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플러스] 불출석 재판 및 공시송달의 요건

“형사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법원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은 적이 없는데, 갑자기 나에게 불리한 판결이 선고됐다”라고 하소연을 하면서 구제 방법이 있는지 문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와 관련된 쟁점에 관한 최근의 판결 사례 하나를 소개하기로 한다. 제1심에서 피고인에 대해 일부 유죄, 일부 무죄 판결이 선고됐는데, 피고인은 항소하지 않고 검사만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부분에 대해) 항소했다. 항소심은 제1심에서 피고인이 송달을 받았던 주소 또는 피고인의 주민등록상 주소로 소송서류를 송달하였으나 송달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항소심은, 피고인이 제1심에서 진술한 거소지로 송달을 해보거나 제1심에서 피고인에 대해 송달이 이뤄졌던 주소에 관해 관할 경찰서장에게 소재탐지촉탁을 하지 않은 채, 피고인에 대한 송달을 공시송달로 할 것을 명하였다. 이후 항소심은, 피고인 소환장 등을 공시송달하면서 피고인의 출석 없이 개정하여 소송절차를 진행한 끝에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여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적법한 것일까?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공판기일에 출석하지 아니한 때에는 특별한 규정이 없으면 개정하지 못하고(형사소송법 제370조, 제276조), 피고인이 항소심 공판기일에 출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다시 기일을 정하고 피고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다시 정한 기일에도 출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피고인의 진술 없이 판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제365조) 다만, 이와 같이 피고인의 진술 없이 판결할 수 있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적법한 공판기일 소환장을 받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출정하지 아니할 것을 필요로 한다. 한편 피고인에 대한 공시송달은 피고인의 주거, 사무소, 현재지를 알 수 없는 때에 한하여 할 수 있다.(제63조 제1항) 위 사안의 항소심 법원은 공시송달 결정을 하기 전에 기록에 나타난 피고인의 다른 주소지에 송달을 실시하는 등의 시도를 하지 않은 채 피고인의 주거, 사무소와 현재지를 알 수 없다고 단정해 곧바로 공시송달의 방법에 의한 송달을 진행하고 결국 피고인의 진술 없이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2023년 2월 23일 선고 2022도15288 판결 참조)은 항소심을 수용하지 않았다. 즉 대법원은 위 항소심 판결은 형사소송법 제63조 제1항, 제365조를 위반하여 피고인에게 출석의 기회를 주지 않음으로써 소송절차가 법령에 위배된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이는 결국 공시송달의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이해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대법원은 피고인이 상고권회복결정을 받아 상고하더라도 형사소송법 제383조 제4호의 해석상 사실오인이나 양형부당을 상고이유로 주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원심에 사건을 환송함으로써 피고인에게 사실심 재판을 받을 기회를 부여했다는 점도 유의하기 바란다. 따라서 이처럼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형사재판이 진행돼 판결까지 선고된 경우라 하더라도 사안의 구체적 특성에 따라 구제 방법이 충분히 있을 수 있으므로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해법을 모색하기를 추천한다.

[법률플러스] 담배 자가제조와 죄형법정주의

A는 자신의 영업점에 연초 잎, 필터가 삽입된 담배종이 등의 담배 재료와 분쇄된 연초 잎을 담배종이 안으로 삽입해 주는 기계(‘튜빙 기계’라 함)를 비치한 다음 불특정 손님들에게 담배원료를 판매하고 위 튜빙 기계를 이용해 손님들이 스스로 담배를 제조할 수 있도록 제공했다. 검사는 A가 ‘담배제조업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담배를 제조했다’는 이유로 담배사업법 위반죄로 기소했다. A의 담배사업법 위반 혐의는 유죄일까? 형사법은 죄형법정주의가 지배한다. 죄형법정주의는 국가형벌권의 자의적인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범죄와 형벌을 미리 법률로 정하도록 요구한다. 또한 바로 그러한 취지에서 형벌법규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만일 법률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내용인 확장해석금지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다. 죄형법정주의의 관점에 비춰 볼 때,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A의 행동이 과연 담배를 ‘제조’한 행위에 해당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담배사업법 제2조 제1호에 따르면 ‘담배’란 연초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을 말한다. 한편 담배의 ‘제조’는 일정한 작업을 통해 담배사업법 제2조의 ‘담배’에 해당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담배의 ‘제조’는 담배 가공을 위한 일정한 작업의 수행을 전제한다. 그런데 A가 자신의 영업점에서 실제 행한 활동은 손님에게 연초 잎 등 담배의 재료를 판매하고 담배 제조시설을 제공한 것에 불과하고, A가 직접 담배의 원료인 연초 잎에 일정한 작업을 가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 대법원은 이상의 논리에 따라 A의 행위를 담배사업법이 정한 ‘담배의 제조’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참고로 A와 함께 기소된 다른 연초 판매업자들은 직접 제조시설을 이용해 가공작업을 수행하고 담배를 판매한 경우에 해당해 유죄가 인정됐다) 위 대법원 판결은 담배사업법이 정한 처벌규정에 대해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한 결과이기 때문에 이를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위 판결에 따르면 향후 연초 판매업자들이 위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이용해 직접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들로 하여금 튜빙 기계를 이용하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무분별한 담배 자가제조가 양산될 우려가 크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특히 공기관의 엄격한 검사를 거치지 않고 이뤄진 자가 제조 담배의 유해성 등을 고려해 자가 제조가 가능한 방식의 영업행위가 가능하도록 마냥 방치할 것이 아니라, 담배사업법의 관련 규정을 개정해서라도 담배의 자가 제조에 따른 유해성을 방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법률플러스] 치매 노인이 한 법률행위의 효력

치매 상태의 노인이 혼자서 집을 파는 매매계약을 체결하거나 유언공증을 한 경우, 이는 효력이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 노인에게 의사능력이 있는 경우라면 위 계약이나 유언은 유효할 수 있다. 설령 그의 상황이 성년후견개시가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치매에도 경·중의 차이가 있으므로 치매라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의사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의사능력이 없다고 하려면 증거에 의하여 그 사정이 입증돼야 한다. 피성년후견인의 법률행위는 취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민법 제10조 제1항), 만일 그가 특정한 법률행위 당시 의사무능력 상태였음이 입증된다면 그 법률행위는 무효가 된다. 다만 성년후견개시 심판을 받은 경우에는 의사무능력을 입증할 필요 없이 피성년후견인의 행위를 취소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피성년후견인의 행위의 효력을 다투는 사람이 의사무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게 되므로 성년후견개시 심판 등을 미리 받아둘 필요가 있다. 의사능력이란 자신의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정상적인 인식력과 예기력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 내지 지능을 말한다. 우리 민법은 행위능력이 제한된 제한능력자로서 미성년자, 피성년후견인, 피한정후견인을 인정하고 그러한 제한능력자들의 행위는 일정한 경우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의사능력 없는 자의 행위의 효력에 관하여는 일반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판례에 의하면, 의사능력의 유무는 구체적인 법률행위와 관련해 개별적으로 판단되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어떤 법률행위가 그 일상적인 의미만을 이해해서는 알기 어려운 특별한 법률적인 의미나 효과가 부여되어 있는 경우, 의사능력이 인정되려면 그 행위의 일상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법률적인 의미나 효과에 대하여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을 요한다. 따라서 신체감정결과 등을 통해 치매 상태의 노인이 계약이나 유언 등을 함에 있어 그 일련의 법률적인 의미와 효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입증된다면, 그가 한 계약이나 유언은 의사능력을 흠결한 상태에서 한 것으로서 무효가 되는 것이다. 한편, 피성년후견인과 피한정후견인의 유언에 관하여는 행위능력 제한에 관한 민법 제10조 및 제13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민법 제1062조). 따라서 치매 상태라 하더라도 피성년후견인은 의사능력이 회복된 때 직접 유언을 할 수 있고(민법 제1063조), 피한정후견인은 후견인의 동의 없이도 직접 유효한 유언을 할 수 있다.

[법률플러스] 근로자에 대한 해고가 제한되는 경우

A협동조합(이하 조합)은 정부 및 경기단체의 체육경기 등에 물품을 공급하는 조합으로 상시 근무하는 근로자 수가 4명 이하다. ‘갑’은 2017년 2월께 조합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이후 관리부 부장으로 근무해 왔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체육경기 등이 취소되면서 조합의 수입이 급격하게 감소했고, 결국 조합은 2020년 8월께 ‘경영상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갑을 해고하기에 이르렀다. 이 해고는 정당한 것인가?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이하 부당해고 등이라 한다)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해 근로자의 부당해고 등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부당해고 제한 규정은 근로기준법 제11조에 따라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과 가사 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르면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과 가사 사용인은 근로자를 정당한 이유가 없더라도 언제든지 부당해고 등을 할 수 있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조합처럼 상시 4인 이하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은 어떤 경우에도 사용자 마음대로 근로자를 해고 등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법원은 ‘상시 4인 이하 사업장이라고 하더라도,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서에 해고 등 부당노동행위를 제한하는 특약을 두었다면 그 특약에 따라야 하고, 이러한 제한을 위반한 해고 등은 무효’로 보고 있다. 그런데 위 조합은 인사규정(신분보장) 조항에서 ‘직원은 형의 선고와 징계처분 및 규정으로 정한 사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그 의사에 반하여 감봉, 휴직, 정직, 면직 등 신분상의 조치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해, 직권면직, 자연면직, 징계면직에 의해서만 직원의 신분을 박탈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었다. 즉, 조합은 인사규정에 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그 절차에 따라서만 ‘갑’을 해고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합이 갑을 해고하면서 해고사유로 제시한 ‘경영상의 어려움’은 인사규정에서 정한 면직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결국 ‘갑’을 해고한 것은 해고제한특약을 위반한 것으로서 무효가 된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근로자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즉, 상시 4인 이하의 근로자가 근무하는 직장이나 가사노무 제공을 위해 취업하는 경우에도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서를 서면으로 작성하고 그 서면에 근무시간, 보수 등의 근로조건은 물론 해고 사유 등 자신의 신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계약 조항을 반드시 기재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법률플러스] 신탁등기된 건물에 대한 임대차계약

A는 이제 막 회사에 취직한 사회 초년생으로, 회사와 가까운 곳에 거주지를 얻기 위해 전셋집을 알아보던 중 마음에 드는 신축 다세대주택(빌라)을 발견했다. A는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연락해 위 빌라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에 부동산 중개업자 B는 A에게 위 빌라의 소유자라며 C를 소개시켜줬다. 그런데 A가 위 빌라의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확인해보니, 원래 소유자는 C였지만 지금은 D신탁회사가 소유자로 등기돼 있었다. 이에 A는 부동산 중개업자 B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이야기하자 B는 위 빌라의 원소유자인 C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 문제가 없다고 한다. A는 C와 빌라 임대차계약을 체결해도 될까? 부동산신탁이란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이 일정 금액의 신탁보수를 지불하고, 해당 부동산의 관리, 처분, 개발을 부동산 신탁회사에 일정기간 동안 위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원래 부동산 소유자를 위탁자, 신탁회사를 수탁자라 한다. 부동산 소유자가 직접 부동산을 관리, 개발 및 처분하기 어려운 경우 신탁회사와 신탁계약을 체결해 해당 부동산을 관리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렇게 신탁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대내·외적으로 신탁 부동산의 소유권은 수탁자인 신탁회사에 모두 이전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신탁회사로 소유권이 이전등기 된 부동산에 관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려면 신탁회사와 해야 한다. 다만, 신탁계약서에 ‘신탁계약 체결 후 신규 임대차계약은 수탁자의 사전승낙을 조건으로 위탁자 명의로 체결하되 임대차보증금은 수탁자에게 지급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면, 위탁자(원소유자)는 수탁자인 신탁회사의 승낙을 얻어 임차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임대차 보증금은 원소유자(위탁자)가 아니라 신탁회사에 지급해야 한다. (반대로 만일 신탁계약에서 ‘임대차계약 전 수탁사의 승낙을 받은 후 위탁자는 임대차계약의 체결 및 보증금, 임대료 등을 수취할 수 있다’는 기재가 있다면 임차인은 위탁자에게 임대차보증금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신탁계약의 내용은 신탁등기 신탁원부에 기록돼 있다. 따라서 신탁등기 된 부동산을 원소유자인 위탁자로부터 임차하려는 임차인은 신탁계약의 내용이 기재된 신탁원부를 열람해 위와 같은 조항이 포함돼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위와 같은 신탁원부의 열람은 단순히 등기부 열람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으며 관할등기소를 방문해 별도의 신탁원부를 발급 받아 확인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위탁자로부터 신탁등기된 부동산을 임차하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신탁원부를 발급 받아 신탁회사의 승낙이 있어야만 위탁자가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 그러한 약정이 있는 경우라면 위탁자가 신탁회사로부터 임대차에 대한 승낙을 실제로 받았는지 여부 등을 추가로 확인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법률플러스] 블랙박스에 우연히 녹음된 파일의 증거능력

A와 B는 혼인신고를 마친 부부인데, A는 우연히 배우자 B의 차량 블랙박스 파일을 통해 B가 다른 이성 C 등과 부정행위를 한 사실을 확인하고, C 등에게 위 파일을 근거로 위자료를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C는 재판과정에서 “위 블랙박스 파일은 A가 블랙박스 기기를 이용해 몰래 녹음한 것으로서 동의 없이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것에 해당하므로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과연 C의 이러한 주장은 타당할까. 민사소송법은 형사소송법과는 달리 증거능력의 제한에 관한 일반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증거로서 사용되기 위한 자격이 없는 증거란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민사소송은 사인 간의 분쟁해결을 도모하는 수단으로서 이에 사용되는 증거의 선택 또한 소송당사자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고, 조금이라도 증거력 있는 증거방법은 모두 제출할 수 있도록 해 그 채부는 법관의 자유심증에 맡기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취지다. 다만, 통신비밀보호법 제4조는 불법감청에 의하여 지득 또는 채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14조 제1항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2항은 이에 위반한 녹음 또는 청취에 제4조를 준용하고 있다. 따라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한 녹취파일은 재판에서 증거능력이 없다. 그러나 계쟁 사건의 증거 수집을 위해 녹음이나 청취를 한 것이 아니라 교통사고 등 일반적인 증거수집 목적으로 설치된 블랙박스 기기에 우연히 녹음된 파일이 통신비밀보호법이 금지하는‘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에 해당할까? 최근 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보호하는 타인 간의 대화는 원칙적으로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육성으로 말을 주고받는 의사소통행위를 가리키고, 사람의 육성이 아닌 사물에서 발생하는 음향은 대화에 대항하지 않으므로 ‘녹음’이나 ‘청취’가 금지되는 ‘대화’는 의사소통행위의 현재성 및 현장성을 전제로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처음부터 녹음이나 청취의 의도 없이 일반적인 증거수집 목적으로 설치된 녹음기능이 부가된 블랙박스에 우연히 타인 간의 대화가 녹음된 경우 그 녹음파일을 청취하거나 녹취록을 작성하는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와 제14조 제1항에서 금지하는 ‘녹음’ 및 ‘타인 간의 대화 청취’에 포섭된다고 볼 수는 없다”(서울고등법원 2022. 12. 8. 선고 2022르22029, 2022르22036(병합) 참고}고 판시했다. 결국 통신비밀보호법이 녹음이나 청취를 금지하는 대화는 현재 타인들 사이에서 대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전제로 하지만, 차량 블랙박스 기기에 우연히 녹음된 타인 간 대화 내용을 녹음한 파일은 그러한 ‘현재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위 블랙박스 기기에 우연히 녹음된 파일 및 녹취록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법률플러스] 주위토지통행권

갑은 자신 소유의 토지에 주택을 건축하여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위 주택이 소재한 토지는 인접해 있는 을 소유의 토지를 통행로로 이용하고 있고, 위 토지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공로에 출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을이 자신 소유의 토지에 펜스를 설치해 갑이 더 이상 위 토지를 통행로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갑은 어떻게 해야할까? 민법 제219조 제1항은 ‘어느 토지와 공로사이에 그 토지의 용도에 필요한 통로가 없는 경우에 그 토지소유자는 주위의 토지를 통행 또는 통로로 하지 아니하면 공로에 출입할 수 없거나 과다한 비용을 요하는 때에는 그 주위의 토지를 통행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통로를 개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손해가 가장 적은 장소와 방법을 선택하여야 한다’고 규정해 토지소유자가 공로의 출입을 위해 이웃 토지를 통행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통로를 개설할 수 있는 주위토지통행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법원(1996년 11월29일 선고 96다33433,33440 판결 참조)은, 주위토지통행권의 범위와 관련해 통행권을 가진 자에게 필요할 뿐 아니라 이로 인한 주위토지 소유자의 손해가 가장 적은 장소와 방법의 범위 내에서 인정돼야 함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결국 그 범위는 사회통념에 비춰 쌍방 토지의 지형적, 위치적 형상 및 이용관계, 부근의 지리상황, 상린지 이용자의 이해득실 기타 제반 사정을 참작한 뒤 구체적 사례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하지만, 통상 사람이 주택에 출입하여 다소의 물건을 공로로 운반하는 등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범위의 노폭까지 인정된다. 또한 대법원(2006년 6월2일 선고 2005다70144 판결 참조)은 토지의 이용방법과 관련해 자동차 등이 통과할 수 있는 통로의 개설도 허용된다고 판시하면서도 단지 토지이용의 편의를 위해 다소 필요한 상태라고 여겨지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까지 자동차의 통행을 허용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법원은 여러 가지 제반 사정을 고려해 현재의 이용상황을 기준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범위의 노폭까지 주위토지통행권의 범위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주위토지통행권이 인정된다면 주위토지통행권자는 통행지소유자의 손해를 보상하여야 한다(민법 제219조 제2항). 즉 통행지소유자에게 사용료 상당액의 손해를 보상해야 한다. 따라서 위 사안의 경우, 갑은 우선 을과 을 소유 토지의 통행과 관련해 협의를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갑은 을을 상대로 주위토지통행권 확인청구 소송을 제기해 주위토지통행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갑은 을에게 사용료 상당액의 손해를 보상해야 함은 물론이다.

[법률플러스] 가계약금의 몰취

매매나 임대차와 같이 부동산을 거래하는 계약을 맺으면서 ‘해약금 약정’을 포함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여기서 ‘해약금 약정’이란 계약금을 해약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하는 약정이다. 예컨대 X(매도인)와 Y(매수인)가 A아파트에 대한 매매계약(매매대금 5억원)을 체결하면서 매매대금의 지급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약정했다. ‘Y는 X에게 2월2일 계약금으로 5천만원, 2월12일 중도금으로 1억5천만원, 2월22일 잔금으로 3억원을 지급한다. 매수인 Y가 중도금을 지급하기 전까지, 매도인 X는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하고 매수인 Y는 계약금을 포기하고 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이 계약에 따라 Y는 2월2일 X에게 계약금 5천만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며칠 후 Y는 갑자기 마음이 변해 아파트 거래를 없던 일로 하고 싶다. 이 경우 Y는 이미 지급한 계약금 5천만원을 포기하고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만일 정반대의 상황이라면 X는 1억원(이미 지급받은 돈 5천만원+추가 5천만원)을 Y에게 지급하고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요컨대 계약금 상당의 손해를 감수하는 대신 계약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확보되는 것이다. 그런데 의뢰인들과 부동산거래에 관한 상담을 하다보면 이른바 ‘가계약금’이 주제로 등장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A아파트가 매물로 나온 것을 발견한 Y가 너무나 만족한 나머지 X와 매매교섭에 돌입했다. 그러나 아직 최종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Y는 일단 A아파트를 선점하고자 ‘가계약금’으로 500만원을 X에게 지급했다. 그러나 며칠 후 Y는 마음이 변했다. A아파트를 처음 발견했을 때 자신이 너무 흥분한 나머지 A아파트의 여러 단점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에 Y는 X에게 연락해 A아파트 매수를 없던 일로 하고자 하니 가계약금으로 지급한 500만원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X는 ‘Y가 아파트 매매계약을 없던 일로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가계약금으로 받은 돈 500만원은 돌려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 것일까? 최근 유사한 사안에서 대법원(2022년 9월 29일 선고 2022다247187 판결)은 Y의 손을 들어줬다. 요점은 해약금의 약정이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가계약금에 관해 해약금 약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약정의 내용, 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에 의해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 관행 등에 비춰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기 전까지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해 계약을 체결하지 않기로 약정했음이 명백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위 사안의 경우 가계약금을 해약금으로 하는 약정이 있었음이 명백히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Y가 스스로 계약 체결을 포기하더라도 가계약금이 X에게 몰취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법률플러스] 하수급인 처벌 희망하지 않는 의사표시 포함 여부 판단기준

근로기준법 제36조 본문은 ‘사용자는 근로자가 사망 또는 퇴직한 경우에는 그 지급 사유가 발생한 때부터 14일 이내에 임금, 보상금, 그밖에 일체의 금품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금품청산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44조 제1항은 사업이 한 차례 이상의 도급에 따라 행해지는 경우에 하수급인이 직상 수급인의 귀책사유로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직상 수급인이 하수급인과 연대해 근로자의 임금을 지급할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면서, 직상 수급인의 귀책사유가 그 상위 수급인의 귀책사유에 의해 발생한 경우에는 상위 수급인도 연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109조는 위 규정을 위반한 사용자, 직상 수급인과 상위 수급인을 처벌하되, 근로자의 명시한 의사와 다르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44조, 제109조의 입법 목적과 규정 취지에 비춰 보면, 임금 미지급에 귀책사유가 있는 상위 수급인은 하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한 관계에서 근로계약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임금 미지급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 책임이 하수급인 또는 그 직상 수급인보다 가볍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하수급인의 근로자가 일반적으로 하수급인보다 자력이 더 나은 상위 수급인을 상대로 직접 임금을 청구하거나 형사고소 등의 법적 조치를 취할 여지가 많다 보니, 그 과정에서 상위 수급인이 근로자와 임금 지급에 관한 합의를 원만하게 이루고 근로자의 의사표시로 처벌을 면할 수 있는 경우에도, 합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하수급인이나 직상 수급인에 대하여는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근로자의 의사표시가 명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러한 경우 근로자가 상위 수급인의 처벌을 희망하지 않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를 철회하는 의사표시의 효과가 직상 수급인이나 하수급인에게 미치는지 여부는 형사처벌을 면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쟁점이 된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근로자가 임금을 직접 청구하거나 형사고소 등의 법적조치를 취한 대상이 누구인지, 상위 수급인과 합의에 이르게 된 과정 및 근로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를 철회하게 된 경위, 근로자가 그러한 의사표시에서 하수급인이나 직상 수급인을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있는지, 상위 수급인의 변제 등을 통해 근로자에 대한 임금지급채무가 어느 정도 이행됐는지 등의 여러 사정을 참작해 여기에 하수급인 또는 그 직상 수급인의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의사표시도 포함돼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고, 하수급인과 직상 수급인을 배제한 채 오로지 상위 수급인에 대하여만 처벌을 희망하지 아니하는 의사표시를 하였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판단기준을 제시했다.(대법원 2022. 12. 29. 선고 2018도2720 판결)

[법률플러스] 공공건설임대주택의 임차권 양수시 주의할 점

A는 자신이 소유하는 기존 주택을 2016년 5월20일 B에게 매도하는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2016년 7월25일 B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그런데 A는 그 사이(2016년 6월17일) 공공건설임대주택 임차인인 C로부터 (위 임대주택 건설업체인 임대사업자의 동의를 받아) 위 임대주택의 임차권을 양수하고 2016년 7월15일 전입신고도 마쳤다. 그 후 A가 위 임대주택과 관련해 임대사업자에게 조기분양전환대금을 지급하면서 A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위 임대사업자는 A가 임대주택 임차권 양수 시 ‘무주택 세대구성원’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에 A는 소송을 제기했다. 제1, 2심은 ‘A가 임차권 양수 전에 기존 주택에 대한 매도계약을 체결하고 그 후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쳐주었으므로 임대주택 임차권 양수 시 무주택 세대구성원 요건을 충족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2022년 10월 27일 선고 2020다266535 판결)은 무주택 세대구성원의 요건을 엄격히 해석한 끝에 제1, 2심과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임대주택법 등 관련 법령은 원칙적으로 임대주택 임차인의 임차권 양도를 금지하면서도 예외적으로 임차권의 양도를 허용하면서 그 요건 중 하나로 양수인이 ‘무주택 세대구성원’일 것을 정하고, 임대사업자로 하여금 미리 양수인의 주택소유 여부를 확인하도록 규정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이러한 규정의 목적은 국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공급되는 임대주택이 투기 또는 투자 목적으로 거래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해 실제 주거 수요를 충족시킴으로써 무주택 서민의 주거권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임차권의 양도에 관한 임대주택법 등 관련 법령의 규정들은 강행법규이며 이를 위반한 임차권의 양도는 당사자들의 합의나 임대사업자의 동의 여부 등과 무관하게 사법적으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여기서 ‘무주택세대 구성원’이란 임차권 양수 당시 세대원 전원이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세대의 구성원을 의미한다. 특히 대법원은 주택의 ‘소유’ 여부는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무주택자의 의미에 따라 보편타당하게 해석해야 하고, 특히 원인무효이거나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건물등기부 등에 주택을 소유한 것으로 기재돼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위 사례에서 기존 임차인 C로부터 임차권을 양도 받은 2016년 6월17일 당시 A는 기존 주택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주지 않았으므로 건물등기부상 기존 주택의 소유자였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 등기가 원인무효에 해당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A는 위 임대주택의 임차권을 양도 받을 수 있는 무주택 세대구성원으로 볼 수 없다. 결국 위 임차권 양도 계약은 그 자체로 임대주택법 등 관련 법령에 위반돼 그 효력이 인정될 수 없으므로, 설사 임대사업자가 임차권 양도에 동의하였다거나 A가 그 후 위 임대주택에서 실제 거주하면서 사후적으로 무주택 세대구성원이 됐다고 하더라도 우선 분양전환 대상자의 자격을 취득할 수는 없다. 위 사건과 유사한 법률문제에 당면한 분들의 주의를 요한다.

[법률플러스] 임차주택 양수인의 임대인 지위 승계를 저지할 수 있는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4항에 의하면, ‘임차주택의 양수인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판례는 위 조항이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의 대항요건을 갖춘 임대차의 목적이 된 임차주택의 양수인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이를 법률상 당연승계 규정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임차주택이 양도된 경우에 양수인은 주택 소유권과 결합해 임대인의 임대차계약상의 권리·의무 일체를 그대로 승계하게 된다. 그 결과 양수인은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고, 양도인은 임대차관계에서 탈퇴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상 당연승계의 법리가 예외 없이 적용된다면, 원래의 임대인인 양도인의 자력이 충분해 이를 믿고 임차를 한 경우나 기타 양도인과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임차를 한 경우 등 임차인이 양수인의 임대차 승계를 원치 않는 경우에도 그대로 임대차 승계가 이뤄져 임차인에게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예컨대, 임차주택 가격이 폭락해 임대차보증금에 미치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전세’의 상황 등에 있어서 임차주택 양도 시 양도인의 자력이 충분한 경우 임차인은 양도인으로부터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받고 싶을 터인데, 예외 없이 법률상 당연승계가 된다면 임차인이 원하는 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원래 임차인의 보호를 위해 두게 된 위 법 제3조 제4항이 오히려 임차인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셈이 된다. 이에 판례는 원래 임차인의 보호를 위한 법의 입법 취지에 비춰 임차인이 임대인의 지위승계를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임차인이 임차주택의 양도사실을 안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승계되는 임대차관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그와 같은 경우에는 양도인의 임차인에 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는 소멸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 임차인은 원래의 임대인인 양도인과의 임대차관계를 해지하고 양도인으로부터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아 퇴거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의 담보로 임차주택이 가장 우선시되는 것이므로, 위와 같이 임대차 승계를 거부하는 예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예외적인 경우일망정 구체적 타당성을 위해 위와 같은 임차인의 권리는 보호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법률플러스] 주택 양수인도 실거주 이유로 갱신요구거절 가능

임차인 ‘을’은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하 ‘법’)에 따라 임대인에게 갱신요구권을 행사했다. 이후 제3자인 ‘갑’은 임대인으로부터 해당 임대주택을 양수했다. 이처럼 ‘갑’은 임대인 지위를 승계한 뒤 자신이 실거주할 것이라는 이유로 ‘을’의 갱신요구를 거절하고 ‘을’을 상대로 건물인도를 구하는 소송을 냈다. ‘갑’은 승소판결을 받을 수 있을까? 법 제6조 제1항은 ‘임대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임차인에게 갱신거절권의 통지를 하지 아니하거나 계약조건을 변경하지 아니하면 갱신하지 아니한다는 뜻의 통지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기간이 끝난 때에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한 것으로 본다.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2개월 전까지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또한 같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제6조의3 제1항 제8호는 ‘임대인은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의 기간 이내에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지만, 임대인(직계존속, 직계비속 포함)이 목적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에는 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2022년 12월1일 선고 2021다266631 판결)은 최근 ‘임차인이 임대차계약 갱신을 요구했더라도 임대인은 법 제6조 제1항 전단에서 정한 기간(임대차 종료 6개월 전~종료 2개월 전) 내라면 제6조의3 제1항 단서 제8호에 따라 임대인이 실제 거주하려고 한다는 사유를 들어 임차인의 갱신요구권을 거절할 수 있고,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임차주택의 양수인도 갱신거절기간 내라면 제8호에 따라 실제거주를 이유로 한 갱신거절을 할 수 있다’고 선고했다. 위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임대주택 양수인(임대인 지위승계인)은 종전 임대인과 별도로 독자적으로 갱신거절권을 행사할 수 있고, 그러한 양수인의 실거주를 이유로 한 갱신거절이 정당한지 여부는 그 갱신거절이 법상 적법한 갱신거절기간(임대차 종료 6개월 전~종료 2개월 전) 내에 이뤄졌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사 임차인(‘을’)의 종전 임대인에 대한 갱신요구권 행사 이후 양수인(‘갑’)이 임대인 지위를 승계한 경우에도, 위 갱신거절 기간 이내라면, ‘갑’은 적법하게 갱신거절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분쟁은 실제 거래계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또는 장래에 이 사건과 유사한 상황에 처하게 될 독자들의 주의를 요망한다.

[법률플러스] 판결로 확정된 면접교섭권을 배제할 수 있을까

A는 B와 혼인해 자녀로 C, D를 두고 있었다. 계속된 B의 폭행과 폭언으로 인해 A는 B를 상대로 법원에 이혼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 A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면서 C, D의 친권자와 주양육자를 A로 지정하고, B에게 하여금 자녀인 C와 D를 한 달에 2번 지정된 날짜와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B의 폭력적인 모습을 보고 자라온 C, D는 B와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올수록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급기야 B와의 면접교섭을 거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A는 자녀들과 B의 만남을 막을 수 있을까? 면접교섭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경우 면접교섭권을 가진 당사자는 법원에 그 의무를 이행하도록 이행명령을 신청할 수 있고(가사소송법 제64조), 이행명령을 받고도 면접교섭을 허용하지 않으면 가정법원은 직권 또는 권리자의 신청에 의한 결정으로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상대방에게 부과할 수 있다(가사소송법 제67조 제1항). 따라서 무작정 자녀들과 상대방의 만남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판결로써 확정된 면접교섭권이더라도 가정법원은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한 때에는 당사자(부모 일방)의 청구 또는 직권에 의해 면접교섭을 제한하거나 배제할 수 있다(민법 제837조의 2 제2항). 대법원도 면접교섭이 자녀의 복리를 침해하는 특별한 경우 당사자의 청구 또는 직권에 의해 면접교섭을 배제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1년 12월 16일 선고 2017스628 판결 참조) 그렇다면 ‘면접교섭이 자녀의 복리를 침해하는 특별한 경우’란 무엇일까? 위 대법원 판결은 면접교섭을 청구하는 부모 일방과 자녀 사이의 유대관계나 친밀도, 면접교섭을 청구하는 의도나 목적, 면접교섭이 양육자인 부모 일방과 자녀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거나 자녀가 새로운 양육환경에 적응하는 데 장애가 되는지 여부, 면접교섭 청구인에게 양육자인 부모 일방 또는 자녀에 대한 현저한 비행이나 아동학대 등의 전력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면접교섭이 자녀의 복리를 침해하는 특별한 경우인지를 판단한다고 판시했다. 실제로 비양육자인 아버지가 자녀에 대한 면접교섭을 신청한 사건에서 청구인(아버지)이 정신질환 이력이 있는 점, 자녀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보이고 있는 점, 자녀는 이와 같은 불안으로 인해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는 점, 무엇보다도 자녀가 청구인(아버지)과의 면접교섭을 원하지 않고 있는 점을 들어 아버지의 자녀에 대한 면접교섭을 배제한 사례가 있다.(부산가정법원 2017년 11월 20일 선고 2016느단4222 판결) 조혜진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당사자 간 대화 몰래 녹음 금지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지난 9월 말 윤상현 의원의 대표발의로 통신비밀보호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됐다. 주요 내용은 ‘대화 당사자가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를 처벌하되, 위 녹음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공익을 충실히 보호한다는 것이다. 만일 위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상대방과의 대화를 동의 없이 녹음한 대화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현재 위 통신비밀보호법 일부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상태로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통과되더라도 실제 시행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벌써부터 관련 논의로 여론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특히 당사자 간 대화 녹음을 민사소송의 입증 방법 내지는 형사소송의 증거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 법조계에서는 위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큰 파장이 우려된다. 그렇다면,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당사자 간 대화 녹음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은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16조 제1항 제1호는 ‘제3조의 규정에 위반하여 우편물의 검열 또는 전기통신의 감청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한 자’를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형행법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는 경우 형사 처벌한다. 따라서, 자신이 당사자로 참여해 대화를 나누는 경우 즉, 당사자 간 대화는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니기 때문에 몰래 녹음을 하더라도 그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으로 처벌되지 않는 것이다. 변호사로서 소송을 수행하다 보면, 성범죄나 사기 등 입증이 어려운 사건들에서 ‘당사자 간 대화 녹음’이 중요한 증거로 쓰이는 경우를 왕왕 만나게 된다. 또 직장 내 괴롭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녹음을 하는 경우와 같이 ‘녹음’은 보통 사회적 약자가 부당한 대우나 압력에 대항하는 최소한의 수단인 경우가 많아 상대방의 동의를 얻고 녹음을 하는 것은 애당초 쉽지 않다. 현행법도 ‘대화 당사자가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가 ‘음성권 내지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등을 침해했다고 인정되면 민사상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케 하고 있다. 즉, 현행법 하에서도 음성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 녹음으로 달성하려는 이익을 비교형량해 몰래 녹음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화 당사자가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를 일률적으로 금지해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시각에서 개정안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다솔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토지임차인의 지상물매수청구권

건물 기타 공작물을 소유하기 위한 목적 또는 식목, 목축 등을 위한 목적으로 토지를 임차한 임차인은 임대차 기간이 만료했을 때 건물, 수목 등의 지상시설이 현존하고 있다면, 임대인에 대해 상당한 가액으로 그 지상 건물 등을 매수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643조). 이를 토지임차인의 지상물매수청구권이라 한다. 이 권리는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지상 건물의 잔존 가치를 보존하고, 토지 소유자의 배타적 소유권 행사로 인해 희생당하기 쉬운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것이다. 지상물매수청구권은 ①건물 기타 공작물의 소유 또는 식목, 채염, 목축을 목적으로 한 토지임대차에서, ②임대차 계약 기간의 만료로 임차권이 소멸했는데, ③임대차 계약 기간이 만료했을 때 그 토지 상에 임차인 소유의 지상건물 등이 존재하고 ④임대인이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를 거절했을 때, 행사할 수 있다. 토지임차인의 지상물매수청구권에 관한 민법의 이러한 규정은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강행규정임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임차인에게 불리한 지상물매수청구권 배제의 특약(예컨대 “임차인은 임대차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지상 건물을 철거해 임대차목적물인 토지를 임대인에게 인도해야 한다.”는 등의 특약)은 원칙적으로 무효다(민법 제652조). 다만, 임대차 계약의 내용, 임대차 계약의 체결 경위와 제반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질적으로 임차인에게 불리하다고 볼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수 있을 때에는 그 특약은 위 강행규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1997년 4월 8일 선고 96다45443 판결 참조)의 입장이다. 설사 임차한 토지에 있는 건물이 행정관청의 허가를 받은 적법한 건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임차인은 임대인에 대해 지상물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대법원 2013년 11월 28일 선고 2013다48364, 48371 판결 참조). 반면,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 없이 임차권을 타인에게 무단양도 또는 전대하거나 2기 이상의 차임연체 등 임차인의 채무불이행으로 임대차계약이 해지될 경우에는 지상물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대법원 1972년 12월 26일 선고 72다2013 판결 참조)는 점도 주의를 요한다. 임차인이 지상물매수청구권을 행사한 경우 임대인은 그 매수를 거절하지 못한다. 즉, 지상물매수청구권은 형성권이므로 임차인이 적법하게 지상물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면 설사 임대인이 이를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지상물에 관한 매매계약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준행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임대차 종료와 월세•관리비

가상의 사례를 들어보자. A상가의 소유자인 X는 2022년 1월1일 보증금 5천만원, 월세 200만원, 임대차 기간은 2년, 관리비는 임차인이 납부하는 조건으로 A상가를 Y에게 임대했다. Y는 이후 A상가에서 3개월 동안 식당을 운영하면서 꼬박꼬박 월세를 지급하였으나 이후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월세를 지급하지 못했다. 월세 지급을 독촉하던 X는 더이상 참을 수 없어 2022년 7월1일 임대차계약을 해지했다. 이 무렵부터 Y는 인테리어와 각종 식당 설비를 그대로 둔 채 상가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식당에 나타나지 않았다. X는 상가반환소송을 제기해 2022년 12월31일 이를 반환받았다. 이러한 형태의 사건은 거래계에서 수시로 발생한다. 이 사건에서 다음과 같은 법률 문제들이 등장한다. 우선 Y는 X에게 2022년 7월1일 이후의 월세 1천200만원(200만원×6개월)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가? 임대차계약은 2022년 7월1일 적법하게 해지됐으므로 Y가 월세를 지급해야 하는 계약상의 의무는 없다. 그러나 Y는 법률상의 원인(임대차계약)이 없음에도 A상가를 6개월 동안 점유했으므로 월세 상당의 이익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대법원(예컨대 2018년 11월 29일 선고 2018다240424, 240431 판결 참조)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Y는 상가 건물을 임대차 계약의 목적에 따라 영업용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이를 점유한 것에 불과해 ‘실질적 이득’을 얻은 사실이 없고, 이처럼 실질적 이득을 얻은 사실이 없는 이상 이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6개월 동안 Y가 A상가를 마치 ‘창고’처럼 사용한 것도 그의 ‘실질적 이득’이 아닐까? 그러나 이 사안에서 X가 보증금 5천만원을 반환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Y가 권리(보증금 회수) 방어용으로 상가를 점유한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문제는 관리비다. 임대차 계약이 해지된 2022년 7월1일 이후 Y는 A상가를 점유하고 있지만 이를 사용하고 있지 않음에도 관리비를 납부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대법원(2021년 4월1일 선고 2020다286102, 286119 판결 참조)은 위에서 살펴본 ‘월세’ 관련 논의와 유사한 답안을 제시한다. 즉 ‘임대차계약이 종료된 경우 임대차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차인이 임대차목적물을 사용·수익하지 않고 점유만을 계속하고 있는 경우라면 임대차목적물 인도 시까지 관리비는 임대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임대차 계약이 해소된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임대차 목적물을 단순 점거하고 있을 뿐 이를 임대차 계약 본래의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안에서 임차인은 임대차 계약 해소 이후의 월세와 관리비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 현재의 ‘법’이다. 혹시 이러한 사건에 휘말려 있는 임대인과 임차인들은 장차 중요한 법률적 결정을 내릴 때 이러한 법리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김종훈 변호사/ 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승진발령의 무효와 부당이득

법률에 따라 설립된 A공사가 외부 업체에 의뢰하여 승진 시험을 실시했다. 그런데 이후 ‘일부 직원들이 사전에 위 외부 업체로부터 시험문제와 답을 제공받아 시험에 합격했고 그 대가로 금전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 직원들에 대한 승진발령은 취소됐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그동안 승진된 직급에 따라 근무하고 급여를 받아왔다는 점이었다. 이처럼 직원들의 승진이 중대한 하자로 취소돼 소급적으로 효력을 상실한 이상, 이들은 승진 전의 직급에 따른 표준가산급을 받아야 하고 승진가산급은 받을 수 없으므로 결국 이들이 승진 후 받은 급여상승분은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받은 부당이득으로서 공사에게 반환돼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이와 같이 판단한 A공사는 위 직원들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심리한 원심 법원은 승진에 따른 업무를 수행한 것에 대한 대가로 지급된 급여상승분은 해당 직원들에게 귀속되는 것이 옳다는 전제 하에 A공사가 이를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것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2022년 8월19일 선고 2017다292718 판결)의 판단은 원심과 달랐다. 우선, 대법원은 승진발령이 무효임에도 근로자가 승진발령이 유효함을 전제로 승진된 직급에 따라 계속 근무해 온 경우, 승진 전후 각 직급에 따라 수행하는 업무에 차이가 있어 승진된 직급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임금이 지급됐다면, 근로자가 지급 받은 임금은 제공된 근로의 대가이므로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있다고 볼 수 없어 사용자가 이에 대해 부당이득으로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승진 전후 각 직급에 따라 수행하는 업무에 차이가 없어 승진 후 제공된 근로의 가치가 승진 전과 견주어 실질적 차이가 없음에도 단지 직급의 상승 만을 이유로 임금이 상승한 부분이 있다면 근로자는 임금 상승분 상당의 이익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승진이 무효인 이상 그 이득은 근로자에게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된 것으로서 부당이득에 해당하므로 이를 사용자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대법원은 여기서 승진 전후 제공된 근로의 가치 사이에 실질적으로 차이가 있는지 여부는 제공된 근로의 형태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보직의 차이 유무, 직급에 따른 권한과 책임의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근로자가 승진 발령이 유효함을 전제로 승진된 직급에 따라 계속 근무하면서 승진된 직급에 따른 보수를 지급받았으나 이후 승진 발령이 무효가 된 경우, 대법원은 당해 사안의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성립 여부 및 부당이득의 범위를 다르게 보고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박승득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소멸한 저당권에 기하여 개시된 경매의 효력

타인으로부터 금전을 차용하고 그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자신의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준 사람이 그 채무를 변제하지 못하면 근저당권자는 법원에 임의경매를 신청해 그 매각대금에서 법정 순위에 따라 배당을 받는다. 그런데 근저당권에 기한 임의경매 절차가 진행되는 도중에 채무자가 그 채무를 변제해 근저당권이 소멸됐음에도 불구하고 경매취소 신청이 없어 경매가 그대로 진행된 경우, 경매신청의 근거인 담보권이 없어졌음에도 그대로 진행된 경매를 유효한 것으로 보아 낙찰받은 매수인을 보호해야 할까? 아니면 근저당권부 채권을 변제해 근저당권을 소멸시킨 소유자(채무자)가 억울하게 부동산을 뺏기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까? 민사집행법 제267조(대금완납에 따른 부동산 취득의 효과)는 ‘매수인의 부동산 취득은 담보권 소멸로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해 경매절차의 안정성과 공신력 보호를 위해 경매개시결정에 대한 이의 등으로 경매절차가 취소되지 않고 매각이 이뤄졌다면 경매는 유효하고 매수인은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의경매 신청으로 인한 경매개시결정이 있기 전에 이미 소멸하거나 그 담보권에 실체적 하자가 있었는데도 그에 기초한 경매가 진행되어 매각됐을 경우에도 그 경매는 유효한가? 예를 들어 A 소유 부동산에 B가 근저당권을 설정한 후 여러 건의 가압류가 경료되자, A가 B에 대한 채무를 모두 갚았음에도(또는 아예 B에 대한 채무가 전혀 없이 허위로 근저당을 설정했을 수도 있다) B가 임의경매를 신청해 매각대금을 선순위로 모두 배당받고 가압류 채권자는 배당받지 못하게 한 뒤, 배당받은 금원을 다시 A에게 반환하는 편법으로 경매절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때에도 그 경매를 정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대법원 2022. 8. 25. 선고 2018다205209 전원합의체 판결은 다음과 같이 보았다. 임의경매의 정당성은 실체적으로 유효한 담보권의 존재에 근거하므로, 담보권에 실체적 하자가 있다면 그에 기초한 경매는 원칙적으로 무효이고, 특히 채권자가 경매를 신청할 당시 실행하고자 하는 담보권이 이미 소멸했다면, 그 경매개시결정은 아무런 처분권한이 없는 자가 국가에 처분권(즉 경매절차를 통한 처분권)을 부여한 데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서 위법하다. 반면 일단 유효한 담보권에 기하여 경매개시결정이 개시됐다면, 이는 담보권에 내재하는 실체적 환가권능에 기초해 그 처분권이 적법하게 국가에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담보권의 소멸은 그 소멸 시기가 경매개시결정 전인지 또는 후인지에 따라 그 법률적 의미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민사집행법 제267조는 경매개시결정이 있은 뒤에 담보권이 소멸한 경우에만 공신력 보호를 위해 적용되는 것이고, 경매개시결정이 있기 전에 담보권이 소멸한 경우에 그 담보권에 기한 경매의 공신력을 인정한다면 이는 소멸한 담보권 등기에 공신력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와 현재의 등기제도와 조화된다고 볼 수 없다. 요컨대 이미 소멸한 근저당권에 기해 임의경매가 개시되고 매각이 이뤄졌다면 그 경매는 무효다. 심갑보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과실에 의한 방조행위자 공동불법행위 책임 범위

민법 제760조는 수인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면서(제1항) 방조자도 공동불법행위자로 보고 있다(제3항). 그런데 여기에서의 방조는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손해의 전보를 목적으로 하여 과실을 원칙적으로 고의와 동일시하는 민사법의 영역에서는 과실에 의한 방조도 가능하며, 이 경우의 과실의 내용은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 공동불법행위 책임은 가해자 각 개인의 행위에 대해 개별적으로 그로 인한 손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들이 공동으로 가한 불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책임의 범위는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가해자들 전원의 행위를 전체적으로 함께 평가해 정하고 가해자 각자가 손해배상액의 전부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해자 1인이 가공한 정도가 경미하다고 하더라도 그 가해자의 책임 범위를 손해배상액의 일부로 제한하여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위와 같은 공동불법행위 책임의 원칙적 법리에 의한다면, 과실에 의한 방조로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하는 경우에도 그 방조자 역시 전체의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보게 된다면, 과실에 의한 방조자에 대해 너무나도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된다. 이에 판례는, 타인의 불법행위에 대해 과실에 의한 방조로서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방조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제한한다. 따라서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할 때에는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고, 과실에 의한 행위로 인해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사정에 관한 예견가능성과 아울러 그 행위가 피해 발생에 끼친 영향, 피해자의 신뢰 형성에 기여한 정도, 피해자 스스로 쉽게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판례는, 타인의 불법행위가 계속되는 중 공동불법행위자의 과실에 의한 방조행위가 이뤄졌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과실에 의한 방조행위와 그 이전에 타인의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과실에 의한 방조자는 그 이후의 손해에 대해서만 배상책임이 있다고 한다. 타당한 결론이라 할 것이다. 임한흠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법률플러스] 마이너스 통장에 착오 송금한 경우 은행으로부터 반환받을 수 있을까?

갑은 A가 은행에 개설한 예금계좌로 3천만원을 송금했다. 그 계좌는 통상 ‘마이너스 통장’이라 부르는 것으로, 잔고가 마이너스인 경우에는 은행이 상당액을 자동적으로 대출한 것으로 하며(이른바 ‘종합통장 자동대출’) 계좌에 입금이 이뤄지면 그 대출금에 충당한다. 갑이 A에게 송금했을 때 위 계좌의 잔고는 마이너스 8천400만원이었다. 그런데, 사실 갑은 본래 B에게 금전을 지급할 생각이었다. 즉 갑은 지급의 법적 원인이나 의사가 없었음에도 착오로 A의 계좌로 잘못 송금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갑은 다음 날 곧바로 은행에 잘못 입금한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은행은 이를 거부했고 갑은 은행을 상대로 위 착오 이체된 금전의 반환을 구하는 부당이득 반환의 소송을 제기했다. 위 소송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법원은 갑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대법원 2022년 6월30일 선고 2016다237974 판결 참조) 종합통장 자동대출에서 은행이 대출약정에서 정해진 한도로 채무자(A)의 약정계좌로 신용을 공여한 후 채무자가 잔고를 초과해 약정계좌에서 금원을 인출하면 잔고를 초과한 금원 부분에 한해 자동적으로 대출이 실행되고, 그 약정계좌에 다시 금원을 입금하면 그만큼 대출채무가 감소한다. 종합통장 자동대출의 약정계좌가 예금거래기본약관의 적용을 받는 예금계좌인 경우 그 예금계좌로 송금의뢰인(갑)이 자금이체를 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송금의뢰인과 수취인(A)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수취인이 은행에 대해 위 이체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 다만 약정 계좌의 잔고가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계좌로 자금이 이체되면, 그 금원에 대해 수취인의 예금채권이 성립함과 동시에 대출약정에 따라 은행의 대출채권과 상계가 이뤄지고 그 결과 ‘수취인은 대출채무가 감소하는 이익’을 얻게 된다. 따라서, 설령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인 법률관계가 없더라도 송금의뢰인은 수취인에 대해 이체금액 상당의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될 뿐, 수취인과의 적법한 대출거래약정에 따라 대출채권의 만족을 얻은 은행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취득한다고 할 수 없다. 대법원이 펼치는 논리는 다소 복잡한 듯 보이지만, 결국 이 사건에서 갑이 착오로 잘못 송금해 이익을 얻은 상대방은 A이지 은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갑이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상대방도 A일 뿐 은행이 아니다. 따라서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갑의 소송은 기각될 수밖에 없다. 계좌이체 방법으로 송금할 때 정당한 수취인을 확인하고 정확히 표시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어떤 이유로 송금 과정에서 이미 오류가 발생한 경우 그 이후에 취해야 하는 법적 조치를 선택하는 때에도 신중해야 한다. 만일 착오로 엉뚱한 사람에게 돈을 송금한 경우라면, 은행이 아니라 수취인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해야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이재철 변호사/법무법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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