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어제는 적폐 기업인, 오늘은 ‘함께 싸우자’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불렀다. 30대 그룹 총수들이 참석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협의를 했다. 문 대통령이 위기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서 기업인들에게 협조를 당부했다. 정부와 기업이 상시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민관 비상 대응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청와대에서는 3실장도 모두 참석했다. 그만큼 무게를 둔 자리였다. 언론은 민간 외교 기대라는 주석을 달았다. 일본 인맥을 가진 기업인들을 꼽았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이다. 허 회장은 일본의 게이단련과 대화해왔다. 한일 관계가 경색을 보이던 지난해 말부터다. 구 회장은 매년 3ㆍ4ㆍ5월에 일본을 찾는다. Nikko 동제련, 히타치 등과 인맥을 갖고 있다. 조 회장은 부친부터 이어 온 일본통이다. 직접 일본 미쓰비시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불참한 기업 총수는 둘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이다. 이 부회장의 일본 인맥은 광범위하다. 창업주 이병철, 부친 이건희로 이어져 온 인맥이다. 경제계는 물론 정계에까지 닿아 있다. 신 회장의 일본 지배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룹의 출발이 일본 롯데다. 지금도 일본 롯데는 건재하다. 둘 다 일본에 있다. 경제 보복 조치가 발표되자마자 날아갔다. 일본 언론이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고 있다. 일본이 독하게 덤빈다. 전후(戰後) 처음으로 뽑은 특정 국가 상대 경제 보복이다. 선거용이라는 해석은 우리 정부의 바램일 뿐이다. 58%의 일본인이 한국을 더 옥 죄야 한다고 답하고 있다. 아베 지지율(51%)보다도 높다. 우리 정부가 집어들 패(牌)가 별로 안 보인다. 민간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그래서다. 경제는 민간의 영역이다. 정치와 무관히 돌아가는 그들만의 바퀴가 있다. 이걸 돌파구로 삼아보자는 게 대통령 당부다. 그런데 참석한 총수들의 공통점이 보인다. 하나같이 문재인 정부 전과자다. 허창수 회장의 GS그룹은 공정위가 털었다. 발주 담합으로 과징금 물고 검찰에 고발당했다. 구자열 회장의 LS그룹은 국세청이 털었다. 총수 일가의 배임, 탈세 등 혐의다. 조현준 회장의 효성그룹은 한두 건이 아니다.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은 지금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재판에 계류 중이고, 신동빈 회장은 교도소에 다녀왔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반기업-친노동-이다. 출범 후 쉬지 않고 기업을 몰았다. 갑질 적폐로 몰았고, 세습 적폐로 몰았고, 국정 농단 적폐로 몰았다. 기업 수사ㆍ조사ㆍ감사 없는 날이 없었다. 그랬던 전과자 총수들을 대통령이 불렀다. 정부와 손잡고 일본을 이겨보자며 손을 내밀었다. 총수들은 하나같이 그러겠노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염치없는 대통령인가. 아니면 속없는 기업인들인가. 참으로 보기 민망한 모양새다. 임진왜란(1592년). 그때 우리 국력은 어땠을까. 인구 1천~1천400만명, 농업생산량 1천200만석 정도였다. 일본이 인구에서 1.3배, 농업생산량에서 1.5배 많았다. 그 일방적 싸움을 구한 건 이순신이었다. 그 이순신을 1597년 정치는 감옥에 넣었다. 짐이 이순신을 용서할 수 없다. 마땅히 사형에 처할 것이로되(1597년 3월 13일ㆍ승정원일기). 그리고 나라가 위태롭자 다시 전쟁터로 보냈다. 거기서 이순신은 죽었다. 기해년(2019년). 이 시대 국력은 어떨까. 2019 GFP(국방력) 순위 한국 7위, 일본 6위다. 2018년 GDP 순위 한국 12위(1조6천194억달러), 일본 3위(4조9천709억달러)다. 이 일방적 싸움을 이번엔 기업이 버티고 있다. 반도체가 소니를, 디스플레이가 재팬디스플레이를 누르고 있다. 이 기업을 2019년 정치는 어떻게 했나. 갑질로, 세습으로, 국정 농단으로 처단했다. 그리고 나라가 위태롭자 다시 불렀다. 힘을 합쳐 싸우자고. 임진왜란(壬辰倭亂)은 다시 이순신을 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해왜란(己亥倭亂)도 다시 기업인을 원하고 있다. 이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바로 5년짜리 눈으로는 안 보이고, 420년짜리 눈으로만 보이는 역사 속 궤(軌)다. 主筆

[김종구 칼럼] 판결의 신뢰, 그리고 판결문의 사족

J판사의 영장 기각률 60%. 나머지 판사들의 기각률 5%. 1990년대 수원지법 얘기다. 영장전담판사 제도가 없었다. 당직 판사가 영장을 심사했다. J판사의 기각률이 유독 튀었다. 기자 여럿이 말했다. 판사에 따라 들쭉날쭉한 건 문제다. 꼬투리를 잡겠다고들 덤볐다. 그의 기각 사유를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어떤 기삿거리도 찾지 못했다. 빌미를 주지 않는 기각사유였다.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 없음. 그로부터 십수 년 지난 2009년. 그가 내부망에 글을 올린다. 대법관 거취에 대한 견해다. 당시 파문이 컸다. 그 글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시위의 형태가 현행법에 저촉된 바가 있다면 그에 따라 결론을 내면 그만입니다. 판사의 입장에서는 진보세력이 보수정권에 대항하여 시위를 했건, 보수세력이 진보정권에 대항하여 시위를 했건 그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J판사다웠다. 영장 60%를 기각해버리던 그 다웠다. 돌아보면 판사들이 대개 그랬다. 판결문은 철저히 법어(法語)로 썼다.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만 봤다. 증거 있으니 유죄라고 썼고, 증거 없으니 무죄라고 썼다. 영장 심사도 그랬다.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만 설명했다. 있으면 구속하라 썼고, 없으면 풀어주라 썼다. 오로지 핵심만 논하는 판사들의 언어였다. 초년 법조 기자 땐 그걸 성의없다고 여겼다. 출입 경험이 늘면서 달리 보였다. 판결문의 힘은 단조로움에 있다. 그랬던 판사들의 법어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이런저런 사족(蛇足)이 늘어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환경부 체크리스트-사건이 그랬다. 판사가 김은경 전 장관 영장을 기각했다. 기각 사유로 600자를 적었다. 그 속에 여러 표현이 등장한다. 최순실 일파 국정농단이라 썼다. 별개 사건에 대한 가치판단적 표현이다. 관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도 했다. 기각 논리의 출발을 법외(法外)에서 찾고 있다.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인다고도 했다. 범의(犯意)를 주관적으로 계량화해 낸 표현이다. 세월호 특조위 방해 판결 때도 그랬다. 서두에 이런 설명이 등장했다. 재판부로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종료하게 된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판결이 아니었다면 따뜻한 말이다. 안쓰러움을 전한 말이다. 하지만, 판결을 선고하는 자리다. 조윤선에 유죄를, 안종범에 무죄를 정하는 판결이다. 여기서 명복을 비는 수사(修辭)가 필요했을까. 짐작되는 바가 없진 않다. 1990년대와 환경이 다르다. 판사의 모든 것이 파헤쳐 진다. 판결문도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어떤 기업인에 대한 영장이 기각됐다. 기각한 판사의 모든 게 폭로됐다. 그 기업인에 대해 부분 무죄가 선고됐다. 판결문이 음절까지 분석됐다. 30년 근무 한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말한다. 요즘 판결문 쓰기 참 무섭습니다. 이래서 길어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위기가 사족을 부르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답이 없다. 60자 기각사유와 600자 기각사유. 어느 쪽에 옳고 그름이 있나? 없다. 사족 없는 판결문과 사족 있는 판결문. 어느 쪽에 옳고 그름이 있나? 없다. 다 같은 기각 사유고 판결문이다. 그럼에도, 이 논제를 끄집어 내 보는 이유는 있다. 판결문은 여전히 정의를 가려내는 보루다. 기각과 무죄가 공격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기각 사유와 판결문구가 트집 잡혀선 안 된다. 괜히 단 사족으로 빌미를 주는건 불행이다. 1990 몇 년 수원지방법원. 영장 기각률 60%와 5%. 엄연한 불균형이었다. 그래도 J판사는 굽히지 않았다. 언론에 책잡히지도 않았다. 그 힘이 법어였다. 정제되고 절제된 법어-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 없음-를 꽉 붙들고 벗어나지 않았다. 관행이 있었다 명복을 빈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꼭 필요한 법어였을까. 2019년을 사는 판사들이면 한 번쯤 토론해봐야 한다. 답은 없겠지만, 판사실 문 걸어 잠그고 얘기해봐야 할 문제다. 主筆

[김종구 칼럼] 구청 없는 화성시, 대한민국 최악의 차별

이렇게까지 넓은 시(市)는 없다. 동쪽에 동탄역이 있다. 서쪽에 탄도항이 있다. 두 지역까지 거리가 50㎞다. 남쪽에 남양방조제가 있다. 북쪽에 송산 새솔동이 있다. 두 지역까지 거리가 30㎞다. 지도 위에 그은 직선거리만 이렇다. 도로를 따라가면 두세 배 길다. 버스 타면 토 나오기 십상이다. 동탄에서 탄도항까지 2시간 37분이다. 좌석 버스를 타고 수원에서 내린다. 다시 시내버스로 한참 가야 도착한다. 경기도 화성시다. 한창 바쁘다. 곳곳에서 땅 파고, 건물 짓는다. 지난해만 1만7천859건의 개발행위가 있었다(2018년 도시계획현황 통계). 전국 1위다. 2ㆍ3위인 강화군(5천657건)ㆍ청주시(5천523건)의 3배가 넘는다. 구청이 있었으면 좀 나았을 거다. 일정 면적 이하 업무를 시와 쪼개 나눈다. 그런데 구청이 없다. 전부 화성시 본청이 끌어안고 있다. 1만8천건을 처리하는 시 공무원도 죽을 맛이다. 시청으로 뛰는 시민 1만8천명도 죽을 맛이다. 구청 없다는 게 도무지 이상하다. 모든 조건은 충족돼 있다. 구청 신설 기준이 인구 50만명 이상이다. 화성시 인구는 5월 말 현재 78만6천183명이다. 50만명은 이미 10년 전에 넘었다. 게다가 면적도 광활하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넓은 지자체다. 1일 업무권이 아니다. 여기에 도시ㆍ농촌ㆍ어촌까지 섞여 있다. 첨단 도시 화성, 어촌 마을 화성이 다 있다. 누가 보더라도 구청이 필요하다. 그런데 안 된다. 행안부가 안 해준다. 안 해주는 이유를 몇 개 든다. 구청 제도를 바꾸려 한다고 한다. 현행 제도에 문제가 있어서란다. 그런데 말 뿐이다. 바꾸려는 움직임은 없다. 그냥 안 해주는 이유일 뿐이다. 다른 곳과의 형평성도 얘기한다. 수원시 등 몇몇이 요구하고 있긴 하다. 화성시만 해주기 어렵다고 한다. 비교부터 틀렸다. 그런 데는 30만명이 넘으니 더 달라는 요구다. 화성시는 80만명 넘으니 하나라도 달라는 요구다. 시급성부터가 다르다. 인력ㆍ예산을 핑계 삼기도 한다. 다른 정부라면 이 핑계를 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부는 아니다. 2022년까지 공무원 17만4천명을 늘리겠다는 정부다. 공무원 늘렸더니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자랑-2018년 3분기 공공행정 및 국방 생산력 3.7% 증가ㆍ한국은행 발표-하는 정부다. 여기서 몇 명 쓰면 다 될 일이다. 그걸 안 해주고 있다. 그나마 전제부터 안 맞는다. 출장소 130명 있다. 본청과 조정하면 늘리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게 안 해주려고 하는 소리다. 시민 우습게 여기는 말장난이다. 정치인 밥그릇이었어도 이랬겠나. 2010년, 의석은 0.5석-오산시와 묶어서 하나-이었다. 이게 2004년 1석으로 늘었다. 2008년 다시 2석으로 늘었다. 2016년에는 3석까지 늘어났다. 무슨 빌미만 생기면 늘렸다. 헌재가 지역구 편차를 지적하자, 큰일 날 것처럼 늘렸다. 동탄ㆍ송산ㆍ향남 도시 계획이 나오자, 미래를 대비한다며 늘렸다. 구청 좀 달라는 시민 애원은 그렇게 묵살하는 동안 정치 밥그릇은 6배나 늘렸다. 화성시민을 가벼이 여기기 때문이다. 균형(均衡)이란 게 있다. 사전은 이렇게 푼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 이 균형이 지금 대한민국의 정책 가치다. 국가균형발전정책을 떠받치는 이념과도 같다. 이 가치를 화성시에 포개보자. 서울시민 976만명에 구청 25개 주고, 화성시민 80만명에는 안 줬다. 인구 대비 2 대 1, 불균형이다. 면적 121㎢ 수원에는 구청 4개 주고, 면적 688㎢ 화성에는 안 줬다. 면적 대비 22대 1, 불균형이다. 완전히 기운 것이다. 한쪽만 치우친 것이다. 이런 게 바로 헌법상 지역균형발전 의무 위반이라는 것이다. 동구청이어도 좋고, 서구청이어도 좋다. 동탄구청이어도 좋고, 남양구청이어도 좋다. 지금 해줘도 만시지탄이다. 그래도 좋으니 해주라. 이게 화성에 사는 국민 80만명이 지치도록 요구해온 숙원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계속된 朴 시장 도발, 계속된 李 지사 침묵

경기도민에겐 배신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충청남도였다. 다른 때도 아닌 수도이전 정국이었다. 이익이 칼처럼 맞서 있던 충남이었다. 그런 곳과 상생 협약을 들고 나왔다. 산업 클러스터ㆍ산업단지를 만들자고 했다. 경제자유구역도 함께 하자고 했다. 손학규 경기지사가 추진한 깜짝 이벤트였다. 수도이전 반대를 역설하던 그다. 그 정책의 방향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충남과 손을 잡은 것이다. 2005년 1월27일이다. 또 다른 배신이 등장했다. 모든 걸 세종시로 옮기자고 했다. 수도이전을 헌법에 새기자고 했다. 행정부는 물론, 국회와 청와대까지 다 옮기자고 했다. 이번 선창자(先唱者)는 남경필 경기도지사였다. 수도권에 인구가 너무 많이 몰립니다여기서 부패가 생깁니다. 듣는 경기도민 속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얼마뒤엔 경기도를 없애자고까지 했다. 경기도를 포기하고 서울과 합쳐 더 큰 대한민국으로 나가자. 2017년 3월 즈음이다. 도민이 화낼 일이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두 지사가 왜 그러는지 이해해줬다. 도민에게 그건 정치였다. 심대평 충남지사와 함께 한 손학규 경기지사. 그 순간은 대통령 후보군이었다. 수도이전 개헌을 말하던 남경필 경기지사. 그 순간은 대통령 경선 후보였다. 경기도민이 그걸 정확히 구분하고 있었다. 손 지사도, 남 지사도 행정에선 그러지 않았음을 인정해서였다. 도민을 위한 투쟁의 언어가 훨씬 많았었음을 알고 있어서였다. 이제 이재명 지사다. 안 그래도 정평있다. 꼭 필요한 말을 꼭 집어 말한다. 2010년, 부채 투성이 시정(市政)을 넘겨받았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한다고 했다. 거덜난 살림을 알린 더 없는 언어였다. 2014년, 국정원의 이석기 사건에 휩쓸려 갔다. 국정원 사찰을 규탄한다고 했다. 정치적 위기를 뒤집은 극적인 언어였다. 2016년, 박근혜 국정 농단에 모두가 분노했다. 그때 박근혜 구속을 처음 말했다. 다들 그의 언어를 사이다라고 했다. 이런 그의 입을 자극할만한 일이 이어진다. 대부분 서울발(發)인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철도차량기지를 좋아하는 시민은 없다. 소음ㆍ공해를 유발하는 주민 기피시설이다. 이런 걸 경기도로 넘기려 한다. 구로 차량기지는 서울 구로에서 경기 시흥으로, 신정 차량기지는 서울 양천에서 경기 부천으로 옮기려 한다. 모두 5곳인데 넓이만 축구장 150개 크기다. 시흥 부천시민이 지금 난리다. 김포공항 국제선 증설 추진도 있다. 주변 서울을 잘 살게 하겠다며 그린 그림이다. 굉음 폭탄이 날아들 경기도민이 분노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직접 야기한 도발도 있다. 서울공항 얘기를 불쑥 던졌다. 성남공항을 민수용으로 전환해 수도권 내 수요 대비 부족한 공항 증설 효과를 노려야 한다. 기자들 잔뜩 모인 데서 밝힌 구상이다. 서울공항은 성남 도심에 있다. 군용기 몇 대 뜨는 지금도 시민은 죽을 맛이다. 이걸 민간공항으로 만들자는 얘기다. 성남ㆍ용인ㆍ수원을 소음 지옥으로 만들겠단 것이다. 성남시민이 대책위를 만들었다. 망언이라며 규탄한다. 누가 봐도 행정의 영역이다. 도민의 삶을 직접 파괴하는 일이다. 다들 이 지사가 한마디 해줄 거라 기대한다. 그런데 없다. 차량기지에도, 공항발언에도 없다. 강남 한복판에 차량기지 세우라고 할 만도 한데. 비행장 옆 옥탑방에서 살아보라고 할 만도 한데. 영 말이 없다. 왜 침묵하는 걸까. 대권을 향한 무시전략일까. 항소를 앞둔 재판전략일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연유라도 있을까. 무엇이든 소용없다. 다 옳지 않다. 이건 정치가 아니다. 행정이다. 개인 일이 아니다. 1천300만 일이다. 무조건 말을 해야 한다. 경기도민 속을 시원히 긁어 줘야 한다. 그게 경기도지사의 책임이다. 짐작건대 오래가진 않을 거다. 곧 다시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의 정치언어가 불을 뿜을 때가 올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때를 위해서라도 지금 말해둬야 한다. 정치가 아닌 행정의 언어를 성실히 쌓아놔야 한다. 그래야, 그때 도민이 이해한다. 손학규의 입-충남과 상생 선언-도, 남경필의 입-수도이전 개헌-도 도민은 못 들은 척 봐줬다. 옳아서가 아니었다. 앞서 쌓아온 행정의 언어가 많아서였다. 도민을 위한 투쟁의 언어가 많아서였다. 主筆

[김종구 칼럼] “살기 좋은 수도권” -사라진 노무현 정신의 반쪽

재미 좀 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다. 수도 이전을 지칭해 말했다. 대통령 될 때 득 좀 봤다로 들렸다. 원래 그의 표현법이 그랬다. 거친 말로 쉽게 풀었다. 그래서 비롯된 설화(舌禍)도 많다. 이 말도 그랬다. 그에게 수도이전은 가볍지 않았다. 국정 철학이었고 기득권과의 쟁투였다. 재미 좀 봤다는 그래서 본질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의 정치 공학적 셈법만은 역력했다. 그는 분명 수도 이전을 표로 꿰고 있었다. 이 계산법 역시 노무현 정신의 유산이다. 십수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살아있다. 총선이 다가오자 또 등장한다. 민주당 발(發) 공공기관 이전 공약설이다. 내년 총선 때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122곳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약을 내놓을 것을 당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다. 당 사무총장 겸 지방혁신균형발전추진단장의 말이다. 공약은 총선 본부의 문패(門牌)다. 그 문패에 수도권 공공기관 빼겠다라 붙이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재미 좀 볼 듯하다. 지방(地方)이 벌써 움찔거린다. 부지 용도 변경을 통한 주차장 확보 등 기관 이전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대구시의회). 대전시에 신속 대응팀을 꾸려 종합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前 대전시 일자리 특보). 강원도가 앞장서 정리해야 시ㆍ군간 유치 갈등 없다(강원일보 사설). 유치전쟁의 시작이다. 시의회, 공직 사회, 언론 등이 다 나선다. 공약은 이미 검토에서 확정으로 간듯하다. 한심한 건 수도권 정치다. 이번에도 입을 닫고 있다. 모든 게 수도권을 향할 직격탄이다. 경기ㆍ인천ㆍ서울 어느 동네에선가 현실화될 일이다. 122개가 아니다. 정부 출자ㆍ투자회사까지 뺄 기세다. 500개쯤 된다는 예상치까지 나돈다. 이런데도 누구 하나 나서 반대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뭐가 빠지는지 알려주는 이도 없다. 몇 달 전에는 다 가는 건 아니다(김태년ㆍ성남 수정구)라는 위로라도 있었다. 이제 그마저도 없다. 신성불가침의 노무현 정신이어서 이러나. 그런데 수도권의 기억엔 다른 노무현 정신이 있다. 공공기관 이전 후 수도권에 대한 약속이다. 서울 사람들도 조금도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공공기관이 이전하고 남은 빈땅을 정부가 제값을 다 못 받는 한이 있더라도 용도를 녹지 등으로 해서 서울시에 숨 쉴 공간으로 해주면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됩니다. 2007년 5월 30일 발언이다. 2단계 국가균형발전정책 토론회장에서 했다. 이 포항 선언을 수도권이 다 들었다. 현직 대통령의 공언이다. 그게 그 후 어찌 됐나. 경기도에서만 47개 공공기관이 나갔다. 이 중 13개 부지에 아파트를 지었다. 15개 부지는 매각 이후 방치돼 있다. 10여개 부지는 아예 팔리지도 않았다. 무려 42차례나 유찰되는 부지도 있다. 그동안 정부는 외면했다. 매입해준 부지도 없다. 녹지로 바꿔준 부지도 없다. 숨 쉴 공간으로 해준 부지도 없다. 사람 많다면서 아파트만 때려 짓게 했다. 거짓으로 끝난 대통령 약속이다. 공공기관 이전은 노무현 정신이 맞다. 그런데 그 정신은 두 가지 약속을 품고 있다. 하나는 지방에 공공기관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건 지금도 철저히들 따르고 있다. 122개 또는 500개를 더 빼겠다고 한다. 지방에 줄 선물 보따리처럼 흔들어 댄다. 다른 하나는 수도권에 대한 후속 조치다. 이건 12년째 철저히 뭉개고들 있다. 10년째 버려두고 있고-성남ㆍLH 사옥-, 3만평짜리 흉물로 방치하고 있다-안산ㆍ한국해양과학기술원-. 이쯤 되니 보이는 미래도 훤하다. 2020년 2월 전후, 결국 민주당은 전국 공약으로 채택할 것이다. 2020년 4월 15일, 민주당은 또 한 번 재미 좀 볼 것이다. 그리고 2020년 4월 이후, 공공기관 수백 개가 움직일 것이다. 그때 수도권 모습도 훤하다. 빈 부지, 빈 건물이 속출할 것이다. 주인 못 찾는 유찰(流札)이 거듭될 것이다. 주변 상가마다 한 집 건너 임대 문의가 나붙을 것이다. 예언이랄 것도 없다. 그간의 학습이 그렇다. 수도권의 후회. 이것도 훤하다. 2차 공공기관 이전은 안 된다고 막아 볼 걸, 전국 공약은 수도권 무시라고 싸워 볼 걸, 이전 부지 챙긴다던 노무현 약속 지키라고 따져 볼 걸. 그때 가면 부질없다. 하려면 지금 해야 한다. 2차 공공기관 이전은 안 된다고 막아야 하고, 전국 공약은 수도권 무시라고 싸워야 하고, 이전 부지 챙긴다던 노무현 약속 지키라고 따져야 한다. 따져 물어도 된다. 이 또한 수도권에 남긴 노무현 정신이니까 말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건설 노조의 구호? 현장에선 적폐가 되고 있다

옆 사업장 얘기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합니다. 지켜보기도 답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전해주는 얘기다. -4월 26일. 남양주시 호평동 한 공사현장. 두산중공업이 아파트를 짓는 곳이다. 오후 1시가 되자 작업자들이 사라졌다. 형틀 작업을 하던 60여 명이다. 긴급히 서울로 간다고 했다. 민노총과 한노총 간 충돌 현장이다. 회사와는 아무 상의도 없었다. 느닷없이 공사장을 텅 비웠다. 1시 이후 모든 작업이 중단됐다. 작업자들이 다시 나타난 건 오후 4시다. 줄줄이 출퇴근용 안면인식기를 찍었다. 정상적인 퇴근으로 맞춰놓기 위해서다- 듣기에도 황당하다. 무려 60명이 단체로 보인 행동이다. 무단히 이뤄진 태업(怠業)이다. 뒤늦게 안면인식기 앞에 섰다. 노동 시간을 속이려 한 사술(詐術)이다. 모든 손해를 떠안은 건 회사다. 계획 없이 틀어졌을 공기(工期)다. 현실은 뒤바뀌었다. 작업자들은 당당했고 회사는 궁색했다. 일당의 상당 부분을 임금으로 줬다. 일당의 비율도 원칙이 있을 리 없다. 어떤 공구는 50%, 어떤 공구는 70%다. 행세 좀 하면 많이 받은 듯하다. 지들 밥그릇 싸움하는데 왜 주민들이 피해를 봐야 하나요(2018.06.21). 아이디 장클가 올린 글이다. 수원 광교 주민들이 힘들어했다. 새벽부터 소음에 시달렸다. 건설 노조가 틀어댄 확성기였다. 일감을 달라는 시위라고 했다. 그때 생긴 주민 분노가 아직도 인터넷에 남아 있다. 성남시 대장 신도시 현장은 요즘 그렇다. 역시 건설노조 확성기다. 아침 6시부터 시작되는 소음이 온 동네를 뒤흔든다. 발화산을 넘어 용인시 지역까지 뒤덮는다. 조용히 살고 싶어 들어온 사람들이다. 갑자기 지축을 흔드는 노동가요가 기상나팔이 됐다. 소음 기준치란 게 있다. 60dB(데시빌)을 넘으면 안 된다. 소리 줄이라고 명령해야 한다. 불응하면 확성기를 압수해도 된다. 하지만, 건설 노조에는 소용없다. 그런 경찰 단속은 들어보지 못했다. 출동하면 줄였다가 다시 켠다고 변명한다. 이걸 말이라고 하나. 건설노조 아니었어도 이랬을까. 결혼 전날 함 사세요!에도 신고 들어왔다며 출동하는 경찰 아닌가. 도대체 대한민국 공권력은 어디에 있습니까(황△△ㆍ2018. 6.29). 언론도 책임 있긴 마찬가지다. 건설노조를 주어(主語)에서 뺀다. 타워 크레인이 넘어져 사람이 죽었다. 그 타워 크레인이 낡아서 난 사고였다. 그 배경에 건설 노조의 사용 강제가 있었다. 그런데도 기사에 한 줄 걸치고 만다. 건설 노조 횡포 제보가 숱하게 온다. 회사가 위협받고, 현장이 마비되고 있다고 호소한다. 여기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써 봐야 안 고쳐질 거라고, 공권력이 따라 주지 않을 거라고, 지레 결론 내 버린다. 그 사이 건설 현장은 별스런 세상이 됐다. 불법이 묵인되고, 위법이 통용되는 해방구가 됐다. 어떤 투쟁 현장에 내 걸린 현수막이다.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적폐청산! 건설 노동자의 힘으로 건설 현장 바꿉시다. 이 얼마나 정의로운 구호인가. 그런데 그 구호 아래 모습은 전혀 다르게 간다. 작업을 팽개친다. 위법이다. 출퇴근 조작한다. 불법이다. 확성기 틀어댄다. 횡포다. 하나같이 언젠가는 적폐로 내몰릴 업(嶪)이다. 4월 26일, 그 호평동 현장 회사. 분명히 할 말이 있을 그 회사. 하지만, 말을 못한다. 오히려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이유를 다른 현장 직원이 설명한다. 노조에 잘 못 찍히면 해코지 당합니다. 노조가 집회하면 현장도 마비시킵니다. 노동부가 막아줘요? 경찰이 책임져 줍니까? 회사만 무너지는 겁니다. 그 회사도 그걸 무서워하는 걸 겁니다. 그러면서 이 말을 덧붙인다. 조만간 옆 회사 두 개도 폐업한답니다. 主筆

[김종구 칼럼] 그저께 대통령·이재용 회동에도

눈에 띄는 앵글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함께 있다. 둘 다 환히 웃는다. 첨부된 기사도 정스럽다. 원대한 목표 설정에 박수를 보내며 정부도 적극적으로 돕겠다 (대통령이) 당부하신 대로 확실히 1등을 하도록 하겠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의 행사장이다. 비메모리 분야 도전을 위한 선포식이다. 1등 기업이 세계에 던진 당찬 포부다. 대통령이 이 의지에 힘을 실어줬다. 더 없는 기업프렌들리 모습이다. 그런데 삼성은 웃지 못한다. 전날 삼성 임원 등 둘이 구속됐다. 분식회계를 했다는 혐의다. 수사의 최종 목적지는 이재용 부회장이다. 삼성의 승계 과정이 타켓이다. 그룹이 발칵 뒤집힐 만한 일이다. 이런 수사가 하필 29일 이뤄졌다. 대통령 삼성 방문 하루 전이다. 삼성 주변에선 다 알고 있던 방문이다. 삼성 간부들은 일정표에 VIP라 적어놓기까지 했다. 어찌된 택일(擇日)인가. 여기에 우리가 모르는 속내라도 있는건가. 괜한 억측이라 할 게 아니다. 한 두 번이 아니다. 작년 9월 9일,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만났다. 인도 노이다 공장 준공식에서다. 바로 그날 검찰이 삼성전자 사장 집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같은 달 16일 두 번째 만남이 공개됐다. 대통령 방북에 이 부회장이 동행한다는 발표였다. 이번에도 하루 뒤 검찰이 삼성에버랜드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제 대통령이 삼성전자를 방문했다. 역시 검찰이 삼성 계열사 임원들을 잡아들었다. 그새 삼성엔 공식이 생겼다. 부회장이 대통령 만나면 검찰 수사 들어온다. 함께 정리된 추론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계와 떨어질 수 없다. 노동계의 변함없는 목표는 삼성이다. 무노조 삼성의 완벽한 접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삼성은 일자리뿐이다. 방문과 격려도 오로지 일자리에 국한한다. 진심에서 가까워질 수 없다. 그 증거가 때마다 등장하는 검찰 수사다-.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나올법한 추론이다. 대기업 다잡기, 물론 우리만 이런 건 아니다.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기업 닦달이 어지간하다. 할리데이비슨이 지난해 이런 발표를 했다. 일부 생산 시설을 미국 밖으로 옮기겠다. 그러자 트럼프가 트윗으로 협박했다. 미국 밖으로 나가면 전에 경험하지 못한 세금을 안겨주겠다. 2017년 도요타에도 그랬다. 멕시코에 공장을 짓겠다고 밝히자 바로 협박했다.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막대한 국경세를 내야 할 거다. 우리와 다른 건 분명한 목적이다. 기업 닦달의 목적을 미국인이 다 안다. 국민에 줄 일자리 창출이다. 할리데이비슨도 그래서 붙잡았고, 도요타 공장도 그렇게 끌어들였다. 그 결과로 미국 일자리는 폭증했다. 지난 4월 고용만 25만명(비농업부문)이라는 전망이 나왔다(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분석). 1월 고용도 31만2천명이었다. 우리의 기업 다루기도 그런가. 목적이 일자리에만 있나. 많은 국민이 그렇게만 보지 않는다. A는 전(前) 대기업 임원이다. 얼마 전 퇴사했다. 많이 편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대화가 시원 시원하다. 권력 얘기에도 이제 멈칫대지 않는다. SK 반도체 입지를 정부가 결정해요? 장관이라는 사람이 면밀히 검토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해도 되나요. 이런 말도 한다. 작년 인도 삼성 공장 준공식은 삼성의 잔치죠. 그런데 청와대가 우리가 이재용을 초청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주객이 바뀐 말인데 언론은 또 그대로 쓰더군요. 결국에는 신뢰의 문제다. 서로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환하게 웃었으면, 그 웃음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했으면, 그 약속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 투자를 말했으면, 그 계획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했으면, 그 약속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이게 없다. 그 책임의 절반이 권력에 있다. 한자락 깐 듯 도무지 알수 없는 이 권력의 기업관(企業觀)말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수도권 역차별 투쟁, 이 끝없는 시지프 형벌

코린토스의 왕이었다. 교활하고 못된 지혜가 많았다.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저승에 보내졌다. 거기서도 꾀를 내 하데스를 죽였다. 저승의 신을 죽인 대가는 컸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형벌이 내려졌다.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는 벌이었다. 밀어올린 바위는 또다시 굴러 떨어졌다. 올리면 떨어지고 또 올리면 또 떨어졌다. 시지프(Sisyphus)는 영원히 바위를 밀어올리고 있다. 신화(神話)에 남은 형벌이다. 1월 29일. 역차별 투쟁이 있었다. 신분당선 예타 면제 촉구다. 해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외면됐다. 사업을 못하게 됐다. 수원시민이 분노했다. 규탄 시위가 이어졌다. 시장ㆍ국회의원이 거리로 나섰다. 도ㆍ시의원은 광화문으로 갔다. 경기일보도 나섰다. 내게도 작지만 할 일이 있었다. 정부가 잘못했다고 썼다. 국회의원이 나서라고 썼다. 뒷짐 지면 안 된다고 썼다. 어지간히도 썼다. 그러면서 작은 희망이 생겼다. 그때, 전언(傳言)이 왔다. 잘할 테니, 그만 쓰라고 해라. 잘 될 것 같으니 그만 써도 된다는 얘기였다. 신분당선 지역 의원이다. 그에겐 신분당선이 전부다. 신분당선이 해결되면 역차별 투쟁도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만의 입장이다. 역차별은 숱하게 많다. 다른 시군 어디서든 튀어나올 수 있다. 다가올 역차별에 맞서 계속 써대야 했다. 신분당선 역차별이 남긴 도민의 분노를 적나라하게 써놔야 했다. 그리고 2월. 다른 역차별 전쟁이 시작됐다.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 결정이다. 135만평의 개발 계획이다. 120조원이 투자되는 사업이다. 또다시 지방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경상도, 충청도와 경쟁했다. 그 지역 언론들이 거칠게 써댔다. 우리 경기일보, 경인일보, 중부일보도 써 댔다. 2월 21일 결과가 나왔다. 경기도가 이겼다. 용인 원삼으로 결정됐다. 50년간 외면받던 시골 동네다. 주름 팬 농부가 오랜만에 웃는다. 역차별 전쟁이란 게 어차피 그런 거다. 합리적 논리 따윈 통하지 않는다. 안 간다는 기업을 세무로 압박했다. 그렇게 경기도 기업을 지방으로 빼갔다. 안 간다고 버티니까 법을 바꿨다. 그렇게 수도권 공기관을 지방으로 빼갔다. 여기에 대고 무슨 논리를 말하나. 똑같이 떼쓰는 수밖에 없다. 반도체 산업의 국가 경쟁력? 이런 접근이면 통했을 리 없다. 분당선 이어 또 역차별이냐고 떼 썼다. 그랬더니 원삼이 됐다. -박광온 의원에 묻는다. 우리가 신분당선 역차별 계속 써대니까 원삼면이라도 얻은 것 아닌가요. 밥 자리에서라도 확인받고 싶다. 감사하게도 원하는 답을 준다. 그럼요. 그랬으니까 된 거죠.- 그리고 어제. 역차별 투쟁거리가 또 생겼다. 경기도가 특별한 제안을 했다. 도내 8개 시군-김포ㆍ파주ㆍ연천ㆍ양주ㆍ동두천ㆍ포천ㆍ양평ㆍ가평-을 수도권에서 빼달라고 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수도권이다. 6개 지역은 군사분계선 접경지다. 2개 지역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다. 군(軍)에 묶여 왔고, 물(水)에 묶여 왔다. 여기에 수정법까지 묶어놨다. 수정법만이라도 빼달라는 요구다. 당연히 들어줄 요구다. 논리로 봐도 푸는 게 맞다. 지난 3일 자 정부 논리가 그랬다. 예타조사 제도를 개편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평가 항목을 구분했다. 수도권 내 접경ㆍ낙후 지역은 비수도권으로 분류하겠다고 발표했다. 8개 시군을 딱 지목됐다. 그랬으면 수정법도 바꾸는 게 옳다. 모법(母法)을 바꿔야 법률 질서에 맞는다. 이런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지방이 또 반대할 것 같다. 수정법을 건들면 안 된다며 또 들고 일어날 것 같다. 그러면 어쩔수 없지 않나. 또 싸워야 한다. 지긋지긋한 역차별 투쟁을 또 해야 한다. 1천300만 경기도민에 지워진 시지프 형벌이다. 신분당선 때 싸웠다. 반도체 클러스터 때 또 싸웠다. 8개 시군 수도권 배제도 또 싸워야 한다.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숙명이다. 달게 알고 가야 한다. 알베르 카뮈도 시지프 형벌을 그렇게 정의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도 그의 것이다산정(山頂)을 향한 투쟁 그 자체로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著 시지프 신화 중에서). 또 가보자. 이번엔 8개 시군 수도권 배제다. 主筆

[김종구 칼럼] 혁명의 무기, 그 ‘깨끗한 척’의 역습

이만한 이력도 없다.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카이스트에서 공부했다. 이 시대 최첨단 분야라는 통신 공학이다. 학위도 2년만에 석사, 4년만에 박사를 했다. 이후 줄곧 젊은 학자들을 가르쳤다. 인생이 곧 과학이고, 기술이고, 정보통신이다. 여기에 조직을 건사해 본 경험까지 있다. 한국통신학회의 회장을 맡았던 이력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더 없는 조건이다. 대통령이 그를 장관에 지명했다. 조동호 교수다. 청문회는 늘 그랬다. 먼지 하나까지 털었다. 과학과 무관한 부(富)를 파헤쳤다. 세(貰) 수입을 따져 물었다. 많이 올린 게 나왔다. 어디에 썼냐고 캤다. 아들 유학비에 보탰다고 했다. 하필 아들이 탄 승용차가 포르셰였다. 야당의 스토리는 완성됐다. 세입자 등쳐서 아들 유학비 내주고 포르셰까지 사줬다! 비판 여론이 꽤 됐다. 하지만 낙마 사유까진 아닌듯했다. 청와대도 포르셰 가격까지 대며 옹호했다. 그러다 갑자기 바뀌었다. 지명을 철회한 청와대가 사유를 밝혔다. 해외 부실 학회에 참석했던 사실이 확인됐더라면 후보에서 제외됐을 것이다. 부실학회 참가 전력이 문제였다. 2017년 학회를 다녀왔다. 제9차 월드바이오마커 콩그레스다. 주관한 단체가 오믹스(OMICSㆍ인도)다. 미국이 규정한 부실학술단체다. 일명 해적학술 단체다. 여기에 한번 다녀왔고 이 이력이 사달이었다. 학계 일부의 이견이 있다. 과기부 장관 못할 사유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청와대도 아쉬운 듯했다. (부실학회인지)모르고 간 학자들도 꽤 있다며 두둔했다. 국민소통수석의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 유독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 또는 연구기관의 학자 1천300명이다. 얼마 전 똑같은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오믹스와 와셋(WASETㆍ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ㆍ터키) 학회에 참가했다는 죄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부실학회로 찍자, 우리 교육부가 덩달아 칼을 뺐다. 그때 징계 받은 1천300명이다. 이들이 충분히 분노할 이유가 있다. 윤도한 수석의 해명-모르고 간 학자들도 꽤 있다-은 바로 그때 이들의 하소연이었다. 애초에 문제 있는 징계였다. 지구 상에 부실학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와셋과 오믹스만 꼭 집었다. 규정도 모호하다. 국제 학술대회 인정 조건이 있다. 4개국 이상 참여, 구두발표 논문 20건 이상이다. 두 기관의 학술대회 상당수가 이 조건을 충족한다. 당연히 억울할만 하다. 많은 학자들이 몰랐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냉정했다. 참석자는 무조건 징계했다. 기준도 획일적이었다. 참석 횟수로만 갈랐다. 1회 참가 주의ㆍ경고, 2~6회 참가 경징계, 7회 이상 참가 중징계였다. 과학계에 대입한 음주운전단속식 분류였다. 대학들도 탄원했다. 학자의 인생이 달린 징계다. 사안별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막무가내였다. 자정을 위해 노력하는 계기로 삼으라며 밀어붙였다. 그야말로 과학계에 들이댄 적폐청산의 칼날이었다. 그때의 깨끗한 척이 부메랑이 됐다. 청와대로 날아들었다. 후보자가 다녀온 지 몰랐다고 청와대가 변명하자, 우리 1,300명은 그토록 샅샅이 뒤지더니라며 학자들이 비난했다. 모르고 간 학자도 있다고 청와대가 두둔하자, 우리도 모르고 갔는데 징계하지 않았느냐며 학자들이 비난했다. 결국, 청와대가 고개를 숙였다. 지명 철회라는 수모를 당했다. 석 달 전만 해도 서슬 퍼렇던 정부였는데, 자정하라던 훈육이 민망해졌다. 혁명이란 게 대체로 그렇다. 시작하는 무기는 선명성이다. 쇄신과 청산을 문패로 내건다. 그러다가 그 늪에 스스로 빠진다. 문재인 정부도 촛불혁명 정부다. 선명성을 무기로 삼았다. 쇄신과 청산을 문패로 달았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그 늪에 빠져들었다. 지명 철회, 자진 사퇴로 얼룩진 이번 청문회도 그 중 하나다. 학자 1천300명을 징계하라고 몰고, 자정(自淨)하라고 몰더니, 바로 그 기준에 걸려 괜찮은 인재를 버리고 말았다. -깨끗한 척의 끝은 그 깨끗한 척의 역습이다- 이 평범한 진리의 예(例)가 문재인 정부 곳곳에서 쌓여가고 있다. 主筆

[김종구 칼럼] 罪 되는 관행, 罪 안 되는 관행

자르는 순서가 있다. 제일 먼저는 사자(使者)다. 위의 뜻이라고 전한다. 그래도 버티면 감사(監査)다. 서류를 왕창 빼앗아 간다. 또 버티면 신상털기다. 법인 카드 내역까지 들춘다. 목욕탕 때 민 돈도 다 깐다. 그래도 버티는 독종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쓰는 무기는 망신주기다. 언론에 슬쩍 흘린다. 넘겨받은 언론이 정리를 시작한다. 이쯤되면 천하의 몹쓸 인간이 된다. 너덜너덜해지고 결국 사표를 쓴다. 흔히 봐 왔던 전임자 자르기다. 박정길 판사가 잘 봤다. 산하기관 자르기는 관행이다. 어느 정부나 그랬다. 출범과 동시에 자르기 시작했다. 매번 던지는 화두는 통치철학이다. 새 정부의 통치 철학과 안 맞는다. 그 판단도 권력이 한다. 안 맞는다고 하면 끝이다. 어차피 정신의 영역이다. 잘 맞는다고 증명할 재간이 없다. 그리곤 순서대로 간다. 사자가 통고하고, 감사에 착수하고, 신상문제 털고, 언론이 망신준다. 박 판사는 환경부도 그런 관행이라고 했다. 그럼, 박근혜 블랙리스트는 어땠나. 출범과 함께 예술계를 조였다. 명단을 만들어 돈줄을 막았다. 그때 기준 삼은 화두가 통치이념이다. 새 정부의 통치 이념과 안 맞는다. 이 역시 정신세계다. 박 정권이 안 맞는다고 결정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잘 맞는다고 반박할 방법은 없었다. 통치 철학이 관행이면, 통치 이념도 관행이다. 그런데 그때 법원의 처분은 달랐다. 박근혜 문화부는 나쁜 죄인이라 했다. 박정길 판사가 든 관행이 또 있다. 채용 혐의다. 청와대가 챙긴 박모씨가 있다. 환경 공단 상임 감사직을 지원했다. 답안재료를 미리 건네 줬다고 한다. 그런데 일이 꼬여서 떨어졌다. 서둘러 산하기관 회사의 대표를 줬다. 그린에너지개발이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가 GS, 코오롱과 공동 출자했다. 법률상 민간 회사다. 어엿한 이사회가 있었을 텐데. 어려움 없이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이것도 박 판사의 논리에서는 관행에 포함된다. 그럼, 박근혜 각료들은 어땠나. 안종범 수석이 사람을 취직시켰다. KT 전무에게 압력을 넣었다. 관행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법원은 유죄로 판결했다. 시중 은행의 채용 비리가 있었다. 시중 은행장 등 38명이 기소됐다. 은행 측은 민간 기업의 인사권이라고 주장했다. 경영을 고려한 관행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냉정했다. 지원자에게 좌절과 배신감을 주고 우리 사회의 신뢰를 훼손했다고 했다. 은행장을 법정에서 구속했다. 법원이 둘인가. 둘인가 보다. 하나는 관행을 인정한 박정길 법원이다. 김은경 장관을 풀어준 논리다. 다른 하나는 관행을 인정 안 한 非박정길 법원이다. 박근혜, 은행장들을 처벌한 논리다. 이걸 본 국민도 갈라섰다. 박정길 논리가 옳다는 국민과 다른 논리가 옳다는 국민이다. 답을 찾을 일은 아니다. 그럴 능력도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한 가지 토는 달아둘까 한다. 박근혜 관행 유죄와 김은경 관행 기각. 하나는 틀려야 법이다. -상인 쿨리가 길을 간다. 짐꾼, 길잡이와 출발했다. 도중에 짐꾼과 친해진 길잡이를 자른다. 짐꾼이 앙심을 품고 있다고 여겼다. 한밤 중 짐꾼이 쿨리에게 물통을 건넨다. 쿨리는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놀란다. 순간 총을 쏴 짐꾼을 죽인다. 재판은 상인 쿨리 편이다. 짐꾼의 선행은 예외다. 방어하려고 쏜 것이 관행이다.- 희곡 예외와 관습이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작가 브레히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잘못된 관습과 제도에 저항하라! 박정희ㆍ전두환 정권이 그냥 두지 않았다. 공연해선 안 될 금극(禁劇)으로 묶었다. 이유가 뻔하다. 관습과 질서에 도전할까 두려워서다. 2017년 박근혜 몰락이 갖는 법률(法律)적 의미도 거기 있다. 우리 법 역사의 브레히트적 전환이었다. 그릇된 관행-인사 횡포ㆍ특활비 수수 등-에의 단죄였다. 이 정부가 신봉하는 촛불 정신, 그 근본도 결국은 관행과의 결별이다. 그런데 그게 부활했다. 하필, 촛불의 정리자였던 법원에서 부활했다. 도주 우려 가능성? 없다고 봐도 된다. 증거 인멸 가능성? 없다고 해도 된다. 구속 영장? 얼마든지 기각해도 된다. 하지만 관행은 쓰지 말았어야 했다. 관행을 기각 사유로 들어선 안 되는 거였다. 그러니까 그날부터 설명이 안 된다. 대한민국 법률이 설명 안 되고, 앞서 행한 재판이 설명 안 된다. 主筆

[김종구 칼럼] ‘안보 걱정 국민’을 ‘전쟁론자’로 몰면 안 돼

용병 172명이 정규군 8만명을 물리친다. 전사자는 한 쪽 0명, 다른 쪽 4천명이다. 스페인-잉카 전쟁이다. 따져 볼 것도 없다. 무기의 차이였다. 스페인은 대포, 화승총, 강철 검, 기병으로 공격했다. 잉카는 흑요석 돌 도끼(마카후이틀), 돌 창, 상어 이빨로 방어했다. 두 문명 간 차이는 4천 년이다. 천연두설, 신(神)영접설은 차라리 설화(說話)에 가깝다. 재미로 갖다 붙인 사족일 수 있다. 어차피 무기 불균형에서 온 역사 속 증명이다. 그 증명은 현대에도 적용된다. 이제 핵(核)이다. 상대 전력을 제로(0)로 만든다. 맞서볼 무기도 오로지 핵이다. 핵을 가진 쪽이 이긴다. 없는 쪽은 진다. 그 핵이 북한엔 있고 남한엔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했다는 말이 있다. 내 자식들이 평생 핵을 짊어지고 살기를 원치 않는다. 비핵화의지 표명이라고 반기는 이도 있다. 달리 해석한 이도 많다. 당신 자식들이 평생 핵을 짊어지고 살 수 있다. 주어 하나로 바뀌는 소름 돋는 문장이다. 그 사람들-문장을 바꿔 듣는-은 불안하다. 남북 대화도 다 아슬아슬하다. 서해 5도를 풀어줬다. 1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다. 군사 분계선도 풀어줬다. 2차 남북정상회회담 이후다. 북한도 똑같이 풀었다고는 한다. 서해 5도도 풀었고, 군사분계선도 풀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걸 안 풀었다. 핵무기다. 그 사람들에 비친 남북대화는 그래서 불평등이다. 손해 보는 거래다. 대포는 버려두고 돌도끼만 내려놓자는 꼴이다. 불안한 이유다. 더 한 불안도 생겼다.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이 중단됐다. 균형을 맞춰주던 미국 핵이었다. 그 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을 뺀다고 했다. 미국의 결정인데, 한국 정부 입장은 뭘까. 따지기 전에 되짚어 볼 기억이 있다. 한미훈련중단은 한국에서 먼저 불거졌다. 2017년, 대통령 특보가 꺼냈다. 우리도 한미연합훈련 잠정 중단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2년, 이제 현실이 됐다. 스스로 화두를 던져준 셈이다. 더 불안해진 이유다. 김정은 워딩을 바꿔 듣는 것도 민심이다. 있는 그대로 받고 섬겨야 할 소중한 목소리다. 왜곡하려고 안달하면 안 된다. 정치권이 지금 그런 짓을 하고 있다. 안보 불안을 대북 강경론으로 몰고 간다. 어떻게든 타도 문재인으로 연결하려 한다. 보수 야당의 짓이다. 안보 불안을 통일 반대론으로 몰고 간다. 어떻게든 전쟁론자로 연결하려 한다. 정부 여당의 짓이다. 좌도, 우도 아닌 평범한 민심인데, 그걸 서로 각색하려 억지다. 여당이라도 달라야 한다. 어차피 국정의 주인이다. 예부터 태평성세(太平聖世)를 덕치라 했다. 역사 속 요순(堯舜)시대가 그렇게 불린다. 황하(河)가 범람하지 않았다. 30년 주기 물난리가 없었다. 백성이 불안감에서 해방됐다. 요순 태평성세의 치적이다. 지금 많은 국민이 남북 관계를 우려한다. 국가안보를 걱정한다. 이 불안을 없애 주는 게 통치다. 안보에서의 선(先)양보, 이제 그만 해야 한다. 균형 깨는 선 후퇴, 이제 그만해야 한다. 가짜뉴스를 엿들었다. 젊은 친구들 얘긴데, 대충 이랬다. 휴전선 경계도 풀어줬다. 서해 훈련도 없애줬다. 군인은 외출하게 했다. 그리고 태극기 견장을 달게 했다. 북한군이 잘 조준하라는 흰색 표적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거짓이다. 하지만, 그 속의 함의까지 무시할 건 아니다. 어쩌다 이런 소리까지 듣게 됐나. 안보 불신이 이 정도까지 왔나. 북한보다 멀어진 민심 아닌가. 혹, 안보불안 여론을 통일반대 논리로 눌러온 결과 아닐까. 이런데도 여당 중진은 또 말했다. 그러면 전쟁밖에 할 게 없습니다. 역시나 안보 걱정을 윽박지르며 한 소리다. 主筆

[김종구 칼럼] 통진당 강제해산, 그리고 한유총 강제해산

맺음말은 이렇게 돼 있다. 이석기=내란주체, RO=내란 조직, 비밀회합=내란음모. 이 등식을 두고 연결하려는 쪽과 끊어내려는 쪽이 이제 막 기소라는 전쟁에 나서려 한다어느 한 쪽은 현실적 궤멸을 맞아야만 하는 냉험한 전쟁이다. 2013년 9월26일자로 쓴 칼럼이다. 이석기 사건이 과하다고 본듯하다. 법서(法書)를 무시한 여론 재판을 예상한 듯하다. 결국, 일방의 궤멸로 갔다. 이석기는 징역 9년을 받았다. 통진당도 해산됐다. 그리고 6년이다. 어제 전ㆍ현직 판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3명 혐의에서 같은 단어가 보인다. 통진당이다.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에 개입했다고 한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다.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 소송 배당에 개입했다고 한다. 심상철 전 서울고등법원장이다.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 행정 소송에 개입했다고 한다.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다. 바뀐 세상에서 이제 그들은 사법농단 범죄자다. 2014년 12월4일자 여론조사가 있다. 통진당 해산-찬성 60.2%, 반대 24.3%. 박근혜 정부의 힘이었다. 2019년 2월1일자 여론조사가 있다. 사법농단법관 탄핵- 찬성 67.4%, 반대 24.1%. 문재인 정부의 힘이다. 이석기의 공소사실은 그대로다. 통진당 강령도 그대로다. 그런데 평가는 바뀌었다. 5년 전 권력은 범죄라고 했고, 5년 뒤 권력은 누명이라고 한다. 이런게 여론이다. 그 여론도, 이 여론도 정의와는 무관한 숫자일 뿐이다. 비슷한 일이 생겼다. 한유총 해산 통지다. 서울시 교육청이 했다. 한유총의 사회적 해악이 이유다. 목적 이외의 사업 수행 및 공익을 해치는 행위가 설립허가 취소의 근거라고 설명한다. 어렵게 말할 것 없다. 유치원 개학연기 투쟁 때문이다. 이 방식이 빌미가 됐다. 유치원 관련 3개 법안 철회를 요구했다. 들어주지 않으면 유치원 개학을 연기하겠다고 선언했다. 3천 개 유치원이 참여할 거라고 공표했다. 협박이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애들 키우라고 준 돈 어디에 썼나. 가족 여행비로 썼다. 건강식품 사는 데 썼다. 아들 등록금에 보탰다. 2천500만 원짜리 도자기 샀다. 루이뷔통 가방 사서 들고 다녔다. 잊기엔 너무 가까운 날의 기억이다. 일부의 얘기라며 억울해할 일도 아니다. 회계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이걸 막는 게 국가의 책임이다. 3법 개정안은 그래서 나왔다. 이걸 못하겠다는 것 아닌가. 안 받겠다며 버티는 것이다. 참 나쁜 투쟁이다. 늘 그랬듯이 여론조사가 등장했다. 81%가 교육부 개혁에 찬성한다고 했다. 한유총 입장 찬성은 23%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번에는 교육부가 직접 조사해서 뿌렸다. 어색한 긴급재난문자도 등장했다. 지진이나 미세먼지가 아니다. 유치원 사태 안내 문자다. 학부모 아니어도 다 보냈다. 개학연기 투쟁 전날의 일이다. 결국, 여론 작업이 성공했다. 한유총이 백기를 들었다. 개학연기 투쟁을 포기했다. 여기까지가 딱 좋았다. 너무 갔다. 어차피 이익집단이다. 유치원들이 만든 단체다. 그런 단체가 세상엔 차고 넘친다. 노동자의 이익을 노총이 대변한다. 해산시키지 않는다. 경영자의 이익을 경총이 대변한다. 해산시키지 않는다. 투쟁 방식 역시 그들의 선택이다. 턱없으면 안 들어주면 그만이다. 개학 연기 협박이 실패한 것도 그래서다. 그랬으면 됐지. 왜 단체해산 카드까지 꺼내나. 협의권ㆍ공모자격 뺐고 재산까지 몰수하려는 이유가 뭔가. 권력 남용이다. 여론 80%를 왜곡한 독재적 발상이다. 개별 유치원 비리를 핑계 삼는 얕디 얕은 정치 쇼다. 하필 그날, 통진당 강제 해산 판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그 흔한 말을 이래서 처음 써 본다. 내로남불. 主筆

[김종구 칼럼] 취업부정, 아버지들의 절망

형이 희망이었다. 그래서 가르쳐야 했다. 공사판 등짐을 졌다. 먹지도 못하고 아꼈다. 그렇게 벌어 학비를 댔다. 졸업한 형이 곧바로 취직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자랑거리였다. 어느 날 형이 황소를 끌고 왔다. 20만원 줬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다. 이 집 부자 됐네라며 축하했다. 엄마가 곳간을 털었다. 정부미 쌀로 쑥떡을 빚었다. 막걸리도 실어왔다. 밤새도록 잔치를 했다. 가난한 아버지엔 세상 행복한 날이었다. 1970년대. 그런 형들이 많았다. 졸업만 하면 됐다. 그리곤 집안을 건사했다. 기반은 일자리였다. 직장이 넘쳤다. 3,4차 경제개발계획 때다. 배를 만드는 공장이 선다. 사람을 뽑는다. 자동차 만드는 공장도 선다. 사람을 뽑는다. TV 만드는 공장도 선다. 사람을 뽑는다. 수많은 형들이 그렇게 취직했다. 수출이 100억 불에 갔다. 소득도 1천 불에 갔다. 1977년 결과다. 그 시절 아버지의 고생은 거기까지였다. 형 졸업이 끝이었다. 2019년. 그 시절 형은 없다.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다. 대학원을 졸업해도 마찬가지다. 청년 실업률 9.8%라고 한다. 청년들이 턱없다고 비웃는다. 그래서 2015년부터 체감 실업률이란 걸 뽑았다. 지난해 체감 청년실업률이 22.8%다. 더는 집안을 챙길 형이 없다. 자기 살길도 막막하다. 이런 논문도 등장했다. 1978년 이후 출생자들이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되어 가고 있다. 형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다. 절망에 가깝다. 그 시절 아버지도 없다. 자식 책임이 끝없어졌다. 졸업이 아니라 취업까지다. 술 마시던 석 원장이 한숨을 쉰다. 요즘은 애 취직까지가 아버지 책임이여. 맞는 소리다. 청년 실업률 22.8%에 사는 아버지들의 현실이다. 하루하루를 아들보다 가슴 졸인다. 아들 전화벨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힘없이 끊는 아들에게 묻지도 못한다. 차라리 대신 방에 갇혀 지내고 싶다. 그렇다고 뭘 도와줄 수 있겠나. 그래서 더 억장이 더 무너진다. 어떤 아버지도 그랬을 거다. 6층 아래로 몸을 던졌다. 유족으로 아들 셋이 남았다. 애지중지 키웠을 아이들이다. 그 아들 셋이 모두 취직을 못했다. 경찰은 아이들 취직 문제로 불화가 있었고 이를 비관해 자살한 것 같다고 잠정 결론 냈다. 생각하지 않은 종말이었을 게다. 아들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웠을 게다. 그리고 마지막엔 스스로 자책했을 게다. 결국 나의 무능이라 결론 냈을 게다. 세상 아버지들이 다 그렇다. 이런 아버지들을 더 화나게 한다. 공공기관이 나쁜 짓을 했다. 직원이 자기 자식을 취직시켰다. 응모 자격을 아들에 맞췄다. 면접관에 동료 직원을 넣었다. 그렇게 해서 공채에 합격시켰다. 도내 여러 공공기관이 이런 부정을 저질렀다. 자기 자녀 또는 자기와 친한 누군가의 자녀를 챙기려 한 짓이다. 이 반칙 때문에 누군가는 떨어졌다. 그리고 어떤 아버지는 좌절했다. 공공기관이라 더 화가 난다. 내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인데. 형들이 있던 그 시절. 하루하루는 팍팍했다. 미끄덩거리는 보리밥이 지겨웠다. 간장 저린 상추에 신물이 났다. 그런데도 많이 웃었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진다고 믿어서였다. 그때보다 윤택해진 지금이다. 그런데 견디기는 더 힘들다. 공정하지 않다고 여겨져서다. 그리고 이런 좌절이 저런 사람들 때문에 또 한 번 증명된다. 사회를 불공정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형의 기회를 박탈하고, 아버지의 희망을 빼앗는 사람들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하늘길 逆차별’-경기 新공항으로 끝내자

인구 154만명 강원에 공항이 2개다. 77만명당 1개다. 인구 332만명 전남ㆍ광주에는 4개다. 83만명당 1개다. 인구 795만명 경남ㆍ부산ㆍ울산에는 3개다. 265만명당 1개다. 인구 2천570만명 수도권에는 2개다. 1천285만명당 1개다. 하늘길이 어느 때보다 중한 시대다. 공항 접근성은 도시 평가의 핵심 요소다. 이렇듯 중요한 길을 원칙 없이 뒤섞어 놨다. 균형이라곤 없다. 우리가 안 보던 또 하나의 수도권 역차별, 하늘길 역차별이다. 모두 정치가 만든 기형이다. 지방 공항은 권력의 선물이었다. 예천공항은 노태우 정부의 선물이었고, 양양공항은 김영삼 정부의 선물이었고, 울진공항은 김대중 정부의 선물이었다. 하나같이 선거 공약에서 출발했다. 예비 타당성 조사라는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냥 수천억원의 돈이 투입됐다. 제대로 운영될 리 없다. 예천 공항은 공군에 넘어갔고, 양양공항은 돈 먹는 하마가 됐고, 울진공항은 항공대 비행훈련센터로 전락했다. 지금도 권력의 공항 선심은 진행 중이다. 영남권에 김해신공항, 대구ㆍ경북에 대구통합공항, 전북에 새만금국제공항, 전남에 무안ㆍ광주 통합공항이 추진 중이다. 바로 옆에 적자 공항들이 있다. 김해신공항 옆에는 48억원 적자 낸 사천공항이 있다. 새만금국제공항 옆에는 27억원 적자 낸 군산공항이 있다. 통합한다는 무안공항은 139억원, 광주공항은 27억원 적자를 냈다. 2017년 한 해에만 집계된 적자다. 이런데도 또 짓는다. 그 사이 비상은 엉뚱한 지역에서 걸렸다. 인천ㆍ김포공항이 포화 상태다. 국토교통부가 예측을 내놨다. 인천국제공항의 한계 포화기준점은 연 1억명이다. 2030년이면 1억500만명에 달한다. 김포공항의 포화기준점은 3천500만명이다. 역시 2030년에 3천700만명에 이른다. 불과 10년 뒤 다가올 하늘길 대란이다. 대책도 마땅치 않다. 인천공항은 터미널과 활주로를 늘리려 한다. 그래 봐야 10년 더 쓴다. 김포공항은 이런 대책조차 없다. 지나간 역차별은 어쩔 수 없었다 치자. 미래를 위한 공항은 지방에도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니다. 10년 뒤면 수도권 하늘길이 막힌다. 국내로 들어올 국부(國富)가 막힌다. 돈 싸들고 들어올 한류(韓流)가 막힌다. 반도체 팔러 나갈 산업(産業)이 막힌다. 대한민국의 혈(穴)이 막히는 것이다. 과한 침소봉대가 아니다. 국토교통부가 제5차 공항개발중장기 종합계획이라는 문서에서 수치로 증명해 놓은 실화(實話)다. 해답은 나와 있다. 공항 수용 능력을 늘리면 된다. 그런데 땅이 없다. 김포공항은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다. 인천공항도 활주로 하나 늘리기도 벅차다. 결국, 신공항을 다른 곳에 지어야 한다. 그런데 이 사업이 하세월 걸리는 일이다. 계획 수립부터 완공까지 수십년은 기본이다. 정권이 배려한 무안공항도 20년 걸렸다. 수요가 넘치는 제주신공항은 30년째 추진 중이다. 딱 10년 주어진 수도권 하늘길 시한이다. 지금도 늦은 것 아닌가 싶다. 서울은 국가의 수도(首都)다. 경기도는 국가의 웅도(雄道)다. 인천은 국가의 관문(關門)이다. 세계를 향한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이런 수도권에 공항이 달랑 2개였다. 그나마 10년 뒤면 용량이 넘친다. 수도ㆍ웅도ㆍ관문이라고 할 수 있나. 뉴욕(New York)을 미국의 상징이라 한다. 반경 80㎞에 7개 공항이 있다. 국내선ㆍ국제선ㆍLCC(Low Cost Carrier)ㆍ화물이 쌩쌩 오간다. 뻥 뚫린 뉴욕 하늘길과 꽉 막힐 경기도 하늘길의 차이다. 그동안, 지방 공항에서 지역 발전을 찾았다. 이제는, 경기도 신공항에서 국가 발전을 찾자. 主筆

[김종구 칼럼] 박광온 의원, 기대… 실망… 미련

수원 입성(入城)은 2014년이다. 그해 7월 보궐 선거에 출마했다. 지역색 강한 수원이다. 수원 깍쟁이 정서가 유별나다. 박광온이 왜?란 소리가 나왔다. 능히 그럴 만했다. 수원시민에겐 낯선 사람이다. 이쯤에서 등장하는 게 연(緣) 만들기다. 처삼촌 본가도 팔아먹고, 6ㆍ25 피난지까지 팔아먹는다. 대개의 정치인들이 그런다. 그런데 그는 좀 달랐다. 아무런 연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뛰었다. 52.67%를 얻었고 당선됐다. 이제 기대가 크다. 재선(再選)이다. 수원을 대표한다. 도당 위원장도 했다. 경기도를 대표한다. 현안이 있을 때마다 그가 등장한다. 수원과 당, 경기도와 당이 그로 연결된다. 수원시장도 급할 때면 그를 찾는다. 예타면제 정국에서 돌았던 말이 있다. 신분당선 안 되면 수원시장이 사퇴할 수도 있다. 이 설(說)의 끝자락에도 그가 있다. 중앙당을 향한 이 푸념을 그가 들어줬다 한다. 그러면 안 된다며 말렸고, 함께 노력하자며 챙겼다고 한다. 기대가 커서일까. 실망스런 모습이 보인다. 신분당선 탈락이 수원을 뒤집어 놨다. 시장은 청와대를 찾아가 따졌다. 공무원들은 비상기획팀을 꾸렸다. 시ㆍ도의원들은 피켓을 들고 세종청사로 갔다. 서수원 주민들은 도의회 앞에 진을 쳤다. 그 열흘 동안 박 의원이 없었다. 적어도 활자로 등장한 기록이 없다. 영통구의 다른 목소리를 안다. 그렇다고 안 연결할 전철이 아니다. 게다가 망국적 수도권 역차별론을 깔고 있다. 뭐라도 했어야 했다. 서운한 일도 생겼다. 그의 분노가 다른 곳을 향했다. 때마침 등장한 5ㆍ18 망언이다. 툭하면 나오는 북한군 개입설이다. 총을 거꾸로 멨으니 인민군이라는 주장이다. 이 황당한 강연에 한국당이 판을 깔았다. 국민이 분노했다. 박 의원이 그 전면에 섰다. 방송심의위원회에 518 허위사실 영상 심의를 신청했다. 한국당을 향해 사과의 진정성을 보이려면 5.18 특별법 개정에 동참하라고 주문했다. 라디오에서, SNS에서 연일 노기를 토해낸다. 5ㆍ18의 시작은 1980년 5월이다. 38년째 치유해오는 상처다. 수도권 역차별의 시작은 1982년 12월이다. 36년째 깊어져만 가는 상처다. 5ㆍ18은 500만 호남인들의 한이다. 수도권 역차별은 1,300만 경기도민의 한이다. 5ㆍ18 망언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수도권 역차별에도 분노해야 옳다. 적어도 경기도ㆍ수원시 정치인이라면 그러는 게 맞다. 5ㆍ18을 말했다고 서운한 게 아니다. 수도권 역차별을 말 안 했으니 서운한 것이다. 여전히 미련은 많다. 당내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한다. 선수(選數)를 넘어서는 능력이다. 권력 핵심과도 각별하다고 한다. 요 며칠 페이스북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치 변방 경기도엔 귀한 힘이다. 신분당선 연장에 꼭 필요한 힘이다. 공공기관 지키기에 없어선 안 될 힘이다. 입성 5년 만에 향심(鄕心)을 산 그다. 50년 수원 벽을 넘어선 그다. 경기ㆍ수원을 위해 말해야 한다. 신분당선 연장하라가 뭐하면 수도권 역차별 중단하라고라도 해야 한다. 애향심(愛鄕心)을 말하면 촌스러우려나. 조선 왕국의 8도를 대표하는 최고 부자 8명이 똑같은 설계로 나란히 8채의 집을 지었습니다. 1897년 요셉 신부가 남긴 서신의 일부다. 화홍문 인근 어딘가를 설명하고 있다. 수원 정체성이 그랬다. 조선 8도 부자가 주인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전라도민, 경상도민, 충청도민, 강원도민이 주인이다. 그 옛날 수원읍을 8도 부자들이 지켰다. 지금 수원시는 8도 출신들이 지켜야 한다. 출발이 애향심이다. 그 본을 보여줄 이가 박광온 의원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수원 逆차별, 국회의원의 책임, 그리고 특례시

수원에는 두 명의 장관님이 있다. 지금의 장관님은 김진표 국회의원이다. 의원님이어야 맞는데, 장관님이라 부른다.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을 해서다. 이보다 앞선 장관님은 고(故) 이병희다. 무임서 장관을 했던 이후부터 불렸다. 수원 국회의원을 일곱 번이나 했다.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수원의 정치, 사회, 행정이 모두 그의 권한이었다. 지역 내 위세(威勢)에 관한 한 이병희 장관님은 김진표 장관님의 몇 수 위다. 그 이 장관님이 입에 달고 산 자랑이 있다. 삼성전자 수원유치, 경기도청 수원유치다. 지지자들은 이병희만한 업적이 어디 있느냐고 추켜 세웠다. 반대자들은 그게 이병희 혼자 한 것이냐고 깎아내렸다. 본인은 정치 인생 내내 치적으로 삼았다. 그가 딱 한 번 선거에서 졌다. 그때 불거진 건 뉴코아 입점설이다. 재래시장 상권이 분노했다. 이 장관님이 도왔다는 소문이 났다. 내가 해준 것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낙선했다. 그게 정치다. 밑도 끝도 없이 치적과 책임에 엮여 든다. 지역구에 생긴 모든 일의 주인공이 된다. 좋은 일이면 성과고, 나쁜 일이면 책임이다. 지금 김 장관님에게 책임질 일이 생겼다. 신분당선 호매실 연장 사업의 예타면제 탈락이다. 팔달구와 권선구 주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분노는 옆 지역구 김 장관님에까지 향하고 있다. 지역구 책임자라서가 아니다. 김 장관이 뛰어줬으면 됐을 텐데, 돕지 않았다는 원망이다. 토론의 끝이 정치에 있다면 이 말이 맞다. 김진표 의원은 거물이다. 청와대와 말이 되는 사람이다. 당연히 도왔어야 했다. 김영진 의원은 팔달구 책임자다. 삭발이라도 하며 싸웠어야 했다. 백혜련 의원은 권선구 책임자다. 직을 걸고라도 해냈어야 했다. 다들 책임지라고 난리다. 낙선 운동 펴겠다는 이들도 많다. 그런다 치자. 책임 지워 낙선시켰다 치자. 뭐가 달라지나. 신분당선이 부활하나. 경제 부총리가 눈이라도 끔뻑하나. 애초 토론의 끝은 정치가 아니다. 통치다. 수도권 역차별을 지나 수원 역차별까지 왔다. 언제부턴가 통치의 공식이다. 지방세법 개정안이 있었다. 천문학적 수원 예산이 날아갔다. 권력 입장은 수원은 잘사니까였다. 수원 방문의 해 사업을 신청한 적이 있다. 지원은 다른 곳으로 갔다. 그때도 권력 입장은 수원은 잘 사니까였다. 지난주에 트램시티 떨어졌고, 이번 주에 신분당선 떨어졌다. 이번에도 이유는 수원은 잘 사니까다. 통치 중심엔 국가균형발전론이 있다. 그 타깃에 경기도가 있다. 전국에서 가장 잘 사는 도(道)라서다. 그 중심에 수원이 있다. 전국에서 가장 잘 사는 시(市)라서다. 박근혜 정부의 지방세 탈취도, 문재인 정부의 신분당선 박탈도 그런 논리로 집행됐다. 수원 국회의원이 끼어들기엔 버거운 영역이다. 앞으로도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계속해서 뺏기는 수원이 될 것이다. 제2의 트램시티 탈락, 제2의 신분당선 배제가 이어질 것이다. 캄캄해지니 작은 빛이 커 보이나. 특례시로 눈이 간다. 왜 특례시, 특례시 했는지 알 것도 같다. 시(市)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쥐꼬리만 한 자치권이지만 준다고 한다. 수원시가 그 쥐꼬리를 가늠해 봤다. 대략 14개 분야, 23건의 특례사무가 발굴됐다. 약간의 인사권, 약간의 계획권, 약간의 허가권. 정말 작은 권한이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낫다. 이유도 모르고 뺐기는 것보다는 낫다. 대책도 없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낫다. 때마침 권력의 약속도 있었다. 대통령 입으로 특례시 주겠다고 했다. 지방자치법 개정안까지 만들었다. 수원시가 권력에게 받을 모처럼의 은총이다. 그런데 이게 겉돌고 있다고 한다. 국회가 안 보고 있다고 한다. 김영진ㆍ백혜련 의원과 김 장관님의 일이다. 국회를 흔들어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수원-고양ㆍ용인-을 특례시로 만들어 내야 한다. 역차별 대처의 작은 시작쯤은 되는 일이다. 신분당선 책임을 조금은 갚는 길이다. 삼성전자는 그가 유치한 것일까. 뉴코아 백화점은 그가 봐준 것일까. 이 장관님은 앞의 것은 내가 했다고 했고, 뒤의 것은 내가 안했다고 했다. 다 부질없는 논란이었다. 정치인의 치적과 책임엔 이유가 없다. 그 일이 있을 때 그곳의 있었다면 그게 치적이고 책임이다. 신분당선 빼앗긴 곳에, 김진표ㆍ김영진ㆍ백혜련 의원이 있었다. 그들의 권한 밖이었음은 안다. 하지만, 이 역시 여당 소속 국회의원의 책임이다. 달게 받아야 한다. 다행히 용서받을 기회-특례시 입법 숙제-는 주어지지 않았나. 감사하며 뛰는 것 외에 수가 없다. 主筆

[김종구 칼럼] 冊 ‘이방인’ 속의 ‘1942년 재판정’

판사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기독교 신자야. 이분께 네 죄의 용서를 구하고 있어. 어째서 너는 그리스도께서 너를 위해 고통받으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그가 나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의 말을 수긍하는 체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의기양양해서, 그것 봐, 그것 보라고. 너도 믿고 있잖아? 하느님께 너 자신을 맡기려는 거잖아?라고 말했다 2019년, 변협이 판사를 평가했다. 고압적인 태도가 문제 됐다. 소송 대리인이 증거 신청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판사가 기각했다. 그리고 막말을 했다. 불만이 있느냐. 왜 재판부를 쳐다보냐. 소송 대리인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한참 재판을 중단하고 노려봤다. 다른 판사는 사건의 쟁점도 파악하지 않고 들어왔다가 엉뚱한 말싸움으로 사건 당사자와 언쟁을 벌였다. 1942년 재판정처럼 판사가 막말한다. 때로는 나도 한 마디 참견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 변호사가 가만있어요. 그래야 일이 잘됩니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나를 빼놓은 채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나는 참여도 시키지 않고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나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니 도대체 누가 피고인입니까. 피고인이라는 것은 중요한 겁니다. 내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2019년, 이런 경험담이 전해진다. 간단한-적어도 피고인 판단에는- 사건이었다.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았다. 돈도 없었다. 직접 심문하려고 증인을 불렀다. 시작에 앞서, 판사가 호통쳤다. 왜 심문 사항을 미리 내지 않았느냐. 모욕도 당했다. 자료 보지 말고 해라, 서로 짜지 말고. 피고인이 직접 해보려던 자기변호다. 판사의 압박 앞에 결국 심문은 뒤죽박죽이 됐다. 1942년 재판정처럼 재판을 직접하기는 어렵다. 양로원에 넣은 것에 대해 엄마가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더냐고 재판장이 묻자, 원장은 그렇다고 했다. 내가 (엄마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페레스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검사가 마리에게 언제부터 우리의 관계가 시작되었냐고 물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있은 다음 날인 것 같다고 했다. 검사가 말했다. 어머니 사망 다음 날, 정사에 골몰했던 사람이 치정을 덮으려고 한 살인입니다 2019년, 여론이 재판을 한다. 검찰은 필요한 증언만 모은다. 그 증언을 연결해 결론을 낸다. 언론은 그 결론을 받아서 단정 짓는다. 이걸 끊어 줄 곳이 법원이다. 논리의 억지, 여론의 선입견을 잘라줘야 한다. 하지만, 못한다. 신상 털려 협박 당하기 일쑤다. 결국, 그 압박에 굴복한다. 영장 발부ㆍ기각, 판결 유죄ㆍ무죄가 다 여론대로 간다. 재판은 그저 여론에 서명하는 절차일 뿐이다. 1942년 재판정도 이렇게 여론재판이었다. 변호사가 따라와서 말했다. 모든 것이 잘될 것이며, 몇 년 동안의 금고나 혹은 징역만 살면 그만일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피고석 문이 열렸을 때 나에게로 밀려온 것은 장내의 침묵. 나는 마리가 있는 쪽을 보지 못했다. 시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재판장이 나에게 이상스러운 말로, 나는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공공 광장에서 목이 잘리게 되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간수들이 부드럽게 대해줬다 2019년, 재판장이 여러 번 합의를 권했다. 원하는 액수를 구체적으로 묻기까지 했다. 누가 봐도 판결에 대한 대략적 방향이었다. 변호사도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결과가 달랐다. 피고가 완패했다. 논리는 문제가 없었다. 재판장이 사건을 파악 못 하고 진행해온 탓이다. 합의할 의향을 묻는 재판장 질문에 매번 네라며 따라왔던 피고다. 난데없이 닥친 완패라는 결론이다. 1942년 재판정의 사형선고만큼이나 느닷없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노벨상 작가임은 중요하지 않다. 책을 쓴 1942년 법정과 이 글을 쓰는 2019년 법정이 달라지지 않았음이 중요하다. 주인공 뫼르소는 아랍인이 칼을 빼들자 총을 쐈다. 방어 행위였다. 하지만, 고의적이고 흉악하고 부도덕한 살인자로 몰렸다. 억압되고, 소외되고, 왜곡된 법정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 세계에서 뫼르소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독백뿐이다. 이 심장 소리는 곧 내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전(前) 대법원장이 구치소에 갔다. 누구는 개혁으로 가는 것이라 하고, 누구는 개악으로 가는 것이라 한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인가. 답답함에 꺼내 든 책, 이방인(Ltranger)이었다. 主筆

[김종구 칼럼] 탈(脫)원전이 이데올로기인가

이치선 변호사는 진보진영 인사다. 1985년 미문화원을 점거했다. 그 속에 서울대 물리대 학생이다. 그 후로 고된 인생을 살았다. 징역을 살았고, 제적과 복학을 거듭했고, 학원 강사로 버겁게 살기도 했다. 그래도 진보에서 비켜선 적은 없다. 행로를 바꿔 변호사가 됐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돈 안 되는 인권 변호가 주 업무다. 그토록 열망한 진보 정권이 들어섰지만, 그는 다른 일에 열심이다. 지구를 살리자는 대기환경 운동이다. 수억 년 동안 석탄, 석유의 형태로 지하에 격리되어 있던 탄소와 수천만 년간 메탄하이드레이트 형태로 봉해져 있던 탄소가 동시에 대기로 주입되는 사태는 지구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신속히 조치를 취해야 한다(2018년 녹색평론 기고문 중에서). 탈원전에도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탈석탄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그가 말했다. 탈원전이 이데올로기처럼 됐어. 주장하려 해도 토론하기가 참 부담스러워. 상가(喪家)에서 들었는데, 이 말이 현실이 됐다. 송영길 의원이다. 역린 건드린 죄인이 됐다. 원전 건설 재개 발언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은 장기간 공존할 수 밖에 없다며 신한울 3ㆍ4호기 건설 재개 필요성을 주장했다. 청와대가 반박했다. 전례 없이 단호했다. 이미 끝난 얘기다 입장에 변함없다. 당(黨)도 청(靑)을 따라 갔다. 돌출 발언 신중치 못한 처신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급기야 친문(親文)에의 도전으로 몰렸다. 이게 이렇게 노(怒)할 일인가. 2019년은 마스크와 함께 시작됐다. 새해 하늘을 미세먼지가 뒤덮였다. 태양을 가린 먼지가 대낮에도 뿌옇다. 2012년, 세계에서 대기 오염으로 죽은 사람이 370만명이다. 2013년, WHO는 미세먼지를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2015년, 미국심장협회(AHA)는 심혈관질환 사망 첫째 원인을 미세먼지로 꼽았다. 더는 학자들의 가설이 아니다. 예민한 의사들의 과(過)한 권유도 아니다. 심각성이 증명된 정설이고, 흡입하면 죽는 독극물이다. 정부도 비상이다. 대책 발표에 여념이 없다. 그 대책 중에 석탄발전조치가 있다. 화력발전소 출력을 80%로 묶는 명령이다. 이렇게 하면 미세먼지 2.4톤 줄일 수 있다는 설명까지 붙였다. 자연스레 탈원전 토론이 시작됐다. 26% 원전비율을 0%로 만들겠다는 정책이다. 당장 그 대체 에너지원을 찾을 수는 없다. 당분간 46.2%의 석탄발전을 돌려야 한다. 탈원전이냐 탈석탄이냐의 딜레마다. 그래서 나온 게 믹스ㆍ균형 정책이다. 송 의원 말도 이거다. 뭐가 잘못됐나. 자신감이 쌓이면 확신이 된다. 확신이 쌓이면 이데올로기로 간다. 지금 탈원전이 그렇다. 자신감ㆍ확신을 지나 이데올로기까지 와 있다. 토론 없이 찬성해야 하는 성역이다. 누구든 토를 달면 적(敵)으로 밀려난다. 집권 여당의 중진 의원이든, 평생 진보에 몸바친 투사든, 정권을 떠받쳐온 시민단체든 따지지 않는다. 청와대가 토론 말라고 못 박아놨다. 공론화 위원회 논의를 거쳐 정리가 됐다논의가 필요한 시점은 아니다. 탈원전, 이게 뭔가. 이게 뭐라고 토론도 못 하게 하나. 감옥 간 이명박 대통령의 고집은 대단했다. 온갖 반대에도 4대 강을 밀어붙였다. 국민과의 약속을 바꿀 수 없다는 명분을 댔다. 그때 유시민씨가 던진 일침이 있다. 그게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바꾸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도 국민과의 약속이다. 역시 바꿀 수 없다는 명분을 말한다. 유시민의 일침을 지금 쓰면 이렇다. 이게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일 큰 잘못은 바꾸지 않는 것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KAI의 위기, 대통령 측근 사장의 무능·무책임

KAI(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나쁜 소식이 전해졌다. 2천500억원 수출이 날아갔다. 기동헬기 수리온을 팔려던 협상이었다. 필리핀이 상대국가였다. 계약고 2천500억원을 넘어서는 기대 효과까지 있었다. 그동안 키워온 동남아 시장에 대한 점유율 확장이었다. 2018년 내내 걸었던 기대가 크다. 방한한 두테르테 대통령을 국방부로 모시고 간 적도 있다. 급하게 전시한 수리온 헬기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절박했던 입찰이었다. 이게 처음도 아니다. 2018년 9월에도 졌다. 당시 발주국은 미국이었다. 미 공군 훈련기 교체 사업이었다. 사업비만 18조원에 달했다. 웬만한 대기업의 1년치 수출액이다. 향후 세계 훈련기 시장의 점유율을 좌우할 중대 고비였다. 단군 이래 최대 건이라는 평도 나왔다. 여건은 좋았다. T-50 훈련기라는 검증된 제품이 있었다. 록히드마틴사라는 든든한 컨소시엄도 있었다. 그런데 탈락했다. 보잉사와 손잡은 스웨덴 경쟁사에 졌다. 그때 KAI가 내놨던 해명이 생생하다. 상대의 터무니 없는 저가 공세 때문에 졌다. 그 가격에는 남는 게 없어 (수주했어도) 안했을 것이다. 말 같지도 않은 핑계다. 시장에서 콩나물을 살 때도 따지는 게 가격이다. 가격에 졌다면 입찰 전체에서 졌다는 말이다. 그 가격에는 줘도 안 하려 했다도 말장난이다. 그럴 거면 왜 하루 전까지 매달렸나-당시 낙찰 실패의 문제점은 본 칼럼란에서 이미 지적했으니 이번엔 생략하겠다-. 이번에는 어떤 핑계를 내놓을까. 아직 공식적인 해명은 없다. 대신 난데 없는 기사(記事)가 등장했다. KAI, 4천억원대 여객기 날개 부품 수주 2018 수주액 전년보다 1조1천억 늘어 매출액 6천억원 증가. 경제지 두어 곳에 동시에 실렸다. 회계 결산 시기도 아닌데 뜬금없다. 그래서 읽어봤다. 황당하다. 수주했다가 아니라 수주할 것 같다다. 늘어났다가 아니라 늘어날 것 같다다. 증가했다가 아니라 증가할 것 같다다. 뭐 하는 건가. KAI의 주력품은 완제기(完製機)다. 수십년간 개발해온 T-50 계열의 고등훈련기, 수리온 계열의 헬기가 자랑이다. 동남아-인도네시아(2011년ㆍ4천400억원), 필리핀(2014년ㆍ4천700억원), 태국(2015~2016년ㆍ4천100억원)-에 판 것도 다 완제기였다. 2020년 세계 15대 항공기업이라는 목표가 있다. 이 목표도 완제기 수출을 전제로 한다. 이 핵심 사업의 축이 무너지고 있다. 이 와중에 웬 확정도 안 된 실적 자랑질인가. 혹세무민(惑世誣民ㆍ그릇된 이론을 이용해 사람들을 속임)에 다름아니다. KAI의 주인은 국민이다. 한국수출입은행, 국민연금공단이 1, 2주주다. 여기서 오는 숙명이 있다. 늘 권력의 먹잇감이었다. 권력의 낙하산들이 차고 내려왔다. 박근혜의 사람 하성용도 그런 사장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라고 규정했다. 1호 적폐 수사의 칼을 겨눴다. 하 사장은 구속됐고, 부사장은 자살했다. 그런데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 문재인의 사람이 내려왔다. 방산업(防産業)과는 전혀 무관한 감사원 출신, 김조원 사장이다. 그 김 사장 이후, 건 건마다 패배한다. 18조짜리 날렸고, 2천500억짜리 날렸다. 실패가 반복되면 그건 무능이다. 그 무능이 입증되면 그땐 책임이 남는다. 수주 실패의 책임자는 사장이다. 김조원 사장이 책임져야 한다. 책임지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그런 데 없다. 말 안 되는 저가 입찰 핑계로 넘어가더니, 이제 확정 안 된 실적 뿌려대며 덮고 가려 한다. 대통령 눈치보는 1주주(한국수출입은행), 2주주(국민연금)도 입을 닫았다. 걱정이다. 큰 일이다. 이러려고 그 요란 떨며 적폐 수사했나. 분식회계 누명 씌우고, 자살까지 몰고 가며 몰아붙이던 개혁의 끝 모습이 겨우 이 건가. 새해 벽두에 뿌려진 수리온, 2천500억 필리핀 수출 무산 기사, 그 후 난데없이 뿌려진 KAI 4천억원대 수주 임박 기사. 그 기사들 밑에는 지금 이런 댓글들이 붙어 있다. 연이은 수주 실패 덮으려고 쉴드 치지 마라 세금 들여 만든 군수사업 다 말아먹고 있다. 김조원 사장 무능 때문이다. 主筆

[김종구 칼럼] 2019년 이재명의 길-道政에 답 있다

이재명은 정치인이다. 그를 싫어하는 유권자가 있다. 그들의 바램은 이재명이 망가지는 것이다. 이재명은 도지사다. 그를 싫어하는 도민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도정의 붕괴를 바라지는 않는다. 2019년 경기도민에게 주어진 고약한 운명이다. 정치인 이재명은 몰라도, 이재명 도정이 망가지는 건 두고 볼 순 없다. 이런 도민의 운명이 곧 이재명의 운명이다. 성공한 정치인 이전에 성공한 도지사로 바로 서야만 할 책임이다. 2018년 내내 흔들렸다. 여배우 스캔들, 혜경궁 김씨, 친형 강제 입원, 이런저런 선거법 위반. 관리되지 않은 지난날이 준 업(業)이었다. 권력 투쟁에서 오는 박해(迫害)이기도 했다. 진통 끝에 법률적 가늠이 났다. 친형 강제 입원과 선거법 위반 두어 개가 남았다. 인격적(여배우 스캔들)ㆍ정치적(혜경궁 김씨)인 치명타는 피했다. 하지만, 피고인 신분이 됐다. 재판정을 오가야 할 처지다. 끝도 모를 지난한 과정의 시작이다. 피고인이란 게 원래 그렇다. 모든 운명을 판사에 맡겨놓고 산다. 그가 맡긴 운명은 더 크다. 피고인 이재명은 유죄다. 그 순간, 야인이 될 것이다. 피선거권마저 박탈당한 박제 인간이 될 것이다. 피고인 이재명은 무죄다. 그 순간,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다. 걸림돌 치워진 탄탄대로를 달려갈 것이다. 이 극단적 선택의 법정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재판만 보이는 게 정상이다. 범인(凡人)이라면 누구나 그런다. 하지만, 현직 도지사다. 그럴 여유가 없다. 매일, 20조 원 예산을 결재해야 한다. 매일, 31개 시군 업무를 조정해야 한다. 매일, 1천300만 도민을 대표해야 한다. 곁눈질하면서 갈 짬이 없다. 마침 그가 했던 이런 말도 있다. 저들의 공격은 이재명이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일에 대한 갈증으로 들렸다. 적어도 그 증명의 시간은 왔다. 던져 놓은 약속-복지 경기ㆍ공정 경기ㆍ평화 경기-을 입증할 수 있는 시간은 됐다. 다행히 견본이 있다. 성남시장 이재명의 기록이다. 전임자가 남긴 빚이 산더미였다. 그때, 7천억 원을 만들어 시(市) 곳간을 채웠다. 다른 시는 무상급식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때, 무상교복까지 치고 나갔다. 국가는 청년 실업률 계산에 여념 없었다. 그때, 실업 청년들에 수당을 챙겨줬다. 그런 기억들이 그를 대선후보, 도지사까지 밀어올렸다. 6ㆍ13 지방선거 표심의 기대도 그거였다. 이걸 안 하고 못하며 까먹은 6개월이었다. 재판? 어차피 정치다. 상대 정당ㆍ반대 정파가 시작했다. 그들이 기소(起訴)까지 끌고 왔다. 법정(法庭)에 왔다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이재명 유죄 이재명 무죄 현수막이 내걸릴 것이고, 서로를 향한 악담이 댓글에 도배될 것이다. 판사가 그 복판에 있다.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고 한다. 근데 이 양심이란 걸 본 사람은 없다. 결국, 재판도 사람이 하는 거다. 정치로 누더기 된 사건이다. 정치를 쏙 빼고 판결할 장사는 없다. 친형을 감금시킨 인권탄압이라 해도 된다. 친형의 시정 개입을 막는 대처였다고 해도 그만이다. 대장동 개발 이익을 과장한 거짓홍보라 해도 된다. 신도시 조성의 통상 예측을 말했을 뿐이라고 해도 그만이다. 확정된 검사 사칭 전과(前科)까지 숨긴 거짓말이라 해도 된다. 과거 판결에 대한 나름의 의미부여라고 해도 그만이다. 어느 쪽을 써도 판결문은 완벽할 것이다. 이번 재판이 그렇다. 주문(主文) 빼고는 이미 다 까진 재판이다. 그 사이 정치인 이재명에 대한 판단은 끝났다. 새삼 좋다며 돌아올 유권자도 없고, 싫다며 돌아설 유권자도 없다. 이제, 도지사 이재명에 대한 판단이 남았다. 잘한다며 모두가 돌아올 수도 있고, 못한다며 모두가 돌아설 수도 있다. 그래서 도정에 답이 있다는 것이다. 도로 챙기고, 급식 챙기고, 안전 챙기고, 평화 챙기는 속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생긴다. 오늘을 마지막처럼 뛰어야 4년이 주어진다. 피고인 딱지를 붙이고 가야 할 이재명 지사라서 더욱 그렇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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