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KT위즈 개막전과 수원통닭

진미통닭하고 보영만두를 입점시켰는데, 거기만 줄이 길게 늘어섰어. 수원 KT위즈파크 야구장은 축제였다. KT위즈의 홈 개막전이었다. 시민들의 숙원이 현실로 이뤄졌다. 몰려든 시민들에게 가랑비는 문제도 아니었다. 전쟁을 통해 얻어낸 10구단이다. 그 전쟁의 선두에 염태영 시장이 섰었다. 놓친 끼니를 도시락으로 때우면서도 그가 즐거워할 만 했다. 야구장 자랑, 수원 자랑에 신바람이 났다. 그중에 진미통닭이 있었다. 수원에 통닭골목이란 게 있다. 30년 40년 된 통닭집들이 모여 있다. 하나같이 맛있는데 집마다 맛이 다르다. 진미통닭은 부드럽고 달달하다. 용성통닭은 쫄깃하고 감미롭다. 매향통닭은 담백하고 고소하다. 단골 고객들 사이에도 진미파 용성파 매향파가 따로 있다. 대한민국에선 이곳을 모르는 이가 없다. 중국 일본의 현지 여행 책자에도 등장한다. 주변 상권도 함께 살아났다. 고깃집, 횟집, 국숫집, 순댓국집이 다 잘 된다. 맛 말고도 잘 되는 이유가 있다. 누가 봐도 착한 경영이다.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바쁘다는 핑계로 불친절하지도 않다. 말만 잘하면 똥 집 한 접시를 더 얹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 싸다. 1만4천원 정도다. 하루 1천마리 가까이 파는 집들이다. 1천원만 올려도 가져갈 이익이 엄청나다. 하지만, 통닭값으로 장난하지 않는다. 이런 경영철학이 만들어낸 명성이다. 그 통닭이 단번에 위즈파크 명물로 등장했다. 야구를 보고 와서 통닭 얘기를 쓰고 있다. 도통 어울리지 않는 연결이다. 그런데도 하는 이유가 있다. 지금 국민은 치킨 업계 강자들의 갑질에 휘둘리고 있다. BBQ가 이달 초 1만9천900원짜리 치킨 상품을 내놨다. 교촌치킨도 지난해 8월 레드스틱 레드콤보 등을 1만8천원까지 올렸다. BHC, 네네치킨도 가격을 1만9천원까지 끌어올렸다. 약속이나 한 듯 100원 빠지는 2만원에 붙여놨다. 누가 봐도 시장 점유에 의한 갑질이다. 생닭 값은 거꾸로 폭락했다. 지난해 닭고기 중품 1㎏의 연평균 소매가격은 5천613원이었다. 2009년 이후 가장 낮았다. 그런데 올해는 더 내려갔다. 3월 평균 거래 가격이 5천502원이다. 여기에 양계농가는 붕괴 직전이다. 올 1월 안성, 여주, 이천 등 남부 지역이 AI 폭탄을 맞았다. 이어 김포 등 서부 지역으로 옮겨가더니 2월부터는 북부 지역까지 휩쓸었다. 수만~수십만 마리씩 땅에 묻히고 있다. 매몰하는 주인의 속이 어떻겠나. 사정이 이런데도 치킨 가격만 천정부지다. 폭락한 생닭 값을 얘기하면 생닭 비중은 20%밖에 안 된다고 변명한다. 그러면서도 나머지 80%가 뭔지, 어떤 항목에 인상 요인이 있는지는 설명 안 한다. 하기야 설명할 그들이 아니다. 1992년 11월 3일자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닭고기 가격 하락 불구, 양념통닭값 되레 인상이란 제목이다. 생닭 값은 200원 떨어졌는데 통닭값은 500원 올렸다는 내용이다. 그때도 설명은 안했다. 자장면이 정부의 관리를 받던 시절이 있었다. 값싼 먹거리에 대한 정부 책임 때문이었다. 지금의 값싼 먹거리는 치킨이다. 정부가 들여다봐야 한다. 치즈 한 숟가락 발라놓고 2천원 올리고, 구운 양파 끼워 넣어 2천원 올리는 게 말이 되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권은 뭐에 쓰는 무기인가. 조사해야 한다. 국세청의 사찰권은 어디 쓰는 칼자루인가. 사찰해야 한다. 청와대 국무회의 테이블에 2만원 치킨을 올려놓고 협의해야 한다. 그날, KT 위즈는 상대에 6대8로 졌다. 하지만, 수원은 이겼다. 빗줄기 속 1만886명이 이겼고, 성숙한 질서 의식이 이겼고, 밤하늘 함성이 이겼다. 그리고 수원의 자존심, 진미통닭이 이겼다. 적어도 그날 위즈파크에서는 BBQ, 교촌, BHC, 네네치킨보다 수원의 진미통닭이 위였다. 노골적인 수원통닭 홍보라 해도 좋다. 공개적인 치킨업체 불매조장이라 해도 좋다. 어차피 공급자에게 독점이 힘이라면 소비자에겐 선택이 힘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KT위즈 개막전과 수원통닭]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중동에 간 대장금이 창조경제다

중종이 말했다. 의녀인 장금은 호산하여 공이 있었으니 당연히 큰 상을 받아야 할 것인데, 마침내는 대고가 있음으로 해서 아직 드러나게 상을 받지 못하였다. 상을 베풀지 못한다 하더라도 또한 형장을 가할 수는 없으므로 명하여 장형을 속바치게 하였으니. 아마도 내의원에서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사헌부가 의녀 장금을 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불허하는 중종의 변(辯)이다. 대장금의 첫 등장이다. 중종 10년, 1515년 3월 21일의 기록이다. 그 후 29년간 역사에 등장한다. 기록마다 애틋함이 절절하다. (임금이) 대비전의 증세가 나아지자 의녀 장금에게 각각 쌀콩 각 10석을 주었다(중종 17년 9월 5일). 다만 의녀 대장금의 의술이 그 무리 중에서 조금 나으므로이 전체아를 대장금에게 주라(중종 19년 12월 15일). 내가 병을 앓다가 이제야 거의 회복이 되었다의녀 대장금에게는 쌀과 콩을 각각 15석씩, 관목면(官木綿)과 정포(正布)를 각기 10필씩 내리고(중종 28년 2월 11일). 중종 39년 11월 13일, 왕이 위독해졌다. 바로 그런 때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 금기일(禁忌日)이라며 의원들이 진찰하지 않았다. 이 일을 사관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상의 병환이 위급해졌는데 술가의 금기에 구애되어 의원을 들여 보내지 않았는데도 조신(朝臣) 중에서 한 사람도 이를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으니 진실로 통탄스럽다. 근거 없는 속설로 임금을 방치했다는 탄식이다. 하지만, 대장금은 그날도 임금 곁을 지켰다. 밖에 있던 대신들에게 임금의 상태를 이렇게 전한다. 지난밤 이경에 상께서 잠깐 주무시고 삼경에는 열이 많이 나서 야인건수를 들였으나 열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낮부터 저녁까지 왼손과 오른손의 맥도는 어제와 같았습니다. 결국, 이것이 중종의 마지막 병증 기록이 됐고 이틀 뒤 승하했다. 의녀 장금의 기록도 그날 이후 사라졌다. 그 대장금이 살아난 건 2003년이다. 54부작 드라마를 통해서다. 모든 것이 실제와 달랐다. 궁궐은 암투의 무대였다. 권력과 금력이 난무했다. 대장금은 그 중심에 있었다. 때론 맛을 그려낼 줄 아는 천재 요리사로, 때론 비리에 맞서는 비범한 전략가로, 때론 임금의 목숨을 살려내는 만능 의술가로 그려졌다. 각색이다. 요리사였다는 기록은 없다. 비리와 맞서 싸웠다는 기록도 없다. 그렇게 대장금은 환생했고 2007년 이란으로 갔다. 500년 전엔 대식국(大食國)이라 불리던 먼 나라다. 마침내 그 중심 테헤란이 대장금으로 뒤덮였다. 가전제품 전시관 앞은 대장금 시청자들로 붐볐다. 거리에서 자동차가 사라졌다. 평균 시청률이 90%를 웃돌았다. 드라마에서 비치는 한국의 모든 것이 파라다이스가 됐다. 고대 신라를 표현하던 동방의 유토피아가 2천년만에 되살아났다. 그때부터 모든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는 중동의 1등이다. 휴대전화도 자동차도 1등이다. 건설 플랜트 진출도 1등이다. 중동 전문가 이희수 한양대 교수는 칼럼에서 대장금이 졸업한 대학교의 교수라는 이유로 밥값도 받지 않더라고 전했다. 70ㆍ80년대 값싼 노동력의 나라, 24시간 3교대 일벌레들의 나라. 그 대한민국이 대장금을 통해 알라가 약속했던 꿈의 나라가 됐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대장금은 거짓말이다 실록에는 한 줄밖에 없다. 틀린 말이다. 대장금은 역사(歷史)다. 조선 최고의 명의였으니 임금을 지켰다고 각색해도 좋았다. 유일한 여자 어의였으니 권력의 중심에 섰던 여성이라 각색해도 좋았다. 승하하려는 임금의 마지막을 지켰으니 왕의 여자라고 각색해도 좋았다. 실록을 읽고 또 읽어 가며 힘들게 만들어낸 위대한 창조물이다. 며칠 전 그 중동을 박근혜 대통령이 다녀왔다. 현지 언론의 큰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15억 이슬람교도가 먹는 할랄(Halal) 식품 수출의 길을 열었다고 한다. 60조원 중동 의료 수출의 길도 닦았다고 한다. 500년 전 중종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대식국 진출이다. 500년만에 환생한 대장금이 있어 가능했다. 실록에서 추려낸 상상력과 그 상상력이 만들어 낸 창조문화가 있어서 가능했다. 박 대통령이 꼭 이루고 싶다는 창조경제. 어쩌면 그 해답은 대통령이 다녀온 바로 그 중동 길 위에 널려 있었는지 모른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중동에 간 대장금이 창조경제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정보전문가 출신 국정원장 시대

정보기관 굴욕의 역사 非 전문가들이 자초 이젠 전문가에 맡겨야 -조사가 마무리된 건 새벽 4시40분이다. 검사들이 조서 출력을 위해 자리를 비웠다. 그가 용변을 보겠다며 화장실로 들어섰다. 미리 준비했던 흉기를 윗옷에서 꺼냈다. 그리곤 3차례나 자신의 배를 그었다. 고통이 커지면서 몸부림이 시작됐다. 물통 뚜껑을 세면대에 내리쳐 깨뜨렸다. 머리를 벽에 들이받기도 했다. 놀란 직원이 문을 열었을 땐 이미 피투성이였다-. 1998년 3월 21일 새벽. 권영해 전(前) 안기부장은 그렇게 자해(自害)했다. 잔인했던 정보기관 수장(首長)의 역사다. 권 부장에겐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 YS에 대한 의리다. 군인이던 그를 국방 장관으로 끌어줬다. 안기부장이란 권력의 핵으로까지 영전시켰다. 권 부장에겐 그런 YS가 곧 국가였다. 反 YS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야 했다. 20만 달러에 재미교포를 매수했다. 김대중 후보를 비방하는 기자회견도 주선했다. 북풍(北風) 공작으로 명명된 범죄다. 결국, 그는 DJ 세상에서 교도소로 갔다. DJ는 정보기관을 개혁했다. 안기부를 없애고 국가정보원을 신설했다. 청사 곳곳에 구호가 나붙었다. 정보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그러나 똑같았다. 국정원과 국정원장의 길이 곧 안기부와 안기부장의 길이었다. 원장은 여전히 DJ가 점지(點指)했다. 군 출신(임동원)과 검사 출신(신건)이 선택됐다. 권 부장에게 YS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DJ가 곧 국가였다. 그들 역시 충성했고 바뀐 노무현 세상에서 도청(盜聽)의 죗값을 치렀다. 정보기관 수장들의 운명이 대개 이랬다. 그들에겐 예외 없는 공통점이 있다. 정보의 정자도 모르던 인사들이다. 평생 군인, 평생 정치인, 평생 검사, 평생 교수였다. 그런 문외한(門外漢)들이 느닷없이 정보기관장에 올랐다. 대통령의 임명장 하나로 얻어 탄 권력의 꽃가마였다. 꽃 가마에서 끌어내릴 사람 역시 대통령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국가는 없었다. 대통령만을 위한 기관을 만들어 받쳤다. 대통령을 위해 공작했고, 뒷조사했고, 도청했다. 비정상(非正常)의 역사다. 수천 명의 전문가를 1명의 비전문가가 다스리는 조직, 조직에 대한 능력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능력이 선택받는 조직, 이런 비정상의 역사가 대한민국 정보기관을 핏빛 역사로 물들게 했다. 만일, 경찰청장에 군인 출신이 임명된다면? 경찰 독립 훼손이라며 들고 일어날 것이다. 검찰총장에 교수 출신이 임명된다면? 검찰권 침해라며 들고 일어날 것이다. 대법원장에 정치인이 임명된다면? 법정신 파괴라며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경찰청장은 경찰이 하고, 검찰총장은 검사가 하고, 대법원장은 판사가 하는 것이다. 상식 축에도 못 끼는 상식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이 정보기관에는 없다. 국정원장은 여전히 권력의 밥상이다. CIA와 FBI. 다들 최고라고 부러워 한다. 바로 거기에 권력에 길들여지지 않는 장(長)의 역사가 있다. 정치권력자에 맞서 온-적어도 권력의 시녀를 자청하지는 않았던- 정보권력자들이 있었다. 워터게이트를 무마하라는 대통령 닉슨의 지시는 CIA와 FBI에서 거부됐다. 헬름스(Richard Helms) CIA 국장은 사직으로 맞섰고, 후버(Edgar Hoover) FBI 국장은 폭로로 맞섰다. 48년간 만들어온 후버의 정보파일이 결국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이게 CIA고 FBI다. 곧 인사 청문회다. 이병호 국정원장 후보자다. 야당이 단단히 벼르고 있다. 야인 시절 썼던 칼럼을 문제 삼을 기세다. 75세라는 고령도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철저한 검증은 야당의 책무다. 의혹이 있으면 끝까지 파야 한다. 다만, 이 후보자가 갖는 한 가지 의미만은 챙겨야 한다. 모처럼 등장한 정보 전문가다. 1970년 입사해 27년간을 해외정보에 묻혀 지냈다. 지겹게 봐오던 권력의 낙하산이 아니다. 이 특별한 사실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정보기관을 정보전문가에게! 이 당연한 상식을 찾는데 반백년이 흘러가고 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정보전문가 출신 국정원장 시대]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반값 복비 파괴, 그날의 速記錄

경기도 하대성 도시주택실장이 설명한다. 매매의 경우 중개보수 상한 요율을 기존 0.9% 이하에서 0.5% 이하로 협의하고, 임대차의 경우 상한 요율을 기존 0.8%에서 0.4% 이하에서 협의하도록 개선하는 것입니다. 국토교통부가 권고한 주택 중개보수 체계 개선안이다. 이른바 반값 복비로 국민의 기대를 한껏 올려놓은 내용이다. 누구라도 당연히 통과될 것으로 생각했던-다른 지역에서는 통과되고 있는-안건의 논의가 이렇게 시작된다. 윤은숙(새정치ㆍ성남 4)의원이 말한다. 중개사들도 그만큼 역할을 아직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고, 우리 국민들도 거기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서로 협의할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아직 되지 않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이하라는 단어를 넣으면 안 된다는 설명이다. 범위 내에서의 조율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한다. 국민ㆍ중개업자 모두 그런 흥정을 할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이하를 빼고 0.5% 0.4%로 하자는 얘기다. 양근서(새정치ㆍ안산 6)의원도 말한다. 공인중개사도 자율로 맡겨놓으면 서민들에 피해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고정 요율로 전환했을 경우에 일정 부분 이것을 의회라고 하는 기구를 통해서 대의기관을 통해 가지고 협의를 해서 정말 이게 법률적인 정당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이하로 하면 서민들에 피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는데, 어떤 피해를 말하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고정 요율이란 단어를 드러내 말한다. 조광명(새정치ㆍ화성 4)의원도 말한다. 확인설명서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간단한 한 장짜리를 쓸 수 있었는데요 (2000년 이후) 세장을 쓰게 했습니다. 권리분석이나 이런 것들을 더 자세하게 할 수밖에 없는 의무규정을 만들었고요. 공인중개사의 의무 규정이 이렇게 대폭적으로 늘었습니다. 공인중개사 업무가 힘들어졌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중개 수수료가 우리보다 몇 배나 높다고도 덧붙인다. 중개 수수료를 많이 깎으면 안 된다는 설명이다. 염종현(새정치ㆍ부천 1)의원도 말한다. 경기도에 2만 (공인중개사)종사자분들이 있습니다. 아주 영세한 분들이에요. 한 달에 한두 건 못하는 업체가 수두룩합니다. 이분들도 우리 국민이고 도민이에요. 이분들 생계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공인중개사 어려움에 대한 절절한 설명이다. 한 달에 한두 건도 못해서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전한다. 이런 상황인데 50%를 줄이고 여기에 이하까지 넣으면 안 된다는 설명이다. 절박함이 서려 있다. 반면, 국토교통부는 모두가 욕한다. 상향 요율을 건드리면 안 된다라는 것은 경기도의회를 심하게 경시하는 것(염종현), 주민 간에, 국민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정부 정책이다(조광명), (국토교통부가) 사실상 공문을 위조해서 유도했다고밖에 판단할 수 없는 겁니다(양근서). 국토부의 반값 복비 권고를 자치에의 도전, 주민 갈등 조장, 공문서 위조로 공격하고 있다. 국토부의 권고에 맞서 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다. 이날 반값 복비 회의가 이랬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게 경기도만의 복비 조례안이다. 얼마 이하에서 이하를 떼고 얼마로 정했다. 이하가 없어졌으니 흥정할 일도 없어졌고, 흥정이 없어졌으니 복비가 내려갈 일도 없어졌고, 복비가 안 내려갈 테니 업계의 손해도 없어졌다. 어찌 됐든 도민의 바람이 아니라 공인중개사협회의 숙원이 이뤄진 회의였다. 그날 도민 편에 선 도의원은 없었다. 누군가 윤 의원을 향해 우리 국민이 흥정 하나 못한다는 것이냐고 물었어야 했다. 누군가 양 의원을 향해 도민의 대의 기관이라면 도민의 이익도 대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어야 했다. 누군가 조 의원을 향해 권리확인설명서 두 장 더 쓰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고 추궁했어야 했다. 누군가 염 의원을 향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수많은 도민 생계는 걱정 안 하느냐고 항의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안 했다. 2015년 2월 4일과 5일 열렸던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 회의다. 특정 단체만을 위해 경기도의원들이 하나로 뭉쳤던 회의다. 그 회의의 적나라한 모습이 이제 도의회 서고(書庫) 한 귀퉁이에 속기록으로 자리했다. 남은 건 그 기록의 역사를 읽으며 도민이 내릴 평가다. 분명히 이날 회의로 이익을 지키게 된 단체에는 은혜의 기록이 될 것이고, 분명히 이날 회의로 반값 복비의 기대를 날려버린 도민에는 배신의 기록이 될 것이다.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 회의록 A] 다운받기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 회의록 B] 다운받기 [경기도의회 도시환경위원회 회의록 C] 다운받기 [이슈&토크 참여하기 = 반값 복비 파괴, 그날의 速記錄]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어느 대통령의 결단

大洋에 국가 미래가 달려 있다 하버드 대학생 시절부터의 집념이었다. 저서 1812년의 해전(The Naval War 1812ㆍ1882년 著)에서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가 질적으로 최상 수준의 선박을 보유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1897년에 해군부 차관에 임명됐다. 12척의 전함, 6척의 순양함, 75척의 어뢰정 건조계획을 세웠다. 나아가 하와이를 병합해 태평양을 지배하자고도 했다. 의회는 물론 매킨리 대통령조차 호전적 발상이라며 반대했다. 반대자들을 향해 그는 이렇게 연설했다. 미국은 어떤 외국에게든 우리가 어떤 땅을 차지해야 좋습니까라고 문의해야 할 처지에 있지 않다. 運河를 건설하고 지배한다 뉴욕 주지사에 취임한 뒤 곧바로 운하 건설을 주장했다. 중남미 대륙을 가로질러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대역사였다. 영국과 맺은 클레이튼-불워 조약이 문제였다. 운하 건설은 미국이 하되 군사력 동원은 금지한다는 약속이었다. 앨프리드 마한 해군장관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전시에우리만 이용할 수 있도록 운하를 방비할 수가 없다면 대체 우리가 왜 그 운하를 파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미국에 의해 완벽히 통제되는 운하 건설을 향한 집념이었다. 영국과의 조약을 책임지던 존 헤이 국무장관은 사표까지 내야 했다-반려됐지만-. 反對者를 꼬드기고 협박하다 대통령에 오른 뒤에도 걸림돌은 있었다. 콜롬비아 루트를 반대하고 니카라과 루트를 선호하는 의회였다. 니카라과와 맞닿은 앨라배마주의 존 모건 상원의원이 주도했다. 지협 관통 운하 위원회도 만장일치로 니카라과 루트를 지지하고 있었다. 하원도 308 대 2의 일방적 지지로 쏠려 있었다. 그는 지역 이기주의에 기초한 니카라과 루트를 무너뜨리기로 작정했다. 위원회 위원들을 차례로 백악관에 초청했다. 어깨를 두드리기도 했고, 일장 연설을 하기도 했고, 압력을 넣기도 했다. 결국, 위원회와 의회는 콜롬비아 루트 지지로 돌아섰다. 모건만 펄쩍 뛰었다. 妨害 國家는 파괴해 분열시켜라 다음 문제는 콜롬비아 의회였다. 1903년 8월 12일, 운하 조약이 만장일치로 부결됐다. 그가 헤이 국무장관에게 편지를 보냈다. 우리의 미래 고속도로를 틀어막는 이 산토끼 같은 인간들에게 교훈을 줘야 할 겁니다. 파나마 지역에서의 봉기를 조장하라는 암시였다. 이미 반세기 동안 53차례의 소요 폭동 반란이 일어났던 지역이다. 파나마 혁명에 미국이 개입했는지는 그 후로도 논란거리다. 하지만, 당시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파나마 지역이 독립을 열망한다면 (미국은) 그 자리에서 신생국을 승인하겠다는 공언 이후 파나마가 꿈틀거렸다. 挾雜이라도 필요하면 활용하라 파나마 혁명의 성패는 미국이 쥐고 있었다. 프랑스 사업가이자 로비스트 필리프 뷔노 바리야를 직접 만났다. 파나마 혁명 공작의 임무가 주어졌다. 20년 전 운하 사업의 실패를 보상해준다며 4천만 달러도 쥐어 줬다. 직접 할 수 없는 얘기-미국의 개입 보장 약속-는 헤이 장관에게 대신시켰다. (혁명 때) 해군에게 태평양으로 출항하여 지협으로 향하라는 지시가 내려갈 겁니다. 바리야는 파나마 혁명가들에게 이 정보를 건넸다. 1903년 11월 4일 봉기는 일어났고 사흘만인 6일 오후 12시 51분 미국은 파나마 정부를 승인했다. 파나마와의 운하조약이 체결됐다. 非難과 辱說은 모두 감수하겠다 운하 프로젝트는 편법과 불법의 연속이었다. 개별 접촉을 통해 의회를 무력화시켰다. 로비스트를 동원해 국제 질서를 어지럽혔다. 음성적 활동을 통해 멀쩡한 국가를 분열시켰다. 파나마 혁명 공작은 그중에도 가장 큰 비판의 대상이었다. 뉴욕 타임즈는 추악한 정복행위라고 썼고, 이브닝 포스트는 야만적이고 돈에 눈먼 모험이라고 썼다. 글로브지는 네로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행한 최악의 정복사례와 비교된다고 평했다. 뉴욕 아메리칸의 만평가는 독수리가 파나마 지협처럼 생긴 동물을 발톱으로 움켜쥔 채 날아오르는 그림으로 그를 비난했다. 國民 利益만을 위해 행동했다 1914년 운하가 완공됐다. 운항권은 이후 85년간 미국이 독점했다. 대서양과 태평양의 통로가 군사력에 의해 완벽히 보장됐다. 파나마에 준 1천만 달러와는 비교도 안 되는 국익이 돌아왔다. 1918년 1월,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그가 말했다. 외부 자문을 받고 상원에 보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유익한 발언을 꽤 많이 청취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토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파나마는 미래의 일로 남았을 겁니다. 그게 옳았을까요. 저는 먼저 파나마 운하를 얻고 반세기 토론은 그 후에 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1년 뒤 사망하게 되는 그의 마지막 연설이었다. 파나마 운하가 완공된 지 100년이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미국의 해군력은 이제 5대양을 지배하고 있다. 한 척의 위력이 한 나라의 국방력이라는 항공모함만 10척이다. 그 4번 함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위기의 순간에 결단하고, 그 결단으로 국가의 100년을 설계한 대통령. 세계 1위 미국에는 있고, 세계 13위 한국에는 없는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재임 기간 1901~1909) 이야기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어느 대통령의 결단] 김종구 논설실장

[삶과 종교] 결혼이주자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우리는 결혼이주자들이 단순히 전에 살던 곳의 국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일 것입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은 망향의 한이 있기에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고, 자신의 고향을 최고로 생각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들은 두 개의 고향을 지닌 이들이고, 반은 한국에 반은 자신의 고국에 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이들은 가족이 있는 한국도 떠날 수 없고, 동시에 자신의 고향나라도 떠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결혼이주자들은 결혼과 함께 한국 사람이며 동시에 이주해 온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무국적자가 될 수 있는 이들입니다. 이곳도 속하지 못하고, 저곳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여지도 있는 이들입니다. E 양은 어느 날 남편의 핸드폰에 오빠 뭐해, 전화해 라는 메시지가 적혀있는 것을 보고는 너무 화가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누구냐고 묻자 하니, 핸드폰을 몰래 본 것에 대해 부끄러워 처음에는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날은 오빠, 빨리 와라는 말이 적혀있어 정말 화가 나서 시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남편을 불러 물으니, 이것은 스팸문자라고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말하면서 자지러지게 웃었다고 한다.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천안함이 침몰하였습니다. 모두들 안전을 걱정하면서 다들 걱정하며, 모두가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걱정이 되어 현재의 가족인 남편과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그들이 당연히 같이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F는 결혼이주남성입니다. 어느 날 그는 고추를 따러 아내의 친정으로 갔다고 합니다. 고추 따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장인어른이 원하시는 일이라 열심히 했는데, 쉬는 시간에 막걸리를 대작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었고, 게다가 술을 마시고 고추를 따는 일을 하는 일은 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들은 분명히 한국인이고, 그들의 고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그들에게는 뗄 수 없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같은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선 이들을 마음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키워야 할 것입니다. 이들에게 우리의 것이 우수하다는 생각과 우리 것을 강요하는 자세를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또한 받아들이기 힘든 문화에 대한 배우기를 강요하는 자세를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술자리에서의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는 것, 일상생활에서의 여러 가지 형태로의 일방적인 강요는 그들에게 억지로서 다가오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아울러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우리나라의 건전한 문화를 개발하고 알리는 노력과 남을 배려하려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더욱 우리에게 수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최병조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장

[김종구 칼럼] 박상학씨, 판사가 위법이랍니다

이회창 총재는 사사건건 남북대화를 반대하고.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공격했다. 이회창씨는 전쟁주의자입니까. 한화갑 의원은 한발 더 나갔다. 보수에 대한 진보의 공격이었다. 현대 정치사에서 통일의 공학적 개념이 늘 이랬다. 통일의 화두를 선점하는 쪽은 진보였다. 보수는 그런 진보에 의해 반통일 세력으로 몰렸다.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은 통일 주의자,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ㆍ이명박은 반(反)통일주의자였다. 틀렸다. 진보 정권에 6ㆍ15 공동 선언이 있다면 보수 정권에도 7ㆍ4 남북공동 성명이 있다. 국정 공백의 위험을 무릅쓴 진보 대통령의 방북이 있었다면 청산가리를 품에 넣고 방북한 보수의 대리인도 있었다. 자고로 대한민국 모든 통치자에게 통일은 가장 매력적인 정치목표였다. 더구나 시대까지 변했다. 남한은 선거에 의한 2세 시대, 북한은 족벌에 의한 3세 시대다. 이제 통일은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국민의 가치다. 그런데 이때의 모든 국민에 포함되지 않는 국민도 있는 듯하다. 그제(19일) 밤, 파주에서 대북전단 10만장을 날려보낸 사람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준비 업무 계획을 보고받던 날이다.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국가보훈처의 통일 청사진이 보고되던 날이다. 이보다 나흘 앞선 15일에 통일부는 전단 살포 자제까지 요청했었다. 그런데도 전단은 살포됐다. 어젯밤에 날렸다는 기자회견까지 했다. 청와대 회의가 묻혀버렸다. 탈북자 박상학씨-대북전단 주도자-의 택일(擇日)에는 고약한 기준이 있다. 남북 화해의 기미만 보이면 등장한다. 인천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 북한 선수단이 입장했다. 환영 분위기 속에 박씨가 파주에서 전단을 살포했다. 남북 관계는 곧바로 경색됐다. 보름쯤 지난 폐회식 전날, 뜻밖에 인사들이 나타났다. 김정은 체제의 실세라는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이었다. 남북간 2차 고위급 접촉 얘기까지 나왔다. 박씨는 이번에도 전단을 뿌렸다. 고위급 회담은커녕 총격전까지 벌어졌다. 기대가 컸던 인천 아시안 게임의 결론은 남북관계 냉각이었다. 한 두어 달 조용한 뒤 연초다. 박 대통령이 통일의 길을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김정은 1위원장이 최고위급 회담도 못 할 것 없다고 답했다. 주식 시장에서 현대상선, 에머슨퍼시픽, 재영솔루텍 등이 상한가를 기록했다.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박씨가 또 등장했다. 대북전단을 살포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번엔 정부가 나서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책임 있는 당국자가 나오라며 버텼고 결국 또 전단을 뿌렸다. 재(滓) 뿌리기다. 아시안 게임에 재 뿌리기, 대통령 신년사에 재 뿌리기, 청와대 회의에 재 뿌리기다. 궁극적으로는 남북 화해 분위기에 재 뿌리기다. 자유 대한민국 표현의 자유를 말하지만 그것도 의미 없다. 법원이 대북전단 살포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신체가 급박한 위협에 놓이고, 이는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런데도 살포했다. 사법부에까지 뿌려 대는 재다. 그래서 박씨의 통일관이 궁금하다. 화해에 의한 평화통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남는 통일은 인민군에 의한 적화통일과 국군에 의한 북침 통일뿐이다. 김정은 사생활까지 폭로하는 박씨가 적화통일을 추구할 리는 만무고. 결국 북침 통일-흡수통일을 포함하는-만 남는다. 박 대표의 행동에서 보여지는 통일은 북침통일이다. 남북 화해 때마다 풍선을 들고 나타나는 그의 행동이 극명하게 보여주는 통일관이다. 팍(R.E. Park)은 주변인(周邊人ㆍmarginal man)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둘 또는 그 이상의 갈등적사회문화적 체계들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내면화시킴으로써 어느 한 가치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혹시 박씨가 본인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변변한 직업이 없다. 그러니 생활도 어렵다. 북(北)도 싫지만 남(南)도 따뜻하지 못했다. 그래서 북한도 싫어하고 남한도 반기지 않은 전단 살포를 고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알아야 할 일이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그를 주변인으로 몰지 않았다. 그 스스로 주변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혼자만 달려가는 것도 아니다. 멋 모르는 3만 탈북자까지 함께 몰려간다. 모든 국민과 동떨어진 탈북자들이란 말, 평화통일을 막아서는 탈북자들이란 말이 자꾸 나온다. 반공 장사, 멸공 장사. 그만큼 했으면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박씨가 그토록 입에 담는 자유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의 김주완 판사가 대북전단이 국민 생명을 위협한다고 판결했잖은가. [이슈&토크 참여하기 = 박상학씨, 판사가 위법이랍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중국국민 인권·수원시민 인권

선혈이 낭자한 끔찍한 살인 현장. 여기에선 누구나 사형 존치론자가 된다. 참회의 눈물이 뒤범벅인 교수대. 여기선 누구나 사형 폐지론자가 된다. 사형에 대한 여론이란 게 그렇다. 때론 존치 쪽으로, 때론 폐지 쪽으로 쏠려 다닌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합리적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문화와 법철학을 달리하는 국가들이다. 국가 간의 사형제도가 다른 건 당연하다. 좋은 나라 나쁜 나라를 구분 삼을 기준도 아니다. 다만, 인권(人權)이라는 가치를 근거 삼을 땐 얘기가 다르다. 인권은 사람이 개인 또는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다. 마땅히라는 단어에서 보듯 인권은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 권리다. 죽임을 당하지 않을 권리, 즉 생명권만큼 기본적인 권리는 없다. 사형은 그 생명권을 국가가 거두는 일이다. 그래서 인권이란 가치에서 본 사형은 무조건 국가가 행하는 야만적 폭력이다. 국제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도 사형제 폐지에 앞장선다. 매년 전 세계에서 집행되는 사형을 집계한다. 2013년에도 최소 773건의 사형집행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서 빠진 국가가 있다. 중국(中國)이다. 2009년 이후 앰네스티는 중국 부분을 +로만 표시한다. 사형을 비밀에 부치는 중국 정책에 대한 항의 표시다. 인권 단체들이 추측하는 중국 내 사형은 2013년에만 3천건이었다. 전 세계를 합친 것보다 많다. 섬뜩한 건 이게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 중국 사형장에서 사라진 한국인이 6명이다. 41세 신모씨(2001년 9월 집행), 64세 S씨(2004년 5월), 53세 김모씨와 45세 백모씨(이상 2014년 8월 6일), 56세 장모씨(2014년 8월 7일), 김모씨(2015년 1월 5일).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또는 일방적 통보만으로- 처형된 한국인들이다. 지금도 그런 한국인 사형수 10~13명이 중국 감옥 어딘가에서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사형 집행의 시기를 보면 모골이 송연하다. 2012년 중국인 오원춘의 토막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 무기징역이 확정되자 여론이 들끓었다. 바로 그 이듬해 중국은 한국인 3명을 사형시켰다. 지난해 11월, 중국인 박춘봉의 장기 훼손 살인 사건이 났다. 비난 여론 속에 검찰이 박춘봉을 기소했다. 그런데 검찰 기소 바로 이틀 전, 중국이 김모씨를 사형시켰다. 이게 우연인가. 설혹 우연이라도 너무나 공포스럽지 않나. 하필 그 공포스런 무대의 한 축이 수원이다. 오원춘이 20대 여성을 토막 살해한 곳이 지동이다. 박춘봉은 살해한 조선족의 사체를 시민 휴식처인 팔달산과 수원천에 버렸다. 화성(華城)과 효(孝)의 도시 수원이 한순간 토막 살인의 도시가 됐다. 시(市)는 피 같은 세금을 덜어내 방범설비를 세우고 있다. 시민(市民)은 밤잠을 설쳐가며 순찰을 하고 있다. 수원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이 이렇게 망가지고 있다. 이제 거대한 대륙 중국과 힘없는 도시 수원 사이에는 죽음의 핏빛으로 새겨진 사이클이 하나 생겼다. 중국인 오원춘 살인 사건수원 여론 악화한국인 사형 집행ㆍ중국인 박춘봉 살인 사건수원 여론 악화한국인 사형 집행.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조용하다. 국가는 외교(外交)에 발목잡혀 침묵하고 있다. 번번이 당신네 국민을 우리가 처형했다는 사후 통고만 받고 있다. 법원은 법전(法典)에 사로잡혀 속수무책이다. 오원춘에도 사형선고는 없었고 박춘봉에도 그런 건 없을 것이다. 인권단체는 인권(人權)을 생략하고 끝없이 침묵한다. 대한민국 사형중단 17년을 자축하는 성명은 내면서 중국의 한국인 사형을 문제 삼는 성명은 내지 않는다. 이러니 달리 수가 없다. 지방 행정과 경찰이 나서야 한다. 중국인 거주 지역을 집중 순찰해야 한다. 중국인 불법 체류자는 색출해 추방해야 한다. 중국인 전과자를 추려 특별 관리명단에 넣어야 한다. 우범 지역을 순찰하고, 우범 대상을 추방하고, 우범 명단을 관리하는 것은 치안(治安)의 기본이다. 불편과 차별이 따르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인권의 한 귀퉁이쯤 떨어져 나가도 상관없다. 수원시민이 잃은 인권은 더 크다. 쌍방의 균형을 잃은 인권, 그것은 필연적으로 일방의 굴욕을 가져올 뿐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중국국민 인권수원시민 인권]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백 투 더 90’s

잘못된 만남의 고음은 너무 높았다. 김건모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I am your girl의 댄스는 너무 격했다. SES 슈의 춤에서 세 아이 엄마의 버거움이 느껴졌다. 트위스트 킹의 꺾기는 너무 많았다. 터보 김정남의 얼굴에서 쉴 새 없이 땀이 흘렀다. 이미 예전의 몸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관객은 그대로였다. 그 시절 패션을 차려입은 관객들이 가수들의 부족한 호흡을 채워나갔다. 잊혀졌던 떼창의 원조들이었다. 시청률 35.9%의 광기(狂氣)는 그 후에도 이어진다. 한국 사회가 온통 90년대 가요에 빠져들고 있다. 의류 매장, 헬스클럽, 카페, 라디오 음악 방송. 가는 곳마다 조성모, 쿨, 김현정, 이정현 노래다. 가히 백 투 더 90s의 광풍이다. 애초 드라마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에서 시작된 조짐이다. 그 조짐이 새해 벽두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통해 폭발한 것이다. 20년을 거슬러 달리는 집단의 시간 여행이다. 전에도 세대를 추억하는 화두는 있었다. 4ㆍ19세대, 386세대, 70ㆍ80세대. 4ㆍ19세대의 주인공은 60년대 민주화를 외치던 대학생이다. 386세대의 주인공은 30대이며 80년대 학번을 가진 60년대생이다. 70ㆍ80세대의 주인공은 70과 80의 학번을 가진 대학생이다. 하지만, 지금의 90s는 그것과 다르다. 특정되는 주인공이 없다. 90년대 기성세대, 90년대 대학생, 90년대 청소년, 90년대 출생자까지 모두 주인공이다. 생각해 보면 그리 멀지도 않았던 과거다. 그런데도 아주 특별한 추억들이 그 시절에 있었다. 정치는 역동적이었다. 군부(軍部)ㆍ문민(文民)ㆍ진보(進步)가 모두 교차한 10년이었다. 92년까지 대통령은 육사출신 노태우다. 30년 군부독재의 마지막 주자다. 그 기나긴 터널이 끝나고 문민정부가 출범했다. 사정의 칼날이 군(軍)문화를 추풍낙엽처럼 쓸어갔다.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이고 수평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진 것도 97년이다. 권력이 승계(承繼)가 아니라 이동(移動)일 수 있음을 알게 된 특별한 10년이었다. 사회는 다양했다. 그 중심에 지방자치가 있다. 5ㆍ16 쿠데타 세력에게 빼앗겼던 자치권이었다. 더 이상 선거는 중앙 권력을 선택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내 주변 사람을 내 동네 대표자로 뽑는 가슴 떨리는 행위였다. 그렇게 등장한 지방자치가 천태만상의 지역 문화를 만들어갔다. 성곽의 도시, 도자기의 도시, 만화의 도시, 해양의 도시.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수십개의 소국(小國)이 그때 등장했다. 국민은 하나였다. 국가도 부도 날 수 있음을 경험했다. 경제성장과 경기침체가 같은 담벼락 위에 놓여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됐다. 바로 이런 IMF 위기가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다. 장롱 속 금붙이를 모았고, 숨겨뒀던 달러를 꺼냈다. 세계 금값을 떨어뜨렸고, 한국은행 외환 보유를 늘렸다. 남아 있는 동료들이 회사를 살려달라는 희생의 퇴임사가 곳곳에서 낭독됐다. 나라를 살려보자는 결기(決起)가 무서웠던 때다. 지금 우리가 그랬던 10년에 흥분하고 있다. 그 시절 역동성과 다양성, 애국심의 추억으로 빠져들고 있다. 응답하라 1994에서 시작돼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로 절정에 오른 백 투 더 90s에는 이런 시대적 자부심이 깔려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했는데. 지금 이 시대는 어떤가. 20년이 흐른 뒤 진행되는 또 다른 10년이다. 그 10년의 한복판인 2015년이다. 거창하게 역사성(歷史性)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저 궁금할 뿐이다. 지금의 10년이 20년 뒤에 어떤 10년으로 기억될 것인가. 드라마 응답하라 2015는 등장할 수 있는 것인가. 공연 백 투 더 2015는 등장할 수 있는 것인가. 전(全)세대를 흥분시킬 감동의 결정체는 준비되어 있는가. 그렇게 기억됐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기록될까 봐 걱정이다. -2010년대는 정치가 역동성을 잃고 정체됐던 10년이다. 종북(從北)에 덜미 잡힌 진보가 질식하고 고루한 보수가 독점했다. 지방자치는 다양성을 잃고 파국으로 치달았다. 완성되지 않은 제도와 절제되지 않은 과욕이 지방 문화를 파국으로 내몰았다. 국민은 위기 극복의 총화(總和)를 잃어버렸다. 정치가 물들인 복지 포퓰리즘이 어렵게 쌓아온 국고를 거덜 냈다. 그래서 2010년대는 광복 90년사에서 지워져야 할 10년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백 투 더 90s]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재벌 후계자들 - 임원 조급증 환자들

이렇게 볼 수도 있었다. 조현아는 대한항공 부사장이다. 대한항공 기내서비스를 총괄한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점검이 책무다. 현장에서 경험한 서비스에 문제가 있었다. 직원을 다그칠 수 있다. 감정적 표현이 섞일 수도 있다. 들고 있던 서류철을 던질 수도 있다. 비행기 회항이라는 일벌백계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책임자를 내리게 해 경각심을 줄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젊은 부사장의 당찬 지도력이다. 그런데 세상은 다르게 본다. 조 부사장의 행위는 천하에 못된 값질이다. 업무도 모르면서 윽박지른 횡포다. 쌍욕을 입에 담는 천박한 임원이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린 안하무인이다. 250명의 고객을 불안에 떨게 한 난동꾼이다. 그런 임원을 감싸려 거짓말로 똘똘 뭉친 대한항공은 거대한 범죄은닉 집단이다. 조 부사장을 구속시켜 일벌백계 삼아야 한다. 대한항공의 부도덕도 상응한 제재로 징벌해야 한다. 다중(多衆)이 내리고 있는 차디찬 평가다. 여기엔 조 전 부사장이기 때문에 적용되는 특별한 기준이 있다. 재계 순위 9위(2014년 4월 기준)ㆍ계열 회사 48개ㆍ자산총액 39조5천억인 한진그룹 회장의 맏딸이다. 미국 대학원에서 학위까지 받아온 유학파다. 입사 이후 1년4개월마다 승진해온 로열 패밀리다. 하지만 이것들보다 중요한 그만의 잣대가 있다. 바로 젊은 부사장이란 직함이다. 부사장이 아니었다면 어땠겠나. 회항 명령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기장이 회항 명령을 따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론이 이렇게 들끓지도 않았을 것이다. 현직 부사장이어서 비롯된 일들이다. 재벌의 맏딸, 유복한 유학파, 초고속 승진. 이 모든 조건에 앞서는 악재(惡材)가 바로 현직 부사장이다. 그게 여론이다. 부(富)의 대물림은 몰라도 갑질의 대물림까지 보아 넘기진 않겠다는 게 여론이다. 한진 후계자들이 전부 그렇다. 조 전(前) 부사장은 31세에 임원이 됐다. 25세에 입사했으니 6년만이다. 동생 조원태(38)는 27세에 입사해 30세에 임원이 됐고, 막내 조현민(31)은 24세에 입사해 26세에 임원이 됐다. 맏딸에서 6년 걸렸던 임원 승진이 둘째에서 3년, 막내에서 2년으로 짧아졌다. 그 기간, 한진 이사회는 식솔(食率) 승진을 위한 이사회였다. 그리고 그 임원 조급증이 지금 회사를 위기로 몰고 있다. 살펴보면 한진만의 얘기도 아니다. 신세계 정용진(46)은 26세에 입사해 1년만에 임원으로 승진했고, 정유경(42)은 24세에 입사해 그해 임원이 됐다. 현대 정지아(37)도 27세에 입사해 1년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주요 재벌 그룹 3세들의 첫 임원 평균 나이는 31.2세다. 그들의 입사가 28.1세인 점을 감안하면 입사에서 임원이 불과 3.1년이다(한겨레신문 조사). 한국 재벌을 집단 감염시킨 임원 조급증이다. 기업승계와는 전혀 다른 얘기다.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기본 권리가 기업승계다. 해장국 끓이는 가업(家業) 승계는 칭송받을 일이고, 냉장고 만드는 기업(企業) 승계는 지탄받을 일인가. 대를 잇는 해장국에서 진국이 우러나듯이 대를 잇는 냉장고에서 기술은 진화될 수 있다. 70년대 국내 대기업이던 삼성이 2000년대 글로벌 기업으로 컸다. 그 중심에는 분명히 1대에서 2대로의 기업승계가 있었다. 문제는 이런 기업 승계와 임원 조급증을 구분 않는 재벌문화다. 기업 승계라고 말하면서 직책 승계를 밀어붙이고 있다. 경륜ㆍ능력도 검증하지 않은 어린 임원들을 경쟁하듯 찍어내고 있다. 여론이 이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趙)씨 집안으로 달라붙었다. 언제든 이(李)씨, 정(鄭)씨, 구(具)씨, 허(許)씨 집안으로 옮겨갈 수 있는 분노다. 어느 한 집안이라도 나서 고치자!고 해야 하는데. 박태준이라는 창업주가 있었다. 쪼인트 까기가 그를 따라다녔다. 일 못하는 직원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고 붙은 별칭이다. 이 쪼인트 까기는 철강왕(鐵鋼王) 박태준의 기업 전설이 됐다. 그런데 박태준 Jr.가 포철의 회장이 됐다면. 그리고 그 Jr. 가 선친을 흉내 내 직원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면. 여론은 틀림없이 분노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설(傳說) 대신 전과(前科)를 안겼을 것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재벌 후계자들 - 임원 조급증 환자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차라리 ‘섹스 저널리즘’ 이다

그 쫄병이 데스크일 때 이랬다. 제보 전화를 받은 건 朴 기자다. 두어 시간 뒤 돌아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여관 지하 주차장에 있는 두 대의 승용차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지방 의원의 차다. 불륜 관계였던 남자가 의원의 또 다른 불륜에 격분해 차를 막고 제보한 거였다. 그때 편집국 의견은 이랬다. 성인 잡지도 아니고보도하지 맙시다 결국 그날 이야기는 영원히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 그 데스크가 쫄병일 때도 그랬다. 사쓰 마와리(さつまわりㆍ察回ㆍ경찰서를 돌다) 기자가 들춰보는 사건의 태반은 교통사고와 성범죄다. 강간(强姦), 윤간(輪姦), 간통(姦通). 쫄병의 눈에는 하나하나가 재미(?)였다. 기사와 재미를 구분 못 하고 기사를 작성했다. 원고는 조용히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이어 선배들의 타이름이 돌아왔다. 야! 너 ○○○서울-70년대 성인 잡지- 기자냐? 이런 건 쓰면 안 되는 거야 그땐 그랬다. 허리 아랫도리 얘기는 기사가 아니었다. 법(法)이 있는 것도, 규칙(規則)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훨씬 전부터 언론을 지배해온 불문율이었다. 잡지(雜誌)와 일간지(日刊紙)를 구분 짓는 격(格)이기도 했다. 그러던 게 달라졌다. 마구 쓰기 시작한다. 신정아 사건이 그렇다. 시작은 학력논란이었다. 미국 유명 대학교 졸업장을 위조했다는 기사였다. 하지만, 애초에 언론이 가려던 종착점은 따로 있었다. 섹스스캔들이라는 허리 아랫도리 얘기었다. 정권 실세라는 일반 명사로 시작된 보도가 점차 고유명사로 좁혀졌다. 결국, 청와대 정책실장의 연애사(戀愛事)에 이르고서야 멈췄다. 신씨의 나체 사진-사실은 조작이었던-이 일간지에 실린 충격도 그때의 일이다. 그 즈음부터 보도의 벽이 무너졌다. 벽은커녕 되레 성(性)이 최고의 취재 메뉴로 등장했다. 잘나가던 3선 국회의원이 출당됐다. 검찰의 최고 수장이 무너졌다. 현직 검사장이 낯부끄러운 전과자로 추락했다. 물론 성추행은 범죄고 축첩은 부도덕이다. 문제는 이를 보도해 배달되는 식탁(食卓) 위의 단어들이다. 가슴을 거칠게 침대에 함께 누워서 자위행위용 베이비로션. 성인 소설에 등장하는 단어들 아닌가. 이건 알권리가 아니다. 쿠퍼(Kent Cooper)가 주창했던 알권리는 이게 아니다. 강연과 저서(Right to Knowㆍ1956년 著)로 남아 있는 그의 주장에는 절박했던 시대정신이 있다. 세계대전 중이던 당시 모든 언론이 침묵 당했다. 국익(國益)을 앞세운 국가의 폭력이었다. AP통신의 전무(專務)였던 그가 맞섰던 대상은 바로 그런 국가와 권력이었다. 세계 어느 헌법도 정의하지 못했던 정신을 그가 선창(先唱)한 것이다. 알 권리라니. 차라리 선정성에 올라탄 보도라고 시인하는 게 낫다. 성추행보다 가슴을 거칠게가, 혼외 관계보다 침대에 함께 누워가, 음란 행위보다는 베이비로션이 더 자극적이라 택했다고 시인하는 게 낫다. 성도착증(Paraphiliaㆍ나체 또는 성행위에 관련된 사람을 관찰하는 것과 이와 관련된 환상에 사로잡히는 질환)을 활용하는 판매 기술이라고 시인하는 게 낫다. 알 권리가 아니라 훔쳐보기 권리다. 정윤회 사건의 흐름도 그렇다. 저마다 표현에서는 점잔을 뺀다. 국정 농단 사건 권력 암투 사건 비선 조직 사건. 하지만 이런 표현 뒤에 숨겨진 기사 제목을 모르는 이는 없다. 결국 대통령의 침실 엿보기고 대통령의 사생활 훔쳐 보기다. 방점을 그곳에 찍고도 핵심이 없으니 이렇게 빙빙 도는 것이다. 선정성과 권력을 이렇게 버무리는 사이 국정은 흔들리고 있다. 연금 개혁, 규제 혁파가 다 묻히고 있다. 돌아보면 그 시절 선배들이 옳았다. 선정성과 열독률은 다른 거였다. 알권리와 훔쳐볼 권리는 구분되는 거였다. 적어도 그때라면 세월호 7시간이라 써놓고 연애담에 군불을 지피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정 농단이라 써넣고 사생활을 추론하진 않았을 것이다. 품격도 찾을 수 없고 진실도 확인시키지 못하는 기사가 도배되는 요사이 대한민국 언론. 옐로우 저널리즘이란 말도 아깝다. 차라리 섹스 저널리즘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차라리 섹스 저널리즘 이다] 김종구 논설실장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

[김종구 칼럼] 안전 학교가 곧 복지다

위키 백과는 이렇게 설명한다. 복지(福祉, welfare)란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시사논술개념사전에는 이렇게 돼 있다.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을 높이고, 국민 전체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어 노력하는 정책이다. 위키 백과는 순수한 어원(語源) 풀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논술개념사전은 보다 행정학적 역할에 무게를 둔 듯 보인다. 그런데 경기도 교육청에선 많이 다르다. 무상급식이 곧 복지다로 해석된다. 2010년 2천256명이던 원어민 교사가 사라졌다. 외국어를 공부할 학습(學習) 복지의 실종이다. 기간제 교사 1천400명이 조만간 쫓겨난다. 비정규직에 대한 생존(生存) 복지의 박탈이다. 보건교사도 내년에 30% 가까이 줄어든다. 학생이 누리던 건강(健康) 복지의 축소다. 이렇게 축소되고 폐지된 분야가 수두룩하다. 무상급식에 밀려난 복지들이다. 2009년 이후 그랬다. 새삼스레 문제 있다고 지적하는 것도 식상하다. 이제 와서 고치겠다고 받아들일 경기도 교육청도 아니다. 다만, 이렇게 섞여가선 안 될 한 가지는 있다. 2015년 예산서에서 찾기 힘든 안전 학교 항목이다. 올해가 2014년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7개월 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죽어간 아이들이 경기도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서 안전을 약속하고 당선된 교육감이기 때문이다. 학교 안전은 이미 심각하다. 옥상 잠금 자동 설치가 없는 학교가 36%다. 불이 나면 화마(火魔)를 뚫고 들어갈 정의로운 직원에 맡겨놓고 있다. 아이들이 대피해야 할 안전 봉이 없는 교실이 1만1천229개다. 출입구로 몰려들 아이들의 질서 의식에 의존하고 있다. 붕괴 위험 C 등급을 받은 교실이 23곳이다. 생활하는 아이들만 이 등급을 모르고 있다. 부족한 구명조끼를 찾고, 고장 난 구명정에 매달리던 세월호를 잊었나. 경기도 교육청이 모를 리 없다. 알면서 못하는 것이다. 2015년 예산에도 7천367억원이 무상급식에 잡혔다.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돈이다. 건드렸다간 아이들을 굶기자는 세력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큰 덩어리를 빼놓았으니 남는 돈이 없다. 옥상 잠금장치도 못하고, 안전 봉도 못 세우고, C등급 교실도 못 고치는 게 그래서다. 무상급식에 모두를 건 교육청에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었던 안전학교였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버려둘 수는 없고. 찾다 보니 비빌 언덕이 한 곳 있다. 경기도청이다. 안전한 학교를 만들겠다고 공약한 남경필 도지사가 수장이다. 교실ㆍ화장실ㆍ책걸상을 고쳐 주겠다던 그의 약속이 지금도 유효하다. 때마침 소식이 들린다. 학교 시설 개선비로 500억원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노후 화장실 개선ㆍ재난 안전 교육ㆍ안전시설 설치ㆍ안전 지킴이 지원등이 포함된 모양이다. 다행이다. 잘했다. 무상급식도 복지임에 틀림없다. 존중되고 지속해야 할 가치다. 안전 학교도 복지임에 틀림없다. 역시 존중되고 지속해야 할 가치다. 무상급식을 이어가려는 교육청이나 안전 학교를 시작하려는 도청 모두 소중한 가치를 얘기하고 있다. 복지 소비자인 경기도 학생들에겐 모두 필요하다. 둘이 합쳐질 때 비로소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진 행복한 상태라는 사전 속 복지로 다가갈 수 있다. 그런데 왜 싸우나. 부질없는 충돌이다. 교육청은 교육청대로 무상급식의 길을 가면 된다. 7천억이 많으면 줄이면 된다. 도청에 손 벌릴 일 아니다. 도청도 도청대로 안전 학교의 길을 가면 된다. 500억원은 적다. 통 크게 가야 한다. 교육청에 생색 낼 일도 아니다. 교육청은 급식 복지 책임지고, 도청은 안전 복지 지원하고. 각자 가는 거다. 어차피 학생과 학부모들에겐 행복이란 이름으로 한 곳에서 만날 복지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안전 학교가 곧 복지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복지망국驛 충돌 5분 전!

오세훈 시장의 말은 이랬다. 주민 투표의 모양은 급식이지만 그 뜻은 저소득층에게 복지를 할 것이냐 부자에게도 복지를 할 것이냐를 선택하는 것이다원칙과 가치를 지켜내는 일에는 희생이 뒤따를 수도 있다내년 총선과 대선을 무상복지 프레임으로 치를 수 없다정치인은 장구한 역사로 봤을 때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해도 더 이상 후회는 없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고 눈물을 흘렸다. 결국, 오 시장은 졌다. 3일 뒤 주민 투표는 33%를 넘지 않았다. 그는 약속대로 시청을 떠났다. 가치를 지켜내려는 희생양이 됐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정치인이 됐다. 눈물로 했던 나머지 예언도 맞았다. 이듬해 4월 총선(總選)도, 그 반년 뒤 대선(大選)도 무상복지라는 프레임 속에 치러졌다. 무상급식은 되레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보편복지의 상징이 됐다. 젊은 대권 후보 하나를 망가뜨린 무상급식의 첫 번째 전쟁이다. 4년쯤 지났다. 그 전쟁이 다시 고개를 든다. 이번엔 홍준표 경남 지사-그때 오 시장을 철없다며 나무라던-다. 무상 급식보육은 좌우,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재정능력의 문제다무책임한 진보 좌파는 이 문제를 보수와 진보의 가늠자로 삼고 있을 뿐이다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는 비겁한 보수도 나라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방조범이다. 그러면서 경남교육청에 줘 오던 무상급식 지원비를 전면 중단했다. 허나 이번에도 결과는 보인다. 홍 지사가 질 것이다. 학부모 단체가 아우성이다. 시민단체들도 들고 일어났다. 경남도와 밀양시 청사가 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오 시장을 은퇴시킬 때 나붙었던 현수막이 또다시 등장했다. 그럼, 애들을 굶기자는 것이냐?. 청와대가 나서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 무상급식은 법적 의무가 아니다라는 안종범 수석의 논리는 반나절도 안 돼 무상급식은 헌법적 의무다라는 반박에 기력을 잃었다. 이것이 무상급식이다. 어떤 정치인, 어떤 세력의 도전에도 꿈쩍 않는다. 오 시장의 논리도 홍 지사의 강단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대단한 이념이 있어서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철 지난 산술적 평등이다. 대단한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겨우 표 얻어내는 매표(買票)기술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난공불락이다. 바로 무상급식이라는 공짜 거래의 일방(一方)이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손안에 밥그릇을 움켜쥔 표심이 자리하고 있어서다. 그래서 생각나는 말이다. 복지는 뒤로 갈 수 없는 거야. 그래서 걱정이지. 한 직업 공무원-정창섭 경기도 행정1부지사-이 과거 어느날-민주당 도의회와 김문수 집행부가 무상급식 전쟁을 벌이던-에 독백처럼 했던 말이다. 복지 망국 대한민국의 앞날을 가장 쉽게 예언한 계시록(啓示錄)이다. 실제로 그 뒤부터 시작된 급식은 요지부동의 자리를 틀었다. 제2의 오세훈의 전쟁도, 제2의 홍준표의 전쟁도 결코 뚫지 못할 철옹성이다. 도리가 없다. 줘야 한다. 급식뿐 아니다. 10조3천억원 짜리 무상보육도 줘야 한다. 10조200억원 짜리 기초연금도 줘야 한다. 적자 전환을 1년 앞둔 건강보험도 줘야 한다. 무상급식ㆍ무상보육ㆍ기초연금ㆍ건강보험, 어느 것 하나 안 주고 버틸 재간이 없다. 정치인들이 학부모들에게, 엄마들에게, 노인들에게, 환자들에게 써준 차용증 때문이다. 애초에 경제력의 한계가 복지의 한계라는 상식 따윈 무시하고 남발한 차용증 아닌가. 이제, 대한민국 공짜 열차가 마지막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차용증을 발행한 정치인들이 몰고 있고, 그 차용증을 승차권 삼은 유권자가 타고 있다. 복지 천국이라고 써놓고 복지 망국으로 읽어야 할 종착역이 점점 다가온다. 어쩌면 마지막이었을지 모를 이번 정거장이었는데 그대로 지나가고 있다. 복지를 줄이자는 쪽도 없고, 세금을 올리자는 쪽도 없다. 저마다 내 복지는 좋은 것이라며 가속 페달만 밟는다. 천지사방에 경고방송이 요란하다. 다음 역은 이 열차의 종착역인 복지망국역, 정면충돌 5분 전입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복지망국驛 충돌 5분 전!]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이재명 시장, 서명엔 빠지고 발표만 했다

그날. 인근 복덕방에 사무실이 꾸려졌다. 경기도 책임자와 성남시장이 함께했다. 남경필 지사는 독일에서 공항으로 이동하던 즈음이다. 사고 대책본부를 꾸리는 것이 급했다. 본부장은 당연히 성남 시장일 걸로 봤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경기도지사와 성남시장이 공동으로 맡았다. 성남시장의 반대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숨진 사람들 상당수가 성남 시민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댔는지도 모른다. 희생자 대부분은 성남시민이었다. 결정된 본부 사무실도 이상했다. 도지사까지 임명됐으면 사고의 비중이 커졌음을 의미했다. 당연히 신속한 행정 처리가 가능한 성남시청에 자리를 잡아야 옳았다. 구름처럼 몰려들 취재진을 처리하기 위해서도 성남시청이 제격이었다. 전국 최고 시설로 곤혹까지 치렀던 번듯한 청사다. 그런데 본부는 하위 기관인 분당구청에 차려졌다. 역시 성남 시장의 뜻이 아니었나 싶다. 시청에 차려질 경우 책임의 상징성이 커질 수도 있어서다. 본부를 알리는 표식도 이상했다. 대책본부가 구성됐고 곧이어 구청 건물에 사무실을 알리는 표식이 붙었다. 본부장을 포함하는 경기도(남경필 지사)ㆍ성남시(이재명 시장)가 명기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런데 성남시 공무원이 만들어 붙인 표식은 달랐다. 경기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대책본부였다. 성남만 쏙 빠졌다. 경기도 쪽의 항의가 있었을법하다. 혹시 그래서였을까. 표식 중 경기 부분이 슬그머니 잘려나가 균형(?)이 맞춰졌다. 대형 사고의 책임자는 잘해야 본전이다. 사고와 오버랩되는 이미지가 공직 생활에 도움될 리 없다. 판교 참사도 그렇게 갈 거라 봤다. 책임 주체, 책임 범위, 보상 주체, 보상 범위.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언론 앞에 선 건 경기도 측 박수영 부지사였다. 합의의 초기 단계였던 6개 합의안 발표도 박 부지사가 했다. 그때까지 성남 시장은 마이크를 잡지 않았고 주도한 발표도 없었다. 늘 한 걸음 뒤에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난망하던 합의가 타결됐다. 참사 57시간 만의 일이다. 제2의 세월호로 단정 짓던 언론조차 놀랐다. 기자와 카메라가 대책본부 발표장에 진을 쳤다. 그런데 그 발표장에 들어선 건 박 부지사가 아니었다. 침묵하던 이재명 시장이 들어섰다. 그리고 700자가 넘는 장문의 글을 담화문처럼 읽어 내려갔다. 사고대책본부를 만들고 사고 수습에만 치중해왔다유가족들께서 초인적이라 할만큼의 합리성과 인내심을 보여주셨다. 수습을 위해 노력 한 점은 맞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합의문에 이 시장이 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통상 서명을 하지 않는 경우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합의 내용에 만족하지 않거나 합의에 당사자가 되기를 거부하거나다. 어느 경우든 이 시장은 합의문의 법률적 당사자에서 끝내 빠졌다. 그렇다고 대책 본부의 대변인도 아니다. 그런데도 극적 합의 발표 순간에 그가 나섰다. 혹, 내가 발표하면 안 되겠나고 자청이라도 한 건가. 언론은 그의 뜻대로 쫓아갔다. 이 시장의 얘기가 영웅담처럼 소개됐다. 성남 시장 중재로 합의 이뤄, 변호사 출신 다운 중재 능력. 필자는 최초 대책 장소였던 복덕방 사무실에 있지 않았다. 공동 본부장 구성ㆍ분당 구청 사무실 결정에 대해 아는 바 없다. 협상 테이블도 엿본 바 없다. 희생자 과실이 왜 30ㆍ50%에서 40%로 중재됐는지 모른다. 경기도와 성남시의 책임은 수사 결과에 따른다는 단서가 왜 추가됐는지도 모른다. 서명을 안 한 이 시장의 속을 들여다볼 재간도 없다. 협상 당사자였던 박 부지사도 모두의 노력이라 얼버무린다. 귀동냥도 여기까지다. 그럼에도, 찜찜한 느낌만은 지울 수 없다. 이재명 극본ㆍ이재명 주연의 허구 단막극을 시청한 듯해서다. 합의안에 서명하지 않았으면 발표자로 나서지 말았어야 했고, 발표자로 나설 거면 합의안에 서명했어야 했다. 그게 책임과 권리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균형이다. 더구나 이번 사고가 뭔가. 시민 16명의 목숨이 악마의 목구멍처럼 벌어진 구덩이로 빨려 들어간 참사다. 정치적 득실을 찾아 주판알을 튕기기엔 너무도 죄스러운 사고다. 그날, 이 시장은 합의 극적 타결의 주인공으로 발표장에 섰다. 그리고 그날 이후, 이 시장은 다시 판교 사고와 나는 무관하다며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이재명 시장, 서명엔 빠지고 발표만 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沈 시장→金 시장→廉 시장, 그리고 華城

심재덕 시장이 있어 화성은 부활했다. 서민 아파트 빨래가 널려 있던 곳, 그곳이 화서문(華西門ㆍ서문)으로 부활했다. 일제가 정한 도립 병원이 흉물스럽던 곳, 그곳이 화성행궁(華城行宮)으로 부활했다. 재래시장 주차장을 위해 콘크리트로 뒤덮였던 곳, 그곳이 수원천(水原川)으로 부활했다. 언제부턴가 백과사전에 실렸던 수원성, 그곳이 본래의 이름 화성(華城)으로 부활했다. 200년간 잊혀졌던 위대한 정조대왕의 숨결은 그렇게 심 시장을 통해 부활했다. 유네스코가 뭔지, 문화유산이 뭔지도 생소했다. 그런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화성을 등재시키겠다고 뛰었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다. 세계적 규모의 성곽도 아니었다. 복원이라야 행궁과 부속 시설물 몇 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뛰었다. 그리고 1997년 목표를 이뤄냈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라는 책자를 근거로 밀어붙였음은 그 뒤에 알려졌다. 스스로를 문화 시장이라 말하던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 화성은 수원시민의 미래 먹거리다. 김용서 시장이 있어 화성은 완성됐다. 2만2천여㎡의 거대한 화성행궁광장을 복원했다. 흉물처럼 서 있던 우체국을 철거해서 가능했다. 鍾路(종로)라는 이름의 이유였던 여민각(與民閣)을 복원했다. 30년 이상 장사하던 상가들을 철거해서 가능했다. 화홍문에서 팔달문에 이르는 천변이 복원됐다. 방석집이라 불리던 퇴폐 업소들을 몰아내면서 가능했다. 동쪽 관문인 창룡문(蒼龍門) 주변도 복원됐다. 625 이후 터잡은 퉁수마을을 철거해서 가능했다. 집단 민원이라면 벌벌 떠는 게 민선(民選)이다. 그 중에도 주민 철거는 가장 예민하고 후유증 많은 일이다. 우체국, 상인, 술집, 빈민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우체국 철거에 수년이 걸릴 수 있었고, 빈민가 정리에 수백억이 들 수도 있었다. 소신과 배짱 없인 손댈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장애물들이 민선 3ㆍ4기 8년에 모두 정리됐다. 불도저로 불리던 김 시장이 마무리 지은 일이다.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 수원은 관광 중심 도시가 돼야한다. 돌아보면 둘만한 라이벌도 없었다. 정적(政敵)의 상징이었다. 2002년 유세장에선 다신 안 볼 듯 싸웠다. 서로 능력 없다며 공격했고, 부패하다고 공격했다. 전임자의 사업도 줄줄이 백지화됐다. 전임자의 사람도 예외 없이 한직으로 밀려났다. 아주 흔하게 보는 선출직들의 전임자 흔적 지우기다. 그런데 딱 한 가지, 화성(華城)은 달랐다. 심재덕의 화성이 그대로 김용서의 화성이 됐다. 심 시장이 만든 설계가 그대로 김 시장 정책의 밑그림이 됐다. 지금의 화성 뒤엔 이런 정적들의 협력이 있다. 이제 그 자리에 염태영 시장이 있다. 많은 시민들이 궁금해한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현재 먹거리다. 그동안 화성 정책은 돈 쓰는 정책이었다. 민선 이후 들어간 복원 예산이 5천억원을 넘는다. 복원에 직접 투입된 예산만 그렇다. 인프라 구축 등의 연계 예산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공사 중이라는 푯말 앞에 허비된 시민의 고통도 계산되지 않았다. 언제까지 복원만 할 것이냐는 불만과 수원을 민속촌으로 만들거냐는 불평이 십수년간 이어졌던 이유다. 그 오랜 질문-심ㆍ김 시장은 풀지도 않았고 풀 수도 없었던-에 답을 내야 하는 것이 염 시장이다. 그가 수원 화성 방문의 해를 하려고 한다. 화성 만들기를 화성 팔기로 바꾸는 일이다. 예산 투자를 수익 창출로 바꾸는 일이다. 과거 백성 더듬기를 현재 시민 챙기기로 바꾸는 일이다. 단 한 접시의 수원 갈비라도 더 팔고, 단 1m의 지동 순대라도 더 팔려는 일이다. 생각하면 십수년전 심 시장이 얘기했던 미래 먹거리의 실천이고, 수년 전 김 시장이 얘기했던 관광 도시 수원의 완성이다. 그들이 가지 못한 화성 관광 수원의 마지막 꿈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올 초, 월스트리트 저널이 세계 20대 관광 도시를 선정했다. 거기에 수원은 없다. 311살 버킹엄 궁전의 런던(1위)은 있는데 218살 화성의 수원은 없다. 고적(古跡)의 도시 이스탄불(7위), 로마(14위)는 있는데 성곽의 도시 수원은 없다. 이제 그 속에 들어가야 한다. 당장은 아니어도 좋다. 2020년에 20위여도 좋고, 2025년에 10위여도 좋다. 일단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고, 선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염 시장의 2016 수원 화성 방문의 해가 그 출발일 수 있다. 물론, 그 출발선에 심 시장(유족), 김 시장, 염 시장이 함께 선다면 그보다 더한 그림은 없을 것이고. [이슈&토크 참여하기 = 沈 시장金 시장廉 시장, 그리고 華城]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연정 하나면 도정 깽판 쳐도 괜찮다’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전국에서 동시에 시작하게 될 거다. 지금은 아니다. 1년 뒤 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나온 답이다. 말 속에 우리는 남-원-정으로 불리는 소장파 그룹이다. 시작할 것이다란 광역 단체장 출마를 말한다. 결국 언젠가 남-원-정이 전국 시도지사로 동시에 출마할 것이다란 의미다. 2009년 어느 날, 서울의 조그만 횟집에서 남경필 의원은 그렇게 말했다. 비보도라는 약속은 없었다. 하지만 기사화하지 않았다.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당내 비주류였던 그다. 소권(小權)이라 불리는 경기도지사를 줄 당(黨)이 아니라고 봤다. 남-원-정이 동시에 출격한다는 예상은 더 가능성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 예상이 현실이 됐다. 남과 정은 경기지사에, 원은 제주지사에 나섰다. 그리고 남이 경기지사, 원이 제주지사가 됐다. 우연이라기엔 시기와 형식이 소름 돋게 맞아떨어진다. 국가 정치를 본인의 계획대로 만들어 가는 힘. 정치인 남 지사의 그런 능력은 어디서 나올까. 돌아보면 이슈 선점이다. 그날 이런 말도 했었다. ○○○시장을 간단히 보면 안 된다. 큰 선거의 승패는 이슈 선점이다. 그는 이것을 잘 이용하고 있다. 그때 ○○○ 시장은 혐오시설 유치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모두가 미련한 짓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런 ○○○시장의 결정을 남 의원만은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바로 이슈선점이었다. 남 의원 본인의 정치 공학이었던 듯 보인다. 그때도 그렇게 느꼈다. 실제로 그의 정치는 그랬다. 초년 시절 미래연대를 만들었다. 선수(選數)가 깡패라는 정치판에서 소장파 리더라는 이슈를 만들었다. MB에 밉보였던 그가 2008년 총선에서 위기를 맞았다. 그때도 카드는 형님 권력(이상득) 퇴출이란 이슈 선점이었다. 최루탄과 해머로 얼룩진 국회 파행 때도 그의 촉수는 반응했다. 국회 선진화법이란 이슈를 국민 앞에 내놨다. 출마를 뜸들일 때 등장한 남경필 이슈는 6월 선거의 정점이었다. 이쯤 되면 이슈선점의 귀재다. 시기 선택과 소재 창출에 관한 한 그만한 정치인이 없다. 그런 그가 지방 정치판에 연정이란 화두를 던졌다. 때마침 원희룡 제주지사까지 가세했다. 민선 5기 초반이 성남發 모라토리엄에 흔들렸다면 민선 6기 초반은 남경필發 연정으로 요동쳤다. 여기서 모두의 질문이 나온다. 연정을 이슈로 던진 남 지사의 목표는 무엇인가. 대화하고 타협하는 새로운 정치는 너무 교과서적인 답변이고. 모두가 안다. 연정은 대통령 선거용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극에 달했다. 이런 국민을 향해 내놓을 그의 대선 예비 상품이다. 투쟁과 불신의 정치를 화합과 신뢰로 바꾼 연정을 실현했다라는 이력서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탄착점이 다르면 조준점도 달라지는 법이다. 연정의 탄착점은 2014년 도정이 아니라 2017년 국정이다. 그러면 이해된다. 모두가 걱정하는 도정 공백을 남 지사만이 느긋하게 지켜보는 이유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정치인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이슈로 이슈를 덮어가는 그의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었다. 장인 좌익이란 위기를 아내 사랑이란 이슈로 덮었다. 지지도 급락이란 위기도 수도이전이란 이슈로 탈출했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남겼다. 남북대화 하나만 성공하면 다 깽판 쳐도 괜찮다(2002.5.28). 실제 그는 통일에 모든 걸 걸었다. 여야(與野) 충돌, 대미(對美) 갈등의 출발도 그의 이런 통일관이었다. 지금의 경기도 연정에서 그때의 모습이 얼비친다. 20곳 넘는 산하기관이 주인을 못 찾고 있다. 지금의 장(長)들은 후임 결정 때까지의 임시직이다. 법적 근거도 없는 청문회 치르느라 두 달이 갔다. 도민에게 무슨 실익이 있었는지 입증된 바 없다. 야당에 준다던 사회통합부지사는 석 달째 비어 있다. 언제 채워질지 기약도 없다. 모든 게 연정을 위해 희생되는 도정이다. 그렇게 100일이 지났는데도 남 지사의 입장은 똑같다. 기다리겠다!. 연정(聯政)만 성공하면 도정(道政)은 다 깽판 쳐도 괜찮은가. 1,300만 도민이 정치 실험의 교보제인가. 이제 달리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큰 인물이라면 끊고 맺음도 분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래저래 도민의 연정 피로감만 커져 간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연정 하나면 도정 깽판 쳐도 괜찮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우리에겐 자랑스런 國軍 43만이 있소이다’

담배 15갑이 월 할당량이다. 보름쯤 지나면 동난다. 변기통에 떨어진 장초도 말려서 피운다. 단것은 먹어도 먹어도 당긴다. 사회에서는 먹지 않던 빵을 수시로 사 먹는다. 맛동산과 코코넛 비스킷이 준비될 때도 있다. 분대 단위 회식이 있는 날이다. 그 사이 PX(부대 매점) 외상 장부가 늘어 간다. 월급날이면 어김없이 PX 병이 내무반을 찾는다. 80년 상병이 그렇게 쓰던 봉급이 3천400원이다. 그 봉급이 2014년에 13만4천600원이다. 40배다. 찌는 듯한 여름날 훈련이 끝난다. 80년 상병 에겐 변변한 공간이 없다. 내무반 구석 총기 거치대 옆이 자리다. TV 앞 침상에는 말련 병장이 눕는다. 신참 병장들이 그 뒤로 조금 불편하게 앉아 있다. 일병과 이병의 자리는 아예 없다. 내무반 밖 처마 밑이 그들의 공간이다. 취침나팔이 불 때까지 내무반은 그렇게 병장과 상병들 차지다. 그 군대에 2003년 현대식 막사가 들어섰다. 개인 침대까지 들어갔다. 2.3㎡이던 1인당 면적이 6.3㎡로 커졌다. 책(冊)은 사치다. 읽을 시간도 없지만 읽을 책도 없다. 진중도서라야 월간 샘터가 전부다. 그나마 언제적 발간인지 알 수가 없다. 80년 군대에서 월간지는 1년이 지나도 다음 달이 오지 않는 연간지다. 샘터 이외 외부 책은 모조리 불온서적이다. 80년 상병에게서 발견된 박범신의 소설이 소대 전체를 연병장에 집합시켰다. 그 시절 책은 군기를 해이하게 하는 장애물이었다. 그랬던 군대에 도서관이 2014년 현재 1천662곳이다. 책이 480만권이다. 놀잇감이 있을 리 없다. 시멘트로 만든 역기(力器)는 고참 차지다. 기웃거렸다간 힘이 남아 돈다며 불호령이 떨어진다. 대신 해야 할 게 분대 대항 족구 시합이다. 그나마 담배를 내기로 건 고참들의 놀이거리다. 내무반 구석에 기타는 상급부대 과시용이다. 6개 줄이 성할 리 없다. 남은 줄도 벌겋게 녹슬었다. 80년 상병에게 휴식은 그렇게 놀잇감 없는 고역의 시간이었다. 그 군대에 보급된 PC가 2014년 현재 4만8천617대다. 군인 9명당 1대꼴이다. 소름 끼치는 교육도 있다. 이상한 차림새의 외부 강사가 등장한다. 군복을 입었는데 허리띠가 없다. 군화를 신었는데 신발끈이 없다. 군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소 병사다. 부대원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강연이 끝나자 헌병에 이끌려 호송차에 실린다. 끔찍한 사진들도 전시된다. 사고 또는 자살자들의 모습이다. 교육의 목적은 간단하다. 죽지도 말고 죽이지도 마라. 그랬던 80년, 군에서 사망한 사고자가 970명이다. 2014년 6월까지 55명이다. 그래도 10월1일은 좋다. 아침 식단에 고깃국이 등장한다. 3개들이 팥빵도 나온다. 훈련도 없다. 모처럼 TV 앞 자리가 모두에게 개방된다. 서울 시청을 지나는 시가행진이 방송된다. 고층 건물에서 뿌려지는 색종이가 거리를 화려하게 덮는다. 여성들이 뛰어들어 장병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준다. 내무반이 환호성으로 가득 찬다. 얼굴도 모르는 오빠에게로 시작하는 위문편지가 배달되는 것도 이때쯤이다. 80년 상병이 군인 됐음을 뿌듯해 한 날이다. 군(軍)은 좋아졌다. 월급도 올랐고, 내무반도 좋아졌고, 책도 넘쳐나고, 사망 사고도 줄었다. 80년 상병 눈에는 개혁(改革)이 아니라 개벽(開闢)이다. 그런데도 정반대로 가는 게 있다. 군을 보는 민(民)의 시각이다. 부하 죽이는 폭력집단으로 몰고 간다. 하급자 성추행하는 변태집단으로 묘사한다. 툭하면 뚫리는 엉성한 보초집단으로 쓰고 있다. 시민 단체가 선창(先唱)하고, 언론과 정치가 복창(復唱)한다. 국가에 도움 안 될 이런 선동을 경쟁하듯 하고 있다. 국군의 날도 예전의 그날이 아니다. 특식(特食)은 여전하다. 하지만 80년 상병은 받았고 2014년 상병은 못 받는 게 있다. 국민들이 차려주는 생일상이다. 시가행진도 없고 꽃다발도 사라졌다. 공휴일도 아니니 기억해주는 이도 적다. 군사 문화 잔재라며 1991년 문민정부가 없앴다. 겹치기 공휴일까지 챙겨주는 나라지만-대체 공휴일제-국군의 날은 챙기지 않는다. 땅을, 바다를, 하늘을 지켜주는 국군에게 내놓는 생일상이 이렇듯 초라하다. 417년 전, 이순신은 열두 척의 배를 가지고 싸웠다. 그와 수병들이 벌이는 영웅담에 1천800만 국민이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어떤 배우의 연기로도 표현할 수 없는-2014년 국군의 모습에는 박수가 없다. 잘린 손가락 대신 다른 손으로 사격하며 연평을 지킨 군인, 불붙은 철모를 쓰고 포탄을 장전하며 전차를 지키던 군인, 수원 시민 다칠까 봐 조종관을 붙들고 산화한 군인. 1597년의 12척 배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2014년의 43만 국군의 모습이다. 그런데 모두들 잊고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부총리의 말장난 또는 거짓말

위스콘신 대학교 경제학 박사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엘리트 경제 관료였다. 국회 조세소위 위원장도 했다. 지식경제부 장관까지 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경제부총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경환 부총리를 학문과 실무, 정치를 겸비한 경제 1인자라 부른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증세 계획은 없다이번 담뱃값 인상은 세수가 아니라 국민건강이 목적이다(주민세 자동차세 인상도)지자체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중앙정부가 마지못해 받아들인 정책이다. 혹세무민이 따로 없다. 여론을 어지럽히고 국민을 속이는 말이다. 담뱃값이 한꺼번에 80% 올랐다. 하루 한 값이면 1년에 121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9억원짜리 주택의 재산세와 맞먹는다. 끽연자에겐 유례 없는 세금 폭등이다. 주민세도 평균 4천600원 선에서 두 배 오른다. 주민세 인상이라는 단어가 22년만에 처음 등장했다. 자동차세도 2017년까지 두 배 오른다. 존재감 없던 자가용이 애물단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증세 아니고 뭔가. 그의 현학적 표현이야 어떻든 서민에게 날아올 건 세금폭탄 고지서다. 지방정부를 핑계 댔는데 이것도 그렇다. 지방정부의 예산 타령은 연례행사다. 지자제 이후 20년 내내 그랬다. 그런데 이번만 유독 지자체 요구에 반응했다. 내년부터 5천억 원(지방세수 인상분 4천억원+담뱃세 포함 지방세 인상분 1천억원)이 지방에 돌아갈 것이라며 선심 쓰듯 설명했다. 그 뻔한 이유를 모르는 지방민은 없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떠넘긴 복지비용 6조원 때문이다. 이를 놓고 지방을 위해서 줬다고 설명하면 안 된다. 게다가 보충이랄 것도 없는 돈이다. 지방의 계산은 여전히 -5조5천억원이다. 지난주, 지방 정부의 복지 무책임을 지적했다-본보 9월11일자 김종구 칼럼-. 기초연금 때문에 파탄 나게 생겼다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들을 향한 지적이었다. 무상급식으로 무상복지의 불을 지핀 건 본인들이면서. 그 무상급식의 달콤한 열매로 시장ㆍ군수 됐으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상급식에는 수십 수백억원씩 널름널름 퍼주면서. 기초연금만을 탓하며 난리 법석을 떠는 것이 논리에 맞지 않아서였다. 스스로 무상급식을 수정하는 자세가 필요해서였다. 그런데 그때와 똑같은 핑계가 이번엔 중앙정부에서 나오고 있다. 결국은 복지폭탄 돌리기다. 중앙은 지방에 복지비 충당 책임을 돌리고, 지방은 중앙에 예산 파탄 책임을 돌리고 있다. 중앙은 지방에 세금 인상 원인을 돌리고, 지방은 중앙에 편법 증세 원인을 돌리고 있다. 기초연금이 중심인 중앙 정부 복지와 무상급식이 중심인 지방 정부 복지가 충돌하는 폭탄 돌리기다. 실망스럽게도 그 한 축에 대한민국 경제 대통령-경제 관료였고, 경제학 박사이고, 경제통 정치인이기도 한- 최경환 부총리가 있다. 비전문가들 틈에 섞여 그도 그들처럼 핑계 대고 그들처럼 거짓말하고 있다. 몇 해 전, 우리가 본 모습에 이런 게 있다. 미국발 복지-증세 충돌이다. 셧 다운까지 몰고 갔던 오바마케어(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가 천문학적인 예산으로 위기에 부딪혔다. 오바마의 승부수는 증세였다. 부자들에게 버핏세를 물렸다. 이 세목으로 4천억달러(우리돈 1,700조 원)을 만들었다.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의 부부에게 적용했던 감세 혜택도 폐지했다. 여기서도 8천억 달러를 챙겼다. 그런 오바마에게 미국민은 재선(再選)을 선물했다. 당당한 복지와 떳떳한 증세에 대한 화답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복지를 위한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실토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방세 인상도 중앙정부 때문이다라고 시인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또 다른 세금 인상도 있을 수 있다고 털어놓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표가 떨어지더라도 악역은 내가 맡겠다고 선언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어차피 복지는 뒤로 갈 수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 폭발 직전에 온 복지 폭탄을 끌어안아야 한다. 혹시 2017 대망(大望)을 꿈꾸는 지도자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그런데 안보인다. 최 부총리도 아닌듯 싶고. [이슈&토크 참여하기 = 부총리의 말장난 또는 거짓말]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그러면 노인들을 굶기자는 것이냐?

4년 전 이 맘 때는 모라토리엄이었다. 돈 없어 빚을 못 갚겠다는 선언이었다. 성남에서 시작된 화두가 전국을 휩쓸었다. 분노한 여론은 전임 지방 정부를 겨냥했다. 8년 한나라당 지방 정부가 대상이었다. 호화 청사부터 대형 운동장까지 모든 게 심판대에 올랐다. 5기 시장들은 거덜난 집안을 살리는 해결사가 돼야 했다. 부채 정리와 재정 건전성 확보에 모든 걸 걸었다. 그 결과 많은 시군의 곳간 사정이 개선됐다. 4년 흐른 지금은 디폴트(default)다. 돈 없어 부도나게 생겼다는 취지는 같다. 이번엔 특정 지자체만의 선창(先唱)도 아니다. 전국 시장ㆍ군수ㆍ구청장들이 함께한 합창(合唱)이다. 226개 지자체장이 서명한 디폴트 성명서가 프레스 센터에서 발표됐다. 달라진 건 그 원인이다. 정부가 떠넘긴 복지 비용이 원흉으로 지목됐다. 전체 예산의 35%를 오르내리는 복지비 부담이 지자체를 파산으로 몰고 있다는 설명이다. 원인이 다르면 치유 방법도 달라진다. 4년 전 모라토리엄은 개인의 문제였다. 파산 직전으로 몰고 간 전임(前任)들의 책임이 컸다. 어떤 전임자는 먼지까지 털려 감옥에 갔다. 어떤 전임자는 회생 불능의 파산자로 찍혔다. 해결해 낸 것도 신임(新任) 시장들 개인이었다. 성남 시장은 모라토리엄을 졸업시켰다. 수원시장은 부채 3천억원을 300억원으로 줄였다. 모라토리엄은 그렇게 망친 것도 개인, 살린 것도 개인이었다. 지금의 디폴트는 복잡하다. 중앙ㆍ지방간의 갈등이 원인이다. 그 밑에 난공불락의 당리ㆍ당략까지 깔려 있다. 3일자 성명서에 등장한 중앙 정부의 복지부담 전가가 그것이다. 기초연금 인상은 새누리당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서명한 외상 장부다. 시장ㆍ군수ㆍ구청장 중 누구도 그 장부에 연서(連署)한 적 없다. 그런데 몇백 억 원짜리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대통령 공약 뒤치다꺼리하다가 4년 다 갈 판이다. 당연히 억울해할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4년 전으로 돌아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초연금의 기원에는 무상(無償) 바이러스가 있다. 보편적 복지라는 탈을 쓰고 등장한 무상급식이었다. 걸인(乞人)의 아들도, 갑부(甲富)의 손자도 구분하지 않는 공짜 복지였다. 이 공짜 바이러스가 유권자의 눈을 가렸고, 그 틈새로 당선된 게 민선 5기 시장ㆍ군수ㆍ구청장들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재선(再選)으로 몸값을 높였다. 디폴트 성명서를 낭독한 것도 그들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더니. 이게 딱 그 격이다. 민선 5기는 무상급식의 폭주(暴走) 4년이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4, 5학년으로 시작했다. 다음해는 초등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됐다. 그다음 해는 중학교로 확대됐다. 대안학교에 유치원까지로 넓혀졌다. 그 사이 십몇 억 원에서 시작한 예산이 100~200억원까지 치솟았다. 지금 그들이 망하게 생겼다며 아우성치는 복지비 35%에 그 돈이 섞여 있다. 더 답답한 건 이런 공짜 바이러스가 여전히 살아 꿈틀댄다는 거다. 성남시는 65세 이상 버스비 지원을 선언해 중앙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기초연금 20만원 중 지자체 몫 8만원을 먼저 뿌리겠다고도 약속했다. 7ㆍ30 재보선의 수원 지역 후보는 무상급식을 고교생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중ㆍ고교생 무상 교복까지 들고 나왔다. 복지 부담 때문에 큰 일 났다며 성명서 내는 지자체의 뒷모습이다. 시민 누가 동의하겠나. 이러면 안 된다. 스스로의 반성과 개선이 먼저다. 무상급식 퍼주기부터 반성해야 한다. 무상급식 3조원 개선책부터 고민해야 한다. 혹시 무상급식 확대를 약속했다면 설명하고 백지화해야 한다. 혹시 과도한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다면 사과하고 축소해야 한다. 그런 반성이 있을 때 비로소 기초연금을 탓할 자격이 생긴다. 그때 비로소 기초연금 5조원을 거부할 명분이 생긴다. 그게 정상적인 행정의 책임과 균형이다. 4년 전, 이렇게 썼다. 무상급식이 재정을 위기로 내몰 것이다. 그때 그들이 말했다. 그러면 아이들을 굶기자는 것이냐. 4년 뒤, 이번엔 그들이 말하고 있다. 기초연금이 지방 정부를 파탄 낼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말하려고 한다. 세금에 애들 돈 따로 있고, 노인 돈 따로 있나. 애들은 먹이고 노인들은 굶기자는 것인가?. 억지 논리라며 분해할 것 없다. 언젠가 닥칠 공짜 복지의 업보(業報)였다. 다만, 그 끝이 빨리 왔을 뿐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그러면 노인들을 굶기자는 것이냐?]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교황 있는 세월호 - 교황 없는 세월호

그냥 단식하다 죽어라. 그게 네가 딸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고, 전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다. 죽어라. 좌파 새끼들이 수도 서울을 아예 점령했구나. 호의를 베풀면 권리인줄 안다. 이 말이 가장 정확하게 적용되는 인간들, 세월호 유족충. 뮤지컬 배우 이산의 글이다. 글과 함께 사진도 올렸는데 세월호 유족들의 농성 현장이다. 폼 나게 선글라스까지 끼고 찾아가서 찍었다. 또 다른 배우가 김영오씨의 단식에 황제단식이라는 조롱을 달았다. 이보다 더한 악담들도 SNS에 수두룩하다. 참혹해서 옮길 수 없을 뿐이다. 이러는 사이 세월호 유족들의 모습이 일그러졌다. 단식을 하는 유민 아빠는 딸을 버렸던 패륜 아빠로, 농성하는 유족들은 자식 죽음을 대가로 한 몫 잡으려는 패륜 집단으로 몰렸다. 이제 세월호의 슬픔을 입 밖에 꺼내기도 멈칫거려질 정도다. 교황이 없는 한국의 모습이다. 열흘 전 한국은 달랐다. 비바 파파(교황 만세)가 연호되던 광화문은 축복의 장이었다. 입장하던 교황이 차에서 내려 노란색 무리에게 다가갔다. 단식중이던 유민 아빠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쳤다. 건네 받은 김씨의 편지를 호주머니 속에 소중히 넣었다. 다음날 교황은 승현 아빠 이호진씨에게 세례를 줬다. 십자가를 지고 900㎞ 걸어온 이씨였다. 교황은 자신과 같은 프란치스코를 세례명으로 줬다. 언론은 이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썼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교황이라고 썼다. 힘든 자들의 반려자 교황이라고 썼다. 표현할 수 있는 극단의 존칭은 다 동원했을 것이다. 그 사랑의 무리 속에 연예인들도 있었다. 한국에 계시는 동안 건강하시길 바란다(배우 채시라). 오늘은 굉장히 뜻깊은 날이었다. (교황께서) 노래를 통해서 앞으로 많은 분들께 용기와 희망을 전하라 하셨다(가수 보아). 교황이 있는 한국의 모습이었다. 데자뷰인가. 2002 월드컵. 마지막 한국 경기는 4강전이었다. 바로 다음날 광화문 광장을 찾은 외신 기자가 이런 기사를 타전했다. 어제까지 붉은 인파로 가득 찼던 이곳은 하루 만에 소름끼치도록(Terrible) 조용해졌다. 그 기자가 열흘 전 한국과 지금의 한국을 봤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런 기사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교황 있을 때 세월호 유족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찼던 광화문이 교황이 떠난 뒤 소름끼치도록 그들을 공격하고 있다. 교황도 인간이다. 그가 해준 건 별로 없다. 죽은 아이들을 살려낸 신력(神力)도, 유족에게 나눠준 재물(財物)도 없었다. 그저 손잡아주고 눈 마주쳐주는 게 다였다. 그런데도 유족들은 거기서 위로받았다. 승현 아빠는 그날 이후 무겁던 십자가를 내려놓았다. 정치에 얽매이지 않은 진정성이 서로를 통하게 한 것이다. 교황도 이렇게 강조하며 떠났다.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 하물며 대통령도 인간이다.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특별법은 국회가 만든다. 특별 검사도 정치권이 뽑는다. 그런데도 유족들은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 한다. 뙤약볕 아래에서 며칠째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월 17일. 대통령은 아직 선미(船尾)가 괴물처럼 드러나 있는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이들을 구하진 못했다. 그래도 가족들은 위로받았다. 국민 59%도 대통령을 지지했다(갤럽 조사). 그때와 달라진건 없다. 만나야 한다. 왕 교수가 푸념을 늘어놓는다. 세월호 때문에 밀렸던 봄 축제들이 전부 가을로 넘어왔어요. 연예인 섭외가 비상입니다. 우리 학교도 가수 스케줄에 맞춰 개학과 동시에 하게 됐습니다. 개강하고 축제하고 추석 연휴죠. 왕 교수네 학교뿐만 아니다. 봄 축제가 겹치면서 올가을 대학가는 축제가 홍수를 이루게 됐다. 덩달아 연예인의 몸값도 뛰고 있다. 넉 달 전에 밥줄 끊겼다던 연예인들의 숨통이 그렇게 확 트이고 있다. 모든 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가수도 돌아왔고, 무대 업자도 돌아왔고, 조명 업자도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게 있다. 그때 거기서 죽어간 아이들이다. 그 애들이 부모의 가슴에 남기고 간 천붕(天崩)의 상처다. 어쩌자고 그 불쌍한 애들을 욕되게 하나. 어쩌자고 이 불쌍한 부모들을 힘들게 하나. SNS 곳곳을 튀어다니는 이상한 물질, 이건 분명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이 흘려놓은 DNA 찌꺼기일 것이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교황 있는 세월호 - 교황 없는 세월호]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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