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대통령)은 역시 감동을 주지 못했다. 엊그제 밤 10시부터 ‘대통령과의 대화… 질문이 있습니다’가 장장 100분에 걸쳐 생방송 됐다. KBS1TV, MBC TV, YTN케이블TV 등이 일제이 내보냈다. 대체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듣긴 들었는데 남는 게 없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새로운 말을 들려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희망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 “믿어달라” “(대한민국 경제의) 기적을 만들겠다” “물가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등의 말(다짐)은 원칙적인 얘기다. 국민이 알고 싶었던 것은 ‘어떻게’다. 뭘 어떻게 할테니까 믿어달라는 것이고, 기적은 어떻게 만들 것이며, 그리고 어떻게 물가를 잡겠다는 것인가를 궁금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듣고 싶었던 말은 듣지 못했다. 녹색성장도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강조한 당위성은 동의한다. 문제는 기술도 돈도 미흡한 형편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에 있다. 한데, 이에 대한 해답은 없었다. 정답이 없는 녹색성장의 그같은 필요성은 대통령이 아니어도 누구나 말할 수가 있다. “경제파탄은 절대로 없다”고 했지만 서민경제는 이미 파탄지경이다. 대통령의 인식에 결함이 있다. 대통령은 경제파탄을 IMF 사태에 비유했다. 하지만 “IMF 때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 사회위기 수준의 지배적 중론이다. 말인즉슨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것을 “안다”지만 뭘 모른다. 통치철학의 빈곤이다. 추석 대목이다. 서민들이 찾는 시장은 냉랭하다. “이런 추석 대목은 난생 처음이다”라며 울분을 토한다. 수십년을 장사했다는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말이다. 반면에 고급백화점이나 일반백화점의 고급상품 코너는 흥청거린다. 비싼 명품일수록 더 잘 팔린다. 음식점 등 문 닫는 자영업소가 속출하고 있다. 장사가 안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고급 식당이나 값비싼 술집은 장사가 잘된다. 양극화 현상의 심화가 뚜렷할 뿐만이 아니라, 격차 또한 점점 더 크게 벌어져 간다. 돈많은 상위계층만이 살판난 세상이다. 그러나 예컨대 중소기업인은 돈 많은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돈이 없어 사업규모 축소로 생존의 돌파구를 모색하는 실정이다. 이토록 돈이 없는 것은 내수 부진으로 흑자도산의 위기에 몰린 탓이다. 지금 돈이 많아 살판난 것은 수십억원, 수백억원을 땅 보상비로 받은 부동산 투기족이다. 지난 5년동안에 100조원이 풀렸다. 이러고도 수도권 신도시 보상비로 조만간 또 13조원이 풀린다. 이런 졸부들 말고 또 돈많은 사람은 권력층이다. 부자가 반드시 부도덕하고, 빈자가 꼭 청렴한 것은 아니다. 남다른 노력의 결실로 부를 쌓고, 본인의 허랑방탕으로 가난에 찌든 사람도 많다. 문제는 투기나 권력으로 축재하고, 서민들은 열심히 살려고 힘쓰는데도 노력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 사회적 병리현상의 고질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대통령이 임명코자 하는 높은 벼슬아치 후보마다 거의가 부동산 투기가 드러나곤 하는 점이다. 대통령 주변에는 왜 그런 사람들만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고사가 있다. 제나라 환공이 중신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병신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의아해 하는 신료들에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돈이 없으니 아내에겐 지아비노릇, 자식에게는 애비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부모의 기일이 닥쳐도 돈이 없어 제사를 변변찮게 올리니 불효하고, 친구를 만나도 돈이 없어 술 한잔 살 자릴 마련 못하니, 세상에 사람노릇 못하는 이보다 더 큰 병신이 또 어디에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환공이 중신들에게 당부한 말은 이랬다. “그러니, 경들은 병신이 되는 백성이 없도록 세간 살이를 잘 살펴 가난함이 없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명박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지금 세간에는 사람노릇 못해 ‘병신’이 된 민초가 태반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사람 구실을 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잘 안되는 것은 경제가 파탄났던 IMF 때보다 서민경제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잘 살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는 경제건설을 원한다. 당장 용빼는 재주를 보여 달라는 게 아니다. 희망을 가시화해달라는 것이다. 대통령은 쥐들이 “무서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좋다”는 식의 원론적 얘기만 비겁하게 앉아서 되풀이 할 것이 아니라, 고양이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다가가 방울을 목에 직접 거는 (용기와 결단력 있는) 경륜을 보여줘야 한다. 입으로 백번, 천번 “믿어달라”고 하기 보다는 단 한번이라도 믿을 수 있는 신뢰성을 보여줘야 된다. 의왕의 어느 보육시설에 가서 자원봉사하는 TV방송을 보고도 국민사회가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의 신뢰성 상실에 기인한다. ‘대통령과의 대화’는 결국 민초들이 가려운 것은 발등인데, 양말도 아닌 신발 위를 긁는 꼴이 됐다. ‘이명박은 역시 아직도 뭘 모른다’는 세평이다. 임양은 주필
오피니언
임양은 주필
2008-09-1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