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길 운연동 농장으로 가는 길 꽃들은 다투어 피어나는데 분봉하는 벌들 어지럽게 하늘을 나는데 목줄에 매인 개 한 마리 마당 한 쪽 디딤돌에 턱을 받치고 졸고 있다 소래산이 눈을 뜨고 기웃이 내려다보듯 텃밭까지 내려온 곤줄박이 슬픈 귀를 대어보듯 얼레지 보랏빛 언덕길로 숨을 몰아가다 긴 호흡으로 눈꺼풀이 무거워진 바람 그 바람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파라오의 비밀처럼 하얀 속살 부피도 무게도 없이 내 손등 위에 떨어진다 저만치 때까치 소리에 놀라 잠 깬 개울물 산허리 꽃길을 따라 깊게 흐르다가 어느새 내 눈언저리에 그렁그렁 고인 소래산 언덕길. 신규철 강원도 원주 출생. 시와 정신(시) 문예한국(수필) 등단. 제물포문학상(수필) 인천펜문학상(시) 수상. 시집 낡은 의자에 앉아서. 수필집 소래포구 해안길을 걷다 등 다수.
쟁기질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거짓말의 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리는 내로남불 묵정밭을 정의와 공정에 허기진 우리들이 갈아야 하지 않겠느냐 울음을 머금고 눈치 꽃을 피우는 가련한 봄 한숨 찬 꽃샘바람을 헤치고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하여 뒤를 돌아보지 말고 쟁기질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정순영 경남 하동 출생. 1973년 풀과 별 로 등단. 시집 시는 꽃인가 사랑 외 7권. 부산문학상 한국시학상 외 다수 수상. 부산시인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동명대학교 총장, 세종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현재 경기시인협회 부이사장, 4인시 동인
어머니의 밤바다 저물어 가는 저녁노을 파도는 거세게 울고 내 머릿속 혼란스럽게 만든다 파도 소리 외로움 누추한 생애를 들여다보는 듯 밤바다는 무섭게 물거품 만든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 가슴에 숨이 막혀 오던 밤 흰 앞치마에 묻은 때처럼 세월 속에 얼룩진 사연들 한 맺힌 어머니의 애환 밤새도록 마음 저리게한다 까만 어둠 헤집고 올라오는 해 밀려오는 물거품 모래 위 찍어 놓은 발자국 적시며 슬픔과 눈물이 교차되면서 갈매기 울음소리에 서러워 목이 메인다 장경옥 수원 출생. 국보문학으로 등단. 시집 파꽃.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문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칫솔 대신 썼다는 작은 나무토막, 기원 삼천년 전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했다 어느 뙤약볕에 가지를 벌리고 서 있거나 새소리에 밤잠 설쳤던 나무가 갈기갈기 쪼개졌다 가늘어진다는 것 빛과 소리들을 발끝에 뾰쪽이 내밀고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게 옷을 벗어버렸다 뿌리의 본성이 남아 애면글면 입 속의 틈을 찾는다 이빨 사이 낀 새의 울음소리나 시도 때도 없이 뱉어내도 남아있는 헛소리도 긁어낸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식후 입에 물고 나온다 후식 과일 한 조각 물고 있던 손잡이 계산대 위에 수북이 꽂혀 하루 일당도 받지 못하고 돌아간 일용직 산동반도 어느 뒤뜰 바람소리가 난다 최태랑 시와 정신으로 등단. 시집 물은 소리로 길을 낸다 도시로 간 낙타. 인천문학상, 시작문학상, 전국 계간지 작품상 수상. 국제PEN한국본부 인천지역위원회 회원.
저 토록이나 사랑이 깊었나 보다 내 그때도 그랬었지 그 나무 아래 내리던 건 꽃비 꽃비, 꽃 비- 붉던 두근거림이 파랗게 출발을 알리는 신호에 천천히 미끄러져 스치는 내 얼굴 가까이 활짝 피던 그대의 체향처럼 차에 실려 온 꽃잎들 화르르 꽃비 속에 우두컨한 시선은 그때 쓰러지던 학생들 위에 위로인 양 내렸지 저 꽃비, 그날의 아우성이야 호사였으면 좋았을 걸 죽음 위에 내리다니 너무 울화가 터져 꽃잎이 안경에 달라붙어 장면이 지워지네 1960년 4월19일이 말야 저토록이나 슬픔이 깊었었지 내 그때도 그랬었지 거리에 내리던 건 아우성들의 핏빛 핏빛, 핏- 빗- 이영균 좋은 문학 시 등단 소설미학 동화 등단 국제 PEN한국본부 인천지역위원회 감사 서울시인협회 이사 시집 하얀 아침 외 5권 동화집 푸른 강변마을의 느티나무 「좋은 문학」 대상, 한국시인상 수상
매화 토담 무너져 가는 함석집 텃밭 묶은 가지 겨드랑이 꽃눈을 뜨고 분홍빛 망울 머금은 여인 있었네 삼월 한낮 늦추위에 몰려드는 박새소리 허기진 배를 달래고 고무신 뒹굴던 묵은 밭고랑 두엄 피던 삽자루 던져 버리고 작대기로 지개장단 맞추던 그늘 우듬지기 지키던 매화 한 그루 떠난 임 돌아올까 먼 산을 보내 두드리는 창가로 잠 못 이룬 통 바람소리 하얀 잔설 흩날리던 날 사라지는 매화 향기 고목의 허리가 잘려 나가네 조병하 충남 청양 출생. 국보문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시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고포리 한탄강가 결 고운 모래톱으로 왕사탕 입에 물고 첫 소풍 가는 봄날 함께 가는 엄마들 두런두런 이야기 길 따라오신 외할머니도 가뿐한 발걸음 우리들 소풍날은 온 동네 소풍날 문방구 아줌마가 솜사탕 만화경 판을 벌이고 카메라 멘 사진관 아저씨도 오고 먼 줄도 모르고 세 시간 반 남짓 길을 뉘 집의 강아지인지 거기까지 따라오고 김밥 계란 사이다 나누어 먹고 둥글게 모여앉아 수건돌리기 걸리는 사람은 노래 부르기 왕눈을 크게 떠도 못 찾아 낸 보물찾기 서운함에 고단함에 울먹울먹 훌쩍이다 상급생 오빠 등에 업히다가 걷다가 오늘은 꿈길에서 절뚝이는 그 봄날 이춘전 연천 출생 홍익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 전공 졸업 수원공업고 교사 2021 계간 한국시학 봄호 신인상 등단
눈물나게빛이그립다. 당연히함께오는그림자가싫지만 빛을만나는아픔이기에견디어야한다. 세상의만물을보고싶어도 빛이존재할때가능하다. 빛이존재한다는것은 그림자를동반한다는것이다. 둘은처음부터함께태어나 삶과죽음을함께한다. 이토록동고동락을하는존재가 이세상에빛과그림자뿐이라는생각에 인간세계에선악의공존을생각하게한다. 빛이온다면그림자도함께올것이니 이체(異體)이면서일체(一體)로살아가는것은 오직너뿐이라는것을알기에 배수자 문학박사, 수원 곡반초 수석교사 제4회 나혜석 문학상 대상 수상 시집: 마 음의 향 기, 얼음 새 꽃 소리, 사색의 오솔길, 시 들지 않는 꽃. 수필집『만남의 심미학』등.
쾌청한 봄날 휘파람 불며 냇가로 산책 갔다 고기들이 유영하는 유혹에 그만 슬그머니 냇가로 들어갔다 마냥 평화로워 보였는데 그들은 몸을 가눌 힘이 없어 흐느적대고 더러는 배를 뒤집어 떠오르기도 한다 버들치 붕어 쏘가리는 다 어디 가고 보도 듣도 못한 괴물체 물고기가 다리를 휘감는다 점점 더 많은 가쁜 숨들이 몰려든다 소스라쳐 냇가를 벗어나려는데 소복을 한 거북이가 눈물을 떨구며 앞길을 막아선다 두렵고 미안한 마음에 차마 마주치지 못한 눈길 애써 외면하듯 피해 보지만 사방이 절벽이라 고립무원이다 수없이 행한 문명이란 뒤안길에 버려진 오만한 양심들 환경을 말아먹은 그 죄 겹겹이 쌓여 높은 절벽을 이루었다 성찰의 눈물로 젖은 베갯잇 본연의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기도하며 새날 새벽을 고대한다 최스텔라(본명 최복래) 포천 출생. 문파문학으로 등단. 국제PEN한국본부,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거룩한 사랑이다 기다란 링거줄을 통해 자신의 피를 몽땅 내어준다 달착지근한 맛 어머니가 행주치마에 안고 다니던 열두 식구 중 언제나 최하위 순번 사랑방 손님 한 두명 항상 얹혀 있고 매 끼니 잔칫집처럼 법석대 물마를 날 없던 손 할머니 모시옷은 하얀 쌀풀 먹여 삽삽하게 빨래줄에 걸려서 까다로운 시어머니 눈길을 보내고 아궁이 앞에서 불길 때문이라며 벌겋던 눈자위 가장 먼저 커다란 대문을 열어 새 날 마다 오롯이 내어 주기만한 어머니 고로쇠도 가장 먼저 봄을 열어 자신을 내어준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이다 황영희 충남당진 출생. 국보문학으로 등단.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동인.
옆집 담장 너머 하얀 목련꽃이 피었네 고귀한 꽃망울 피울 때 자목련도 화려하게 피었네 봄을 알리는 꽃이라며 그리도 좋아하시던 어머니 그 꽃이 피기 전에 하늘 나라 가셨네 어머니, 당신의 꽃을 보러 오소서 바람 부는 봄 하늘 보며 그 이름 불러보네 충북 영동 추풍령 출생. 시인마을 동인으로 시작 활동. 수원문학아카데미 詩창작회 회원.
네가 아는 게 뭐냐 네가 아는 게 뭐냐 봄이 오면 목이 메이는 이유도 모르면서 물이 액체로 흐르는 것만 알지 그 자체로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모르면서 바위는 꿈쩍도 않는 줄로 알고 용암을 액체로만 알지 사랑이 어떻게 울고 기억이 왜 쪼개지는지도 모르면서 산이 높은 줄만 알고 발밑에 스치는 안개가 구름인 줄도 모르는 너는 자연을 노래한다고 시를 읊는다고 나이만 먹고 있는데 네가 아는 게 뭐냐 정태호 1987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 시집 풀은 누워야 산다 창세기 등 다수. 수필집 무지의 소치로소이다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작가상, 경기PEN문학상 대상 수상. 국제PEN한국본부 경기지역위원회 회장, 서울시인협회 부회장,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수지문학회장
바람꽃 강둑에 바람꽃 하나 폈다 동면에 들었던 짐승 한 마리가 순식간에 봄으로 도망갔다 바람꽃이라도 피는 날엔 온종일 거울만 쳐다볼 뿐 아무 일도 잡히지 않았다 기어코 한달음에 달려가서 해지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었다 그날은 어김없이 바람꽃 하나 달고 왔다 박도열 전남 장성 출생. 1998년 자유문학 시 등단. 2010년 한국문인 수필 등단. 제1회 파주시 문예작품 공모 시 최우수상 제5회 나혜석 문학상 소설 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소설 가작 당선. 수원문인협회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시집 가을이면 실종되고 싶다
봄 햇살 좋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창문을 연다 벚꽃 너머 달려가는 봄날 바람의 몸이 먼저 알아차렸는가 그래, 같이 살자꾸나 쏘옥 모가지 늘려 내게 민다 노현숙 경북 의성 출생. 1994년 자유문학 및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바람은 없다 겨울나무 황혼에 서다 적막이라는 놀이터
바람이 분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바다 위를 끝없이 맴돌다가 끝내 바다를 벗어나지 못하고 마침내 바다가 된다. 바람이 분다. 바다가 되었던 바람이 어느새 다시 바람이 되어 아주 정열적인 몸짓으로 바다를 흔든다. 바닷가에 혼자 서서 바다와 바람을 노려보던 나는, 바다가 되었는가? 바람이 되었는가? 아무도 모른다. 주광일 1992년 시집저녁노을 속의 종소리로 시작 활동.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변호사(한국ㆍ미국 워싱턴 D.C.). 법학박사. 국민고충처리 위원장,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세종대 석좌교수 역임.
새들의 몸에 악보가 있다 악보는 음악의 레시피다. 음표는 출생이고 박자표는 삶이고 쉼표는 휴식이다. 쉼표가 없으면 마침표가 된다. 이때야말로 죽음이다. 새들은 몸속의 악보에 따라 경쾌하게 때로는 느릿하게 때로는 우울하게 날아오르기도 하고 내려앉기도 한다. 버드나무가지 멧새들이 봄에 끌려 암컷 등에 올라탄다. 보름 동안 알을 품는다. 날개 속에서 굴리고 굴린다. 드디어 탁탁 소리가 들리고 새로운 악보가 탄생한다. 김영진 2017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달보드레 나르샤 옳지 봄 제4회 아라작품 수상 제11회 리토피아 문학상 선정 계간 아라문학 편집위원. 막비시동인
이월의 신부 이월이 튤립을 만났다 사랑을 아는 모든 이에게 줄 한 다발의 순무 빛, 홍당무 빛, 가지 빛의 부케를 꾸린다 이월이 튤립을 맞이한다 봄물을 머금은 신부가 정원에서 걸어온다 헛된 사랑이 꽃말일지라도 바람에 부서질 사랑일지라도 튤립은 이월 앞에 완전하게 눕는다 이제, 사랑을 아는 이들이 부케를 들고 저마다의 집으로 들어가 이월의 신부가 되어 봄날을 맞이하리. 이정현 2007년수필춘추 2016년계간문예시 등단. 시집 살아가는 즐거움 춤명상. 한국비평가협회 작가상 한국문협서울시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편집위원 문학과창작 편집장.
추운 날 굳게 닫힌 두꺼운 코트를 벗고 여유 만만하게 봄을 만끽할 꽃향기 축제는 곧 한 꺼풀 얇아진 옷깃 사이로 오리라 저 칼바람 속 짙게 얼어붙은 아픈 뿌리를 내밀고 대지를 뚫고 오르는 꽃샘바람의 파편이 아직 쌀쌀한데 오늘 아침 임산부가 얇은 옷을 갈아입고 진통을 겪고 있다 따뜻한 진통 뒤에 다가올 젖은 눈물 고통을 수줍게 감추며 평안하고 경이롭다 한 꺼풀씩 곱게 짜여진 사랑으로 풍성히 캐어 담길 향기로운 눈물 봄은 봄의 소리를 스스로 귀담아 열심히 듣는다 겨우내 무채색의 어둠을 이겨내며 견뎌온 것은 오늘의 길을 살갑게 열어가기 위해서라고 봄을 낳는 임산부는 연둣빛 따뜻함을 덧입히는 봄처럼 기도한다 아기가 세상에 나와 해야 할 산적한 일들 마음 깊은 믿음과 신뢰를 심고 싶다고 다짐하는 듯 하다 올봄은 지난해 숱한 사연 다 떨치고 아름다운 추억들 새록새록 달고 가면 좋겠다 하지영 1983년 대중가요 조용필의 친구여로 작사가 데뷔 이후 여행을 떠나요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등 다수 발표. 월간 詩 공감 시인상 수상.
샛별 어린 시절 잠에서 깨어 마당에 나서면 동쪽 하늘에 뜬 큰 별 하나 내 가슴에 속살거렸다 총총히 박힌 뭇별 사라지고 캄캄한 세상 밝히던 그 별을 향하여 소원 빌었다 어두운 골목길 가난한 사람들의 창을 비추는 따뜻한 별이 되고 싶었다 강물은 시간의 충격을 견디며 흐르고 흘러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득히 먼 곳에 있고 작은 가슴에서 무지갯빛 꿈은 희미해져 갔다 산다는 것은 기쁨과 슬픔이 함께 굴러가는 수레 대지 위에 솟아나는 초록빛 새싹 소나기 그친 뒤 쏟아지던 눈부신 햇살 소리 없이 익어가던 꿈과 사랑 이대로 돌아서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인 것을 그래, 밤하늘에 홀연히 빛나는 저 샛별처럼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간다. 이희강 충남 부여 출생, 2018년 문예비전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시인마을 셋 동인
옳지, 봄 난생처음 엄마, 말문 트이고 걸음마를 배울 때 엄마가 장단 맞추는 소리, 박 같은 엄마 젖을 떼고 이유식 받아먹을 때 아기의 웃음을 맛있게 먹으며 칭찬하는 소리, 옳지, 그 소리에 힘을 받아 두 발로 일어선다. 우주는 아름답고 세상은 불안하지만 기어 다니다가 일어서니 눈높이가 봄의 키다. 봄이란 아기처럼 일어서는 거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우주도 손뼉 치며, 옳지, 김영진 2017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달보드레 나르샤 옳지 봄 제4회 아라작품 수상. 제11회 리토피아 문학상 선정. 계간 아라문학 편집위원. 막비시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