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다. 세상 모든 죽음이 슬프다. 그날의 영결식도 그랬다.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이 애도했다. 도지사도 꽃을 받쳤다. 신문사 사장도, 현장 기자들도 고개를 숙였다. 바삐 살다간 그에 대한 마지막 인사였다. 언론은 그날을 이렇게 기록했다. ‘순직한 안수현 원장, 영결식 거행’ ‘중국서 순직한 안 원장 경기도청장 엄수’. 딸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 훗날 청원서에 이렇게 썼다. “아빠를 잃은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15일이면 꼭 3년이다. 이제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갔다. 공보실, 교통과장실, 자치국장실, 연구원장실…. 어디에도 그가 앉았던 흔적은 없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부쩍 줄었다. 그저 ‘성실히 살다가 순직한 어느 공무원’이 됐다. 그런데 그런 안 원장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영결식장에서 오열하던 딸이다. 그 딸이 3년째 아버지 이름을 붙들고 있다. 보훈지청으로, 법원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우리 아빠는 순직이에요. 인정해주세요.” 돌아보면 언론의 오보(誤報)였다. 도지사의 조사(弔辭)도 틀렸다. 그의 죽음은 순직이 되지 못했다. 대한민국 보훈처가 그렇게 결정했다. 2014년 3월 18일자 보훈처의 심의 의결서엔 이렇게 적혀 있다. ‘고인을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14호의 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하고,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3호의 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한다.’ 순직(殉職)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유는 이렇다. 국민의 생명ㆍ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했다. 만찬 후 숙소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만찬에서 먹은 술도 이유가 됐다. 백주 2병이었고 40도짜리였다고 했다. 8명이 나눠 먹었으니 안 원장의 음주량은 125㎖라고도 했다. 그의 10년치 치료 내역도 모두 깠다. 추간판 장애, 고혈압, 급성편도염, 손발톱 백선…. 사망 원인을 지병(持病)과 연관 짓는 전력 들추기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지병 있는 사람이 술 먹다 죽었다’다. 정말 그런가. 정말 안 원장의 사망은 업무와 무관한가. 정말 술 먹고 즐기다가 사망한 것인가. 숨진 곳은 중국 산둥성 행정학원 숙소다. 출장 목적은 경기도와 산둥성의 교류협력이었다. 직인(職印) 찍힌 공무(公務)였다. 만찬 자리도 그렇다. 8명이 참석했다. 한국인은 안 원장 등 3명이었다. 중국인은 5명이나 됐다. 가오위칭 서기, 아이쓰퉁 부원장, 천샤오, 두장센, 좡칭타오…. 안 원장이 빠질 수 없는 밥 자리였다. 병력(病歷)은 어떤가. 대한민국 59세 남자 직장인이다. 디스크, 고혈압, 편도선…. 급사(急死)의 원인이라고 여길 병이 아니다. 한 달 뒤면 명예퇴직이었다. 그래도 그는 쉬지 않았다. 4월 3일엔 지구 반대편으로 갔다. 페루와 미국을 오가며 10일간 업무를 수행했다. 곧바로 제주도 연수도 다녀왔다. 그리고 며칠 뒤 또다시 중국으로 갔다. 하나같이 목적이 분명한 공무였다. 돌아보면 가족을 맘 아프게 하는 모습이 있다. 떠나던 날 새벽, 안 원장이 남긴-결국 유언이 되어 버린- 말이다. “힘들다. 안 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는 갔고 협약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거기서 숨졌다. 이런 죽음에 대한민국은 ‘순직’ 한 마디를 붙여주지 않는다. ‘죽을 병’이 있었다며 10년치 병력까지 들춘다. ‘술 때문에 죽었다’며 술 몇 잔의 알코올 도수까지 계산한다. ‘근무 시간 아니다’며 5시 환담과 6시 만찬을 분초로 가른다. 그러면서 ‘유족의 거증(擧證) 책임’을 말한다. ‘억울하면 유족이 입증하라’는 얘기다. 이런 대한민국 앞에 ‘35년 공직자’의 딸은 무기력해지고 있다. 보훈처에서는 이미 졌고, 민사재판도 이제 대법원 최종심만 남았다. 하필 가정의 달이다. 3년 전 5월이나 올 5월이나 딸에겐 힘든 가정의 달이다. 그때는 아빠 죽음에 힘들었고, 이제는 아빠 명예에 힘들다. 그래서인지, 청원서 마지막에 공무원 안수현이 아닌 아빠 안수현의 모습을 적었다. “가정에서는 그리 좋은 아빠는 아니었습니다…활동도 둔해지시고 잠이 많아진 아빠를 보면서 가족 모두에겐 하루하루가 고비였습니다…그래도 맛있는 음식, 좋은 장소는 가족과 함께 하길 바랬던 참 마음 약한 아빠였습니다.”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맨 앞에는 지금도 이렇게 적혀 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보훈 가족 여러분들을 섬기겠습니다. 보훈은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정신적, 사회적 인프라입니다.’ 김종구 논설실장
오피니언
김종구 논설실장
2016-05-09 2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