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즉흥으로 살펴본 현상의 이면… 황현화 작가의 ‘The Other Side’ 展

캔버스 가득 크고 작은 판화지 조각이 채워졌다. 찢긴 종이가 겹겹이 붙은 캔버스를 보고 있노라면 붙여진 종이 너머 ‘이면’에 대한 사유를 곱씹게 된다. 황현화 작가의 개인전 ‘The Other Side’ 展이 양주 안상철미술관에서 21일부터 열린다. 전시에 내걸린 32점의 연작은 작품마다 눈길을 사로잡는 요소가 있다. 캔버스를 채우는 다양한 크기의 판화지 조각들이다. 더 재밌는 건 종이 조각들 아래에 있는 형형색색의 영역들이다. 과연 작가가 밑그림 위를 종이로 채운 것인지, 색이 물든 종이를 빈 캔버스에 채운 뒤 그 주변을 다른 흰 종이로 갖다붙인 건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 발길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각 작품의 표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종이의 레이어가 몇 겹일지 상상해볼 수 있다는 점이 작품 세계의 근간과 연결된다. 황 작가가 이런 작업을 2018년부터 시작하게 된 계기 역시 판화 작업을 한창 이어가다가 문득 발견한 판화의 뒷면 때문이다. 그는 “판화 작업 이후 여백으로 남아 있는 종이를 잘라내고 찢어서 작품의 영역으로 소환했다”며 “컬러링된 종이, 프린트 과정을 거친 종이 등을 다양하게 활용해 바탕에 뒀다”고 설명했다. 전시작 중 초기의 작품들은 조각마다 안 겹치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 하지만 작가는 어느 순간부터 종이를 찢었을 때 가장자리의 물성에 사로잡혀 그 결을 살리는 데 힘을 쏟기도 했다.  그의 고백처럼 이번 전시장을 수놓는 그림들은 철저한 계획과 통제보다는 우연과 즉흥에 의한 산물이다. 황 작가 역시 매 작업마다 종착지나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무의식을 따라 손이 가는대로 작업에 몰두했다고 말한다. 그는 “캔버스를 채워나가는 방향도 다 달랐다. 어떨 때는 위에서부터, 언제는 가운데를 출발점을 삼기도 했다”면서 “시작과 끝 자체를 예측할 수 없는 즉흥성이 작업 전반에 녹아들어 있다. 심지어 작업도 동시에 여러 작품을 시작하기도 하고 한 작품에만 5개월 이상 매달리기도 하는 등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가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각에서 판화로, 또 회화로 다루는 매체와 작품의 행보를 확장해왔다. 그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작가로서의 그의 가치관으로 미뤄봤을 때, 그건 아무도 모른다. 황 작가는 “작품마다 깃든 색상의 배합, 전체적인 형상은 제가 구상한다고 해서 그대로 될 수 없다. 그래서 무의식과 연동된 내면의 흐름에 온몸의 감각을 맡겨야 한다”면서 “내가 지금 이 순간에 무언가에 사로잡혀 선택한 데 따라서 재배치되고 재구성되는 어떤 흐름의 길이 생기고 그저 그 길을 따라갈 뿐”이라고 웃어 보였다. 전시는 4월18일까지.

베를리오즈 탄생 220주년…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선보이는 4월의 낭만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4월13일과 14일 오후 7시30분 경기아트센터 대극장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경기필 마스터피스 시리즈 VI –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을 선보인다. 이번 공연에선 특별히 동양인 최초로 2012년 독일 오페레타상 지휘자상을 받았던 지중배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끈다. 프로그램은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서곡, ‘환상교향곡 C장조, 작품번호(Op) 14’와 존 애덤스의 ‘완벽한 농담’으로 구성됐다. 이번 무대는 프랑스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베를리오즈의 탄생 22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관객이 만날 작품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환상교향곡’이다. 베를리오즈는 당시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등에 출연한 연극 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에 첫눈에 반해 열렬히 구애했지만 거절당했다. ‘환상교향곡’은 그가 지독한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을 때 완성했다. 실연의 아픔을 작곡으로 승화한 것이다.  각 악장마다 제목이 달린 표제 교향곡의 형식이며, 1악장 ‘꿈, 열정’, 2악장 ‘무도회’, 3악장 ‘들판의 풍경’,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 5악장 ‘마녀의 밤, 축제의 꿈’ 등 총 5악장으로 구성됐다. 이 곡은 당대 교향곡이 일반적으로 취하던 4악장제가 아니라, 선배 작곡가인 베토벤의 ‘6번 교향곡(전원 교향곡)’의 5악장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베를리오즈는 베토벤을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으로 삼아 그의 음악을 분석·연구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규모 편성, 무대에 잘 올리지 않는 악기의 도입 등으로 당시 교향곡의 선진국 격이던 독일 현지에서도 베를리오즈의 시도에 다양한 반응을 쏟아냈다.  특별히 이날 공연에는 에스메 콰르텟이 무대에 함께한다. 에스메 콰르텟은 세계적인 귄위의 실내악 콩쿠르인 ‘런던 위그모어 홀 국제 현악 4중주 콩쿠르’에서 지난 2018년 한국인 실내악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바이올리니스트 배원희·하유나, 비올리스트 김지원, 첼리스트 허예은이 의기투합해 결성된 팀이다. 이들은 미국 작곡가 존 애덤스의 2012년 작품인 ‘완벽한 농담’을 국내 초연한다. ‘완벽한 농담’은 현악 4중주와 오케스트라를 동반하는 곡의 독특한 구성을 보여주는데, 다채로운 베토벤 음악을 재해석한 뒤 배열한 작품이다. 에스메 콰르텟과 국내 오케스트라의 첫 협연이라는 점도 관전 포인트다.  지중배 지휘자는 “낭만주의 시대의 포문을 열었던 ‘환상교향곡’을 통해 현대의 관객들이 인간의 희로애락과 예술이 어떻게 연동될 수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며 “지난날도 함께했던 꿈과 정열 가득한 파트너인 경기필과의 이번 협연이 풍성한 감정이 쏟아지는 4월의 낭만을 돋보이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말, 전시 나들이] 그럼에도, 봄은 오고 꽃은 핀다…해움미술관 '화주전 사군자'

얼어붙었던 겨울의 땅을 뚫고 싹이 텄다. 얼어붙었던 가지에서도 꽃이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봄 기운이 완연한 주말, 새로운 영감을 주는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겨 기분을 전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수원 해움미술관이 지난 3일 개막한 ‘화주전 사군자’ 전시에서는 봄을 상징하는 작품들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와 회포를 풀어냈다. 전시장 내 ‘치유의 방’에 들어서면 하얀 벽면과 스크린, 붕대가 찢긴 철제로 만든 두상이 놓인 김희곤 작가의 작품 ‘안아 주세요’를 만난다.  관람객이 직접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작성해 치유의 방을 완성해 나가는 작품이다. 자신이나 타인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를 치유의 방에 설치된 두상 작품, 영상화면, 흰 벽면에 그림이나 글로 남기면 된다. 작가는 아이들이 친구의 부상 부위를 감싼 깁스에 낙서하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다.  그동안 찢고 뚫고 자르거나 할퀴어서 허상이라는 고통의 프레임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해온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 붕대를 감고 마음의 온기를 더해 고통의 프레임을 녹여낸다.  작가는 자신의 역할을 상처에 갇혀 신음하는 이미지를 나타내고 붕대를 감아주는 것으로 제한하지만 관객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제안한다. 작가의 제안에 관람객이 응하는 메시지가 더해져 완성되는 프로젝트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주의 미술가인 윤석남 작가의 유기견 시리즈 ‘108번’도 만날 수 있다. 갈 곳을 잃은 듯한 개의 눈동자, 그 아래 이질적이지만 힘차게 피어난 꽃. 희미한 눈동자가 이 시대 갈 곳 없이 방황하는 현대인들을 나타낸다면, 그럼에도 피어난 꽃을 통해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화두 ‘갈 곳을 잃고 헤매지만 봄은 돋아난다’가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이와 함께 강재욱, 권용택, 김봉준, 김상구, 김선동, 김억, 김영섭, 김재홍, 남기성, 남부희, 류연복, 손기환, 안재홍, 이미경, 이연섭, 이오연, 이윤엽, 이은희, 이재민, 이주영, 이해균, 정세학, 조진식, 차진환, 최세경, 한상호, 황은화, 고강행복 등이 참여해 회화부터 사진, 조각,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수원시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해움미술관은 10주년을 기념해 이번 전시를 신춘 기획전으로 마련했다. "우리가 상상 속에서 그릴 수 있는 봄을 선보이려 했다”는 이해균 해움미술관 대표의 말처럼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 속에서 다양한 봄과 주제가 펼쳐진다.  전시는 5월3일까지.

움직이고 변화하는 시간 예술 [백남준아트센터 ‘2023 신소장품전’.下]

백남준아트센터의 ‘2023 신소장품전’은 전시되어 있으나 박제되지 않은, 변화와 변형, 시간의 움직임이 자유로운 시간 예술을 선보인다. 그 속에서 생태와 인간, 기술을 면밀히 들여다 본 동시대 작가들의 세계관이 드러난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이번 전시는 작품 수집에 관해 백남준센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해 수집과 관련한 정책 방향을 수립하고 움직인 결과로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해 선보이는 자리”라고 밝혔다. 인간과 기계, 생태계를 면밀하게 들여다본 김성환, 김희천, 노진아, 박선민, 박승원, 안규철, 언메이크랩, 업체eobchae×류성실, 진시우 등 9작가(팀)의 작품 11점을 만날 수 있다.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작가들의 협업과 몽환적인 위안은 김성환 작가의 ‘드로잉 비디오’에서 엿볼 수 있다. ‘드로잉 비디오’는 드로잉 세 점과 ‘드로잉 비디오’, ‘커버’ 등 비디오 두 점으로 구성된 영상 설치 작품이다. 드로잉 비디오는 2007년 김성환과 권병준, 데이비드 마이클 디그레고리오가 함께 공연한 ‘푸싱 어게인스트 디에어’라는 퍼포먼스에서 김성환 작가가 했던 라이브 드로잉 기록을 담았다. 3명의 아티스트가 세계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5초 이상의 침묵을 이어간다. 또 개와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는 남성의 모습을 찍은 16㎜ 필름 ‘커버’가 함께 구성을 이룬다.  박승원 작가의 ‘지극히 평범한 하루’는 백남준의 ‘머리와 발’ 비디오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2채널 비디오 속에선 좌우로 흔드는 박 작가의 머리와 누워서 들어 올린 다리가 쉴새 없이 각각 움직인다. 백남준이 ‘머리와 발’에서 불편한 몸과 머리를 계속 저으며 신체를 깨우기 위해 지속적인 반복 행동을 하는 것처럼 박 작가 역시 모니터에 갇혀있는 신체와 그 프레임을 벗어나려는 탈주의 노력을 통해 감각하고 깨어있는 몸을 보여준다. 삶과 죽음에 대한 충동의 경계에 놓인 신체를 인지하는 것이 삶의 평범한 수행, ‘지극히 평범한 하루’임을 말한다. 백남준아트센터가 주목하는 작가 언메이크랩은 미디어 설치작품 ‘유토피아적 추출’을 통해 기술과 현대미술의 간극, 낙관주의와 생태계 위기, 기술에 대한 믿음과 기술이 가진 허점을 동시에 어떻게 작품으로 드러낼 것인가를 고민했다. 유토피아적 추출은 4대강 사업으로 생성된 거대한 모래산 등의 현장이 담긴 32분 길이의 영상 기록이다. 현장엔 외곽이 깨진 돌들이 설치돼 데이터 양을 부풀리는 전처리 과정을 보여준다. 기술이 왜곡되고 변형될 수 있는 가능성과 기술의 불완전성, 생태계와 인간의 관계를 그린다.  업체eobchae와 류성실 작가의 ‘체리-고-라운드’는 SF영화 같은 흥미로운 영상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나타내며 동시대 개인과 사회의 모습을 투영했다. 영상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같은 소재를 말하는 3개의 파트로 구성됐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해결하지 못한 이슈를 찾는 관찰에 기반한 작품”이라는 오찬석 작가의 말처럼 영상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미디어의 모순을 꼬집고 속도감만 남은 채 제자리를 맴돌며 무력감에 사로잡힌 동시대의 현재를 바라보게 한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은 소장품을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구성됐다. 오는 25일 오후 3시엔 ‘언메이크랩’이 렉처 퍼포먼스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을, 4월15일 오후 3시엔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진화하는 로봇 ‘가이아’를 선보인 노진아 작가와의 대화가 마련돼 있다. 매주 금, 토 오후 2시와 4시엔 안규철 작가의 ‘야상곡 No.20/대위법’ 작품을 피아니스트 김윤지가 퍼포먼스 한다. 전시는 6월25일까지.

예술로 승화한... 시간에 대한 성찰 [백남준아트센터 ‘2023 신소장품전’.上]

미디어아트의 거장 백남준은 미디어 기술을 정밀하게 분석하며 인간의 삶을 고민하고 들여다봤다. ‘시간’ 역시 백남준의 중요한 화두였다. 공간예술을 시간예술에 편입시킨 그의 예술세계처럼 ‘시간의 허리를 잘라 낸’ 전시가 마련됐다. 지난 9일 개막한 백남준아트센터 2023 신소장품전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는 팬데믹으로 사상 초유 미술관 휴관의 시대를 보낸 시기에 수집한 한국 작가의 작품들로 구성됐다. 현재의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들여다보는 작품과 작업이 가진 앞뒤, 좌우를 변형한다. 9명의 작가가 펼쳐내는 11개의 작품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논의하는 프로그램 그 자체가 전시로 구성돼 작품의 유기적인 변화를 탐색해 나갈 수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작품들을 따라가 본다. 전시는 비디오와 설치, 드로잉, 퍼포먼스, 로봇, 인공지능 등 다양한 형식 속에 ‘인간과 기계의 시간’을 다루고 특정한 역사적 시간에 대해 성찰한다. 비결정적이고 우연한 시간의 시적인 아름다움을 다루면서. 그 특정하고 우연한 시간을 선보이는 작품들은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전시에서 첫 번째로 마주하는 작품은 안규철 작가의 ‘야상곡No.20 / 대위법’이다. 벽면에는 프레데리크 쇼팽의 ‘야상곡 20번’을 구성하는 가장 낮은 음부터 높은 음까지 50개의 음이 분해돼 111장으로 표기된 악보 드로잉이 가득 채워졌다. 그 앞에 덩그러니 놓인 검은색 피아노. 작품의 시간은 ‘음’을 소멸시키고 우연의 소음을 만든다. 매주 금·토요일 오후 2시, 4시, 피아니스트 김윤지가 쇼팽의 ‘야상곡 20번’을 연주하고 매 연주가 끝날 때마다 피아노 해머 88개 중 하나를 무작위로 빼낸다. 피아노 건반의 음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연주는 조금씩 해체되고 최종적으로 침묵을 향해 다가간다. 우연과 비결정적인 시간을 다루며 ‘무’를 향해 가는 작품이다. 작품이 파손되는 과정은 과연 작품일까 아닐까. 작품의 원형성과 보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진시우 작가의 ‘복원과 변형 사이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떤 것 - K와의 대화’는 작품의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낸다. 진 작가는 벽면에 설치된 ‘퍼포머를 위한 디렉션’에서도 이처럼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작업 중 하나로 작용한다. 작가가 자신의 팔뚝에 퍼포머를 위한 지시문을 적은 것을 찍은 사진이 작품으로 관객이 퍼포머가 되고, 그 관객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객이 존재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전시의 맨 끝 공간에서는 설치된 커튼을 들어올리면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진화하는 신, 가이아’을 만날 수 있다. 가이아는 ‘딥러닝’ 기술이 적용된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로봇이자 기계에 대한 기준을 바꾸면 인간이 될 거라 믿는 진화하는 신이다. 자기조절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지구의 생명체를 동경해 ‘가이아’라는 이름을 갖게 된 기계인형으로 반은 사람, 반은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다. 기이한 자세로 있는 가이아는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눈을 움직인다. 시간과 맞물려 데이터를 축적하고 말하는 인공지능이 내장돼 2023년 버전으로 이번 전시에서 업데이트 됐다. 가이아는 단순한 질문에도 꽤 복잡하고 철학적인 대답을 한다. “넌 꿈이 뭐야”라는 질문에 가이아가 내놓은 답은 이렇다. “난 생명체로 완성되기를 바라.” 빈곤한 상상력은 오히려 인간의 영역인 듯 하다. “원본과 복제물인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는 경쟁과 대결보다는 오히려 공진화에 가깝다”고 말하는 노진아 작가의 말처럼 기계와 인간의 주고받는 시간, 기계와 인간이 만들어내는 불분명한 경계가 이 곳에서 펼쳐진다.

국립농업박물관, 봄맞이 체험 프로그램 24~25일 운영

국립농업박물관이 따스한 봄을 맞아 가족 체험 프로그램 ‘박물관에서 봄을 마주하다, 내일도 초록’을 오는 24일, 25일 양일간 운영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집에서 식물을 가꾸는 활동인 ‘홈가드닝’을 통해 생산적인 여가활동에 대한 학습 기회를 늘리고, 식물이 주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공유하는 데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 홈가드닝에 대한 이론수업, 모스(이끼류)를 활용한 토피어리 화분을 제작하는 체험활동, 식물을 활용해 실내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 등을 배울 수 있다. 향후 박물관은 이와 같은 식물 연계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할 예정이다. 베란다 텃밭을 가꾸는 ‘베란다 키친가든’, 식물 공예 활동인 ‘변치 않는 정원’, 식물 재배법을 알려주는 ‘힐링가든’ 등의 개설이 예정돼 있다. 황수철 국립농업박물관장은 “3월을 맞아 수원 시민들에게 홈가드닝 문화를 전파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식물을 매개로 우리 농업의 가치를 전달하는 데 기여하는 다채로운 체험형 교육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프로그램 신청은 국립농업박물관 누리집에서 15일부터 22일까지 선착순으로 진행하며, 참가비용은 무료다.

중년을 위한 연극 '여보, 나도 할 말 있어' 4월29일~30일 용인문화예술원서

여기, 찜질방에서 생전 처음 보는 이들이 서로의 삶을 털어놓는다. 친구의 장례식장을 다녀와 홀로 찜질방을 찾아온 중년의 남자부터 아내와 자식을 피해 혼자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찾아온 남자, 남편 편만 드는 시어머니가 답답한 며느리까지. 찜질방이라는 공간에서 생전 처음 보는 타인에게 자신의 삶에 얼룩진 고통과 즐거웠던 순간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 연극 ‘여보, 나도 할 말 있어’가 오는 4월 29일과 30일 이틀에 걸쳐 용인문화예술원 마루홀에서 열린다.  ‘여보, 나도 할 말 있어’는 2013년 5월 대학로에서 초연 이후 전국 66개의 도시에서 500회 이상 공연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올해로 공연 10주년을 맞아 용인문화재단이 용인시와 함께 특별 기획공연으로 준비했다. 퇴직하고 나니 텅 빈 집안에 홀로 남게 된 영호 역에는 국민 개그맨 이홍렬이 열연한다. 자식을 다 키우고도 허리 휘게 손자까지 봐야 하는 영자 역에는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영애 엄마 역을 맡았던 김정하 배우가 출연하며, 세월이 가도 사랑받고 사는 예쁜 아내인 것 같은 은정 역에는 배우 이윤미가 새로운 도전으로 무대에 선다. 연극은 중년을 위한 한편의 서사시와 같다. 연출자는 이 작품을 관람하는 모든 사람이 중년의 외롭고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며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용인문화재단 관계자는 “극 중 인물들의 재간 넘치는 대화를 통해 험난한 대한민국에서 오늘도 살아내느라 애쓰고 있는 중년들에게 잠시나마 유쾌한 위로의 시간을 선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공연은 17세 이상 관람가로 용인문화재단 누리집, 인터파크 누리집 티켓에서 구입할 수 있다.

수원시향이 봄에 선사하는 '하이든&말러' 16일 공연

봄이 시작된 3월, 수원시립교향악단은 오는 16일 오후 7시30분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제284회 정기연주회 ‘하이든 & 말러’ 공연을 선보인다.  이번 공연에는 수원시향 예술감독이자 상임지휘자인 최희준 지휘자가 지휘봉을 잡고 지난해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던 첼리스트 최하영이 협연자로 나선다. 공연 1부에서는 최하영이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1번을 수원시향과 함께 협연한다. 200년 가까이 귀족의 문서 창고에서 동면하고 있었던 이 곡은 1961년 체코의 음악학자 풀케르트가 발견해 지금까지 음악애호가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첼로 협주곡이라고 평가받으며 사랑받고 있다.  첼리스트 최하영은 지난 2022년 세계 3대 음악콩쿠르로 꼽히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전부터 그는 이미 브람스 국제콩쿠르 최연소 1위, 2018년 펜데레츠키 국제콩쿠르 등에서 1위를 차지하며 유럽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었다. 현재는 세계를 무대로 한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스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하이든의 장식적인 요소와 세밀한 표현들이 최하영의 첼로로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된다.  2부에서는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교향곡 작곡가 중 한 명인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이 연주된다.  마치 한 사람의 생애를 옮긴 듯 말러의 음악적 고뇌와 변화가 담긴 교향곡 5번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도 한다.  말러 교향곡 5번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 ‘멀리서 들리는 장례음악’ 등 비극적인 장송행진곡 선율로 시작한다. 또 그 사이를 ‘아다지에토’라는 사랑의 순간이 지나간다.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는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에 사용될 정도로 로맨틱한 감성으로 가득하다. 말러가 미래에 자신의 부인이 될 알마에게 보낸 연애편지는 영화 주인공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절묘하게 사용됐다.  이처럼 비극적인 장송행진곡 선율로 시작해 유난히 밝고 경쾌한 5악장으로 마무리 되는 곡으로 고도로 세련된 작곡기법과 전통적인 교향곡 구성을 살짝 비트는 특유의 음악적 풍자와 냉소가 매력적이다. 최희준 지휘자의 섬세한 해석력과 수원시향의 대담한 사운드가 만나 비극과 희극이 가득한 말러 교향곡 5번을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된다. 연주회는 R석 2만원, S석 1만원으로 만 7세 이상 관람 가능하다. 예매는 수원시립예술단 누리집을 통해 할 수 있다.

예술공간 아름 1주년…김성배 작가 초대전 ‘온새미로·티끌 모아’ 展

한 노년의 작가가 그냥 쓰고 버리는 쌀포대를 캔버스 삼아 그림으로 채워넣기 시작했다. 버려질 수 있었던 포대 조각들이 차곡차곡 모여 수원화성을 두르고 있는 성벽처럼 거대한 구조물로 재탄생할 수 있을까?  김성배 작가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빈틈을 붙잡아 지속 가능한 삶 속의 예술로 만드는 작업에 평생을 바쳐 왔다.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지난 4일 개막한 섭경 김성배 작가 초대전 ‘온새미로·티끌 모아’ 전시가 열리는 예술공간 아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사진뿐 아니라 영상, 회화, 조각, 설치 등 분야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스며드는 예술공간 아름의 1주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쌀포대 1천장 프로젝트’. 김성배 작가의 손길이 묻어나는 쌀포대는 급식소와 가정집 등에서 쌀을 담아내는 본연의 쓸모를 다한 뒤 다시 의미를 획득한다. 1천장의 쌀포대를 채우고 나면 김 작가는 거대한 형상 구조물로 연결한 뒤 야외든 실내든 공간이 허락하는 한 수원 시민들과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공유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수원에서 나고 자라 늘 이 지역과 호흡해온 김 작가는 삶과 예술의 공존 가능성에 관한 생각을 항상 품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사람과 예술을 잇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김성배 작가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300장가량의 쌀포대에 그림을 그렸다. 1천장의 포대를 캔버스 삼겠다는 그의 다짐이 실현되기 위해선 최소한 2024년까지 쌀포대를 모으고, 그린 뒤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독특하다. 프로젝트의 완결을 기념하는 차원도 아니고, 정해진 목표를 달성한 뒤 중간 점검 차원에서 열리는 전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김 작가는 “중간 과정을 이런 방식으로 공유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의도하지 않은 전시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자연스러운 작업 과정을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계기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수원화성과 연계된 풍광을 담아낸 듯한 그림, 선과 기호들이 뒤섞인 비구상 요소들이 돋보이는 작품, 성운을 추상화해서 만들어낸 형상 등이 다채롭게 쌀포대에 스며들었다. 김 작가는 “평소 하던 생각, 관심 있게 지켜본 화두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각각의 그림에 녹아 있다”면서 “그림 간의 공통분모나 공유할 수 있는 점이 많지 않기 때문에, 대형 프로젝트의 중간 과정이라는 느슨한 연결고리로 모여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의 표현처럼, 전시장을 맴도는 건 인위적으로 재단된 분위기가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발견한 미학, 평상시의 관심사가 묻어나는 작가의 가치관이었다. 벽면과 창가 근처 등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작품뿐만 아니라, 공간의 제약으로 전시되지 않은 채 한구석에 쌓여 있는 200장가량의 쌀포대, 포대에 남아 있던 쌀알을 한데 털어놓은 종지그릇까지.  한 공간 안에 전시돼 있는 작품 표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를 떠올려 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전시의 특별한 점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개별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왔을지 상상하고 가늠해본다는 데에서 매력을 발견한다. 생산지에 따라 파주, 화성 등 각기 다른 지역의 색이 묻어나는 쌀포대들이 김 작가의 손으로 모였다. 이처럼 쌀포대 1천장이 모였을 때, 출신도 성분도 다른 쌀을 담았던 포대가 한데 모여 수원 화성의 성벽처럼 거대한 형상을 이루는 모습은 그 자체로 김 작가가 추구해온 ‘온새미로(깨지거나 갈라지지 않은 그대로의 상태를 표현한 순우리말)’의 철학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김 작가는 “개별 작품을 하나하나 조명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쌀포대 한 장 한 장이 함께 모여 있을 때 발산하는 요소들”이라며 “3년에 걸친 프로젝트 끝에 완성될 쌀포대 1천장 작업을 위한 초석이자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고 싶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17일까지.

2023 다시, 함께 하는 '쉬즈메디 음악회' 15일 개최

수원 쉬즈메디병원이 오는 15일 오후 6시 30분 병원 신관 2층 로비에서 ‘제204회 쉬즈메디 음악회’를 개최한다.  지난 2020년 2월 코로나19로 음악회를 중단한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공연이다.    쉬즈메디 음악회는 환자와 지역 주민에게 음악과 휴식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지난 2002년부터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매달 진행됐다. 병원 설립 이념인 지역 주민과의 나눔은 물론 지역 문화 발전, 출산 장려 등을 위해 무료로 진행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매회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 공연으로 수준 높은 음악회를 선보여왔다.  ‘다시’ 시민과 만나는 이번 음악회에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로 구성된 ‘S Trio’팀이 공연에 나선다.  공연에서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의 ‘봄의 소리 왈츠’(Voices of Spring Waltz), 엔니오 모리꼬레(Ennio Morricone)의 ‘시네마 천국 멜로디’(Cinema Paradiso Medley),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리베르탱고’(Libertango) 등 8곡이 연주된다.  쉬즈메디 음악회는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매주 셋째 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시민들과 만난다.  병원 관계자는 “다시 열리는 쉬즈메디 음악회에 참석하셔서 따뜻한 추억을 만드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세한 사항은 쉬즈메디병원 누리집과 전화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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