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지원사업, 민관협치의 꽃

지역사회에는 다양한 모임과 단체가 있다. 취미·운동모임이나 시민단체부터 국가에서 정기적으로 경제 지원을 받는 단체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건강한 지역사회 발전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나 중간 지원조직은 이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민간 공모 및 위탁사업 방식으로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민간 단위에 직접 투입되는 예산 규모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국가정책이나 지역사회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발전이다. 특히 발전 속도 측면에서는 괄목할 만하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다. 첫 번째로 비용 효율의 측면을 평가해야 한다. ‘눈먼 돈’이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있다. 예산을 배정하는 쪽은 수탁자의 사업 진행을 예산 사용 규정과 모니터링 등으로 관리하지만 사업의 가짓수가 많아 공백도 있어 보인다. 사업 결과의 평가보다는 영수증과 사진 등의 증빙에 관리의 무게를 두는 듯하다. 두 번째로 사업비를 받기 위해 사업을 만드는 경우다. 심하게는 사업을 위해 단체를 만드는 경우도 보게 된다. 앞뒤가 바뀐 형국이라 시민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다. 지원사업이 민간 협치를 원만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업역량’과 ‘행정업무’의 수준을 높여야 할 것이다. 사업은 공시부터 제출된 제안서 평가 및 선정까지가 전반부다. 이후 실제 사업 운영과 정산 등의 결산까지로 마무리된다. 전반부에서 중요한 것은 사업역량에 대한 입증과 판단이다. 제안서를 꼼꼼히 살피면 어느 정도 파악은 된다. 후반부는 결과에 대한 평가다. 현재는 비용 관리의 측면이 강조돼 있으나 점차 실제 산출물이나 진솔한 평가서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행정업무를 중요시하는 것은 이런 과정을 꼼꼼하고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산이 수반되는 지역사회 활동이 민간 협치의 꽃이 되기 위해서는 지원사업을 대하는 선의의 관점을 옹골차게 지켜야 한다. 이와 더불어 사업을 통해 지역사회를 건실하게 꾸려 가기 위한 사업 기획 및 운영 능력을 개발하고, 행정업무를 원만히 처리해 민관이 상호 신뢰의 기회로 삼기를 기대해 본다. 박태원 디앤아이사회적협동조합 대표

[천자춘추] 코로나보다 무서운 갈등 바이러스

몇 년 전부터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타와 가상현실, 로봇 등 4차산업혁명이 온통 세상을 집어삼킬 듯 밀려와 우리들의 평범한 삶까지 재설계 하고 있는 중이다. 마치 공상과학이 현실이 되는 이런 세상에서 현실 적응 노력과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사방에서 충돌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밀어닥쳐 역사 속 한 장면처럼 순식간에 세상을 뒤덮었다. 사람들은 경악했고 당황스러워 했고 숨죽였으나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을 회복하며 활보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그나마 마스크 쓰는 모습을 통해 코로나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고 있음을 경각심을 잃지 않고 있을 뿐이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를 겪어오던 우리들 일상 앞에 이제는 유가, 환율, 금리, 인플레이션 등의 경제위기를 알리는 시그널 들이 월말의 카드 청구서 처럼 계속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IMF와 금융위기에 이은 코로나까지 거의 10년 주기로 위기를 경험했기에 고난의 행군을 준비하며 움츠려 들기도 하고 계산기도 두드리며 기회와 위협을 부지런히 저울질 하는 중이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냉정하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적합한 자를 솎아내는 체제이고 경쟁을 본질로 하는 ‘피로사회’ 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사는 체제를 냉정히 바라보고 직시해야 한다. 과거 20세기의 IMF처럼 21세기 지금 코로나19와 4차산업혁명, 환경파괴 등이 오롯이 취약한 개인에게 직격탄으로 해일처럼 밀려드는 것을 이렇게 계속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러우전쟁과 에너지 공급대란, 미중 패권경쟁과 갈등심화, 핵무기 법제화와 잦은 도발 등의 한반도 긴장고조 등 우리를 둘러싼 외부적 요인들이 갈수록 우려스럽기만 하다. 더욱이 국가경영의 리더쉽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수준이 약화 되면서 미래지향적이고 문제해결 중심이 아닌 정쟁과 비방으로 가득한 국내의 정치수준은 불안과 위기를 더 증폭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건 바로 자신들의 이익에만 매몰된 채 이기심과 그릇된 신념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사람들 사이에 긴장과 갈등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끊임없이 탐하려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역사가 그러하듯 모든 전쟁과 파괴, 저주와 공격의 원인은 바로 갈등의 불을 지피고 이익을 얻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진정되어 가는 이제 우리 앞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위기 속에서도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고 부추기는 갈등산업은 성황 중하다. 군수산업, 후진적 정치체제와 일부 언론, 극단적 광신교 등 갈등에 기생하고 편승하여 차별을 강조하고 낙인찍고 편가르고 공포와 불안감을 확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사회에는 이념, 소득, 지역, 종교에 이어 세대(나이)와 젠더갈등까지 실로 다양한 갈등이 존재한다. 지난해 전경련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의 갈등지수는 OECD 30개국 가운데 최상위권이지만, 갈등관리 능력은 27위라고 한다. 첨단기술과 거대자본의 위력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만 가는데 잘못된 신념과 광기를 멈출게 할 인간의 예지와 집단지성, 진지한 고백과 성찰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고 상대적으로 인간은 점점 왜소해져 가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지금처럼 갈등 관리 능력은 약해가고 갈등 생산은 나날이 커지고 확산되어 간다면 우리에게 또다른 코로나19나 전쟁과 같은 끔찍한 재앙이 오지 않을까? 코로나19 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이 마음의 전염병, 바로 갈등 바이러스이다. 오형민 부천대 비서사무행정학과 교수

[천자춘추] 겨울의 지혜

갑자기 찾아온 동장군이 몸을 움츠리게 하는 계절이다.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대문을 나서니 건넛집 마당 감나무의 까치밥이 눈에 와 박힌다. 나뭇잎을 모두 떨군 나뭇가지에 발갛게 물든 감 서너 개가 덩그러니 남아있는 까닭이다. 잘 익은 감들을 따내고, 새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까치밥은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오래된 풍속이다. 색색이 물든 단풍과 이제 막 나무를 떠나는 잎새를 보면서 자연의 지혜를 되새긴다. 나무가 잎을 떨구는 것은 내일을 위한 치밀한 준비다. 봄이 돌아올 때까지 살아내기 위해 수분을 내보내고 영양분의 소비를 막기 위한 노력, 줄기를 메마르게 하고 깊은 잠을 통해서만 춥고 메마른 겨울을 견딜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보는 이를 눈부시게 하는 오색찬란한 단풍은 치열한 삶의 과정 중에 잠시 반짝이는 윤슬 같은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나무의 겨울나기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 시의(時宜)에 따라 적게 쓰고 아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전 지구적인 경제위기와 환경위기를 맞고 있는 요즘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미래를 위한 일들에 가치를 둬야 한다. 조금 불편해도 우리의 후대들에게 희망을 남겨 두기 위해, 가치 있는 미래를 열기 위한 방법을 찾아 노력해야 한다.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 플라스틱의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이려는 범지구적 노력에 우리도 적극 나서야 한다. 개인과 국가, 지구촌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이제 2022년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오래된 고난에서는 다소 벗어났다지만 겨울독감의 등장과 코로나 재유행 우려라는 걱정은 여전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문명의 이기적인 배설물들로 인해 지구의 미래는 암울하고 희망의 별은 밝지 못하다. 지구 북반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참혹한 전쟁은 밝은 대낮에 너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데서 매우 괴이하고 공포스럽다. 뉴스를 통해 매일같이, 수북이 전해지는 비이성적인 현실에 부끄러움이 가득해진다. 어른이라는 사실 하나로도 미안한 일이다. 바른 삶의 태도와 공동체의 번영을 위한 헌신과 봉사라는 오래된 가르침을 잊은 까닭이다. 가르침을 전하는 과정, 곧 교육을 외면한 까닭이다. 겨울을 견뎌내는 자연의 가르침 속에서, 고난 속에서도 계속될 오늘을 살아내는 지혜를 배웠으면 한다. 우관제 파주문화원장

[천자춘추] 지역 행사, 축제가 되려면

요즘 지방자치단체 현장을 보면 저마다 각종 문화 행사로 분주하다. 간헐적으로 초대를 받아 가기도 하고, 홍보성 광고매체를 보고 가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나들이를 떠났다가 우연히 현장 정보를 알고 방문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아쉬움이 많다. 그 이유를 지자체 단체장 혹은 관계부서장에서 묻고 싶은 것이다. ‘과연, 시민들의 복지와 힐링을 위한 문화 행사에 관심이 있기는 한가.’ 준비되지 않은 행사에 선심성 예산을 투입하거나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책정해 졸속 문화 행사로 마무리하고, 요식행위의 일환인 행사로 마무리하고 싶은지 의심이 갈 정도로 미숙함 내지 원칙이 무너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 행사를 유치하는 데 있어 크게 두 가지의 문제가 노출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행사를 진행함에 있어 여전히 정치적 이념을 버리지 못하고 특정 정치 공당의 프로파간다(선전 선동) 유형의 숨은 전략이 그 행사를 주도하는가 하면, 둘째, 예산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닌 충분히, 그리고 적정하게 잘 쓰이지 못하는 까닭에 사람 동원하기에 급급하고, 출연진의 질적인 자격 논란의 여지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초대 받아 참석한 특정한 사람들이나 관람객으로 참석해 각 지자체의 토속문화를 즐기려고 기대를 모았던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안기기에 충분하다. 이런 졸속 문화 행사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문화 유치 현상을 보면 이 나라의 정치나 행정기관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기란 결코 어렵지 않다. 더 나아가 이런 문화 행사에 익숙해진 국민이나 유치 상황을 간과하려 들거나 이용하려는 세력이 사라지지 않는 불온한 환경이 지속된다면 국민의 삶의 질과 국가 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삶이 정상적으로 향상되기 위해서는 문화 수준이 반드시 그 이상으로 따라야만 국가경쟁력 강화와 국민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충분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이충재 시인, 문학평론가

[천자춘추] 학교폭력, 변호사 조력의 장점과 한계

학교폭력 사건에서 변호사의 등장이 일반화돼 간다. 가해자 측 변호사의 학교폭력위원회 출석·진술이 불허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징계 처분은 위법해 효력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도 이러한 추세에 일조했다. 학생들은 물론 부모들이 처음 분쟁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혹여 경험이 있더라도 절차상 불이익을 피하거나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등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한다. 또 변호사는 학폭위에서 정당하게 가해 학생의 징계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징계 이후에도 사죄와 반성이나 피해 회복이 충분치 않다는 생각에 소년법상 처분이라도 바라면서 형사고소를 진행하는 사례도 있다. 이렇듯 변호사 제도는 학생과 부모들이 정당하게 방어권을 행사하고, 법이 허용하는 권리구제를 도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만 학교폭력이 새로운 법률시장을 형성하다 보니 변호사가 의뢰인의 일방적인 이익이나 홍보 가능한 성과를 앞세우기 위해 혐의 또는 피해를 부풀리거나 반대로 이를 축소하려 할 수 있다. 당사자 간 사실관계 다툼이 커짐에 따라 학교폭력위원회 심의·의결 절차가 진실을 가리고 적정한 징계를 찾아 합의를 도출해내는 순기능보다는 상처뿐인 승리와 굴욕적인 패배를 남기는 스포츠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관련자 모두에게 깊은 상처만 남기는 일이다. 변호사의 개입이 일반화되면서 학교의 중재 역할은 축소되고 학교장과 교사들도 사안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도 문제다. 학교폭력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합의금과 수임료만으로 돈 천만원쯤은 우습게 깨지며, 부모의 재력에 따른 법률적 조력의 차이도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 돼간다. 물론 경제력의 차이가 법적 불평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징계는 반드시 적정(適正)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거나 무거운 상해를 동반한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해 솜방망이 징계를 한다면 응보적 정의에 어긋나고 재범 방지에 기여하지 못한다. 반면 인격적인 성숙에 도달하지 못한 청소년기에 저질러진 경솔한 행동 하나만으로 온갖 낙인을 찍어 선량한 공동체의 일원이 될 기회를 박탈하거나 심각하게 제약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조는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는데, 여기서 건전한 사회구성원은 비단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도 해당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설대석 법무법인 대화(大和) 변호사

[천자춘추] LH 공공주택 확대와 지자체 상생방안

최근 LH 국정감사에서 정부 3기 신도시 주택건설용지 가운데 민간 주택건설용지의 면적이 62%에 달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는 LH가 본래 취지와 달리 민간에 과도한 개발이익을 돌리는 것이 아니냐는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따가운 지적이다. 최근 5년간 LH 사업부문별 손익현황을 보면 LH의 분양토지 사업이익은 연평균 4조원, 분양주택사업 수익이 2021년 4조에 육박한다고 하니 공공성이 최대가치인 LH에 과도한 개발이익 챙기기라는 눈총을 받을 만 하다. LH 공공주택지구 사업은 개발제한구역 해제와 토지수용방식을 통한 강력한 행정력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으로 특히, 수도권의 주택공급사업은 수익이 보장된 사업이다. 물론 LH는 임대주택사업에 많은 재원을 투입함으로 나름의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빠른 주택공급과 원활한 재원조달, 임대주택 운영을 위한 자금확보를 위해 저렴하게 확보한 주택용지를 민간에 빠르게 매각하는 것이 유리하다. 주택용지는 법에서 정한 절차대로 확정된 금액으로 추첨을 통해 입찰을 받기 때문에, 민간에 매각한다고 해서 더 수익을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데 훨씬 용이하다. 이를 통해 도시기반시설을 조성하는데 재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LH는 지방도시공사에 공공분양 토지를 일부 수의계약으로 매각하기도 하였다. 지방도시공사는 LH와의 계약을 통해 확보한 주택용지를 개발하면서 개발이익을 지방재정과 지역 기반시설 확충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데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당시 성남도시공사나 하남도시공사 등 비교적 일찍 출범한 지방공사는 이를 기반으로 지자체의 핵심 중추기관으로 성장하였다. 이 같은 방식은 LH의 주택용지 민간입찰방식이 아닌 공모방식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다 우수한 건설업체 선정이 가능하며, 지역주민들의 니즈를 반영한 공공주택 건립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지방공사의 수의계약방식 또한 민간참여 협력사업이기 때문에 민간업체와 상생할 수 있는 구조이며, 민간건설업체의 브랜드를 허용하여 민간주택용지와 크게 다를 수 없다. 하지만 최근 LH는 공공분양용지를 지방공사에 수의계약으로 공급하는 방식을 철회하고 지분참여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3기 신도시 건설에 지방공사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 되었다. 이유는 재정이 열악한 지방도시공사들은 LH와 수의계약을 한 뒤, 잔금을 미루면서 민간업체에게 재원마련을 떠넘기고, 이익만 가져간다는 LH 주장이다. 이번 국정감사의 지적에서 이러한 LH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게 되었다. 지방공사와의 상생을 도외시한 LH는 결국 과도한 이익을 챙겼고,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을 쉽게 해제하여 가져간 개발이익은 지역을 위해 어떻게 재투자 했는지 알 수 없다. 오히려 LH는 기반시설 조성을 대가로 LH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추후 3기 신도시 개발에 LH가 공공주택 비율을 확대한다면, 지방공사의 참여가 보다 용이하도록 상생방안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 지방공사의 성장과 참여가 LH의 공공성 강화와 국토의 균형발전 정책의 실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재혁 시흥도시공사 도시개발실장

[천자춘추] 당장 멈춰야 한다

서민들의 삶이 나날이 힘들어지고 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금리와 환율의 높은 인상은 우리 사회를 심각한 위기로 치닫게 하고 있다. 지난 10월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8월 국제수지’에 따르면 8월 경상수지 적자가 30억5천만달러에 이른다. 순수한 의미의 경상수지 적자는 2012년 1월(-22억9천만달러) 이후 10년7개월 만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강국으로 상품을 수출해 생기는 흑자로 다른 부문의 적자를 메워 전체 대외 거래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는 구조를 특징으로 하는데 수출마저 부진하다면 이제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틀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러한 난국을 극복해야 할 정치는 오히려 나라를 더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정치가 정쟁에 휩싸여 민생과 나랏일은 뒷전이다. 민주노총을 ‘김정은 기쁨조’로, 야당 의원을 향해서는 수령께 충성한다고 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라고 국정감사장에서 떠들어 대는 자를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임명했으니 이 정부에서 노사정의 협의와 타협을 기대하는 일은 출발부터 이미 틀렸다고 보는 게 맞다.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엄정 중립의 입장에서 국정을 감시, 감독해야 할 감사원장은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답변해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특히 대통령과 집권층 주변에서 반복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의 일단이다. 총체적 난국의 압권은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다. 남북 간 군사적 대결과 전쟁연습은 도를 넘었다. 치킨게임과 같은 남북 간의 ‘강경 대 강경’의 충돌은 지금 당장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대북 ‘선제타격’을 공언했고 취임 후 한미 군사훈련 또는 전쟁연습을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가장 빈번하게, 가장 강도 높게, 가장 큰 규모로 실시했고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6월 ‘강 대 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을 천명한 데 이어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했다. 이는 재래식 국지전이 곧바로 전면적 핵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되는 결정으로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 최근 반복되는 한미 연합훈련과 북한의 무력 시위는 지정학적 단층선(Fault Line)인 한반도 안보환경을 극도로 악화시켜 전쟁의 위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자칫 방심하거나 어느 한쪽이 오판할 경우 한반도는 상상할 수 없는 대재앙에 직면할 수 있다. 당장 멈춰야 한다. 윤기종 前 한겨레평화통일포럼 이사장·정치학 박사

[천자춘추] 우리 시대 미술의 형태 사색과 유용성

예술에서의 사색은 화두처럼 던져 놓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창작의 언어가 천차만별이듯 감상도 무한하게 자유로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시대의 순수미술과 그 창작 언어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미술은 역사적으로 자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분야였고, 물질 만능 자본주의가 점령한 작금의 미술시장에선 더 심화하는 추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전통적 미술과는 다르게 현대의 시각예술은 산업, 경제와 결합하면서 개념의 폭이 넓어지고 영향력이 비약적으로 확장되었으나, 반면 전통적 순수미술이 지켜내던 철학적 깊이가 가벼워지고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도 사실이다. 일부 계층만이 영위했던 봉건적 미술은 왕족과 귀족들의 후원으로 소수의 특정 작가들의 천재성을 키워나갔다. 현대 시각예술은 불특정 다수인 작가들의 왕성한 활동으로 창작의 무한한 다양성을 갖게 됐고 이는 문명과 사회의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진화로 거부할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어느 시대엔 그렇지 않았을까. 구조류(舊潮流)와 신조류(新潮流)가 부딪쳐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현재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니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견고한 받침이 되는 전통적 예술을 디딤돌로 현 시대에 맞는 다양하고 새로운 표현방식을 통해 더욱 많은 이들에게 창작 언어를 전달하고 소통하는 오늘날의 시각예술은 지극히 탈봉건적이며, 미술사적 영향력의 과감한 확대다. 특히 정보통신의 획기적 발달로 이루어진 예술 영역의 확대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우리 사회 대다수 구성원의 삶을 위한 매우 중차대한 철학이며, 현대에서 예술이 어떻게 우리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얼마나 숙련된 표현을 통해 얼마만큼 품격 있는 사색과 감동을 전달하는가?’가 중요했던 지난날의 순수미술 개념과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어떤 즐거움과 사색을 줄 수 있는가’를 가치로 둔 오늘의 시각예술의 개념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발전하고 진화하면서 예술이 더욱 인간의 삶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어떤 것이 예술이고, 어떤 것이 비예술인가’라는 물음보다 ‘무엇이 우리 삶에 더 유용한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김이구 문화예술법인 라포애 상임이사

[천자춘추] 금리인상 한파 얼어붙는 부동산시장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시작된 부동산시장의 빙하기가 생각보다 빨리 오면서 본격 침체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많이 올랐으니 어느 정도 조정이 되는 것은 정상이지만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거래량은 절벽을 넘어 실종 상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 가격 하락은 호가만 보면 아직은 심각하다고 할 수 없지만 최근 매매가격 변동률이나 매매수급지수 하락 속도와 일부 단지들의 호가 하락을 보면 무서울 정도로 빠지고 있다. 오히려 거래가 안 돼 덜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똘똘한 한 채의 대표였던 재건축 아파트 투자 수요가 꺾이면서 서울 재건축 아파트 가격 변동률이 신축보다 낙폭이 더 커졌다. 재건축부담금(초과이익환수) 등 정부의 규제 완화가 기대에 못 미쳤고, 전세가율이 낮은 탓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금리 인상에 더 취약한 부분도 있으며, 실거주가 아닌 투자 수요가 많이 유입되다 보니 부동산시장 분위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수요자들이 주축인 청약시장도 한풀 꺾였다. 작년 주택 조기 공급을 위해 도입된 사전청약에 힘들게 당첨됐다가 본청약을 포기한 미계약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주변 시세 대비 30% 정도 저렴했던 추정 분양가의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고, 사전청약을 받은 아파트는 언제 입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는 공급 물량을 늘리겠다고 한다. 매매시장도 어렵지만 전세시장도 아우성이다. 최근 전세가격이 떨어지면서 모 아파트 단지에서는 전세계약을 해주면 1300만원 상당의 샤넬 백을 주겠다는 집주인도 등장했다고 한다. 매매가격이 떨어지면서 전세가격의 키 맞추기가 되고 있고, 매매 계약이 안 되다 보니 전세로 돌리면서 전세 매물이 늘어난 영향도 있으며, 무엇보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세대출 이자가 부담스러운 수요자들이 월세로 전환하면서 전세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엎친 데 덮친다는 표현이 이럴 때 맞는 것 같다. 한국은행에서 기준금리를 빅스텝으로 0.5%포인트 올려 10년 만에 3%가 되었다. 1년 전 0.75%에서 수직으로 올랐는데 문제는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정도 되면 투자심리는 완전히 얼어버릴 수밖에 없고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완전히 꺾인다. 저금리, 유동성 파티에 취해 보지 못했던 과도한 상승에 대한 피로감을 급격한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부동산시장은 너무 뜨거워도 안 되지만 식어 버려도 안 된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경제위기 속에서 내수 경제의 버팀목인 부동산마저 무너질 경우 세수 감소, 부실채권, 역전세, 소비 감소, 내수경기 침체의 도미노는 매우 가혹하고 버티기 힘든 고난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국토교통부는 여전히 소득 대비 집값 비율(PIR) 타령만 하면서 55% 떨어져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다. 과속이 된 부동산시장의 속도를 줄이기도 어렵지만 멈춰 버린 부동산을 다시 출발시키기도 어렵다. 급등과 급락 모두 바람직하지 않기에 가격 조정이 되더라도 시간을 두고 서서히 거래가 수반되면서 진행되는 것이 정상이고 바람직하다. 부동산시장이 완전히 멈추기 전에 연착륙을 위한 선제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벼락거지가 될 것 같은 두려움에 뒤늦게 용기를 내 내 집 마련을 한 2030세대가 이 어려운 파도를 잘 넘어갈 수 있도록 목표액의 10%밖에 채우지 못한 안심전환대출의 기준(부부 합산소득 7천만원, 시세 4억원 이하 1주택자)을 대폭 상향 조정해 주는 방안이라도 우선적으로 추진했으면 좋겠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

[천자춘추] 세상의 모든 소리, 문자로 담아내다

지난 10월9일로 한글날이 576돌을 맞이했다. 온종일 가을비가 내리는 와중에 국립한글박물관 잔디마당에서 경축행사가 진행됐다. 물론 이날의 행사가 너무 조촐했다는 언론의 지적도 있긴 했지만, 세계를 휩쓰는 K-문화 열풍과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 한글의 기상 상황은 ‘매우 맑음’이다. 한글은 한국인의 자부심이다. 자국의 글자를 만든 사람과 만든 과정이 알려진 세계 유일의 나라며, 자국의 문자를 제정한 날을 국경일로 기념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이기도 하다. 역사상 한글날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행사가 처음 개최된 것은 1928년이다.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전신)와 신민사가 공동으로 한글날이라는 이름으로 첫 기념행사를 했다. 이어 한글학회와 우리 국민의 염원을 담아 광복 이후 한글날이 제정됐고, 2005년 국경일 지정을 거쳐 2013년에는 공휴일로도 지정됐다. 그런데 요즘은 한글이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하지만, 과거에는 언문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그런데 우리말 사전에 언문(諺文)의 뜻을 찾아보면, ‘예전에 한글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돼 있다. 과연 우리 선조들이 언문을 속되게 사용했을까? 그렇지 않다. 한자에 대칭해 우리 글이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실학자 유희(柳僖·1773∼1837)다. 유희는 ‘언문지(諺文志)’라는 이름의 우리 글 연구서를 써 언문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1824년 언문지에서 유희는 한글의 뛰어난 점은 글자의 상호 연동성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한자는 모양이 복잡하고 글자마다 연관성이 없어 모두 외워야 하지만 언문은 중성으로 초성을 이어받고 중성으로 중성을 이어받아 각각 차례가 있고 가로세로가 가지런해 쉽게 글자를 깨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희는 언문으로 뜻을 전하면 한자와 달리 틀릴 수가 없으니 부녀자나 할 학문이라고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유희의 연구에 따르면 언문으로 기록할 수 있는 음은 무려 1만250개에 달한다. 유희는 이 1만250개는 인간이 발음할 수 있는 성음(成音)의 총수라고 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문자라는 의미다. 유희는 표음문자로서 언문을 국제적인 발음기호로 인식했다. 이미 한글을 세계화될 수 있는 문자로 본 것이다. 정성희 실학박물관장

[천자춘추] 공교육 걱정 없는 세상...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

유튜브에 ‘자퇴 브이로그’를 검색해 보셨나요? 최근 한 일간지가 소개한 10대들의 ‘자퇴’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 부적응, 학습부진, 왕따 등 부정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다. 상당수 아이들은 자퇴를 스스로 선택한다. 더러 부모들은 자녀의 자퇴를 응원한다. 친구들도 축하 파티를 하면서 보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1년 전국 초·중·고교생 중 학업을 중단한 학생은 4만2천755명으로 전년(3만2천27명)보다 33.5% 증가했다.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생이 전년 대비 32.5% 늘어난 1만5천389명을 기록했다. 중학생은 7천235명으로 전년 대비 21.1%(1천259명) 증가했다. 고등학생은 39.4%(5천692명) 늘어난 2만131명이나 된다. 자퇴 사유가 어찌됐건 학교는 이 아이들에게 더 이상 교육공간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들에겐 사회가 교육공간으로 대체됐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공교육 정상화를 이야기한다. 공교육 정상화에는 필연적으로 사교육 억제가 샴쌍둥이처럼 따라붙는다. 역설적이게도 사교육비 총액은 2021년 23조4천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쯤 되면 사교육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공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되는 것’을 고민해야 할 지경이다. 좀 지나간 이야기지만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돼 워싱턴에 입성했을 때 워싱턴 백악관 지역 공립학교의 한 학부모 대표는 ‘Public School For the Obama Girls, Please?"(공립학교에 두 딸을 보내주세요?)’라는 제목의 장문의 편지를 썼다. 당연히 민주당 대통령인 오바마가 자녀들을 공립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당위성과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한 방송에서 오바마는 ‘워싱턴 공립학교는 딸들에게 충분치 않다(DCPS not good enough for my daughters)’라고 답한다. 그리고 명문 사립학교에 두 딸을 보낸다. 자녀 문제와 자신의 가치관 사이 윤리적 딜레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나도 그렇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도 그렇다. 마치 미국 시민권이 있는 자녀를 대한민국 해병대에 입대시키는 것만큼 어려운 선택임에 틀림없다. 천부권리인 인간 존엄성을 주장하는 고전적 자유주의 학자들은 교육 역시 인간 위주의 과정적 가치에 방점을 둔다. 교육은 자유와 평등을 통해 인간 존엄성을 실천해 가는 과정이며 시장은 자유와 평등을 유지하는 사회적 보호장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신자유주의 학자들은 교육에 있어서 평등보다는 자율과 책무를 강조한다. 이러한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교조주의적 해석이 우리 교육을 꼬일 대로 꼬이게 만들었다. 교육적 가치에 대한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자유학년제, 고교학점제, 입학사정관제, 자사고·특목고 문제가 공교육에 등장했다. 교육 정책의 방향과 각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는 여러 군데서 상충된다. 자사고 신설은 김대중 정부에서, 입학사정관제와 특목고 확대는 노무현 정부에서, 자유학년제는 박근혜 정부에서, 고교학점제와 주요 대학 수능 40% 룰은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 또는 확대됐다. 이 현상을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로 대비해 옳고 그름을 논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목소리를 높이든지 아니면 침묵이 정답이다. 아이들은 학교를 떠나기 시작했다. 공교육 이해관계자에 인간이 아닌 또 다른 교육 주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주의’ 논쟁이 한창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철 맞는 메뚜기처럼, 비 온 후 자라나는 대나무 순처럼 말이다. 논쟁 대신 침묵하고 있는 합리주의자들의 참여를 위해 존 로크의 ‘관용에 관한 편지’를 다시 한번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 떠나기 전까지 말이다. 조훈 서정대 호텔경영과 교수·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국제협력실장

[천자춘추] 故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문답-5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삼성그룹 고(故) 이병철 회장의 다섯 번째 질문이다. 아마 인간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내용이 아닌가 싶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자녀가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를 향해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 일을 했을까’ 자책하고 고민한다. 세상 어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악인으로 만들겠는가!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악인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고 무엇이 유익한 길인지 알려주기는 하지만 악한 결정과 선택을 막지는 않으신다.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없다면 미리 프로그램된 로봇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신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뿐만 아니라 양심도 주셨고 도덕과 윤리의식도 넣어 주셨다. 즉, 인간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면의 사람이 내는 소리, 즉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인간은 악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오히려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욕망에 끌려 유혹당함으로 시험을 받습니다. 그리고 욕망이 자라면 죄를 낳고 죄가 이루어지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보 1:14,15) 지각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고 이병철 회장의 다섯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 많은 부모가 자녀를 악인으로 만들지 않는 것처럼 신은 악인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인간 스스로의 선택인 것이다. 그렇다면 악한 길을 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느님은 악인들에 대한 완전한 해결 방법을 가지고 계신다. 성서 시편 37:10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악한 자들이 더는 없으리니 그들이 있던 곳을 살펴보아도 없을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대통령은 있어도 악한 자들이 없어질 것이라고 공약한 통치자는 아무도 없다. 완전한 평화와 안전이 깃든 아름다운 세상은 하느님의 공약이다. 조금만 더 시기를 기다리며 있어 보자. 최진열 대한노인회 중앙회 정책위원

[천자춘추]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건축물관리법 시행규칙’의 일부 개정안이 지난 8월4일자로 발효됐다. 이번 개정안을 놓고 6월 8일 여의도 국회회관에서 송석준 국회의원의 주선으로 대한건축사협회 17개 시·도 건축사회 회장들과 국토부 정책관, 국토부 관계자들과 2시간에 걸친 난상토론을 했지만 서로 의견 편차가 커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이후 국토부에서는 일선 시·도에 이에 대한 의견 조회가 있었고 경기도청에서는 31개 시·군의 의견을 받아 반대 의견을 통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른 시·도에서도 분명하게 반대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경기도건축사회 소속 건축사 1천여명의 반대 서명서를 제출했고 부산에서도 650여명의 반대 서명서를 국토부에 제출했음에도 편법으로 건축물 관리법이 아닌 시행규칙으로 개정됐다. 이번 사례를 통해 국토부의 권세가 실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이나 국민의 안전, 생명을 담보로 하는 무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건축사회의 의견은 간단명료하다. 해체감리 사건, 사고를 분석해 보면 건축주와 시공자의 지휘를 받고 있는 해체 감리자는 나약할 수밖에 없기에 해체 감리자를 모집 공고한 후 감리자 명부에 등록하고 허가권자가 지정해 먹이사슬을 끊자는 것이다. 더 투명하고 안전한 해체공사가 될 수 있도록 현행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 문제점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와 협의를 통해 고쳐 나가야 한다는 논리이다. 또한 해체 감리금액에 따른 협의가 되지 않을 경우 감리자를 교체할 수 있다는 항목은 우리나라 현실이 발주자 아래에 있는 시공사의 저가 도급을 해소하지 못한 채 감리부분에 시공단가 대비 감리 금액을 책정한 부분이나 금액에 대한 권리를 가진 발주자의 저가 덤핑요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가자는 제안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광주 해체 공사 사고 이후 해체공사 관계자, 건축사, 국토부, 언론인 등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해체 공사비가 책정된 이후 해체 계획서가 작성되고 이에 따른 저가 감리비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을 보면 발주자가 제시한 금액이 아니면 해체감리를 일방적으로 몇 번이고 바꿀 수 있는 졸속 법안을 만들어 공포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는 옛말을 기억하고 이번 개정안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하루빨리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건축법 제25조 건축감리 규정에서는 이러한 부조리와 병폐를 방지하고자 건축 설계자는 당해 건축물에 대해 건축 감리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물론 외국의 경우에는 건축설계자가 감리를 하고 해체공사까지 겸하는 사례들이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건축물이 생성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시기상조가 아닌가 한다. 먼저 발주자와 시공자, 설계자와 감리자의 영역이 엄격히 분리되어 자기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도록 정책과 제도를 선행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국토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작고 힘없는 일선에서 일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한다. 정내수 경기도건축사회 회장

[천자춘추] 초고령사회 고용전략∙정년제도 개선방안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22년 현재 약 901만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7.5%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고령인구는 계속 증가해 2025년에는 65세 고령인구가 천만 명인 초고령사회(Super Aged Society)로 진입하게 된다. 고령사회(14%)에서 초고령사회(20%) 도달 소요 연수는 영국의 50년, 미국의 15년, 그리고 일본의 10년에 비해 우리나라는 7년에 불과해서 초고령사회를 대비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 이로 인하여 노인들의 빈곤 문제는 매우 심각한 실정이다. 2020년 66세 이상 은퇴 연령층의 소득 분배지표는 상대적 빈곤율이 무려 40.4%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소득분배 정도가 어느 정도 개선되고 있으나, 그러나 아직도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은퇴 연령층(66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노인의 빈곤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공적연금의 발전이 미 성숙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은 1988년에 시작되어서 연금수급자의 수가 적고 국민연금 평균 급여액도 용돈 수준(약 57만 2천 원)에 불과하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공적연금 수급률은 매년 증가하고 있고, 2021년에는 전체 고령자의 55.1%가 공적연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여성 노인의 공적연금 수급률은 40.6%로 남성 노인의 74.1%의 절반 수준으로 여성 노인의 노후 빈곤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노인의 빈곤 문제와 미흡한 공적연금 제도는 고령 근로자의 고용정책의 활성화와 정년퇴직 연령의 상향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첫째, 고령자의 고용률을 상향할 수 있도록 고령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개선하여 고령 친화적 고용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고령자의 고용률은 2015년 34.9%로 15세 이상 인구 전체 고용률(60.5%)과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둘째, 고령 근로자의 취업 분야를 본인들의 직업기술과 능력을 고려하여 다양화하여야 한다. 실제로 고령 근로자는 단순 노무 종사자와 농림어업 숙련종사자의 비중이 매우 높으나, 그러나 관리자·전문가, 그리고 사무 종사자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셋째, 고령 근로자의 고용 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2021년 경제활동 중의 고령 근로자의 44.9%는 고용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데 이는 지난 10년간 3.7%가 증가하였다. 넷째, 노동시장에서 여성 고령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 여성노인이 남성노인보다 근무환경, 노동조건 및 급여 부분 등에서 차등적인 처우를 받고 있다. 다섯째, 정년 연령제도를 현재의 60세에서 점차적으로 65세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인구의 고령화가 가장 빠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년연령이 60세에 머무르고 있다. 앞으로 수년 내에 정년 나이를 점진적으로 65세로 상향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처럼 연령에 의한 정년제도는 폐지하여 노년기에도 지속해서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령차별금지법을 보다 제도화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하여 초고령사회에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고용 활성화를 통하여 빈곤 문제를 개선하고 노년기의 노후 소득보장의 안정화를 추구할 수 있는 고령 친화적 환경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천자춘추] 균형성 원칙을 적용한 ESG 보고

투자의사결정에 비재무 성과를 반영하는 자본시장의 변화, 주요국 정부의 탄소중립 추진 및 비재무 정보공시 의무화, 소비자의 친환경 및 지속가능성 소비 증대,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ESG 경영 요구 증대 등으로 최근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이 기업 운영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ESG 평가 기준과 기관의 난립, 평가의 신뢰성과 타당성의 문제, 점수 따기식 ESG 컨설팅과 자문, ESG 워싱(ESG Washing) 등 여러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지만,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제고를 위해 환경, 사회, 거버넌스 이슈를 잘 관리해 비재무적인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고해진 점은 매우 바람직하다. ESG 경영에 대한 관심과 주목은 ESG 평가와 ESG 성과 보고(Reporting)에 대한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 200여개의 기업과 조직의 비재무보고서는 지속가능성보고서, CSR보고서, ESG보고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발간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비재무보고서의 발간이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보고 목적에 충실한 수준 높은 보고서를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국내에서 발간되는 비재무보고서를 살펴보면 자사의 성과를 홍보하는 자기 자랑 일색의 홍보 브로슈어와 같은 보고서가 대부분이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인 GRI 표준에 따르면 보고의 목적은 경제, 환경, 사람에 대한 중대한 영향(Significant impacts)과 영향을 관리하는 방법을 이해관계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국내 기업은 과연 이런 보고 목적에 충실한 비재무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모든 조직은 조직의 활동을 통해 예외 없이 경제, 환경,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은 사회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에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작용(Contributions)하고 있다. 긍정적인 영향은 극대화하고 부정적인 영향은 완화하거나 제거하는 노력이 바로 비재무 성과를 창출하는 기본적인 방법이며, ESG 경영의 요체다. 따라서 조직이 사회에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영향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GRI 표준도 보고의 균형성(Balance) 원칙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조직은 편견 없이 부정적 영향과 긍정적 영향을 공정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부정적인 영향에 관한 정보를 생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균형성 원칙을 잘 적용한 수준 높은 ESG보고서가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현 신한대 글로벌통상경영학과 교수·신한대 ESG혁신단장

[천자춘추] 조선시대의 부동산과 투기

시대와 공간은 달라도 인간 행동은 비슷하다. 조선시대에도 지금과 비슷한 부동산 문제가 존재했다. 속설에 조선 중종 이후 부동산 가격이 500년간 잡히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이유는 있다. 조선 개국년인 1392년 조선의 인구는 554만9천명 정도였다. 42년 뒤 세종 22년(1440년)에도 672만4천명으로 크게 인구가 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기 이후 큰 전쟁이 없고 농업생산이 증가해 80여년 뒤인 중종 14년(1519년)에는 1천46만9천명까지 늘어났다. 인구가 급증하니 한양 집값이 폭등한다. 관리가 한양에 있다가 지방 발령이 나면 가족들은 남겨두고 본인만 발령지로 가서 조정에서 제공하는 관가 혹은 친척집에 기거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녹봉 상승률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집을 팔고 사대문을 벗어나면 다시 사대문 안에 집을 사기가 어려웠다. 임대료도 올랐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왕이 집세(가대세)를 감하는 정책을 썼던 기록이 꽤 많다. 영조 17년(1741년) 실록에는 ‘어의동 본궁 담장 밖에 사는 군병들이 집단으로 비변사에 집세를 감해줄 것을 요청하는 소지를 바쳤다’는 문구가 나온다. 한양으로 돌아온 관리 혹은 발령받은 관리들이 세를 들었는데 그 집세가 비싸 조정에 하소연했다는 기록이다. 현재의 전월세 상한제와 임대차 의무기간과 유사하다. 조선 중기에는 정부의 신도시 건설과 매입 임대정책이 있었다. 정부가 땅을 사들여 집이 필요한 이에게 분양(임대)을 했다. 빈집을 적극적으로 활용, 큰 집은 3∼5가구 몫으로 분할해 임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피나는 정부의 노력에도 주택가격과 투기는 잡히지 않았다. '주택가격이 폭등해왔다’는 말은 ‘조선시대 중종 이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500년간 실패해 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돈 있는 사대부들이 시세 차익을 노리고 하급관리와 중인의 집을 여러 채 사들여 무주택자들의 주거난을 부추겼다. 주택 구매를 막으려 양반은 양반끼리, 중인은 중인끼리만 주택 거래를 허용했다. 1가구 1주택 정책을 시행했다. 양반들은 다수의 구입한 집을 중인들에게 임대했다는 임대차계약서 위조까지 해서 규제의 칼날을 피했다. 정부가 세입자 현황을 전수조사하자, 양반들은 집의 노비를 중인의 신분으로 면천하여 계약서 위조까지 했다. 대규모 공급 촉진을 위해 산 아래 토지를 개간해서 분할 분양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도성 인근 집값의 양극화가 나타났다. 최고의 거주지인 인사동의 집값은 정9품 관료 녹봉의 50년 치였으나 새로 개발 지역 집값은 녹봉 2년 치밖에 안되었다. 집 위치로 출신을 가늠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남산골 선비’라는 명칭으로 비아냥거리는 사회 풍조까지 발생한다. 가장 부촌인 청진동과 공평동, 인사동은 한양 다른 지역보다 3~4배 비쌌다. 정부가 규제를 해도 잡히지 않는 부동산가격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지금도 부동산 규제와 완화를 반복하는 것보다 크고 느리지만 선제적인 거시적 금리, 성장률, 지역균형발전 등으로 조절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천자춘추] 마음이 아닌 욕구일 가능성이 높다

어느날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마음이 뭐예요?” 지금도 내 역량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단어 중 하나만 고르라면 ‘마음’이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의 면면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수학이나 물리처럼 정형화됐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책 속의 선사처럼 냅다 상대방 뺨을 때리거나, 벼락같은 고함을 내지른다거나, 똥친 막대기다, 따위로 상대를 멍 때리게 할 배짱도 없다. 나는 그 학생에게 되물었다. “마음?” “네, 선생님. 마음이 뭔지 알고 싶어서요.” 내가 말했다. “방금 네가 마음을 보여주더구나.” 학생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저는 아무것도 보여 드린 게 없는데요?” “마음이 뭔지 알고 싶다고 했잖아?” “네, 그건 제 질문인데요.” “그 질문 속에 네 욕구가 있어, 없어?” “네, 뭔지 알고 싶은 욕구가 있죠.” “그 욕구를 마음이라는 표현으로 한번 바꿔볼래?” 학생이 혼잣말을 했다. “알고 싶은 마음, 듣고 싶은 마음...” 내가 물었다. “어때? 말이 돼?” 학생이 배시시 웃었다. “네, 말이 되네요.” “이제 마음이 보여?” “그러고 보니 제 욕구가 마음이군요.” “지금은 그렇지.” ‘마음’을 어찌 ‘욕구’라는 어휘 하나로 냉큼 대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네 마음을 보라’는 식의 가르침은 어린애한테 운전 면허증 안겨주는 격이다. ‘마음’이라는 표현만큼 대상의 구체성이 없고, 형상화가 안 되고, 눈·귀·코·혀·피부·생각이라는 감각기관에도 걸려들지 않는 언어는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기반에는 ‘욕구’가 있다. 욕구의 다른 말이 희망, 소망, 열망, 의지, 의도, 욕심, 욕망, 탐욕들이다. 소위 ‘싶다’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욕구로 인해 탄생했고, 살아왔고, 살고 있다. 말하자면, 당신이 ‘그건 내 마음이야!’라고 표현하는 그 속사정에는 대체로 ‘욕구’가 있다. ‘그건 내 욕구야’가 더 정직하다. 사실 마음이 그냥 ‘마음’으로 있을 때에는 바위가 그냥 바위로 있는 것과 유사하다. ‘바위’라는 단어 하나로는 어디에 있는 무슨 바위인지 알 수 없다. 어떤 개 이름 ‘루이’가 ‘루이’로만 있을 때는 뭔가를 지칭하는 이름일 뿐인 것과 같다. 그 녀석이 꼬리를 흔들며 움직일 때 멍멍 짖는 ‘개’가 된다. 마음 또한 마찬가지다. ‘마음’이 가만히 있는 건 추상적인 그 무엇이다. 움직여야 마음이다. ‘마음을 보라’고 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마음 공부’는 안개를 손에 쥐라는 말처럼 막연해진다. 일단 내면의 ‘싶다’를 보라고 하는 게 좋다. 그러면 마음을 바로 보고 알 것이다. 저 학생처럼. 김성수 한국글쓰기명상협회장

[천자춘추] 크리에이티브란 도대체 무엇인가

오랜 세월 광고 기획사에 재직하면서 마지막까지 그 해법을 찾으려고 고심했던 것은 ‘크리에이티브의 정체’다. 삼성그룹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잘나가는 100대 기업들의 디자인과 프로모션을 디렉션하는 대행사의 크리에이터였던 나는 늘 새로운 디자인 아이디어를 프레젠테이션 하는 것이 핵심 업무였다. 나의 디자인 철학은 장착돼 있어야 할 무기이자 대응 논리였고 궁극적으로 프레젠테이션 성공의 핵심 요인이었다. 디자인에 대한 나의 철학은 계속 변화했는데 초기에는 ‘시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지남철’이었다가 ‘숨어 있는 가치를 찾아내는 김소월의 꽃이 디자인’이라고 정리했다가 최종적으로 ‘디자인은 배려다’로 마무리했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정리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화두로 삼고 있는 ‘크리에이티브는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정의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현재 내가 정의 내리는 크리에이티브란 ‘이종교배’다. 정확히는 크리에이티브의 원리가 ‘이종교배’라 생각하는 것이다. 즉, ‘크리에이티브’한 발상은 누구나 생각하는 편한 교배에서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교배시켰는데 그 기발함에 대중이 공감했을 때 전율적인 감동을 주는 것이다. 1986년 광고대행사에 입사할 때 논술형 시험문제가 ‘마이클 잭슨과 종이컵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논하라’였는데, 크리에이터에게 ‘이종교배’의 발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가장 낯선 발상으로 수많은 대중을 설득시키는 아이디어가 있는 광고가 좋은 광고고 감동적인 크리에이티브라 평가된다. 크리에이티브한 발상은 대부분 물리적인 조합보다는 화학적인 조합이 절묘할 때 멋진 결과가 나온다. 화학적인 결합을 잘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으로 살기 위한 삶의 방법론을 찾자면 그 첫 순위는 여행이다. 크리에이티브의 핵심은 ‘낯설게 하기’이고 여행은 자신을 낯선 곳으로 인도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자신을 객관화하고 자신을 들여다볼 때 인생의 또 다른 기발한 길을 발견할 수 있다. 한곳에 머무르고 침잠할 때 인간은 나태해지고 고루해진다. 수많은 고민과 여러 나태함이 온몸을 휘감고 있다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늘 낯선 여행지로 삼아 보자. 그곳에서 자신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남상민 아티스트·사단법인 한국문화재디지털보존협회장

[천자춘추] 농업의 또 다른 길 ‘치유농업’

21세기 현대사회는 빠르게 발전하면서 인간이 지속가능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행복한 생활을 누리며, 나와 가족 구성원들의 건강한 삶을 보장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언제 어디에서든 잘 먹고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소망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도시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도시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농부가 돼 흙으로 돌아오고 있는 곳, 바로 도심 속 치유농장으로 말이다. 치유농장을 경험한 사람들은 건강한 먹거리를 직접 키우고 적당한 노동을 통해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됐다고 말한다. 이렇듯 농업을 치유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치유농업’이다. 그렇다면 치유농업은 정확히 무엇일까? 치유농업이란 농업·농촌 자원이나 또는 이와 관련된 활동을 통해 국민의 신체, 정서, 심리, 인지, 사회 등의 건강을 도모하는 활동과 산업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채소와 꽃 등의 식물뿐만 아니라 가축 기르기 등 산림과 농촌문화 자원을 폭넓게 이용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반농사와는 다르게 농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농업을 활용한다는 점이 치유농업의 특징이다. 치유농업은 정말 효과가 있을까? 국립원예특작과학원(2014~2016년)의 연구에 따르면 식물 기르기를 통해 공격성이 13% 감소하고 정서 지능은 4% 향상하는 결과를 얻었으며, 텃밭을 가꾸는 노인은 우울증이 24% 감소했고 성인 암환자는 원예치료 8번 만에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40%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현재 치유농업은 2020년 3월6일 국회 본회의에서 ‘치유 농업 연구 개발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통과해 시행됐고, 3월25일을 이를 기념하는 치유농업의 날로 제정했다. 물론 일반인들에게 아직은 치유농업이 낯선 개념일 수 있다. 그러나 치유농업은 농업·농촌의 미래 산업으로, 우리 삶의 질을 한 단계 증진하는 새로운 영역의 농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경기도농업기술원도 정부 정책에 발맞춰 2025년까지 치유농장을 100개소로 확대 육성하고, 치유농업시설 운영자 교육(매년 25명)과 치유농업사 양성기관 관리 등 맞춤형 사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2023년까지 경기치유농업센터 구축을 완료하고, 시군과 협업해 경증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운영해 경기도 치유농업의 거점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치유농업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과거 농업은 농업인 소득 향상을 위해 농산물 생산량 증가에만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농업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이제는 국민 건강 관리에까지 이르렀다. 농업의 새로운 변신은 작은 농업에서 더 큰 농업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 중요하다. 앞으로 농업의 변화가 기대된다. 김석철 경기도농업기술원장

[천자춘추] 인권맛집 다산 30주년

2019년 10월31일. 다산인권센터(이하 ‘다산’)의 문을 처음 두드렸다. 세월호 사건 이후 고통받는 존재에 막연한 물음을 가질 즈음이었다. 다산에서 ‘인권이 내게로 왔다’를 주제로 강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신청했다. 여섯 번의 강의와 후속 모임은 세상에 품었던 의심을 ‘시대와의 불화’로 이어 줬다. 삶의 실천이라는 불편한 과제는 무거웠으나 나쁘지 않았다. 이후 다산 활동가의 소개로 인권교육온다(이하 ‘온다’)를 만났다. 온다와 다산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한다. 방 두 개를 합쳐 놓은 공간 가운데 드르륵 열리는 미닫이문으로 경계를 가르지만 각각의 회의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열려 있다. 따로 또 같이 서로의 활동과 삶을 공유하는 이곳은 사랑방이자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치열한 활동의 장이다. 활동가들의 삶을 공유하기 가장 적당한 시간은 점심시간이다. 매월 각자 가능한 날짜를 달력 위에 표기하고 자신의 순서가 되면 점심을 준비한다. 별다른 외부 일정이 없다면 온다와 다산 활동가 여덟 명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활동가 초반 사무실 생활에 적응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난관은 8인분의 식사 준비였다. 동료 활동가들은 준비하는 동안 익숙한 듯 곁에서 도와줬다.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 긴밀한 배려는 오랜 시간 그들이 쌓아온 활동가로서의 면면이었다. 누군가는 냉장고를 털어 생전 보지 못한 요리를 탄생시키고, 어떤 이는 부모님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한다. 이곳에선 아무도 반찬 투정을 하지 않는다. 혼자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진 이유는 사람이라는 환경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다산이 30주년을 맞았다. ‘30년 전통 인권맛집’은 다산의 안성맞춤 슬로건이다. 인권은 종종 밥을 짓는 과정에 비유된다. 당연하게 먹는 음식이지만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누군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정성은 인간의 존엄과 맞닿아 있다.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 마음으로 인권이라는 밥을 짓는 사람들이 수원 화성행궁에 있는 오래된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세상과 불화하는 목소리를 내길 주저하지 않는 다산은 인권계의 홍반장이다. 쌍용차 사태, 세월호 참사에 이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까지 사회 전반의 인권 현안 속 고통받는 사람들 곁엔 언제나 그들이 있었다. 그런 다산의 첫인상은 가파르고 좁은 계단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눈앞을 가로막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인권의 현주소를 떠올리기도 했다. 다산의 숙원인 공간 이전은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첫인상의 막막함이 누군가에겐 오르지 못할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모두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연대의 손길이 필요하다. 정서희 인권교육온다 활동가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