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정조의 리더십

세종과 정조는 조선 왕조에서 쌍벽을 이루는 성군이다. 조선조 전기에서 세종을 꼽는다면 후기엔 정조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두 임금의 리더십은 다르다. 역사 학자들은 세종을 계몽군주로, 정조는 개혁군주로 분류한다. 즉 세종은 평화로운 치세의 성군인 데 비해 정조는 어지러운 난세의 성군인 것이다.두 임금의 즉위 배경이 구분된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아들 세대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본 구세력을 미리 다 숙청했다. 심지어는 아들의 장인인 심온마저 제거했다. 반면에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 사후 14년 동안 또 무슨 변고가 닥칠지 모르는 불안 속에 지내다가 보위에 올랐다. 치국의 콘텐츠가 이래서 다르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백성을 어여삐 여긴 계몽군주의 소산이다. 정조의 서얼제도 타파 등 실사구시는 개혁군주의 소신이다.그러나 같은 점도 있다. 세종이 영의정으로 중용한 황희는 태종의 양녕대군 폐세자, 즉 나중에 세종이 된 충녕대군 자신의 세자 책봉을 귀양 가면서까지 반대한 사람이다. 정조가 서신 왕래 등으로 정치적 유대 관계를 깊게 맺었던 영의정 심환지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게 만들고, 자신의 세손 지위를 늘 위태롭게 했던 노론의 벽파다. 세종과 정조는 계몽군주, 개혁군주로서의 콘텐츠는 각기 달라도 인재를 알아보고 등용하는 형안은 같았던 것이다.이같이 상반되면서도 공통점이 있는 두 임금의 일깨움이 왕조시대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지금의 이 시대에 비유가 걸맞지 않는다면, 현대사에서 찾아보는 존경된 지도자가 하필이면 호치민인 것을 의아하게 여길지 몰라도 사실이다. 민중의 순수한 지도자상이 이념 문제를 떠나 감명을 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1969년 79세를 일기로 사망한 베트남 민주공화국 주석 호치민은 평생 동안 인민 대중과 똑같이 검소하게 먹고 입고 쓰던 유품이 호치민박물관에 보존돼 아직도 추앙을 받고 있다. 베트공의 물불을 가리지 않은 항전은 이념 때문이 아니다. 진실로 인민 대중과 함께하는 자도자라면 목숨이 아깝지 않다고 여긴 충성심이, 부패한 사이공 정부를 붕괴시킨 것이다.제2차대전 전후 위대한 프랑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 이를 성공시킨 드골은 1969년 대통령 자리에서 하야한 뒤 고향 옛집에서 동네 어린애들 할아버지 노릇을 하다가 죽으면서 유언에 따라 마을 공동묘지에 묻혔다.참된 국민의 지도자상은 뭣인가, 지위에 사심이 없는 무소유의 경지다. 예컨대 전 대통령 노무현은 민중의 지도자가 되기에 노력은 했으나, 사심이 그를 망쳤다. 대통령 재직 시의 공과가 그의 신념이라면 성패 간에 허물을 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퇴임 후의 봉하마을 대저택이나 천문학적 수치의 돈이 건네진 박연차 스캔들은 민중의 지도자상이 아니다. 그만이 아니다. 민중을 팔아 민중 위에 군림하면서 민중보다 잘 먹고 잘 사는 이념귀족이 쌔고 쌘 현실은 모순의 극치다.현직 대통령 이명박은 재산 300억원을 장학재단 기금으로 사회에 내놓고도 좋은 소릴 못 듣는다. 그 연유가 어디에 있든 사심이 없는 것은 객관적으로 부인하기 어렵다. MB의 오만과 독선을 응징한다고 한다. 자신의 경륜과 신념을 펴기 위해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면, 노무현의 오만과 독선이나 이명박의 오만과 독선이나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에 있다.글머리로 돌아가 이 시대 지도자의 모델은 세종 같은 계몽군주이기보다는 정조 같은 개혁군주라야 한다. 치세가 아니고 난세이기 때문이다. 다중의 의견을 듣는 것과 다중의 의견에 흔들리는 것은 구별된다. 대통령은 다중의 구심점이 돼야 하는 지도자다.대통령의 리더십에 불만스런 게 적잖다. 세종과 정조와 같은 포용력이 없는 것은 불만 중 하나다. 그러나 호치민이나 드골 같은 도덕성을 잊지 않을 요량이면, 정조 스타일의 개혁을 밀고 나가야 한다. 치세의 세종은 신하들의 말을 많이 따랐지만, 난세의 정조는 신하들을 이끄는 치국을 폈다.대통령은 고독할 것이다.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 62 지방선거를 크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진정한 평가는 재임 중이 아니고 퇴임 후 내려진다. 멀리 보고, 크게 보는 안목이 국정의 요체다. /임양은 본사주필

남편들에게!

남편들이여! 아내에 대한 서비스로 봄맞이 집안 대청소를 해보는 게 어떨지, 되도록이면 부인은 쇼핑 같은 외출을 시키고 혼자 깜짝쇼로 하는 것이 좋을 성싶다.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개나리가 꽃망울을 틔우는 봄인데, 날씬 쌀쌀하다. 천안함 사태로 시국은 하수상하다. 어떻든 시절은 불사춘이어도, 봄은 봄이다.새봄맞이 가사노동은 겨우내 묵은 집안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털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한민국 남성들은 집안일을 너무 안 한다. 돈 버는 게 위세일 수 없다. 가장의 당연한 책임이다. 더욱이 맞벌이 부부가 태반이다. 돈은 같이 버는데도 대부분의 남편들은 가사노동엔 태무심이다. 그렇다고 맞벌이가 아닌 전업주부라고 하여 편히 지내는 것도 아니다. 전업주부 남편들 역시 아내의 가사노동에 대한 태무심죄가 크다.남성들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내가 1일 2시간38분인 데 비해 남편은 고작 24분이다. 비맞벌이 부부는 아내의 가사노동시간이 4시간11분인 데 비해 남편은 기껏 19분이다. 내가 하는 소리가 아니다. 나라의 통계청에서 확인한 사실이다. 2009년 국민생활시간조사다. 2만1천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이렇다. 조사는 물론 다른 분야도 했다.가사노동은 음식 준비, 청소, 집 관리 등 일상적 가정생활이다. 현대 생활구조는 가사노동에 남녀의 구별이 없게 돼 있다. 전기밥솥이 있고 청소기가 있고 세탁기 등이 있다. 쌀을 일어 전기밥솥에 넣고 스위치만 꽂으면 그만이다. 청소기나 세탁기를 남자가 튼다고 안 돌아가진 않는다. 가전제품의 자동화, 가스를 이용한 입식주방의 변화는 예전과 달라서 가사노동의 성차별을 추방했다.반찬은 밑반찬이 쌔고 쌨다. 또 웬만한 요리는 남성들도 할 줄 알아야 할 만큼 상식화가 됐다. 텔레비전이나 누워 보면서 아내더러 물 달라거나 커피 끓여 오라는 남편은 세상물정 모른 덜떨어진 남자다. 가사노동은 부부 간의 형편에 맞춰 서로 편리할 대로 분담하는 공동 작업이다.부인을 사별한 어느 누가 이런 말을 했다. 냉장고를 봄 가을로 청소해야 깨끗한 줄을 전엔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냉장고 청소가 반나절이나 걸려 예삿일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심지어 화장실 청소도 사흘 걸러 해야 하고, 변기는 일주일이면 해야 깨끗한 것을 아내를 잃고 나서 비로소 알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부인 생전에 가사노동을 거들지 않은 걸 크게 후회하였다.가사노동의 주요 부분이 또 육아다. 아일 키우는 것이 낳은 엄마만의 일은 아니다. 육아를 전적으로 아내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남편은 아이 아버지의 자격이 있다 할 수 없다. 열 달 동안 몸속에 품어 낳은 수고로움만도 얼만데, 키우는 수고로움조차 나눌 줄 모르는 남편이나 아빠는 남자인 것을 부끄럽게 알아야 한다.대체로 보아 공처가인 집안은 잘 돼도, 반대로 공부가인 집안은 잘 된 예가 별로 없다. 공처가 남편의 아내 무서움증은 사랑인 데 비해 아내의 남편 무서움증은 남편의 애정 결핍이기 때문이다.세상에서 가장 못난 남자가 집에 들어가서 아내에게 큰소리치는 남편족이다. 이런 남자일수록 밖에서는 비굴하게 지내어, 그 보상심리를 아내에게 받으려고 괜히 거들먹거린다.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의 행실이 치사한 맘이 들면 더 지랄한다. 때로는 치사한 맘을 잊을 요량으로 폭음도 한다.행복이란 말을 많이 쓴다. 행복이란 과연 뭣일까, 사람에 따라 관점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해로하는 것 이상의 행복은 이 세상에 없다. 돈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다. 부부 사랑에 나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부부가 다 마찬가지다.봄 날씨 같지 않아 쌀쌀해도 개나리꽃은 어김없이 핀다. 앞으로 봄볕이 화사하게 무르익으면, 봄맞이 나들이를 떠나는 부부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한 부부를 보면, 그들이 누구든 아름답게 보인다. 그 같은 부부의 남편은 또한 집안일을 아내에게만 떠맡기지 않고 나눠 가질 것이다./임양은 본사 주필

北의 침묵?

우리에게 평양정권과 그 피지배층은 뭣인가, 한마디로 동포다. 말도 같고 글자도 같고 풍속도 같다. 핏줄 또한 엉켰다. 1945년 8월15일 광복과 함께 38선이 생긴 1차 분단 이후, 1953년 7월29일 625 정전협정에 의해 휴전선을 가운데 둔 2차 분단으로 오늘에 이르렀다.잘 살길 바란다. 공산주의를 하든 우리식 사회주의로 혈통 승계의 수정주의를 하든 상관없다. 그런데 잘 못 산다. 인민이 먹고 살게 하는 것은 체제가 어떻든 정권의 소임이다. 그런데 잘 살기는커녕 굶어죽는 사람이 있는 게 저들 세상이다. 중국 시베리아 태국 등 동남아를 유랑하는 탈북주민이 수만 명이다.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가 1만명을 넘어섰다.북녘이 잘 살길 바라는 덴 이유가 있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도 남북이 서로 부담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상호간에 균형 있는 발전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통일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당장 통일이 된다 해도 북녘 인민을 먹여살려야 할 걱정이 앞선다. 이만이 아니다.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 갖가지로 소요되는 통일 비용이 지금의 국가 예산으로는 감당이 벅찬 천문학적 수치에 이른다.항상 하는 얘기지만 중국처럼 개혁 개방을 하면, 잘 살 것을 몰라서 안 하는 평양정권이 아니다. 안 하는 게 아니고 못하는 것이 저들 입장이다. 개혁 개방을 하면 우리식 사회주의 붕괴가 필연적 사실이기 때문이다.이래서 대외적으로 내놓을 건 없고 대내적으로는 인민 통제를 위한 긴장수단으로 사활을 걸고 고집하는 것이 핵무기다. 평양정권에 대한 한반도 비핵화 의지 촉구는 저들로선 잠꼬대 같은 소리다. 6자 회담은 동상이몽의 장식품이다. 흥정을 노려 부수입을 챙기면서도, 끝내 가서는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이 저네들 기본 전략이다. 지금 평양정권은 6자 회담에 배를 튕기고 나오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나온다 해도 별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달러가 급하다. 금강산 관광 등을 당장 재개하지 않으면 북에 있는 관광 관련의 남조선 재산을 몰수하겠다는 으름장이 나온 배경이 이에 있다. 얼마 전에 우리 쪽의 비무장지대(DMZ) 취재 및 생태관광자원화를 생트집 잡았다. DMZ의 평화적 활성화를 북남 대결의 모략 선전장이라고 우긴다. 금강산 관광객을 총 쏴 죽인 저네들은,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또 인명 살상을 경고하고 나섰다.평양정권은 초조하다. 식량 및 외화 빈곤 등 가난이 찌든 데다 화폐개혁 실패가 겹쳤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또한 썩 좋지 않은 가운데 3대 혈통 승계 기반 구축이 시급하다. 간헐적으로 거론되는 북의 급변사태설은 중국 정부에서도 논의됐을 정도다. 북의 중앙방송은 무슨 급변사태를 들먹이며 공화국 방해 책동을 일삼고 있다고 미국 등을 비난했지만, 이를 우려하기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우리식 사회주의가 막다른 길목에 부딪힌 평양정권은 신경질만 늘어 인명살상 위협을 노골적으로 해댄 것이 DMZ 경고다.천안함의 원인 모를 폭발 침몰이 북의 소행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다. 하지만 경험상 의심의 정황은 간다. 외신이 주요 기사로 다룬 이유가 단순 사고가 아닌 것으로 보는 정황 관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제 금값 폭등 또한 마찬가지다. 이상한 것은 평양정권의 침묵이다. 온갖 협박을 일삼는 저들이 북의 관련 의혹 제기에도 찍소리 한마디 없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전 같으면 남조선 당국의 잘못으로 사고를 내놓고, 터무니 없이 공화국에 책임을 떠넘긴다며 욕설을 해댔을 것이다.어느 친지가 필리핀에 있는 교포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며 이런 얘길 했다. 한국에 곧 전쟁이 날 것 같으냐?고 뜬금없는 말을 해서 무슨 소리냐? 했더니 배가 뒤집혔다면서?하고 묻더라는 것이다. 그렇긴 해도 전쟁은 당치 않다고 했으나, 그곳 교포사회선 교회에서 전쟁이 나지 말라는 특별예배를 가졌다는 것이다.국내에 있는 내국인의 안보 감각이 무딘 것인지, 그 해외 교포들이 신경과민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은 갑자기 도발되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도발 전에 어떤 징후가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평양정권이 도발을 일으킨다면 막판 상황에서 선택하는 도박이다. 물론 전쟁은 막아야 한다. 천안함 실종자 구조작업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를 지켜보면서 북녘을 향한 상념이 왠지 착잡하다. /임양은 본사주필

고사 일화(故事 逸話)

예양은 중국의 옛 진(晋)나라 사람이다. 범씨와 중행씨를 섬겼으나 명성을 얻지 못하다가 지백을 섬겨 중용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조양자가 지백을 멸해 쫓기는 몸이 됐다. 예양은 이렇게 말했다. 아! 뜻 있는 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성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용모를 아릅답게 꾸민다. 지백이 나를 알아 주었으니, 나는 반드시 지백을 위하여 원수를 갚겠다고 했다.이래서 변성명한 채 궁중의 변소 일을 하는 죄수로 가장해 들어가 비수를 품고 양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변소를 들르는 양자가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려 수상히 여긴 일꾼을 붙잡아 신문한 끝에 예양임을 알았다.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고 했다는 예양의 자백에 좌우에서 주살을 권했으나 양자는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조심해서 피하면 된다며 풀어줬다.그러나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해 피부병 환자를 가장, 숨어다니다가 양자가 다니는 길목의 다리 밑에서 기다리며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이번 역시 양자가 탄 말이 뭣에 놀란듯이 하여 살피니 예양이 숨었음을 알아 그를 붙잡아 꾸짖었다. 그대는 전에 범씨와 중행씨를 섬기지 않았나, 그런 범씨와 중행씨를 지백이 멸했는데 어찌하여 범씨와 중행씨는 생각지 않고 그들을 멸한 지백만을 위해 나를 죽여 원수를 갚으려 하느냐?고 물었다.이에 예양은 나는 분명히 범씨와 중행씨를 섬겼으나 그들은 날 범인(凡人)으로 대우했습니다. 그래서 나 또한 범인으로 보답했습니다. 그러나 지백은 저를 국사(國士)로 특별히 대우하였기 때문에 나 또한 국사로서 그에게 보답코자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양자는 탄식하면서 이리 말했다. 아, 아깝도다. 그대가 지백을 위해 충의를 다했다는 명예는 이미 성취했다. 과인도 더는 너를 놓아줄 수가 없구나!라고 하였다. 양자는 예양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자신의 의복을 내려주자, 예양은 그 의복을 벤 것으로 죽은 주군의 원수를 갚은셈 치고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염량세태의 무상함에 느낀 바가 있어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 한 대목을 여기에 옮겼다. /임양은 본사주필

포퓰리즘의 ‘광란’

선거철은 포퓰리즘의 계절인가,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온갖 선심공약이 널뛴다. 예비후보들은 말할 것 없고, 정당들 역시 대중영합주의에 급급하다. 군소 정당은 그렇다 쳐도, 한나라당민주당 등 양대 정당 또한 포퓰리즘 경쟁에 빠졌다.민주당이 자기네 후보가 단체장으로 당선되는 자치단체부터 초중등 학생에 대한 전면 무상급식 공약을 발표하자, 한나라당은 점진적 확대를 내걸더니 안심이 안 됐던지 보육비 등 지원의 맞불 선심 공포탄을 쏘았다. 무상급식의 재원 대책은 없이 덮어 놓고 전면 실시를 주장하는 야권이나, 오는 2012년부터 유아보육비와 유치원비를 소득 하위 80%까지 전액 지원하겠다는 여권이나 다 허튼 소리다. 각기 소요 예산을 말하긴 하나, 주먹구구식이고 또 예산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것도 없다.선거공약은 진실성이 담겨야 인정된다. 목표와 근거기간 및 방법예산과 재원평가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이를 검증하는 것이 매니페스토 운동이다. 이에 의하면 여권의 보육비 및 유아교육비 전액 지원이나, 야권의 전면 무상급식 실시나 다 공약의 자격이 없다.선거는 이기고 봐야 한다는 것은 야권 인사의 말이다. 여권의 한 책임자는 포퓰리즘이 득표에 먹혀들어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예를 든다. 야권에서는 전면 무상급식은 무상 의무교육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급식은 보육이지 교육은 아니다. 무상 의무교육의 개념대로 하자면, 공짜 밥보다는 학용품을 공짜로 나눠줘야 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를 받아들이기보단 무상급식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대중심리라는 것이다.부자감세란 비판은 이 정권에 대한 민주당의 단골 메뉴다. 한데, 돈 내고 먹을 수 있는 집 아이들까지 전면 무상급식하자는 것은 이를테면 부자급식이다. 부자급식을 위해 다른 예산을 빼돌리는 것은 국민이 손해 보는 것이지만, 이 또한 예산은 알 바 없다는 것이 대중심리라는 것이다. 이런 대중심리의 노림수는 한나라당의 보육비 등 전액 지원 선심 역시 다르지 않다.중우정치다. 체제는 민주주의여도 대중이 선전선동에 넘어가는 포퓰리즘의 득세가 중우정치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치를 타락시켰던 것이 바로 중우정치였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 또한 중우정치가 타락시키고 있다. 정치인만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책임은 국민사회에도 있다. 대중영합주의의 선전선동에 현혹되는 것은 우리 유권자들 책임이다.분배를 탓하는 게 아니다. 사회복지로 구현되는 분배는 성장의 궁극적 목적이다. 그러나 이 목적은 성장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또 물고기를 잡아서 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스스로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복지의 진수다.제나라 환공이 술에 취해 관을 잃은 바람에 체면이 손상됐다. 이래서 관중의 건의에 따라 창고를 열어 백성에게 쌀을 나눠주고, 옥문을 열어 죄수를 풀어주었다. 사흘이 지나자 임금이시여! 왜 관을 또 잃지 않나이까! 하는 노래가 저잣거리에 나돌았다. 후세에 한비자는 관중을 가리켜 소인배로 질타했다.포퓰리즘의 득표는 비록 유권자의 잘못이긴 하나, 이를 악용하는 것은 정치권이다. 여야를 막론한 이런 정치권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인배들이다. 정치인들이 제 돈으로 무상급식을 하는 게 아니고, 사재를 털어 보육비 전액을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다 나랏돈이다. 세금이다. 국민의 세금 가지고 자기돈 선심 쓰듯이 해대는 무책임한 사탕발림 공약은 아편과 같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상대에게 듣기 좋은 잇속말로 솔깃하게 만드는 것이 사기꾼들 수법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개탄했다. 값을 치르지 않고 누리는 유토피아적 주장(선심공약)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재원 조달을 도외시한 공약(公約)의 공약(空約)을 경고했다.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바라기 전에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된다는 것은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존F케네디의 명언이다. 국민사회가 진정 원하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땀 흘릴 수 있는 일자리가 보장되고, 땀의 대가가 헛되지 않길 바란다. 정치권이나 유권자나 표 앞에 비굴하지 않고, 좀 더 당당해야 선거다운 선거를 치를 수가 있다. /임양은 본사주필

정당 축제된 지방선거

지방선거는 지역잔치다. 이런데도 현실은 아니다. 오는 62 지방동시선거는 정치권, 곧 각 정당 축제다. 주객이 뒤바꼈다. 현재 1천33명의 각급 예비후보자들이 뛰고 있다. 도지사 2명교육감 2명도의원 252명교육위원 6명시장군수 148명시군의원 623명 등이다. 교육감이나 교육의원은 정당과 무관하다. 나머지는 각기 소속 정당의 공천에 목을 메고 있다. 공천은 도지사는 각 중앙당, 시장군수는 각당 도지부, 시군 도의원은 선거구 국회의원이 아니면 선거구 위원장의 영향력에 의해 행사된다. 여권은 공천 전쟁 잡음으로 영일이 없고 야권은 선거연대 균열의 소음으로 꽤나 시끄럽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즐긴다. 한나라당은 공천에 본인만이 아니고 배우자의 도덕성까지 검증한다고 큰 소리 친다. 그러나 속으로는 친이나 친박 계보에 그치지 않는 자기사람 챙기기 청탁 등이 충돌하는 등 내부사정이 복잡하다. 나중에 금품수수설이 불거질 공산 또한 없지 않다.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국민참여당 등 야권은 선거연대로 MB 정권을 심판한다면서도 지분권 안배에 이해관계가 엇갈려 와해될 조짐이다. 진보신당은 이미 협의체 탈퇴를 선언했다.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다당제보단 보수대 진보, 진보대 보수의 양대 체제가 바람직하다. 이 점에서 야권의 선거연대는 긍정적이나, 되어가는 모양새는 부정적이다.지방선거는 지방자치를 위한 선거다. 지방자치에 정당이 개입할 입지는 없다. 만약 개입이 허용된다면 지방자치가 아니다. 도지사나 시장군수, 도의원 시군의원의 소속 정당은 간판에 불과하다. 특정 지역의 단체장에 특정 정당이 됐다고 해서 그 정당이 자치사무에 관여하는 게 아니고, 관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방선거에 정당들이 극성인 것은 공천에 간판 팔아먹는 재미 때문이다. 심지어는 교육감 선거까지 그 알량한 정치의 마수를 뻗치고 있다.이번 제5기 지방동시선거를 앞두고 논의됐던 것이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 공천 배제다. 광역단체장과 광역의원도 그렇지만, 특히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은 기실 지방자치 실익과 무관하여 정당 공천제 배제가 사회적 합의 수준으로 거론됐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일축했다. 어느 정당이라고 말 할 것 없이 다 똑같다. 기득권인 공천제를 지켜 지방선거의 정치 흥행화로 정치권을 위한 지방선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작금의 여야 공천은 잇속 싸움이고, 여야의 흥행은 재밋살 없는 코미디 판이다.만약 기초선거만이라도 정당 공천을 없앴다면 62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의 양상이 다를 것이다. 정치권, 즉 정당의 축제가 아닌 명실공히 지역의 축제가 되는 지방선거가 될 것이다. 지방선거는 정당 본위가 아닌 인물위주여야 하는 것이 지방자치 취의에 합치된다. 정당 간판 때문에 아까운 인물이 떨어지는가 하면, 정당 간판 덕으로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병폐가 지방선거의 정당 공천제다.선거 기간이 너무 긴 것도 문제다. 광역단체장은 선거를 120일 전인 2월2일부터, 나머지는 60일에서 90일 전부터 예비후보 등록으로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것은 조기과열의 원인이다. 정식 입후보 등록이 접수되는 것이 5월12일이다. 이에 앞서 수개월 전부터 재미도 없는 정치권의 지방선거 쇼 관람을 강요하는 것은 피로감을 갖게 한다. 정치권은 선거철이 되어 물만난 물고기 떼처럼 신바람이 날지 몰라도, 지역주민들은 구태의 재연에 식상한다.이토록 선거정국을 길게 잡은 것 역시 정치권이 자기네들을 위해서다. 말은 신인들에게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서라지만 아니다. 국회에서 정치권 입맛대로 지방선거의 공천제를 유지하면서, 지방선거의 장기화로 선거정국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여야는 매사에 원수진 것 거럼 다투다가도 정치권 편의를 위한 일엔 죽이 맞아 소리 소문없이 뚝딱 해치우는 데가 국회다.달라져야 한다. 지방자치에 정당 개입이 불가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선거의 정당 개입 또한 불가하다. 다음 지방선거부턴 정당 공천제가 반드시 배제돼야 한다.

낙태, 남성책임론

보건복지가족부가 낙태 금지 캠페인을 벌인다. 생명의 편 의사회는 낙태 시술을 한 의사를 고발한다. 작금의 이런 추세는 정답이 없는 낙태 논란을 또 한 번 생각하게 한다.낙태 시술 의사를 고발하는 생명의 편 의사회 생각은 태아의 생명체 존엄성을 무겁게 보는 것이다. 남매를 둔 주부가 세 번째 아이를 가져 낙태를 하기 위해 산부인과 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화면 진찰에서 나타난 태아의 손발 모양을 보여주며, 이래도 떼겠느냐고 물었다. 화면 속 아이를 본 주부는 모성애가 발동해 차마 뗄 수가 없었다. 하마터면 세상 빛을 못 볼 뻔했던 셋째 아이가 이렇게 해서 태어나 이젠 중학생이다. 인성도 착하고 공부도 잘해 부모의 귀염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고 아찔하다는 것은 그 주부의 말이다. 낙태를 말린 의사를 두고두고 고맙게 여기고 있다. 낙태 시술 고발은 이 점에선 이유가 훌륭하다.그러나 출생이 숙명적으로 불행한 태아가 없지 않다. 미혼모 얘기가 아니다. 미혼모라고 해서 굳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세상이 아니다. 여기서 출생이 숙명적으로 불행한 태아의 구체적 사례를 일일이 들 것 없이, 이의 대부분은 모자보건법상의 낙태 허용에 들지 않아 불법시술로 이어진다. 형법은 불법으로 낙태한 부녀는 1년 이하의 징역, 낙태를 도운 의사 등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문제는 낙태 금지로 인한 불행한 출생의 인생이다. 출생자만이 아니다. 그 어머니도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또 있다. 모자 당사자만도 아니다. 그들의 불행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또한 고려해야 된다.낙태 금지와 관련, 대조되는 두 가지 현상이 있다. 피고인이 설혹 낙태행위가 가족계획의 국가시책에 순응한 행위라고 믿었다 하더라도, 국가 시책에 의한 가족계획은 어디까지나 임신을 사전에 방지하는 피임방법에 의한 것이고, 임신 후의 낙태행위를 용인함이 아니다라는 것은 1965년 11월23일에 있었던 대법원 판례다. 정부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로 산아제한을 하던 때다. 이에 비해 작금의 보건복지가족부가 추진하는 낙태 금지 캠페인은 저출산 대책의 일환이다. 즉 산아제한과는 정반대 개념의 인구 증가를 위한 산아장려인 것이다.한 정부 자료에 의하면 연간 신생아 출생수는 43만여명이며, 낙태 건수는 35만여건으로 81.3%에 이른다. 그런데 이 같은 낙태의 96%가 불법시술이다. 이로 미루어 낙태 금지는 저출산 대책이 되긴 한다. 앞서 말한 태어나선 안 되는 불행한 태아의 통계는 잡기 어렵지만, 이를 감안해도 낙태를 예컨대 50%만 줄여도 연간 신생아 수가 43만여명에서 60만5천여명으로 증가한다.요컨대 인식이 중요하다. 낙태에 대한 찬반은 논하면서도, 정작 모태가 되는 여성의 입장을 간과하는 것은 찬성이든 반대든 간에 짧은 사려다. 태아를 낳고 기르는 것은 아이를 가진 여성의 소임인데도, 낙태 문제에 관한 남성 이기주의가 너무 심하다.어떤 관계의 임신이든 여성 혼자 아이를 갖는 건 아니다. 상대가 있다. 이런데도 낙태의 시비에서 아이를 갖게 만든 남성은 쑥 빠진 채 여성만을 시비의 복판에 세우는 것은 가혹하다. 가령 낙태죄를 처벌하려면 임신부만이 아니고 임신을 시킨 남성도 함께 처벌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 아이를 낳을 여성의 처지는 전혀 고려치 않고 낙태 자체만을 논하는 남성의 이기적 판단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물론 낙태는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원칙이나, 찬반 어느 것이 옳은가 하는 선택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낙태만이 아닌 피임도 죄악으로 볼 수가 있다. 잉태를 방해하는 피임 또한 생명을 거부하는 것으로 섭리에 반하기 때문이다.하지만 피임은 그렇다 쳐도, 정상 가정의 부부 사이에서 갖는 태아는 낙태를 금하자는 것이 틀린 방향은 아니다. 육아와 교육 여건의 개선이 산아장려의 첩경이긴 해도, 아일 지우는 것을 예사로 아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를 고치는 덴 남성들 책임이 크다. 낙태를 하고 안 하고는 여성의 판단이 우선이지만, 이의 판단엔 남성의 책임이 동반돼야 하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임양은 본사주필

바깥세상, 세계를 보라!

세계지도를 보면 화딱지가 난다. 대륙 귀퉁이에 붙은 한반도가 너무 작아보인다. 그나마도 남북으로 두동강 났다. 중국이나 미국처럼 드넓은 국토가 아니다. 하다못해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 가운데서도 우리보다 국토가 광활한 데가 쌔고 쌨다. 지구촌엔 160여 국가가 산다. 우리의 국토 면적은 이 중 아마 중하위권에 들 것이다. 한반도 22만여㎢ 중 남한은 약12만㎢다. 중국의 959만6천900여㎢는 우리의 80배다. 미국은 928만7천800여㎢로 77배다. 일본만도 37만7천400여㎢로 3배가 넘는다.그러나 세계지도를 보면서 자부심도 갖는다. 이토록 작은 국토를 가진 우리나라가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우선 세계 교역량이 수출 3천100억달러, 수입 3천억달러 등 6천억달러 규모로 9위다. 선진통상대국 반열에 올랐다. 경제규모는 국내총생산 9천800억달러로 세계 14위다. 한동안 10위권 진입을 눈앞에 두었다가 밀려 러시아와 순위 다툼을 벌이고 있지만, 세계경제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물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채무가 308조원으로 재정의 건전성이 위협받고 있다. 가구당 가계부채가 평균 4천377만원에 이르러 금융불안의 뇌관이 되고 있다. 이 밖에도 장기외채 등 부정적 지표가 없진 않다. 하지만 긍정적부정적 두 요인은 언제나 순환해가며 병존한다. 긍정적 요인은 키우고, 부정적 요인은 줄이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소임이다.살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사실이다. 생활이 어렵긴 해도 생활 수준은 대체로 전보다 낫다. 발전이 없지 않아 있다. 원인은 결과를 낳고 결과는 또 원인이 된다. 실례를 든다. 국가채무가 급증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무분별한 개발 바람 탓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책임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가계 빚이 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가 길거리 카드 모집까지 해가며 내수 진작을 무작정 부추긴 데서 비롯됐다. 그 이전에는 김영삼 정부의 환란으로 내수가 동결됐었다.그러나 누굴 애써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탓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 소중한 경험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안타까운 것은 집안 싸움이 지나치게 빗나가고 있는 사실이다. 아마 우리만큼 정치를 좋아하는 나라가 없을 것이다. 실물정치의 품질은 정작 조악하면서도 매사가 정치적이다. 중앙지방 정치인들은 말할 것 없고 정치 지망생을 비롯한 그 무리들 또한 정치병 일색의 잘못된 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 여야 내분의 갈등이 지방 맹종자들까지 휩싸여 죽은 정치만을 일삼는다. 정치를 위한 정치가 죽은 정치다. 정치인을 위한 논쟁, 정치인을 위한 지방선거는 나라 살림이나 민생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 때문에 투자는 위축되고 투기만 늘어간다. 정치를 너무 좋아하는 정치병 환자들로 인해 나라가 골병 들 지경이다. 정치는 경쟁이고 경쟁은 싸움이다. 싸움이 불가피하지만 죽은 정치 싸움으로 얻을 수 있는 민심은 없다.세계지도를 펴 본다. 대저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얼마나 더 싸움질로 소중한 시일을 허비해야 하는 것인가, 정치꾼들의 죄악이 너무 크다. 국민들은 왜 밴쿠버 영웅들을 그토록 뜨겁게 환영하고, 김연아 신드롬이 온 나라에 퍼졌을까, 물론 선수들이 잘 한 덕분이지만,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목말랐던 국민사회가 돌파구를 찾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대국이다. 이런 러시아가 우리 선수들과 비교가 안 되는 밴쿠버 성적 부진에 대통령이 노한 끝에 체육회 간부들의 일괄 사표를 요구했다. 우린 죽은 정치를 일삼는 정치인들의 일괄 사표를 요구해야 할 판이다.세계지도상의 우리 국토는 손가락 하나로 짚어도 될 정도로 작다. 이런 가운데서 두각을 드러낸 세계 속의 한국은 국민사회의 저력이다. 이 추진 동력을 꺼뜨리지 않고 드높이기 위해서는 세계를 보아야 한다. 나라 밖의 나라 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하다. 우물 안 개구리 싸움 같은 짓은 후대에 돌이킬 수 없는 죄업이다. 세계를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임양은 본사주필

무상급식 ‘주술’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고 했다. 당장은 돈을 안 내는 심산 때문이다. 하물며 공짜임에야, 공짜면 양잿물도 먹는다 했으니, 무상급식 유혹을 그럴싸하게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알고 보면 학교 공짜급식 주장은 허구다.무상급식을 말하는 사람들은 초등학교 5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고 한다. 도내 초등학교 56학년은 30만8천700여명이다. 이들 모두에게 무상급식을 확대하는 데 드는 돈은 연간 1천200억원이다. 어찌 하필이면 56학년뿐인가, 초등학생 전원에게 확대해야 형평에 맞다고 하면, 차츰 그렇게 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도내 초등학생 84만2천200여명 전원 무상급식에 소요되는 돈이 또 연간 3천400억원이다. 어찌 초등학교만인가, 중고등학생은 학생이 아닌가, 이들의 전원 무상급식을 물으면, 장차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중고생 94만1천100여명에게 드는 돈이 연간 4천800억원이다. 결국 도내 초중고생 전원 무상급식 소요 예산이 자그마치 연간 8천200억원이다.초중고생 전원 무상급식이 가능하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 무상급식을 마치 저들이 면허증 딴 것처럼 주창하는 사람들도, 내심으로는 믿지 않을 것이다. 아니다. 그들은 초등학생 전원은 고사하고, 56학년 전원 무상급식 확대도 사실은 어려울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왜 간판 메뉴처럼 떠드는가, 대중 영합주의 심리다. 무상급식 확대가 되고 안 되고는 정작 별문제다. 꼴통들 반대로 안 됐다고 역공하는 것만으로도, 대중영합에 성공했다고 보는 그들이다. 전형적인 선전선동 정치다.그러나 무상급식 확대는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점심을 굶는 학생이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런 학생은 없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하위계층 학생들에겐 저들이 걱정 안 해도 지원급식을 한다. 이 혜택을 받는 학생들이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전원 확대해야 한다지만, 근거 없는 맹랑한 소리다. 오히려 그런 말하는 사람들의 맹랑한 소리로 학생 입장을 어렵게 할 수 있지만, 지원급식 받는 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전원 무상급식은 초등학생의 경우, 4만원 정도 되는 급식비를 낼 수 있는 집 학생들까지 공짜로 하자는 것인데 역평등이다. 당장 56학년 학생 모두에게 무상급식을 하려고 해도 노후 시설 개선도서 구입실험 실습비 등을 비롯한 제반 예산 항목에서 돈을 갉아 모으고도 모자라, 자치단체에 손을 내미는 형편이다. 자치단체인들 무슨 예산이 많다고 살림살이가 다른 교육청에 뭉칫돈을 주겠는가, 이래서 자치단체 지원 없이 자체 예산으로 무상급식을 확대하자면 기존의 다른 항목 예산에서 더더 깎아내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게 문제다.학교는 밥 먹으려고 가는 데가 아니고 공부하러 가는 곳이다. 경기도교육청이 가장 힘써야 하는 것은 공짜밥 안 먹어도 되는 학생들에게 공짜밥을 억지로 먹이는 일보다는 학생들의 수업환경을 개선하는 일이다. 이런데도 일을 거꾸로 벌려 수업환경 개선은 소홀히 하고 공짜밥 먹이는 데만 돈을 써대겠다는 건, 교육예산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학생을 진정으로 위하는 게 아니다. 학생에게 먹이는 공짜밥은 밥이 아닌, 즉 사탕발림 독소인 것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의 교육인적자원부에서도 학교급식은 학부모 부담이 원칙이라고 밝힌 바 있다.오는 62지방동시선거에서 무상급식을 금과옥조처럼 인기품목 삼아 내세우겠다는 정당이 있는 모양이지만 틀렸다. 무상급식은 조삼모사보다 더 심한 농간이다. 대중을 우습게 보아선 안 된다. 무책임한 선전선동의 중우정치 농간에 넘어갈 대중사회가 아니다. 무상급식은 핸드폰을 바꾸면 그냥 준다는 길거리 공짜폰 장사와 같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나, 통신요금으로 덮어 씌우는 것이 공짜폰이다. 공짜급식 확대도 공짜가 아니다. 열악한 수업환경 개선을 가로막는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 공짜급식이다.우린 북녘처럼 쌀밥에 고깃국을 내세워야 하는 사회가 아니다. 멀쩡한 학생들, 학부모에게 무상급식 주술을 걸고자 하는 족속들 생각이 마치 북녘 사람들 같다. 잔꾀를 일삼는 정치는 성공을 못한다./임양은 본사주필

박근혜의 ‘착각’

한국미래연합을 기억하는 독자는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1차 가출 시 만든 6개월 단명의 미니 정당이라고 하면 기억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무렵의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은 사사건건 맞서는 박근혜에게 무척이나 시달림을 받았다. 박근혜가 한나라당에 복당한 것은 한국미래연합 대표 최고위원을 2002년 5월부터 그해 11월까지 지낸 이듬해다.지금 박근혜에게 무던히도 애를 먹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 이명박이다.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립, 원안을 고수하는 박근혜의 고집은 객관적으로 보아 분당이 우려될 정도다. 하지만 1차 가출에 실패한 그가 또 탈당하는 2차 가출의 실패를 거듭하진 않을 것이다. 친이계의 주류 역시 친박계가 아무리 반당행위를 해도, 제 발로 나가면 또 몰라도 분당의 빌미를 주는 제명 등은 고려치 않을 것이다.사정이 그렇다 보니 콩가루 집안이 됐다. 한 지붕 밑 두 집 살림의 한나라당 내분은 마치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기 직전의 구 민주당 신구파 싸움을 연상케 한다. 당내 분쟁으로 영일이 없었던 구 민주당은 제2공화국의 집권당이었다. 이를 방불케 하는 한나라당 내분의 주역이 박근혜인 것 또한 아이러니컬하다. 청와대는 박근혜에게 대통령과 언제든 가질 수 있는 회동의 길을 열어놨지만, 지금 같아서는 만난들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 않다.당내 계보는 어느 나라 정당이든 다 있다. 계보에 따른 이견도 있다. 그러나 계보 간 다툼이 마치 원수 진 것 처럼, 다른 당과의 다툼보다 더 치열한 정당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집권당인 대통령의 시책을 야당보다 앞장서 반기를 들어 공격하는 당내 계보는 더더욱이 없다. 야권이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 국회 통과를 친박계의 한나라당 이탈표를 노려 벼르는 지경이다. 한나라당 내분에 친박계가 이토록 허점을 보였다면 그것은 박근혜의 책임이다. 일찍이 이명박의 포용력 빈곤을 탓했다. 이는 지금 역시 다를바 없지만, 박근혜 또한 더 잘못된 근원적 결함이 심하다.박근혜는 아직도 이명박을 당내 경선 후보로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심리학으로 말하면 악마 효과의 현상이다. 한 번 밉게 보면 다 밉게 보는 것이다. 이러므로 인해 초래되는 것이 또 외적귀인 심리다. 잘 안되는 것은 다 남의 탓으로 돌린다. 그는 경선 때 줄곧 이명박의 본선 필패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말과는 달리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대통령으로 대하고 싶지 않은 잠재적 심리에 스스로가 속박돼 있다.세종시 문제는 이제 국민적 피로감에 싸였다. 한나라당은 세종시 수정을 당론 변경이든 당론 채택이든 간에 빨리 결론을 내려야 할 때다. 만약 의원총회에서 통과가 안 되면 접어 둬야 한다. 대신, 수도분할의 원안도 대통령 임기 동안 이행치 않으면 된다. 이와는 달리 의원총회에서 수정안이 통과되면 국회에서 행동을 같이 하는 것이 정당정치 본연의 자세다.한데도, 의원총회조차 참석하지 않겠다는 박근혜의 태도는 아주 잘못됐다. 그래도 참석게 하기 위해선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를 의결정족수로 하는 당론 채택보다는, 가급적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을 의결정족수로 하는 당론 변경안으로 처리하는 것이 떳떳하다. 전자는 친이계만으로도 가능하지만, 후자는 친박계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박근혜가 이도 저도 마다한다면 조직인으로서 취할 도리가 아니다. 당론 결정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 그가 보이는 일련의 트러블 메이커 양상을 항간에서는 공주병 중독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믿고 싶진 않으나 알아둬야 할 분명한 사실은 있다. 이명박의 실패가 자신의 차기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서는 큰 오산이다. 이명박이 실패하면 박근혜의 차기도 있을 수 없다. 이명박에게 맞서면 당의 인기는 떨어져도 자신의 지지도는 올라갈 것으로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착각이다. 이런 착각이 수준의 한계라면 차기의 자질이 의심된다는 것이 세간의 평판이다. /임양은 본사주필

배신의 계절

선거는 자유민주주의 기본 수단이다. 선거 없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취약점도 있다. 가장 고약한 풍습은 벼슬하겠다고 선거운동하며 다투는 일이다란 것은 키케로(BC 106~43)의 말이다. 로마의 정치가며 철학가며 웅변가다. 그는 의무론에서 그같이 말했다. 의무론은 윤리학적 도덕의 근원을 의무에 두는 학설이다. 이런 키케로도 제3차 삼두정치 수립 후 안토니우스와의 대립 끝에 추방당해 살해됐다.연례적 선거가 끝나면 노예제도가 다시 시작된다고 한 것은 J애덤스(1860~1935)의 말이다. 미국의 여성 여권운동가로 빈민구제운동에 힘썼다. 1931년 노벨평화상을 탔다. 저서 정부론에서 선거 땐 대중에게 굽실거리고, 끝나면 대중 위에 군림하는 선거직 사람들을 그같이 꼬집었다.가장 적게 공약하는 자가 가장 적게 실망시킬 것이다란 것은 B바루크(1870~1965)의 익살이다. 미국의 정치가며 재정가다. 제2차대전후 미소 분쟁을 가리켜 냉전(cold war)이란 말을 그가 처음으로 썼다. 정치인들은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놔준다고 한다는 것은 N흐루시초프(1894~1971)의 비아냥이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일 적에 미국 뉴욕서 가진 기자회견 시 서구의 민주주의를 빗대어 그같이 조롱했다.A링컨(1821~1881)은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는 말로 선거를 예찬했고 지당한 말이지만, 앞서 예를 든 험담 또한 측면적 일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오는 62 지방동시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각급 선거의 입후보자들이 마치 비온 뒤 죽순이 솟는 것처럼 떼거리로 여기 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날마다 자고 나면 출마의 변이 사태 난다. 앞으로 더할 것이다. 각급 선거구에서 인재를 자처하는 족속이 넘친다.그러나 각급 선거의 선거구마다 얽히고설킨 그 많은 입후보 사연 속엔 배신의 함정이 숨어 있는 것을 본다.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 배신이다. 신의는 또 믿음과 의리다. 의리는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도리다.입후보 경합자들끼리 서로가 상대를 말해 배신했다고 한다. 어제의 적군이 오늘은 우군이 되고, 우군이 적군이 되기도 한다. 기껏 키워놨더니 이젠 대든다고 하는가 하면, 내 덕분에 네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도 한다. 약속을 어긴다고 하면, 반대로 약속을 정작 어긴 것은 어겼다는 상대라고 되레 공박한다. 각급 선거의 입후보군만도 아니다. 입후보자나 후보예정자들 따라 이리저리 쏠려다니는 선거족들끼리도 갈래갈래로 갈려 상대편을 배신자로 몰아댄다.배신의 계절이다. 62 지방동시선거가 배신의 계절인 것은 특히 지역 연고가 강하게 작용되는 탓이다. 사람이 어찌 도덕군자처럼 흠집 없이 살 수 있을까마는 선거판에선 더 한다. 배신의 논쟁에서 자유로운 입후보자는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문제는 과연 그가 배신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냐는 것이다. 지방선거는 지방비로 치른다. 즉 지방세를 내는 지역주민이 부담한다. 입후보자의 선거운동에서 법정비용 한도액은 지방비로 보전해준다. 바꿔 말하면 어중이 떠중이 같은 입후보자들로 지방세를 축내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입후보는 자유겠지만, 착각도 자유라는 속된 말이 있다. 배신의 가치가 없는 입후보 착각은 선거판만 혼탁시킨다.가장 고약한 풍습은 벼슬하겠다고 선거운동하고 다투는 일이라는 것, 연례적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제도가 시작된다는 것, 가장 적게 공약하는 자가 가장 적게 실망시킬 것이다라는 것,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놔준다고 한다는 것 등의 선거판 역기능이 거의 입후보의 순기능을 지니지 못한 족속들로 인해 비롯된다.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서민층이다. 서민들은 지금 먹고 살기에 바쁘다.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 입장에선, 선거판 사람들 이야기가 아직은 사치스럽다. 입후보족들은 배신의 계절에서 공연히 서민층의 화만 돋우기보단, 자신이 과연 입후보의 가치가 있는가를 먼저 돌아볼 줄 아는 자제가 있어야 한다./임양은 본사주필

수원·화성·오산 ‘통합시’

수원시장을 면담하겠다며, 화성시민 십 수명이 수원시청을 들렀다. 통합시에 찬성하는 이들은 화성시장을 만나려고 했으나, 만나주지 않아 할수 없이 수원시청을 찾았노라고 했다. 화성시장인들 어찌 안 만나주겠나, 아마 무슨 일이 있어 스케줄이 맞지 않았을 것 같다. 난감한 것은 수원시청 시장 비서실이었을 것이다. 한두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나중에 화성시쪽 소식 통에 의하면 그 사람들, 자기네가 사는 아파트값 올리려고 통합을 찬성하는 사람들이다라며, 좀 깎아내리는 투의 말이 들렸다. 아파트 주민인 것은 맞는듯 하다. 공식 활동에 들어간 화성지역 통합추진위원회가 아파트연합회와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됐다.한동안 뜸했던 수원화성오산시 통합론이 성남광주하남시 통합결의로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수원시의회는 이미 오래 전에 통합결의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는 데 반해 화성시의회와 오산시의회는 반대를 만장일치로 결의 해놓고 있다. 그런데 이런 화성오산시의회의 통합 반대에도, 찬성을 추진하는 시민들의 반발이 세차다. 반대하는 사람들요? 시단위로 감투쓸 자릴 빼앗길까봐 반대하는 것 아닙니까, 반대 현수막도 죄다 관변에서 붙인겁니다 통합을 추진하는 시민들 말이다. 물론 관변으로 불리운 화성오산시쪽에서는 부인했다.통합을 해야 지역경제가 3개지역의 상승작용으로 더 발전한다고 한다. 통합을 하면 지역경제가 상호이질로 저해된다고도 한다. 통합하면 화성오산은 수원의 변방이 된다고 한다. 통합하면 화성오산의 세가 새수원의 변화를 일으킨다고도 한다. 찬성하는 의견은 주로 일반 시민층인 데 비해 반대하는 의견은 대부분이 자치단체 주변의 지도층이다. 이 같은 찬반의 엇갈림을 전 시민 의사로 확인하는 방법은 주민투표다. 한데, 행정안전부의 통합시 추진 지침에 주민투표가 빠진 것은 흠결이다.어떻든 분명한 것은 수원화성오산은 원래가 한덩어리라는 사실이다. 매홀(買忽고구려) 수성(水城통일신라 경덕왕 16AD 737) 수주(水州고려 태조2 AD920) 수원(水原고려 충선왕2 AD 1310) 등으로 이름은 바뀌었어도 언제나 한 지역이었다. 조선 정조 18년(1794년) 화성 축성과 함께 화성행궁을 지어 신도시로 오늘의 수원 사대문 시가지를 조성하고, 사도세자 능침을 화성으로 옮길 당시에도 수원화성오산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무렵 고을을 다스린 수원 읍치는 지금의 화성 태안이다. 수원군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되면서 수원군의 나머지 읍면이 화성군이 된 게 1949년 8월15일이다. 오산시는 1989년 1월 화성군 오산읍이 시로 승격됐다.(이 무렵 평택군에서 시로 승격된 송탄시는 이미 10여년전 평택시군 통합시 환원됐다)이처럼 한 덩어리인 것은 뿌리가 같은 역사적 정서의 동질성을 의미한다. 지금이라고 다를바 없다. 수원화성오산시의 구분은 다분히 작위적이다. 내륙과 임해가 앙상블을 이루는 환상적 도시문화가 옛부터 전해진 수원의 정통 명맥이다. 수원화성오산 통합시가 되면 전국 최대 지방도시인 인구 175만명이 되기 때문에 통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것은 부수적인 문제다. 합치는 게 순리이기 때문에 합치는 게 원칙이다.다만 통합시가 되면 거대도시로 경기도와 관계 설정이 모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경기도는 이 점에서 통합시 추진을 마뜩찮게 보는 시선이지만, 자치단체의 통합 추세는 주민 이익 창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류다. 통합시와 광역단체간의 분명한 관계 설정은 행정안전부가 후속 입법으로 시급히 보완해야 할 과제다.글 머리를 다시 처음으로 돌려 통합을 적극 추진하는 아파트 주민들 입장을 생각해본다. 화성시는 동탄신도시 말고도 아파트단지가 임립해 있다. 반대하는 측이 아파트값을 올리려고 통합을 찬성한다는 비아냥 거림은 모순이다. 아파트값이 왜 오르겠는가, 지역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통합이 지역발전을 저해한다고 한 반대 이유는 설득력을 잃는다. 수원화성오산은 동일생활권이다. 수원에 살면서 화성에 연고가 있고, 화성에 살면서 수원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벼슬 자리나 감투는 스쳐가고, 지역사회는 영원하다. 지역의 미래를 멀리 보고, 크게 보는 안목을 갖는 게 옳지 않을까 여겨진다. /임양은 본사 주필

끽연의 ‘역설’

하루에 담배를 두 갑 태운다. 애연가 소린 시대 착오다. 사회적 천덕꾸러기가 된 게 담배 피우는 사람이다. 사무실은 물론이고 개방된 곳에서도 공공장소 같으면 담배에 불을 붙이지 못한다. 예를 들면 전철 역구내 같은 데다. 손님은 왕이라는데 담배를 꺼내들면 야단치는 접객업소가 있다. 흡연을 야만시하는 사회 정서가 점점 노골화한다.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엔 과태료가 붙는다지만, 과태료가 겁나서 안 피우는 게 아니다. 금연 공간의 박탈, 금연 풍조의 확산이 사회적 합의로 두터워져 가는 눈총 때문이다.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웠던 적이 있다. 그것도 당당하게 피웠다. 버스 좌석엔 으레 재떨이가 붙었으므로 끽연은 권리였던 것이다. 가령, 담배를 안 태우는 여성이 몰려드는 담배 연기가 싫어 손을 내저으며 인상을 찌푸려도, 그건 그 사람의 사정으로 철저히 무시됐었다. 지금 만약 버스 안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다가는 승객들에게 치도곤을 당할 것이다. 기차도 금연칸 한 량을 따로 두고 나머지는 끽연칸이었던 것이 바뀌어 흡연칸 한 량 없이 모두 금연칸이 돼버렸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미래 건강사회에 대비한 효과적인 담배가격 정책 방향이란 보고서가 있다. 이에 따르면 담배로 인한 화재간접흡연작업 손실액 등 흡연의 사회경제적 연간 비용이 5조6천396억원에 이른다. 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질병 사망률이 훨씬 높게 조사된 것은 더 말 할 것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 등 유럽의 담뱃값 인상을 통한 소비 억제책 사례를 들어 지금의 갑당 2천500원에서 두 배 반 정도로 올린 6천119원을 제시한 점이다.생각하면 담배소비세가 지방세에 크게 기여한다. 세원 창출에 푸대접받는 게 억울한 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식경제부 산하 담배인삼공사는 흡연을 조장하고, 보건복지부는 금연을 권장하는 정책 모순 또한 아니꼽다. 그럼, 국민 건강을 해치는 담배를 만들어 판 정부는 뭣이냐는 의문이 성립된다. 예컨대 담배로 인해 폐암에 걸린 사람 같으면 원인 물질인 담배를 전매품으로 판 정부의 유발 책임을 물을 수가 있다. 어떻든 담배에 이로운 것은 없다. 백해무익하다. 이토록 피우기 치사하고, 아니꼽고, 해로운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니코틴 중독 탓이다. 이래서 끊지 못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끊지 않는 이유도 있다.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끽연의 천대를 받다 보니 새로운 발견을 터득한다. 이러므로 하여 끽연의 사회적 천대를 은근히 음미하는 것이다. 사실, 언제부턴진 확실히 몰라도 담배를 거부하는 혐연권의 사회적 성숙은 놀라운 변화다. 위대한 발전이다. 한 번은 어느 모임에서 담뱃갑을 꺼내들기가 바쁘게 옆사람이 흡연이 대접받기가 어렵지요? 하는 것이다. 이런 수모를 받고 상대에게 빙그레 웃어 보였다고 하면 멍청이라고 하겠지만, 나름대로의 연유가 있다. 혐연권의 놀라운 사회적 성숙이 그 사람으로 인해 거듭 확인된 사실이 반가웠기 때문이다.담배 연기를 추방하는 이런 사회적 저력 같으면 우리도 앞으로 얼마든지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부패가 없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가능하다. 정치경제문화 분야도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만, 알고 보면 사회의 숙련도가 반대로 정치경제문화를 이끈다. 끽연을 혐오시하는 사회적 합의 의식이 정치경제문화로 확산돼 오순도순 살기 좋은 국가사회로 거듭나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가 달라져야 된다. 담배에 국한하지 않는 혐연권 같은 공중 의식의 변화가 사회 전반으로 파급돼야 한다.행복한 사회가 돼야 행복한 나라가 된다. 담배 괄시의 보편화 저력은 행복한 사회의 불씨다. 이 불씨가 꺼지지 않고 더 활활 타오르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담배를 피워 홀대를 받으면서도, 되레 홀대를 반기는 이유가 이에 있다. 한마디만 더 한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은 담배를 끊길 당부한다./임양은 본사 주필

제멋대로 ‘판결’

판사가 판결하는 재판은 판사의 양심으로 한다. 민사재판도 이렇지만 민사재판은 판결보다는 소송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 간에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화해 성립을 가장 좋은 재판으로 친다. 해서, 판사의 양심은 특히 형사재판에서 크게 작용된다.판사가 판결하는 재판은 또 판사의 양식으로 한다. 예컨대 교양지식이 없는 판사의 재판은 기계적이다. 판사가 판결하는 재판은 또 판사의 인성에 좌우된다. 타고난 성정, 어릴 적 성장 과정, 사물의 체험 및 경륜, 인생관 등으로 형성된 것이 판사의 인성이다.이럼으로 양심이 삐뚤어지거나 양식이 좁거나 인성이 삐딱한 사람의 판사는 판결 또한 삐뚤어지고 삐딱한 협량스런 판결을 낸다. 이를테면 제멋대로 판결이다. 재판은 법률과 법리에 따라 하는 것이지만, 판결 이유는 판사가 찍어다 붙이기에 달렸다.제멋대로 판결이 상급심이나 대법원에서 심리 미진, 법리 오인 등으로 깨져도 판사는 아무 책임이 없다. 재판의 자유심증주의 독립성으로 신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자유심증주의는 사실 관계의 인정, 증거 능력 유무, 유무죄 판단이나 형량 결정 등을 판사의 심증에 일임하는 것이다. 즉 판사가 맘 먹기에 달렸다. 검사가 아무리 유죄 증거를 내놔도 판사가 아니라고 말하면 그만이고, 피고인이 아무리 무죄 증거를 내놔도 판사가 아니라면 이도 그만이다. 기소장의 사실 관계 역시 판사가 죄가 된다면 죄가 되고, 죄가 안 된다면 죄가 안 되는 작심 여하에 달렸다.기교재판이란 말이 있다. 사실심리와 증거조사 결과에 따라 판결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고, 맘속에 이미 판결, 즉 결론을 내리고 재판을 하는 것이 기교재판이다. 이는 유무죄 간에 판결문의 법리는 얼마든지 왜곡이 가능하지만, 왜곡했다고 하지 않는다. 자유심증주의에 입각한 관점에서 그렇게 봤다고 하면 이 역시 그만이다. 자유심증주의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중세기적 법정증거주의의 기계식 재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문제는 공유화되지 못한 심증의 사유화로 즉, 남용이다.인구는 별로 늘지 않는데 사건은 폭증한다. 현대생활이 복잡 다양해진 탓이다. 판사들도 많아졌다. 내가 법원에 나갈 땐 어느 법원의 부장판사라고 하면 만난 적은 없어도 이름은 다 알고, 다른 지역 평판사들도 알거나 알 만한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같은 판사들끼리도 생판 모르는 판사들이 수두룩하다. 해마다 사법시험 합격자를 무더기로 내고 새내기 판사도 100명 안팎을 임관한다. 판사 홍수시대다. 이에 자질론의 의구심이 대두되지만, 검증할 뚜렷한 방안이 있지 않다.이러한 가운데 형사단독판사제의 법원 조직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30대 전후에 인생살이를 알면 과연 얼마나 알까, 아직은 인생 견습의 나이다. 이런 판사들이 배석판사가 아닌 단독판사로 내리는 판결에 독단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재판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면 뭘 모르는 소리다. 여과된 인생 경험의 성숙이 갖는 심증 형성과 인생 부지의 미숙이 갖는 심증 형성은 판이하다.판사의 판결은 상식의 법제화다. 예상 밖의 판결과 제멋대로 판결은 구분된다. 사실심리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실체적 진실의 사실 관계가 드러나서 나오는 판결은 예상 밖의 판결이어도 상식에 합치된다. 그러나 실체적 진실의 변화는 없이 자의적으로 내리는 제멋대로 판결은 상식에 위배된다. 판결문에 고도의 전문 용어를 구사한다 해서 판결이 사회적 통념이나 상규를 위배하고, 공서양속을 준수해야 하는 상식을 넘어설 수는 없다. 제멋대로 판결의 용어 기교는 궤변이다.국회의장실에 난입한 민노당 당직자들을 형사단독판사가 공소기각 판결을 한 데 이어 역시 또 다른 형사단독판사가 내린 시국선언교사 무죄 판결로 꽤나 시끄럽다.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다만 판사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있다. 재판은 양심과 양식으로 하고, 판결에 인성이 따른다는 말을 부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국민사회는 법원이 신뢰를 보여줄 때 법원을 신뢰한다. / 임양은 칼럼

人, 행복의 조건

사람인 자 한문의 人은 서로 기대는 형상이다. 서로가 의지하고 산다는 뜻이다. 이 상형문자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공동체사회의 구성원임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사람은 또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처지와 생각이 다른 경우가 많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유유상종으로 편을 가른다.하지만 편을 갈라도 역시 사람살이다. 사람은 서로 의지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편도 상대편을 존중해야 자기 편 또한 존중받는다. 개인이나 편이나 이처럼 상대를 인정하는 가운데 피차가 존재하는 것이 우리다. 우리의 개념엔 나나 내 편만이 아니라, 너와 네 편도 포함된다.과거 왕조사회에서도 여러 형태의 공동체사회가 있었다. 향약은 권선징악을 윤리로 삼은 고전적 지방자치다. 지역의 향반들이 모이는 향회에서 좌수와 별감 등 임원을 선출했다. 고을 사또의 지방행정에 영향을 미친 이들의 모임이 비록 양반계층에서 주도되긴 했으나 공동체사회의 형성이었다.이에 비해 두레는 고을 민초들의 공동체사회다. 조선 성종시대에 학자로 대제학을 지낸 성현이 쓴 수필집 격의 용재총화는 두레를 이렇게 전한다. 대체로 이웃의 천민들끼리 회합을 갖는데 적으면 일곱에서 아홉명이요, 많으면 혹 백여명이 되어 매월 돌아가며 술을 마시고, 상을 당한 자가 있으면 같은 상여꾼들끼리 상복을 마련하거나 관을 준비하고 음식을 마련해 가며 무덤까지 만들어 주니 참으로 좋은 일이다.동네 구장에게 마을 사람들이 거둬 준 성미벼는 근대 농촌사회의 상부상조다. 면사무소를 들락거리며 동네 일을 보는 구장에게 해마다 가을걷이 때면 집집마다 벼 한 말씩을 거둬 한 해 동안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의 정표로 전하곤 했다. 이 당시 구장은 동네 사람들의 시비를 중재하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다.구장이 이장으로 바뀐 현대 농촌사회 들어 없어진 줄 알았던 성미벼 풍습이 양평가평여주군 등 농촌에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은 미풍양속이다. 다만 벼 한 말이 현금 2만~3만원으로 바뀌고, 성미벼도 마을세로 이름이 바뀐 것은 세월 탓일 것이다. 그런데 외지에서 들어가 사는 사람들이 마을세란 근거가 없어 안 내겠다고 야단인 모양이다. 편의상 부르는 이름이 마을세지 누가 조세법정주의로 정한 세금이라 했겠나, 그래도 성미벼에 이어진 마을세가 농촌사회의 오랜 전통이고 보면 관습법의 일종으로 그곳에서 살려면 따르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잘은 몰라도 전원주택을 지었거나 땅 장사를 위해 농촌에 들어가 사는 부자들이 이장이며 반장 그리고 새마을지도자 등이 활동비로 쓰는 몇 푼의 마을세를 안 내겠다고 버티는 것은 정말 째째하다.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1위에 꼽히는 덴마크는 인구가 불과 600만명을 좀 넘는다. 미국프랑스중국처럼 대국도 아니다. 유럽 서북부 유틀란드반도와 섬으로 된 국토 면적이 4만3천68㎢로 남한의 3분의 1보다 조금 더 넓다. 물가도 높다. 택시비가 국내 모범택시보다 비싸다. 월급의 절반을 세금으로 뗀다. 이런데 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을까, 예컨대 유치원부터 대학 졸업까지 모두 공짜다. 잔병이든 큰 병이든 어느 병원에서나 역시 공짜로 치료해 준다.그러나 이만으로 행복지수 세계 1위의 나라로 꼽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생활이 한마디로 행복감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 국민들은 일상생활의 범사를 모두 고맙게 생각하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긴다. 그들의 건전한 정신이 오늘날 건강한 국민생활을 누리는 결과를 낳았다. 남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가정교육에서부터 학교교육, 사회교육에 이르기까지 일관하는 국민생활의 철칙이다. 해서, 남을 존중하는 사회적 풍토가 뿌리내려, 나도 남에게 존중받는 공동체사회가 형성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된 것이다.남을 존중치 않는 것은 마을세를 거부하는 졸부만이 아니다. 정치권에 횡행하는 결사반대는 상대를 부인하는 소리다. 정치권이 매사에 이렇다 보니 국민사회도 나만 옳다는 떼거지가 판친다. 우린 지금 옛날의 향약보다 못한 정치, 두레보다 못한 사회에 살고 있다. 서로 기대는 모양의 사람인 자는 개인만이 아니고, 공동체사회 역시 거역할 수 없는 순리다. 순리는 행복의 길이고, 역리는 행복과 거리가 멀다./임양은 주필

MB, 매력이 없다

이명박(MB) 대통령이 취임 3년차 되는 해다. 집권의 가속력이 붙어 가장 활발한 국정을 수행할 때다. 그런데 아직은 시원시원한 맛이 없다. 그를 보면 답답한 느낌을 받는다는 사람이 많다. 지지하는 사람들 입에서도 이런 말이 나온다.사실 MB 같은 대통령은 없다. 개인 재산 135억원 상당을 사회에 내놨다. 대통령 연봉 1억3천만원 또한 이웃돕기에 쓴다. 일찍이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한데도, 국민사회의 반응은 별로 감격하는 기색이 없다. 저잣거리에서 불쑥 떡볶이를 사먹어 경호원들을 애먹이고,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배추장사 할머니 목에 자신이 둘렀던 목도리를 벗어 감아주고, 욕쟁이 할머니 집에 들려 밥장사가 잘되는가 살피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같은 친서민 행보에도 역시 국민사회의 표정은 덤덤하다.흔히 진정성을 말하지만 쇼는 아니다. 재산과 봉급을 송두리째 내놓은 마당에 더 이상 뭣을 노리는 가식은 필요하지 않다. 다만 인기를 의식한 것은 맞겠지만, 서민층에 다가서려는 노력에 진정성이 없다 할 순 없다.매력이 없는 것이 MB의 취약점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치솟았던 최고경영자(CEO)의 입지전적 매력을 대통령이 된 후 잃었다. 물론 국정 운영과 기업 경영은 다르다. 아쉬운 것은 대통령으로 변화한 자신의 이미지에 새로운 모델 확립이 미진했다는 점이다.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란 것은 오래된 얘기다. 인간생활은 인식과 관념의 양면이 있다. 인식은 이성적이고 관념은 정서적이다. 물론 이성의 지배를 받지만, 이를 넘어 정서의 지배를 받는 측면도 없지 않은 게 인간생활이다. MB는 이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이성적으로 설득할 수 없는 것을 정서적으로 승복하게 할 수 있는 게 인간인 것이다. 반면에 이성적으로는 공감하면서도 정서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것 역시 인간이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받는 것 없이 이쁜 사람이 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만약에 주는 것 없이 미운 대상이 되어선 국민의 불행이다.예를 들어 이명박은 무조건 싫고, 노무현은 무작정 좋다고 한다면, 이는 이성적 인식이 아닌 정서적 관념이다. 대통령 직위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거액을 수뢰한 이의 죽음에, 그래도 좋다고 울부짖는 그들의 정서를 이성적으로 설복하기란 어렵다. 반대로 이명박은 모든 재산을 내놨어도, 하는 일마다 트집 잡는 거부감의 정서 또한 마찬가지로 이성적으로 설득하기가 힘들다.임기 중에 대운하는 불가능하다며 대운하를 안 하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해도 4대강 정비를 대운하 공사라고 우기고, 중도실용의 친서민정책에도 부자들만을 위하는 정부란 소릴 이래서 듣는다.MB가 독자적 매력과 민중적 공감의 정서를 갖는 길은 그에게 달렸다. 물론 지지도가 낮은 건 아니다. 뚜렷한 실정을 저지른 것도 없다. 하지만 국민사회와 정서적 공감대 형성을 돈후하게 다지는 것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이를 위해 충고할 것은 MB 자신이 정치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를 혐오시하여 자신은 정치인이 아니라고 한 그의 생각은 국정에 걸림돌이 된 재앙이다. 대통령이야말로 정치의 달인이 돼야 할 직분을 거부한다고 하여 정치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되레 일만 더 꼬이게 만든다. 오늘날 당 안팎 문제인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가 이렇고,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의 관계가 이에 연유한다. 정치엔 상대가 있어 혼자만 잘한다고 잘되는 게 아님을 안다. 하지만 대통령은 정국을 주도할 책임이 있다. 집권여당 대표가 따로 있다고 해서 방임하기보단, 나서야 할 땐 나서야 된다. 한국적 삼류정치를 선진국 수준의 일류정치로 만들기 위해서도 정치에 소극적인 자세를 버려야 한다.정치는 청와대 초청이나 오찬회동 등이 전부가 아니다. 대통령이 당정을 활성화하고 야당과의 정치 복원을 위한 역량이 발휘될 때 비로소 집권 3년차 국정에 가속도의 동력이 붙고, 국민사회의 답답한 느낌 또한 가시게 될 것이다. 많은 국민은 MB의 일처리가 시원시원해지는 정치 스타일의 매력을 보고 싶어 한다. /임양은 주필

알몸 스캐너

알몸 투시 공항 검색기인 전신 스캐너는 고해상도 레이더 등에 쓰이는 전자파를 활용한다. 대당 가격이 17만달러다. 1990년 개봉됐던 공상과학 영화 토털 리콜에서 선보였던 상상물이 실지로 만들어져 실용화 단계에 들어선 것은 약 10년 전이다.미국은 2001년 911 테러 후 공항 검색에 전신 스캐너 이용을 검토했으나 프라이버시 침해의 인권논란에 밀려 한동안 그만두었다. 그러나 미국 연방 교통안전국(TSA)은 언제부턴가 이미 워싱턴 등 주요 19개 공항에서 40대의 스캐너를 운용해왔다. 그런데 지난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미국 노스웨스트항공 여객기 테러 미수사건 이후로 스캐너 운용에 인권단체의 눈치를 살피던 TSA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알몸 투시 검색의 정당성을 드러내면서 추가도입 확대를 서둘고 있다. 150대 이상을 사들여 모든 국내 공항은 물론이고 전 세계 미국행 비행기의 공항 검색을 강화한다는 것이다.스캐너에 비추면 이번 노스웨스트항공 여객기 테러 미수범이 나이제리아와 네덜란드 공항 금속탐지기를 속옷 깊숙이 숨겨 통과했던 폭탄도 탐지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반면에 가슴 확대 수술이나 피어싱이 드러나고 성기의 윤곽도 나타나는 게 문제다. 이에 TSA측은 얼굴과 성기 부분은 희미하게 처리되도록 하고, 화면 저장이나 전송은 불가하도록 해 인권침해 요소를 없앤다고 말하지만 인권침해 논란은 여전하다.이의 인권 논란은 세계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영국과 독일에서도 스캐너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국제테러 조직인 알카에다의 반응이다. 이들은 전신 스캐너 등을 무력화할 수 있는 매우 정교한 폭발방법을 연구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여기서 뭣이 인권인가를 한 번 생각해 본다.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 이상가는 인권은 없다. 미국 가는 여객기 승객 최고 인권을 내세워 투시기 검색을 거부해 불안하기보단, 투시기 검색으로 안전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인권 논란은 비행기를 타지 않는 제3자의 입장에서 하는 소리다.이런 것은 있다. 국제테러가 확산되는 것은 미국측 책임이다. 알카에다의 자폭테러는 비인도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사태가 악화된 덴 미국의 책임 또한 없다할 수 없다. /임양은 주필지지대

호질문(虎叱文)

호랑(虎狼)이는 범을 무섭게 일컫는 말이다. 조상들은 호랑이를 경외시했다. 더러 호환을 당해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신령시하여 산군(山君)으로 여겼다. 어머니 병 구환을 위해 갈 길이 바쁜 효자를 호랑이가 등에 태워 바람처럼 달렸다는 등 호랑이와 얽힌 친근한 내용의 고담(古談)이 많다.특히 한국호랑이는 날렵하고 털이 윤기가 나 고왔다. 백수의 왕인 호랑이가 우리의 산야에서 남획으로 멸종된 것은 1930년대다. 조선을 강점한 일본인들이 한국호랑이 털 가죽을 본국으로 보내는 최고의 선물로 쳐 마구잡이로 싹쓸이해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도 식민지 지배를 당한 비운이다.호질문(虎叱文)은 조선왕조 정조 때 실학의 대가이던 박지원(朴趾源)이 당시 서구 문물이 도입된 청나라 수도 북경을 비롯해 열하까지 다녀와서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실린 글이다. 사람이 호랑이에게 꾸지람을 듣는 것으로 줄거리는 이렇다.한 대호(大虎)가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 의원을 해치자니 몸에 독약을 지녔을지 모르는 의심이 들고, 무당을 잡아먹자니 불결한 생각이 들어 망설여졌다. 그래서 작심한 게 깨끗하다는 유생을 선택했는데 마침 어느 고을에서 도학으로 고명한 북곽선생이란 선비를 마주치게 됐다. 그런데 마주친 장면이 공교로웠다. 북곽선생은 동리자라는 젊은 과부와 정을 통해 오다가 평소 의심을 품었던 과부의 아들이 몽둥이를 들고 방을 기습해 옷도 제대로 못 입고 허겁지겁 도망친 것이다. 한데, 도망길이 칠흑 같은 밤인지라, 발을 잘못 디뎌 그만 분뇨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북곽선생은 분뇨구덩이에서 한바탕 허우적거리다 겨우 머리만 내밀고 기어나오려는데, 이번엔 큰 호랑이가 떡 버티고 앉아 화경 같은 두 눈을 부릅뜬 채 버티고 있는 것이다. 질겁을 하여 자신의 죄상을 고백하며 머리를 정신없이 조아려 살려달라고 빌자 호랑이가 큰 소리로 꾸짖는다. 네 이놈, 말과 행실이 달라 더럽기가 네 놈 몸에 묻은 똥보다 더러워 네 고기는 먹기 싫다면서 일장 연설로 신랄하게 나무랐다. 이윽고 호랑이의 꾸지람이 끝나 분뇨구덩이에서 빠져나와 보니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아침에 들일 나가는 참이던 농부들만 자신을 둘러싸고 의아해 하는 것이다. 이에 북곽선생은 아,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조심하는 의식을 했노라고 이상해 보인 자신의 행동을 변명했다는 것이 호질문의 내용이다.박지원이 청나라를 다녀와 실사구시, 이용후생의 실학사상을 강조하면서 공리공론을 일삼은 당시 유생들의 부패상을 꼬집어 풍자한 게 호질문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끝대목으로, 말도 안되는 북곽선생의 변명이다. 그 유생이 호랑이에게 빈 것은 순간의 방편이었을 뿐, 호환의 위험에서 벗어나자 다시 위선과 교만을 떤 것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전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호랑이에게 꾸지람을 들어야 할 사람이 어찌 북곽선생뿐이랴, 오늘날 정치 경제 심지어는 학계에 이르기까지 부패와 교만 속에 위선을 일삼는 현대판 북곽선생들이 쌔고 쌔게 널려 있다. 이들 또한 그 옛날의 북곽선생처럼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자기 합리화를 일삼는다.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 북곽선생류의 거짓과 농간 때문이다.특히 정치권의 부패는 더해 끝을 모른다. 호랑이는 배가 부를 땐 뭘 잡아먹을 생각을 않는다. 배가 고플 때만 사냥을 한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면서도 끝없는 탐욕을 부린다. 돈을 지녀 배가 터지도록 부르면서도, 부패와의 타협을 사양하지 않는다.새해 2010년, 경인년은 호랑이띠 해다. 현대판 북곽선생들을 호되게 질책할 한국호랑이를 서울대공원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것이 안타깝다. 박지원의 호질문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없지 않다. 한국호랑이는 한국적 정서를 함께하는 영원한 전설적 영물이다. /임양은 주필

민주당, 정치깡팬가?

국회 예결특위 회의장을 일주일째 농성 점검하고 또 정세균 당 대표가 농성장을 찾아 격려하는 민주당 행태는 마치 조폭을 방불케 한다. 불법 점거 등 물리력 행사는 의회정치의 반역이다. 국회를 이런 식으로 운영할 것 같으면 굳이 선거를 할 필요가 뭐가 있나, 무술 대회나 힘자랑 대회를 열어 뽑아보낼 일이다.민주당은 한나라당 다수의 횡포라고 말한다. 정치는 물론 협상이 으뜸이지만, 협상이 안 되면 종다수결 원칙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에 다수결은 있어도 소수결은 없다. 원내 1당의 과반 의석은 한나라당이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국민이 준 의석이다. 총선에서 패배한 정당이 승리한 정당을 농성 점거 등에 의해 소수결로 길들이려는 것은 떼법이다.4대강 정비 등을 문제 삼아 내년도 예산안을 볼모로 잡는 것 또한 어거지다. 4대강 정비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구상에 속하는 국책사업이다. 누구든 대통령이 되면 자신의 경륜을 펼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다. 또 대통령은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된다.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통령의 국정 구상을,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이 발목잡고 못하게 늘어지는 것은 온당치 않다. 비판을 해서 안 된다는 게 아니다. 비판은 가혹해도 좋다. 그 같은 비판이 필요하다. 그러나 집권자의 국정 수행을 저지하고 국회를 점거, 예산 심의를 방해하는 것은 정당정치의 상궤가 아니다. 집권정당에서 하는 일이 틀리고, 야당의 비판이 맞으면 다음 선거에서 국민이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본연의 정당정치다.민주당은 모순 덩어리다. 분배를 강조한다. 성장과 분배는 상승관계에 있어 어느 쪽이 옳다고 잘라 말하기 어려운 영원한 논쟁의 과제다. 분명한 것은 속담에 있는 것처럼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회복지비를 아무리 늘려도 가난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고 사회적 그늘은 있다. 사회복지를 너무 발달시켜 정권을 잃은 사례가 있다. 약 10년 전의 스웨덴 좌파 정권이다. 사회복지 증대에 따른 세부담이 지나쳐 국민이 외면했다.요컨대 물고기를 잡아 주기보단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정부의 소임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사회복지비를 무한정 투입하는 것은 국민의 세부담 낭비다. 사회복지는 자선사업이 아니다. 가장 좋은 최선의 사회복지는 국민들이 벌어먹고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성장이다. 성장이 있어야 분배가 가능하고 파이가 커야 분배 또한 크다.4대강 예산을 삭감, 사회복지비로 돌리라는 민주당의 주장은 얄팍한 대중적 인기영합 전술이다. 사회복지비의 다과에 따라 당장 겪는 고통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세상이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4대강 정비는 후대에 혜택이 이어진다. 현세엔 고용을 창출하면서 후세에 물려주는 투자 성장산업이다. 치산치수는 치국의 근본이다.민주당이 이의 본질적 실체를 외면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4대강 정비가 환경을 망친다는 힐난은 구실이다. 홍수와 건천이 무상하다. 이 때문에 특히 낙동강금강영산강은 물론이고 한강 일부가 죽어가는 것은 목격하는 사실이다. 이런 실정에서 손을 대면 강이 죽는다며 방관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소리다.민주당은 한나라당과 국회를 연말 까지 열기로 합의했지만 예산심의는 아마 계속 물고 늘어질 것이다. 민주당은 예산심의 방해로 그들이 말하는 서민층의 내년도 사회복지를 자신들이 망치고 있다. 예컨대 청년 인턴사업, 저소득층 대학생 학자금 상환, 서민을 위한 장애인 지원과 저소득층 보육료 및 산모신생아 도우미 지원 등 복지사업이 적기시행을 못보고 두세 달씩 줄줄이 지연될 판이다. 재정의 조기 집행 실기로 인한 경제회생 타격 역시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집권당 정책을 저지하는 민주당의 고집으로 협상이 안 되면 해법은 한길밖에 없다. 다수결로 가야 된다. 한나라당이 국회를 불법 점거한 민주당의 의사진행 방해 책동으로, 예산안 처리를 못해 헌정사상 초유의 준예산으로 간다면 집권정당의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임양은 주필

장애인을 위하여

선후천성 장애인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신체 장애는 남의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이에 대한 사회적 소임은 동정이 아니다. 더불어 사는 관심이다. 관심의 초점은 자활이다. 즉 일자리다.장애인을 고용하면 장애 조건에 따른 시설자금과 고용장려금 등을 지원하는 기관이 있다. 노동부 산하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다. 현재 국내 장애인 고용의무비율은 법정 비율 2%에서 0.25%가 못미치는 1.75%다. 아직도 장애인을 고용하기보단 고용부담금으로 떼우는 기피업체가 없지 않다. 그러나 전망은 밝다. 예를 들어 10년전의 장애인 고용의무비율 이행이 0.45%이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의 차이다. 2010년 새해 의무비율은 2.3%로 상향됐다.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경기지사가 올해 취업을 알선한 수는 1천98명의 목표 인원을 초과한 1천100명에 이른다. 중증장애인, 여성장애인 등도 이에 포함된다. 취업만이 아니다. 자영업 창업자금 등 13억3천560만원을 지원해 자립을 도왔다.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설립은 고용의무사업주(모회사)가 장애인 고용을 목적으로 일정 요건을 갖춘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집단 고용 의지의 적극적 구현이다. 포스코코오롱오뚜기현주건설하이닉스 반도체용인정신병원의료재단샘안양병원 등 전략적 기업 대상으로 한 제안서 제출 및 업무 협의가 진행 중이며, 일부는 이미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샘안양병원의 경우, 의료세탁 및 병원 관리를 위한 직종을 개발하여 자회사를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그런데 이미 운영중인 표준사업장엔 제조 판매업체가 있다. 이의 생산품 판로를 개척하는 것도 장애인 고용안정과 연계된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경기지사는 공단 내부 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이의 판로 개척에도 힘썼다. 예컨대 ㈜씨피엘(일회용주사기), ㈜아이피에스이미지(재생토너), ㈜쏘렌드코리아(홍보판촉물), 팜파스(휴지), 박사금형(자동차부품) 등이다.한편 경기도의 장애인 고용에 대한 관심과 참여 확대는 특히 괄목할만 하다. 도청 게시판에 중증장애인 특별채용시험공고가 붙은 것은 지난 8월이다. 이엔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경기지사 측의 끈질긴 노력 이 있는 가운데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도 실무진들의 충분한 이해가 있었으나 티오(TO)가 문제였다. 고심 끝에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결단에 의한 티오 조정으로 마침내 이례적인 중증장애인 공무원 특채 시험이 있게 됐다.최종합격자는 2명이다. 뇌병변 2급인 이는 인사행정과에서 전산직으로, 지체 1급인 또 한 이는 장애인복지과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한다. 아직은 수습과정이지만 열의가 대단하다. 희망찬 의욕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중증장애인의 공무원 특채는 시사하는 의미와 상징성이 크다.장애인고용확대는 경기도 산하 11개 공공기관에까지 확대됐다. 지난 9월1일 김문수 도지사와 11개 공공기관장이 한 자리에서 전국 최초의 장애인고용촉진협약식을 체결했다. 지금 공공기관별 채용계획 등 협의가 구체적으로 진행중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상당수의 장애인들이 도 산하 기관에 채용될 것이다.장애인의 반대는 정상인이고, 정상인의 반대가 장애인이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 개념이다. 유의해야 할 건, 장애인이라고 해서 결코 정상적 사람의 인격체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장애인이란 편의적 용어일 뿐이며, 장애인은 신체의 자유를 잃어 불편할 뿐 정상인과 다름이 없다. 다만 장애조건에 따라 불편하고 불가능한 것은, 정상인도 개별 조건에 따라 불편하고 불가능한 게 있는 것과 같다.이 칼럼을 쓰는 사람도 청각장애 3급의 장애인이다. 나의 체험에 비춰 상대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할 경우, 날 바보인 것 처럼 쳐다볼 때면 이질감을 느낀다. 하지만 난 청각이 불편할 뿐 바보는 아니다.야만사회일수록 장애인을 차등시하고, 문명사회일수록 장애인을 동등시한다. 장애인에 대한 정책차원의 갖가지 시책은 물론 중요하다. 현대사회의 장애가 다양화하고 중증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더욱 필요한 것은 편견없는 사회 분위기 조성의 진정성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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