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 중요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문재숙 명인

“서울과 인접해 유능한 국악기 연주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비록 국악 황무지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지만, 다가오는 통일시대에는 전통음악으로 가교 역할을 하는 도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문재숙 가야금 연주가가 의정부시에서 4년째 ‘국제가야금축제’를 개최하는 이유다.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이자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음악과 교수다. 가야금 연주가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딸 이하늬의 엄마로도 유명하다. 문 교수는 지난 2013년부터 의정부에서 “국악 불모지에 씨뿌리는 심정”으로 국제가야금축제를 개최해 왔다. 올해 축제는 오는 30일부터 다음달1일까지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다. 전국에서 참가한 청소년과 일반인, 명인 등이 가야금 연주 실력을 겨루는 동시에 국내외 저명한 학자들이 국악의 저변을 확대 방안을 모색하는 장이다. 또 매년 특별한 음악회를 선보이며 의정부시의 대표적 전통문화예술 축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올해에도 문 교수의 문하생들과 함께하는 ‘금(琴)·가(歌)·무(舞) 동행’부터 그의 두 딸인 이슬기 가야금연주가와 미스코리아 출신 이하늬가 함께하는 공연을 진행한다. “전통음악의 전통적 매력을 계승해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공연, 오늘을 사는 우리가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연주, 세계에 국악을 보급할 지름길인 국악 찬양 등 크게 3개 소주제로 진행합니다. 가야금 연주와 노래, 춤 등을 콜라보레이션한 새로운 형식의 초연작과 창작창극도 있고요. ‘무지개 저 너머 꿈’이라는 부제처럼 각기 다른 특징의 국악 공연으로 관객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을 거에요.” 문 교수가 가야금 명인들과 의정부에 뿌린 씨앗들이 “하나씩 착근(着根)되”고 있지만 성에 찰 정도는 아니다. 시민참여형 지역문화예술축제로 육성한다는 1차 목표가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탓이다. 이에 올해까지 수준 높은 연주로 씨를 뿌렸다면, 내년부터는 의정부 시민들의 축제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일단 시민들이 공연장으로 한 걸음만 향하기를 권하는 것이 시작점이다. “가야금의 매력은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한국적이면서도 국제적인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양면성이에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죠. 일단 관객분들이 공연장에 오셨으면 좋겠어요. 앎의 첫 단계에 발을 디디면 이번 축제의 파격적인 무대들로 가야금을 알고, 좋아지고, 즐기게 될 수 있으실 거에요.”류설아기자

[문화인] 나정희 한국국악협회 수원지부장

“명인이라는 타이틀도 좋지만, 우리 문화를 전승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지난 26일 대한민국예술인센터에서 ‘제5회 한국예술문화명인’ 인증패를 받은 나정희(68·여) 한국국악협회 수원지부장의 소감이다. 한국예술문화명인제도는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에서 한국의 전통·예술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장인들의 업적을 평가하는 인증제도다. 선발된 명인들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예술문화 활동 및 창작품이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 받는다.나 지부장은 규방공예 중 하나인 조각보 부문의 명인으로 뽑혔다. 서민층에서 두루 활용된 전통공예인 조각보는 쓰다 남은 형형색색의 천 조각을 이어 만들기 때문에 다양하고도 화려한 색감을 자랑한다. “자연염색으로 물들인 작품은 은은한 매력을, 공업용 염료를 사용한 작품은 반대로 상큼한 매력으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자유자재로 색감을 활용한다고 해서 동료들이 ‘색채의 마술사’라고도 부릅니다.”조각보를 비롯한 이불, 골무 등 나 지부장이 창작한 50여점의 작품들은 모두 색채의 향연이다. 빨강, 보라, 초록 등 여러 가지 색의 천 조각들이 모자이크 모양으로 혹은 마름모로 이어져 공방 안을 수놓았다. 이 모든 작품은 100%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조각보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평균 한 달이 걸린다. 1cm 안에 8~12개의 바느질이 들어가기 때문에 집중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2001년부터 시작해 15년을 묵묵히 쉬지 않고 정진해온 터라 이제는 작업 중에 어깨와 허리에 통증도 오지만 작품 한·두 점이라도 더 남겨 한국 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것이 나 지부장의 바람이다. “(조각보로) 돈을 벌 욕심은 추호도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만 하면 돈도 따라오고, 스스로에게 빛이 나기 마련입니다.”나 지부장은 앞으로 규방공예의 미적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그간 품고 있던 큰 포부를 내비쳤다. “1년에 두 번, 다문화 가정의 부인들에게 무료로 (규방공예를) 교육할 예정입니다. 더 멀리는 공예 박물관을 설립해 규방공예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습니다.”권오석기자

[문화인] 오태식 두원공과대 건축디자인학과 교수

수원 크로키에서 오태식 교수(두원공과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달 출간한 그의 저서 백일동안(크레비즈 刊)에 수록된 작품들을 실물로 선보이는 자리다. 책에 담긴 작품 일부와 책에 담지 못했던 작품 등 총 100여점을 선보인다. 먹을 이용하는 특성상 인쇄 지면에 다 담지 못했던 작품의 실제 느낌을 전달하고 싶은 욕심에서다.“제 캘리그라피는 먹을 이용합니다. 아무래도 인쇄를 하니까 먹 특유에 질감이 살아나질 않더라고요. 먹이 가진 투박함과 부드러움을 전달하고 싶어 전시를 준비하게 됐습니다.”일반 갤러리가 아닌 이곳을 선택한 이유도 있다. 크로키는 예전부터 수원의 문화예술인이 찾는 단골집이다. 작은 주점인 이곳에서 예술인들은 막걸리 한잔 기울이면 작품에 대해 논했다.“크로키는 예술인들의 낭만이 묻어있는 곳이죠. 일반 갤러리는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데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퇴근 시간에도 부담없이 찾아 작품을 보면서 술한잔 기울이면 좋겠다 싶어 이곳을 선택했습니다.”오는 31일 전시가 끝나면 9월 한달간은 인근 라비아라는 음식점에서도 전시한다. 크로키를 선택한 이유와 같다.“제 작품은 편안합니다. 일상 속에서 쉽게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요. 일상적인 공간들이 전시장으로 변하는 재미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캘리그라피는 디자인적 요소가 강하다. 단순히 글씨체를 변형시킨 것이 아니라 글과 그림을 조합했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그는 현재 디자이너와 건축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8회의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전을 통해 작가로서의 입지도 굳혔다. 작품에는 이런 그의 주특기가 잘 살아있다.“보통 캘리그라피는 비슷한 글씨체들이 많아요. 글에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시켜 다른 느낌을 많이 내려고 신경 썼습니다. 제 작품을 통해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송시연기자

[문화인] 이정민 빈소년합창단원 “고향서 노래할 생각하니 설레요”

오스트리아 ‘빈소년합창단’이 오는 15일 군포를 시작으로 수원, 대구, 고양, 서울 등 내한공연을 진행한다. 특히 이번 공연을 주목하는 이유는 지난 2014년 한국인 4번째로 합창단에 합격한 이정민(13)군의 첫번째 내한 공연이기 때문이다. 수원 출신의 정민군은 2013년 수원에서 소년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꼭 합창단이 돼 저 무대에 서보리라’는 꿈을 키웠다. 그로부터 1년 후 합창단에 당당히 합격, 오는 16일 자신이 꿈을 키웠던 그 곳에서 공연 한다. 내한 공연을 앞두고 이군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민군은 1년 만에 방문하는 한국, 그리고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드러냈다.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정자초등학교)에 가보고 싶고,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요. 목욕탕에도 가고 싶고, 먹고 싶은 음식들도 많아요. 특히 간장게장이 먹고 싶어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단체로 공연을 온 것이라 개인적으로 행동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에 왔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려고요.”아쉬움을 달래는 모습에서 1년 만에 부쩍 성장한 느낌이다. 오스트리아에서의 생활은 어땠을까. “학교생활에 공연에 정말 정신없이 보낸 것 같아요. 비엔나에서 상설공연을 하고, 일요일마다 합창단 4개 반이 돌아가면서 미사 때 성가를 불렀어요. 그리고 중간 중간에 오스트리아 지방으로 내려가서 공연도 하고요. 또 작년 4월 첫 해외공연으로 일본과 독일에 갔는데 정말 신나고 재미있었어요. 올해는 한국을 시작으로 크로아티아, 카나리아제도, 헝가리, 스웨덴, 아이슬란드, 덴마크 등에 갑니다.”바쁜 일정이지만 이번 내한 공연을 대하는 자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한국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이기 때문에 조국에서 공연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고 신나요. 무엇보다 수원공연이 제일 설레요. 고향에서 그동안 성장한 저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꿈만 같아요. 솔로도 많이 하니 기대해 주세요.”이번 내한 기간에는 한국에서 빈소년합창단 특별 오디션이 열린다. 정민군이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친구들에게 전했다.“진짜로 노래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해요. 또 기숙사생활을 하기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서 지낼 수 있는 용기와 각오도 필요하고요. 군대처럼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 등의 어려운 점이 있으니 잘 생각해 선택하길 바랍니다. 노래 실력 못지않게 외국어 실력도 중요하니까 영어나 독일어를 공부하고 오면 좋을 것 같아요.”정민군의 수원 공연은 16일 오후5시 수원SK아트리움에서 볼 수 있다. 송시연기자

[문화人] 박규현 오산 광성초 3학년

서예 공부를 시작한 지 1년을 채우기도 전에 전국 서예 경진 대회에서 큰 상을 휩쓸며 주목받고 있는 영재가 있다. 한창 뛰어 놀 나이에 “서예가 가장 즐겁다”고 말하는 박규현군(오산 광성초 3년)이 그 주인공이다. 박군은 할아버지가 붓글씨를 쓰는 모습을 보고 자란 덕인지 어려서부터 한자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4살때에는 한자로 이름을 쓸 정도였다고. 서예 영재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5년이다. 집에서 유아용 한자사전을 즐겨 읽고 학습지로 놀듯이 공부하던 규현군이 2014년 11월 현봉 조상기 선생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우연히 오산시서예연합회가 연말 전시회를 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보고 물어물어 지금의 스승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동안 학원도 고르지 못한 채 어떻게 지원해줄까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이런 인연이 있으려고 늦어진 것 같아요.”(박군의 어머니) 박군은 현봉 조상기 선생이 오산시에서 운영 중인 서실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서예 공부를 시작했다. 먹을 갈고 벼루를 닦고 붓을 빨고 선을 긋는 기본부터 닦았다. 그렇게 몇 달 만에 맘껏 재능을 뽐냈다. 각종 서예대전에서 장려상을 시작으로 대상까지 거머쥔 것이다.지난해 7월 ‘제2회 전국서예대전’(예천)에서 학생부문 장려상을 차지한 데 이어 9월 ‘제34회 전국학생서예작품공모전’(광주광역시)에서 초등부 동상, 10월 ‘제1회 오산독산성전국휘호대회’에서 학생부 대상, 10월 ‘제1회 강암서예전국학생서예대전’(전주)에서 초등부 대상을 각각 따냈다. 경기도 오산시 출신으로 전국 대회에서 학생 부문 대상을 차지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현봉 선생은 “스스로 좋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성인보다 학습욕이나 성취도가 높다. 높은 의욕과 놓치지 않으려는 열정이 더해져 천재에 가깝다”고 평했다. 수줍어하던 소년은 소감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한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신기해요. 배우고 싶은 것을 하니 즐겁고, 부족한 제가 큰 상까지 받아 정말 기뻤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할꺼에요. 서예가 제일 재미있거든요.”즐기는 자는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배움을 즐기는 소년의 2016년이 기대된다. 류설아기자

[문화인] 이재복 작가(수원대 교수)

지난달 22일 최초의 ‘문민정부’를 세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가 남긴 업적과 어록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중 가장 많이 회자된 말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였다. 그 시대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으로 여겨져왔기 때문이다.“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이재복(수원대 교수) 작가의 작품명이기도 하다. 작가는 20년 동안 연작 슬픈 역사를 통해 ‘꽃상여가 남긴 서글픈 곡조(1993)’ ‘고귀한 죽음(1995)’ ‘영웅(2008)’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2004)’ 등 우리나라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작품을 선보여 왔다. ‘역사의 대서사시’라고 표현 되는 그의 작품은 식민지 시절에서 해방, 한국전쟁, 군사정권, 민주화 운동, 분단의 모습까지 우리 역사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따라온다.그는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슬픈 역사를 작품 속에 담고자 했다”고 연작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그의 작품에서는 강한 엄숙함이 느껴진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민족의 서글픔과 군사정권 시절의 아픔,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분단의 서러움이 담겨 있다.그는 “수 천 년 동안 수없이 많았던 전쟁들, 그 속에 죽어간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라며 “작업을 통해 어쩌면 잊혀 질지 모를, 또는 잊혀져간 그들을 위한 추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작품의 소재는 지극히 한국적이다. 키, 부채, 연, 빨래판, 새끼줄, 담배가루, 고서 등 우리 것을 사용한다. 하지만 표현 방식은 현대적 조형 기법을 차용한다. 한국의 것에 서구적 조형기법을 사용해 이재복 만의 작품세계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만의 차별화 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을 찾고자 했다. 한국성을 보여주는, 자주성을 강조하는 소재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며 “여기에 현대의 옷을 입혔다”고 말했다.특히 고서를 사용한 점이 뜻깊다.그는 “일제가 35년 동안 우리 문화를 단절 시켰다. 그때 많은 고서들이 버려졌다”며 “그 고서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나와 고서를 작성했던 사람들과의 공동 합작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곧 끊어진 역사를 다시 잇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요즘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주로 사용하던 화선지를 과감히 파괴하고, 바탕에 알루미늄호일을 깔아 현대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나아가 이태리의 디자이너가 고안한 스테인리스 스틸 의자 위에 그의 작품을 접목시키기도 한다. 그는 “한국이 지나치게 서구화 돼 있는 시점에서, 너무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았나라는 딜레마가 있었다”며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완전히 서구적인 것을 접목하거나, 디자인적인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송시연기자

[문화인] 김진옥 한국무용가

“사람은 때가 되면 스스로 물러나야죠. 섭섭한 마음도 있지만,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게 감사패와 공연 무대를 선물받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오는 5일 경기도국악당 전통교육강좌 강사로서의 은퇴 무대를 갖는 김진옥 한국무용가(명지대학교 예술종합원 무용과 객원교수)의 소감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입증하며 살아온 김 교수는 올해로 고희를 맞아 지난 10년 이상 몸담았던 경기도국악당 한국무용강사로서의 한 갈래를 매듭짓기로 했다. 한국전통무용가로서의 삶은 이어지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드는 듯하다. 지금까지 숱하게 밟아온 경기도국악당 무대, 그리고 그 뒤에서 발굴하고 키워온 제자들에 대한 애정때문이리라. “어쩌다보니 10년이 훌쩍 지나갔네요. 환갑 잔치도 경기도국악당에서 했고, 가르친 제자들이 열심히 해서 대회에 나가 큰 상도 받고, 상금도 받고…. 기분 좋은 일이 참 많았죠.”그는 지난 1990년 ㈔대한어머니회 경기도지회(수원) 무용부 지도강사를 시작으로 경기도국악당 토요상설공연(2005~2009년), 경기도립국악단 객원무용수(2005년), 경기도립국악단 후원회 부회장(2007년) 등으로 활약했다. 특히 그가 환갑이 되던 해에 경기도국악당 명인 무대에 초청 받아 기념 공연을 펼치는 등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또 김 교수가 가르친 제자들이 ‘2014년 수원화성전국 국악경연대회’에서 박병천류진도북춤으로 장원을 차지하고, ‘2015년 제1회 인천 계양산 국악제 전국 경연대회’에서도 대상을 차지하는 등 기쁨을 안겼다.이제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김 교수는 “떠난 자리에 후배와 제자들이 더 아름답고 멋지게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미소 짓는다. 그의 열정적인 몸짓, 제자 앞에서 추는 강사로서의 마지막 춤은 오는 5일 오후 4시 경기도 국악당에서 전통교육문화강좌 수강생 발표회 ‘제13회 국악가족음악회’를 통해 볼 수 있다. 그는 이날 교방타고무를 출 예정이다.이어 김 선생의 제자 20여 명이 한영숙류 큰태평무와 박병천류 진도북춤 등을 선보인다. 류설아기자

[문화인] 수원시향 김대진 예술감독

올해는 시벨리우스(J.Sibelius) 탄생 150주년을 맞는 해다. 전 세계에서 그의 음악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전곡은 처음이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은 올해 시벨리우스의 전곡을 연주하는 ‘시벨리우스&베토벤 시리즈’를 선보여 왔다. 오는 26일 수원SK아트리움에서 열리는 ‘시벨리우스 1 & 베토벤 1’을 끝으로 1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김대진 예술감독은 “올해는 많은 음악인과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의미 있는 해였다”며 “올해를 기념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시벨리우스&베토벤 시리즈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이번 시리즈는 베토벤이 함께 하면서 더욱 풍성해졌다.“시벨리우스에게 있어 베토벤은 큰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과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을 함께하는 것이 의미 있는 조합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특별한 개성과 색깔을 가진 피아니스트를 초청해 총 5번의 무대를 함께 했다.”사실 시벨리우스 전곡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교향곡 2번과 5번을 제외하고는 국내에서도 잘 연주되지 않았던 곡이기 때문이다. “전곡이 전부다 명곡인 경우는 거의 없다. 베토벤 교향곡 9개를 놓고도 완성도나 친숙함에서 차이가 난다. 시벨리우스도 교향곡 2, 5번을 제외하고는 연주자들에게도 생소한 곡이었다. 우리에겐 새로운 도전이었다.”시벨리우스의 마지막 시리즈인 이번 공연은 ‘시벨리우스, 핀란디아 작품26’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1번 다장조 작품15’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1번 마단조 작품39’가 연주된다. 교향곡 1번을 마지막에 선보이는 점이 흥미롭다.김 감독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전곡을 듣다보면 이게 과연 같은 사람인가 할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다”며 “시벨리우스의 시작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자 1번을 마지막에 연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송시연기자

[문화인] 신제섭 사진작가

딸이 세계를 제패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드디어 평생 간직해 온 자신의 마지막 꿈에 도전할 것을 선언했다.50대에 비로소 걷기 시작한 새로운 인생길, 아버지는 딸처럼 세계 정상을 노리고 있다. 세계적 프로골퍼 신지애의 아버지로 유명한 신제섭(56) 사진작가의 인생 후반부 이야기다. 그의 인생 전반부는 숨가뻤다. 어린 나이에 골프 여왕으로 등극한 딸을 돌보는 것은 물론 성은선교회(현재 대표)의 목사로 목회 활동을 펼쳤으며, 입학 35년만인 지난 2012년에 졸업하는 기록(?)을 세운 전남대 수의학과의 만학도이기도 했다. “80년대부터 사진가를 꿈꿨지만 여러가지 상황으로 못했다. 그러다가 지애가 세계 1위를 하면서 목적을 이룬 만큼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2012년에 비로소 ‘아빠의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한 후 사진에만 전념했다.”가족을 모두 미국에 두고 사진작업을 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기러기’ 생활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왕 하는 거 세계적인 작가가 됐으면 좋겠다’는 가족들의 응원에 힘을 냈다. 덕분에 오는 15일까지 수원 해움 미술관 제 1 전시장에서 두 번째 개인전 잃어버린 순간들!을 열고, ‘제 2회 수원 국제 사진제’의 한국 대표 사진 작가로 초청 전시를 갖는 기회도 잡았다. 그가 포착하는 장면은 문명화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소수 민족의 행복과 여유다. 마치 자신을 돌아볼 시간 없이 달려온 인생 전반부에서 놓친 그것을 보상받으려는 듯 하다. 사진 속 미얀마 소수 민족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현대인은 과거보다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행복지수는 떨어지고 만족감도 떨어진다. 반면 소수 민족은 경제적으로 궁핍하면서도 자연에 순응하고 행복해 보인다. 그 모습에서 인간 본연의 삶,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그는 앞으로도 동일한 주제의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다음달에는 올 초 두 차례 다녀온 미얀마를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점차 인도와 중국ㆍ몽골 등 방문 국가와 소수 민족과의 접점을 확대할 예정이다.“동양의 문화를 기록해 세계로 나가겠다”는 신 작가의 불꽃 튀는 후반전은 이제 시작이다. 류설아기자

[문화인] 무용가 마마정김

물감이 온몸에 질척인다. 끈적끈적하다. 무용수의 움직임에 따라 바닥에, 벽에, 천정에 형형색색의 궤도가 그려진다.파열하는 음악과 건조한 공간. 서로의 몸짓으로 빨려 들어갈 듯 미끄러지는 무용수들의 퍼포먼스. 실험을 넘어선 전위, 기묘한 미학이 전해졌다.오는 8일 서울 방배동 ‘탄츠슐레’에서 펼쳐지는 무용극 의 한 시퀀스를 앞서 본 느낌이다.유럽과 미주 무대에서 활동해온 무용가 ‘마마정김’(Cie MamajeangKim·39)의 작품이다. 동작과 오브제, 음악과 공간 구성 하나하나 몇날며칠을 고심해 만든 순수 창작극이다.작품만큼이나 그녀 역시 범상치 않다. 중요한 작품을 목전에 두거나, 뭔가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을 때는 항상 삭발을 한다. 이날도 거뭇한 까까머리로 나타났다. 이번 작품을 향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각오다.그녀의 이력은 독특하다. 국내보다 해외에 더 많이 알려졌다.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 직후인 2000년, 무작정 프랑스로 향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돈도 부족했지만, ‘독기’ 하나면 될 거라 여겼다. 그만큼 무용은 절대적 무엇이었다. 아르바이트와 어학원, 무용을 병행하며 하루를 48시간처럼 보냈다. 졸리거나 지칠 땐 스스로 뺨을 때리며 채찍질하기도 했다. 노력은 그대로 결실로 나타났다.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프랑스 무용 스튜디오인 ‘에흐베 꾸비’(Herve Koubi)에 들어갔다. 이후 5년간 수석 무용가로 활동한 뒤 2006년에는 무려 1천500대 1의 살인적 경쟁을 뚫고 독일 소재 세계적 무용단인 ‘샤샤발츠’(SashaWaltz)의 정식단원으로 입단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였다.이후 유럽은 물론 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넘나들며 무용을 선보였다. 그렇게 무용가로서의 명성과 입지를 확보할 즈음, 그녀는 다시 한국행을 택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자를 길러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예종과 국민대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학생을 가르쳤고, 틈틈이 무용단 지도도 병행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사건도 있었다. 아내가 됐고, 최근에는 한 아이의 엄마도 됐다. 무용 은 한국행 이후, 갖가지 인생사건을 겪은 뒤 창작한 첫 작품이다. 감회가 남다른 이유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할 일도 많습니다. 좋은 엄마만이 아니라 멋진 엄마도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용가로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실험하고, 도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출발이 이번 무대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8일 공연 외에도 이달 21일 대구수성아트피아축제에 초청돼 수성아트피아에서 공연을 갖을 예정이다.박광수기자

[문화인] 김미숙 도예가 “도자는 마음을 담아 빚어야죠”

“단순히 기술이 아닌, 마음이 담긴 도자기를 빚어내야 합니다.” 도예가 김미숙의 철칙이다. 그는 “작품에는 인간이 가진 선한 본성을 담아내야 한다”며 “삶과 인생이 녹아있는, 살아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사실 그는 도예를 전공하지 않았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던 그가 도예를 만난 건 10여년전, 우연한 기회였다.“대부분의 주부들이 그릇 욕심이 있잖아요, 저도 그랬죠. 제가 만든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는 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접시에서 시작한 도예가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소소한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건 그가 점점 변화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활력이 생기고, 각박한 세상에 닫혀만 가던 마음은 여유롭고 풍요로워졌다.“흙을 만지면 마음이 편해져요. 흙을 통해 제가 가진 인생의 모습이 작품으로 승화되는 것을 봤을 때 어떤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도예는 제 삶 그 자체가 됐습니다.”그리고 본격적인 도예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고, 2012년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 의왕에 ‘김미숙도자공예’를 차렸다. 그는 이곳을 학생들과 주부들을 가르치는 공방과 자신의 작업실 겸 갤러리로 활용하고 있다.“이곳은 단순히 도예 기술만을 가르치는 공간은 아니예요. 가르친다기 보다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공간이죠. 저와 같이 도예를 좋아하고 꿈꾸는 분들을 위한 열린 공간입니다.” 김미숙도자공예 회원들의 작품에서는 모두 생명력이 느껴진다. 소박하고 수수한 작품들이지만 뿜어내는 아우라는 전문작가 못지않다.“작품 안에 깃든 영성은 자신의 것입니다. 흙을 빚음으로 인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내면에 있는 선함을 이끌어 내는 거죠. 그 것이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입니다.”2013년부터는 회원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함께가는 사람들展을 개최하고 있다. 혼자보기 아쉬워 전시를 시작하게 됐다는 그는 “주부9단이란 말이있다. 이미 본인이 가지고 있는 삶의 지혜와 감성이 완성된 상태이기 때문에 주부라면 누구나 다 작가의 소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또 보다 의미 있는 전시를 위해 지난해부터 전시에서 생기는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고 있다.그는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행복과 기쁨, 그리고 나눔이 있는 삶이다”라며 “내가 가진 재능을 이용해 조금이라도 나누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송시연기자

[문화인] 플로리스트 송윤정

나의 원산지, 이곳에서 함께하는 시민들에게 당신 모두가 각기 다른 자연물로서 희망이 있음을 알려주며 위로하고 싶었어요. 수원 출신으로 수원시에서 첫 개인전을 갖게 된 플로리스트 송윤정(31ㆍ사진)의 전시 의도다. 그는 지난 15일부터 수원 시청 로비에서 한국 제14회 국제 꽃 장식대회(2014년)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수상작 <미지수의 값, 근(Root,根)>을 전시 중이다. 자신을 식물적 자연소재를 이용해 또 다른 자연을 재구성하는 플로리스트라고 설명하는 송씨는 꽃 파는 아가씨가 아닌 식물을 재창조하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수 많은 전문 자격증을 취득하고 끊임없는 학업 과정이 방증한다. 송씨는 성균관대 디자인대학원에서 환경디자인을 전공하고 영국 McQ Flower Course를 수료했다. 독일 IHK 국가공인 플로리스트와 한국 국가공인 화훼장식기사ㆍ화훼장식기능사ㆍ조경기사ㆍ컬러리스트기사, 국제꽃예술인협회 사범1급 등의 자격증을 땄다. 독일 제31회 퀼른의봄 꽃장식대회에서 관장식 1등을 차지하고, 201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수상작을 전시했다. 한국 우리은행 본점 도시환경을 위한 화훼장식 전시회, 고양 꽃 박람회의 바디플라워관 및 월드플라워관 전시장 디스플레이, 삼성생명 휴먼센터 합창대회의 증정 꽃다발 및 행사장 디스플레이 등 굵직한 행사에서 플로리스트로 활약했다. 지난 2012년부터는 수원에 꽃집과 카페를 겸하는 아리아팜(ARIA FARM)을 차리고 활동, 짧은 기간이지만 평탄한 길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상품화된 꽃만 접한 사람들이 작품이 된 꽃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먹어 봐야 맛을 안다고 하잖아요. 재방문해 지속적으로 작품인 꽃을 보며, 고객에서 관객이 되더라고요. 같은 자연물로서 아름다운 모습을 동경하고 위로받는 모습을 보면서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현실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이번 전시를 수원시에 직접 제안했다는 송씨의 열정이 꽃 작품처럼 아름답다. 류설아기자

[문화人] 취임 1주년 김정수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

다시 오고 싶은 수원을 만드는 것이 과제입니다. 단편적 관광과 사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문화콘텐츠 기획과 운영으로 사람 중심의 문화도시 구축에 힘쓰겠습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김정수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의 소회다. 돌이켜 보면 파란만장한 1년이었다. 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2014년을 휩쓸더니, 올해는 메르스라는 거대 복병을 만났다. 실의와 슬픔이, 공포와 불안이 무대와 광장을 잠식했다. 자연히 행사 진행에도 차질이 많았다. 그럼에도 숨 가빴다. 재단 출범 후 가장 변화무쌍한 해였다. 올해 3월 개관한 전통식생활체험관과 예절교육관이 재단의 새로운 위탁시설로 편입됐고, 그간 진공에 남아있던 무예24기 등 수원시립공연단도 올 초 출범, 내달 첫 창작공연을 앞두고 있다. 외연 뿐아니라 내연 구축에도 바쁜 1년이었다. 지난해 각종 총회와 심포지움 개최로 수원 문화를 알리는 것은 물론, 국내외 관광객 확보를 위한 세계 유수 관광박람회 참석 및 세일즈콜을 진행했다. 그 결과 미국 NBC방송 해외 로케이션 촬영지로 수원화성이 선정되는 등 가시적 성과도 도출됐다. 재단 출범 후 외적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조직도 비대해졌고, 일도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역할도 커졌죠. 이제 무엇을 소유하느냐 보다, 어떤 것을 채우느냐가 중요해졌습니다. 임직원에게 주문하는 것도 콘텐츠 입니다. 핵심은 차별화였다. 작년과 다른 올해의 어떤 것. 이 안에 지루한 것, 식상한 것은 지양했다. 지난 1년, 대표로 있으며 도출한 나름의 결론이었다. 그 첫 시험대는 10월 8일 열리는 수원화성문화제. 확장과 지속에 방향을 뒀다. 많은 시민이 모두 즐기자는 의미로 여민장락(與民長樂)을 개폐막 주제로 설정했다. 난장을 소재로 색(色) 다른 개폐막 무대를 마련했고, 능행차와 환궁에 스토리텔링형 퍼포먼스를 추가했다. 더불어 광장문화 조성을 위해 광장에 대형 소원나무를 설치할 예정이다. 여기에 문화재 곳곳 스탬프를 이용한 어드벤처 요소를 접목, 미션완수 시 공연료 할인 등 체험형 관광 콘텐츠도 도입했다. 다양한 요소가 신설된 만큼, 예산부담도 커졌다. 때문에 김 대표는 지역 내 기업과 단체를 다니며 기부 모금을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며 사력을 다하고 있다. 4년차 쯤 되면 조직이건 사람이던 관성화되기 쉽습니다.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앞둔 시점에 가장 경계할 부분입니다. 결국, 성패는 직원 간 소통과 협력에 있다고 봅니다. 남은 임기, 재단 내외부 탄탄한 기반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재단의 2016년이 기대된다. 박광수 기자

[문화인] 가야금 신동 박고은 양

재미있어요. 줄을 튕기는 대로 소리가 울리는 게 신기하고요. 지난 5월 의령 우륵청소년전국가야금국악경연대회에서 10살의 나이로 대상을 거머쥔 박고은(인계초3) 양은 가야금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가야금을 배운 지 이제 겨우 3년이지만 신동 소리를 들으며 국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고은 양이 가야금을 시작한 건 세 살 터울의 언니 덕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고자 어머니의 권유로 가야금을 먼저 시작한 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다. 남다른 재능은 곧 드러났다. 습득력이 빨랐고, 처음 듣는 곡을 악보도 보지 않고 연주하기도 했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본격적으로 두각을 보였다. 지난 2013년 4월 고은 양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충남 청양에서 열린 청양전국청소년 국악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은 것이다. 신동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고은 양은 거침이 없었다. 그때부터 휩쓴 상이 20여 개가 넘는다. 최우수상, 금상, 은상 등 상의 질도 높았다. 대회에서 고은 양을 주목하던 심사위원들의 추천으로 지난해 10월 KBS 국악한마당에 출연했고, 올해 2월 한 종편 프로그램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국악 신동으로 꼽히는 송소희 양과 함께 출연해 제법 얼굴을 알렸다. 올해부터는 가야금과 더불어 판소리도 배우고 있다. 벌써부터 가야금 못지않게 상당한 재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가야금 줄을 튕기며 노는 모습이 마냥 해맑은 어린아이같지만 포부를 밝히는 모습에선 당찬 국악인의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실력이 더 좋아지면 언니랑 같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공연을 다니고 싶어요. 가야금도 연주하고, 소리도 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나가는 고은 양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신지원기자

[문화인] 국내 첫 개인전 갖는 재미화가 천세련

저를 발판 삼았으면 좋겠어요. 저를 통해 국내외 작가들이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국내 작가는 외국으로, 외국 작가는 한국에서 활동하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 35년간 수필가, 교육자, 전문작가, 전시 기획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천세련 작가(60ㆍ여)의 바람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갖는 천 작가를 지난 3일 수원에서 만났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작품 활동을 할 수가 없었어요. 뭘 그리고, 만드는 건 힘들어서 사실상 손을 놓다시피 했죠.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짧은 글 쓰는 정도였어요. 그는 대학에서 생활미술을 전공하고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활동하다가 1981년 의사인 남편과 결혼해 미국에 정착했다. 낯선 땅에서 육아에 전념하면서 예술에 목말라했다. 그 갈증을 해소하는 통로로서의 수필가의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 편씩 쓰던 작품은 100여 편에 이르렀고, 워싱턴과 LA 문인협회에서 상을 받으면서 정식 데뷔했다. 하지만 미술을 전공했던 만큼 예술욕을 완전히 해소하는 데는 부족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뒤인 1995년 참아왔던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게 됐다. 미술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자녀들과 함께 다녔던 재미한국학교에서 미술교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의 예술 인생이 궤도에 올랐다. 학교에서 미술 외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한국 전통 차 문화도 가르쳤어요. 다양한 활동을 하다보니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행위 자체가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녀가 작품활동과 교육자로서의 삶 외에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 기획자에 도전한 이유다. 예술은 함께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2000년 뉴저지에 갤러리를 오픈하고, 뉴욕의 공공미술 갤러리 등에서 100여 차례 전시를 기획했다. 수원의 장혜홍 섬유예술가, 양모로 작업하는 독일의 울리 작가와 지난 1월부터 진행 중인 수원-뉴욕-베를린 프로젝트도 예술을 함께하기 위한 활동의 일부다. 천 작가는 장혜홍 작가의 뉴욕 전시를 기획한데 이어 2차 프로젝트로 행궁재갤러리(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소재)에서 개인전을 갖고 국내 관람객 및 작가들과의 교류에 본격 나섰다. 전시에서는 은하수를 이어져있는 실타래로 표현해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작가적 철학을 담은 시리즈와 실크 위에 먹으로 그린 원을 통해 모든 사물은 순환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중첩> 등을 선보인다. 이 전시는 28일까지 이어진다. 전시 이후 미국에 돌아가서도 작가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활동을 계속 할 겁니다. 한국ㆍ미국ㆍ독일을 넘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작가들이 교류할 수 있는 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게요. 신지원기자

[문화인] 브라질 만화의 전설 마우리시우 지 소우자

가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행복한 에피소드를 만화 속에 녹여내려고 노력했어요. 가족과 나눴던 대화도 기억해두고 만화에 담았죠. 가족 사이에서 발생하는 즐겁고 신나는 일들을 만화에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만화 속 캐릭터 모니카도 둘째 딸이 실제 모델이에요. 지난 25일 입국한 브라질 만화의 살아있는 전설 마우리시우 지 소우자의 말이다. 그는 지난 4월부터 진행 중인 경기도미술관의 모니카와 떠나는 세계명화여행 전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27일 경기도미술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긍정적인 마음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어떤 문제라도 좋은 점만 생각해야 해결책도 나오고, 결과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 만화의 공세에도 브라질에서 10억부를 판매하고, 브라질 만화 시장의 80%를 점유할 수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제가 그린 만화에는 슬프다거나 갈등 같은 이야기는 없어요. 항상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긍정적인 이야기를 보고 희망을 가지는 것 같아요. 물론 그의 만화는 단순히 즐길 거리로 머무르지 않는다. 만화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해 각종 사업으로 확장했다. 심지어 캐릭터를 활용한 교육ㆍ학습용 도서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만화로 포르투갈 언어를 배우고, 예의범절도 만화를 통해 배울 수 있게 하는 등 만화를 통해 교육하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하다. 현재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려면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명화를 모니카 캐릭터로 재해석하는 것도 그런 차원이죠. 인류의 보물인 세계 명화를 우리만의 캐릭터로 재해석해 문화적으로 소외 받는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시작한 거예요. 이미 많은 걸 이뤘고, 그가 만든 MSP(마우리시우 지 소우자 프로덕션)에는 200여명의 만화가가 함께 작업 중인데다 하루에 만화책 한 권은 만들 수 있게 인프라를 갖췄지만 그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한국 미술 작품을 접하고, 거기에 모니카 캐릭터를 담아봤어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겁니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예술문화를 우리만의 작품으로 만들어 전시를 계속하고 싶어요. 신지원기자

[문화인] 인천예고 미술교사·화가 엄영예

“그림으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린다는 게 가장 좋아요” 인천예술고등학교 미술교사이자 인천지역에서 활동하는 화가인 엄영예씨가 인천평생학습관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시회인 ‘움트다, 세계로의 초대전(展)’을 열었다. 엄영예 작가는 지난 8년동안 인천예술고등학교에서 미술을 지도하면서 틈틈이 ‘나뭇잎’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나무작품 12점, 삽화 10점, 도예디자인 1점, 조명디자인 1점)을 준비해 자신만의 이름을 건 전시회를 마련했다. 엄 작가는 지난 1998년 미술교사 단체전시회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2003년부터는 인천지역에서 다양한 단체 전시회에 참여하는 등 지역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재원이다. 특히 2012년부터는 인천예술고등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이 함께 작품을 선보이는 단체 전시전 ‘디딤돌전’을 꾸준히 이어오면서 학생들의 작품활동을 돕고 있다. ‘디딤돌’은 인천예술고등학교 미술교사 동아리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고 또 다시 학생들을 미술과 예술의 세계로 이끄는 디딤돌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진 모임이다. 지난해까지 3회에 걸쳐 ‘사제동행(師弟同行)’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면서 학생들과 졸업생들에게 다양한 작품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엄 작가는 “18년동안 전시회를 했지만 내 이름을 걸고 준비하는 첫 전시회라서 매우 설레고 남다른 보람을 느끼고 있다”면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았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하지만 엄 작가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림으로 아이들과 한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엄 작가는 “미술을 배우고 전공하고 싶어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나 스스로도 미술에 대한 열정을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건 매우 큰 선물과 같다”면서 “아이들과 그림으로 소통하면서 사제간에 더욱 돈독한 정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엄 작가는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앞으로도 더욱 좋은 작품에 매진해 제2, 제3의 개인 전시회를 열고 싶다”면서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작가이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미경기자

[문화인] 뉴욕서 한국 전통 예술의 아름다움 전파한 장혜홍 작가

미국에 이민가 오랫동안 고생한 분들은 눈물까지 흘렸어요. 고향의 향수가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 현지인들도 Wonderful을 외치며 한국 전통 예술의 아름다움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지난 1월~4월 미국 뉴욕 BBCN bank queens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장혜홍 작가가 전하는 현지 반응이다. 장 작가는 한국 전통 색채인 오방색으로 물들인 조각보로 재미교포는 물론 현지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번 뉴욕 개인전은 30여 년 동안 수원에서 회화부터 설치미술까지 다양한 작품세계를 선보여 온 장 작가가 세계 무대로의 진출을 본격화한 것이다. 한국 전통 예술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전파할 목적으로 계획 중인 수원-뉴욕-베를린 미술 프로프젝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미국 현지에서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천세련 작가의 제안으로 한국 전통 예술의 가치를 제대로 전할 수 있는 조각보와 <흑 프로젝트>(오방색 중 흑색을 평면 및 설치작품으로 표현한 작품)를 전시했어요. 지나치게 전통성만 부각하지 않으면서도 전통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외국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했죠. 그는 국내 작가들이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에서의 전시를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뉴욕을 시작으로 지난 7일부터 미국 마이애미 공항 갤러리에서 전시를 진행 중이며, 워싱턴문화원ㆍ워싱턴 공원ㆍ미국 뉴왁미술관 등으로 개인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작품 조각보 시리즈와 <흑 프로젝트> 외에 염색물감과 아크릴물감을 섞어 모란꽃을 그린 <화양연화> 작품도 내걸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수원의 지역 작가들에게 자극과 영감을 주기 위해 해외 활동 작가를 초대한다. 오는 6월 장 작가가 운영하는 행궁재 갤러리(팔달구 행궁로 소재)에서 천세련 작가의 전시를 진행한다. 같은 달 독일 작가 울리의 워크숍도 마련, 지역 작가들과 교류하는 마당을 마련한다. 국내에만 머물기에는 아까운 작가들이 너무 많아요. 더 많은 한국 작가들이 해외 무대로 진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에 거점도 마련해야 하고, 더 많이 알려져야 해요. 이제 시작입니다. 행궁재와 제가 발판이 돼서 우수한 작가들이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날이 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겁니다. 신지원기자

[문화인] 강진갑 경기학회 초대 회장

20여 년 지역학(경기도)을 연구하면서 역사에 쏠린 것이 아닌 통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연구방법론의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강진갑 경기학회 초대 회장의 학회 창립 배경이다. 그는 한양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를 취득, 인문콘텐츠학회장ㆍ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실장ㆍ청와대 문화체육정책자문위원ㆍ 경기도 문화재위원ㆍ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경기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 중인 강 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경기학회 창립 준비위원장을 맡아 4차례에 걸쳐 회원 모임을 진두지휘했다. 이상하게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을 밝힐 때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이라고 하는데 경기도는 시군을 말한다. 경기도의 모호한 정체성이 그 배경이 될 수 있다. 한편 몇 년 전 수원시민에게 수원시하면 떠오르는 것을 조사했을 때 삼성, 갈비, 화성 순이었다. 아마 지금은 통닭이 상위권에 올라와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지역학은 복잡다단해 통섭적인 접근이 불가피하다. 통섭을 강조하는 학회인 만큼 역사는 물론 인문학, 예술, 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회원으로 섭외하는 데 주력했다. 이에 교수, 정부 기관 연구원, 콘텐츠 개발자, 언론인, 대학원생 등 151명을 창립 회원으로 구성하고 지난 3일 창립총회를 가졌다. 이후 강 회장은 회원들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경기학회에 좀 더 쉽게, 좀 더 실질적으로,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주문받았다고. 이 같은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명확한 활동 방침과 계획을 세웠다. 앞으로 3년 안에 학회지 경기학연구(가칭)에 대한 등재를 추진하고 지역 현안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와 연구를 진행하겠다. 대중이 공감하는 학회를 지향하는 경기학회의 가까운 미래가 기대된다. 류설아기자

[문화인] “다함께·새롭게·즐겁게 변화 일으킬 것”

문화예술 현장으로 다시 돌아와 감회가 남달라요. 앞으로 다함께, 새롭게, 즐겁게 일하겠습니다! 지난 3월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규동<사진> 문화기획가의 각오다. 이 대표는 서울예술의전당 기획실장, 서울예술대학교 기획처장과 산학협력단장, 서울 송파구청 정책연구단장, 파주출판도시 상임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20여 년 만에 생생한 문화예술현장으로 돌아온 그는 단순히 공연장이 아닌 문화정책을 기획하는 재단이기에 선택한 만큼 시민을 중심에 세운 문화정책 기획 및 실현을 강조했다. 문화예술로 시민의 라이프스타일과 도시 사회적 패턴을 변화시키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을 재단의 가장 중요한 책무로 꼽은 것이다. 이에 수준 높은 공연 상연은 물론, 시민이 일상생활에서 잠재된 감성과 재능을 발견하고 각자의 생애주기에 맞춘 적시(適時)교육과 체험 프로그램 등을 제공할 방침이다. 지난 2005년부터 개최해 온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도 이같은 방침을 적용, 폐막작에는 시민이 대거 참여해 조형물을 세우고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오는 5월1일부터 3일까지 안산문화광장에서 펼쳐지는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3일 폐막 공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철저한 지역(시민) 맞춤형을 주문하는 그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으로 직원 역량 강화를 꼽는다. 앞서 이 대표는 취임 당시 별도의 취임식 없이 부서별 사무실을 돌며 직원들과의 인사로 첫 업무를 시작하면서 다함께, 새롭게, 즐겁게를 강조하며 직원들의 적극적인 업무 태도를 요구한 바 있다. 앞으로 직원 대상 재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지원 체계를 모색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재단을 지어진 공간이 아닌 무엇인가 계속 만드는 공장으로 경영하며 시민과 함께 문화도시로 향하는 변화를 일으키겠다고 밝혔다. 류설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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