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선의 半의 半이라도 닮았다면

총선 불출마 선언이 시작됐다. 마이크 앞에 선 표정들이 비장하다. 저마다 폭력국회를 걱정하며 격정을 토로한다. 그런데 딱히 전해오는 감흥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예고됐던 정치 빅뱅이다. 불출마 러시는 정해진 수순이다. 뻔한 수순에 뻔한 얘기다. 거기에 무슨 감동이 있겠나. 그저 또 한 번의 정치 이벤트로 보면 그뿐이다.그런데 딱 한 명이 다르다. 정장선의 불출마 선언은 예상 밖이었던 만큼 내용도 다르다.첫 번째, 막장에 몰린 퇴장과 다르다. 6선의 실세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전혀 영예로워 보이지 않는다. 보좌관이 받은 뇌물이 무려 7억 5천만 원이다.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두 사건 모두에 관여됐다. SLS에서 6억 원, 제일저축은행에서 1억 5천만 원을 챙겼다. 그런데도 6선 의원은 버텼다. 언론이 불출마를 보도하자 너무 나갔다라며 항의까지 했다. 그러다가 의원실 직원 4명이 돈세탁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고 검찰 소환설이 제기되는 마당에 이르러서야 불출마를 결정했다. 이건 불출마가 아니라 출마 불가다. 불출마에 재미붙인 정치두 번째, 낙선을 염두에 둔 정치쇼와도 다르다. 잘생긴 외모, 하버드 법대 출신의 초선 의원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신선해 보일 만도 한데, 여론이 안 좋다. 계류 중인 선거구획정안을 보니 그의 지역구 노원 병이 통폐합대상이다. 새로 맞닥뜨려야 할 상대가 하나같이 벅찬 상대다. 한 명은 진보의 입 노회찬이고, 다른 한 명은 나는 꼼수다의 스타 정봉주다. 이러니 그의 불출마 성명서를 보며 코피 난 김에 혈서 쓰느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거다. 4년여 전,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되던 호시절에 입성했던 그가 삭풍 부는 겨울이 되자 그냥 떠나는 거다. 세 번째, 정치일정에 기웃거리는 퇴장과도 다르다.13일부터 19대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다. 정장선의 불출마 선언은 이보다 하루 앞선 12일이었다. 단 하루도 선거일정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 평택을은 사실상 정장선 판이다. 지난 10월 실시한 한나라당 지역위원장 선출이 수포로 돌아갈 정도로 그의 아성이다. 같은 당내 경쟁자가 있을 리 없다. 예비후보 등록 하루 전날 물러난 모양이 좋아 보이는 이유다. 후임자가 쓸 수 있는 선거 운동기간을 단 하루도 뺏지 않았다. 선거 막판까지 여론조사를 들춰보며 미련에 발목 잡히는 정치꾼들과는 분명히 다르다.정장선에게 진정성 배워야네 번째, 약속을 지키는 퇴장이라서 다르다.그의 불출마 사유는 폭력국회다. FTA 폭력사태를 막지 못했다. 내가 한 번 더 한들 국회는 나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4대 강 난장판 국회 직후 국민에게 약속했다. 폭력국회가 또 되면 불출마하겠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런데 그때 옆에 섰던 국회의원은 여럿 더 있다. 국회 바로 세우기 모임 소속 의원들이다. 경기 인천지역 의원도 6명이나 된다. 하지만 약속을 지킨 건 정장선 하나다. FTA 난장판은 폭력이 아니라고 본 건가? 아니면 최루탄은 주먹이 아니니 괜찮다고 본 건가?누구는 의심한다. 정 의원이 차기 경기지사를 노리고 던진 승부수다라고. 실제로 그는 차기 후보군 중 하나다. 3선이라지만 이제 나이 이제 쉰넷, 한창 때다. 이번 불출마를 정계은퇴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런 의심이 나오는 것도 무리랄 건 없다.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자. 경기도지사 자리가 어떤 자린가. 대권후보가 당선되는 자리고, 당선되면 대권후보가 되는 자리다. 이인재-임창렬-손학규-김문수 지사가 다 그랬다. 그를 포함한 지금의 후보군 역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다. 김진표, 남경필, 원혜영, 전재희, 정병국. 만일 불출마 선언이 그 좋은 자리로 가는 지름길이라면 다른 후보군의 불출마도 있어야 맞다. 그런데 아무도 하지 않는다. 왜? 늘 현역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3선의 정 의원이 이런 공식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폭력국회를 버리고 평택으로 갔다. 불출마도지사 공천이라는 논리로 트집 잡기엔 그가 버린 게 너무 많다.트집 잡을 때가 아니다. 정장선을 닮으려 해야 하고 정장선에 부끄러워해야 할 때다. 정장선의 반, 아니 반의반이라도 닮은 국회의원이 여의도에 반, 아니 반의반만 있었더라도 국회는 이렇게 안 됐다.김종구 논설위원

기회 잃은 박찬호, 기회 잃는 한나라당

코리안 드림이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우뚝 선 모습만으로 감동이었다. 집채만 한 거한들이 연신 헛손질을 해댔다. 그가 뿜어내는 시속 157㎞의 강속구 앞에 K(삼진)의 행진이 이어졌다. LA다저스 구장 외야에 태극기가 펄럭였다. 2001년 텍사스로 가면서 받은 돈은 6천500만달러. 일당 5천만원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다. 하지만 누구도 시샘하지 않았다. 그가 재미교포사회에 준 자긍심을 비하면 결코 아깝지 않은 돈이었다. 박찬호의 코리안 드림은 그렇게 완성됐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이길 때보다 질 때가 훨씬 많아졌다. 특유의 어퍼컷 화이팅은 사라졌고 고개를 떨구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모습이 계속됐다. 이후 5년간 그가 올린 성적은 22승이 전부다. 최고의 코리안 드림이 최악의 먹튀(먹고 튀기)로 전락했다. 현지 언론이 Go back to Korea(한국으로 돌아가라)라며 조롱했다. 국내 언론들도 그의 은퇴 필요성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버텼다. 동양인 최다승 신기록 달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잇단 방출과 부상에 2군 강등까지 겹쳤다. 그러기를 10여년. 2010년 10월에서야 목표가 달성됐다.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124승. 모두가 축하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그만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명분을 만들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과 일본 야구를 점령하겠다.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그만의 명분이었다. 팬들은 불안해했고 결국 그 불안은 현실이 됐다. 올 시즌 1승 5패, 그리고 2군 강등. 구단 관계자는 한국 방송에 대고 1군 복귀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망신을 줬다. 이제 그의 모습 어디에도 코리안 드림은 없다. 이 구단에서 저 구단으로 팔려 다니며 몸값은 깎일 대로 깎였다. 미국에서 방출되고 일본에서 추락하면서 레전드(전설)의 면모는 사라졌다. 94년부터 2000년까지 쌓아 올린 공을 2001년부터 10년째 갉아먹고 있다. 떠날 때를 놓친 영웅이 밟아가고 있는 초라한 뒷모습이다.야구와 정치. 어떤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두 단어가 요즘 오버랩된다. 떠날 사람들이 떠나지 않았다. 바뀌어야 할 게 바뀌지 않았다. 총선은 필패라고 얘기하면서 혹시 모른다며 미적대고 있다. 30%를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그 속에 자기는 포함되지 않는다. 불출마의 각오를 해야 한다면서도 자신은 출마해야겠다고 버틴다. 바뀌어야 하지만 나는 아닌 것이고, 변해야 하지만 나는 아닌 것이다. 이게 한나라당식 개혁이고 변화였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소속 의원의 비서가 선관위 홈페이지를 공격했다. 입이 천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선거부정이다. 비서 개인의 범죄라고 둘러댔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한나라당에서 돈 받고 일하던 비서의 짓이고, 상대후보 낙선을 목적으로 벌인 짓이다. 진보는 물론 보수조차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들었다. 반쯤 돌아섰던 민심이 DDoS 공격 한방에 완전히 등을 보였다. 늦었다. 지도부 사퇴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당대표가 사퇴하고 지도부가 해체된다 해서 돌아설 민심이 아니다. 10.26 보궐선거 때 기회가 있었지만 사실상의 승리라며 놓쳤고, DDoS 공격 초기에 기회가 있었지만 비서 개인의 짓이라며 또 놓쳤다. 당직 사퇴카드로 기대할 수 있는 약발은 없다. 더 큰 희생과 더 확실한 결단이 나와야 한다.당 내부의 얘기라면 관여할 일이 아니지만 자칭 한국 보수를 대변한다는 사람들 아닌가. 10.26에 실망하고 DDoS에 떨어져 나간 한국의 보수. 그러면서도 진보에 투항하지 못하고 중간지대를 맴돌고 있는 한국의 보수. 이들의 옷깃 하나라도 붙잡으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다 버려야 한다.공천도 버리고 의원직도 버리고 당 간판도 버려야 한다. 버릴 여유가 아직 있으니 이 또한 기회다.김종구 논설위원

2012년, 공기업 이전 發 시장 탄핵 온다

어차피 국부(國富)는 한정돼 있다. 그걸 여기서 빼내 저기로 옮기는 일이 공기업의 지방이전이다. 국부 증감의 문제가 아니라 국부 이동의 문제다. 그래서 수도권 공동화는 필연적일 거로 봤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경기도의 지역이기주의라며 뭇매를 맞았다. 결국 잘 됐으면 좋겠다며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리고 지금에 왔다. 그런데 역시 아니다.당장 내년부터 공기업의 지방 이전이 시작된다. 내년이라야 30일 남았다. 이전기관들은 벌써부터 이삿짐을 쌌다. 직원들도 살림집 알아본다며 전라도로, 충청도로 주말이 바쁘다. 충청도 행복도시는 부동산 가격이 들썩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수도권에서도 이전대책의 청사진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돼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청사진은커녕 땅도 못 팔고 있다.이전부지 활용커녕 매각도 못해진즉에 팔렸어야 할 부지가 37개다. 이 중에 7개-10월 말 현재-만 팔렸다. LH(성남)와 농업연수원(수원) 등 10개는 계속 유찰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수원)과 한국도로공사(성남) 등 14개는 입찰에도 못 부쳤다. 한국가스공사(성남)와 한국해양연구원(안산) 등 내년에 내 놓을 매물 6건의 전망도 막막하다. 빠져는 나가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 말 그대로 빌 空(공) 자, 공동화(空洞化)가 오고 있다.혹 수년에 걸쳐 팔린다 한들 기대할 것도 없다. 지난 2월, 국토부가 해외 매각 카드를 들고 나왔다. 수도권 핵심시설을 해외자본에 팔겠다는 구상이다. 황당했는데 그나마 실패했다. 6월에 다시 국토 해양 투자포럼을 열었다. 성남의 한국식품연구원 부지는 고급주택단지로, 안산의 한국시설안전공단은 주거용 오피스텔로 내놓겠다고 했다. 원칙도 없고 기준도 없는 급매물처리다. 차라리 떨이다. 잠시 5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05년 3월 4일,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의 말이다.수도권 공동화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수도권 재창조 및 재탄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공공기관 이전지역에는 정보벤처단지, 연구개발센터, 역사공원, 문화센터, 도서관 등 활용방안이 가능합니다. 수원(첨단연구개발단지)과 성남(IT 지식산업복합단지)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IT 클러스터를 구축하겠습니다. 안양권(안양 의왕 과천)은 고품위 웰빙공간으로 만들겠습니다.그로부터 6년, 맞는 말이 하나도 없다. 수원에 첨단연구개발단지가 시작됐나? 성남에 IT 지식산업복합단지가 유치됐나? 안양권 어디에 고품격 웰빙공간이 추진되고 있나? 땅도 못 팔아 주택단지로 내놓는 마당에 무슨 연구단지고 웰빙단지인가. 모든 게 거짓말이다. 공기업 이전은 역시 국부의 지방 이전일뿐이었다. 그리고 수도권은 우려했던 그대로 공동화로 빠져들고 있다.2012년판 과천시장 또 생긴다이제 기다리는 건 여론의 분노다. 그리고 이 분노가 서서히 현직 시장들을 겨냥하고 있다.나는 성경륭 위원장을 알지도 못한다며 억울해하는 시장들도 있다. 이전 계획에 서명한 적이 없으니 맞는 말이다. MB 정부로부터 부지매각의 어떤 권한도 받지 못했다며 하소연하는 시장들도 있다. 부지매각 특별법이 그렇게 돼 있으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너그럽게 봐주는 게 여론은 아니다. 늘 가까운 곳에서 분노의 출구를 찾으려고 어슬렁거리는 게 여론이다.여인국 과천시장이 그 첫 번째 먹잇감이었다. 보금자리 주택 책임은 겉으로의 명분이다. 그보다 더 폭넓고 골 깊었던 건 종합청사 대책 불만이었다. 예상보다 많은 9천67명의 시민이 서명해 3선 시장을 긴장시켰던 것도 이 때문이다. 33.3% 미달로 끝났지만 공기업 이전에 따른 또 다른 시장 탄핵을 분명히 경고한 예고편이었다. 텅 빈 농업기관 부지를 떠안게 될 수원시장, 주인 잃은 공기업 부지를 지키게 될 성남시장, 연구원 떠난 연구기관 건물만 붙들고 있을 안산시장. 누구든지 2012년 판 과천시장의 불행을 맞을 수 있다.역사는 늘 엉성한 계획자와 엉터리 추진자가 떠난 자리에 엉뚱한 책임자를 남겨둬 왔다.김종구 논설위원

투신한 수험생 A군, 당신이 떠밀었습니다

A군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B군도 그랬습니다. C군은 상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A군과 B군은 18살 고 3, C군은 19살 재수생입니다. 아이들의 품에는 약속이나 한 듯 미안하다는 메모가 들어 있었습니다. 경찰이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라고 합니다. 꼭 조사해야 알까요. 일면식도 없는 아이들이지만 우리 모두가 그 이유를 압니다. A, B군은 망쳐버린 수능성적이, C군은 밀려오는 수능공포가 그렇게 만든 겁니다. 아마도 허공을 휘젓던 그 순간에도 수능에서 실패한 나는 이 사회를 떠납니다라며 울부짖었을 겁니다. 이 아이들의 생각을 틀렸다고 할 수 없으니 그게 답답합니다. 학벌 사회가 맞거든요. 1등만 기억하는 사회 맞고요. 수능 실패의 대부분이 인생실패로 이어지는 사회 맞습니다. 며칠 전 대통령께서 학력 차별 없는 사회를 역설하셨습니다. 고졸자가 마음껏 꿈을 펼치고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 학력차별 없는 사회를 열어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류 대학교 출신이시라 찜찜하긴 했지만 그나마 화두라도 던져준 게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있고 딱 열흘째 되던 지난 10일. 새벽 6시에 C군이 뛰어내렸고 저녁에 B군이 뛰어내렸습니다. 대통령 말씀에 0.1%의 믿음만 가졌더라도 그러진 않았겠죠. 대통령의 말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한국의 학력사회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불행히도 그게 사실인데 어쩝니까.얼마 전 언론에 학력 시대는 끝났다는 제목이 떴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얘깁니다. 고졸 관리직 100명을 공채했습니다. 신(新) 인사제도란 것도 소개됐습니다. 고졸자를 뽑아 4년간 양성교육을 시킨 뒤 대졸 사원 대우를 한다는 구상입니다. 여기에 500명의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고교 내신 1, 2 등급짜리 똑똑한 아이들이었답니다. 이걸 두고 혁신이라고 쓴 겁니다.웃기는 얘기죠. 결국엔 대학과정을 흉내라도 내야 동등한 대우를 하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4년을 버텨내면 그때가서 대우해주겠다는 거 아닙니까. 군대 교육 4년으로 학사자격증을 주던 사관학교와 다를 게 없습니다. 중공업 사관학교라고 표현하면 될듯싶습니다. 1, 2등급 아니면 못 가기도 마찬가지죠. 대기업들이 발표했다는 13% 추가 채용 계획 역시 내용 없기는 마찬가집니다.흔히들 대한민국을 학력민국이라고 합니다. 2009년을 기준으로 통계청이 뽑은 자료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83%가 대학을 간답니다.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 2009년에 1천100만 명을 넘겼다고 합니다. 툭하면 OECD를 들먹이기에 한번 비교해봤습니다. 1위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두 배입니다.대학생 많은 건 좋죠. 문제는 사람구실 해보려고 졸업장을 딴다는 겁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라는 데서 지난 4월에 대기업 인사담당자 150명에게 물었습니다. 56명이 대졸과 고졸의 임금 격차가 학력사회의 출발이라고 실토했답니다. 그때 조사된 대졸과 고졸의 초임 격차가 1.5배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는 임금과 직급의 격차는 말 할 것도 없고요.이러니 대학 안 가고 배겨낼 재간이 있겠습니까. 망친 수능성적에 독하고 참담한 상상을 하지 않겠습니까.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 이번이 내가 대학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다가온 경우다. 스티브 잡스의 그 유명한 스탠퍼드대 연설의 한 토막입니다. 1천100만 명의 대학졸업생이 넘쳐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연설입니다. 여전히 입사서류에 대학 졸업장을 첨부시키는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연설입니다.해남의 B군, 대전의 C군, 그리고 수원의 A군은 죽었습니다. 보릿고개 기사는 30년 전에 없어졌고 연탄가스 기사는 20년 전에 없어졌는데 수험생 자살기사는 지금도 계속됩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옥상난간에 매달려 무섭다며 발버둥치고 있는데, 대한민국 학력사회는 여전히 그들의 손등을 잔인하게 짓밟고 있습니다.김종구 논설위원

좋은 쇄신, 나쁜 쇄신, 이상한 쇄신

한나라당, 243곳 중 11곳에서만 우세. 불과 선거 보름여 전 J일보 톱 기사다. 대통령 탄핵의 역풍은 그렇게 참담했다.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씻으려던 한나라당의 자충수였다. 민심이 분노했고 표심은 돌아섰다. 각종 여론조사의 그래프는 열린우리당 판이었다. 선거는 해보나 마나였다. 이때 박근혜 대표가 등장한다. 그의 취임 일성은 당사에 들어가지 않겠다였다. 대신 여의도 공원 맞은 편에 천막을 쳤다. 쇼라던 비아냥이 서서히 동정으로 바뀌어갔다. 이어 기다린 건 박 대표의 눈물이다. TV에 등장한 박 대표가 30분간 연설을 했다. 어머니를 잃고아버님을 여의면서. 연설 내내 눈물이 흘렀고 그는 한 번도 닦지 않았다. 4월 15일은 민주당과 자민련이 몰락한 선거였다. 전남에서 5석, 충남에서 4석을 건진 게 다다. 질긴 생명력의 정치인, 김종필도 이날 정계를 떠났다.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난 게 한나라당이다. 121석 획득은 분명히 기적이었다. 박 대표의 쇄신약속에 유권자가 답해준 표였다. 이후 천막당사는 정치쇄신의 고유명사가 됐다.박근혜의 천막당사. 좋은 쇄신이었고 성공한 쇄신이었다. 이런 쇄신도 있었다. 1980년 11월 5일.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법 하나를 발표한다. 전문 12조와 부칙으로 구성된 이 법의 목적은 나쁜 정치 몰아내기다. 11월 24, 법에 기초한 567명의 명단이 발표됐고 여기에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 포함됐다. 이른바 나쁜 정치인 명단이다. 법의 목적은 정치적 또는 사회적 부패나 혼란에 현저한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한 정치활동을 규제함으로써 정치풍토를 쇄신한다다. 법의 이름도 정치풍토쇄신을 위한 특별 조치법이다. 쇄신이라는 단어가 노골적으로 이름에 들어간 처음이자 마지막 법률이다.쇄신? 사실상 인간청소였다. 쇄신돼야 할 대상자로 찍힌 정치인은 산목숨이 아니었다. 본인이 출마해도 안 되고, 남을 지지하거나 반대해도 안 됐다. 정당에 가입은 물론이고 옆에서 도와줘도 안 됐다. 정치적 집회에서는 말만 해도 붙들려 갔다. 이랬던 5공화국의 정치 쇄신. 지금은 신군부의 권력장악에 이용된 나쁜 쇄신으로 정의돼 있다.또 다른 쇄신이 있다. 1997년 3월 27일은 우리 정치사의 금기 하나가 깨진 날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출당요구다. 신한국당 의원 연찬회에서 나왔다. 김 대통령이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것도 국면 타개를 위한 방안의 하나다. 발언자는 김윤환 고문이었다. 그의 정치 시작은 3공화국이다. 유정회가 첫 번째 금배지였다. 이후 전두환의 5공과 노태우의 6공에서도 그는 실세였다. 심지어 군부와 문민이 갈리는 격변기에도 살아남았다. 총재 YS가 내준 신한국당 대표 자리에 앉아 시대를 풍미했다. 그랬던 그가 대통령 나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발언은 이후 한국 정치사에 못된 법칙 하나를 만들었다. 여당이 살려면 임기 말 대통령을 공격하라. 여기서 배운 이상한 쇄신파들이 국민의 정부 말기에 DJ를 몰아세웠고, 참여 정부 말기에 노무현을 몰아붙였다. 분명히 배신이었지만 쇄신이라고 포장하며 그 짓을 했다. 변화의 달인 虛舟 김윤환. 그가 남긴 쇄신은 이렇게 이상하고 얍삽한 거였다.MB 임기를 1년 남긴 지금, 여권이 또다시 쇄신론에 휩싸였다. 대통령이 사과하고 핵심공약을 폐기하라는 강도 높은 연판장이 돌았다. 25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선봉에 섰다. 연이은 선거 참패, 떠나는 민심, 엄습해오는 총선패배의 공포. 현실 정치인인 저들이 오죽하면 저럴까 싶기도 하다.그런데 정작 저잣거리의 평가는 이와 딴판이니 그게 문제다. 누가 누구를 쇄신하느냐는 빈정거림이 더 많다. 면면에서 느끼는 실망감과 배신감 때문이다. 4년간 권력의 언저리를 맴돌던 얼굴, 한 달 전 TV에 출연해 MB 정책 홍보에 침을 튀기던 얼굴, 넉 달 전 최고위원 뽑아 달라며 한나라당 만세를 외치던 얼굴. 그들이 갑자기 대통령 때리기로 칼자루를 돌려 잡았으니 민심이 감동할 리가 있나.2011년 11월의 한나라당 쇄신은 이상한 쇄신이다. 정치생명 연장의 꿈을 쇄신을 통해 이뤄보려는 속내 보이는 쇄신이다. 천막쇄신의 감동을 쫓아가려면 멀었다.김종구 논설위원

정치논리를 따져도 수원이다, 하지만

공기업 이전 피해자는 수원 '10년 갈 정치, 100년 갈 야구' 탤런트 홍수아의 별명은 홍드로다. 프로야구 경기에 시구한 뒤로 얻은 애칭이다. 완벽한 투구자세가 미국의 페드로 선수를 닮았다 해서 붙여졌다.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의 시구도 모두를 놀라게 했다. 거의 일자상태로 들어 올린 와인드업 모션 때문이다. 방송인 이수정은 시구를 통해 유명인이 됐다. 레이싱 모델이던 그의 무명시절은 이 시구 한 번에 끝났다. 이 한 개의 공을 위해 한 달간 연습을 했다는 뒷얘기가 더 감동적이다. 원래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는 정치인들의 전유물이었다. 파란 그라운드와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양복차림의 경호원이 등장하고 이어 대통령이 나온다. 얼굴 한가득 인자한 웃음을 머금고 엉성한 폼으로 공을 던진다. 꽃가루가 날리고 관중은 원치 않는 환호를 보낸다. 20여 년을 그래 왔다. 이게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이 섰던 그 마운드에 대신 홍수아, 손연재, 이수정이 섰다. 정치가 빠져나간 야구장에는 600만 관중이 몰려 들었다.이렇게 한물간 것처럼 여겨졌던 야구정치가 다시 등장하려고 한다. LH 가 경상도 진주로 갔으니 대신 전북에 10구단을 줘야 한다., 지역 안배 차원에서 수도권에 10구단을 주면 안 된다.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를 두고 나오는 말이다. 수원보다는 전북 쪽에서 나오는 말이고, 그러니 10구단은 전북에 줘야 한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야구구단 선정의 기준으로 적절치 않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틀린 논리다. LH 이전이 무산되면서 전북도민의 실망감이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전주와 진주, 전라도와 경상도가 계산할 문제다. 공기업 이전에 관한 한 최대 피해지역은 경기도다. 경기도에서 빠져나간 공기업만 10개다. 가스공사가 나갔고, 토지공사가 나갔고, 주택공사가 나갔고, 도로공사가 나갔고, 석유공사가 나갔고, 농업기반공사가 나갔고, 한전기공이 나갔고, 한국전산원이 나갔고, 에너지 관리공단이 나갔다. LH 하나 안 왔다고 야구구단 하나를 줘야 한다면, 공기업 10개가 떠난 경기도에는 야구구단 10개를 줘야 한다. 수긍할 수 있겠나. 수원은 할 말이 더 많다. 조선 정조이래 수원의 기반 산업은 농업이었다.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의 농업발전도 수원이 이끌어 왔다. 그런데 이 기관들이 모두 떠난다. 농진청 본청과 국립농업과학원, 국립식량과학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립축산과학원도 짐 보따리를 싸놓은 상태다. 하필 이번에 경쟁하는 전북으로 간다. 2014년이면 전북혁신지구는 농업관련 정규직 1천700명과 3천명의 연구보조원들로 북적댈 것이다. 수원을 텅 비게 하고 얻어가는 대가다. 농업기관을 다 줬으니 10구단이라도 달라고 소리 지를 쪽은 되레 수원이다. 동의할 수 있겠나. 굳이 정치적으로 따져보더라도 이렇다. 보상을 요구할 곳은 전북이 아니라 경기도였고, 피해를 호소할 곳은 전주가 아니라 수원이었다.그러나. 이런 정치논리에 기대 유불리를 따지려 들면 안 된다. 설혹 결론이 수원에 유리하더라도 마찬가지다. 10구단 유치 경쟁의 기준은 철저한 야구 논리다. 관객 동원력 따지고, 시민의 열기 가늠하고, 구단의 경영진단 계산해 결론 낼 일이다. 공기업 이전의 야속함은 국가균형발전 이론에서 논하면 되고, 수도권 견제의 필요성은 수도권정비계획법으로 풀면 된다. 이런 문제와 야구를 묘하게 뒤섞어놓고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만들려 하면 안 된다. 정치권력은 10년도 못 가지만 야구역사는 100년을 간다. 정치는 국민을 짜증 나게 하지만 야구는 팬들을 신명나게 한다. 정권이 지키던 쌍방울(레이더스)은 망했지만, 팬들이 지켜주는 롯데(자이언츠)는 흥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시구한 시즌에는 150만 명이 왔지만, 홍수아가 시구한 시즌에는 600 만 명이 왔다. KBO와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정치인들이 명심해야 할 일이다.김종구 논설위원

퐁네프의 연인과 복지 천국

-미셀은 집을 나온 노숙인이다. 원래 부유한 화가였다. 시력을 잃는 병을 얻자 가출했다. 그녀가 거지 알렉스를 만났다. 인생을 포기한 여성 노숙인과 전형적인 거지의 만남.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됐다. 공사 중인 퐁네프의 다리가 보금자리였고, 구걸해온 날 생선이 사랑의 만찬이었다. 놀랍게도 그 속에 우리와 똑같은 질투와 행복이 있었고 이별과 재회가 있었다.-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원제: The Lovers On The Bridge)이 그리는 노숙인의 생활은 잔인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리고 그 위로 보통의 인간이 느끼는 사랑이 가감 없이 겹쳐졌다. 세상이 버린 자들이 만들어가는 세상과 똑같은 사랑 얘기다. 줄리에뜨 비노쉬(미셀)의 명연기가 아니더라도 소재 자체로 충격이다. 뉴욕 타임스는 이 노숙인들의 사랑 얘기에 신이 내린 걸작이라는 평을 선사했다. 검열로 난도질 된 이 영화가 상영되던 1991년, 우리에게 노숙인이라는 말은 없었다. 거지와 걸인, 부랑아가 다였다. 좌절과 절망에 길거리로 내몰린 노숙인이 등장한 건 그로부터 10년쯤 뒤다. IMF의 후폭풍이 낳은 모습이었다. 거지는 더 이상 타고 나는 팔자가 아니었다. 누구나 아차 하면 추락하게 되는 발밑의 현실이었다. 노숙인이 적선이 아니라 정책의 대상이 된 게 그때부터다. 그리고 또 10년이 지났다. 그런데 나아진 게 없다. 노숙인 대책은 여전히 잉여(剩餘)정책이다. 여유 있으면 챙겨주는 정책, 남는 돈 있으면 나눠주는 정책이다. 남성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여성 노숙인은 아예 고민과 적선의 대상도 아니다. 남성 노숙인부터 챙긴 뒤 남는 여유가 있으면 비로소 차례가 온다. 국가가 남성 노숙인을 버렸다면, 여성 노숙인은 그 남성 노숙인에게조차 밀려나고 있다. 통계랄 것도 없다. 전체 노숙인에 10~15% 정도라는 추측만 수년째다. 엉터리다. 공무원들이 출장 나가는 역(驛) 주변은 힘있는 남성 노숙인들의 공간이다. 폭력과 성폭행을 감수하면서 그곳에서 버티는 여성은 없다. 모두 예배당, 병원 대기실, 건물 계단으로 몸을 숨겼다. 9개의 보호시설을 운영하는 경기도가 단 한 칸의 공간도 여성 노숙인에게 내주지 않는 게 이런 엉터리 통계때문이다. 그들은 가출한 게 아니라 출가 된 거다. 어느 복지 단체가 왜 나왔느냐고 물었다. 20~40대 여성은 배우자의 폭력을, 60~70대 여성은 자식들의 버림을 얘기했다. 폭력을 피해 나왔고 버림받아 쫓겨났다고 답했다. 그런 사람들이 또다시 사회에서 폭행당하고 쫓겨 다니고 있는 거다. 언제 들어도 참혹한 게 노숙인 얘기다. 안타깝지만 듣지 않으려 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런 얘기를 구태여 한가위의 풍요로움 끝자락에 붙들고 있는 이유가 있다. 너도나도 복지를 얘기하는 정치권의 추석 화두때문이다. 복지의 기본도 못하는 나라에서 복지의 천국을 얘기하는 게 하도 우스워서다.복지의 기본이 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 보장이다. 아름답게 살고 풍요롭게 살아갈 복지는 이런 기본을 끝내고 나서의 일이다.배급(?)으로 한 끼니를 때운 결식아동들은 나머지 두 끼니를 공복으로 버틴다. 추석명절이 괴로운 결손아동들은 놀이터가 싫어 연휴 내내 방안에서 지냈다. 하루 2천500원짜리 도시락을 기다리는 재가(독거)노인들은 혹시나 끊길까봐 명절이 두렵다. 남성에게 잠자리를 내준 여성 노숙인들은 멀쩡한 보호시설 옆 공원에서 종이상자로 밤을 지새고 있다.복지의 기본이 이 지경이다. 이걸 못 본체 건너뛰어 복지 천국으로 가자는 건가. 결식아동과 재가 노인의 두 끼니는 계속 굶는 것이고, 결손 아동들의 명절은 계속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것인가. 남성 노숙인의 잠자리를 빼앗긴 여성 노숙인에게는 서울(아가페의 집)로 가보라는 말만 되풀이하면 끝이라는 건가.퐁네프의 걸인들에게도 사랑은 있었는데. 표와 복지 경쟁에 눈먼 정치인들이 점점 잔인해지고 있다.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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