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국가경쟁력 회복은 지방자치부터

코로나19 사태를 거쳐 오면서 우리는 지방자치가 지니고 있는 위대한 힘과 필요성을 목격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그동안 축적된 자치역량을 발휘해 독창적이고 특색 있는 방역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K방역의 성과를 전 세계에 알렸다.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된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가 대표적이다.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매장처럼 차에서 내리지 않고 코로나 진단을 받을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뻗어나간 한류가 됐다.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를 두고 영국 BBC는 “한국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빠르게 적용했다”고 했고 블룸버그통신 기자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임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는 반응을 내놓으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방자치 역량은 이렇게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지방자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여전히 7 대 3에도 못 미치고, 국가사무와 지방사무의 비율도 선진국에 한참 뒤진다. 헌법과 지방자치법은 아직도 시·군과 광역시·도를 지방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로 명명하고 있다. 중앙은 ‘정부’인데 지방은 여전히 ‘단체’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조례조차도 법령의 범위 내에서 정하도록 헌법에 규정돼 자치입법권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중앙에 권한이 집중되다 보니 지역의 특성에 맞는 발전과 지방정부의 창의성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 지역과 관련된 정책에 해당 지역과 주민보다 중앙의 논리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효율성과 자원 배분의 왜곡으로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게 된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다가오면서 국가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지방정부의 손발을 묶어 놓은 상태에서 국가의 경쟁력을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프랑스는 2003년 경제 침체로 국가가 위기에 처하자 지방정부에 자치재정권 및 자치입법권을 보장하는 등 지방자치를 크게 강화하는 헌법 개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있다. 강화된 지방자치가 국가경쟁력을 살려낸 것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지방자치 강화가 필수다. 남종섭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

[천자춘추] 갈 길 먼 자치경찰위원회

“자치경찰제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인천시민 75.4%가 “모른다”로 답했다. 지난 7월 만 18세 이상 시민 1천4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조사 결과다. 자치경찰제는 지난 76년간 국가가 수행하던 치안 업무를 지방자치단체에 경찰권을 부여한 제도로, 지난해 7월 공식 출범 후 1년6개월이 지났으나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여전히 낮은 실정이다. 경찰 사무 중 생활안전, 교통, 경비 등 자치경찰 사무에 대해 시도자치경찰위원회가 지휘․감독하는 형태로, 지역 치안을 지방행정과 연계·협력해 지역 실정에 맞는 맞춤형 치안 서비스 제공이라는 도입 취지에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현행 자치경찰제도는 국가경찰 신분으로 자치경찰 사무를 수행하는 일원화 모델로, 지방자치법에도 자치경찰의 성격이 명시되지 않아 법적 개념이 모호하고 독립성 확보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자치경찰위원회가 자치경찰 사무에 대한 집행 기능은 없고 심의·의결만 가능하기 때문에 사무 처리에 대한 직접적인 감독권 행사에 많은 제약이 있고, 시·도경찰청장은 사무에 따라 경찰청장, 국가수사본부장, 자치경찰위원회의 지휘를 받아 혼선도 있다. 대부분의 자치경찰 사무는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수행되고 있음에도 ‘자치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경찰공무원’의 범위에서 빠져 있고, 소속은 국가경찰 업무영역인 112치안종합상황실로 돼 있다. 행정안전부는 이원화 방안을 오는 2024년 세종, 강원, 제주에서 시범 실시해 성과에 따라 2026년 전국으로의 전면 시행을 검토하고 있어 향후 이원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자치경찰 사무에 소요되는 비용을 올해는 국고보조금으로 일부 지원받고 내년부터는 지방소비세 인상을 통한 비용 보전 방식으로 변경돼 지방이양사업 보전금 55억원을 배정받아 내년 본예산 시비 113억원 대비 58억원을 인천시에서 추가 부담한 것이다. 2026년까지 한시적 지원으로 명시하고 있는 보전금은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 부담으로 전가되고 지방자치단체별 재정자립도에 따라 지역별 편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치경찰제도가 지역 치안 현장에 안착하고 진정한 시민의 경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독립성과 자율성이 담보돼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위한 재정분권과 실질적인 인사권 부여를 위한 조직분권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신동섭 인천시의회 행정안전위원장

[천자춘추] 산울림이 필요하다

지난 10월31일 아침,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활발하게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록 밴드 ‘산울림(김창완, 김창훈, 김창익)’의 김창훈 가수가 “희생자분들의 명복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자작곡을 카톡으로 보내 왔다. 노래 제목은 윤후명 소설가 겸 시인이 쓴 시 작품을 그대로 옮겨 온 ‘어쩌자고 어쩌자고’였다. 노랫말 중에서 “숨막혀, 숨막혀, 숨막혀, 숨막/혀를 깨물며 나는 자지러지지/산 자 필(必)히 죽고/만난 자 정(定)히 헤어지는데/어쩌자고 어쩌자고 너는/어쩌자고 어쩌자고”라는 구절이 특히 가슴을 울렸다. 10월29일 이태원 핼러윈 축제 참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압사 장면이 선명하게 연상된 것이다. 참사가 일어난 지 20일이 넘었지만, 어떻게 사람들이 일상으로 다니는 골목에서 158명이나 사망했는지 믿기지 않는다. 사고 발생 전부터 시민들의 신고가 경찰에 여러 건 접수됐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곧바로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고, 정부가 세워 놓은 안전관리 매뉴얼도 전혀 활용되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한 엄정한 조사가 있어야 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희생된 사람들의 억울함이며 유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보듬어줄 수 있을 것이며, 공직자의 책임을 확립하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자고 어쩌자고’를 듣고 나서 우리에게는 지금 산울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산을 바라보고 소리치면 그 소리가 되울리는 현상인 산울림처럼 10·29참사로 인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그냥 바람에 실려 사라지지 않고 되울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참사는 벌어졌는데, 책임을 지겠다는 관계자는 아직 아무도 없다. 모두 지금의 상황을 적당히 넘기면서 시간을 보내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진정한 애도가 있어야 신뢰할 수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묻고,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그리고 김창훈 가수의 노래처럼 아픔을 공유하는 추모기록이 필요하다. 맹문재 시인·안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천자춘추] 여성폭력은 왜 근절되지 않나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 “강남역 이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여성이 안전한 세상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 지난 9월14일 밤 ‘신당동 스토킹 살인사건’이 벌어진 서울 신당역 추모공간의 포스트잇에 담긴 시민들의 절절한 목소리다. 여성폭력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예전보다 높다. 1999년 유엔은 여성폭력에 대한 전 세계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매년 11월25일부터 12월10일까지를 ‘세계 여성폭력 추방주간’으로 지정했다. 우리나라도 2020년 11월25일부터 일주일간을 여성폭력 추방주간으로 지정해 정부 차원의 행사와 캠페인을 한 지 3년째다. 하지만 2022년 오늘, 여성폭력 추방주간을 앞둔 우리 사회 여성폭력 실상은 절망적이다. 경기도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도내 성폭력 발생 건수는 2019년 6천960건에서 2020년 7천83건, 2021년 7천721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 역시 2019년 1만5천289건, 2020년 1만5천383건, 2021년 1만7천134건으로 늘어나고 있다. 스토킹 신고는 2019년 1천388건, 2020년에는 1천108건으로 나타났고,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2021년에는 3천740건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N번방 사건’ ‘제2의 N번방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디지털 성범죄 외에도 온라인 괴롭힘, 그루밍 성범죄 등 온라인 기반 성폭력 양상이 다변화되고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 등 여성폭력이 살인 같은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건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법을 정비하고 대책을 세우고 시민들은 분노하지만, 여전히 여성폭력은 모양새만 바뀐 채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여성폭력은 왜 근절되지 않는가? 왜 해결되지 않는가? 질문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는 유엔 등 국제기구가 규정한 ‘여성폭력’에 대한 정의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1993년 유엔 여성폭력철페선언, 1995년 베이징행동강령 등에서는 여성폭력을 ‘남녀 간 불평등한 힘의 관계에서 발생해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고착시키고 여성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여성폭력은 성차별적인 사회구조 변화 없이는 해결이 어려우며, 여성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성평등한 사회의 실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3회 ‘여성폭력 추방주간’을 맞이해, 여성의 안전을 염원하는 포스트잇 속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성평등하고 안전한, 새로운 미래를 소망해 본다. 정혜원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정책연구실장

[천자춘추] 성남시의료원, 시민 위한 필수 의료기관인가?

2003년부터 시작된 성남시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을 둘러싼 논쟁은 20년이 되는 2022년 현재에도 진행형이다. 어쩌면 이 논쟁은 성남지역사회에서 해결되지 않는 ‘영원한 핫-이슈(hot issue)’로 남아있게 될지 모른다. 따라서 「성남시의료원이 성남시민에게 ‘꼭’ 필요한 의료기관인가?」라는 의료수요자(성남시민) 측면에서 논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2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 ‘(의료)자원은 유한하다’라는 경제 측면이다. 즉 성남시 재정은 유한하기 때문에 만약 성남시의료원에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재정이 투입된다면 그만큼 성남시민을 위해 다른 곳에 쓰일 돈은 부족해 질 수 있다. 둘째, ‘사회의료보험(social health insurance, 우리나라 제도 명칭은 건강보험)’ 제도 아래에서 공공의료기관이나 민간의료기관 모두 ‘공공의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수요자 입장에서는 의료기관을 공공이냐 민간이냐로 구분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측면이다. 우리나라는 의료서비스가 공공과 민간 중 어느 곳에서 생산되든 간에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모든 의료기관을 대상(법 제42조 제5항에 따른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으로 그 의료서비스를 구매(법 제45조 제1항에 따른 ‘환산지수 계약’, WHO나 OECD 보고서는 purchasing이라고 표현)하여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WHO(사회의료보험제도 개발 지침서, 2009)는 우리나라처럼 사회의료보험 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지 않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가에게 “사회의료보험이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는 굳이 국가 소유의 공공병원을 설립할 필요가 없다”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립고등학교(2022년 약 40%)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사교육(또는 교육민영화)이라고 하지 않고 공교육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사립학교 교사의 인건비와 학교 운영비를 국가가 부담(구매)하여 국민에게 제공). 이제 논쟁의 핵심을 짚어보기로 한다. 먼저 성남의료원은 이미 2016년에 설립되었지만 다시 한번 ‘설립’의 의미를 톺아보고자 한다. ‘설립’의 타당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병상(bed)이라는 의료자원이 성남시민에게 부족한가 아니면 넘쳐나는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이 성남지역사회에서 전개되던 2004년의 성남지역은 병상공급과잉지역으로 분류되었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04). 또한 2019년말 현재 통계청 등의 자료에 따른 성남지역의 ‘인구천명당 병상수 지표’는 10.4개이며, 이는 경기도 31개 기초자치단체 중 성남시 인구 규모와 비슷한 도시인 수원시(9.6개), 고양시(11.8개), 용인시(7.9개) 등과 비교할 때 부족하다고 볼 수 없다(요양병원 등의 병상을 제외한 급성병상기준 지표는 용인 2.5개, 수원 5.3개, 고양 5.6개, 성남 7.1개). 다음은 성남의료원의 ‘운영’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의료서비스 제공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의료의 질(quality)’이며 그밖에 조직(의료기관 설립 형태), 진료비 등은 수단에 불과하다”는 WHO보고서(네덜란드 의료개혁, 2021)는 좋은 참고가 된다. 의료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의료인력이다. 즉 명의(名醫)라고 불릴 수 있는 의료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성남시의료원은 유능한 의료인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남의료원이 아무리 첨단 의료장비를 잘 갖추고 다른 민간의료기관보다 진료비를 조금 더 저렴하게 한다 하더라도 의료의 질이 확보되지 않아 의료수요자(성남시민)에게 외면을 받으면 운영의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설립의 의미도 없다. 서두에 말했지만 성남지역사회에서 성남의료원에 관한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고 어쩌면 앞으로 영원하게 진행될지 모른다. 끝없이 진행될 이 논쟁이 좀 더 생산적이고 효과적으로 진행이 되기 위해서는 성남시민(의료수요자)의 의료이용 실태 등에 대해 심층적으로 조사·분석할 필요가 있다. 성남지역사회의 의료자원(병상, 의료인력 등)에 관한 현황과 성남시민(의료수요자)의 의료이용실태(장애인, 의료급여수급자, 건강보험수급자 등으로 구분하여 의료기관 이용 현황(성남지역 및 성남외지역), 교통수단 및 교통비, 진료비(비급여진료비 포함))를 매년 조사·분석하여 공개하는 것은 논쟁자 간에 서로 신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김정덕 대한아동병원협회 정책연구실장·보건학박사

[천자춘추] 오늘, 지혜와 고민이 필요하다

11월의 바람 속에는 처연함이 묻어 있다. 포도(鋪道) 위를 가르는 바람들은 가을 잔볕들의 건조한 따스함마저 완전히 밀어내고 있다. 사방이 바람 속이다.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코로나 이후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고 소상공인들의 한숨은 더 깊어 가고 있다. 대책 없는 열정으로 자기 작업에 전념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예술가로서 딱히 먹고사는 일에 욕심 부리면 안 될 것 같은 그 알량한 자존심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자 했던 그들은 이 현실에서 어떤 꿈을 꿔야 하는지조차 막연하다. 국가적 재난과 치솟는 물가, 나라 밖 전쟁으로 인한 경제는 극한으로 치닫는데 정치인들은 그들만의 정쟁으로 종작 없다. 하루하루 끼니처럼 절망을 삼켜 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위로는 시간의 더께만큼 상처를 더 단단하게 다져내라는 강요만 같다. 게다가 올 추위는 혹독할 거라는 예보다. 예술가들의 두려움을 막아낼 실낱 같은 빛은 없을까. 얼마 전 경기도의회가 ‘경기도교육청 학교문화예술교육지원조례’를 개정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에선 문화예술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학교예술교육의 범주를 ‘예술’이라는 프레임에 넣어 형식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가시화된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양적으로만 비대해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전문예술인들의 부재라고 한다. 오히려 교육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다양한데 그것을 교육과 연계해 예술로 접목시킬 수 있는 역량 있는 예술교육가의 참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번에 개정한 조례 6조 1항 6호에 보면 ‘지역사회연계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운영·지원’ 하는 내용이 나와 있다. 지역 중심의 특성화된 예술교육은 지역을 성장시키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오히려 쉽게 풀 수 있다.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예술세계와 접목한 예술교육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역사회와 연계한 예술교육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들이 가장 잘 창출해낼 수 있다. 그들이 사는 삶터를 이해하고 지역의 역사적 가치와 지역 교육력에 가장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질 사람들이 지역 예술가들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고유성이나 정체성을 예술로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기회다. 예술교육의 질적 성장과 지역형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거버넌스이며 연대(solidarite)이고, 상생이다. 찬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오늘, 모두가 따스해질 수 있는 지혜와 고민이 필요하다. 이하경 한국예총 수원지회 수석부회장

[천자춘추] 노포의 경영전략

최근 물가가 많이 올라 서민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지난 2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10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도에 비해 5.7% 상승했다. 특히 외식업물가는 지난해보다 8.9%나 올라 서민들의 주머니를 더욱 가볍게 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의 식당도 얼마 전 학식 가격을 500원을 인상해 5천~5천500원이 되었다. 그래도 캠퍼스 밖에 비하면 싼 가격이어서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학교 식당을 감사하게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저녁이다. 교내식당에서 저녁은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간 수업과 연구 때문에, 학교에 있어야 하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학교 밖 식당을 이용하는데 외식 가격이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특히 더치페이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세대는 여럿이 식사하는 것이 은근히 더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구도심에 위치한 중국집 노포를 방문했다. 그런데 이 식당은 메뉴가 일반 중국집과는 달랐다. 기본 메뉴는 짜장면, 우동, 짬뽕, 볶음밥뿐이었다. 그 외 확장 메뉴로 간짜장, 짬뽕밥, 새우볶음밥이 다였다. 7, 8개에 불과했다. 그 흔한 탕수육도 없었다. 그 대신 가격은 착했다. 우리 학교 근처보다 1천원 이상 저렴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거창하게 경영학 이론을 끌어다 대지 않아도, 대표님은 전략적 결정을 한 것이다. 식사 후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봤는데, 대표님은 불경기를 이겨내기 위해 20개가 넘던 메뉴를 과감하게 줄이고 핵심 메뉴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하신다. 단가가 낮아지는 대신 회전율을 높여 수익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나는 다음 날 학교 수업에서 이 노포의 사례를 학생들과 공유했다. 인플레이션의 시대, 모두가 가격을 올릴 때 부득이하게 같아 따라 올리기보다는 원가절감 요인을 찾아내 가격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 가게가 노포가 된 이면에는 대표님의 전략적 현명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국집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을 것 같다. 김재호 청운대 글로벌무역학과 교수

[천자춘추] 복지국가란

한국 사회에서 사회복지는 이제 대중적인 언어가 되고 있고, 모든 분야의 처음과 끝에서 마중물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인간의 삶이란 그 자체가 복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복지는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있으므로 사회복지로 총칭하는 것이다. 사회복지 실천은 사회복지가 현장에서 실천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사회복지는 인간의 생애 주기에서 나타나는 각종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적 기능을 원만히 수행하도록 돕는 실천적 활동이다. 사회복지 실천은 사회관계에 대한 올바른 질서를 추구하면서 사회가 인간의 거주와 발전을 위해 적절한 질서는 물론이고 사회복지사가 개인, 가족, 집단, 조직, 지역사회 등 클라이언트 체계를 대상으로 각각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전문적인 사회복지 실천 활동이다. 사회복지가 다뤄지는 실천 현장은 다양한 문제 영역에서 합리적인 접근 방법으로 문제와 욕구를 가진 클라이언트를 위한 전문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이러한 사회복지 실천 현장에서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에 대한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지난 10월29일 발생한 참사로 온 국민과 유가족들이 크나큰 슬픔을 겪고 있으며, 국민들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이는 복지국가의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복지국가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복지국가란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해 발생한 사회 문제에 대해 국가가 개입, 정부의 예산과 기구를 동원해 모든 국민의 안전을 보장 받도록 하는 국가를 말한다. 즉, 복지국가는 모든 국민이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받고, 완전고용과 기회의 균등을 목표로 하는 정책을 실시하는 국가를 말한다. 그러나 10·29 참사는 선진국형 복지국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후진국형 인재(人災)다. 국가는 10·29 참사를 인재로 인정하고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국민과 유족들에게 2차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문성을 가진 사회복지 실천가들을 적소에 파견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국가의 가장 큰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34조)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해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통과 개인 이기주의가 아닌 온 나라가 애도의 마음을 가지고 유족들과 슬픔을 함께하는 것이며, 그 중심에는 전문성을 가진 사회복지 실천가들의 역할이 더더욱 필요한 시기다. 김영철 디딤병원 총괄본부장

[천차춘추] 생태계교란생물을 생각하며

2015년 7월 베트남에서 어디서 본 듯한 식물을 맞이했다. 낯익은, 어디서 봤더라…아하! 귀화식물인 도깨비가지구나. 같이 간 베트남 친구에게 혹시 이 풀을 아냐고 물어보니 베트남에서는 치통에 쓰인다고 한다. 아하! 그렇구나. 이 풀도 쓰임이 있었구나. 북미 원산의 귀화식물인 도깨비가지는 1978년에 국내에서 처음 보고됐고 2002년에 ‘생태계교란생물’로 지정됐다. ‘생태계교란생물’이란 유입주의 생물 및 외래생물 중 생태계의 균형을 교란하거나 교란할 우려가 있는 생물 또는 유입주의 생물이나 외래생물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생물 중 특정 지역에서 생태계의 균형을 교란하거나 교란할 우려가 있는 생물이 대상이다. 이름만 들어도 왠지 무시무시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느껴진다. 실제로 이 식물의 줄기에는 가시가 있어 찔리면 아프고 식물자체에 독성이 있어 소나 말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번식력은 굉장히 강해 다른 나라에서도 요주의 생물로 구분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귀화식물이 그렇듯 척박한 땅에서도 잘자라고 더위에 강하고 가뭄에 대한 내성도 있다. 이렇다 보니 개발지에서 많이 발견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34종의 생태계교란생물이 지정돼 있다. 이들은 목적을 두고 수입하거나 개인이 키우다 버려지거나 여러 경로를 통해 유입된 동∙식물이다. 해서 이들을 제거하기 위한 사업들이 펼쳐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싶어 들어온 것이 아닌데 들여와 놓고 쓸모없어 지니 제거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나라 생태계와 맞지 않으니 피해를 주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들이 정착해서 살 수 있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은 매우 아쉽다. 한 예로 10여년 전 수원의 하천에서 나일틸라피아라는 물고기가 조사됐다. 나일틸라피아는 아프리카 태생으로 1955년 태국에서 수입하여 양식을 했다. 양식을 위해 수입한 물고기가 어찌된 일인지 하천에서 번식을 하게 된 것이다. 나일틸라피아는 10℃가 되는 낮은 수온에서는 살지 못한다. 우리나라 겨울철 하천의 수온에서는 살지 못하는 것이다. 원인을 찾아보니 하천유지용수를 위해 방류된 처리수의 온도가 따뜻하여 겨울동안은 방류구 근처에서 살다가 수온이 따뜻해지면 이동을 하는 것이었다. 이는 방류수의 온도를 낮추면 되는 일이라 처리하는 기업과 행정과 논의를 하여 겨울동안만 처리수를 낮추는 처리를 했다. 지금 수원의 하천에는 나일틸라피아는 살고 있지 않다. 사실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교란시키는 일이 지정된 생물에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무분별하게 제거하는 일은 자칫 역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처리해야 안정된 생태계를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홍은화 수원환경운동센터 사무국장

[천자춘추] 언론의 역할

생각과 말이 삶을 지배한다.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도 달라진다. 한 국가의 품격이나 문화도 마찬가지다. 그 속에 살고 있는 국민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갈리게 된다. 예전에 목숨 걸고 지키고자 했던 가치, 민주주의. 요즘은 너무 당연시돼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民主’는 ‘民’이 주인이라는 말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보편적인 용어이기도 하다.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기본이념을 머릿속에 넣고 있다. 하지만 새삼 이 말을 곱씹게 되는 것은 요즘의 정치 상황이나 우리들의 삶 속에 퍼져 있는 각종 행동이 과연 우리가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민주라는 가치와 상통하는지 의문이 든다.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데, 초심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이 크다. 위정자들의 언어와 행동 속에 비치는 모습을 보면 껍데기만 수용하고 내용은 저버린 지 오래인 듯하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정부는 과연 국민을 주인으로 받들고 있는가. 지방정부는 시민 혹은 주민을 주인으로 받들고 있는가. 정부나 자치단체는 고사하고 국민이 선택한 정치가들조차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국민을 주인으로 받들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태원 참사를 보면 과연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네 탓만 있고 내 탓이 없다.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 중 하나가 다수결의 원칙이요, 권리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다. 하지만 위정자들은 다수결의 원칙을 부정한다. 권리만 추구하지 책임지는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도 있다. 권력욕에 찌든 지배층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더러운 입을 통해 배설물을 쏟아내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은 총체적으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옳은 것이 그른 것이 되고, 잘못된 것이 옳은 것이라며 막무가내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일반인의 삶 속으로 녹아든다. 아이들의 놀이, 문화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정말로 심각하다 아니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래 국가가 나아갈 방향이 권력욕에 찌든 상류층 모리배들에 의해 틀어지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거르고 걸러 국민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자정이 필요하다. 스스로 옳은 것이 옳은 것이요, 그른 것은 그른 것임을 알고 실천하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박문신 여주지역자활센터장

[천자춘추] 클래식 대중화와 시립교향단의 역할

지난 6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또 한 명의 ‘K-클래식 스타’의 등장이라며 열광했다. 지금도 여러 공연장에서 수많은 연주자들이 무대를 오르내리고 있는 가운데 임윤찬같이 새롭게 티켓파워를 갖는 연주자의 등장은 공연기획사들과 공연기획자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 몇 주 전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내한공연은 티켓 오픈 3분 만에 전석 매진되는 티켓파워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매년 들려오는 세계적인 권위의 콩쿠르에서 대한민국 연주자들의 우승 소식은 이제 일상이 됐고 대한민국이 세계 클래식음악의 중심이 됐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이를 보는 많은 공연 관계자들은 복잡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국내의 클래식 공연 시장만큼 명암이 크게 교차하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요즘 클래식 스타들의 공연 티켓은 한 장에 10만원이 훌쩍 넘어 가면서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 문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4인 가족이 함께 즐긴다면 연간 행사인 휴가비와 맞먹는 예산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재 공연 시장에는 이미 팬덤이 형성돼 매진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는 일부 스타 연주자에게만 국한된다는 사실이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가운데 1970, 80년대 급격히 늘어난 음악대학은 실업률이 가장 높은 곳이 돼 갈수록 지망생이 줄어들고 있다. 지금 클래식음악 시장은 오직 엘리트 예술가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그래도 우리 주변에는 도립예술단, 시립예술단의 이름으로 지역에서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예술단체들이 내일의 임윤찬을 발굴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무대에 올리며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선보이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또 공공단체나 기관들은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영화 한 편 볼 수 있는 가격으로 문턱을 낮춰주는 합리적인 티켓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 프로축구팀 경기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국가대표 경기만 응원하는 이들을 축구팬이라 할 수 없듯이 K-클래식의 위상은 우리 지역 시립교향악단의 공연부터 응원하며 감동 받을 때 더욱더 저력을 갖게 될 것이다. 류성근 성남아트센터 예술사업본부장

[천자춘추] 일상에 깃든 ‘인연’이란 기회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피천득 시인이 한 말이다. 사람은 아무리 잘나도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좋든 싫든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영화 같은 특별한 인연, 특별한 순간을 꿈꾸지만 사실 이미 그런 기회는 우리 삶에 수도 없이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간호사의 안내를 따라 한 병실로 들어갔는데 이미 그곳에는 다른 환자가 있었고, 보이차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아는 분 중에도 보이차를 참 좋아하는 분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분이 생각나 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정말로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내가 아는 보이차를 좋아하는 분을 그 환자분 역시 알고 계셨다. 심지어 그분은 언젠가 나와 이 환자분을 서로 소개해 줄 생각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더욱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 환자분이 머물던 병실은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간호사의 실수로 내가 그 병실에 들어갔고, 그 병실에 계신 분은 거짓말처럼 내가 알고 있는 분을 함께 알고 계셨다. 그날의 좋은 인연으로 그 환자분과 나는 지금 함께 여러 가지 좋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소설로 쓸 만한 일이 내 삶에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연의 힘이다.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을 한다. ‘내가 당황해서 바로 병실을 나왔더라면’, ‘보이차 얘기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이 조금 더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이 더 흥미로워지고 풍성해지지 않을까. 다음은 그동안 내가 인연에 대해 깨달은 두 가지 통찰이다. 첫째, 인연은 일상에 숨어 있다. 인연은 언제, 어디서 오겠다고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 일상 속에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 인연의 기회가 열려 있다. 오늘 찾아올 수많은 인연을 열린 마음과 뜨인 눈으로 살피며 살아가면 피천득 시인의 말처럼 옷깃만 스치는 인연도 살려낼 수 있다. 둘째, 사랑이 인연을 만든다. 계산적인 사람은 인연을 끊어내기만 한다. ‘친구의 결점까지 사랑하라’는 이탈리아 속담처럼, 지금 보이는 약간의 단점도 사랑으로 덮어주자. 나와의 인연을 통해 그 사람이나 나의 인생이 아름답게 꽃피울지 모른다. 훗날 내가 정말 힘들 때 큰 도움을 주는 거목처럼 다가올지 모른다. 일어나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것 또한 인연이 가진 묘한 힘이다. 조승원 한국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 이사

[천자춘추] 비핵화보다 ‘핵 확장 억제’ 주력할 때

북한이 연일 도발하고 있다. 그 도발 수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런 북한의 도발은 분명 과거 패턴에서 벗어나 있다. 과거의 경우, 한미가 연합훈련을 할 동안에는 도발하지 않았다. 그만큼 한미 연합훈련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한미가 연합훈련을 하고 있는 중에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이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 중요한 이유로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자신감 때문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핵을 개발하고 있을 당시에는 한미 연합훈련에 저항할 수단이 없었지만, 이제는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오히려 연합훈련에 대항해 우리와 미국에 협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이른바 대북 포용 정책이 효과적일지 의구심이 든다. 김대중 정권 당시의 대북 포용 정책은 의미가 있을 수 있었다. 당시는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있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당근을 주면서 ‘핵 개발’을 포기하라고 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현재와 같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는 ‘핵 개발이 아닌,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해야 하는데, 당근으로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개발된 핵무기를 포기한 경우는 우크라이나 사례 정도인데, 우크라이나는 자체적으로 핵을 개발해 핵무기를 보유했던 것이 아니라 소련이 붕괴하면서 소련이 우크라이나에 배치한 핵무기를 ‘졸지에’ 보유하게 된 것이어서, 현재 북한의 상황과 비교하기는 힘들다. 결국 자기가 가진 무기를 스스로 버린 나라는 없다는 것인데, 그런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이제 ‘한반도 비핵화’보다는 ‘핵 확장 억제’에 더 치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25년 전에 유효했던 정책이 지금도 유효할 것이라는 ‘과거 지향적 사고’를 버리고,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는 상태에서 대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 차원에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핵 공유’에 대한 여론은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점은, 미국은 결코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될 경우, 오히려 우리의 핵 보유 시도를 저지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미국의 입장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외교적 지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

[천자춘추] 분노에 이유 타당한 경우 드물다

지난 주말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로 온 국민이 가슴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전사고가 터지면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참사의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에 대한 주문이 무분별하게 쏟아진다. 사고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의 잘못인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더 세게 밀라고 했던 사람 때문이라는 의견부터 정부나 경찰의 무능 때문이라는 의견, 심지어 핼러윈 축제에 참여한 MZ세대(희생자들도 포함됨에도 불구하고)의 문제라는 세대(世代) 비난론까지. 게다가 참사 발생 초반 애도 분위기 때문에 잠잠했던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참사의 책임 여부나 소재에 대해 마구잡이식 주장을 배설(?)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시민들의 슬픔이나 아픔과 관계없이 오로지 정치적 계산에서 판단할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런 정쟁(政爭)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우리에게 절망을 넘어 환멸을 느끼게 한다. 너무 참담한 사고였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슬픔이 큰 사고였기에 우리는 참사 발생에 책임이 있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분노의 대상을 찾으려고 한다. 오죽 힘들면 그럴까.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냉정해져야 한다. 이 분노감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따져 봐야 한다. “분노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지만, 이유가 타당한 경우는 드물다”라는 프랭클린의 말처럼, 자칫 잘못하면 분노가 엉뚱한 방향으로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처럼 끔찍한 일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우울감 또는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같이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불안감은 분노감(또는 분노감 조장)에 쉽게 전염된다. 이럴 때 우리는 “미움의 이유는 정확해야 한다”는 영국의 시인 오든의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미움의 대상(참사 유발자)이나 미워하는 근거(참사의 원인)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분풀이하듯 쏟아내는 말이나 글은 결국 우리의 슬픔을 강화시키고 아픔을 연장시킬 뿐이다. 감정은 휘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누그러진다고 한다. 분노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의 분노감을 개인적 원망이나 진영 논리에 의해 무가치한 (분노)감정으로 휘발(揮發)시킬 수 없다. 이는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그토록 아픈 대가를 치르면서 만들어진 이 분노 감정을 이번 참사와 같은 비극을 막고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소중한 계기로 승화시켜야만 한다. 이럴 때 비로소 공분(公憤)이 집단지성에 기반한 진정한 사회운동의 동력으로 작동될 수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최순종 경기대 행정복지상담대학원 원장

[천자춘추] 나는 화, 내는 화

화에는 ‘나는 화와 내는 화’가 있다. ‘나는 화’는 산에 불이 나는 것과 같아서 피할 수가 없으나 ‘내는 화’는 내가 산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아서 피할 수가 있다. 화가 많은 나에게는 참 공감하면서 동의(同意)가 되는 말씀이다. ‘화’란 사전적 의미로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이라 한다. 살아있는 생물은 식물이나 동물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표시를 낸다. 식물은 빛을 너무 많이 받거나 적게 받을 때, 수분을 너무 많게 섭취하거나 적게 섭취할 때, 광합성작용이 방해 받을 때에는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재미있는 실험결과가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에서 식물에게 칼집을 내고 10㎝ 거리에서 소리를 측정한 결과 10~100㎑의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음역대의 비명이 들렸다고 한다. 이렇게 식물도 받은 스트레스를 표출하는데 수 만 가지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가 있을까? 최근 순간적으로 욱해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서 발생한 폭행과 폭언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생면부지의 사람에게나 가족이나 친구와 직장동료 등 친밀한 이에게도 시도 때도 없이 장소에 아랑곳하지 않고 화를 낸다.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언짢은 감정을 통제하기 힘든 것은 성인(聖人)이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일이다. 자신에 대한 욕이나 비난, 다른 사람과의 비교, 강압적 지시나 무시, 배려 없는 매너 등을 접하게 되면 화가 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처럼 화가 나는 것은 신 레몬을 입에 넣었을 때 침이 나오는 것처럼 ‘무조건적 반사행위’와 같지 않을까? 이는 학습과 경험이 없어도 반사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며 외부의 행동으로 표출되기 전의 일이다. 생각을 정화하는 필터링(filtering)을 거칠 시간이나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반면, ‘내는 화’는 ‘나는 화’를 외부로 표현하는 것이다. 화는 작은 오해나 언짢음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저 사람은 이런 말을 해도 나를 이해해 주겠지, 좀 짜증을 부려도 괜찮을 거야, 하찮은 일이야, 응석을 부리는 거야, 장난이야 등등…. 무심코 내뱉은 말이나 행동이 도가 지나치거나 상대방에게는 의도한 것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경우이다. 화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에게 더 많이, 더 자주 낸다. 함께 하는 시간과 접점(接點)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처가 크고 응어리도 오래간다. 따라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은 조심스런 언행이 필요하다. 또한, 듣는 사람은 화를 내기 전에 한 박자 쉬어 무심결에 한 행동인지, 진심인지, 해칠 의도가 있는지 등 상대방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의 지혜가 필요하다. 가끔은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훈계의 말을 하면서 오히려 점점 더 화가 증폭되는 현상을 경험한다. 화가 화를 부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급적 화는 증폭되기 전에 빨리 가라앉히는 것이 좋다. ‘화는 참으면 나를 죽이고 터뜨리면 남을 죽인다’고 한다. 화를 내는 것도 요령과 지혜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기분을 크게 상하지 않되, 그 사람의 잘못된 말이나 행위의 팩트(fact)만 지적해야 한다. 당신의 이런 말이나 행위 때문에 내가 기분 나쁘고 상처를 받았다고 차분히 설득해야 한다. 같이 화를 내면 인정받기 어렵고 싸움만 생긴다. 화를 잘 다스리고 또 화를 내었다면 빠른 시간 내에 화해를 해서 앙금이 오래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의돌 육영재단어린이회관 사무국장·前 의왕시 부시장

[천자춘추] 부동산 하락기 안정적인 주택공급 필요

불과 1년여 만에 ‘영끌’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킬 만큼 과열된 주택시장이 2021년 8월부터 8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상(0.5→3.0%)으로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언론에서도 주택가격 하락과 미분양 공포 심리를 부추기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과거 주택공급정책은 정부마다 지향하는 가치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기본적으로 냉온탕식 단기 대책을 반복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2014년 9·1대책에서는 ‘택지개발촉진법’을 폐지해 더 이상 신도시 등 대규모 공공택지를 조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공공택지 공급 감소에 따른 양질의 택지 수급 불안으로 2018년 이후 주택가격 급등 시 공급 측면의 대응을 어렵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후 정부는 각종 세제 등 수요 억제 정책으로 억누르다가 결국 2018년 9·13대책으로 수도권에 3기 신도시 등 대규모 주택공급 대책을 다시 내놓았다. 하지만 이미 주택 수급 불안에 따른 가격 상승 흐름은 막을 수 없었고, 정부는 2010년 보금자리주택 공급 시 도입했다가 사실상 폐기했던 사전청약제도를 부활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12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풍부한 유동성 및 저금리와 맞물려 전국의 주택 가격은 평균 24.5%나 상승했고 서울은 무려 31.7% 상승하는 결과를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또다시 급격히 위축되는 주택시장 상황에서 주택 공급을 다시 억제해야 할까. 주택 수급 문제는 일반적인 공산품과는 다른 주택의 고유 특성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정량의 주택은 시장의 변동성에 관계없이 장기수급 계획에 따라 꾸준히 공급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향후 인구 감소에 대응해 이참에 주택공급 물량을 대폭 축소하고 대규모 공공택지 조성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된다. 그 이유는 첫째, 주택이 아직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2020년 기준 인구 1천인당 주택 수가 412채로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평균 462채) 중 27위이고 자가보유율도 60%정도로 33위에 불과하다. 단순 계산해도 250만가구 이상을 더 공급해야 OECD 평균 수준에 겨우 도달하는 셈이다. 향후 1~2인 가구 증가를 고려할 때 주택 공급량은 더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소득과 노후 주택 증가 등으로 새 아파트, 주거입지 등 주거의 질적 상향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주택 중 2021년 현재 건설 후 20년 이상인 노후 주택이 50.2%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시간이 갈수록 이런 질적 상향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셋째, 주택 공급의 비탄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주택은 택지 확보부터 공급까지 최소 5~10년 장기간 소요되고, 좋은 입지에 수요가 몰리는 특성이 있으므로 장기적인 수급계획과 도시계획 등 관련 계획에 따라 미리 택지 확보 등 준비를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다행히 이번 정부 들어 270만가구의 주택공급 계획을 발표하는 등 공급 확대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다만 요즘과 같은 금리 급등의 비정상적 시장 여건에서는 민간 부문의 리스크 등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공공 주택 및 토지 비축 기능을 활용한 시장수급 조절 방안을 강구하거나 공공택지 조성 이후 주택 건설 단계 시기 조절 등의 보완책을 함께 강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현행 주거기본법에 근거해 운영 중인 10년 주기의 장기 주거종합계획과 연간 단위의 주거종합계획의 실효성을 강화해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주택 공급 방향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김동근 LH 경기지역본부 지역균형재생처장

[천자춘추] 무역수지 적자, 구조적 관점서 바라봐야

최근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심상치 않다. 올해 4월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선 데다 6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금년 9월까지 누적 무역 적자액도 289억 달러에 달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당분간 무역수지 적자의 개선 여지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무역적자 대부분이 에너지 수입 급증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에너지 시장 혼란이 좀처럼 안정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도 둔화세가 확연해지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장기화될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우리 수출증가율은 지난 6월 이후 한 자릿수로 꺾인 데다 주력품목인 반도체는 가격이 하락하면서 3개월 연속 수출 감소세가 유력하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불안이 더해지면서 수출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이미 얼어붙기 시작했다. 최근 무역수지 적자는 일시적인 요인이 큰 만큼 에너지 가격이 진정되는 대로 무역수지도 차차 흑자기조로 회복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무역수지 적자는 수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기존에 활발했던 수출품목에서 이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에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올해 반도체가 어려워지면서 곧바로 수출이 타격을 받았는데 이는 우리나라 수출이 얼마나 반도체 산업에 편중돼 있는지 구조적 취약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은 최대 고객인 중국이 이제는 최대 경쟁자로 떠오르며 과거처럼 무역흑자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신산업 부상 없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업종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해외 생산이 많아지면서 수출이 양적으로 늘어나기 어려워졌다. 최근 무역적자의 배경에는 결국 우리 수출산업의 경쟁력 저하 문제가 산재해 있다. 주춤한 수출동력을 다시금 끌어올려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미래 모빌리티, 우주항공, 인공지능 로봇 등 유망 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미래산업이 쑥쑥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혁파하고, 기업들의 자발적인 혁신이 가능한 생태계 구축 역시 필요하다. 최근 무역수지 적자가 우리 수출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제시했다면, 새로운 성장엔진 발굴과 기업혁신으로 대안과 해결책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무역수지가 흑자냐 적자이냐를 넘어 그 바탕에 흐르고 있는 우리 무역의 구조적 변화를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배길수 한국무역협회 경기지역본부장

[천자춘추] ‘저탄소 농업’으로 탄소중립 실천해야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산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에 의하면 2021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약 1.1도 상승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고 한반도의 기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온실가스는 에너지 분야 86.8%, 산업공정 7.9%, 농업 2.9%, 폐기물 2.4% 순으로 배출한다고 한다. 비록 농업 분야가 탄소배출 비중이 작더라도 탄소중립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농업은 기후변화에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산업이면서 탄소배출 이상으로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토양이 있기 때문이다. 토양이 비옥하면 식량 생산과 생물 다양성이 증진되고 사막화 방지 및 기후변화를 완화할 수 있다. 특히 토양 유기물의 약 58%가 탄소로 존재해 토양은 거대한 탄소저장고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농산물 생산 과정 전반에 투입되는 비료, 농약, 농자재 및 에너지 절감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온실가스 흡수원으로서 정밀하고 고도화된 토양 관리를 통해 저탄소 농업을 실천할 수 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는 국제적인 상황과 국내 정책 방향에 발맞춰 농업·농촌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경기도 농업분야 탄소중립 추진 전담반(TF)’을 지난해 4월 출범시켰다. 온실가스 저감, 저탄소 농업, 에너지 절감, 보급 확산, 실천 운동 등 5개 분과로 나눠 탄소중립 달성 신기술 개발과 현장에 필요한 기술을 보급하고 있다. 특히 저탄소 농업 실천을 위해 축산분뇨를 자원화하거나 에너지화함으로써 자원을 순환시키는 경축순환농업을 경기도청 농정해양국, 축산산림국과 함께 협업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시군 토양분석의 정확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정도관리, 스마트팜 자동관수, 토양검정에 의한 비료사용 기준 설정, 우분 이용 바이오차 개발, 유용미생물 이용 친환경 토양 관리, 기후변화 대응 재해경감 기술, 농경지 온실가스 저감 및 배출량 평가 등 관련 기술 개발과 보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농업·농촌 분야는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는 분야이면서 미래에 탄소중립이 실현되면 가장 큰 편익을 누릴 분야이기도 하다. 농업 부문의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히 식량 ‘생산’ 영역의 탄소 감축을 넘어 가공과 유통 등을 포괄한 ‘먹거리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인 저탄소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앞으로 농업이 저탄소 방식으로 탈바꿈하고 농촌에너지도 친환경적으로 전환돼 중장기적으로 탄소중립 시대로 진입하면 농업 환경과 농촌 경관이 개선되면서 농촌은 도시민이 더 많이 찾는 쉼터의 공간이 될 것이다. 농업 분야 탄소중립 실현은 그 과정이 쉽지 않은 긴 여정이 될 것이나 이제는 저탄소 농업으로 하나하나 실천해야 할 때다. 김석철 경기도농업기술원장

[천자춘추] 주소정보와 공유 모빌리티

길을 걸으면 인도 위 또는 아파트단지 내 무분별하게 방치된 전동킥보드가 자주 보인다. 교통약자인 휠체어 이용자나 점자블록에 의존해 보행하는 시각장애인들은 과연 킥보드를 피해 안전한 보행이 가능할까. 실제로 인도 위에 방치된 킥보드 때문에 휠체어는 왔던 길을 돌아가기도 하며, 점자블록에 주차된 킥보드는 시각장애인에게 보이지 않는 무기로 작용한다.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세계 모빌리티 시장이 2015년 33조원에서 2030년 1천68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공유 모빌리티 시장 또한 급격한 성장에 따라 킥보드 관련 안전사고가 증가하는 추세며 보행자 불편에 따른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련법을 개정했으며, 일부 지자체는 주차구역을 만들어 위반 시 견인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지자체별 명확한 기준 부재와 서비스업체별 다양한 주차구역 설정에 따라 실효성이 떨어지는 실정이다. 현행 도로명주소 체계에는 킥보드 주차구역을 관리할 수 있는 ‘사물주소’라는 새로운 주소정보가 존재한다. 사물주소는 버스정류소, 전기차충전소 등 공공시설물에 주소정보를 구축해 정보화 기술의 발전에 따른 플랫폼 공간과 현실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미래산업의 기준이 된다. 전동킥보드 주차구역을 사물주소라는 명확한 주소체계로 관리하면 서비스 사용자는 다양한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의 설치 없이도 주소정보를 통해 주차구역 확인이 가능하며, 내년에 활용할 예정인 전동킥보드 통합앱 구축과 연계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 서비스업체는 무분별한 주차에 따른 수거 및 재배치 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으며, 국민의 안전한 보행권 보장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촘촘하고 입체화된 주소체계 마련과 디지털 주소정보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제1차 주소정보활용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한국국토정보공사(LX)를 주소정보활용지원센터로 지정했다. LX는 국민 삶의 질 향상과 주소정보산업 발전을 위해 사물주소 확산 및 대국민 홍보 등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국민을 위한 정부 정책 실현을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다. 권경현 한국국토정보공사 경기북부지역본부장

[천자춘추] 생활예술, 교육 없는 발표 가능한가

생활예술이란 실생활의 일부분이 되는 예술, 즉 실생활에서 실용적 가치와 기능을 갖는 예술을 이른다. 생활체육이 건강 유지나 여가를 즐기기 위한 일반인의 평생 체육 활동인 것처럼 생활예술도 각 지역의 동아리 문화가 확산되고, 문화예술 활동이 늘어나면서 보편화되고 있다. 예술적 창작 활동을 하는 아마추어, 즉 일반 시민의 참여가 가능한 예술 활동을 위한 제도적 지원에 있어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의 문화자원과 연계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각 지역 동아리에도 다양한 예술 활동과 교육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나 지자체나 문화재단의 지원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터무니없는 내용도 간혹 있다. 문화예술의 주요 지원 육성 기관인 모 지자체 문화재단의 예를 들어보자. 2022년 지역예술 활동 지원 사업 공고를 보면, 전문예술과 생활예술로 이분화했다. 이는 언뜻 잘 차려진 밥상으로 보이지만 생활예술 차원에서 보면 문제도 있었다. 사업공고 내용에 ‘강사료 지급 안 됨’ 조항을 넣어 지역 동아리 단체의 발표회 지원금에 발표회 소요 비용은 지원하되 강사료는 지원될 수 없게 했다. 생활예술의 경우 이는 어불성설이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생활예술의 창작 및 활동이 전문예술인의 교육 없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생활예술 교육사업은 지역 전문예술인의 일자리 창출 및 시민 친화적인 생활예술과의 동반성장이다. 필자의 시각에서 보면 지역의 동아리 단체에서 장기간 자체적으로 잘 성장시켜온 교육 사업도 꽤 있다. 강사료가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동아리 단체에서는 회원 각자의 주머니를 열거나 강사가 재능기부 수업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런 경우 문화 다양성 증진과 생활예술 창작의 기회 확대 측면에서 ‘강사료 지원 안 됨’ 조항은 행정적 오류이자 향후 시정돼야 할 항목으로 보인다. 현재 각 지자체는 지역 간 격차 해소를 위해 문화예술의 활용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특히 생활예술 활성화로 국민 개개인의 창의성과 문화 다양성 증진, 그리고 시민의 예술적 재능을 발산할 기회를 주고 있다. 일상 속에서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그로 인한 삶의 만족도를 보면 문화예술 행정은 문화예술이 보다 다양하게 창조되도록 지원 육성하는 일이며, 이는 전문예술뿐만 아니라 생활예술 지원 체계에도 촘촘하게 반영돼야 할 것이다. 이재영 ㈔한국예총 김포지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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