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농업 현안문제 해법은 디지털농업

국내 농가인구와 경지면적은 지속적인 감소 추세에 있다. 지구 온난화 등 기후변화가 지속됨에 따라 농업의 재배여건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반면,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고품질 안전 농산물에 대한 요구는 증가하고 있다.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국내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의 비율은 42.3%에 달하며 25세부터 40세 미만의 청년 농업경영인은 0.8%에 불과해 농촌의 고령화가 심각하다. 농촌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농업노동력과 생산성의 감소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농업·농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 중 하나로 최근 ICT, 인공지능, 로봇,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과 농업이 융합된 디지털농업이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농업은 ‘정밀농업(Precision Agriculture)’, ‘스마트팜(Smart Farm)’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를 구체화하면 정밀농업기술에 지능형 네트워크와 데이터 관리도구를 결합한 스마트농업 기자재를 투입하여 농업의 지능화, 자동화를 통해 생산뿐만 아니라 유통과 소비 등 농업활동의 전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농업 데이터 활성화를 통한 농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농림축산식품부는 2020년 6월 농식품 데이터 업무 전담조직을 신설했으며, 농촌진흥청은 같은 해 11월 디지털농업추진단을 출범하고 다음 해 3월 디지털농업 촉진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농업의 디지털 전환을 앞당기기 위한 핵심과제를 선정하기도 했다. 경기도농업기술원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2021년 5월 경기디지털농업추진단을 출범하고 올 해 연구데이터의 체계적인 관리와 활용을 위한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여 벼, 콩, 장미 등의 주요 육종 작목을 대상으로 시범운영 중이다. 데이터 기반의 신품종 육성을 위한 디지털 육종 오픈랩도 조성하는 등 경기 디지털농업 기반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경기도농업기술원은 2017년부터 스마트팜 현장지원센터를 개설하여 도내 스마트팜 농가의 현장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분석하고 있는데,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농가 맞춤형 컨설팅을 추진하는 한편 농작업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한 생육 및 수확량 예측 모델 개발과 지역 여건에 맞는 스마트농업 기술 보급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녹색혁명으로 쌀 자급자족을 이루는 농업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2000년대에는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여 현재의 IT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제는 경제의 주춧돌인 농업의 혁신성장을 위하여 디지털농업의 기반을 구축해 나아갈 시기이다. 농업 R&D 기관, 관련 스타트업 기업 및 농업 현장 등의 데이터를 연결하여 새로운 가치와 빅데이터 생태계를 창출하는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고, 그동안의 시설원예와 축산 중심 디지털농업 기술개발·보급을 노지 분야로 확대해서 청년농업인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수익성과 효율성을 강화하는 등 디지털농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들어 가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김석철 경기도농업기술원장

[천자춘추] 부동산과 휴리스틱

행동경제학의 한 분야 중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용어가 있다. ‘찾아내다’ ‘발견하다’는 뜻의 그리스 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주먹구구식 셈법이나 직관적 판단, 경험과 상식에 바탕을 둔 단순하고 즉흥적인 추론을 뜻한다. 주관적 상식과 오해, 편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부동산 시장에도 휴리스틱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먼저 '대표성 오류'가 있다. 어떤 집단이나 지역을 개별적인 성향 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모호한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오류이다. "특정지역에 편향 되어 투자 등의 의사결정을 한다. 개별 필지의 좋고 나쁨은 고려대상이 아니며 단순히 어느 지역에 투자했다"이다. “난 서울에 투자했다”식이다. 서울에도 선호지역과 비선호지역이 있을 수 있다. 지역에 묻어가는 식의 투자패턴은 세월을 낚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앵커링(배의 닻)는 배의 닻처럼 사람의 마음속에 닻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거의 답습이 이에 해당된다. 과거에 성공한 투자패턴의 유지, 익숙한 지역의 선호 등이 그 예이다.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그에 대한 대처나 행동이 필요한데 예전의 성공한 방식 그대로 고집하는 경우이다. '소수의 법칙'은 특별한 경험이나 현상만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이다. 부동산시장의 경우 특정한 지역의 기사를 통해 관련 정보를 얻을 시에 긍정적인 기사, 부정적인 기사 자체를 아무런 의문이나 비판 없이 전체의 사실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어느 지역의 몇 안되는 부동산 거래만으로 지역 전체의 거래 활성화로 생각할 수 도 있다. 실제로는 가족간의 증여, 채무의 변제 등의 특수한 거래일 수도 있는데, 그러한 검증없이 소수의 현상만으로 전체를 판단 할 수 있다. '확신의 덫'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찾고 그 사실을 확인해줄 수 있는 현상만을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되는 정보나 의견에 대해서는 오히려 확률적으로 낮은, 무시해도 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개별 부동산에 대해 긍적적인 면만 확신하여 매수하고, 보유하는 경향이 강하며 그러한 확신은 본인을 제외한 모든 주변사람과 환경으로부터 공격받을 때까지 유지된다. '현상유지 편향'은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소유물에 애정과 애착을 가지며 편안해 한다. 내가 사는 지역, 내 소유의 부동산은 이런 저런 합리화를 하여 다소의 불편함 이나 의구심에도 유지하는 경향을 가진다. 현상유지 편향과 별도로 손실회피 경향은 매도 매수시의 거래 절벽을 야기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부동산시장의 휴리스틱을 극복하지 않고는 편향되거나 비 객관화된 투자를 가져오기 쉽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로 지칭되는 이들의 휴리스틱화된 의견이나 주변사람의 감상을 제거하여야 한다. 검증된 데이터의 활용과 꾸준한 관련 지식 무장이 좋은 부동산 시장분석 도구가 됨을 인식하여야 한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천자춘추] 칭찬은 고래처럼 수명도 길다

당신 또한 칭찬이나 지지의 마술을 경험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희미한 연필 글씨처럼 별것도 아닌 그 반응이 왜 이렇게 오래 가는지, 모를 일이다. 그 일은 한 마음 공부터에서 일어났다. 열흘 동안 하루 열시간 정도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자신의 내면만을 바라보기로 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개중에는 소위, 고참 서너 명이 주방 일을 도맡아서 ‘봉사’를 한다. 봉사자들은 남들보다 두 시간 먼저 일어나고 한 시간 늦게 자면서 40여 명의 식사를 열 하루 동안 챙겨야 한다. 나는 그 봉사자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수행 기간 열흘 중 닷새째 되던 날, 주방 한편에서 네 사람이 삭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십대 중반 여자가 상대를 쏘아보면서 말했다. “남기우씨, 죽을 휘젓다 말고 번번이 사라져버리면 어떡해요. 죽이 눌어붙는다고 몇번이나 말했잖아요. 오늘 아침도 새까맣게 눌어붙은 거 보셨죠!” 눈총을 받고 있는 상대는 이십 대 중반쯤 돼 보이고 낯빛이 희멀건 청년이었다. 그가 말했다. “저한테는 죽이 중요한 게 아니라 외국인들 안내가 더 중요합니다. 죽이야 좀 타면 어떻고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누군가 받아쳤다. “좋아요, 앞으로 기우씨는 외국인 안내만 해주세요. 다른 일 안 맡길 게요”. 그가 말했다. “아닙니다. 처음부터 난 주방 일도 돕기로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죽도 해야겠습니다”. 육십대 여자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정말, 젊은 사람이 말귀도 꽉 막혔네”. 나는 조용히 의자를 당겨서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사실, 나 또한 남기우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면서 압정에 찔린 듯 화가 난 적이 있었다. 남기우는 탁자 바닥에 시선을 내리깔고 무슨 말이 오든 받아칠 기세로 보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내가 말했다. “기우 씨가 외국인들 도와주는 건 우리로서는 대체 불가의 큰일이에요”. 그런 후, 계속 말을 이어갈 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남기우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가지런한 윗니가 반짝였다. 그는 나를 향해 오른손 엄지를 튕겨 올렸다. 엄지 척!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어리바리한 웃음을 지었다. 남기우가 말했다. “여기 와서 제가 처음 듣는 칭찬입니다”. 아, 칭찬! 내가 저 친구를 칭찬했던가? 어쨌든 그의 엄지 척! 한판에 나 또한 긴장이 확 풀렸다. 헤실헤실 웃음이 났다. 이 웃음이 남은 세 사람에게 퍼져가고 있음을 나는 눈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시도 때도 없이 업데이트되는 스마트 폰처럼 남기우가 날린 엄지 척!은 그 상황을 돌변시킨 신호탄이었다. 뿐만 아니라 3년여가 흐른 지금까지도 그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김성수 한국글쓰기명상협회 회장

[천자춘추] 다양함이 일상이 되도록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온 딸이 게이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같은 반 친구와 우연히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온 아이를 본 남자아이가 ‘게이’라고 놀렸단다. 함께 놀림 받은 친구는 몹시 기분 나빠 하며 선생님에게 일렀다. 후에 딸이 그 친구에게 게이의 의미를 물으니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거라고 했다. 두 아이의 지정성별은 여성이다. 정확한 단어의 의미를 모른 채 일단 뱉고 본 친구의 놀림은 아이의 궁금증에 꼬리를 물며 다음과 같은 물음을 일으켰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게 왜 나쁘지?’ 학생들에게 인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깨너머로 성소수자나 취약계층을 빗댄 혐오나 비하의 말을 듣는다. ‘틀딱충’이나 ‘맘충’ 같은 혐오 표현 사례를 들면 어디선가 쿡쿡거리는 웃음이 들리기도 한다. 그럴 때 새어나간 기분은 바람 빠진 과자봉지처럼 눅눅하다. 혐오는 이 사회를 지배하는 언어 중 하나다. 보편성과 정상성이 만연한 사회 구조 속에 힘없는 사람들은 여러 모양으로 난도 당한다. ‘혐오와 수치심’의 저자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는 비합리적 집단 편견의 원천이 돼 특정집단 배척을 위한 사회적 무기가 된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몸 안에 있는 악취, 불결함 등의 이미지를 취약계층에 부과함으로 그들보다 나은 인간임을 과시한다. 사회적 편견은 강자와 집단의 언어로 구성돼 작동한다. 혐오는 사회적 편견과 문화적 구성, 분위기로 공기 중에 떠돈다.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공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본능적으로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안다. 눈치는 약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시트콤 ‘프렌즈’는 레즈비언 커플이 서사의 한 축을 차지했다. 가까운 예로 2009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ABC 채널에서 방영된 시트콤 ‘모던 패밀리’는 다양한 인종과 동성애, 입양으로 구성된 가족 형태가 당연하게 등장한다. 우리나라도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이전보다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지만 인물 대부분이 맞닥뜨린 현실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벽이다. 2000년도에 시작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올해도 7월15일에서 31일까지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무사히 진행됐다. 행사 기간에 쏟아지는 비도 ‘흠뻑쇼’라 부르며 자축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코로나로 인해 못 보거나 숨겨졌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반가움으로 뒤섞여 있었다. 한정된 해방감은 여전히 갇혀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어린 시절에 각인된 사회적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편견과 혐오의 시선 안에 고립된 존재들이 여전히 숨은 그림처럼 살고 있다. 성소수자들이 일상을 축제처럼 살아갈 날을 앞당기는 것은 그들과 더불어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고 참여하는 우리의 몫이다. 정서희 인권교육온다 활동가

[천자춘추] 세상은 향유하는 자가 주인이다

나와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는 지구별의 이웃은 79억명쯤 된다. 이 79억명이 마치 같은 여객선에 실려가듯이 같은 시간대를 흘러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79억명은 100년쯤 시간이 흐르면 모두 이 지구별을 떠날 것이고 우리가 살았던 같은 공간에서 우리의 후세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지구별은 우리 인간들이 순연하면서 살아가는 시간여행지다. 이 지구별이란 여객선에는 누구나 무료로 승선한다. 그리고 여객선에 비치된 모든 것들은 무료로 주어진 것이고 다만 하선할 때 원래 주어진 모습 그대로 놓고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지구별을 구성하고 있는 하늘, 별, 바람, 숲, 바다와 꽃들.... 그리고 함께 살아갈 이웃들까지도 다 무료로 주어진 것이다. 즉, 이 지구별은 우리들이 무료로 맘껏 사용하다가 궁극에는 다음 여행자에게 물려줘야 하는 빌려쓰는 ‘전세별’이다. 빌려쓰는 물건에는 나의 소유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극히 미미한 시간 동안 빌려서 사용하는 이 지구별에서의 소유가 마치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정 안타까운 착각이다. 현대의 과학은 우주의 나이가 138억살이고 지구의 나이는 약 46억살이라 한다. 지구별의 시간과 비교하면 찰나인 약 100년이란 시간을 나는 이 지구별에 살다가 돌아가는 것이다. ‘죽음’을 명쾌하게 정리하면 삶이 명쾌해지듯이 이러한 찰나의 삶, 빌려쓰는 지구별의 숙명을 명쾌하게 이해하면 삶의 태도 또한 명쾌해진다. 이처럼 찰나의 기적같은 나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기에 순간순간이 소중한 것이고 지구별을 함께 빌려쓰는 나와 같은 시간대의 여행객들 역시 귀한 이웃인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다가 돌려줘야 하는 이 별은 대대손손 빌려쓰는 전세별이기에 이 지구별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어느 개인의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이웃들이 함께 향유할 대상인 것이고 그러기에 향유하는 자가 곧 주인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소유가 아닌 향유의 대상임을 분명히 정리하고 부질없는 작은 소유에 집착하지 말고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인연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할 것이다. 남상민 아티스트·㈔한국문화재디지털보전협회장

[천자춘추] 뷰카시대 살아갈 준비

변동성(Volatility)과 불확실성(Uncertainty), 그리고 복잡성(Complexity)과 모호성(Ambiguity). 최근 종종 보이는 뷰카(VUCA)라는 말은 사실상 냉전 이후,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유동적인 대응 태세와 경각심이 요구되는 상황을 나타내는 군사용어로서 대두 되었던 개념이다. 그러나 이제는 불확실하고 복잡하고 모호한 상황 아래, 새로운 위험과 도전이 도래하는 글로벌 정치 및 경제, 사회 문화에 두루두루 방대하게 적용되어, 작금을 가리켜 뷰카(VUCA)시대로 명명하기까지 한다. 특히 기후위기, 코로나 등의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 식량 안보 위기와 지방 소멸 위기 등,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겪어가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4차산업혁명을 통한 기술 발전은 더더욱 고도로 진화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불확실성과 복잡성과 모호성과 변동성은 더더욱 확대되어만 가고 있다. 이러한 뷰카(VUCA)시대를 살아가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우선 변동성과 불확실성 그리고 복잡성과 모호성 그 자체를 즐기기까지는 못하더라도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도, 한 사람에게 하나의 정체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다수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일상적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경계의 모호함과 수시로 변화할 수 있는 현상들에 당황하지 않고, 그 흐름에 자연스레 올라탈 수 있다. 한편,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과제를 발견하고 해답을 찾는 역량이 요구될 것이다. 혼자서 성실하고 열심히 고군분투하기보다는, 이리저리 충돌도 겪어가며,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협력하고 지혜와 힘을 모으는 것이 필수적인 핵심역량이 될 것이다. 이는 정치적 리더십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한 사람의 백마 탄 영웅이 초연히 홀로 나타나서 ‘나를 따르라’식의 일방적 리더십이 아니라, 인간 이해에 탁월하고, 동료들의 역량을 신뢰하고 존중하며, 각각의 역량이 최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함께 갑시다’의 수평적 리더십이 필요해지는 시대이다. 불편한 갈등을 애써 숨기거나 제거하려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직면하고 조정하는 능력이 핵심역량으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불확실한 상황들과 복잡한 요소들을 전체적이고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되, 섬세하고 디테일한 접근 방법을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예측불가능한 상황에 유연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더 중요하다.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담대한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면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연대하고 설득하고 협력할 수 있는 행동하는 정치 지도자가 지금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김보람 한국지방자치학회 연구이사

[천자춘추] 디지털트윈, 지속가능 ESG 기술

미국 글로벌 자산투자기관들이 ESG가 미흡한 기관에는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실제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화석연료 매출이 25%가 넘는 기업의 채권과 주식을 처분했다. 무디스 등 글로벌 신용평가기관도 기업의 ESG 역량을 중요한 평가지표로 활용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ESG는 기업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ESG 전문가 양성 교육과정이 늘어나고, ESG 전략 컨설팅을 하거나 ESG 보고서 발간을 위해 전문가 도움을 받는 기업과 기관도 늘고 있다. 이처럼 ESG는 기업경영의 화두이자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ESG경영을 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이제는 ESG에 대해 풍월을 읊을 정도로 친숙해졌지만, 정작 ESG경영이 왜 필요한지 명확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답은 2004년 이니셔티브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유엔이 투자자와 함께 ESG를 강조한 명확한 이유가 적시되어 있다. 세계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에서 환경적, 사회적, 거버넌스 이슈를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기업이 성공적으로 경쟁하는 데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즉 주주가치, 바로 ‘투자자의 가치’를 높일 수 있고 유엔이 1972년 주제로 삼았던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올바른 ESG경영을 위해서는 올바른 ESG 지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ESG 지표가 경영, 투자, 정보공개 등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외에 수백 개의 ESG 지표가 난립하고 있어 기관별로 적지 않은 혼란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K-ESG 가이드 라인’을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환경 경영, 사회가치 창출, 지배구조 건전성 확보 등을 평가해 지속가능한 경영 문화 확산에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기관별로 ESG경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이를 구현하는 전사적 시스템 정비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는 지적사업과 공간정보사업을 수행하는 국토교통부 산하 준정부기관이다. 지난해 ESG경영을 선포한 LX공사는 디지털트윈 기반의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도시·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디지털트윈은 현실과 똑같은 디지털 쌍둥이를 가상세계에 연동되게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책결정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기술이다. 앞서 LX공사는 18년부터 전주시와 함께 ‘디지털트윈 표준모델’을 구축, 환경·사회문제 해결에 나섰다. 먼저 폭염과 미세먼지가 심한 전주시에 도심숲 조성을 위해 디지털트윈 기반의 행정 서비스 모델을 제안했다. 또한 하천에 센서를 설치해 수질 관리와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서비스도 구축했다. 특히 LX디지털트윈 표준모델이 미래지향적 ESG 모델인 것은 ‘협력형 모델’을 토대로 구축됐기 때문이다. 생활실험실인 ‘리빙랩’을 마련해 산·학·연·관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정책 아이디어에 반영함으로써 도시문제 해결을 제안했다. 이처럼 환경적 가치를 중시하는 국민들의 참여를 유도해 ESG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고 공사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LX공사는 ㈜한글과컴퓨터와 함께 전주시 디지털트윈 표준모델을 구축하고 서비스 완성도를 높이는 데 노력했다. 이처럼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력해 제품과 서비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개방형 혁신을 이끌었다. 이제 LX공사는 국토교통부로부터 지정된‘디지털 트윈국토 시범사업 관리기관’으로서 전국에 디지털트윈을 확대하는 중추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LX경기북부지역본부에서도 양평군과 함께 스마트시티IN 양평 플랫폼 구축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디지털트윈 모델을 구축해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 플랫폼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디지털트윈국토’는 재난안전, 교통, 사회복지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으로서 부각될 것이다. BTS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좌절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로스트 제너레이션’이 아닌 ‘웰컴 제너레이션’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팬데믹 이후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아직 ESG경영이 걸음마 단계에 있지만 LX 디지털트윈이라는 디지털 기술이 ESG경영의 선한 영향력의 구심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기업, 지속가능한 사회, 지속가능한 인류, 지속가능한 지구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공공기관으로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선한 영향력 확산에 앞장서겠다. 권경현 한국국토정보공사 경기북부지역본부장

[천자춘추] 한국외교, 합종연횡의 함정에 갇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제 정치는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같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겪어왔다. 기존의 강대국은 자신을 중심으로 국제 사회의 현상을 유지하려 하고 신흥 강대국은 이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투쟁이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왔다. 그 사이에 있는 약소국들은 생존과 발전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는데 중국의 춘추전국 말기에 등장했던 ‘합종연횡’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얘기할 수 있다. 합종은 서쪽의 강대국인 진나라와 동쪽의 강대국인 제나라 사이에서 약소국들이 서로 연합하여 생존을 모색한 전략적 제휴이다. 한편 연횡은 훗날 강대국인 진나라가 다른 국가들의 연합을 깨뜨리는 전략을 가리킨다. 올해는 한중 양국의 국교수립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지금의 양국 관계는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대만 문제, 북한의 핵개발, 양국 국민의 불신과 적대감의 상승 등 어느 하나 편하게 보이는 것이 없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에서 트럼프와 바이든 정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중국을 포위하는 그랜드 전략을 수립하였다.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pivot to Asia)’으로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무역 제재를 통해 미중무역전쟁을 촉발시켰다. 바이든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도 태평양 경제 프레임 워크(IPEF)’의 출범을 발표하였고,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하여 중국을 자극하였다. 중국은 바로 반발하면서 대만을 포위하고 항공모함과 전투기를 동원하여 대만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도 항공모함을 곧 대만쪽으로 파견할 것을 선언하면서 양안관계의 긴장을 높이고 있다. 또 미국은 반도체 동맹으로 불리는 ‘칩4 동맹’을 발표하였고 한국에게는 8월까지 답변을 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칩4동맹은 미국이 설계하고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며, 일본이 소재와 부품을 공급하고 대만이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담당하여 국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이후 한국에 대한 다양한 제재와 압력을 가하고 있고 ‘3불 1한’을 강요하고 있다. 3불은 한국 정부가 사드를 더 이상 추가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와 한미일 군사동맹에 불참하는 것이며, 1한은 기존 사드의 운용을 제한하라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갈등의 지속은 합종연횡과 같이 한국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의 외교정책은 어떤 방향에서 접근해야 할 것인가? 지금 한국 정부가 선택해야 하는 올바른 외교정책은 ‘국익 우선주의’를 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익에 따른 올바른 외교정책은 무엇인가? 정부와 정권의 이익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유지와 국민의 안전, 국가의 발전이 외교의 원칙이 되어 노(No)와 예스(Yes)가 분명한 외교정책을 수립해야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박기철 평택대 국제물류대학 중국학과 교수

[천자춘추] 관중(管仲)에게 배우는 민생정치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라고 할 정도로 ‘포숙아(鮑叔牙)’와의 우정으로 유명한 ‘관포지교(管鮑之交)’에 등장하는 ‘관중(管仲)’(BC725 ~ BC645), 그는 어지럽고 혼란한 춘추전국시대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도와 그를 춘추 5패 가운데 최초의 패자(覇者), 즉 강대국으로 만든 정치가로 제갈량과 함께 중국의 2대 재상으로 손꼽힌다. 관중은 정치, 경제, 의례 등 국정 운영 원칙과 사상, 천문, 지리, 경제, 농업 등의 지식을 담은 《관자》를 저술했는데 여기에 유가와 도가, 법가, 병가 등 당시의 모든 사상이 녹아들어 있고 치국의 도를 국정에 직접 적용해서 빈부의 차이를 줄이고 민생을 안정시킴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적용할 국가를 찾지 못하고 떠돌다가 돌아와 교육자의 삶으로 마친 공자와 비교되곤 한다. 관중이 제나라에서 행한 9대 시책은 《관자》 입국(立國)편에 소개되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는 노인을 어른으로 모시는 일, 둘째는 어린이를 사랑하는 일, 셋째는 고아들을 구휼하는 일, 넷째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돌보는 일, 다섯째는 홀로 된 사람을 결혼시키는 일, 여섯째는 병든 사람을 위문하는 일, 일곱째는 곤궁한 사람을 살피는 일, 여덟째 흉년 때 고용인들 보살피는 일, 아홉째는 유공자들에 대한 보훈 등이다. 관중은 세상이 약육강식의 원리로 움직인다면 강자만 존재하게 될 것이며 그러기에 이상적인 사회는 강자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약자가 편히 살며 상생하는 공정사회의 건설에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관중은 “치국의 방법으로 백성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보다 나은 게 없다”고 말하면서 “무릇 치국의 도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이른바 필선부민(必先富民)에서 출발해야 한다. 백성이 부유하면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기 쉽고, 가난하면 어렵게 된다”고 하였다. 공자 보다 조금 앞선 노자(老子),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인쇄된 것으로 알려진 노자의 《도덕경》 77장에 보면 “하늘의 도는 활을 당기는 것과 같다(天之道其猶張弓者也). 높은 것은 내리 누르고 낮은 것은 들어 올린다. 남은 것은 덜어 내고 부족한 것은 보탠다”라고 하였는데 이를 보면 관중과 노자 모두 치우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정사회’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4차 산업혁명의 특징 중 하나가 부의 집중이라고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 등의 출현으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수밖에 없고, 부의 집중화도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사회는 ‘남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보태는’ 이른 바 공정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변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면 변화를 수용하고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새로운 관점을 찾아야 한다. 지금 코로나 팬데믹과 원자재·금리와 물가인상 등도 모자라 사상 유례없는 수해(水害)까지 겹쳐 민생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지금은 지도자의 위기관리 능력과 리더쉽, 공정에 관한 철학이 중요한 때이다. 매체를 통한 보여주기식 민생이 아니라 2,800년전 민생을 직접 돌보며 공정한 세상과 부국강병의 꿈을 실현했던 관중(管仲)의 정치가 보고 싶다. 오형민 부천대학교 비서사무행정학과 교수

[천자춘추] 내가 없는 세상

이 세상에 내가 없다면 세상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이 오랜 세월 자신에게 은연중 던졌던 질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며 관계하는 관점의 ‘세계관’이며 나를 세상에서 어떤 위치이자 역할로 생각하는지의 ‘가치관’이라고 하자. 그럼에도 나를 감히 세상과 비교해 배치하다니 오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조금 수정을 하자. 세상에서 잠시 빠져나오기! 이전 여행과 달리 세상에서 홀연히 빠져나가고 싶었다. 존재 의의를 찾으려는 것이 아닌 나만의 고독과 무위가 궁금하다. 어차피 내가 태어나기 전이나 사후에도 세상은 굳건히 이어질텐데 유독 작금에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한 달로 제약된 탈주를 선택한 후에 이어지는 질문들이다. 전기도 없는 문명 뒤편이다 보니 최소로 줄어든 의식주 덕에 중요하다고 할 일도 없다. 만나는 이는 고산병을 유일한 걱정으로 함께 걷는 몇 명뿐이다. 하루 하루 번잡하지 않고 말도 머리도 쓰지 않아서 좋다. 그동안 내게 이런 시간이 있었는지 기억이 별로 없다. 목적과 목표를 향해 치열했던 일에서 벗어난 공백의 희열이다. 그렇다면 한 달보다 더 긴 기간도 좋겠다. 그간의 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을 찾아 즐기거나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심지어 어떠한 일도 하지 않겠다는 작심도 했었다. 회로를 잠시 멈추는 것이 아닌 전원을 아예 뽑자던 결기도 이참에 새로웠다. 세상으로 돌아갈 한 달 후 일상다반사가 다시 주변을 감쌀 때 오늘을 달콤하게 기억할 것이다. 기왕지사 통신이 두절된 곳을 추천한다. 세상이 넓어서 할 일이 많은 곳보다 거친 자연과 극소수의 사람만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거침없이 돌변하는 고산과 황무지, 보기에는 황홀한 설산이지만 낙석과 빙설 떨어지는 소리가 무시로 들리는 그곳은 ‘탈출한 세상 밖’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이었다. 매일 짐을 풀고 싸는 일도 예상 밖으로 번거롭다. 세상 걱정은 고사하고 나의 생명 부지를 위해 나에게 애쓰는 일들이다. 세상에서 빠져나와 내가 없는 세상을, 그래서 나를 다시 보는 그런 세상을 느껴본다. 박태원 디앤아이사회적협동조합 대표

[천자춘추] 전염병과 예술인

전대미문의 재난 코로나19로 3년여 무대를 잃었던 예술인과 그 무대를 향유할 기회를 잃었던 시민. 심지어 경기 북부권의 도농복합도시인 김포시의 경우 코로나19가 오기 이전에도 아프리카 돼지열병에 모든 공연과 전시 등의 문화예술 행사가 전면 금지되기도 했다. 이후 우리의 모든 일상을 빼앗아간 코로나19는 예술인들에게도 엄청난 시련의 시간이다. 코로나19로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예술인 가운데는 생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택배, 청소, 막노동 등으로 근근이 생활하면서 버텨온 예술인이 꽤 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예술인에게 코로나19는 참으로 가혹하다. 그나마 지난 4월18일부터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종료로 문화예술계는 모처럼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시민은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맞았다. 그동안 열리지 못했던 전국의 크고 작은 축제들과 각 지역의 다양한 행사로 예술인도 시민도 공연장과 전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코로나19 이후에 무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더 느꼈다. 역시 공연이 우리에겐 보약이다”라는 한 성악가의 말이 떠오른다. 예전에 주변에서 경험한 바로는 집안 살림이 팍팍해지면 아이들을 보내던 학원 가운데 대체적으로 먼저 끊는 것은 미술, 피아노 등의 예술과목 레슨이었다. (전공자로 성장하고자 하는 이들은 예외다.)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이기에 예술은 늘 그렇게 차선이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예술은 곳곳에서 피어났지만 말이다. 근현대사 독일의 가장 위대한 문인으로 일컬어지는 괴테는 “예술만큼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예술만큼 확실하게 세상과 이어주는 것도 없다”고 했다. 예술은 그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과의 운명적 끈인 셈이다. 또한 문화예술은 대중의 문화향유권 증진을 위한 공공의 영역이다. 대중의 눈높이는 점점 더 높아지고 다양한 것을 추구한다. 예술가 개인의 예술적 감각과 창의적 활동은 보다 수준 높은 노력을 요하는 현실에서 예술인에게 감염병으로 인한 제재는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다시 코로나19 변이로 인해 확진 사례가 늘고 있다. 여름휴가에 이어 추석 연휴의 대이동을 생각하면 예술인들은 9월부터 풍성해질 공연 및 전시의 계절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코로나19 시대가 계속되는 가운데 그렇게 또 겨울이 올 것이다. 예술인들은 전면금지의 시간이 올까 두렵다. 예술인들은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금도 도움이 되겠지만 활발한 예술 활동을 통해 생기는 수입으로 살고 싶다. 이재영 ㈔한국예총 김포지회 부회장

[천자춘추] 성하단상

우리는 지금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 뉴스를 달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그렇고, 지척에 있는 대만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긴장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나라와 무관하지 않은 상황 탓에 많은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전한다. 현대는 화합보다는 대립의 시대인 듯하다. 남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근래 전해지는 뉴스의 대부분은 대립과 충돌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그렇고, 그것이 우리의 역사인지도 모르겠다.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야 하는 인류의 숙명이며 지난한 해결과제 일지도 모르겠다. 대립의 역사로 유명하기로는 조선시대 동서인의 대립을 빼놓을 수 없다. 붕당의 초기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었고 붕당의 대립을 해소하고자 양쪽의 비난을 감수하며 화합을 위해 노력했던 율곡 이이 선생의 조제보합(調劑保合)을 생각한다. 율곡선생은 동인과 서인이 모두 사림(士林)에서 갈라져 나온 같은 목표를 가진 정치 세력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뒀다. 양쪽 모두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다는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을 통해 시비 논쟁을 끝내고, 집권 세력의 주도하에 당색에 구애받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자고 주장했다. 율곡의 정신은 후에 파주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율곡을 추숭했던 남계 박세채 선생에게 이어져 ‘탕평론’으로 발전해 나갔다. 대립은 늘 있었고, 이를 해소하고자 앞장선 이들은 시대를 이끌어간 선각자이자 리더(Leader)들이었다. 어쩌면 현재의 뒤틀림은 새로운 전환을 이끌어 나갈 현자(賢者)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립이 아닌 조정과 화합을 모색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조화로운 힘이 필요하다. 정치의 최고선(最高善)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 곳에 나와 너, 우리와 너희가 있을 수 없다. 범주를 세계로 확대해도 같다. 평화롭고 모든 인류가 함께 잘 사는 지구를 가꾸는 일, 우리의 아이들에게 망가지지 않은 온전한 지구를 전해주는 일이 우리 세대의 당면하고 절실한 목표이다. 전쟁(戰爭)과 정쟁(政爭)의 뉴스 사이에서 달을 찾아 떠난 우리나라의 첫 달 탐사 궤도선 다누리의 소식이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꿰뚫었다. 하늘을 나는 로켓의 궤적을 따라가던 모두의 시선(視線)처럼, 공존(共存)을 위한 공동의 선(善)을 찾는 데 모두의 마음이 모아지길 기원한다. 우관제 파주문화원장

[천자춘추] 평화 위협하는 외교

지난 6월 29~30일 양일 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정상회의는 새로 채택한 ‘나토 2022 전략개념(Strategy Concept)’에서 중국을 ‘구조적 도전국(systemic challenge)’으로 새롭게 규정했다. 중국의 확장에 대한 나토 차원의 대응을 공식화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다자외교무대로 이 나토(NATO)정상회의 참석을 선택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윤대통령이 처음 참석한 나토 정상회의는 그러나 지금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국제 질서를 고려하지 않은 ‘위험한 선택’이라는 평가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경제안보 동맹이다. 한국은 윤 대통령이 강조한 ‘한·미동맹의 포괄적 전략동맹 강화’의 일환으로 IPEF에 참여하여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IPEF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제안한 것으로 기후환경, 디지털, 노동 등의 분야에서 새 국제규범을 마련하고 공급망 재편 등을 통해 중국을 고립시키는 반중국 연합전선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의 IPEF 가입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중국은 한국의 IPEF 참여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우려를 표명했고, 경고한다는 뜻도 숨기지 않았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박진 외교장관과의 첫 통화에서 IPEF가 중국을 향한 압박수단이며, 한국이 여기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상목 경제수석은 심지어 ‘탈중국’을 선언했다. ‘신냉전’으로 지구 전체의 판이 흔들리는 위중한 상황인데 미국의 반러·반중 정책에 천둥벌거숭이처럼 앞장서는 꼴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경제적 이해뿐만 아니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나라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매년 최대의 이익을 내고 있고 중국은 한국으로부터 1993년 이후 지금까지 매년 큰 폭의 적자를 감내하고 있다. 2021년 우리나라 중국수출액 중 79.6%인 1천296억 8천400만 달러가 중간재이고 수입 품목의 62.2%인 889억 3천800만 달러가 중간재이다. 전체 수입품목 1만 1천215개 중 중국산 수입 비중이 70% 이상인 품목이 2천434개이고 중국산 수입 의존도가 100%인 품목이 323개, 90% 이상인 품목이 956개에 달한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중국과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된다. 한국이 중국과 결별하고 견딜 수 있을까? 과연 중국, 러시아를 배척한 한·미·일 일방적 관계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까? 외교에서 실패한 국가는 언제든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한반도는 여전히 한국과 북한, 미국과 중국의 충돌지점이고 갈등 악화 1순위 지역이다. 한반도를 평화롭게 잘 관리할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그러나 지금 윤석열 정부는 그릇된 친미·친일 일방외교로 외교뿐만 아니라 평화, 안보, 경제를 해치고 있다. 윤기종 前 한겨레평화통일포럼 이사장·정치학 박사

[천자춘추] 故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문답-3

무더위가 절정이다. 푸른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을 보고 있노라니 어릴적의 고향 생각이 난다. 삼성그룹 회장이셨던 고(故) 이병철 회장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리워했으리라 생각하며 오늘은 그분이 알고 싶어 하셨던 세 번째 질문에 관해 정리해 본다. ‘정말로 하느님이 있다면 왜 이 세상의 악과 슬픈 일과 고통을 내버려 두는 걸까?’ 공의롭고 지혜롭고 능력이 있으며 사랑이 많은 하느님이 존재함에도 이 세상에 악과 슬픔과 고통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우주 주권 쟁점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전망이 있었다. 그 조건은 각종 먹을 것이 풍부한 에덴동산에서 단 하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일을 먹지 않으면 되는 아주 쉬운 것이었다. 그런데 사탄 마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먹어도 죽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이 하느님과 같이 된다는 말로 유혹했다. 사탄은 이러한 주장을 통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일을 먹으면 죽는다고 말한 하느님은 거짓말을 한 것이며 인간이 신과 같이 될 수 있는 것을 먹지 못하게 한 하느님은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말을 한 것이었다. 그러니 하느님을 섬기지 말고 사탄 자신을 믿고 따른다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느님은 이러한 우주 주권 쟁점을 받아들이셨고 누가 옳은가 입증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즉, 사탄이 인류를 지배하고 다스려보도록 허락하고 그 결과를 봐야만 끝 이나는 쟁점인 것이다. 누가 더 힘이 강한가라는 문제였다면 하느님께서 사탄 마귀를 즉시 없애셨을 것이다. 성경에서는 온 세상이 악한 자의 지배 아래 있다(요한1서 5:19)고 알려준다. 하느님은 존재하지만 사탄 마귀가 한시적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에 슬픔과 고통이 이 땅을 휩쓸고 있다. 경찰이 범죄조직을 알고 있지만 결정적 증거를 잡을때까지 지켜보고 있는것과 같은 이치다. 이 쟁점이 끝날 때는 언제일까?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고통과 슬픔도 과연 끝날 것인가. 최진열 ㈔대한노인회 중앙회 정책위원

[천자춘추] 매력적인 빌런들의 도시

최근 몇 년사이 ‘빌런’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코믹스를 배경으로 하는 많은 영화-어벤져스 시리즈, 스파이더맨, 베트맨 등-에서 등장하는 악당들을 통칭하여 ‘빌런’이라고 부른다. 옛 프랑스어인 ‘빌런(Villein)’의 어원적 유래를 살펴보면, 중세시대 농장(Villa)에서 일한 농장일꾼(villanus)에서 유래된 기아와 가난에 허덕인 농노, 농민을 의미한다. 중세 농민들은 권력자들과 도시민들에게도 천대받으면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도둑질과 강도, 약탈 등 온갖 범죄를 일삼으며 도시의 악당으로 낙인찍히게 되었고, 현대에서 도시의 질서와 정의에 도전하는 영화속 ‘빌런’으로 계보를 잇게 된 것이다. 영화속 빌런들이 많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도시는 뉴욕(New York)이다. 뉴욕 처럼 상징적 초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복잡한 대도시가 빌런들과 영웅들의 활동무대가 된다. 즉, 빌런들이 선호하는 도시는 인구와 경제력이 팽창하면서 도시의 활력과 잉여이익이 충분한 도시이며, 이런 매력적인 도시에 영웅들이 함께 공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빌런은 도시의 어둡고 소외된 슬럼가를 배경으로 도시의 불확실성과 무질서를 증가시키고, 배트맨 같은 영웅은 중세 고딕성당 같은 초고층 건축물의 꼭대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도시의 질서를 지키려 할 뿐이다. 매력과 성장이 없는 도시에 빌런도 영웅도 없다. 배트맨이 수호하는 고담시의 빌런들을 보면 빌런이 되기까지의 이유와 사연이 있다. 대부분 도시의 소외되고 외면받았던 약자였거나, 버림받거나 배신당한 개인이 어떤 계기로 흑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중세시대 농노들이 가난과 천대를 못이기고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고담시처럼 흑화된 슈퍼 빌런들이 판치는 도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도시의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에도 희망을 줄 수 있는 상생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의 쇠퇴로 낙후된 지역의 급격한 재개발이나 강한 물리력 행사로 주민의 반발을 사기보다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우선하는 관용성 높은 도시균형발전 정책이 필요하다.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도시의 슬럼가가 도시 내부에서 적정 노동력을 공급하며 도시의 성장동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저소득층에게는 지속적인 소득과 평등한 교육 지원을 통해 가난을 벗어나는 희망과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실의 도시 저소득층은 영화속 빌런처럼 제거하거나 몰아내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도시의 균형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두가지 요건은 도시개발이익의 낙후지역 재투자 정책의 구조화와 교육격차의 해소이다. 각 지자체마다 신규 주택사업을 추진하면서 발생되는 이익을 구도심과 낙후지역에 재투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초공사를 설립하여 이익환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각종 규제와 재정여건이 열악한 상황이다. 정부의 규제개혁과 유연한 대처가 절실한 시점이다. 도시의 교육격차 해소는 가난과 소외를 벗어나는 희망 사다리이다. 다행히 스마트 네트워크 비대면 시스템의 확산은 교육격차 해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시흥시는 서울대학교와 협력하여 지역의 교육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비대면과 대면교육을 병행하고 있어 타 시·도의 모범이 되고 있다. 교육을 통한 지속적인 기술향상은 도시의 산업 재구조화에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빌런들의 도시는 무질서해 보이지만, 활력과 매력이 있다. 사람들은 불확실성과 퇴폐미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웅서사를 보기 위해 영화를 보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빌런의 모습에도 열광하는 이유이다. 도시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유지하면서 통제가능한 도시균형발전정책의 실현이 매력적인 도시의 안정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 이재혁 시흥도시공사 도시개발실장

[천자춘추] 음주운전의 위험과 책임부담

음주운전은 인명피해 위험이 높고 피해자의 억울함이 커서 그 처벌은 줄곧 강화됐다. 혈중알코올농도 기준이 0.05%에서 0.03%로 낮아져 처벌 범위가 넓어졌고, 0.2% 이상인 경우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이던 처벌 기준이 2년 이하 5년 이하의 징역으로 개정됐다. 선택형인 벌금형의 선고 기준도 1천만원 이상이다(도로교통법 제148조의2). 음주운전을 2회 반복했다는 사실만으로 가중처벌 하도록 한 소위 ‘2진 아웃’ 규정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선언으로 효력을 상실했다. 반복 음주행위가 이뤄진 ‘기간’이나 ‘혈중알코올농도’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가중처벌함은 양형상 형평성을 잃고 비례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이유이다. 가령 10년 동안 음주운전이 없던 경우와 1년 안에 음주운전을 반복한 것을 동일하게 가중처벌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다. 음주운전을 예비살인과 다름없다고 본다면 일견 수긍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행위의 정도를 무시하면 단순절도와 강도살인을 구별 없이 모두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는 규정과 다름없어 불합리하다. 재판부는 반복된 음주행위의 불법이 무겁고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경우 가중처벌 조항에서 정했던 형으로 선고할 수도 있으므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존중할 만하다. 실제로 잦은 음주운전만으로 판결 선고와 동시에 법정구속(法廷拘束) 되는 사례가 근래에 꽤 있다. 피해자가 있고 합의가 잘 되지 않은 경우 구속의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 교통사고로 인명피해를 발생시키면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해당하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라 처리해 종합보험 가입만으로 형사재판은 면할 수 있다. 그러나 음주운전, 무면허운전, 중앙선 또는 횡단보도 침범 등 특례법이 정한 12개의 중과실이 결합된 사고와 피해자가 사망에 이른 경우는 예외다. 특히 무면허운전과 음주운전은 자동차운전보험의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해 보다 무거운 민사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알코올농도가 0.1% 이상이고 중앙선 침범 등 교통법규위반이 심각하다면 정상 운전이 현저히 불가능했다는 판단하에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정한 위험운전치사상죄가 인정될 수 있고 강력한 처벌이 예상된다. 이렇듯 음주운전은 민사상, 형사상 과중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재판을 받게 될 경우 강력한 처벌을 면하기 위해 양형참작사유를 잘 정리하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운전자 자신과 잠재적 피해자의 평온한 일상과 경제적 안정을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는 길이다. 설대석 법무법인 대화(大和) 변호사

[천자춘추] 인류의 기초인 가정을 회복하자

오늘날 지상에 떠돌고 있는 가족의 해체와 관련된 사건들을 목록화 한다면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우주적이다. 그 현상은 곧 자연인으로서의 한 사람과 사회 조직 내지 인류의 패망까지 불러 올 만큼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 일 맡은 종사자들 혹은 관계 기관이나 가족 구성원들은 이에 대한 심각성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외면하는 것인지 어디서 어떻게 손을 써야 하는 것인지, 그 결과론적인 현상을 보면 지극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누가 먼저 방법을 모색하고 이 문제의 심각성을 위해 나서야 할 것인가? 바로 나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내가 해야 할 일이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이며, 동시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물욕과 성공이라는 허울의 포로가 돼서 망각해선 안 되는 것이 분명히 있다. 가족이 당면한 인성과 사회성과 국가관과 인류애 그리고 인간의 가치와 인간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에 대해 가족 구성원들이 틈나는 대로 서로의 마음에 각인시켜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독려를 아끼지 않음은 물론 가정 교육화 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이미 학교란 공교육이 그 기로에서 한참 멀리 벗어나 있으며 손쓸 의지와 기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또한 협력해 그 가치를 회복하고 찾아야 할 종교, 문화 그리고 정책을 입안하고 솔선해야 할 정치인들의 관심은 실리적인 정책이 아닌 권력이란 탐욕의 영역을 찾아 헤매고 있기에 반드시 원초적인 가족 구성원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 물질을 추구하고 명예와 가정의 안위로서의 부귀를 꿈꾸는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보다 우선시 해야 하는 것이 가족 구성원 각자의 인성과 사랑에 바탕을 둔 진정한 회복임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사람이 없고서야 어찌 사회와 나라가 있을 수 있으며 인류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또한 내가 없고 당신이 있을 수 없으며 우리라는 공동체가 존재할 수 없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저마다 건강한 자아(自我)를 위해서 애쓰고 힘써야 하는 것이다. 조금 더디 가고, 물질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인류의 기초인 가족을 잘 챙기고 그 기초를 튼튼하게 세워야 할 때가 바로 오늘이며 지금인 것이다. 이충재 시인·문학평론가

[천자춘추] 순수미술의 개념과 가치

‘우리 시대 순수미술의 영역은 어떻게 구분되어 있나?’ 미술관의 아트디렉터로서 가끔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이 질문은 ‘어떤 것이 예술이고, 어떤 것이 비예술인가?’라는 질문과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역대 예술사조를 거치면서 지속해서 논의된 문제이기도 한 어려운 명제다. 보편적으로 미술관에서 분류하는 순수미술의 예로는 회화, 조소, 설치미술, 영상미술, 공예, 디자인, 사진, 개념미술 등이 있다. 이러한 분류는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대표적이고 전통적인 영역 분류다. 다만 현재의 순수미술은 시각예술이라 불리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분류에 더해 새로운 분야를 흡수하고 변화되면서 혁신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가치의 변화가 급속으로 이뤄지고 다원화됐기 때문인데,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진화는 ‘미술(시각예술)의 가치는 무엇인가’에서 착안한 대중 지향적 요소가 다분하다. 원론적으로 기존의 ‘작품 감상을 통한 정서적 감동과 철학적 사색 유발’이라는 점은 뿌리가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 발전과 매체의 다양성으로 동반된 새로운 시각예술의 대표적인 예로는 가상공간을 이용한 VR Art나 Digital Art, 개념적 진화의 대표적 예로는 공공미술(생활예술)의 확대가 있다. 일부 계층만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전통적 미술과는 현저한 목적 차이를 가진 현재의 시각예술은 더욱 많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예술적 감동과 사색을 전하려는 움직임이다. 미술관에 제한되지 않고 밖에서도 쉽게 예술적 사색을 할 수 있는 여러 매개체를 제공해주는 일인 것이다. 시각예술의 주제 또한 재미있고 가벼워지면서 친근하게 사회와 교류한다. 낙후된 마을이나 도서지방, 폐건물 등에 벽화 프로젝트를 하기도 하고, 찾아가는 미술 교육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적극적인 미술인들의 사회 참여는 문화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처럼 우리 시대의 시각예술은 인간(사회)과 같이 끊임없이 진화한다. 그래서 예술의 개념을 논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전문적으로 깊이 다뤄져야 할 명제이므로 위 질문에는 궁색하지만 생뚱맞은 답변으로 짧게 정리해 말해 본다. “어떤 감동과 철학적 사색을 유발시켜 우리에게 유용함을 주는가!”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시각적 창작 행위라면 어떤 매개체를 통해 전달되더라도 이 시대의 시각예술이라 일컬어도 좋지 않을까? 김이구 문화예술법인 라포애 상임이사

[천자춘추] 다산 정약용 탄신 260주년을 추모하며

다산 정약용은 1762년 음력 6월 16일생으로 지난 7월 14일은 다산 탄신 260주년 생일이었다. 다산이 태어난 1762년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이른바 임오화변이 일어난 해이다. 임오화변이 음력 5월 13일이었으니, 사도세자가 죽고 대략 한 달 뒤 쯤에 다산이 태어났다. 남인계 시파(時派)였던 부친 정재원은 사도세자가 죽자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집이 있는 마현으로 낙향하였다. 이 때문에 다산은 서울이 아닌 경기도 광주부 초부면 마현리에서 태어났다. 이곳이 현재 다산 생가 여유당이 있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 다산은 18년간 유배지인 강진에 있었고, 해배 이후 죽기 전까지 18년을 고향인 한강가에서 살았다. 18년 유배기간 동안 5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한 다산은 기나긴 유배에서 풀려나자 해배의 기쁨보다는 “죽음에서 돌아오니 망연하구나”라는 적막한 심경을 토로했다. 중년 이후 정약용은 개인적 불행에 상심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만년에 이르도록 구세적 열정을 잃지 않았다. 비록 현실 정치에서 자신의 이념을 실현할 수는 없었지만, 탁고개제의 이념을 저술에 오롯이 담아낸 것이다. 19세기 정약용의 고향 한강은 당대 최고의 경학논쟁이 이루어진 문화공간이었다. 자신의 경학 연구를 신작이나 김매순 등 한강 주변의 학자들과 교환하였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성향 즉 당론을 뛰어넘은 우정을 나누었다. 이와 함께 정약용은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로 대표되는 당대 현실에 대한 개혁의 열망을 담은 경세서를 완성하며 새로운 국가상을 제시하였다. 1818년 해배 이후 정약용은 강진에서 집필한 저술을 고향집인 여유당에서 정리했고 환갑을 전후하여 일생의 염원이었던 북한강을 따라 여행하면서 새로운 조선을 발견하려 했다. 해배 2년 뒤인 59세에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 춘천 일대를 유람한 후, 3년 뒤인 1823년에도 마재 앞에서 배를 띄워 춘천에 와서 소양정에 오르고 곡운구곡(谷雲九曲)을 돌아보았다. 한번은 조카의 혼사, 다른 한번은 손자의 혼사에 동행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제로는 물위에 떠다니며 살림하는 집이란 뜻인 ‘부가범택(浮家汎宅)’의 꿈, 즉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꿈을 일시나마 실현한 것이었다. 한강가의 늙은이라는 의미의 열수옹이라 자처했던 정약용의 18년 여생은 세상에 대한 울분과 좌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써내려간 인생 2막이었다. 정성희 실학박물관장

[천자춘추] 메타버스와 교육의 ‘플라이 휠’ 효과

지난 6월 맥킨지 컨설팅이 발간한 ‘메타버스에서 가치창출(Value Creation in Metaverse)'이라는 분석보고서를 보면 2030년이 되면 메타버스 산업 가치가 최대 5조 달러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1년 페이스북이 메타로 기업명을 바꾸면서 그해 100억 달러(약13조원) 투자발표를 한지 불과 10년이 안되어 메타버스 산업의 가치를 5조 달러까지 전망한 것이다. 아마존의 창시자 제프 베이조스가 만든 ‘아마존 플라이 휠 효과’는 4차 산업혁명 또는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X) 시대 경쟁자인 구글, 메타, 애플 중에서도 전문가로부터 아마존을 최후의 승자로 예상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전략 차별화 요소이다. 플라이 휠 효과란 ‘거대하고 무거운 플라이 휠을 한 방향으로 한 바퀴 한 바퀴 돌리면서 임계점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밀고 나갈 때, 어느 순간 손을 떼어도 거대한 플라이 휠은 자동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동하는 바퀴에 에너지가 축적되어 어느 시점이 되면 거대한 수레바퀴가 스스로 굴러가게 하는 효과를 말하는 것이다. 아마존의 플라이 휠 효과란 성장(Growth) → 낮은 비용 구조(Lower Cost Structure)→ 낮은 판매 가격(Lower Prices) →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 등 4개의 가치사슬 사이클이 선순환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는 성장을 통해 더 큰 성장을 견인하게 된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접점에서 탄생한 메타버스는 ‘더 저렴하고 더 나은 기술’이 진화함에 따라 메타버스 사용자 기반이 증가하고 크리에이터 생태계가 활성화 되고 따라서 관련 콘텐츠와 가상자산의 거래가 증가하는 플라이 휠 효과에 도달하고 있다고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은 자사의 분석보고서에서 강조한다. 기술이 성숙함에 따라 새로운 애플리케이션과 활용 케이스의 개발은 일반적으로 가속화된다. 인터넷 기반의 PC와 모바일 연결성이 그것이다. 비록 메타버스와 그 개발을 촉진하는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COVID-19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사용자기반의 확대는 앞으로 몇 년 사이에 기술적 진화를 견인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교육에서의 메타버스 플라이 휠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까? 비록 거대한 수레바퀴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초기이긴 하지만 콘텐츠(Contents), 플랫폼(Platform),네트워크(Network), 디바이스(Device) 등 소위 교육분야 에듀테크의 CPND모델의 성장속도를 봤을 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메타버스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서는 미국의 교육학자 에드가 게일(Edgar Gale)의 학습의 원추이론(Cone of Learning)외에 딱히 설명되고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63개 전문대학 메타버스 플랫폼인 ‘메타버시티(Metavercity)’ 플랫폼 진화를 지켜보면서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서의 학습효과는 물론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더 큰 교육적 가치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다양한 온라인게임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의 메타버스 플랫폼안에서의 공유·협력의 정도는 상상 그 이상이다. 메타버스를 둘러싼 ‘더 저렴하고 더 다은 기술’들이 계속 진화하면서 메타버스 플랫폼 내에서의 ‘학습경험→데이터축척 → 학습분석(Learning Analytics) → 맞춤형 학습’이라는 플라이 휠 효과는 생겨날 것이다. 머지 않은 미래에 그 큰 수레바퀴가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는 의미이다. 조훈 서정대학교 교수·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 창의융합콘텐츠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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