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선거 즈음 필자는 경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롭게 당선되는 대통령은 ‘울보’였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시 탄핵 정국에서 정치적 진영 간의 대립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슴으로 생각하는 그런 울보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필자가 바랐던 울보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야당의 협조가 필요할 때 협력해줄 것을 눈물로 호소하는 대통령, 서민과 약자의 고통을 보듬고 함께 우는 대통령, 시행한 정책이 실패했을 때 진정으로 사과하고 과감하게 수정하는 대통령, 불의의 사고가 있을 때 안타까움으로 눈물 짓고 이런 불행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대통령, 불의와 부정한 권력에는 불같이 화내지만 가슴 아픈 서민의 작은 이야기에 눈물을 훔치는 대통령! 대통령이라면 이런 작은 바람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다.
이 바람이 이뤄질 수 없는 꿈이었다는 걸 깨닫는데 오래 걸렸다. 당시 필자의 인터뷰는 두 가지 부당전제(不當前提)의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그 하나가 정치를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했다. 권력은 우리 같은 소시민의 순박한 생각으로는 재단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인터뷰의 두 번째 착각(첫 번째 것보다 훨씬 치명적인 오류)은 ‘가슴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너무 가볍게 봤다. 필자가 바랐던 울보 대통령 눈물의 전제는 머리로 계산하는 합리성이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는 진정성이 담겨 있어야 했다. 그러나 필자는 가슴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단지 정치(또는 정치인)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를 간과했다.
가슴으로 생각하는 것은 더 이상 합리성이라는 경제적 논리나 권력 쟁취라는 정치적 논리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스토리와 감동에 기반한 공감(共感)이다. 현대 사회에서 공감력은 정치든 경제든 가장 큰 무기이자 자산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경험하듯이 정치인들의 설명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타당성을 지녔어도 공감을 얻지 못하는 답변이면 공공의 지탄 대상이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정치가 국민에게 공감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합리성(또는 이성)이라는 그럴싸한 공리(公理:axiom)하에 가슴보다는 머리로 판단(사실은 계산)하는 것을 삶의 덕목으로 믿고 있다. 근대성에 대한 막스 베버의 비판, 즉 현대인의 절대적인 믿음인 합리성이 결국 우리 인간을 철창에 갇힌 새로 만들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가슴 없이(ohne Herz)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에 대한 베버의 아픈 지적을 깨닫고 ‘가슴으로 생각하는 세상’으로 나아가길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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