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6월의 초여름 푸른 밤, 선선한 공기를 만끽하며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일상에서 접하던 도시의 네온사인, 휘황찬란한 빌딩숲의 풍경이 조금 따분해졌다면 경기도 곳곳에서 색다른 야경을 눈에 담으며 초여름 밤을 만끽해 보자. ■ 수원 화성행궁 도심 곳곳에 남아 전통과 현대를 잇는 궁궐은 방문하는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각양각색의 매력을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가운데 조선의 정조가 행차 때마다 임시로 머물렀던 궁궐이던 화성행궁도 매년 야간개장을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올해 화성행궁 야간개장 ‘달빛화담, 花談’은 오는 10월29일까지 계속된다. 행궁에 깃든 이야기는 낮보다 밤에 더 흥미롭다. 정문 신풍루를 지나, 좌익문과 중앙문으로 들어서는 구간에는 거대한 달, 토끼, 꽃 조형물들이 궁궐의 아기자기한 멋을 한껏 살려주고 있다. 특히 왕실과 민간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꽃인 모란을 모티브로 하는 콘텐츠들이 고궁 내 다양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모두 수원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지역작가들과 함께 협업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들을 뒤로하고 중앙문으로 들어가면 시시각각 새 옷으로 갈아입고 방문객을 맞는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도 보인다. 건물을 수놓는 미디어파사드 작품이 지나가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행궁 안쪽에 조성된 미로한정에선 수원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청사초롱길에서는 수원시규방공예연구회와 협업한 공간 연출의 미학을 음미할 수 있다. 용인에 사는 여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김은수씨(24)는 우연히 들른 화성행궁의 매력에 대해 전했다. 그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웅장한 경복궁 같은 궁궐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아담하고 한옥 느낌이 더 잘 깃든 이곳이 더 마음에 든다”면서 “지금처럼 선선한 여름밤에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딱 좋은 장소”라고 설명했다. ■ 이천 별빛정원 우주 여름밤에 만나는 야경은 마음 한구석에 잔잔한 설렘을 안겨준다. 도심 속에서 많이 접해본 건물과 교각이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이 식상할 때 즈음, 이천 별빛정원 우주를 찾는다면 색다른 여름밤을 보낼 수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각종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여름밤의 낭만을 더해줄 재즈 선율이 어느새 귓가에 맴돌고 있다. 잘 꾸며 놓은 정원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빛이 스며들어 있다. 몽환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보랏빛 조명들은 흩날리는 버들처럼 자연물의 일부처럼 정원에 녹아들었다. 또 여기저기서 빛을 뿜어내는 조형물들은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환상의 세계에서 시간을 보내다 가라고 손짓하는 안내자들처럼 느껴진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직관적인 체험 공간뿐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힐링 스팟이 많아 밤이 깊어갈수록 찾는 이들이 많아진다. 부산 해운대에서 온 정영주씨(35)는 초등 2학년생 자녀와 함께 벤치에 앉아 형형색색의 조명이 밤하늘을 수놓는 라이팅쇼에 푹 빠져 있었다. 정씨는 “원래 에버랜드에 가려고 했다가 근처에 같이 가볼만한 곳을 함께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면서 “예전에 김해에서 이곳과 비슷한 테마파크를 가본 적이 있는데, 여기가 훨씬 포토스팟도 많아서 좋다”고 웃어보였다. 조명 가득한 터널에서 여자친구와 사진을 찍던 윤기호씨(가명·20대)는 강원 원주에서 이곳을 방문했다. 윤씨는 “원주에는 야간에 카페 같은 곳을 제외하면 데이트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느껴 교외로 함께 시간을 보낼 곳을 찾았다”면서 “늦은 시간까지 개방돼 있는 데다 추억을 남길 거리도 많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기 청년 예술인들이 직접 예술정책을 연구하고 창작하는 ‘제1기 경기청년예술기획단’이 출범했다. 경기아트센터는 9일 경기청년예술기획단에 참여하는 청년 50여명과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출범식을 열었다. 경기청년예술기획단은 청년 예술인의 권익 향상과 기회 증진을 위해 정책을 발굴하고 제안하는 기구로, 올해 공연예술·정책연구·홍보 등 3개 분과에서 80여명이 활동할 예정이다. 경기청년예술기획단은 첫 프로젝트로 오는 10월 열리는 ‘경기청년예술페스티벌’의 기획과 제작, 출연 등을 맡을 예정이다. 페스티벌에서는 경기도 예술정책 의제를 도민과 공유하는 포럼을 비롯해 도민들과 직접 만나는 다양한 행사도 열린다. 이날 출범식에서는 서춘기 경기아트센터 사장의 개회사와 황대호 경기도의회 의원(수원3)의 축사가 이어진 뒤 청년 예술인이 기획단의 시작을 알리는 ‘청년예술기회선언문’을 낭독했다. 이훈주·해밀·메리코발트 등의 축하공연도 이어졌다. 특히 이날 김동연 지사는 실시간 공개 채팅방을 활용해 청년 예술인들과 경기도 청년 예술정책에 대해 자유로운 대화를 나눴다. 김 지사는 “청년들에게 꿈을 꿀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게끔 하고 싶다”라면서 “청년들의 진정한 자기실현과 자기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에 가치를 창출하는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을 지원하는 경기도에도 큰 기쁨이다. 여러분들의 꿈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경기아트센터 관계자는 “제1기 경기청년예술기획단이 첫 걸음을 내딛는 자리인 만큼 청년들과 함께하는 열린 출범식을 마련했다”며 “경기아트센터는 이번 출범식을 시작으로 도내 청년들의 목소리가 경기 문화예술에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화분에 연초록이 가득하다. 빈 화분에 무위의 방랑자처럼 바람 따라왔다가 놓고 간 자연의 선물이다. 들에 있으면 잡초였을 풀 한 포기가 화분에 담겨 나를 반기니, 행복은 결코 큰 것이 아니다. 여리고 여린 작은 풀잎에서 피안의 세계를 본다. 홍채원 사진작가
수원문화재단(대표이사 김현광)이 8일 오후 대표이사 집무실에서 ‘2023 수원화성 미디어아트’ 참여 작가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오는 10월 ‘2023 수원화성 미디어아트’에 참여하게 될 서정원 작가, 소마킴 작가, 아하콜렉티브의 정혜리 작가를 비롯해 이형복 관광사업부장, 이원준 연출기획단 기획감독, 배기태 미디어감독 등 8명이 참석했다. 작가들은 오는 10월6일부터 한 달여 열릴 ‘2023 수원화성 미디어아트’에서 ‘수원화성 행행(行幸)’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창룡문을 캔버스 삼아 시민들과 만난다. 을묘년(1795년) 화성행차에서 착안한 작품들을 통해 시민들은 수원화성 행행의 준비에서 출정, 수원화성 입성까지 행차 과정을 각 작가들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미디어파사드로 경험하게 된다. 김현광 대표이사는 “오는 10월에 창룡문을 찾는 누구든지 조선시대 가장 성대한 잔치였던 ‘수원화성 행행(行幸)’을 재해석한 미디어파사드 작품을 즐길 수 있다”며 “시민들이 세계유산 수원화성의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좋은 축제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붉게 타오르던 장미도 시들고 계절은 다시 여름으로 흐른다. 끊임없이 길을 찾는 담쟁이 넝쿨이 온 벽을 초록으로 휘감고 있다. 그 아래 가건물 하나가 있고 파란 의자와 꽃 한 접시가 놓인 원탁이 있다. 셔터가 내려진 건물 앞에 쪽지 한 장이 붙어 있다. ‘매주 월요일 목요일 이틀만 영업합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원시 매교동 한전 울타리 앞에 있는 구두닦이 회사다. 구두닦이 회사는 사장님만의 고유명사다. 이곳을 매일 지나며 참 여유로운 공간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달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고 한다. 한전 공사 때문이지만 어차피 구두에서 운동화로 바뀌어 가는 신발문화의 흐름을 견딜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임차료가 연 100만원이라는데 요즘 수입은 월 30만~40만원을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1년을 꼬박 모아도 직장인 한 달 월급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45년 청춘을 건 생업을 내려놓기를 사장님은 무척 아쉬워하신다. 고향 친구는 창피해 못 만났지만 이곳에서 희로애락을 나누던 친구들은 잊을 수 없단다. 초창기엔 직원을 두 명이나 고용했다고 하는데 멀리 부산과 서울에서도 구두 참 예쁘게 닦았다고 지나는 길에 다시 들르는 단골들이 눈에 맺힌다고. 정겨운 사람들과 함께한 세월에 가치를 둔 사장님의 목소리가 채워질 수 없는 공허처럼 허전하다. -이 멋진 공간을 오늘은 수강생 한이수씨가 그렸다. 그녀의 필력이 초록빛 여름처럼 점점 짙게 번진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지역본부(본부장 이충로)가 지난 2일 오산 교촌에프앤비㈜(회장 권원강) 본사에서 자립준비청년 장학증서 전달식을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충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인권역총괄본부장과 윤진호 교촌에프앤비㈜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교촌에프앤비㈜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지원을 3년째 이어오고 있다. 보육시설아동에게 심리정서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도움을 주고, 자립 이후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 겪는 이들에게 장학금을 보태는 사업이다. 올해 장학금은 지난 3월부터 서류심의 및 온라인 면접을 통해 선발된 지역 내 장학생 50명에게 각각 250만원씩 전달된다. 이후에도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교촌에프앤비㈜는 다양한 자립준비청년·자립청년 대상 사회공헌을 지속 확충할 계획이다. 행사를 통해 장학증서를 전달한 윤진호 교촌에프앤비㈜ 대표는 “매년 자립준비청년들이 성공적으로 자립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 “향후에도 지역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효과적인 방안을 고민하겠다. 그러면서도 사회공헌의 본질이 가장 중요한 점을 잊지 않겠다”고 전했다. 이충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인권역총괄본부장은 “시설에서 자립하는 청년들이 계속 늘어나지만, 완전한 자립까지 도달하기엔 어려움이 많다”면서 “먼저 솔선수범해서 기어브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교촌에프앤비㈜에 큰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세계 3대 클래식 경연대회인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한국 성악가 김태한(22·바리톤)이 우승을 차지했다. 1988년 이 대회에 성악 부문이 신설된 이후 아시아권 남성 성악가로는 최초로 우승한 사례다. 김태한은 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보자르에서 진행된 성악 부문 경연 최종 순위 발표에서 1위로 호명됐다. 총 12명이 겨뤘던 결선 무대에서 최연소였던 김태한은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 중 ‘오 카를로 내 말을 들어보게’, 코른콜트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 나의 망상이여’ 등을 비롯한 네 곡을 선보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역대 한국인 우승자로는 2011년 홍혜란(성악), 2014년 황수미(성악), 2015년 임지영(바이올린), 2022년 최하영(첼로) 등 네 명이 있다. 이번 대회에서 김태한이 우승하면서 한국은 지난해 대회에 이어 2년 연속 대회를 석권했다. 선화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에 재학 중인 김태한은 2년 전 국내에서 열린 한국성악콩쿠르, 한국성악가협회 국제성악콩쿠르, 중앙음악콩쿠르에서 각각 2위를 차지하면서 주목받았다. 지난해부터는 국제콩쿠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해외로 영향력을 확장했다. 한편 폴란드의 쇼팽 피아노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음악 경연대회로 꼽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벨기에 왕가의 주관으로 열리며 매년 피아노·첼로·성악·바이올린 부문 순으로 돌아가며 개최된다.
장안문은 방어에 가장 취약한 시설물이다. 따라서 좌우에 적대를, 위에는 문루를, 앞에는 옹성을 배치해 입체적으로 방어한다. 옹성 문짝도 철판을 입혀 화공에 대비했다. 철은 원래 불에 약하므로 철엽은 방화보다 내화 개념이다. 시간을 지체시켜 나무 문짝에 불이 붙기 전에 불을 끄느냐의 문제다. 당시에도 이 점을 알고 대안을 마련했다. 바로 오성지다. 옹성 문 위에 설치한 것으로 “모양이 구유처럼 생겼고 5개의 구멍을 뚫었다. 적이 불을 질러 문을 불사르게 되면 이 구멍으로 물을 흘려 넣는다”고 설명한다. 성역이 진행되던 시기에 정약용은 좌천돼 지방으로 가던 길에 화성을 지나게 된다. 이때 장안문 오성지를 보고 잘못을 지적한다. “오성지라는 것은 물을 퍼 내려서 적이 성문을 태우려 할 때 이를 막는 것이다. 그 구멍을 곧게 뚫어 바로 문짝 위에 닿게 해야 쓸모가 있다. 그런데 도면만 보고 구멍을 가로로 뚫었으니 이른바 그림책을 뒤져 천리마를 찾는 격이다고 한탄했다”이다. 한마디로 구멍을 옆면에 뚫었으니 물이 문짝에 직접 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때부터 오성지는 무용지물이 됐다. 왜 아래 면에 뚫지 않았을까? 이 또한 화성 미스터리의 하나다. 먼저 구조를 알아보자. 의궤에 “홍예의 개판 위에는 회3물을 깔고 다시 여러 장의 벽돌을 쌓았다. 그 위에 오성지를 설치했다”고 설명한다. 문 위에 나무 널빤지를 설치하고, 그 위에 회삼물과 벽돌을 깐 뒤 오성지를 놓아야 한다. 정약용 지적의 대상은 사실상 성역 총책임자 감동당상 조심태다. 필자가 조심태에 대해 변명을 하겠다. ■ 조심태를 위한 변명: 조심태는 구멍을 옆면에 뚫을 수밖에 없었다. 첫째, 조심태는 정약용의 설계대로 공사했다. 설계의 바탕인 중국 무비지 도면에는 오성지를 외벽 면을 일치시키고 물이 나오는 구명은 옆면에 뚫려 있다. 조심태도 무비지와 똑같은 모양으로 공사를 했다. 정약용도 “성 쌓는 사람이 도면만 보고 구멍을 가로로 뚫어 놓았다”고 도면대로 한 점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약용의 말은 도면만 보고 그대로 하지 말고 목적에 맞게 조정해 가며 공사를 해야 한다는 취지다. 둘째, 아래 면에 뚫을 수 없는 여건이었다. 문짝 바로 위로 물이 쏟아지게 하려면 나무 널판 위에 오성지를 놓아야 한다. 이 경우 개판은 무게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문짝과 오성지 구멍을 일치시키려면 문짝을 2척 뒤로 물려야 한다. 이 경우 문짝의 최대 취약부인 회전축이 적에게 노출되고 옹성 두께도 늘려야 할 판이다. 조심태는 이런 점을 감안해 무게가 개판에 전달되지 않도록 홍예석 위에 오성지를 설치한 것이다. 셋째, 옆면으로 구멍을 뚫어도 오성지 기능에 아무 문제가 없다. 실정록에 “불을 질러 문을 불사르게 되면 구멍으로 물을 흘려 넣게 된다”에서 “흘려 넣게 된다”의 원문 ‘하수(下水)’에 대한 해석이다. 문짝으로 직접 물이 떨어져도, 문짝 앞으로 떨어져도 모두 ‘하수’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불 끄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다른 근거도 있다. 정약용은 “수많은 적이 성문에 풀을 던져 언덕처럼 많이 쌓였을 때 불을 붙여 문을 태우면”이라고 발화에 대해 언급했다. 이는 불화살보다 성문 앞에 인화물울 던져 놓고 불을 지르는 것을 더 중요하게 봤다는 의미다. 문짝 앞쪽으로 물이 흘러 떨어져도 풀에 붙은 불은 끌 수 있어 오성지 구멍을 꼭 문 바로 위에 오도록 할 필요는 없다. 정리하면 조심태는 중국 문헌과 정약용의 설계를 잘 지켰고 옹성과 문짝과의 위치를 고려하고, 구조 안전도 감안해 오성지를 설치했다. 당연히 기능에도 문제가 없다고 확신한 것이다. 반대로 필자는 정약용에 대해서도 변명하겠다. ■ 정약용을 위한 변명: 정약용의 지적대로 아래 면에 구멍을 뚫는 것도 가능하다. 필자는 오성지를 홍예석과 개판, 두 곳에 반반씩 걸쳐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60cm는 홍예석 위에, 60cm는 개판 위에 놓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설치하면 정약용이 원했던 대로 오성지 물이 문짝으로 직접 쏟아지고 개판도 무너지지 않는다. ■ 정약용과 조심태: 본래 오성지에 대한 고찰 두 사람을 비교한 것은 국내 유일의 화성 오성지가 정약용의 지적에 무용지물이 된 상황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조심태의 오성지는 원래의 제도에 맞게 정상적으로 설치됐음을 밝혔다. 조심태의 설계와 시공이 정약용의 지적보다 근본적으로 오성지의 목적에 부합한다. 조심태의 오성지는 흐르는 양이 균등하기 때문이다. 물은 한곳에 가두면 윗면은 평형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수평이다. 옆면에 뚫린 구멍 아래까지 물을 채워 수평을 이룬 상태에서 위에 아무 곳에나 물을 부어도 5개 구멍에선 균등한 양의 물이 흘러넘친다. 그러나 아래로 뚫린 정약용의 오성지는 어떻게 물을 부어도 5개 구멍으로 물이 균등하게 쏟아져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넘쳐 흐르는’ 상태와 ‘쏟아져 내리는’ 상태의 차이다. 지금까지 오성지가 무용지물이 된 것은 ‘정약용의 지적’ 때문이 아니다. ‘정약용에 대한 비판’을 두려워했던 우리 때문이다. 정약용의 지적에서 허구를 살펴봤다. 오늘은 오성지를 되살려 낸 날이고 조심태와 정조가 누명을 벗은 날이다. 오히려 1970년대에 물통도 없는 기괴한 모습으로 복원한 지금의 우리가 죄인이다. 글·사진=이강웅고건축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후 한국 재건의 산실이었던 한미재단 4-H 훈련농장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모였다. 소새마을 향토역사 심포지엄 ‘한미재단 4-H 훈련농장 보존 의의와 발전방안’이 1일 오후 4시 부천 소사공간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장에는 양정숙 부천시의회 의회운영위원회 위원장, 신승직 소새마을기획단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안운설 소사본동 책임동장 등을 비롯한 50여명이 참석했다. 심포지엄은 6·25 직후 1952년 한국의 재건 도모를 위해 미국에서 설립한 비영리 원조기관인 한미재단의 역사적 흔적을 보존하자는 목소리를 한데 모으기 위해 열렸다. 25년간 경제·농업·주택·보건 등 사회 전 분야에서 한미재단을 통한 발전이 이뤄진 만큼, 근대농축산업 발전사와 사회문화적 가치를 지닌 소중한 유산이 현재 놓여 있는 상황과 현실을 적극 알리자는 취지도 반영됐다. 현재 부천 소사대공원에는 1964년에 건축된 한미재단 4-H 훈련농장의 곡물저장고, 학습동, 기숙사로 추정되는 건물이 남아 있으나 현재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2021년 10월 한미재단 4-H 훈련농장 ‘사일로(사료저장용 축산시설)’ 건물만 경기도등록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가운데, 지정되지 않은 다른 축사 등 건물에 대해서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지난해 12월 부천시의회 263회 정례회에서 최옥순 의원이 시정질의를 통해 소사대공원 내 한미재단 4-H 훈련농장 건물 보존 및 문화재등록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자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관련 주제발표를 위해 이창호 한미재단 4-H 동문회 사무총장(㈔더불어사는사람들 대표)과 양경직 계남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먼저 이 대표가 4-H 훈련농장 훈련생의 실제 경험담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해당 유산이 내포하는 역사적 의미에 관해 객석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대표는 1978년에 한미재단 4-H 훈련농장을 장기생 27기로 수료했던 당시를 떠올리면서 훈련농장의 축사 건물 앞에서 교육생들과 시간을 보냈던 기억, 실제 교육과정이 진행됐던 모습, 농기계 장비 등이 담긴 구체적인 사진 자료를 통해 당시 경험을 고스란히 객석과 나눴다. 이어 그는 과거 한미재단이 훈련 및 교육기관으로서 한국 재건에 기여했던 이력이 어떻게 미래 가치와 연결될 수 있는지 설명했다. 이 대표는 “문화유산을 잘 활용해 부천시민들의 긍지를 높이는 방안이 정말 많다. 미래를 위한 고민들이 더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두 번째 발표에서 양 소장은 4-H 훈련농장 건물의 경기도등록문화재 등록 추진을 위해 밟아온 길, 지역사회에서 해당 유산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등에 관해 그간 쌓아온 전문적인 식견을 객석과 공유했다. 그는 원조 기관으로 시작한 한미재단의 역사를 세밀하게 짚어보면서 부천만의 역사가 아닌, 국가가 소중히 지켜내야 할 나라의 역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부천향토문화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을 역임하기도 한 양 소장은 지난 2019년 양정숙 부천시의원에게 자료를 전달하는 등 한미재단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활발한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보존에 힘써도 모자랄 판에, 일부 건물만 남겨두고 철거되는 등 미숙한 대처로 이어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사람이 우선이다. 법이 우선이 된다면 우리 지역의 소중한 역사와 문화가 남아서 계승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발표가 끝난 뒤 열린 질의응답 세션에서도 참여 객석의 뜨거운 호응이 이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문객은 자신이 4-H 훈련농장에서 개를 관리했던 경험이 있다면서 오늘 자리가 뜻 깊었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부천시와 협의를 어떤 방향으로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나오기도 했다. 1969년에 전북 군산시 4-H 연합회장 자격으로 한미재단 교육을 수료한 김육진씨는 “이 대표의 발표에서 오랜만에 예전에 찍은 사진들을 보니까 감회가 새롭다. 소중한 역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진심이 꼭 전국에 확산됐으면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신승직 이사장은 이날 행사에 대해 “이런 뜻 깊은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오늘 심포지엄을 여는 이유도 하나의 역사를 남기고 싶었던 마음에서 출발한다. 사라져가는 소새마을의 역사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뜨겁게 내리쬐는 뙤약볕에도 아랑곳 않은 채 피사체를 물색하고, 수풀과 흙이 옷을 더럽힌다 해도 주저하지 않고 무릎을 굽혀 사진을 찍는다. 한참 어린 동생들보다도 언덕길을 빠르게 오르며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다. 얼굴에서 한 뼘이 조금 넘게 떨어뜨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손놀림은 거침없지만 정확하다. 혈기왕성한 어느 30대 젊은 사진작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로 102세가 된 남궁전 작가.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뻔하디 뻔한 격언을 다시금 곱씹게 했다. 남궁 작가는 5월 한 달간 의정부시청 현관에서 열렸던 제14회 노을빛 포토미디어 회원 단체 사진전 ‘노을의 함성’에 참여하며 건재함을 보여줬다. 그는 김헌수, 임영택, 배용규, 박영희, 배정옥, 양병섭, 이윤우, 이진우, 이화려, 이효상, 한경희, 홍성기, 박영철 등 노을빛 포토미디어 소속 13명의 동료 작가들과 함께 겹겹이 쌓아온 시간의 흔적을 의정부 시민들과 나눴다. 남궁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주변 사람들과의 꾸준한 교류 활동이다. 2년 전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열었던 100세 기념 전시회 이후로도 2년 남짓 남궁 작가는 꾸준히 동료와 소통하고 카메라를 전국 방방곡곡에 들이댔다. 그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가량 사진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출사 여행을 다닌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사진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전시회를 열면 그 사진들이 걸려 있는 장소를 가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따로 시간을 낸다. 지난달 31일 오후 용인 와우정사에서 남궁 작가를 만날 수 있던 이유 역시 오는 18일까지 열리는 ‘와우정사 및 불교사진 초대전’(주최 사진집단 행궁포토, 여성사진동아리 숲)에 참가한 일부 동료 작가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그가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와우정사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예전에는 해외도 많이 나가고 산도 많이 올랐지만, 이제는 단순히 내가 어디를 가고 싶다고 해서 앞장서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하지만 기회가 닿는 데까지 최대한 많은 곳을 다니면서 인생의 궤적을 남기고 싶어요.” 100세 넘은 노인은 여전히 지역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지역 내 복지관과 교육기관 등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사진전에 참가하며, 의정부 내 각종행사, 노인정 사진 촬영 등의 봉사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또 사진 모임의 회원들과 함께 기획하는 전시 외에도 2021년 경기북부지역작가초대전 ‘순간의 시간들’ 초대작가 이력도 있다. 여전히 사진 작가로서의 행보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곁에서 남궁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던 회원들도 “선생님은 의정부의 자랑”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쩌면 그의 사진에는 전문 사진 작가의 기교가 아닌,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 자체가 고스란히 담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뷰파인더 너머 그의 눈에 담기는 세상은 어떤 세월의 무게를 간직한 채 한 장의 사진으로 인화되는 걸까. 그는 사진을 찍을 때 어떤 철학을 가지고 담아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특별하게 따지는 게 없어요. 그저 몸이 가는 대로, 눈이 가는 대로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지요. 허허, 할 수 있는 데까지 또 몸이 갈 수 있는 곳까지 가서 많은 풍경들을 이 사진기에 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