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학생들이 선호하는 강의를 일컬어 ‘꿀강’이라고 한다. ‘꿀강’의 조건은 학점을 후하게 주는 강의나 출석 확인을 하지 않는 강의, 그리고 조별토의나 팀프로젝트 없이 혼자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강의가 해당된다. 물론 모여서 팀을 이뤄 소통하고 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으나 개인주의가 극대화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넘어 나와 이질적인 것은 거부하는 ‘면역적 거리두기’까지 치닫고 있다. 함께 존재하고, 상생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어려워진 시대이다. 교육공학자들은 혁신적인 수업을 위해 ‘나와 너’가 함께 팀을 구축해 토의하고, 프로젝트를 설계하며 만들어 가는 일을 권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너는 너’, ‘나는 나’의 태세로 교수자의 강의를 듣고, 시험 때 적당히 암기해 괜찮은 점수와 학점을 받는 수업을 ‘꿀강’이라 여긴다. 이러한 꿀강만 찾다 보면 다른 이와 만나 상생을 위해 협력하고, 서로 이득을 주는 관계의 ‘공생’ 역량은 둔화해 잠재성과 능력은 영글지 않고 썩어갈 것이 자명하다. 코로나 시국이 종식되는 양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현실은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바이러스와도 ‘공생’해야만 하는 상황인데 하물며 지구에 생존하는 인간과 모든 생태계의 ‘공생’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생(symbiose)’을 실현할 수 있을까? 단언하면 다른 생명체의 ‘다름’과 ‘차이’를 끌어안아야 한다. 국가, 인종, 종교, 성별, 세대, 외모, 정치, 경제, 문화 등 수많은 차이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이 차이로 인해 불편함, 심지어 폭력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이 역사에서 많이 일어났고,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탄’의 의미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 신학은 이를 ‘성육신(incarnation)’ 또는 말씀인 ‘로고스(logos)’가 육신이 된 ‘화육’이라고 말한다. 성육신과 화육의 특징은 상대방 혹은 대상에 들어가 변화하는 ‘작용인의 역할’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로고스의 말씀이 임하면 창조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예수와 만난 이들, 그분의 말씀이 임한 곳에 무수히 많은 창조적 변화가 일어났다. 세리, 창녀, 과부, 병자, 회당장, 백부장, 로마 군인 등이다. 올해 성탄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이 온 인류에게 임해,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을 실현하는 창조적 변화를 소망한다. 신이 인간이 되신 성육신을 생각하며 내가 네가 돼 ‘다름’과 ‘차이’를 끌어안고, 차별과 혐오, 분쟁과 폭력을 멈추는 성탄이 되기를…. 낮고 천한 말구유를 기억하고, 지극히 작은 자들과 어려운 곳을 돌보는 성탄이 되기를…. 그것이 성탄의 핵심인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를 이루는 길이다. 양승준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초빙교수 및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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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22-12-21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