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약들이 구비된 식물원 불안한 이들이 찾아와 자연 치유하는 약국이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꽃의 처방이 다르다 계절과 병의 깊이에 따라 조제하는 약봉지에 들어갈 재료가 분류된다 우울의 처방약은 해바라기 씨에 박힌 응어리를 만져주는 것 틈새에 낀 민들레의 슬픔으로 상심을 달래고 화로 온몸이 독기로 타오를 때는 담벼락 아래 화사하게 웃고 있는 채송화를 가슴에 와락 안은 것만으로 가라앉는다 선인장 가시에 주저앉는다면 어떨까 내가 모르는 상처를 타인에게 주지 않았나 나를 돌아볼 때 나만 아픈 것이다, 에서 너도 아팠겠다 엔젤트럼펫으로 나도 상처받았다고 외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식물원 너를 떠나보내고 상실의 고통으로 가슴 한구석이 아리다 이곳에 와서 처방 한 줌 받아 간다 전남 장흥 출생 2018「착각의 시학」 봄호 시 부문 등단 제7회 등대문학상 수상. 시집 구름 아나키스트 2020 시치료 전문가 은행나무숲상담소 소장
부끄러워 못살겠다 중국을 건너다보는 임제시인의 물곡사비勿哭辭碑가 눈물을 흘리고 북쪽 바람이 스치니 이승복 어린이가 슬피 운다 짐승은 먹이에 입을 대고 먹고 사람은 먹이를 가져다가 먹는다는데 선량한 자유민주주의자들이 피와 땀을 흘려 이룬 살림을 입으로 물어뜯어 허물고는 평화를 위한다고 새빨간 공산당 말을 웃으며 하는 추악한 궤변자들이 설치는 나라 역사와 아이들에게 욕되고 부끄러워 못살겠다 우리 어릴 적 부터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애국가를 부르며 흥감의 눈물을 흘렸는데 동서양에 태극기를 꽂고 자랑스런 가슴과 어깨를 펼치던 눈빛이 초롱초롱한 백성들은 다 어딜 갔느냐 그 당당한 대한민국 백성들의 옷가질 찢고 여기저기 닁큼닁큼 넙적대는 짐승같은 사람들과 부끄러워 못살겠다 정순영 부산시인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34대 부이사장. 세종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부산문학상, 한국시학상 수상. 시집 사랑 외 7권
물끄러미 텅 빈 공원에 홀로 앉아 돋아나는 연보라빛 제비꽃 물끄러미 바라본다 조그만 창가에 홀로 앉아 남쪽으로 흘러가는 흰 구름 물끄러미 바라본다 길을 가다 멈춰 서서 혼자 노는 어린 아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산 그림자 길게 드리운 연못 가에 홀로 앉아 지는 해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다는 건 물끄러미가 된다는 것. 김수기 전남 영광 출생. 광주교대수원대 대학원 졸업. 안양 부흥초 교감 정년 퇴임. 문예비전으로 등단.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시집 어머니의 세월
아우성 실속 없이 허접 대책 내걸었어 한 계절 다가도록 현수막에 찡한 사람 출산율 쇼크라던가 실업률이 치솟던가 한 끼니 별거 아닌 허튼 시간 되새겼어 뭔지 모를 꿈틀거림 내 안 깊이 파고들어 앉았다, 서성거리다 안절부절 못했어 둘러앉아 먹는 집밥, 안개처럼 도는 온기 앉은뱅이 환한 수국 안방에다 들어 앉혀 밥 한 번, 밥 한 번 먹자! 뭉클했어, 삼켰어 두 눈을 꼭 감았어, 갈피갈피 생각 접고 팔베개 베고 누워 수 천 년 길 걸어봤어 와불상 뒷모습 안에 떨고 있는 널 보았어 경기 화성 출생. 2008년《월간문학》등단. 한국문인협회국제PEN한국본부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구름 가슴팍에 묻었던 얼굴 상기되어 내민다 오래오래 익힌 사랑 마지막 붓놀림으로 하늘을 덧칠하며 살랑이는 파도 끝을 붉게 스치는데 쬐끄만 돌 섬 위에 옹기종기 앉은 물새 발목으로 차오른 물에 놀라 허공으로 숨어 버렸다 홍시빛으로 차올라도 모자란 사랑 바다 깊숙이 조금씩 제 몸 감추고 그리움 만들어 파도로 파도로 밀어낸다 흩어진 머리칼 쓸어 올리던 노부부 어스름한 모래길을 천천히 넘어간다 양미자 충남 논산 출생. 문학시대 로 등단. 대명중학교 교사 역임. 문파문학회 동남문학회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집 어제와 오늘 사이
나는 공주였다 강가의 돌, 모래알만큼의 병력과 백성을 거느린 풀꽃왕별의 자손 척박한 땅을 거머쥐고 한 뼘씩 영토를 넓혀나가는 푸른 기운의 발걸음 여름날 개망초들의 깃발은 매일 승전보를 울린다 그 함성, 하늘까지 올라 졸던 비구름이 화들짝 놀라 소낙비 퍼붇는다 그런 날이면 하늘땅만큼 개망초들은 사기충천하는데 요즘 금요일마다 괴물이 출몰한다 그 괴물의 안경 너머로 눈이 깜빡일 때마다 개망초의 허리춤에서 시퍼런 피 쏟는다 나는 이 나라의 공주다 서둘러 푸른 병사들의 총에 모기와 독충을 장전시켜 발포 명령을 내린다 기습에 놀란 괴물은 아침도 거른 채 떠나고 학곡리 전투는 일주일간 잠정적 휴전이다. 이정현 계간문예로 등단. 시집 살아가는 즐거움 춤명상. 서울시문학상 외 다수 수상. 한국문인협회 편집위원 문학과 창작 편집장.
여름 한낮 등목할 때 아프도록 밀고 또 밀던 손 여린 꽃잎 연녹색 잎새 간지럼 참아내며 실눈 뜬 채로 씻기다 씻기는 시간은 아프지만 눈 떠보면 새로운 저 파란 꽃잎들 빗물 털어내며 윤슬 되어 춤추다 그저 다 예뻐 산봉우리 바위도 솔잎 가시덤불 풀꽃도 들에 황소 염소도 씻겨주고 씻겨준 뒤 바람처럼 지나가다 떠난 그 자리 추녀 끝에 발 도장 찍고 간 쪽빛 하늘엔 새햇살 눈부시다. 조영희 수원 문인협회 문학과 비평 회원. 시인마을 동인.
꽃 한 송이로 세상이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 한 송이로 세상이 밝아진다면 얼마나 기쁠까 외꽃이 마주 보고 꽃피우지 않을 때 사람이 마주 앉아 꽃피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들꽃은 한 송이로 족하지 않아 저리 모여 피어 아름답거늘 사람들이 서로 모여 사랑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홀로 피는 꽃은 아름다워도 늘 외롭거늘 사람은 서로 모여 들꽃 저같이 사랑했으면 ▲ 수원 출생.월간 시see 추천시인상으로 등단. 서울시인협회 회원. 시집 아내는 풍선껌을 아직까지 불고 있다
바다은행 금빛 전어錢魚떼가 경기남부수협은행으로 몰려들었다 곳간 같은 365자동코너 파도문양의 문을 열자 향긋한 미역냄새 알싸하다 그리운 바닷길 보인다 푸른 고등어 떼 지느러미소리 요란하고 섬집아기, 등대지기, 어부의 노래 들린다 내 어머니의 바지락 캐는 마찰음 꽉 찬 그물 올리는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까마득한 수평선을 휘청거리며 넘어 오고 있다 셋째 동생, 기성회비 독촉 받던 섣달그믐 날 어머니는 잠시 눈을 감다가 낡은 몸빼바지에 굴 망태 둘러메고 덴바람 맞으며 유빙流氷속 바다은행으로 굴 따러 갔다. ▲ 정겸(본명 정승렬) 경기 화성 출생. 경희 대 대학원 사회복지학 졸업. 시사사로 등단.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경 기시인상 수상.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칼럼니스트로 활동.
원시림 원시림에 서면, 악인樂人을 만나면 노래가 되고 시인을 만나면 시가 되는 운율韻律의 창고 딱따구리 방울새 승냥이 노루 겨울 산바람 소리 짓는 그 곳에 사각사각 발자국 소리 한 호흡 쉬고 고요히 귀 기울인다 조선형 경기 포천 출생. '문학세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성남탄천문학회 회장. 시집 '기차도 멈춘 호숫가에''물꼬''The Waterway (물꼬-Ⅰ)''엄마의 강',산문집 '느티나무의 아침'.24회 허난설헌 문학상 본상, 6회 윤봉길 문학상 수상.
아주 작은 틈새로 그 점들이 드러났다 그 점들은 서로 밀어내기도 끈끈히 이어지며 걸어왔다 한 사람의 죽음이 슬프고 무겁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죽은 한 사람의 무게는 저울의 눈금은 어디를 가리킬까 모두들 서로 떨어지라 명령한다 지금 아무도 없는 광장에서 소리죽여 서 있다 뿔이 꽃모양으로 둥글둥글 굴러 떠다니는 얼굴 코로나19 바이러스 얼굴을 무심히 본다 완성차 주차장은 수출길 막혀 텅텅 비었다 대면강의하는 대학 강의실은 사회적 거리로 앉았다 불타는 철쭉이 불러도 다가갈 수 없다 브라질 아마조나스주 원주민은 마스크 쓰고 카약을 젓는다 프로야구는 투명볼 안에서 포수와 비접촉 시구로 열린다 감염병 치료에 헌신하는 의료진에 Thanks You를 보낸다 작은 점이 핵폭탄으로 퍼지는 것 이제야 안다 지구는 다른 그림을 그려야 한다 생명체의 한 점에서 따뜻한 어머니 마음을 그리고 있다 이솔(본명 이성자)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수사직으로 짜기신갈氏의 외투 수묵화 속 새는 날아오르네 등 7권. 푸른 시학상 청마문학상 신인상 수상.
비요일엔 우산을 벗자 저 우주 속으로 벗어 던지자 슬픔도 쓸쓸도 함께 던지자 빗속을 걸어가자 너와 나 두 손 꼬옥 잡고 남산을 돌아 지구 끝까지 세상 끝까지 하늘 끝까지 비와 함께 걸어가자 빗소리와 함께 천둥 번개와 함께 이 떠돌이별 마지막 연인처럼 빗속을 가자. 정성수 서울 출생. 『탑』(1960)『시문학』(1965)『월간문학』(1979)으로 등단. 중3때 낸 첫 시집『개척자』를 비롯,『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누드 크로키』『기호 여러분』『우주새』등 12권, 제1회 한국문학백년상한국시학상 수상.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삼대(三代) 할머니가 엮어놓은 햇살로 파릇파릇 봄이다 아득한 세월 가난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수면위로 떠오르던 수군거림 너른 벌판을 달렸다 그 끝을 도무지 헤아릴 수 없어 목이 말랐다 녹슬어 틈 생긴 돋보기 위, 십자가 내려놓지 않아 할머니 가신 하늘로부터 뿌리내린 빛 질척한 뜰에 뿌려졌다 굵은 나무가 된 아들 촉촉해진 혀 굴려 초원을 달리는 푸른 아들에게 할머니 얼굴, 새의 노래처럼 들려준다 달콤한 말씀으로 봄날 되어 걷는 삼대(三代) 말간 하늘을 본다 김은자 충남 연기 출생 『월간아동문학』 신인상 동시부문 당선 등단 (2004) 계간 『문파』 시부문 신인문학상 등단 (2019) (사) 한국 문인협회 용인지부 사무차장 계간 『문파』 이사 시계문학회 회원 2020년 (재) 용인문화재단 문화예술공모지원사업 지원금 수혜 저서 동시집 『꿈봉투』 시집 『반짇고리』 공저 『기연』 『문파대표시선 41』 외 다수
말문을 오래 닫았더니 출입금지 구역이 되었나 봐요 마당에 봄도 늦어서야 미적거리며 들어오고 허물없이 드나들던 이웃 안부도 없어요 꽃 잔치 초대에도 마음만 보내놓고 있는데 먼 길 왔으니 쉬었다 가라고 펼쳐놓은 평상에 앉지도 않고 벌써 봄이 가려나 봐요 바람이 등을 미는지 하루가 흔들리고 눈송이처럼 꽃잎이 흩날려요 시큰둥 돌아앉은 나를 기어이 일으켜놓고 눈치 보듯 찾아온 봄은 왜 바쁘게 가려는지 하늘은 왜 자꾸 부신 눈길을 보내는지 지는 꽃잎에 더는 버무릴 한숨도 없어 흰 구름 한 자락 내려와 먹먹함을 덮었어요 송미정 문학시대로 시.수필과 비평, 한국수필로 수필 등단했으며 6권의 시집과 3권 의 수필집 출간.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국제펜 한국본부회원으로 작품 활동 중.
해가 지면 어스름이 여는 밤하늘에 별이 하나 둘 눈을 깜빡인다. 세상 사람들도 하나 둘 눈을 깜빡인다. 별이 자기 사람을 찾듯이 사람도 자기 별을 찾아 눈을 반짝인다. 먼저 떠난 아이처럼 별 하나가 밝은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나도 그리운 눈빛으로 별 하나를 올려다본다. 경남 하동 출생. 1974년 풀과 별로 등단. 시집 시는 꽃인가, 사랑 외 7권. 부산문학상, 한국시학상 외 다수 수상. 부산시인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동명대학교 총장, 세종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현 한국경기시인협회 부이사장.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나무 위 까치집 저런 곳에 누가 올까 싶지만 그렇다고 문을 닫는 일도 없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수도원이라 바람이 쉬었다 가고 햇볕이 머물다 갈 뿐 작은 새들의 인기척 하나 없어 외딴 수도원이 되어 간다 새끼들이 까고 나온 동그란 껍질의 온기가 남아있는지 나무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커다란 대문을 하늘로 내고서는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는다 바람을 타고 순례하는 나뭇잎들이 문 앞을 기웃거려도 아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세상을 뒤란으로 삼은 수도원 지나가는 행인이 고개 들고 쳐다봐도 무슨 수행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고개만 아픈데 긴 원행을 다녀온 수행자는 세상을 편안하게 내려다 본다 이종섶 경남 하동출생.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시 당선. 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등 수상. 시집 『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 외 2권.
날이 갈수록 무성해지는 초록 잎들 손 흔들어 봄을 보내는 인사가 바쁘다. 광교산 약수터 가는 길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무거운 마음 시원한 초록 바람에 날리고 푸른 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에 젖은 마음 말린다. 추운 겨울 견디고 싹이 트고 꽃이 피고 꽃 진자리 녹음 우거져 오고가는 세월에 나무는 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순응하며 의연한데 세월 앞에 한없이 나약해지는 마음 신록의 풍성한 품에 안겨 초록 물 가득 채운 마음 다독이면 하루의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심평자 한국시학으로 등단. 시인마을 동인.
겨울 창을 열고 풍경을 들이자 묵묵한 순례를 끝낸 나뭇가지 봄 노래를 위한 준비로 소란하다 햇볕 내리쬐는 자리에는 금관 악기 소리를 내며 꽃문을 팡팡 연다 새파란 하늘이 열리고 불두화보다 희고 큰 구름이 피어난다 정소영 부산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문파문학으로 등단. 동남문학회, 문파문학회, 수원문인협회 회원.
세상의 집들은 욕망으로 역류 차곡차곡 쌓여 높은 층을 이루고 욕심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 뿔 돋은 코로나19의 모양 같다. 귓가에 들려오는 공포의 소리에 가슴 한 켠을 차지한 서늘한 바람 벗어나고 싶은 이 어두운 사회 환경 하늘이시여! 구조하소서 조금 한 켠 비워두고 아픔에서 탈출 물결 위 잔주름 그려냄도 없이 맑음과 건강의 상징 2020으로 마음이여! 미소지어라.
깜빡 깜빡 가물 가물 기억이 길을 걷는다 가스불은 켰는지 안 켰는지 약은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빨간 신호등 앞에 선 기억 무작정 길을 떠난다 걷고 또 걷고 하루 종일 걸어도 제 자리 걸음 노선 없는 초행길에 흐르는 까만 시간 퉁퉁 부은 발자국마다 새겨놓은 선홍빛 글씨 외.출.금.지 정정임 충남 아산출생. 계간 문파로 등단. 동남문학회 회장.한국문예협회 홍보이사. 수원문인협회 사무차장. 문파문인협회 회원. 동남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