가기 때문에 정신스포츠(멘털스포츠)로 분류되며 컴퓨터·비디오 게임을 통해 경쟁하는 스포츠 개념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게임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프로게이머가 등장하면서 이전에는 게임을 단순 오락으로 치부하며 부정적이던 사회적 인식이 점차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오늘날 게임 분야는 유망한 신산업 중 하나로 e스포츠라는 장르가 탄생하게 됐다. e스포츠는 비디오 게임을 통해 이뤄지는 스포츠를 일컫는 말이다. e스포츠(전자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의 정의에 의하면 ‘게임물을 매개(媒介)로 하여 사람과 사람 간에 기록 또는 승부를 겨루는 경기 및 부대활동’을 말한다. e스포츠 산업은 2016년부터 매년 꾸준히 팬 층이 증가하며 그 열기가 나날이 뜨거워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e스포츠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며 향후 게임 강국을 꿈꾸는 나라가 있는데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다. ​◆ 사우디 국부펀드(PIF)의 e스포츠 투자 지난해 1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는 산하에 사비게임스그룹(이하 사비)을 신설, 독일 e스포츠 제작 회사인 ESL게이밍과 영국의 e스포츠 플랫폼인 FACEIT를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게임 산업에 뛰어들었다. PIF는 일본의 캡콤과 넥슨의 지분을 인수하고 미국의 게임 회사 세 곳(일렉트로닉아츠, 테이크투인터랙티브소프트웨어, 액티비전블리자드)의 지분도 보유하게 됐다. 사비는 앞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250개의 게임 회사를 설립하고 3만9천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또 사비는 이를 통해 자국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기여도를 500억리얄(약 19조원)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사우디 e스포츠 시장에 대한 전망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우디 e스포츠 시장은 2021년에 10억달러에 달했고 2030년까지 68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 지역에서 가장 큰 시장을 보유한 사우디는 걸프만의 게임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물론 사우디가 넘어야 할 몇 가지 산이 있기도 하다. 다른 국제 시장에 비해 아직은 사우디의 게임 산업이 초기 개발 단계에 놓였기 때문에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고 사우디 내에서는 게이머가 프로게이머로 성장하기 위한 뚜렷한 경로가 아직 없으므로 게이머가 경력을 쌓을 수 있고 공정한 경쟁이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디가 가진 잠재력은 막강하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이집트는 2021년에 게임 산업을 통해 각각 5억2천만달러, 1억7천200만달러의 수익을 달성하며 사우디 다음으로 활발하게 게임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데 현재 시장 규모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압도적이다. 세 국가의 시장 규모에서 사우디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8.7%에 달한다. 게이머 수는 이집트가 58.2%의 비중을 차지하며 사우디보다 많지만 현재 사우디 국부펀드 PIF가 게임 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사우디의 시장경쟁력은 중동 지역에서 1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젊은 연령의 인구가 많고 직업에 대한 수요가 막대한 국가다. 그렇기에 다양한 문화적·산업적 접근을 요하며 이제는 대한민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할 때다.

[세계는 지금] 중동 메가이벤트 사각지대, 인권을 생각하다

지난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의 짧은 방한과 대한민국 8대 대기업 총수와의 만남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과 긴 여운을 남겼다. 사우디아라비아의 38세 젊은 개혁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메가 이벤트 ‘네옴시티’ 프로젝트는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사업이 됐다. 100% 신재생에너지로 운영되는 친환경 도시 ‘더라인’은 사막 한가운데 미래 도시 건설이라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의 이미지로 많은 한국 기업들을 ‘제2의 중동붐’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에 들뜨게 만들었다. 때맞춰 월드컵 사상 최초로 중동에서 개최된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전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 3위, 원유 매장량 14위의 에너지 부국 카타르의 국가 이미지 제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경제 메가 이벤트 추진과 더불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는 국제 스포츠 메가 이벤트 유치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29년 동계아시아경기를 유치했고 2030년 월드컵 유치전에도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오는 7월 개막하는 2023년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 ‘Visit Saudi’라는 브랜드를 통해 아디다스, 코카콜라 등과 함께 후원사로 참여한다고 국제축구연맹(FIFA)이 발표했다. 2022년에는 천문학적 돈으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상금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신생 골프리그 LIV투어를 출범시키면서 골프계를 흔들었고 세계적 축구선수 호날두를 사우디 알나스르팀에 영입함으로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중동 산유국에 대한 소식은 한국 기업뿐 아니라 전 세계 기업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PIF), 신재생에너지의 가능성, 정보기술(IT)과 게임산업에 대한 전망, 문화산업과 관광산업 육성 등 사우디아라비아가 내놓는 정책 하나하나에 관련 업계가 귀를 기울이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중동 국가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진출 러시는 이미 시작됐다. 마치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골드러시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는 법,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의 메가 이벤트 추진의 화려한 이면에는 인권이라는 어두운 그늘이 자리 잡고 있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 유치를 통한 ‘스포츠 워싱’에 대한 비판이 있고 카타르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인권 탄압과 성소수자 문제 등이 심각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운전 허용, 마흐람(남성 후견인) 제도 폐지와 공공 장소에서 남성과 여성 성별 분리 제한 완화 등의 파격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 내부의 인권 현실은 여전히 척박한 상황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불관용,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는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변하지 않는 한, 이들 국가가 보여주고 있는 ‘개혁’과 ‘긍정적 변화’는 공허한 울림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어두운 현실인 것이다.

[세계는 지금] 떠오르는 IT 시장 ‘중동’

중동이 중요한 정보기술(IT) 시장이자 허브로 부상하고 있는 배경에는 중동의 평균 연령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25세 이하이며 대다수 인구가 신기술과 스마트 기기 사용에 적극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중동의 젊은 인구는 IT 산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 전체 인구의 87%가 유튜브를, 81%는 페이스북을 사용 중이며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왓츠앱(87%), 인스타그램(78%), 트위터(71%)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이용률이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작년 중동 국가의 IT 관련 예산 규모는 총 133억달러였고 2021년 대비 IT 서비스(9.6%)와 소프트웨어(8.0%) 부문에서 예산이 증가했다. 중동은 국가 차원에서 교육, 물류, 헬스케어, 공공 영역 등 사실상 분야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 중이기 때문에 향후 IT 분야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중동에서는 IT 산업과 관련된 국제 전시회 및 포럼을 매년 개최하고 있는데 국제 전시 등을 통해 IT 관련 최신 기술을 소개하고 자국의 IT 산업을 홍보하고자 한다. 대표적으로 아랍에미리트(GITEX), 사우디(LEAP, BIBAN), 이집트(Cairo ICT), 터키(Mobile Fest)가 있다. 중동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을 견인하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IT 및 통신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우디 통신정보기술부는 향후 2만5천개의 ICT 관련 직업을 창출하고 IT 기술 시장의 크기를 50% 증대시키기 위해 기술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2019~2023년 ICT 전략을 도입한 바 있다. 지난해 사우디의 ICT 시장 규모는 334억3천만달러였고 올해에는 5.6%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전 2030과 네옴시티 등 정부 주도의 거대 프로젝트는 모두 ICT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앞으로 이 시장의 발전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도 사우디 정부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국가 순위 15위 진입을 목표로 데이터·AI 국가 전략을 수립했고, 전략의 일환으로 글로벌 기업과의 기술협력 및 정부 투자 확대를 추진 중이다. 사우디의 네옴시티 건설이 대표적인 AI 기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네옴 프로젝트는 서울의 44배 면적에 AI 및 IT 첨단기술을 포함해 5천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투입해 세계 최대의 인공 스마트 시티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랍에미리트의 경우 2017년 ‘UAE AI 전략 2031’을 발표한 이래 다양한 산업에 AI 기술을 도입해 비용을 최대 50% 절감하고자 관련 법을 제정하고 AI 기업을 유치·육성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 중이다. 아랍에미리트는 AI 기술이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약 14%(960억달러)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이미 교육, 의료, 우주, 운송 및 항공 산업에 AI 기술을 활발하게 적용하고 있다. 특히 AI 기술을 활용해 2030년까지 전체 차량의 25%를 자율주행차량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현재 실행 중이다.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두바이 인터넷 시티(1999년), 두바이 실리콘 오아시스(2005년) 자유무역지대를 설립해 ICT 산업을 전문으로 하는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산업 클러스터를 통해 강화되고 있는 IT 분야는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로 2026년까지 최대 10억달러의 추가 투자가 이뤄질 예정이다. 또 아랍에미리트는 에너지, 석유 및 가스, 항공 산업에 있어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만큼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산업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사이버 보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중동 주요국에서 IT 기술이 적용되고 확장되고 있는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제2의 중동 붐이 일어 의미있는 협업의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란다.

[세계는 지금]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피해와 긴급구호사업

튀르키예와 시리아 대지진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양국의 사망자 수가 13일 기준으로 3만명에 달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 사망자가 10만명을 넘길 확률이 26%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진 직후 0%에서 전망치가 계속 오르는 있는 상황이다. 월드비전은 지진이 발생한 당일, 카테고리 III 대응을 선포하고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긴급 구호활동을 시작했다. 카테고리 III는 월드비전의 가장 높은 재난대응 단계로 전 세계 월드비전 파트너십이 이번 재난에 공동 대응해 전체 이재민 인구 중 10% 지원을 목표로 구호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초기 긴급구호 단계로 인명 피해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임시거주시설, 식량, 의약품, 난방용품 등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구호사업 상황을 보면 튀르키예는 각국 정부와 비정부기구(NGO) 단체 등의 지원이 정부 통제하에 진행되고 있지만 시리아의 상황은 이와는 다르다. 시리아는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알 아샤드 정권과 반군 간의 내전이 12년간 진행 중인 국가다. 오랜 내전으로 인해 약 680만명이나 되는 난민이 발생했으며 반군이 장악한 시리아 북서부 지역은 지진 발생 전부터 이미 기초보건 및 의료 서비스가 붕괴된 상태였다. 시리아 전체 인구의 67%가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할 정도로 매우 열악한 국가적 상황 속에서 이번 지진 피해를 입게 됐다. 시리아 정부는 지진 발생 후 “시리아에 대한 구호는 시리아 정부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발표한 후 반군 피해 지역으로의 인도적 구호 물자 이동을 정부가 통제하고 있다. 지진이 발생한 지 3일이 지난 후에야 인도적 지원 경로를 통한 구호 물자가 수송될 정도로 시리아 북서부 지역에 대한 지원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시리아 북서부 지역에 대한 구호를 확대하기 위해 튀르키예를 통하는 구호 통로를 추가하는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반대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시리아 지역의 아동 보호 문제도 크게 대두되고 있다. 오랜 기간 내전을 겪으며 고통 받고 있던 아동들은 이번 지진으로 인해 더욱더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수십만명에 달하는 아동들이 집을 잃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 아동들은 보호자의 사망 등으로 보호자와 분리돼 착취와 학대의 위험성에 놓여 있다. 또 저체온증, 수인성 질병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 있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초기 500만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 제공과 역대 최대 규모의 긴급구호대를 현지에 파견해 지진 피해를 돕고 있다. 민간단체를 통한 기부금 모금과 지원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초기에 인명 구조 및 이재민 보호에 지원이 집중되고 있다면 향후에는 도시 재건 사업과 재난 예방 등 장기적 계획으로 구호 사업이 전개된다. 피해 국가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보내고 있는 관심과 지원이 장기적으로 지속돼야 한다.

[세계는 지금] 영국의 파업

지난 겨울부터 영국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파업은 교사와 공무원, 박물관 직원, 철도 기관사와 버스운전사, 간호사 등 50만명이 넘는 공공 부문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엄청난 규모의 파업이다. 이같이 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선 이유는 지금 영국이 겪고 있는 심각한 경제난과 물가로 인한 생활고 때문이다. 그러나 노조의 요구대로 임금을 올리면 인플레이션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로 수낵 총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파업의 파도에 당연히 대학 노조도 빠질 수 없다. 필자는 영국의 대학에 입학해 1학년을 시작했을 때부터 매년 강사들과 학교 직원들의 파업을 경험해 왔다. 필자의 영국인 친구들의 의견을 토대로 파업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생각이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임기 끝 무렵부터 긍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한 번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 아닌 피해를 입게 되는 파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보수당, 노동당 관계없이 일단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보수당을 지지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원래 노동자들의 파업에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았지만 국민들이 팬데믹이라는 혼란의 시간을 거치면서 조금씩 바뀌어 지금은 보수당 지지자들도 노동당과 파업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번 영국의 대규모 파업은 전역의 대학 교직원 7만여명이 참여하며 전례 없는 대학노조 파업 규모를 달성했다. 필자의 학교 또한 곧 있을 파업으로 인한 수업 취소에 관한 정보를 발표했다. 대학이 파업으로 수업 취소하면 학생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유학생들은 보통 자국 학생들보다 두 배가 넘는 학비를 지불하기에 강사들은 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인종과 성별에 따른 임금 불평등과 불안정한 교직원의 계약 구조 등 자신들이 파업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며 학생들과 미팅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전에는 학생들의 불만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이번 파업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오히려 지지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나 또한 노동자로서 매우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며 일했던 경험이 있기에 예전보다는 대학 강사들의 파업에 지지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영국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라도 파업을 필연적으로 자주 겪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파업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최근에 와서야 가질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노조의 파업에 대한 영국 국민 및 정부 정서와 그 발전 과정을 볼 수 있었고, 나는 우리 정부가 파업 자체를 재앙이나 불법이라고 눈치 주는 분위기의 사회를 조성해 왔다는 사실과 나조차도 그런 사회에 적응해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어쩌면 파업은 우리의 삶에 있어 꼭 필요하지만 평소에 자각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부재로 그들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자유로운 영국이라도 노조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불편함’이 아니라 결국 너무도 중요한 인권의 문제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노조관도 시대에 발맞춰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세계는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와 국부펀드

중동 지역 주요 국부펀드로 사우디아라비아의 PIF 및 중앙은행 SAMA 외에도 카타르 투자청(QIA)과 쿠웨이트 투자청(KIA), 아랍에미리트의 무바달라 투자회사와 아부다비 투자청(ADIA) 등을 꼽을 수 있다. ■ 사우디 국부펀드 PIF 1971년 국왕령으로 설립된 PIF는 1953년 설립된 쿠웨이트 투자청과 함께 걸프 지역 내에서 가장 오래된 국부펀드다. 그러나 PIF가 처음부터 사우디 정부의 글로벌 투자기관의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다. 설립된 이래 수십년간 PIF는 사우디 정부의 사우디 공기업에 대한 정부 소유 지분의 지주회사로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PIF의 역할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살만 국왕 즉위 직후, 2015년 PIF의 관할 기관이 바뀌면서부터다. 기존에는 재무부에서 관리해 왔으나 2015년 3월 각료 이사회의 결정으로 무함마드 왕세자가 지휘하는 경제개발위원회(CEA) 산하로 옮겨지면서 PIF에는 보다 큰 자율성과 국가적 책임이 주어졌다. 본격적으로 PIF가 사우디 정부의 글로벌 투자기관으로 변화한 것이다. PIF는 최근 몇 년간 미래형 첨단기술 분야에 매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를 비롯해 우버, 테슬라, 버진갤럭틱, 루시드모터스 등 주요 기업에 투자하며 아부다비 및 쿠웨이트에 이어 걸프의 중추적인 국부펀드로서 주목받은 바 있다. PIF는 세계 10위 안에 드는 국부펀드로 운용 자산 규모가 6천200억달러(약 760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일본 증시에 상장한 넥슨 지분을 매입해 지분 9.14%로 2대 주주가 됐고 엔씨소프트의 2대 주주(9.26%)로 올라서기도 했다. 두 회사에 투자한 금액만 약 3조원에 이른다. ■ 사우디 국부펀드의 자회사 PIF Jada PIF Jada는 사우디 공공투자기금(PIF)이 전액 출자한 자회사다. 이는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공공 투자기금으로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의 생태계 촉진과 혁신산업 및 중소기업의 안정적인 경제 다각화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Jada는 정보기술(IT), 금융, 게임, 부동산 등의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최근 중동 투자사들과 대한민국의 교류가 활발하다. PIF Jada와 SVC 모두 대한민국의 게임과 이커머스, 인공지능(AI) 분야를 비롯해 스타트업 기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PIF는 지난해 7월 국내 게임 디자인 및 개발 스튜디오인 시프트업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대형 상장사 위주로 투자한 것에서 나아가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까지도 탐방에 나선 것이라 볼 수 있다. 최근 자본시장이 얼어붙으며 투자금을 찾지 못했던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중동 투자사들에 맞춰 대한민국 유망 기업들이 전략적인 해외 투자 유치를 준비해 세계로 뻗어나가기를 응원한다.

[세계는 지금] 중동외교와 서희의 전략

외교란 국가의 이익을 위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과거 정치, 경제, 군사 분야 등에 한정돼 있던 외교의 영역이 문화, 예술을 포함한 국민 생활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외교의 딜레마는 나라별로 상이한 외교환경이 존재하고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오늘날 한국의 외교안보 환경은 한반도, 동북아, 세계 차원의 각종 전통, 비전통, 신흥 안보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그 파괴력이 가중되는 ‘퍼펙트 스톰’의 상황에 있어 한국의 평화, 안보, 번영, 국익을 크게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강대국의 이해가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와 더불어 안전, 평화 등이 국제관계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아울러 해외에서 대부분의 에너지 자원과 물자를 수입해 우리의 지식과 노동력, 기술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특수한 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다. 그만큼 국제관계와 외교력의 중요성은 더욱 배가되는 것이다. 최근 한국 외교 전략에 대한 필요가 증가하게 된 배경에는 2019년 한국이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명)’에 진입함에 따라 중견국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인식하게 되면서 점차 ‘한국적’ 외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고,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외교 대상국이 늘고 외교 사안이 복잡해지면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외교안보 업무가 급증해 외교 분야에서 전략적 사고, 문제 해결 역량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기묘년 새해를 맞아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이란이다’라는 대통령의 발언이 정계와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인 한국의 국제 역량은 이미 세계적 반열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중동지역에서 한국의 위상과 입지는 정치, 경제, 문화 분야와 더불어 외교적으로도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중동의 산유국이자 에너지 부국인 아랍에미리트와 이란은 한국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 파트너이자 동맹국이다. 특히 서방의 경제 제재로 난관에 봉착해 있는 이란은 중동지역에서도 정치, 외교, 경제적으로 잠재력이 상당히 큰 나라다. 변동성이 높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중동지역의 정세는 더 이상 ‘아랍국가와 이란은 적’이라는 이분법적이고 단선적인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화했다. 적대국이었던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모로코 등 아랍국가들이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머지않아 아랍국가의 수장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이에 동참할 것으로 예측된다. 최근 상황을 접하며 급변하는 중동지역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분석적이고 통시적인 전략적 사고와 전략외교에 대한 아쉬움을 절감한다. 동시에 외교 담판으로 거란의 위협으로부터 오히려 강동 6주를 획득한 고려시대 서희의 전략적 지혜가 생각나는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카타르와 스타트업

2022 카타르 월드컵이 끝났다. 이로써 카타르는 중동지역 최초의 월드컵을 치른 국가가 됐다. 카타르 월드컵 종료 후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한 카타르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는 시점이다. 카타르 국영 은행인 QNB는 카타르 최초의 상업 은행으로 설립됐는데 현재 카타르에서 가장 큰 은행이자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기관 중 하나다. 2013년 QNB그룹은 이집트에서 두 번째로 큰 민간 은행인 QNB 아흘리를 인수했고 2016년에는 터키 파이낸스뱅크 AŞ의 지분 99.88%를 인수했다. 또 토고에 본사를 둔 범아프리카 은행인 에코뱅크의 지분 20%, 요르단에 본사를 둔 HBTF, 아랍에미리트(UAE)에 본사를 둔 CBI의 지분 40%를 인수하는 등 적극적인 글로벌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네트워크 확장을 통해 중동,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에서도 영향력을 미치는 글로벌 금융 플랫폼이 되겠다는 그룹의 비전을 위한 실행이다. 이 외에도 홍콩, 인도, 베트남 등에 지사를 세우기도 했다. 그룹은 자회사이자 투자사인 QNB 캐피털을 통해 카타르 및 글로벌 기업에 다양한 투자를 하고 있다. QNB 캐피털은 걸프협력회의(GCC) 지역에서 전문적인 기업 재무팀을 보유하고 인수합병, 주식 및 부채 자본 시장, 프로젝트파이낸싱 등의 자문 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QNB그룹은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으며 글로벌 네트워킹, 스포츠 이벤트 후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번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QNB도 월드컵 관련 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다.  QBIC는 카타르의 스타트업 지원과 기업 성장을 돕는 비즈니스 인큐베이션 센터다. 성장잠재력이 높은 스타트업 기업을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QBIC는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가가 회사를 시작하고 성장시킬 수 있도록 지원한다. 스타트업 기업의 지원부터 기업 성장, 제조 관련 프로그램, 코칭 프로그램, 파트너를 찾아주는 프로그램 등 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춰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또 다양한 분야의 전문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 있는데 첫 번째는 카타르 관광청(QTA)과 함께하는 QBIC 관광 섹터다. 관광업 관련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관광상품 또는 서비스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두 번째는 디지털 앤드 비욘드 섹터다. 카타르에 기반을 둔 유망한 기술 중심 신생 기업 및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전문 인큐베이터다. 카타르의 차세대 혁신 비즈니스가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전반적인 서포트와 자금 지원 솔루션을 통해 카타르에 성공 사례를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카타르 내에서 제품을 제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혁신적인 기업가를 지원하는 전문 제조 및 산업 인큐베이터다. 솔루션에는 교육 프로그램, 신생 기업을 위한 산업 워크숍, 식음료를 포함한 다양한 산업에 적합한 제조 시설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전문적인 지원 외에도 인큐베이터는 기업이 스스로 자리를 잡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또 멘토링 및 코칭을 통해 스타트업에 성장과 성공을 위한 지침을 제공하기도 한다. 카타르는 막대한 자본은 있지만 기술 기반이 부족한 국가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기업에는 매우 중요한 협력 포인트가 될 것이라 본다. 중동에 대한 흥미 위주의 관심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대응 전략에 따른 장기적인 협력을 권한다. 사실 비즈니스 측면으로 봤을 때도 중동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NGO 여성 활동 금지조치와 구호사업

2009년 영국 BBC에서는 탈레반에 억압당하는 파키스탄 주민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줄 현지인을 찾고 있었다. 당시 탈레반은 9·11테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축출된 후 이웃 나라인 파키스탄 북서부로 본거지를 옮겨 지역주민들을 억압하고 있던 시기였다. 탈레반의 위협에 누구 하나 글을 쓰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지만 11세의 어린 소녀 말라라 유사프자이는 용기 있게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말라라는 BBC 블로그에 3개월 동안 ‘파키스탄 여학생의 일기’라는 글을 연재하며 열악한 여성의 인권 문제를 알렸으며, 이로 인해 중동지역 여성 인권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말라라는 2012년 탈레반의 총격으로 머리와 목에 관통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진다. 말라라는 열다섯 살에 유엔 총회에 나서 전 세계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이 배움의 권리를 누리게 해달라고 호소했고 이듬해 그녀는 최연소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2021년 8월 미군 철수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에는 탈레반이 20년 만에 재집권했다. 이슬람근본주의 집단인 탈레반이 재집권할 당시에는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탈레반 내 강경파들에 의해 여성의 교육 등 인권 문제는 점점 더 열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의 중등학교는 여학생을 받지 않고 있으며 지난해 12월부터는 여성의 대학 교육까지도 금지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여성 교육 금지령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지만 탈레반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탈레반은 최근 이슬람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비정부기구(NGO)에서 여성이 활동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3천명이 넘는 여성이 NGO에서 활동하며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여성과 아동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는 데 있어 여성 직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에 이번 조치로 인해 구호사업 진행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월드비전은 탈레반 정권의 여성 NGO 활동 금지 결정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이러한 결정을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아순타 찰스 아프가니스탄 월드비전 회장은 성명을 통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구호단체의 인도적 지원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는 상황에서 NGO 여성 활동 금지 결정으로 인해 수많은 주민들은 더욱더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탈레반 정부를 향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찰스 회장은 여성으로서 본인도 탈레반의 NGO 여성 활동 금지 조치에 해당되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탈레반 정부의 여성 NGO 활동 금지 조치에 따라 월드비전, 세이브더칠드런 등 여러 구호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인도적 지원 사업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있다. 이슬람 율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진행된 탈레반의 반인권적 금지 조치는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보다 강경한 대응을 통해 거꾸로 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여성 인권시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세계는 지금] 영국의 크리스마스

시간은 언제나 그랬듯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고 금방 지나가 우리는 금세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 대부분의 연말과 새해를 영국에서 혼자 보내는 필자는 운좋게도 이번 연말을 영국인 친구와 보내면서 영국의 크리스마스문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영국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도 널리 기념 되는 가장 큰 명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연말이면 길가와 집 안에서 크리스마스 느낌이 나지만 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인 유럽의 크리스마스와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설날과 같은 급의 명절이기 때문이다. 연말이 점점 다가오면서 10월이 끝나갈 때쯤이면 영국에선 핼러윈을 기념하는데 핼러윈의 풍습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듯이 아이들이 유령 또는 여러 캐릭터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이웃집을 돌며 사탕을 받아 간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주로 분장하고 파티를 하기도 한다. 핼러윈이 끝나고 11월에 돌입하면 영국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크리스마스를 위한 준비를 한다. 사람마다 얼마나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지에 따라 집을 꾸미기 시작하는 시기도 다르다. 그러다가 12월이 되면 ‘어드벤트 캘린더’라 불리는 강림절 달력을 열기 시작한다. 어드벤트 캘린더는 크리스마스 당일 전날인 12월1일부터 24일까지 기재돼 있는 달력으로 보통은 각각의 날짜에 맞춰 열어 볼 수 있는 작은 선물이 들어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가 오는 날까지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며 사람들은 24일동안 매일 하나씩 그날의 선물을 열어본다. 이러한 이유로 11월 즈음부터 슈퍼마켓에 가면 과자와 초콜릿 등이 들어있는 어드벤트 캘린더가 진열되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연말 분위기가 점점 형성되면서 영국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연극을 준비, 부모를 초대해 공연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이 되면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집 안에서 느낄 수 있다. 모든 명절이 그렇듯이 영국에서도 집집마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고유의 다른 전통이 있다. 가족보다는 연인과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한국의 크리스마스와는 달리 영국에서는 대부분 온 가족이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고 카드게임이나 보드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때는 어차피 외출해 봤자 문을 연 가게도 없기 때문이다. ‘멀드 와인’이라고 불리는 따뜻하고 크리스마스 향이 나는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 장작불을 지피는 집도 있어 이 시기에 밖을 돌아다니면 나무 타는 냄새가 은은하게 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영국 사람들도 눈이 오는 화이트크리스마스를 소원하지만(런던에는 눈이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대부분 먹통이 되는 터라 막상 눈이 오면 사람들이 불평하는 영국스러운 정서도 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그렇게 보내고 25일이 되는 밤 12시에 맞춰 각자 선물을 하나씩 뜯어보고 잠에 든다. 다음 날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트리 밑에 놔둔 선물을 열어 보고 서로에게 사랑을 담아 써준 카드를 읽는다. 그러고는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크리스마스 만찬을 즐긴다. 이때 식탁에 오르는 영국만의 독특한 크리스마스 대표 음식으로 칠면조, 크랜베리 잼, 그레이비, 그리고 브러셀스프라우트라 불리는 작은 양배추와 감자, 당근 등을 먹는다. 만찬을 즐기고 나면 영국의 전통 푸딩인 크리스마스 푸딩을 먹는데 이 푸딩은 먹기 전에 도수가 높은 술을 위에 붓고 불을 붙인 다음 그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리다 크림을 부어 먹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이렇게 영국인들에게 1년 중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매우 가족적인 행사다. 선물도 준비해야 하고 만찬을 위해 음식 준비도 많이 해야 해 피곤한 날이기도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진심으로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크리스마스를 즐거워하고 1년 동안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진정한 명절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후회 없는 새해를 보내리라 다짐했던 더없이 따뜻한 성탄이었다.

[세계는 지금] 양중관계와 신중동 전략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우디아라비아 국빈방문을 계기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과 천문학적인 규모의 사업 수주 소식이 뜨겁다.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一 带 一 路)’ 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전 2030’이 연계해 양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안도 논의되며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극단화, 장기화 관점에서 보면 중동지역이 그 경쟁의 핫스폿이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18여년 전 중국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진출했던 전략이 복기된다. 중국 국가 차원의 지원과 협력을 통해 제벨알리(JAFZA) 프리존 구역에 중국의 2천여개 기업을 입주시키고, 유통센터(드래곤마트) 및 물류기지를 설립, 운영해 사실상 중국 기업의 중동 아프리카 수출 교두보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미중 패권전쟁의 한복판에 놓여있을 뿐 아니라 수출을 해야 하는 구조적 상황이기에 글로벌 정세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이지만 대한민국은 신중동 전략을 세워 매우 깊이 있게 전개해야 하는 시점이다. 중동의 주요 산유국은 GCC(Gulf Cooperation Council)로 걸프 아랍 국가의 국제 경제 협력체이며 정식 명칭은 걸프 아랍국 협력 회의이다. 회원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 등 6개국이다. GCC 주요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으로 당분간 더욱더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해 두바이엑스포(2020년), 카타르 월드컵(2022년)을 유치했고, 네옴 동계아시안게임(2029년) 유치가 확정됐다. 카타르 올림픽(2032년)은 유치에 실패했지만 사우디엑스포 (2030년) 유치 도전 등 메가 이벤트 유치에도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21년 기준 원유시장 점유율 세계 2위, 오일 관련 산업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40%, 수출의 90%를 차지하고 있어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사우디 비전 2030’을 발표하고 추진 중이다. 경제 부분 외에도 관광, 문화, 교육, 스타트업 육성 강화와 정치외교적 영향력 확대 등 사회 문화적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며 사회 진출을 촉진하기 위한 맞춤형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특히 대한민국의 K-컬처에 익숙하며 이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고 있어 최근 트렌드를 접목한 전략이 필요하다. 사우디의 경우 젊은층 인구가 60%이상을 차지하지만 직업이 충분하지 않아 스타트업 창업 아이템, 기술 협력 등 다양한 종류의 모델로의 접근이 가능하다. 아랍에미리트는 코로나19와 석유 및 서비스 관광 중심 산업 구조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남에 따라 에너지 전환 및 기후변화 대응 전략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두바이엑스포 2020 레거시 활용 및 COP28(2023년)을 준비 중이다. 두바이의 경우 GCC 지역 전반에 대한 미디어 영향력이 매우 크므로 대한민국 제품의 브랜딩과 홍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타르는 월드컵을 비롯한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수요와 전략을 매우 필요로 한다. 특히 카타르 월드컵은 300조원을 투자해 9조원을 거둬들이는 밑지는 장사를 했는데, 이는 카타르의 국가 포지션 자체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가 포스트 오일 시대에 있어 유일한 탈출구라 생각하고 그 상황이 절실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다양한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성공리에 치른 대한민국의 경험 노하우, 상품, 기술 등을 활용해 협력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신중동 진출 전략에 있어 가장 선행돼야 할 것은 비즈니스이기 전에 친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신뢰와 존중을 통해 사막을 건너기 바란다.

[세계는 지금] 음식물 쓰레기와 지속가능한 삶

호주의 대표적 구호단체 오즈하베스트의 설립자인 로니 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푸드 파이터(Food Fighter): 먹거리를 구하라’를 보면 주인공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개인이 세계 빈곤과 환경오염 등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난제를 풀기 위해 무슨 일을 실천할 수 있을까?” 칸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자 하는 개인의 작은 사회적 행동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전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한 해 동안 생산되는 식량은 40억t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인구 모두가 먹고살기에는 충분한 양이지만 매년 9억3천만t 이상이 식량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 산술적으로 생산된 식량이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지만 않는다면 지구촌 8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매일 굶주림으로 고통받을 이유도 사라질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비단 기아 문제뿐만 아니라 지구의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지구온난화 문제와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전 세계 식품 생산 단계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연간 137억t가량으로 추산되며, 이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6%를 차지하고 있다.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토지 사용, 작물 생산 과정, 축산업 및 어업, 유통 단계 등에서 수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생산된 식품이 소비되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로 폐기 처리되는 과정에서도 또다시 상당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다. 전 세계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역사상 최초의 보편적 기후변화 관련 협정으로 205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보다 낮게 유지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약속을 담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자국 내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여 탄소중립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2015년 전 세계 유엔 회원국들이 모여 합의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12번째 목표는 ‘책임감 있는 소비와 생산’이다. 여기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세부목표가 담겨 있다. 2030년까지 유통 및 소비자 수준에서 전 세계 인구 1인당 음식물 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출하 후 손실을 포함한 식품의 생산 및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식물 손실을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국내에서 하루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는 2만여t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 중 4분의 1은 먹기도 전에 버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속가능한 미래의 지구를 위해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사회적 실천이 요구된다. 연말이 다가오며 평소보다 많은 행사와 식사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식탁에서 버려지고 있는 음식물에 대해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기다. 최성호 월드비전 경기남부사업본부장

[세계는 지금] 2022년 중동과 제구포신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시점은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해마다 ‘다사다난’했던 365일의 시간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또 다른 시작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어 본다. 공자가 지은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의 주석서인 춘추좌씨전에 ‘제구포신(除舊布新)’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오래된 것은 버리고, 새롭게 변화를 주거나 개혁을 한다는 뜻을 강조하는 사자성어로 사용된다. 2022년 중동의 한 해를 되짚어 보며 ‘제구포신’을 떠올린다.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짧은 방한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40조원의 선물 보따리를 풀며 8대 대기업 총수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던 38세의 젊고 개혁적인 아랍 지도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하는 국가개혁 프로젝트인 ‘사우디비전2030’과 그 일환으로 진행되는 ‘네옴시티(NEOM City)’ 프로젝트를 우리나라 전 국민에게 깊이 각인시키며 제2의 중동 특수에 대한 기대를 한층 부풀렸다. 중동에서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으로 불과 4년 전에야 여성 운전을 허용하고, 2019년 BTS의 사우디 공연에 즈음해서야 관광비자 발급을 시작한 나라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다. 아프리카의 아랍 국가인 모로코가 2022 카타르 월드컵 4강에 진출했다는 소식으로 중동 전역이 축제 분위기다.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겨울에 개최되는 월드컵인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인구 280만명, 경기도 크기의 작은 아랍 국가인 카타르가 중동지역 최초로 월드컵을 개최함으로써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전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 3위, 원유 매장량 14위의 에너지 부국인 카타르의 월드컵을 통한 국가 이미지 제고 노력은 유치 과정의 문제점,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 월드컵 기간 중 복장 및 음주 규정 등 민감한 사안에도 불구하고 톡톡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9월 히잡 착용 문제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사망한 이란의 젊은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은 이란 여성과 젊은층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테헤란을 비롯한 중소도시에서 석 달째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시위는 ‘여성, 생명, 자유’,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통해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이란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담아 내고 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수립된 신정국가로 이슬람 종교지도자가 최고 지도자로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독특한 정치구조를 가진 나라다. 서방의 경제 제재와 이슬람 정부의 정책적 무능 및 부패로 인한 만성적 인플레이션과 청년층 실업 문제로 이란의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아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시위는 부패한 정부에 대한 이란 여성과 젊은층의 분노이며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의 표출인 것이다. 묵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펼친다. 올 한 해 중동의 시간은 제구포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김수완 한국외국어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세계는 지금] 영국의 국립박물관•미술관 무료 관람 정책

영국에는 방문의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는 뮤지엄과 갤러리들이 런던에만 여러 곳 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는 대영박물관, 내셔널갤러리, 빅토리아&앨버트, 테이트 모던 등이 그 예로, 리스트는 계속된다. 한 번쯤은 누구나 들어봤을 이 뮤지엄들은 국제적으로 압도적인 수와 명성을 가진 유물 및 작품들을 가지고 있지만 입장료가 모두 무료다. 참고로 영국 박물관의 관람이 박물관 무료 입장 정책과 상관없이 유료화될 수 없는 이유는 자국의 예술품 비율이 외국의 예술품보다 낮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국 박물관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생각한다면 옛 대영제국이 약탈한 외국의 유물이 도대체 얼마나 될지 상상이 안 가는 수준이다. 무료 입장을 고수하는 영국의 박물관들도 유료 입장을 필요로 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국·공립 박물관이 아닌 개인 박물관일 경우나 특별 전시회의 입장일 경우다. 이러한 영국의 박물관 무료 관람 정책은 1960년대부터 논의돼 2001년부터 시작됐는데, 당시 영국의 문화장관인 크리스 스미스가 유료 입장을 지지하던 보수당 정권의 반대에도 굳건하게 무료 관람 정책을 지켜낸 결과물이다.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영국과 노동당은 모든 사회계층이 즐겨 마땅한 문화예술 활동의 기회를 넓히는 것에 가치를 둔 것 같다. 물론 현재의 영국도 그 가치관이 달라지진 않았다. BBC 뉴스 기사에 따르면 박물관과 미술관의 무료 관람 정책 이후로 방문객 수가 2배 이상으로 늘고, 특히 하위계층 시민들의 방문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증가한 관람객의 대부분은 이미 방문한 기존의 관람객이 중복으로 박물관을 방문한 경우였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항상 예산이다.100% 정부의 재정 지원만으로 모든 박물관이 살아갈 순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예산 문제를 보조하기 위해 영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다양한 수익 구조를 만들어 기념품 가게나 레스토랑 같은 상점 운영을 하고, VIP 고객의 예술품 구매 및 후원, 그리고 방문객의 기부금과 자원봉사자 모집으로 운영을 이어 나가고 있다. 무료 입장 정책 시행 이후 21년이 된 지금 영국은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굳건하게 무료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결과로 박물관, 미술관 무료 관람은 이제 영국 문화의 일부가 됐다. 한국에서도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의 무료 관람 정책이 2002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유료화와 무료화를 번복한 기록이 있다. 물론 무조건적인 무료 입장 정책이 반드시 옳은 결단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국립박물관·미술관 무료관람정책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무료 입장이 국립박물관의 관람객 총수를 증가시켰지만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 지방의 국립박물관에서는 오히려 관람객 수가 감소했다고 한다. 이렇듯 박물관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관람객 증가치가 달라 한국에서의 박물관 무료 관람 정책이 관람객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기 힘든 부분이 있다. 박물관 입장료 무료화 찬반론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면 둘 다 합당하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문화 의식과 교육의 기회를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사회계층을 위한 문화예술 경험의 기회를 줄이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인인 필자의 친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자국 정부의 억압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예술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정부에서 억압해야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무료 관람 정책의 전면화가 예술을 ‘공짜’라는 인식을 만든다고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무료화가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기 전에 현재 한국의 교육과 박물관이 ‘공공성’과 더불어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평소 문화예술을 접하게 하고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교육과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지, 그리고 문화예술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대한 담론이 이뤄져야 할 주제일 것이다. 한민주 영국 유학생·미술사 전공

[세계는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와 스포츠

‘FIFA 카타르 월드컵’ 경기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으로 중동 국가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특히 최약체 팀으로 평가 받던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C조 조별 리그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를 2 대 1로 이긴 후 사우디 정부가 경기 다음 날을 임시 공휴일로 선포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축구 같은 현대 스포츠뿐 아니라 전통 스포츠도 인기가 있다. 아라비아반도 사람들은 수천년 동안 경마, 낙타 경주, 매사냥, 사냥개 사냥 등의 스포츠를 즐겨왔다. 사우디에는 스포츠 시티라고 불리는 거대한 스포츠 단지도 있다. 최대 6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실내경기장, 올림픽 규모의 수영장, 실내외 코트, 운동장, 회의장으로 구성돼 있는 스포츠 복합문화단지라 할 수 있다. 특히 사우디 축구 리그의 하이라이트는 ‘킹스컵’으로 알려진 챔피언십 토너먼트이다. 해당 시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응원하기도 한다. 축구 외에도 배구, 체조, 수영, 농구 등의 스포츠가 사우디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또 경마가 사우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인데 이슬람 국가의 경우 도박은 금지돼 있기에 도박은 불가능하다. 지역주민들은 수세기 동안 경주와 교통수단을 위해 말을 사육해 왔다. 아라비안 종마(Arabian horse)는 수천년간 이어져온 혈통을 가지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종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낙타 경주도 인기 있는 전통 스포츠인데, 과거에는 경주에 수천마리의 낙타가 광활한 사막을 질주했지만 오늘날에는 현대적인 경마장에 맞게 규칙이 수정됐다. 낙타 경주는 겨울 동안 매주 월요일 리야드 스타디움에서 개최되기도 한다. 중동 사람들은 낙타 경주를 워낙 좋아해 코로나19가 창궐했던 시기에도 이 낙타 경주만큼은 개최됐다. 그 외 다른 전통 스포츠로는 사냥개를 이용한 사냥과 매사냥이 있다. 매사냥의 경우 우리나라 고려시대에도 매사냥 문화가 있었기에 한국과 중동의 공통문화라 할 수 있다. 사우디 게임은 사우디의 가장 큰 국가 스포츠 행사다. 지난 10월27일부터 11월7일까지 리야드에서 개최됐으며 6천명 이상의 선수가 참여하고 45개 종목의 스포츠로 이뤄진다. 종목은 양궁, 육상, 배드민턴, 농구, 낙타, 체스, 사이클링, 승마, 펜싱, 골프, 체조, 핸드볼, 실내조정, 유도, 무에타이, 사격, 스케이트보드, 클라이밍, 스쿼시, 수영, 탁구, 태권도, 테니스, 배구, 역도 등의 경기가 열린다. 특히 올해 사우디 게임의 홍보영상을 알 마스막 요새에서 촬영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랠리 선수인 야지드 무함마드 알라지가 촬영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스포츠를 굉장히 사랑하고 또 스포츠 산업 육성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데 사우디는 ‘사우디 비전 2030’에서 발표한 바와 같이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육성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이처럼 사우디는 스포츠를 너무 좋아한다. 최근 네옴시티에 대한 대한민국의 관심이 뜨거운데 스포츠 산업의 공동 진출도 같이 고민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의 스포츠 산업에 대한 노하우를 매개로 다양한 협력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유림 중국스포츠산업연합회 한국지부장

[세계는 지금] 글로벌 식량위기 문제와 G20 정상회의

지난해 6월 이탈리아 남부 도시 마테라에서 전 세계 주요 20개국 협의체(G20) 외교·개발 장관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에서는 코로나19로부터의 회복을 위한 보건, 기후변화, 아프리카의 지속가능 발전, 식량안보 등 전 세계적으로 협력해야 할 사안들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특별히 식량안보를 의제로 한 회의에서는 전 세계 식량위기 문제를 해소하는 데 있어 G20 회원국의 기여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가 있었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마테라 선언’을 채택했다. 마테라 선언에는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굶주리는 사람이 없는 ‘제로 헝거(Zero Hunger)’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G20 회원국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포용적이고 탄력적인 식량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저개발 국가에 식량지원 협력을 강화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는 우크라이나전쟁의 당사자인 러시아가 회원국으로 참석했고, 여러 지역의 지정학적 갈등 문제가 회원국 간에 얽혀 있는 상황 가운데 진행됐다.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다뤄진 의제 가운데 식량안보는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 이에 한국 월드비전은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한국 정부 대표단에 정책제안문을 전달한 바 있다. 정책제안문에는 심화된 전 세계 식량위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두 가지 이행 촉구 과제를 담았다. 첫 번째는 식량위기 대응을 위해 지난해 G20 회원국들이 채택한 마테라 선언 이행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식량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G20 회원국들이 협력을 강화하기로 선언을 통해 약속했으나 1년여가 지난 지금 전 세계 식량위기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두 번째는 식량위기를 아동의 위기로 인식하고, 아동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식량위기는 아동의 생명뿐 아니라 아동과 관련된 교육, 폭력, 노동 등 다양한 문제와 결부돼 있다. 이에 월드비전은 G20 정상들이 식량위기 대응에 있어 아동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아동보호 접근 및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인도네시아 G20 정상회의를 마치며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전쟁을 강력히 규탄하고 평화를 촉구하자는 내용을 공동선언문으로 채택했다. 우크라이나전쟁 종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국제적 현안임에는 이견은 없다. 다만 G20 정상회의 공동선언문 속에 글로벌 식량위기 이슈도 직접적으로 담겨지기를 내심 기대했던 터라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월드비전은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G20이 식량위기 해결에 적극 나서 죽어 가는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 내기 위해 각국 정부에 행동 이행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최성호 월드비전 경기남부사업본부장

[세계는 지금] 메가 이벤트와 레거시

중동 아프리카 최초의 엑스포 ‘두바이 엑스포 2020’이 막을 내린 지 어느새 7개월이 돼 가고 있다. 135만평에 달하는 이 최대 규모의 두바이 엑스포가 지난달 1일 재개장했다. 두바이 시정부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던 엑스포였고,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코로나19 영향으로 많은 악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개최되고 마무리됐다. 앞으로 두바이 엑스포 레거시는 어떻게 쓰일까. 엑스포 2020은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에서 차로 약 45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두바이 엑스포 2020 건축물의 80% 이상은 ‘District 2020’으로 남아 보존하게 된다. 특히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으로 구성돼 혁신, 교육,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가장 중심지였던 알와슬 플라자와 모빌리티 파빌리온을 포함한 엑스포 주요 구조물은 District 2020 내에 영구 보존된다. 엑스포시티(EXPO CITY)는 두바이 도시개발 계획의 일환이었는데 엑스포시티가 전시, 글로벌 이벤트, 통합 물류서비스 등 경제 성장의 주요 역할을 기대하며 전략적으로 만들어졌다. 엑스포시티는 두바이 국내총생산(GDP)의 21%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지역인 제벨알리 자유무역지대 근처에 있고 알막툼 국제공항과도 가깝다. 두바이는 엑스포시티를 교통 및 물류 허브와 연결하고자 전략적으로 준비했다. 또 엑스포시티는 DP 월드,지멘스, 터미누스그룹 등의 기업과 스타트업 및 중소기업의 본사를 유치하는 자체 경제자유지역 및 상업 허브가 될 예정이다. 지속 가능하고, 인간 중심적인 도시 계획을 지향하는 엑스포 시티! 이 점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과도 결을 같이한다. 이에 방문객은 스쿠터, 자전거 같은 소프트 모빌리티를 이용해야 하고, 일회용 플라스틱이 허용되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각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가 개최되고 있고 2023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는 COP28이 개최될 예정이다. 두바이는 두바이 엑스포 이후 레거시를 활용, COP28과 연결해 지속 가능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척박한 환경 속의 두바이는 소위 메가 이벤트 유치를 단순히 이벤트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메가 이벤트 개최 이후 실제 경제 구조로 재빠르게 편입시켜 국가 발전에 적극 활용한다. 대한민국은 올림픽을 비롯해 많은 메가 이벤트를 유치하고 개최한 국가다. 또 부산 2030의 성공적인 유치를 위해 국가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도 레거시의 활용에 대해서도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할 때다. 김유림 중국스포츠산업연합회 한국지부장·카타르 민간대사

[세계는 지금] 영국이 한류를 대하는 방식과 ‘K-전시’

해외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직접 체류하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이 세상은 지금 한류 열풍이다’라는 표현이 절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고 싶다. 필자 또한 해외에서 직접 한류를 실감하고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필자는 영국에 처음 유학을 시작한 2017년부터 당시 글로벌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BTS’의 인기와 한류의 영향력을 피부로 체감하기 시작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은 케이팝 아이돌의 춤을 추고, 한국어 노래 가사를 외우고, 가사를 몰라도 유행가처럼 모두가 방탄소년단의 당시 히트곡인 ‘DNA’를 알고 있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진짜로 ‘글로벌 유행가’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필자는 당시 언론에서만 듣던 ‘한류’가 진짜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타지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좋은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고, 그런 대우를 해주는 외국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부담까지 느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음식은 또 얼마나 유행인지 모른다. 전통 한식은 물론 현대의 새로운 한국 음식도 많은 인기를 받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센트럴 런던에 새로 생긴 한국식 핫도그 전문점인 ‘BUNSIK 분식’ 이 그 예다. 한식은 채소를 기본으로 한 메뉴가 많기 때문에 심지어 채식주의자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드라마와 영화 산업은 언급하기 지겨울 정도로 오래전부터 화제성을 한국이 다 쓸어오는 중이다. 봉준호 감독이 2020년 외국어 영화 최초로 ‘오스카상’을 수상함으로써 화룡점정을 찍었으니 말이다. 믿기지 않는 문장이지만 한국 영화는 오스카의 역사도 새로 쓰게 됐다. 또 미술사를 공부하는 필자가 한류의 영향력을 크게 느낀 올해의 세계적 이벤트는 바로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가 서울에서 열린 것이었다. 이렇게 케이팝뿐만 아니라 한국의 예술, 음식, 미디어, 패션까지, 쉽게 말하면 한국의 모든 것이 지금 세계적으로 유행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자라 언론인, 작가로 활동하는 유니 홍은 자신의 저서인 ‘코리안 쿨’에서 한류를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고 빠른 근대의 문화적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2022년, 영국은 한류의 정점을 찍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의 문화 기관들이 그 어느 때보다 한국 문화에 관한 전시와 소개를 현재 런던에서 큰 행사로 열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영국의 대형 서점인 포일스에서 10 월 한 달을 ‘한국 문화의 달’로 지정해 한국어 도서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소개를 하는 행사를 펼쳤다. 필자는 미술사를 공부하기 때문에 런던의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의 다양한 전시회를 다니는데, 그 과정에서 세계 최대 공예 박물관인 영국의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이 지금 런던에서 가장 화제를 많이 모으는 전시 중 하나인 ‘Hallyu! The Korean Wave(한류! 코리안 웨이브)’를 지난 9월29일부터 열고 있다는 정보 또한 알 수 있었다. 이 전시에서는 일차원적으로 ‘한류’라는 문화 현상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6·25전쟁 이후로 돌무더기밖에 없던 시절부터 지금의 다른 풍경을 가진 한국의 근대 역사 발전 과정과 예술, 의복, 뷰티 산업, 심지어 한국의 웹툰 시장에 대한 내용까지 다뤘다. 실제로 이 전시는 첫날 입장권이 매진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한류’라는 주제로 한국에 대한 전시를 하고, 한국 문화의 달을 만들어 행사하는 일을 처음 본 필자는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고, 또 한 번 한류가 얼마나 글로벌한 현상인가 하는 점을 자신에게 상기시켜줄 수 있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국에 유학을 결심했던 큰 용기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것들을 눈으로 보고 시야를 넓히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컸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오히려 외국에서 자국의 문화가 얼마나 대단한가 깨달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자국 문화와 역사를 겸손하게 과소평가하기보다는 현재 한류의 영향력을 받아들이고 창의성을 키워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는 한국 문화의 파도를 계속해서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한민주 영국 유학생·미술사 전공

[세계는 지금] 국제개발협력과 ESG

기업 경영에 있어 ESG는 이제는 필수적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많은 기업은 ESG 흐름에 따라 경영 방식을 바꾸고 있다.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인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 이는 기업 경영에 있어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 요소로, 기업의 재무제표상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지표로 여겨지고 있다. ESG 개념은 1987년 유엔환경계획(UNEP)의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브룬틀란 보고서에서 출발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측정하는 데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2003년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에서 ESG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ESG와 국제개발협력은 어떠한 관계에 있을까. 이 둘은 지속가능성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ESG 경영이 최근 들어 급부상했다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가능한 발전을 개발사업의 중요 목표로 삼고 있다. 2015년 9월 전 세계 유엔 회원국들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합의했다. 이는 2030년까지 전 인류를 위한 빈곤 종식, 기아 해소 등 17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공동의 약속을 정한 것이다. 17가지 목표가 매우 포괄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공통의 함의는 인류를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다국적 기업인 코카콜라는 한때 인도 공장에서 과도한 물 사용으로 인한 수원 고갈, 오염물질 배출 등으로 공장 폐쇄 압력까지 받았다. 이에 코카콜라는 공적 원조기관인 미국국제개발처(USAID)와 협력해 3천300만달러 규모의 ‘물과 개발 연합(WADA·Water and Development Alliance)’이라는 사업을 추진해 30여개국 58만여명의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지속가능한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다. 미국국제개발처는 2030년까지 아프리카에 3만MW급 규모의 청정에너지 발전 시설을 구축하기 위한 ‘파워 아프리카 프로젝트(Power Africa Project)’ 사업을 170여개 다국적 기업과 협력해 추진 중이다. 이 사업에 협력하는 기업들은 ESG 환경경영 실천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한국 월드비전은 국내 기업들의 ESG 사업에 대한 협력 요구가 증가함에 따라 올 초 ESG 사회공헌본부를 조직 내에 신설했다. 신설된 부서에서는 기업들과 협력해 국내외 다양한 ESG 협력사업을 기획해 수행하고 있으며, 기업의 ESG 활동 관련 데이터 분석을 전담하는 ESG 리서치센터를 둬 기업과의 ESG 협력사업 강화를 위한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성장 위주의 기업 경영 방식은 그동안 환경 파괴와 사회 양극화 등의 부정적 문제들을 야기해 왔다. 성장 위주의 기업 경영을 고수할 경우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점진적으로 도태될 것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국제개발협력과 ESG는 앞으로 더욱더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본다. 최성호 월드비전 경기남부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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