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김문수 …

그가 도지사를 하던 때였다. 인터뷰 중 이렇게 물었다. ‘민자당 입당이 배신의 역사 아닌가.’ 1992년 민중당 소속이었다. 노동자와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며 뛰었다. 그리고 2년 뒤 민자당에 입당했다. 5공 세력이 지분을 갖고 있던 보수집권당이었다. 재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그에겐 어지간히 이골이 났을법한 질문이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되레 질문자를 당황케 했다. “배신 맞다. 대한민국을 위해서였다. 후배들도 빨리 배신해야 한다.” 그리고 몇 년 뒤, 경기도가 무상급식 회오리에 휩싸였다. 2009년 등장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던진 이슈였다. 표심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이 총출동했다. 포퓰리즘, 예산파행 등의 논리로 공격했다. 이때 가장 강력한 표현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무상급식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그즈음, 저녁밥 자리에서 김 교육감이 말했다. “김 지사는 한번 하면 끝까지 간다. 학생 운동을 할 때도 저랬다. 운동권 선배들조차 우려할 정도로 극좌까지 갔었다.” 그랬다. 그게 김문수였다. 한번 시작하면 극단으로 갔다. 더 갈 수 없는 곳에 이르면 다시 돌아섰다. 그리곤 다시 반대쪽 끝을 향해 달렸다. 극단적 노동자당에서 극단적 보수당으로 넘어갔다. 학생운동 선배와의 조우에도 인정사정없었다. 40년 전 우정을 점친 언론의 예상을 무색게 했다. 선배 김상곤 공격의 맨 앞에 섰고, 가장 격렬하게 싸웠다. 꺼내 든 무기도 하필 ‘이념’이었다. 40년 전 함께 공부했을 그 ‘사회주의’로, 바로 그 선배를 몰아세웠다. 그 김문수가 다시 한 번 배신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탄핵은 기각돼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은 사익을 취하지 않았으며, 의원 시절에도 가장 깨끗한 정치인이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그는 탄핵과 출당의 편에 있었다. 2016년 11월 13일, 새누리당 비상시국위가 대통령 탄핵과 출당을 요구했다. 그 시국위의 공동대표가 김문수였다. 3개월 만에 돌아선 배신이다. 엊그제 동료 하태경 의원이 ‘간신 돌격대’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김문수는 그만의 소신을 얘기한다. “많은 고민을 했고 양심에 따라 결심했다”(정규재 TV 인터뷰 중에서). 그러면서 계속 가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발언은 점점 극단으로 가는 중이다. 비난하는 여론에 ‘앞으로 태극기 집회에 계속 참여하겠다’고 맞섰다. 그래도 비난하자 ‘촛불 집회 주도 세력은 골수 좌파’라며 수위를 끌어올렸다. ‘박근혜 살리기’에서 ‘촛불집회 공격’으로 넘어갔다. 늘 상상을 넘어 극단까지 달리던 그답다. 김문수는 이기는 정치인이었다. 적어도 19대 총선까지 그랬다. 세 번의 국회의원 선거, 두 번의 도지사 선거를 모두 이겼다. 이런 전승(全勝)의 신화가 김문수식 ‘배신의 철학’을 만들었다. 이번에도 그 철학은 유효해 보인다. 정치공학적으론 덧셈이다. 주변에 머물던 그를 무대 복판으로 이동시켰다. 질식하던 보수에겐 시원한 숨구멍이 됐다. “탄핵이 인용되면 (되레)민심이 반전될 것”이라는 그의 전망에선 정치 9단의 노련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안타까운 게 있다. 그에게서 멀어져가는 또 다른 가치다. 2년 만에 좌익과 우익을 오가는 대통령을 국민이 바랄까. 40년 지기를 몰아세우는 대통령을 국민이 바랄까. 다수가 아니라는 길을 소신이라며 고집하는 대통령을 국민이 바랄까. 아마도 일관된 이념을 지키는 대통령, 인간적 정서를 가진 대통령, 통상의 상식을 따르는 대통령을 더 원하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투사 김문수와 대통령 김문수를 구분해 평하기 시작하는 이유다. 도지사 시절, 그가 내 건 문구가 있다. ‘청렴영생 부패즉사’. 실제로 그는 깨끗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부패로 파탄 났다. 그래서 저마다 깨끗한 대한민국을 말한다. 하지만, 삶으로 청렴을 대변할 이는 많지 않다. 그 귀하디 귀한 사람이 김문수였다. 그래서 안타깝다. 촛불 속으로 뛰어든 모습이 안타깝고, 그 속에 홀로 타서 재로 남을 모습이 안타깝다. 물론 이 역시 ‘배신의 철학’을 ‘승리의 공식’으로 믿어온 그가 고집하는 길이라면 할 말은 없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反부패 정국’에서 물 만난 ‘부패 전과자들’

박정희 독재의 시작은 3선 개헌이었다. 1969년 여름, 이를 눈치챈 국민의 항거가 시작됐다. 거리로 나온 학생들은 목숨을 걸었다. ‘3선개헌 반대투쟁위원회’도 국회에 진을 쳤다. 하지만, 허사였다. 박정희의 뜻은 일사천리로 갔다. 그 수단이 투표였다. 국회 통과를 의원 투표가 해냈다. 찬성 의원 122명, 반대 의원 0명. 개헌안 확정은 국민 투표가 해냈다. 찬성 국민 65.1%, 반대 국민 31.6%. 반민주 역사를 출범시킨 민주 투표였다. 그 후 독재 권력은 날개를 달았다. 영장 없이 국민을 끌고 가 고문했다. 대가 없는 피고름을 노동자에게 강요했다. 거슬리는 야당 총수는 국회에서 제명했다. 대통령이 체육관에서 뽑혔고, 인권이 유신(維新)으로 유린당했다. 1979년 10월26일까지 10년이 그랬다. 그런 독재권력이 금과옥조로 여긴 게 표심이다. ‘65.1% 표심으로 허락받았다’며 합리화시켰다. 권력이 표심을 왜곡하고 국민을 속여넘긴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역사다. 그로부터 반백년. 그 독재에 기인한 혈육(血肉) 권력이 또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이번엔 부패다. 당당하지 못한 관계가 국정을 흔들었다. 사적(私的) 인연이 국가를 주물렀다. 정책, 인사가 통째로 농락당했다. 그 농단의 끝은 부정한 돈이었다. 300억, 20억, 10억…. 대기업을 등친 천문학적 부패숫자에 국민이 아연실색하고 있다. 50년 전 처럼 국민이 길거리로 나갔다. 촛불이 청와대를 에워쌌다. 그 민심 속에 대통령이 갇혔다. 어쩌면 서너 달 후에 대통령 선거가 있을지 모른다. 권력 부패가 앞당긴 조기(早期) 대선이다. 대선의 화두도 당연히 부패척결이다. 박근혜 부패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해, 부패 없는 미래 약속으로 끝난다. 그런데 그 속에서 어울리지 않는 얼굴들이 보인다. 부패에 관한 한 할 말이 없어야 할 얼굴들이다. 지나간 누(累)에 대한 성찰이 먼저여야 할 얼굴들이다. 부패 전력을 매단 사람들, 법은 그들을 부패 전과자(前科者)라 명명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삼성, 롯데, 태광실업, 썬앤문에서 돈을 받았다. 감옥에 갇혔고 징역 1년이 확정됐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SK와 금호에서 돈을 받았다. 역시 감옥에 살았고 징역 3년이 확정됐다.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도 부정한 돈을 받았다. 벌금 1천만원이 경(輕)하다 할지 모르나, 부패 전과에선 다를 바 없다. 최순실이 몰아간 악행(惡行)의 끝도 정치권력을 이용한 기업 돈 갈취였다. 이들의 혐의와 무슨 차이가 있나. 그런데 박근혜 부패가 만든 반(反) 부패 정국의 주인공이 하필 이들이다. 김 대표는 박근혜 부패를 탓하며 갈라섰다. 보수 쪽 후보들을 줄 세우며 막후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박 대표도 박근혜 부패를 비판하며 여야 후보들에 평점을 주고 있다. 후보를 맞겠다고 쳐놓은 빅텐트에서 후보 감별사를 하고 있다. 안 지사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 시대교체를 기치로 내세웠다. 그가 말한 시대교체에 부패 정치 교체가 있음은 물론이다. 이쯤에서 궁금하다. 누가 이들에게 부패를 지적할 자격을 줬나. 무엇이 이들을 저토록 당당하게 만들었나. 그 근거를 밝힌 사람은 없다. 어차피 세상 다 아는 전과도 입 닫고 넘어가는 사람들이다. 다만, 표정에서 읽히는 논리가 있다. ‘지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그 표심으로 면죄받았다’. 하기야 저마다 선거 귀재들이다. 부패 전력을 달고도 거뜬히 다선(多選) 의원 됐고, 재선(再選) 도지사 됐다. 저렇게 덮는 것도 유는 아니다. 하지만 말이다. 이걸 알아야 한다. 지금 이들의 모습은 50년 전과 닮은 꼴이다. 그때 권력도 표심을 권력독재의 면죄부로 삼았고, 지금의 이들도 표심을 부패전과의 면죄부로 삼고 있다. 그걸 모르겠다면 이거라도 알아야 한다. 50년 전 표심 왜곡을 역사는 ‘견강부회’라 기록했고, 지금 이들의 표심 왜곡도 국민은 ‘견강부회’라 지적하고 있다. 고인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박한 말 중에 이런 게 있지 않나.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박근혜 부패로 생긴 무주공산에 욕심이 나는가. 정히 그렇다면 먼저 할 일이 있다. 박근혜 부패와 자신의 부패가 다름을 증명해야 한다. 최순실이 뺏은 기업 돈과 자신들이 받은 기업 돈이 다름을 증명해야 한다. 그럴 자신 없으면 빠져야 한다. 굳이 부패 전과자 아니어도 박근혜 부패를 심판할 깨끗한 국민은 차고 넘친다. 자신의 부패는 반성하지 않으면서 부패 없는 파라다이스를 믿으라 장담하는 것. 들어주기에 역겨운 약속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한민구 국방장관님!

혹시 ‘2016 수원화성방문의 해’를 들어보셨나요. 화성(華城) 축조 220년을 기념하는 행사였습니다. 1년짜리 이 행사의 백미는 정조대왕 능행차 시연이었습니다. 그 규모가 말도 못하게 컸습니다. 공병대가 한강에 배다리를 놔줬습니다. 행렬이 창덕궁에서 수원화성까지 47.6㎞를 이었습니다. 3천명의 시연자가 참가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대표들도 같이 했습니다. 동원된 말만 368필이랍니다. 이 장면을 지켜본 시민이 43만명입니다. 221년 전 능행차의 완벽한 재연이었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서울시가 참여했고, 금천구ㆍ의왕시ㆍ안양시가 참여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화합에 한 방송사는 ‘지상 최대의 퍼레이드’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숨겨진 구멍이 있었습니다. 정조대왕이 화성시로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융릉(隆陵)을 참배하지 못했습니다. 지상 최대의 퍼레이드가 남긴 지상 최대의 구멍입니다. 그 책임이 장관님께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지금 수원시와 화성시는 최악의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그 핵심에 군(軍) 공항 이전 문제가 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군 공항은 현재 수원에 있습니다. 이 공항을 옮기려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 이전 예정지로 화성을 꼽습니다. 군 공항 이전은 늘 예민한 현안입니다. ‘절대 안 받겠다’는 화성시민들이 있습니다. 이런 여론을 업은 화성시장이 선두에 섰습니다. 대화조차 안 하겠다며 수원시와의 교류에 담을 쳤습니다. 장관님 때문입니다. 장관님이 법률을 위반하고 계셔섭니다. 2014년에 만들어진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어기고 계십니다. 그 법 1조를 보십쇼. ‘군 공항 이전 사업을 원활하게 시행하고… 주민의 복리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 법 4조에 장관님의 책무가 적혀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은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군 공항 예비이전 후보지를 선정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그걸 안 하시는 겁니다. 1년 반 전에는 이러지 않으셨습니다. 2015년 5월 8일에 경기 남부 10개 시ㆍ군 사전 설명회가 있었습니다. 주관한 곳이 국방부였습니다. 그해 6월 4일에는 지자체가 올린 이전 건의서를 승인한다고 통보하셨습니다. 거기 찍힌 직인이 장관님의 것입니다. 그런 장관님의 약속을 믿고 수원시는 4조원짜리 계획을 다듬었습니다. 그 4조원을 받을 지역의 관심도 덩달아 커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전 후보지 선정 단계에서 손을 놓으셨습니다. 혹시 법 조문이 ‘해야 한다’는 강행규정이 아니고 ‘할 수 있다’는 임의 규정이니 안 해도 된다고 변명하시렵니까. 아니죠. 없던 법을 굳이 만든 것 자체가 ‘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어려운 군 공항 이전을 법에 의거해 추진하라는 명령입니다. 일반법을 지배하는 특별법에 위치시킨 것도 그래서고요. 장관님도 당연히 그 법의 지배를 받으셔야 합니다. 법이 국방부에 내린 명령을 이행해야 합니다. 이게 입법 취지에 맞는 겁니다. 직무유기십니다. 정당한 사유를 말하지 않으면서 법률이 정한 행위를 거부하시니까요. 복지부동이시기도 합니다. 혹시 모를 후보지역의 반발을 피하려고 움츠리신 거니까요. 법률 무력화일 수도 있겠네요. 장관님이 법 4조를 안 지켜 5조부터 22조까지가 몽땅 휴지조각이 됐으니까요. 직무유기 안 하는 장관님, 복지부동 안 하는 장관님, 법률 무력화 안 하는 장관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군의 결정은 이거다’라고 하시면 되는 겁니다. 얼마 전, 어떤 시장님이 밤 12시에 다른 시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더랍니다. 그리고 격하게 비행장 불만을 퍼부었다고 하네요. 220년 동안 잘 지내던 두 동넨데….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요. 계속 버려두면 일 날 거 같습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니가 도지사냐”

유독 길게 서술된 부분이 있다. LG필립스LCD 파주단지 유치 과정이다. -위라하디락사 부사장이 10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파주 월롱에 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LG필립스LCD 파주단지는 여러 기록을 남겼다. 처음에는 5년 안에 준공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가, 경기도에서 사업을 빨리 진행하는 것을 보더니 4년으로 줄여달라고 했고, 곧 3년 반으로 단축해 줄 것을 요구했다. IT 산업이라는 게 시간 싸움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나는 모든 행정 지원을 해주도록 했다. 문화재 지표 조사를 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무려 5천 평이나 됐다. 땅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려면 적어도 6개월은 지연될 터였다. 산업단지 개발을 담당하는 경기지방공사 오국환 사장에게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다. “대형 비닐하우스 텐트를 치고 온풍기를 돌려서 땅이 얼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그런데 뭐가 또 문제란 말입니까.” “돈이 많이 듭니다.” “얼마나 듭니까.” “10억도 더 들 겁니다.” “합시다.” 마지막 험한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중앙 정부의 규제였다. 노무현 정부의 기본 입장 때문에 정부는 단지 조성에 기본적으로 반대했다. “이런 경우에 산업 입지를 막으면 우리 첨단 산업의 갈 길은 어디며 일자리는 어디서 만들 겁니까.” 난 그렇게 큰소리를 치고서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훗날) LG필립스LCD 파주단지 준공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보면서 원고에 없는 인사말을 했다. “손 지사님, 이제 만족하십니까.”- 현장 행정을 회상한 부분도 있다. 주로 첨단기업과 중소기업 지원 얘기다. -아내가 ‘무허가 지역에 있는 공장 앞길을 땅 주인이 막아 공장 진입에 문제가 생겼다’는 뉴스를 보았다고 한다. 그 공장으로 갔다. 화성시 팔탄면이었다. 막무가내인 땅 주인을 설득하지 못해 결국 인근 땅을 경기도가 매입함으로써 진입로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중소기업을 위해 경제적 지원은 물론이고, 도로 내주고 전기, 가스, 상ㆍ하수도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도의 가장 흔한 일이 되었다. 도의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한석규 경제투자관리실장이 보고했다. “어제 ○○지역에 있는 공장을 방문했는데요, 길을 내달라고 해서 내주겠다고 했습니다.” “니가 도지사냐, 니 맘대로 내준다고 말하게.” 대견한 마음이 들어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지사님이 해주라고 하실 건데요, 뭐.” 경기도 공무원이 지사의 행정 철학과 방침을 몸으로 터득해서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시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러웠다.- 대기업에 대한 특혜도 고백했는데, 삼성에 매각한 도유지(道有地) 얘기다. -경제투자실장이 삼성전자에서 경기도 건설본부 부지를 달라고 한다면서 약간 코웃음 치는 듯한 뉘앙스로 보고했다. 나는 삼성 측에서 무슨 용도로 쓰려는 거냐고 물었고, 경제투자실장은 R&D 시설로 쓰려고 한다더라고 대답했다. “그래? 그러면 팔면 되겠네요.” “네? 뭐라고요? 지사님, 특혜 시비는 어쩌시려고요.” “특혜는 무슨 특혜, 먹지만 않으면 될 거 아녜요.” 이렇게 해서 삼성전자는 그 자리에 연구소를 세웠다.- ‘나의 목민심서-강진일기’다. 저자 손학규씨는 대권 후보다. 젊은 시절 독하게 민주화 운동을 했다. 보수 정당 내에선 40대 선두주자였다. 당시 최연소 장관으로 복지부도 관장했다. 통합된 야당의 대표까지 했다. 지금도 여전히 대권 후보다. 그가 칩거 2년 만에 책을 냈다. 많은 이들이 내용을 궁금해했다. 그런데 막상 공개된 내용은 의외다. 투쟁 얘기도, 정당 얘기도, 대통령 얘기도 아니다. 경기지사 시절 얘기가 태반이다. 지사 때 이미 대권 후보였다. 충청도와 상생 협약 등 대권 행보도 있었다. 하지만 ‘대권 행보’ 얘기는 다 뺐다. 오롯이 도정을 위해 뛰었던 기억만 추려 썼다. 그게 가장 자랑스러운 얘기라 여긴 듯하다. 도정 실적으로 국가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듯하다. 만약 그런 출간 의도였다면, ‘강진 일기’는 성공한 책이다. 책을 선물하는 ‘정 부지사’도 “책을 읽으니 그때 한 일이 참 많았던 것 같다”는 후기(後記)를 전하니 말이다. 맞다. 그때나 지금이나 도지사의 길은 도정이다. 전(前) 지사는 지나간 도정을 회상할 때 가장 존경스러운 것이고, 현(現) 지사는 눈앞의 도정을 수행할 때 가장 존경스러운 것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평화의 댐 교훈과 경기도민 이익

금방이라도 금강산 댐이 쏟아져 내릴 것처럼 몰아갔다. 63빌딩 절반이 물에 잠기는 섬뜩한 시뮬레이션을 틀어댔다. 국민이 파랗게 질렸다. 수공(水攻) 공포로 빠져들었다. 물을 막아야 살 수 있다고 믿게 됐다. 아이들까지 호주머니를 털기 시작했다. 성금으로 661억원을 모았다. 10년 뒤, 독재 정권이 끝나면서 거짓말이 들통났다. 공포심 조장은 과장이었다. ‘평화의 댐’은 권력이 만든 ‘독재의 댐’이었다. 그런데 그 속에 오류가 있다. 모두가 독재 권력에 대한 증오만 강조했다. 금강산 댐의 실제 위험성은 외면했다. 평화의 댐은 필요했는데 누구도 말 안 했다. 이를 인정하는 데 또 다른 10년이 걸렸다. 2002년 ‘국민의 정부’가 2단계 공사를 했다. 80m 댐을 125m로 높였다. 애초의 설계-135m-까지 높였다. 저수용량도 5억9천만t에서 26억3천만t으로 늘렸다. 20년 새 몇 배나 커졌을 공사비를 감당해야 했다. 평화의 댐이 남긴 역사적 오류다. 돌아보면, 금강산 수공 위협은 권력의 잘못이었고, 그 위협을 과장한 것은 언론의 잘못이었는데, 평화의 댐의 필요성까지 외면한 것은 모두의 잘못이었다. 이제는 우리 정치에서 특별한 일도 아니다. 수십 년을 그래 왔다. 바뀐 권력은 늘 판단을 새로 했다. 지난 정권의 모든 걸 부정했다. 명패부터 내렸고 흔적까지 지웠다. 대신 자신들의 명패와 흔적을 강조했다. ‘박근혜 지우기’도 그렇게 시작된 권력의 사이클이다. 조금 빨리 온 게 당황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하필 그 복판에 경기도의 사업 두 개가 있다. 고양에 세워지는 K-컬처밸리가 하나고, 판교에 운영 중인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가 다른 하나다. 이런저런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특혜를 줬다는 게 K-컬처밸리 의혹이다. 이권이 개입됐다는 게 창조경제혁신센터 의혹이다. 모든 의혹의 중심에 차은택이 있다. 차은택이 시작한 특혜라는 의혹이고, 차은택이 개입한 이권이라는 의혹이다. 경기도의회가 이미 특위를 만들어 파고들고 있다. 언론도 연일 ‘단독보도’라며 의혹의 가짓수를 더해간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제기된 의혹을 덮어선 안 된다. 끝까지 밝혀야 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다만, 그 옛날 평화의 댐의 우(愚)를 반복할지도 모르니 그게 걱정이다. 독재권력 밉다고 평화의 댐까지 외면했던 과오(過誤) 말이다. 20년 지나 깨달으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했던 오판(誤判) 말이다. K-컬처밸리는 도민에 꼭 필요하다. 한류단지라고 지정만 해놓고 10년을 보냈다. 그렇게 묵혔던 땅이 무려 30만㎡(9만여평)다. 이곳에 돈 되는 시설을 세우는 사업이다. 테마파크, 공연장, 쇼핑몰, 숙박시설을 짓는 사업이다. 투자금이 1조4천억원이다. 단일 투자로는 LG필립스 파주 공장 이후 경기북부 최대다. 만년 베드타운이라던 고양시의 기대가 크다. 논란에 중심에 선 박수영 전 경기부지사가 말했다. “경기도민을 위해 꼭 붙들어야 할 사업이었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도 그렇다. 대기업이 벤처기업들을 지원하는 경제 허브다. ‘기업 상생’에도 꿈쩍 않고, ‘동반 성장’에도 꿈쩍 않는 게 대기업이다. 이런 대기업들을 벤처기업 지원으로 끌어들인 제도적 장치다. ‘아이디어 하나에 인생을 거는’ 청년 벤처인들에게 내어준 유일한 비빌 언덕이다. 2년간의 실적 평가도 후하다. 전국 17개 센터 중 최고다. 그 중심에 있는 ‘KT 김 전무’가 말했다. “자금ㆍ판로ㆍ기술ㆍ법률 지원 없인 벤처가 살아날 수 없다.” 요즘, 자고 나면 속보(速報)다. K-컬처밸리에 어떤 특혜가 더 불거질지 알 수 없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 어떤 비리가 폭로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대세를 좇아간다. ‘청와대 냄새 나는 K-컬처밸리를 중단하자’고 하고, ‘차은택 냄새 나는 창조센터를 폐쇄하자’고 한다. 그게 옳을 수 있다. 확률 높은 예언(豫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쯤은 나서 ‘도민의 이익’을 말해야 하지 않나. 누구라도 나서 ‘사업 자체는 살리자’고 해야 하지 않나. 버림받았던 땅 30만㎡를 다시 버리면 안 된다. 박 부지사는 “다시 제안이 오더라도 나는 받는다. 그게 도민을 위하는 행정가의 길이다”라고 말한다. 청년 벤처인들에게 줬던 희망을 다시 뺐으면 안 된다. 김 전무는 “문재인 표면 어떻고 안철수 표면 어떠냐. 벤처기업을 위해 이런 허브 시스템은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과 다른 생각일 수 있는-그래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들을 지도 모를- 말로 맺으면 이렇다. “지금까지 제기된 각종 의혹들이 모두 사실로 확인된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도민에 이익되는 K-컬처밸리와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를 없앨 정도는 아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공모하여’ - 대통령 운명 가를 문구다

대통령이 하야해야 할 이유? 이런 것들이 있다. 미르ㆍK 재단 강제 모금 사건이다. 경제계를 압박한 권력자의 책임이다. 세월호 7시간의 미스터리도 있다. 국민의 생명을 외면한 통치자의 책임이다.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게이트도 있다. 공사를 구분 못 한 공직자의 책임이다. 청와대 앞에 모인 100만 촛불도 있다. 신뢰를 잃은 국가 지도자의 책임이다. 이 중 일부만을 탓하는 국민도 있다. 모든 것을 탓하는 국민도 있다. 그런데 확정된 게 없다. 미르ㆍK 재단 설립은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 추진된 일’이라고 했다. 세월호 7시간은 ‘굿을 한 사실도, 미용시술을 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서는 ‘어려울 때 도와준 이에 대한 과도한 믿음 때문’이라고 했다. 100만 촛불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만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들었거나 전해 들은 답(答)이다. 부인(否認) 또는 침묵(沈默)이다. 대통령 하야는 중(重)한 일이다. 다수가 고개를 끄덕일 근거가 필요하다. ‘나라를 위한 일’, ‘전혀 사실무근’, ‘믿었던 사람의 일탈’…. 이런 해명들을 그대로 두고 밀어붙여선 안 된다. 숨죽인 폐족(廢族)에게 궤변의 틈을 줄 수 있다. 확인도 없이 현직 대통령을 쫓아냈다는 원성을 살 수 있다. 정치가 만들어낸 여론 재판의 희생양이었다는 역사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우리 정치사에서 숱하게 봐왔던 시간과 여론의 역(逆)이다. 그래서 한 곳만 응시하려고 한다. 검찰이 낼 공소장(公訴狀)이다. 공소장은 국가기관인 검찰이 만든 범죄 증명서다. 수사를 통해 거르고 걸러낸 결과물이다. 언론의 폭로, 정치인의 공세, 여론의 판단과는 차원이 다르다. 법률도 그런 공소장에 신뢰를 부여한다. 피의사실 공표의 기준을 공소장으로 삼는다. 공소장 이전의 공개는 불법, 공소장 이후의 공개는 합법으로 해놨다. 현실적이든 법적이든 공소장의 의미가 이렇게 크다. 이 공소장에 ‘공모하여’가 나올런지도 모른다. 19일께 완성될 최순실 공소장에 등장할 수 있다. ‘피고인 최순실이 사건 외 박근혜와 공모하여…’라는 문구다. 재임 중 대통령은 형사 소추를 받지 않는다. 피고인이 되지 않는다. 수사기록엔 참고인 신분, 공소장엔 사건 외(外) 신분이다. 그래서 ‘공모하여’라는 문구의 의미가 크다. 대통령을 사건의 공범으로 삼는다는 확정적 문구다. 퇴임 후 법정에 서라는 형사처벌 예고문이다. 안종범 공소장도 비슷할 때 만들어진다. 미르ㆍK 재단 모금은 안 전 수석이 주도했다. ‘대통령 뜻으로 알고 했다’고 진술했다 한다. ‘모금이 지연되자 대통령이 크게 역정을 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기서 주목할 문구도 ‘공모하여’다. ‘피고인 안종범이 사건 외 박근혜와 공모하여…’란 문구가 있는지 주목할 일이다. 박 대통령을 사실상 강제모금의 주범으로 삼는 표현이다. 이 역시 퇴임 후 형사처벌을 예약해두는 문구다. ‘공모하여’가 정치권에 던질 충격도 크다. 헌법 65조가 규정한 탄핵 조건으로 해석될 것이다.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 탄핵할 수 있다’는 조문이다. 정치가 역풍(逆風)의 부담을 덜고 탄핵으로 내달릴 게 틀림없다. 새누리당이 지켜줄 리도 없다. ‘29표’의 배신이 필요하다지만 대통령을 떠난 의원이 이미 그보다 많다. 여기에 새롭게 실망하며 떨어져 나갈 표도 짐작이 간다. ‘공모하여’가 던질 충격이다. 대통령의 의혹을 대통령의 범죄로 확정하게 될 문구. 대통령 지지 5%를 대통령 지지 0%로 추락시킬 문구. 대통령의 2선 후퇴를 대통령의 하야로 바꾸어 놓을 문구. ‘사건 외 박근혜와 공모하여…’라는 문구도 이제 그 운명의 시간을 줄여가고 있다. 검찰이 최순실 피고인의 공소장을 끝내야 할 19일까지가 작성시한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최태민’ ‘영세교’ - 朴 대통령이 해야 할 고백

국정 농단? 인사 개입? 한두 번 들었던 단어가 아니다. YS 아들이 감옥 가는 것도 봤다. DJ 아들은 둘이나 그랬다. MH 형은 감옥에서 동생의 죽음을 맞았다. 검찰 입구에서 노구(老軀)를 휘청거리던 MB 형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들에겐 국정농단, 인사개입이란 형용사가 붙었다. 최순실에게도 같은 사건명이 붙어 있다. 연설문을 주무른 국정농단이고, 문체부 장관을 날린 인사개입이다. 정권의 물이 빠질 때쯤 불거진다는 시기도 닮아 있다. 그런데 분노의 정도가 전혀 다르다. 남녀노소가 거리로 몰려나오고 있다. 진보 보수가 함께 하야를 말하고 있다. 당(黨)조차 거국내각을 수용하며 백기를 들었다. 도대체 그때와 지금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바로 사교(邪敎)를 향한 극혐(極嫌) 주의가 있다. ‘교주’ ‘주술’ ‘심령’이란 단어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이 모든 단어들이 최(崔)씨 일가를 통해 대통령으로 엮이는 데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사교에 씐 국정을 용서 않겠다는 분노다. 초기엔 야당만의 주장이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말했다. “‘사교’에 씌어서 이런 일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거들었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 심령대화를 하고 있다”. 그냥 정치공세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외신(外信)까지 섬뜩한 평을 시작했다. ‘최순실은 점쟁이’(뉴욕타임스), ‘고(故)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워싱턴 포스트), ‘샤머니즘의 조정’(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이라고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국민이 믿기 시작했다. 대통령과 사이비 종교를 묶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까지의 금기어들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태민 목사에게 홀렸다’ ‘취임식 오방낭 주머니는 종교 행위였다’ ‘청와대 안에서 굿판이 벌어졌다’ ‘어린이들에게 종교적 훈시를 했다’ ‘세월호 7시간은 영세교 종교의식이었다’…. 이제는 이 모든 게 국민의 일상 대화가 됐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는 부패정부보다 못한 비정상 정부로 떨어졌다. 한국 사회에서 사이비 종교가 뭔가. 1996년, 아가동산 사건이 있었다. 신도가 살해됐다는 투서가 단서였다. 취재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세상의 상식과 신도들의 상식은 너무도 달랐다. 노동력 착취를 ‘자발적 노력 봉사’라고 했고, 교주 신격화를 ‘부모님 모시는 효 잔치’라고 했고, 집단 폭행을 ‘치료를 위한 신성한 행위’라고 했다. 한국 사회에 인식된 사이비 종교의 정형이 그랬다. 무조건 감싸고 모든 걸 바치는 비정상적 공동체였다. 이런 사교 논란 앞에 기독교계가 분노한다. ‘대통령의 찬송가 연주’라는 동영상이 있다. 2007년 7월18일. 전국 기독교 장로회 하기수련회였다. 피아노에 앉은 박근혜 후보가 찬송가 405장을 연주했다. 참석자들이 일제히 따라 불렀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왔다. 그 후 보수 기독교계는 대통령의 텃밭이었다. 그랬던 텃밭이 사이비종교라는 극혐 주의를 만나 싸늘히 등을 보였다. ‘최태민과 영적 부부’라는 주장이 나오는 곳도 이제 기독교계다. 많은 이들이 지지율 9%를 걱정한다. 67%의 하야 주장도 걱정한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야 너머로 어른거리는 파멸이란 모습을 지울 수 없다. ‘정치인 박근혜’의 미래가 과거의 흔적까지 휩쓸어 가버리는 참담한 상황이다. 아들이 구속된 YS, DJ도 당하지 않았던 벌이다. 형이 구속된 MH, MB도 지지 않았던 책임이다. 박 대통령에게만 지워진 참담한 벌이다. 이게 지지율 60%를 하야 요구 60%로 만든 사교의 덫이다. 그래도 뭔가를 해봐야 한다면 남은 건 고해성사다. 국민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길만 남았다. 물론 여기에 들어가야 할 두 개의 기도 제목이 있다. ‘최태민과의 관계’라는 고백과 ‘영세교와의 관계’라는 고백이다. 벼랑 끝에 선 대통령이 국민 앞에 어찌해볼 수 있는 마지막 수(數)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그런 것까지 수사할 검사는 없다”

차장 검사로 부임할 때였다고 했다. 축하 난을 돌려보내라고 지시했던 모양이다. 얼마 안 가 문자가 도착했더란다. 화훼 업계 하소연이 담긴 문자였다고 했다. 그가 기억해 낸 문자내용은 이랬다. ‘화훼 업계가 너무 힘들다. 이런 입장도 헤아려 달라. 축하 난을 받아 주기 바란다.’ 결국 그는 ‘청렴’을 접고 ‘현실’을 택했다.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인사철마다 난이 오지만 막지는 않는다.” 현직 검사장이 지나가듯 던진 ‘난(蘭) 이야기’다. 지금이 그렇다. 김영란법이 각종 축하 난을 막는다. 5만원은 괜찮은데, 기준 따윈 따지지도 않는다. 오해받기 싫다며 다 막아선다. 그사이 난 값이 폭락했다. 호접란 경매가격이 3천원대다. 생산 원가 3천500~4천원에도 못 미친다. 5천원 하던 덴파레 품종은 3천원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팔리면 다행이다. 판매량이 50% 이상 급감한 지역도 숱하다. 농민에겐 이제 화훼밭이 애물단지다. ‘꽃 팝니다’ 대신 ‘김영란법 폐지하라’고 붙인 곳이 많다. 하기야 화훼농가뿐이겠는가. 식당은 손님을 잃었다. ‘김영란 정식’이라며 문자를 돌려 보지만 헛일이다. 술집도 텅 비었다. ‘각자 계산’ 하느니 안 마시겠다며 발길을 끊었다. 선물 코너도 사람이 없다. ‘3만원 선물’로 욕 듣느니 안하겠다며 외면한다. 시행 전에는 공무원ㆍ교사ㆍ기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여긴다는 지적이 많았다. 시행해보니 이들을 고객 삼던 업자들이 장물아비처럼 몰려 버렸다. ‘정착되면 괜찮다’는 데 그 ‘때’는 알 수 없다. 앞에 있던 의사가 물었다. ‘친한 사람 건강도 봐주면 처벌받게 되는 것 아닌가.’ 검사장이 대답했다. “우리 사회가 너무 걱정을 하는 듯하다.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본다. 장담하는 데 그런 것까지 기소할 검사는 없다.” 그러면서 검사의 일반 상식을 말했다. 유명 만화가를 음란죄로 기소했던 옛날 사건 얘기다. 검사장은 지금 생각해도 말 안 되는 수사였다고 회고했다. “다수 검사들은 그렇지 않다”고도 했다. 얼핏 본 검사장의 김영란법 평이다. 지금은 이렇다. 국민이 권익위만 쳐다본다. 답해 줄 유권해석을 목놓아 기다린다. 그런데 답이 없다. 대학원장협의회가 ‘공무원 장학금’이 불법이냐고 물었다. 답이 없다. 에버랜드가 군인 자유이용권이 불법이냐고 물었다. 답이 없다. 홈페이지로 2천500여개 질문이 들어왔다. 답은 절반도 안 했다. 그나마 대부분 ‘최종 확정은 검찰 법원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결국 ‘한 번씩 걸려 봐야 답 나온다’는 얘긴데…. 국민이 교보재인가. 하기야 애초 답을 낼 수 없었는지 모른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법언(法諺)을 넘어선 법이다. 법의 경계를 도덕의 한 귀퉁이에서 한 복판으로 왕창 옮긴 법이다. 도덕에서 법으로 넘어간 영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러니 답할 수 없는 것이다. 검찰 법원으로 간들 달라질 건 없다. 단순 해석만으로도 이렇게 혼란스럽다. 하물며 신병처리를 결정하는 검찰 법원이다. 몇 곱절 혼란스러워질 게 뻔하다. 이런 걸 왜 검사 판사에 떠넘기나. 이제 김영란법도 1주일 지났다. 지금 당장 평가하라면-주관이란 전제를 달겠지만- 낙제다. 권익위는 스스로 공부가 안돼 있고, 자영업자가 받는 피해는 예상보다 크고, 사법 주체의 동의는 눈에 띄지 않는다. 시행준비를 덜 했단 얘기고, 피해규모를 간과했단 얘기고, 입법당위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이런 법을 굳이 왜 만들었나’ 싶은 게 김영란법 1주일을 본 솔직한 후기(後記)다. 정착을 바라야 할지, 개정을 말해야 할지 결정하기도 어렵다. ‘정(情) 사회에서 정의(正義) 사회로 가는 과정이다’. 권익위는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혼란은 변화로 가는 성장통이다’. 그 말을 넘겨받은 객들이 쏟아 내는 훈육(訓育)이다. 이런 멋들어진 말 잔치 앞에 모두 입을 다문다. 기득권 옹호랄까 봐, 부패 세력이랄까 봐 침묵한다. 그 사이로 비명과 아우성이 커졌다. ‘망한다’는 업자들의 비명, ‘혼란스럽다’는 국민의 아우성이다. 1주일이라서 이럴까. 한 달 뒤엔 좋아질까. 기다려는 보겠지만….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核-대통령 노무현의 실언과 명언

“미국한테 바짓가랑이 매달려가지고, 미국 응댕이 뒤에서 숨어 가지고 ‘형님 빽만 믿겠다’, 이게 자주 국가의 국민들의 안보의식일 수 있겠습니까.” 작전 통제권 이양을 강조하는 연설이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호통도 그때 나왔다. 구구절절 옳았다. 벌써 10년 전이다. 다시 들었는데, 여전히 명연설이다. 나라는 핵전등화(核前燈火)에 놓였고, 그때마다 괌에서 올 전략폭격기를 구세주처럼 기다린다. ‘부끄러운 줄 알라’는 호통은 지금이 더 아프다. 그런데 그 속에서 오류가 보인다. 남북 간의 국방력을 비교하는 대목인데, 대통령 노무현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군이 방위력이 얼마만큼 크냐. 정직하게 하자… 대개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에 (남북 국방력이) 실질적으로 역전된 것으로 보지 않습니까. 85년에 역전됐다고 보면 벌써 20년이 지났어요… 정직하게 보는 관점에서 국방력을 비교하면, 이제 (미군) 2사단은 뒤로 나와도 괜찮습니다.” 군사력이 우리쪽으로, 그것도 오래전에 기울었다고 했다. 대통령만큼 국방력의 실체를 아는 이는 없다. 그런 현직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한 장담이다.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20년 전에 북한은 핵기술을 사들였다. 그 10년 전쯤부터는 플루토늄(Pu)을 뽑아내고 있었다. 2006년 10월 9일엔 1차 핵실험까지 했다. 대통령 연설은 그 해 12월 21일에 있었다. 핵실험 두 달 뒤에 현직 대통령이 국민에게 “우리가 훨씬 강하다”고 장담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의도된 거짓이거나 심각한 오판이다. 과학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북핵 미사일의 시작은 90년대다. 1991년 소련이 붕괴했다. 미국이 막대한 돈을 소련에 퍼부었다. 우주 공학과 핵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수챗구멍이 생겼고 그 출구가 북한이었다. 밥줄 끊긴 소련 학자들이 들어갔다. 그때 들어간 기술이 지금의 북한 기술이다. 북한식 핵이 됐고, 북한식 미사일이 됐다.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기술 이력(履歷)이 증명하고 있다. 우주 공학자 이창진 교수의 진단도 그렇다. 하기야 노 대통령에게만 뭐라 할 일은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다 그랬다. 국방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다. 엄살로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고, 과장으로 국민을 자만에 빠뜨리기도 했다. 엄살은 독재(獨裁)로 쓰였고, 과장은 반미(反美)로 쓰였다. 그사이 신뢰는 없어졌다. 이제 대통령이 말하는 국방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는다. 대신 국민이 스스로 판단한다. 지금 내리는 국민의 판단은 ‘남북 군사력은 핵무기로 완전히 기울어져 버렸다’다. 핵 보유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여론조사-한국갤럽-에서 국민 75%가 북한의 5차 핵실험을 ‘위협적’이라고 답했다. 지난 1월 4차 핵실험 때보다 14%p나 높아졌다. 핵 보유에 대해서도 58%가 ‘가져야 한다’고 답했다. ‘가지면 안 된다’(34%)보다 20%p나 높다. 같은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도는 하락했다. 이게 국민 생각이다. ‘북한 핵이 무섭고, 믿을 수 있는 건 대통령이 아니라 핵이다’라고 판단하고 있다. ‘핵 보유’가 정치 이슈에서 생존 이슈로 바뀐 것이다. 그래도 들을수록 명연설이다. 오판이 섞였지만 메시지가 분명했다. “미국 응댕이 뒤에서 숨어 가지고 ‘형님 빽만 믿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자주의식을 말했다. 이제 그의 말대로 ‘미국 응댕이’ 뒤에서 튀어나올 때다. 때마침 그 근거를 국민이 만들었다. ‘핵으로 무장하자’고 말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손에 쥐어진 더 없는 무기다. 못 이기는 체 따라가면 된다. ‘핵 보유’에 채웠던 금기를 깨고 ‘핵무장’을 말하면 된다. 미국까지 들리도록 크게 말하면 더 좋다. 김종구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한진해운 마지막 5일, 정부는 없었다

기업은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는다. 망한 날짜가 어느 하루로 기록될 뿐이다. 한진해운도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았다. 망한 날짜가 8월 30일로 기록될 뿐이다. 그래도 자의적으로나마 마지막 5일에 의미를 둬 보자. D-5일은 8월 25일이다. 한진해운이 마지막 자구안을 제출한 날이다. D-0일은 8월 30일이다. 한진해운 주식이 장중 거래 정지된 날이다. 이런 억지 획정이라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한 대기업의 마지막 5일과 그 5일간 보여준 정부 모습 때문이다. 8월 25일 하루는 한진에게 더없이 길었을 날이다. 회생을 위한 마지막 자구안의 제출 시한이었다. 업무가 끝나갈 무렵 한진의 자구안이 산업은행에 도착했다. 산은은 한진해운 채권단 중 66%를 차지하는 주(主)채권은행이다. 경제부 기자들의 관심이 산은을 향했고, 반응이 흘러나오는 데는 두어 시간이면 족했다. 한 마디로 ‘턱도 없다’였다. 1조2천억원이 필요한데 자구안은 5천억원 언저리였다. 이때부터 ‘한진해운’ 연관 검색어에 ‘법정관리’가 붙기 시작했다. 그날, 정부는 온종일 침묵했다. 8월 26일. 자구안에 대한 입장을 산은이 공식 발표했다. 정용석 산은 구조조정본부 부행장이 직접 나섰다. “사실상 자구안 가운데 실효성이 있는 지원은 4천억 원뿐이다.” 또 다른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사실상 조 회장이나 그룹 측이 한진해운을 더 이상 지원하기 어렵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라고까지 말했다. 채권시장에서 한진해운 가치가 곤두박질 쳤다. ‘내주 채권단 회의에서 최종 결정 내겠다’는 일정이 구체화됐다. 법정관리는 기정사실화 되고 있었다. 그날도 정부는 온종일 침묵했다. 8월 29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주말 이틀이 흐른 월요일이다. 주말에 응축됐던 시민과 업계의 불안이 터져 나왔다. 부산 지역 시민단체들이 ‘한진해운을 살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선주협회도 한진해운 법정관리는 피해야 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한진해운도 마지막 수를 던졌다. 나흘 전 자구안의 수정안을 냈다. 증자일정을 구체화하는 안이었다. 하지만, 산은은 냉담했다. 이동걸 회장의 ‘구조조정 가치도 중요하다’는 한 마디가 업계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날도 정부는 아무 입장이 없었다. 운명의 8월 30일이다. 밤사이 바뀐 분위기가 전해졌다. 채권자인 KEB 하나은행이 한진 구제안에 조건부로 동의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현대상선과의 합병 얘기도 흘러나왔다. 오전 11시 예정인 채권자 회의를 앞두곤 한진해운 주식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은의 입장은 강경했다. 이동걸 회장이 “내가 보기에는 부족하다”며 다시 한번 파국을 예고했다. 결국, 오후로 들어설 때쯤 자구안은 부결됐다. 곧이어 증권거래소가 한진해운 주식을 정지시켰다. 이날,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이 비로소 나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채권단 결정은 자구노력의 충실성, 경영정상화 가능성, 해운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논의해 판단했다고 생각한다”. 한진해운 주식 거래가 중지된 몇 분 뒤였다. 그런데 말의 맺음이 굳이 제3자 논법이다. “판단했다”가 아니라 “판단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은행들의 결정을 지켜만 봤을 뿐이라는 표현이다. 한진해운은 은행들이 퇴출시켰고, 정부는 이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싶어 보이는 표현이다. 한진해운이 망했다. 과연 망할만 했는가. ‘땅콩 회항’과 ‘재산 밀반출’로 얼룩진 총수 일가의 부도덕이 빚은 자업자득인가. 이 토론은 시간을 두고 이어질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현재-대기업이 망하고 24시간이 흐른- 논제가 있다. 정부의 5일간 침묵이다. 국적선사 국내 1위 기업이다. 세계 7위 해운사다. 연간 1억톤 이상의 화물을 책임진 운송사다. 세계 각국의 30여개 법인과 200여개 지점을 갖고 있는 대기업이다. 이 대기업이 망해가는 5일이었다. 그런데 이 긴박한 순간에 정부는 빠져 있었다. 은행 관계자의 말이 시장을 쥐락펴락했다. 업계 1위 대기업의 정리 모습으로 격에 맞는 것인가. 그 5일. 이런 분석을 내놓은 보도가 있었다. -정부가 야당의 서별관 청문회를 부담스러워 한다. 안 그래도 대우조선 특혜 논란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한진해운 지원까지 얹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는 빠져 있고 은행이 앞장서 악역을 할 것이다. 결국,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로 갈 것이다. - 많은 이들이 ‘아니겠지’라고 여겼던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한진해운은 정확히 그 시나리오를 따라 업계에서 사라졌다. 이게 우연인가.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경찰청장 25년-영남 12명, 경기 0명

이강순씨는 전(前) 경찰서장이다. 경기도 용인 출신이다. 그가 말했다. “인사는 ○○도 인맥을 통하지 않으면 안 돼. 경찰 내 ○○ 마피아가 대단해.” ‘최 경위’는 지금도 형사다. 경기도 수원 출신이다. 그도 비슷한 말을 했다. “○○도 파워가 장난 아니다.” 이 전 서장은 간부 후보 출신이다. 최 경위는 순경부터 시작했다. ‘성분’이 다른 두 경찰이 같은 말을 했다. 뿌리 깊은 지역주의다. 혹은 ‘○○도 마피아’, 혹은 ‘△△도 마피아’라 부른다. 사실 이러면 안 된다. 다른 기관도 아니고 경찰이다. 법을 현장에서 집행하는 사람들이다. 도둑놈 잡는 실력으로 평가하는 게 맞다. 그런데 둘은 지역을 얘기하고 파벌을 얘기했다. 피해의식인가. 승진 불만이었나. 하지만,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닌 게…. 다른 경찰들도 같은 말을 한다. 그 말들이 맞아 보이는 인사의 예(例)도 수두룩하다. 안타까운 건 그 둘이 하필 경기도-다들 ‘세계 속에 웅도(雄道)’라며 추켜 세우는- 출신이라는 점이다. 경찰관 둘의 푸념. 이 푸념을 뒷받침할 통계가 있다. 경찰청장 제도는 1991년 시작됐다. 참여정부 2003년부터는 2년 임기제로 바뀌었다. 그동안 취임했던 경찰청장이 19명이다. 이 19명의 출신지를 새삼 세어 볼 필요가 있다. 영남 출신이 무려 12명이다. 전체 63%다. 나머지 7자리는 호남ㆍ충청ㆍ서울ㆍ황해도 출신이 나눠 가졌다. 인구 154만의 강원도는 0명, 인구 62만의 제주도도 0명이다. 그리고 인구 1천252만의 경기도가 0명이다. 권력(權力)과 정치(政治)가 만든 통계표다. 영남 권력은 영남 청장을 앉혔다. 호남 권력은 호남 청장을 앉혔다. 독점하다 미안할 땐 충청 청장을 앉혔다. 경기도는 권력을 쥐어 본 적이 없다. 배려해야 할 정체성도 없다. 그런 경기도에 주어질 청장 자리는 없었다. 검찰총장, 국세청장, 국정원장 자리가 그랬던 것처럼, 경찰청장도 25년째 경기도를 비켜갔다. 강원도, 제주도, 그리고 경기도에겐 그런 경찰청 25년이 곧 파행인사 25년이다. 차라리 옛날은 나았다. 수장(首長)의 자격을 업무에 맞추는 시늉이라도 했다. 1948년부터 1973년까지가 치안국장 시절이다. 경찰의 주(主) 업무는 빨갱이 잡는 거였다. 김태선(2,4대ㆍ함경남도)ㆍ장석윤(3대ㆍ강원도)ㆍ이익흥(5대ㆍ평안북도)ㆍ홍순봉(6대ㆍ평안남도) 국장이 줄줄이 이북 출신이다. 빨갱이 싫어 고향 버리고 온 인사들이다. 빨갱이 잡는 경찰에 더 없는 적격으로 본 듯하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출신지보다는 합당했다. 이 지긋지긋한 지역주의(Regionalism). 사전은 이렇게 풀고 있다. ‘지역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자주성을 유지하면서 연대·협력을 촉진하는 개념’. 그런데 이 말이 한국 정치로 오면서 패악(悖惡)이 됐다. 지역끼리 뭉치고 타지역을 배척했다. 경찰에 오면서는 더 어긋났고 더 나빠졌다. 지역끼리만 청장 했고, 다른 지역의 기회는 빼앗았다. 그 지역주의에 병들어온 경찰청 25년이 몸쓸 통계를 남겼다. 영남 청장 12명. 호남 청장 2명. 경기도 청장 0명! 고쳐야 한다. 새로운 지역주의로 고쳐야 한다. 소외된 지역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 소외된 지역을 넉넉히 평가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강원 출신 청장, 제주 출신 청장, 경기 출신 청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맞춰 놓고 새로 시작하는 게 공정한 개혁이다. 망가진 경찰청 25년 인사를 바꾸는 억지스러우면서도 유일한 치료법이다. 역(逆) 지역주의라고 노(怒)할 필요도 없다. 그래 봤댔자 20명 중 1명이고, 100%의 5% 아닌가. 내일이 신임 청장 청문회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할 말 한 젊은 검사, 할 말 못한 젊은 검사

1997년 1월 26일 밤이었다. 밤늦게 삐삐가 울렸다. ‘031-210-○○○○’. 특수부장검사실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 기자, 들고 다니던 문건 어데서 났나.” “갑자기 왜요.” “지금 난리 났다. 임춘택이가 그걸 조선일보에 올렸다. 근데 이놈아가 지금 연락이 안 된다.” ‘문건’이 터진 것이다. 문건의 파괴력은 기자도 짐작했다. ‘부장’이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서 당부했다. “그거 나 보여줬다고 위에다 얘기하지 마라.” 다음날 조선일보 칼럼은 이랬다. “퇴임 검찰총장의 공직 취임 금지 규정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과 임명권자의 인사권 남용 방지를 위한 것이다… 김기춘 전 총장은 (총장 퇴임 후) 곧 법무장관으로 가서 집권당 선거 활동을 했고… 김두희 전 총장은 총장 취임 며칠 만에 법무장관에 임명해서 임기제를 훼손했으며, 김도언 총장도 퇴임하자마자 집권당 지역구 위원장을 맡음으로써 세 사람 모두 검찰에 불명예를 안겨주었다. -‘수원지검 특수부 검사 임춘택’-” 난리 날 만했다. ‘검찰총장 퇴임 후 공직 제한’은 당시 검찰의 뇌관이었다. 검찰총장의 정치개입을 막는다며 야당이 만든 제도였다. 김기수 총장이 반기를 들었다. 변호사들과 함께 위헌 심판을 청구했다. 따지고 보면 총장 개인의 퇴임 후 먹거리다. 그런데도 모든 검사들이 똑같은 목소리를 냈다. 하필 그런 때 검찰총장의 뜻과 정반대 얘기를 현직 검사가 신문에 기고한 것이다. 전임 총장들의 정치 입문 과정까지도 조목조목 비난했다. 벌집을 들쑤신 것이다. 겉으론 평온했다. ‘주의조치’가 전부였다. 하지만, 내부에선 가혹하게 돌아갔다. 임 검사는 그날로 짐을 쌌다. 원치 않는 형사부로 쫓겨났다. 담당 부장도 며칠 못 갔다. 차장실엔 ‘임 검사 출입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한번 시작된 보복은 정기 인사 때마다 이어졌다. ‘경향(京鄕-서울ㆍ지방) 교차근무’라는 원칙은 그와 무관했다. 철저히 지방과 한직으로만 내둘렸다. ‘조직과 다른 얘기를 한 죄.’ 그 죄에 묶인 젊은 검사의 고난은 그때부터 5년여간 계속됐다. 그가 수원지검을 떠날 때 봤다. 밥상을 마주하고 서로에게 물었다. 그는 내게 “내 원고를 어떻게 김 기자가 가지고 있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에게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된 진짜 배경이 뭐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쓰레기통 뒤지다가 봤다. A4 용지 두 장에 플러스 펜으로 쓴 글이었다. 내용이 심상치 않았지만 누가 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특수부장에게 보여줬던 것이다.’ 그의 대답도 복잡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가 친구다. 형평성 잃은 논조에 반박하기 위해 밤새도록 써서 줬다. 며칠간 보도되지 않아 이상했다. 그래서 찾으러 갔는데 그날 마침 가판(假版)에 보도돼 있었다. 옷을 벗을 각오로 쓴 것이냐고 하던데. 내가 왜 옷을 벗냐.’ 이후에도 현직 검사들의 ‘기고 파문’은 있었다. 이영규 부부장(사시 30회ㆍ‘송두율씨 구속하라’), 김원치 차장(사시 13회ㆍ‘한총련 출범부터 잘못’), 이용주 검사(사시 34회ㆍ‘법무부 장관 사퇴해야’)…. 그런데 임 검사의 글이 지금껏 얘기된다. 글이 주는 당연함과 사소함, 가혹함 때문이다. 검찰총장의 정치 중립은 당연한 얘기였다, 검사들도 말하던 사소한 얘기였다. 그런 글에 내려진 징계가 가혹했다. 검찰조직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더 없이 극(極)한 예다. 그 ‘임 검사 글’로부터 20년이다. 다들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젊은 검사가 자살했다. 부장검사 때문이라고 유언했다. 감찰에서 이런저런 빌미 거리가 나왔다. 어깨도 쳤고 욕도 했던 모양이다. 한 번쯤 대들면 될 일이었다. ‘술 안 먹겠다’고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 말 하기가 그렇게나 어려웠던 모양이다. 부장검사에게 대드는 것이 죽는 것보다 어려웠던 모양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결론을 내렸다. “잘못된 조직문화가 불러온 일이다”. 20년 전 젊은 검사는 ‘할 소리’를 하다가 징계를 당했다. 20년 후 젊은 검사는 ‘할 소리’를 참다가 세상을 등졌다. 이 20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화두가 검찰조직에서 어른거린다. ‘이유 불문’ ‘상명하복’ ‘검사 동일체’…. 없어졌다던 이 화두들이 여전히 검찰을 틀어쥔 모양이다. 정답을 내릴 수 있는 건 검사 2천명 뿐이다. 각자 스스로에 묻고 열린 결론으로 풀어봐야 한다. ‘나는 부장에게 싫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총장과 다른 뜻을 신문에 쓸 수 있는가’. 글 시작에 앞서 임 검사와 통화했다. 변호사인 그와 자살 검사 얘기를 했다. 지금의 생각을 칼럼으로 써 달라고 했다. 답변이 20년 전보다 더 간단해졌다. “글은 무슨… 이제 조용히 살고 있는데… 만나서 밥이나 먹지.”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이제 ‘지방재정개악’ 떼고 ‘지방분권개헌’ 붙여야

시작은 4월 22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2016 재정전략회의’에서 개편안이 거론되면서다. 그렇게 시작한 싸움이 석 달째다. 그 사이 국가 전체적 분위기가 바뀌었다. 애초 지방재정개편은 ‘부자 시군’과 ‘가난한 시군’의 문제였다. 지자체 간 갈등을 유발하는 나쁜 정책이라는 비난도 그래서 나왔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부자 시군, 가난한 시군 없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방분권으로 개헌하자’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6·10 민주항쟁의 결실이 ‘직선제 개헌’이었다면 지금의 헌법 개정은 주권재민을 위한 것이고 그 핵심은 자치분권”이라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개헌이 된다면 헌법 전문에다가 분권과 자치의 시대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규정이 빈약하다… 지방분권 쪽으로 가는 게 옳다”고 했다. 자치를 말하는 모든 이들이 지방분권개헌을 말하기 시작했다. 불교부단체인 수원시 염태영 시장도 그렇게 주장했다. 지난 11일 대시민 호소문에서 “지방자치와 분권은 시민의 권익을 지켜주는 안전장치”라며 “지방재정의 실질적 확충, 참된 지방자치와 분권의 실현을 위해 지방분권형 개헌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그는 “전국 단체장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몇 푼 나눠주는 게 아니라 진정한 분권 실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쯤에서 돌아봐야 할-불교부단체들엔 불편할 수도 있는- 진실이 있다. 사실 지방재정 투쟁은 6개 시만의 얘기였다. 나머지 220개 시ㆍ군ㆍ구는 관심 없었다. 심지어 ‘먹고 살만한 동네의 놀부 심보’라는 눈총까지 있었다. 언론에도 딜레마였다. ‘수원의 억울함은 보도하지만, 양평의 가난함은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있었다. ‘시장 단식’, ‘시장 시위’라는 선정적 제목 밑에 잠시 그 고민을 묻어뒀을 뿐이다. 이런 때 지방분권개헌이 등장했다. 전국이 이처럼 하나의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나 싶다. 경기도와 충돌하는 충청도-안희정 충남지사-가 찬성한다. 가장 부자라는 서울-박원순 서울시장-도 찬성한다. 여의도 정치의 지도자-정세균 국회의장-도 찬성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찬성하고,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찬성하고, 여의도 정치권이 찬성한다. 규제개혁처럼 싸우지도 않고, 재정개혁처럼 질투하지도 않는다. 길이 우연히도 이렇게 뚫렸다. 6명 시장에겐 암흑 속에 나타난 출구(出口)일 수 있다. 과감히 지방재정개악을 내려놓고 지방분권개헌을 집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지방분권이 없어서다. ‘다 죽는다’는 지방재정개악도 지방분권이 없어서다. ‘권한 좀 달라’는 도시계획갈등도 지방분권이 없어서다. ‘길 좀 넓혀달라’는 예산편성민원도 지방분권이 없어서다. ‘공무원 좀 더 달라’는 인사행정불만도 지방분권이 없어서다. 지방분권이면 다 해결된다. 부분(部分)에서 벗어나 전체(全體)를 보면 훤히 보이는 답이다. 그 답을 헌법에 지방분권으로 대못 치자는 것이다. 안 쫓아갈 이유가 있나. 시민의 투쟁이 벌써 3개월째다. 100만명이 서명해 정부를 찾아갔다. 1천500명이 올라가 데모도 했다. 절절한 현수막으로 길거리도 덮었다. 이들이 있어서 시장들이 싸울 수 있었다. 그랬는데 그 시민들이 지쳐간다. 더는 서명할 시민도, 더는 상경할 시민도 없어 보인다. 출근길 현수막도 장맛비로 늘어졌다. 이제 그 앞에 선 시민도 안 보인다. 지친 것이고 물린 것이다. 이쯤 되면 그만둘 때다. 새롭게 바꿀 때가 됐다. 그 바꿀 자리에 새로 붙일 구호가 바로 “완전한 지방자치, 지방분권 개헌하라”다. 염태영 시장이어도 좋고, 이재명 시장이어도 좋고, 정찬민 시장이어도 좋고, 최성 시장이어도 좋고, 채인석 시장이어도 좋고, 신계용 시장이어도 좋다. 누군가는 나서 지방재정개악 현수막을 떼어 내고 지방분권개헌 현수막을 달아야 한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수도 이전’ 南 지사, ‘할 말 잃은’ 경기도민

민선(民選) 경기지사가 네 명 있었다. 이인제, 임창렬, 손학규, 김문수 지사다. 이 중 누구도 ‘수도를 이전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민선 3기 이후의 지사들은 더 그랬다. 수도이전을 공약한 참여정부 때문이다. 손학규ㆍ김문수 지사는 수도이전에 맞선 투사였다. 둘 다 대통령이 목표인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수도 이전만큼은 싸웠다. 중원-충청 票-을 버리면서까지 싸웠다. 그것이 경기지사에게 주어진 수도(首都)의 의미였다. 그 금기(禁忌)의 선을 남 지사가 넘었다. 청와대와 국회까지 세종시로 옮기자고 했다. 당장 충청권이 쌍수를 들었다. “(남 지사가) 좋은 발언을 해주셔서 정말 환영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이춘희 세종시장). “수도권 단체장이 그 같은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안희정 충남지사). 충청권 언론도 남 지사 띄우기가 한창이다. ‘수도권 광역단체장인 남 지사의 소신 발언은 신선한 충격이다’(중도일보 사설). 역대로, 충청권에서 이런 대우를 받은 경기지사는 없다. 기껏해야 특강 몇 번 오가는 게 다였다. 내용 없는 종이에 상생하자고 서명하는 게 다였다. 그래 놓곤 이내 ‘지키는 자’와 ‘빼앗는 자’의 관계로 돌아갔다. 그런데 남 지사는 지금 충청권의 희망이다. 남 지사의 정치 감각을 또 한 번 보게 된다. ‘대통령 형 불출마 요구’ ‘국회 선진화법’ 등 위기 때마다 빛났던 그의 감각이다. 이번에도 정치권은 그가 던진 이슈로 빠져들고 있다. 근데, 이를 지켜보는 경기도민이 혼란스럽다. 많은 이들이 할 말을 잃고 있다. 수도 이전이 정국을 휩쓸었던 건 2004년 전후다. 그때 서울ㆍ경기ㆍ인천시민은 수도 이전에 반대했다. 경기ㆍ인천 시민 가운데 60~70%가 반대였다. 그 후 이런 여론 추이가 바뀌었다는 통계는 없다. 그렇다고 수도이전을 뒷받침할 새로운 어용(御用) 논리가 등장한 것도 아니다. 난데없이 ‘수도 이전’ 주장이 나왔다. 그것도 현직 경기지사가 주장하고 나섰다. 그때의 통계대로라면 도민 60~70%는 혼란에 빠져 있을 것이다. ‘Give-take’라는 기본 셈법도 없다. 수도 이전을 처음 주장할 때 남 지사는 “수도권 규제라는 낡은 틀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무슨 규제를 어디까지 풀자는 건지 설명하지 않는다. 충청도 지도자 누구에게도 수도권 규제 합리화에 협조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수도를 충청도에 주자’는 주장만 반복한다. 아마도 일방적으로 베풀겠다고 작정한 모양이다. 스스로의 모순도 있다. 대선에 대해 남 지사는 “경기도지사로서 일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군불을 지피는 건 수도 이전 이슈다. 한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일이다. 아무개 대통령을 탄생시켰던 세상 다 아는 대선 공약이다. 누가 봐도 정치 영역이다. 행정에 충실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주장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말을 한꺼번에 하는 게 지금의 남 지사다. 경기도 행정에 충실한다면서 충청도 정치에 충실하고 있다. 잘 안다. 이게 다 대통령 실험이다. 도정 연정도 야당 연정을 위한 실험이다. 지방장관도 야당 장관을 위한 실험이다. 물론 가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절대 써먹으면 안 될 소재가 있다. 바로 수도(首都)다. 이 수도를 절대 건드리면 안 될 사람도 있다. 바로 경기도지사다. ‘경국대전 이후 관습헌법’이라고 헌재가 정의했다. 그 터전에서 600년을 산 도민이다. 그 도민이 뽑은 경기지사다. 왜 하필 그런 경기지사가 수도를 건드리나. 경기도민이 그래서 혼란스럽다. 환호에 빠져드는 충청권을 보면서 할 말이 없어진다. 그 충청도에서 전화가 왔다. 언론인이라고 했다. 남충희 전(前) 경기부지사에게 소개받았다고 했다. “남 지사의 지방장관 아이디어 평가가 어떠냐”고 물었다. “해볼 만한 새로운 시도”라고 답했다. “경기도민이 연정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싸우지 않으니 다들 좋아한다”고 답했다. “정말 경기도는 의회에서 싸우지 않느냐”고 물었다. “지난 2년간 결과와 통계로 증명되고 있다”고 답했다. 7분 내내 질문은 ‘남 지사’였다. 그런데 딱 하나, 그 ‘충청도 언론인’이 묻지 않은-틀림없이 물어볼 거라고 예상했었던- 질문이 있다. 수도 이전 주장에 대한 의견이다. 만일 물었다면 ‘경기도 언론인’은 이렇게 답하려 했다. ‘경기도민의 생각은 남 지사의 주장과 다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빚 갚은 어느 市 이야기

흔히들 이 시(市)를 이렇게 얘기한다. -아방궁 같은 호화 청사가 있다. 수천억 들인 전철이 굴러간다. ‘억’ 소리 나는 축제가 매일 열린다. 멀쩡한 도로를 파헤쳐 돈을 처바른다. 사람도 없는 곳에 호화 공원을 만든다. 이런저런 단체에 뭉텅이로 돈을 뿌린다. 공무원의 주머니는 수당으로 넘쳐난다. 그래도 걱정 없다. 개발 이익금이 샘물처럼 계속 솟아난다-. 시각이 이러니 내리는 평가도 그렇다. ‘그런 시의 돈은 좀 뺏어도 된다.’ 잘못 봤다. 이 시를 짓누르고 있는 건 빚더미다. 호화청사는 애물단지로 변한 지 오래다. 전철 사업비 5천153억원은 빚으로 남았다. ‘환매 조건부 개발 방식’이 시 예산을 갉아먹고 있다. ‘앞선 시장들’이 벌려놓은 짓이다. ‘지금 시장’에겐 매일 빚 독촉장이 날아든다. 그렇다고 누굴 원망할 입장도 아니다. 정부에 단단히 찍혔다. 방만한 지자체의 표본이 됐다. 사방천지에 도와줄 곳은 없다.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 맬 수밖에 없다. 선심성 행사를 없앴다. 축제도 줄였다. 사업도 태반을 줄이거나 취소했다. 도로 확·포장, 고속도로 IC 접속도로 신설, 지방 도로 개설, 교차로 개선 등이 사라지거나 축소됐다. 신규사업은 생각도 안 한다. 총액 한도제를 도입해 스스로를 꽁꽁 묶었다. 이러다 보니 늘어나는 게 주민 반발이다. 곳곳에 볼썽사나운 현수막이 내걸렸다. ‘○○○시장 물러가라.’ 그래도 이렇게 지독하게 굴며 수천억원을 아꼈다. 그 돈으로 빚을 갚고 있다. 공직자들도 다 내려놨다. 시ㆍ의회의 업무추진비 30%를 삭감했다. 5급 이상 간부들은 기본급 인상분을 반납했다. 직원들의 복지포인트도 50% 삭감했다. 해외 문화 체험 인원도 80명에서 50명으로 줄였다. 연가보상 일수 최대 지급일 수도 50% 삭감했다. 하루 3만원 받던 일ㆍ숙직비까지 60%로 줄였다. 꼭 필요한 인력 아니면 채용도 안 한다. 이렇게 해서 후생복지비(47억원), 인건비성 경비(30억원), 기타 경비(50억원)를 줄였다. 빚이 줄기 시작했다. 2012년 빚은 6천275억원이었다. 2016년 6월 현재 557억원이다. 5천153억원이던 전철 빚은 이미 지난해 말 ‘0’을 찍었다. 2017년이면 총 부채도 ‘0’이 된다. 내심, 그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막판 졸라매기가 한창이다. 체납세 징수를 위해 담당 부서가 바쁘다. 몇 개 남지 않은 공유재산을 팔려고 ‘땅장사’로 뛰어든 공무원들도 있다. 이제는 시민들도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칭찬할 일이다. 예산 낭비로 망가진 지자체는 많다. 그래서 빚더미에 올라앉은 지자체도 많다. 하지만, 이를 극복했다고 인정된 지자체는 많지 않다. 특히 그 과정이 생생히 증명된 지자체는 없다. 시민들도 이제 불만 대신 자부심을 말한다. 이장 A(54)의 얘기다. “정부도 인정해줄 거다. 정상으로 돌아올 날도 멀지 않았다.” 이렇던 시에 청천벽력이 생겼다. 생각지도 않았던 철퇴가 떨어졌다. ‘빚 청산’ 이전으로 되돌리는 철퇴다. 지방재정개혁이다. 매년 1천700억원씩 정부가 떼어간다고 한다. 시가 굶주리며 갚아온 빚이 매년 1천 몇 백억원이다. 그만큼씩의 돈을 정부가 꼬박꼬박 가져가겠다고 한다. 더 졸라맬 허리띠도 없다. 수당도 더 줄이기 어렵고, 직원도 더 줄이기 어렵다. 더 팔 재산도 없고, 더 미룰 사업도 없다. 결국 ‘지난 2년’처럼 계속 살라는 얘긴데…. ‘빚 청산’이라는 희망도 버리란 얘긴데…. 2년을 참고 살아온 시민들에겐 정부가 야속하다. 두어 달 전, 시장(市長)은 말했다. “조만간 부채 제로(0) 선언할 거야. 그러면 시민들이 원하는 거 다 해줄 수 있어.” 소주 한 잔이 힘을 줬던 모양이다. ‘제로 선언’의 시기도 공언했다. 그 후 지방재정개혁안이 등장했다. 그 직격탄이 시에 떨어졌다. 엊그제-광화문 1인 시위가 끝난 다음 날-, 시장이 말했다. “(공정 80%) 운동장 건설도 중단해야 하는 건가…. 힘들다.” 2년만 참자고 했던 시장에게도 정부가 한없이 야속한 모양이다. 용인시 얘기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자치(自治)-‘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림’

‘고기리 계곡’으로 더 유명하다. 산 좋고 물 좋고 풍수까지 좋다. 이런 곳에 10년도 더 된 숙원이 있다. 주말이면 꽉 막히는 도로다. 지적도에는 뻘건 도로선이 그려져 있다. 그걸 10년째 못하고 있다. 시 예산 파국 때문이다. 그러던 고기동에 희망이 생겼다. ‘곧 시가 빚을 다 갚는다더라’는 소문이 퍼졌다. 실제로 경전철 빚 5천억원이 정리됐다. 찔끔찔끔 보상도 해주고, 군데군데 도로도 넓어져 가는 중이다. 이런 용인시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느닷없이 날아든 ‘재정 가압류 딱지’다. 조만간 1천억원을 빼앗아 간다는 통고서다. 발송처는 대한민국 정부다. 그러니 호소할 데도 없다. 경전철 빚 5천억 갚는 데 5년 걸렸다. 1년에 1천억씩 갚았다. 그런데 꼭 그만큼씩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고기동이 다시 걱정에 휩싸였다. 곳곳에서 제2, 제3의 고기동 걱정이 고개를 들고 있다. 허리띠 졸라맸던 5년이 허사가 됐다. 그 용인 옆으로 성남시가 있다. 24살 청년들에게 50만원의 청년 배당을 준다. 1만명쯤 받는데 요긴하게 잘 쓰는 모양이다. 다른 지역 24살 청년들의 부러움을 산다. 돌아보면 격세지감이다. 불과 6년 전 성남은 파산 상태였다. 호화 청사, 예산 낭비로 금고가 거덜났다. 당겨 쓴 판교 특별회계 5천200억원이 빚으로 남았다. 결국, 시장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그러던 시가 이제 빚도 갚고, 돈도 준다. 여기에도 ‘가압류 딱지’가 날아들었다. 매년 1천200억원씩 가져갈 테니 그리 알라는 일방적 통보다. 24살 청년 배당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확정된 무상교복 사업은 시작도 못 해보게 됐다. 산후 조리 복지에 걸었던 여성들의 기대도 날아갔다. 어렵사리 탈출한 모라토리엄이다. 그렇게 모아 만든 여분으로 시작해보려던 성남시만의 복지다. 이 모든 것들이 ‘1천200억짜리 압류 딱지’로 날아가게 생겼다. 꼭 10년 전, 우리는 유바리(夕張)시를 봤다. 펑펑 쓰다가 파산된 일본 지자체였다. 일본 정부가 강하게 틀어쥐었다. 공직사회부터 철퇴를 맞았다. 수가 줄었고, 월급도 줄었고, 재정권도 빼앗겼다. 우리 정부가 널리 알렸다. 방만한 지자체를 군기 잡는 본보기로 썼다. 호화청사를 트집 잡는 재료로 썼다. ‘우리도 파산 지자체가 나올 수 있다’며 겁도 줬다. 투융자 심사 강화로 지방을 옥죈 게 그 즈음부터다. 그리고 10년이다. 유바리시를 다시 보자. 초ㆍ중등학교가 11개에서 2개로 줄었다. 복지 회관이 문 닫았고, 인구도 반 토막 났다. ‘이제 풀어주자’는 요구도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단호하다. “느슨하게 풀어줄 수 없다”며 원칙을 강조한다. 이것이 일본의 정책이다. 지자체 빚만 200조엔에 달하는 일본이다. 하지만, 도쿄 예산 빼앗아 유바리시에 주는 발상 따윈 안 한다. 철저하게 책임질 곳에 책임 묻는다. 같은 10년, 우리 정부는 달랐다. 방만한 지자체에 대한 경고는 사라졌다. 대신 잘 사는-정확히는 그저 겨우 먹고사는-지자체의 곳간에 손을 대기로 했다. 경전철 빚 5천억원 갚느라 고생한 용인시 곳간에 손을 대기로 했다. 탈탈 털어 모라토리엄을 졸업한 성남시 곳간에 손을 대기로 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본 정부는 책임 있는 지자체에 메스를 대는데, 한국 정부는 책임 없는 지자체에 메스를 댄다. 사전에 적힌 자치(自治)의 의미는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림’이다. 한번이라도 국어사전을 봤더라면 나올 수 없었을 ‘지방재정제도 개편안’이다. 그래서 나쁘다. 지방 정부 곳간에 중앙 정부가 손을 대는 나쁜 정책이다. 뺏기는 지역과 빼앗는 지역이 어색하게 갈라서야 하는 아주 나쁜 정책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과학자 이창진의 달 걱정, 그리고 정치

수학으로 로켓을 풀었다고 했다. 그걸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도 했다. 지상(地上)에서 지면(紙面)에 매달리는 언론인이다. 우주 발사체는 너무 ‘높은 곳’ 얘기다. 그 발사체를 수학으로 푼다는 건 더 모를 얘기다. 그나마 아는 건 그의 과학적 위치다. 다들 대한민국 우주공학의 권위자라고 한다. 로켓 발사를 선도하는 과학자라고 한다. 그런 과학자와의 밥 자리는 4월 26일이었다. 하필 한ㆍ미 우주협력협정 서명이 있기 하루 전이었다. 그가 협정의 의미를 미리 설명했다. “미국 과학의 목표는 온통 화성 탐사에 가 있다. 달에 가는 과학자들이 일거리를 잃었다. 미국 정부도 이게 문제다. 미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넘겨받을 수 있는 기회다.” 실제로 그랬다. 다음날 협정 발표문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포함했다. 우주 과학과 관련된 물품, 기술 자료, 정보 공개, 인적 교류, 시설 접근 등이 들어 있었다. 2010년부터 두들겼지만 꿈쩍도 않던 나사(NASA)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는 사흘 전 발사된 북한의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도 얘기했다. “모든 첨단 기술에는 기술 이력(履歷)이라는 게 있다. 북한 SLBM의 원천은 소련 기술이다.” 소련은 1991년 붕괴했다. 미국의 관심은 소련의 기술유출이었다. 그 중에도 우주 공학과 핵 기술에 초긴장했다. 막대한 돈을 주며 유출을 막았다. 그래도 누수는 있었다. 그때 일부 러시아 학자들을 북한이 돈으로 사들였다. “그 결과가 지금의 SLBM”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우주 산업도 확신했다. “앞으로는 우주에 먹거리가 있다.” 인공위성의 핵심은 통신이다. 거기에 1등은 대한민국이다. “국내 통신 기술과 연결하자는 요구가 여러 국가에서 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주 쓰레기 처리, 노후 위성 재활용도 그에겐 산업이다. 후학(後學)에 대한 그의 욕심이 그래서 유별나다. 미래 산업의 중심이 우주에 있다고 확신해서다. 그-이창진 교수ㆍ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에겐 달탐사가 이 모든 미래의 시작이다. 그 13일 전 총선이 끝났다. 새누리당 공약엔 ‘달 탐사’가 있었고, 더민주당 공약엔 없었다. ‘달탐사’를 정치 공약에 넣은 새누리당도 이상하다. 국회의원 임기 4년에 달탐사 시한을 엮어 넣는 게 우습다. 언급조차 안 한 더민주당은 더 이상하다. 우리에게 우주 공학은 남다르다. ‘우주 공학’이라 써놓고 ‘미사일 기술’이라고 읽어야 한다. 북한의 미사일 공포를 면전에 두고 치렀던 총선이다. 그런데도 더민주에게선 ‘우주’가 얘기되지 않았다. 돌아보면 쭉 이랬다. 정부의 달탐사도 하세월이다. 2014년엔 달에 갈 예산이라며 420억원을 세웠다. 달은커녕 부산 갈 기차 한 대 살 돈도 못 된다. 이나마 기재부에서 사라졌다. 힘 센 국회의원들 쪽지 예산에 밀렸다. 급해진 과학계가 국회 예산심사에 다시 넣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야당이 물고 늘어졌다. ‘대통령 공약인 달탐사 예산을 쪽지로 끼워넣었다’고 했다. 420억으로 달 가겠다는 정부나, 그걸 쪽지 예산이라며 빼는 야당이나…. 그런데 지금은 더 암담하다. 늘 그렇듯 선거 결과가 모든 걸 바꿨다. 패배한 쪽 약속은 모두 폐기처분됐다. 본의 아니게 ‘새누리당’ 꼬리표를 달았던 달탐사도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이러니 걱정이다. 달탐사는 정치가 아니다. 1당의 것도, 2당ㆍ3당의 것도 아니다. 어렵사리 열어젖힌 미국 NASA의 문 아닌가. 미국의 ‘달 실업자 문제’까지 우리를 돕고 있지 않은가. 절박하게 따라붙어야 한다. 한ㆍ미 우주협정에 초당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과학자 이창진은 말한다. “미국의 기술을 받을 절호의 기회다.” “미래 먹거리 산업이 우주에 있다.” 절박함도 얘기한다. “북한 SLBM은 북한 과학의 현실이다.” “러시아에게 배운 기술이 이제 북한의 것이 됐다.” 하지만 그에게 들은 얘기는 여기까지다. 많은 과학자들이 그렇듯이, 그 역시 다음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과학자들이 말 안하는 다음 영역에 정치가 있음은 분명하다. 달을 특정 정당의 유세장쯤으로 여기는 철없는 정치다. 그 철없는 정치가 지금 한국의 우주공학을 발목 잡고 있다. 한반도 남쪽에서 1m도 떠오르지 못하게 억누르고 있다. 이쯤 되면 죄악 아닌가. 우주를 잃어버릴 미래 세대에 대한 죄악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우리 아빠, 순직이시잖아요”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다. 세상 모든 죽음이 슬프다. 그날의 영결식도 그랬다.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이 애도했다. 도지사도 꽃을 받쳤다. 신문사 사장도, 현장 기자들도 고개를 숙였다. 바삐 살다간 그에 대한 마지막 인사였다. 언론은 그날을 이렇게 기록했다. ‘순직한 안수현 원장, 영결식 거행’ ‘중국서 순직한 안 원장 경기도청장 엄수’. 딸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 훗날 청원서에 이렇게 썼다. “아빠를 잃은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었습니다.” 15일이면 꼭 3년이다. 이제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갔다. 공보실, 교통과장실, 자치국장실, 연구원장실…. 어디에도 그가 앉았던 흔적은 없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부쩍 줄었다. 그저 ‘성실히 살다가 순직한 어느 공무원’이 됐다. 그런데 그런 안 원장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영결식장에서 오열하던 딸이다. 그 딸이 3년째 아버지 이름을 붙들고 있다. 보훈지청으로, 법원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우리 아빠는 순직이에요. 인정해주세요.” 돌아보면 언론의 오보(誤報)였다. 도지사의 조사(弔辭)도 틀렸다. 그의 죽음은 순직이 되지 못했다. 대한민국 보훈처가 그렇게 결정했다. 2014년 3월 18일자 보훈처의 심의 의결서엔 이렇게 적혀 있다. ‘고인을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 제14호의 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하고,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3호의 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한다.’ 순직(殉職)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유는 이렇다. 국민의 생명ㆍ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고 했다. 만찬 후 숙소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만찬에서 먹은 술도 이유가 됐다. 백주 2병이었고 40도짜리였다고 했다. 8명이 나눠 먹었으니 안 원장의 음주량은 125㎖라고도 했다. 그의 10년치 치료 내역도 모두 깠다. 추간판 장애, 고혈압, 급성편도염, 손발톱 백선…. 사망 원인을 지병(持病)과 연관 짓는 전력 들추기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지병 있는 사람이 술 먹다 죽었다’다. 정말 그런가. 정말 안 원장의 사망은 업무와 무관한가. 정말 술 먹고 즐기다가 사망한 것인가. 숨진 곳은 중국 산둥성 행정학원 숙소다. 출장 목적은 경기도와 산둥성의 교류협력이었다. 직인(職印) 찍힌 공무(公務)였다. 만찬 자리도 그렇다. 8명이 참석했다. 한국인은 안 원장 등 3명이었다. 중국인은 5명이나 됐다. 가오위칭 서기, 아이쓰퉁 부원장, 천샤오, 두장센, 좡칭타오…. 안 원장이 빠질 수 없는 밥 자리였다. 병력(病歷)은 어떤가. 대한민국 59세 남자 직장인이다. 디스크, 고혈압, 편도선…. 급사(急死)의 원인이라고 여길 병이 아니다. 한 달 뒤면 명예퇴직이었다. 그래도 그는 쉬지 않았다. 4월 3일엔 지구 반대편으로 갔다. 페루와 미국을 오가며 10일간 업무를 수행했다. 곧바로 제주도 연수도 다녀왔다. 그리고 며칠 뒤 또다시 중국으로 갔다. 하나같이 목적이 분명한 공무였다. 돌아보면 가족을 맘 아프게 하는 모습이 있다. 떠나던 날 새벽, 안 원장이 남긴-결국 유언이 되어 버린- 말이다. “힘들다. 안 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는 갔고 협약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거기서 숨졌다. 이런 죽음에 대한민국은 ‘순직’ 한 마디를 붙여주지 않는다. ‘죽을 병’이 있었다며 10년치 병력까지 들춘다. ‘술 때문에 죽었다’며 술 몇 잔의 알코올 도수까지 계산한다. ‘근무 시간 아니다’며 5시 환담과 6시 만찬을 분초로 가른다. 그러면서 ‘유족의 거증(擧證) 책임’을 말한다. ‘억울하면 유족이 입증하라’는 얘기다. 이런 대한민국 앞에 ‘35년 공직자’의 딸은 무기력해지고 있다. 보훈처에서는 이미 졌고, 민사재판도 이제 대법원 최종심만 남았다. 하필 가정의 달이다. 3년 전 5월이나 올 5월이나 딸에겐 힘든 가정의 달이다. 그때는 아빠 죽음에 힘들었고, 이제는 아빠 명예에 힘들다. 그래서인지, 청원서 마지막에 공무원 안수현이 아닌 아빠 안수현의 모습을 적었다. “가정에서는 그리 좋은 아빠는 아니었습니다…활동도 둔해지시고 잠이 많아진 아빠를 보면서 가족 모두에겐 하루하루가 고비였습니다…그래도 맛있는 음식, 좋은 장소는 가족과 함께 하길 바랬던 참 마음 약한 아빠였습니다.”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맨 앞에는 지금도 이렇게 적혀 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보훈 가족 여러분들을 섬기겠습니다. 보훈은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정신적, 사회적 인프라입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道 규제 강화, 여전히 더민주의 입장인가

(동의할 수 없다. 그런데 하필 11일이다. 이틀 있으면 선거다. 일단 적어놓기로 하자.) “수도권 규제 완화는 전부 아니면 전무, All or nothing 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자꾸만 수도권과 지방을 상극의 싸움으로 몰아넣고 있다.” 김진표 후보가 말했다. 틀렸다. 규제 논란은 더민주당이 시작했다. 충청도에서 불을 지폈다. “수도권을 옥죄어야 한다”고 했고 “완화된 것도 되돌리겠다”고 했다. 충청을 위해 수도권을 희생 삼겠다는 거였다. 이야말로 ‘All or nothing’이다. 지역을 극단으로 쪼개는 상극적 발상이다. (동의할 수 있다. 같은 11일이다. 역시 선거 이틀 전이다. 이것도 적어만 놓기로 하자.) “상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방이전이 가능한 산업은 규제를 유지하고 해외로 빠져나갈 산업은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역시 김 후보의 얘기다. 옳은 말이다. 그렇게 해야 한다. 보낼 것은 보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시설이 내려갔다. 농업도 갔다. 기관도 갔고 정부까지 갔다. 보내면 안 될 걸 보낸 게 문제다. 그런 게 엉뚱한 곳으로 갔다. 중국으로 갔고, 동남아로 갔다. 그의 말대로 합리적 기준이 필요하다. 그리고 선거는 끝났다. 수도권 규제 논란도 사라졌다. 갑자기 철 지난 얘기가 됐다. 선거판을 그토록 달궜었는데…. 새누리당은 규제 논란에 목청을 높였다. 경기도 이익을 홀로 지키는 듯 외쳤다. 그러다가 선거에서 졌다. 그러자 입을 닫았다. 더민주당은 그때도 말하지 않았다. 당 대표의 영(令) 앞에 모두가 입을 닫았다. 그러다가 크게 이겼다. 이제는 말할 필요가 없어졌다. 승자의 위력 앞에 누구도 따져 묻지 못한다. 새누리당은 져서 입 닫았고, 더민주당은 이겨서 입 닫았다. 도민의 생존 문제인데 그렇게 묻혔다. 그러던 엊그제, 그 문제가 다시 나왔다. 새누리당이 아니다. 김진표 당선자가 꺼냈다. ‘(경기도의) 2기 연정을 통해 해결해야 할 의제는 수도권 규제 합리화다.’ 발언한 자리가 다소 어색하다. 도지사 공관(굿모닝 하우스)에서다. 남경필 지사와 총선 당선자와의 상견례 자리였다. 상견례라는 게 늘 그렇듯 그저 덕담하고 끝나면 된다. 다른 참석자들은 ‘협치로 가자’며 좋은 말만 했다. 그런데 김 당선자는 덕담 대신 ‘수도권 규제 합리화’를 말했다. 경기도정의 향후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까지 했다. 아주 특별했던 소감이다. 이쯤 되면 그의 소신으로 봐야 한다. 그래서 많은 도민이 김 당선자를 주목한다. 사실 그리 반길 논리도 아닌데 그런다. 그가 내놓은 합리적 수단은 첨단산업유치법이다. 대기업 유치를 위한 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결국엔 또 하나의 특별법이다. 수도권을 규제하는 ‘특별법’ 위에 ‘또 다른 특별법’을 얹겠다는 것이다. 바꿔 들으면 1차 특별법은 손대지 않겠다는 의미다. ‘확’ 풀어달라는 도민 뜻과 다르다. ‘풀지 않겠다’는 당(黨) 논리에 가깝다. 그도 ‘규제 완화’ 대신 ‘규제 합리화’라는 말을 줄 곳 사용하고 있다. 이런데도 도민들은 그에게 기대를 보낸다. 그라도 나서 방향을 바꿔주길 바라서다. 때론 공약(空約)이 간절할 때도 있다. 작은 희망이 큰 바람에 휩쓸려 갔을 때다. 이번이 그랬다. 수도권 이익이 정권 심판에 묻혀 갔다. 규제 강화를 말한 더민주당이 1등 됐다. 이러다 보니 도민들이 공약(空約)을 기다린다. 규제 강화 약속이 없던 것으로 되기를 바란다. 그저 투표와 함께 사라진 공허한 캐치프레이즈이길 바란다. 이 옹색한-차라리 비굴하기까지 한- 경기도민의 기대 속에 김진표식(式) 수도권 규제 합리화가 있다. 선거 5일 전 칼럼은 ‘道 규제 강화, 정말로 더민주의 공약인가’였다. 선거는 끝났고 세상은 바뀌었다. 하지만, 칼럼의 제목은 바뀌지 않는다. ‘道 규제 강화, 여전히 더민주의 입장인가’.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道 규제 강화’, 정말로 더민주의 공약인가

‘민심이 발칵 뒤집혔다’고 썼다. ‘내부에서 부글거린다’고도 썼다. 부산지역 신문들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여기서 민심이란 부산민심이다. 내부라 하면 새누리당 내부를 말한다. 대구 조원진 후보(새누리)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대통령의 선물 보따리’라 했고 ‘대구 신공항’이라고 했다. ‘밀양 신공항’을 얘기한 것으로 해석됐다. ‘가덕도 신공항’을 학수고대하던 부산이 들고 일어났다. 부산민심이 뒤집혔고 새누리당이 부글댔다. 여기엔 다른 목소리가 없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이 총공세에 나섰다. 새누리당 부산 후보들을 싸잡아 성토했다. 새누리당도 지지 않았다. 5일 부산상공회의소로 부산의 모든 후보들이 모였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 서약식’을 거창하게 가졌다. 대구(밀양)에 맞서 싸우는 부산(가덕도)의 신공항 전투다. 부산의 미래가 걸린 이 전투에 정당은 없다. 모든 정당들이 똑같이 ‘가덕도 신공항’을 약속하고 나섰다. 선거란 게 이렇다. 경기도에도 현안이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다. 부산의 가덕도와 닮았다. 가덕도 신공항 유치는 부산을 살리는 일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경기도를 살리는 일이다. 그런데 정치는 다르다. 부산 정치는 가덕도 신공항에 한목소리를 낸다. 경기도 정치는 수도권 규제에 다른 목소리를 낸다. 풀자는 목소리도 있고, 풀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더민주당은 풀면 안 된다는 목소리다. 지금도 충청도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충남도당이 내놓은 공약이 ‘완화된 수도권 규제를 원상 복구하겠다’다. 지금 규제는 성에 안 차니 ‘더 강화하겠다’고도 한다. 충청도당만의 구호였으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다. 당 대표도 ‘수도권 규제 완화로 지방이 피폐해진다’고 말했다. 경기도 심장에 와서도 그런 말을 했다. 경기도 기자들 앞에서 ‘규제 완화는 안 된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그렇다고 뭘 가져가겠다는 얘기도 없다. 하기야 가져갈 것도 없다. 참여정부 이후 수도권에서 나간 기관, 기구가 수두룩하다. 부산으로 13개, 대구로 11개, 광주ㆍ전남으로 15개, 울산으로 10개, 강원으로 12개, 전북으로 13개, 경남으로 11개, 제주로 10개가 갔다. 충청권으로는 무려 57개가 갔다. 빠져나간 민간 기업의 수는 여기에 넣지도 않았다. 갈 수 없는 게 아니라 가져갈 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 뭘 더 옥죄겠다는 건가. 국토균형발전론을 토론하려는 게 아니다. 경기도 표심에 대한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경기도에 승패를 건다면서 경기도의 규제 강화를 약속하나. 옛날엔 이러지 않았다. 수도권에 줄 선물도 챙겼었고 예의도 차렸었다. 2012년 10월 22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가 경기ㆍ인천 기자들과 만났다. 거기서 문 후보는 경제수도론을 던졌다. 경기북부는 평화경제로, 경기남부는 지식경제로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경기ㆍ인천 언론이 크게 보도했다. 모든 공약이 그렇듯 믿음이 가는 약속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기ㆍ인천 유권자들은 그것도 선물이라며 받고 좋아했다. 지금 그런 게 없다. 냉혹하게 자르고 간다. 당이 이러니 후보들도 그렇다. 경기일보가 후보들에게 ‘수도권 규제’를 물었다. 더민주당 후보의 37%가 ‘규제를 풀면 안 된다’고 답했다. 이런저런 단서를 달았지만 결국 ‘안된다’였다. 부산 후보에게 ‘가덕도 신공항’을 물었더라면 어땠을까. ‘유치하겠다’는 답 하나였을 거다. 경기도는 아니었다. “규제 완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안민석 후보의 긴급 논평이 되레 당내 반항처럼 들렸다. 여기엔 자신감이 있는 듯 보인다. 경기도 표심은 특이하다. 규제 완화라는 화두에 흔들린 적 없다. 수도(首都)를 빼겠다는 후보에게도 가장 많은 표를 던졌었다. 충청도 할아버지, 전라도 아버지가 만드는 8도 표밭이어서다. 이번에도 ‘규제’ 화두는 미풍도 못 낸다. 오히려 더민주당의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다. 그렇게 보면 더민주당의 선택이 옳은 듯도 보인다. ‘경기도 쬐끔 잃고 충청도 왕창 얻자’는 지혜로운 셈법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그래서 도민의 상처가 크다. 도민 숙원이 정치 셈법을 넘어서지 못하는 현실이 더 서운하다. 아마도 이렇게 20대 총선이 끝날 것 같아 보여서 더 속상하다. 정치인 1명에게 4월 13일은 ‘행복한 하루’다. 하지만, 1,300만 도민에게 4월 13일은 여전히 ‘고단한 하루’다. 그 고단한 하루 속에 내 땅이 묶여 있고, 내 애들이 실직해 있다. 그 땅 때문에 개발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고, 그 애들 때문에 공장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이런 도민의 뜻이 또 정치에 외면당하고 있다. 그것도 앞서 간다는 제1 야당에 외면당하고 있다. 2년 뒤 여당이 될 거라는 더민주당에 외면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당 차원의 공약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결국, 또 하나의 헛소리-‘어느 정당이든 규제 좀 풀어 달라’-를 기록하는 듯 하다.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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