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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역사·문화를 기록하다] 7. 화성 매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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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역사·문화를 기록하다] 7. 화성 매향리

포격·소음의 상흔 걷어내고… ‘매화꽃 향기’ 다시 퍼진다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는 ‘매화꽃 향기 퍼지는 동네’라는 뜻을 가진 곳이다. 하지만 향기 가득할 것 같은 이름과는 달리 한국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6ㆍ25 전쟁 발발 이후 미군이 사격연습을 했던 ‘쿠니사격장’이 들어서면서 숱한 상처를 입었다. 빗발 치는 총알에 마을은 점점 황폐해졌고, 귀를 찢는 폭발음에 마을 주민들의 몸과 마음은 병들어 갔다. 폭격장은 20년 가까이 벌인 주민들의 투쟁 끝에 2005년 폐쇄됐지만, 여전히 마을 언덕 길 곳곳에는 크고 작은 포탄, 폭탄이 수북이 쌓인 풍경을 볼 수 있다. 미군의 폭격 연습이 멈춘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자연의 정화로 회복되고 있다. 이제 마을주민들은 매향리를 더 이상 역사의 비극이 아닌, 평화의 상징으로 기록하고자 한다.

■ 지독한 싸움

매향리마을에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1951년 한미행정협정에 따라 매향리 인근 구비섬에 쿠니사격장이 생긴면서 부터다.

사격장은 약 2천410㎡로 해상사격장과 해안 지역의 육지사격장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태평양 미공군사령부 산하 한국 주둔 제7공군 51전투비행단에서 관할했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격훈련이 실시됐는데, 연간 약 250일에 달했다. 일일 평균 11.5시간 동안 15~30분 간격으로 행해졌으며, 사격 횟수만도 1일 600회를 넘었다. 야간에도 훈련이 실시됐기 때문에 주민들은 훈련이 없는 주말에만 사격장 내 농지에서 농사를 짓거나 바다에 나가 일을 할 수 있었다.

폭격장 폐쇄 투쟁에 나선 주민들. 경기문화재단 제공
폭격장 폐쇄 투쟁에 나선 주민들. 경기문화재단 제공

소음과 폭발 여파 등으로 인한 주택 파괴, 소음에 따른 난청현상, 대규모 환경 및 연안어장 파괴 등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밤낮 가리지 않고 계속되는 폭격은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실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격장이 건립된 이후 피해를 입은 주민만 713가구, 4천여 명이었다. 손목 절단 및 옆구리 부상 등 오폭으로 인해 중상·부상을 당한 주민이 15명, 오폭사고와 불발탄 폭발로 인해 사망자가 12명이었다.

이 같은 피해가 계속되자 1988년부터 매향리마을 청년회에서 매향리 마을의 피해를 알리는 유인물을 작성해 주민들에게 배포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국방부, 경기도, 청와대 등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합동소음대책위원회 구성해 사격장 점거 농성, 환경단체와 연계한 사격장 폐지 및 피해보상 요구에 나섰다. 이후 2001년 주민 14명이 미군 사격장의 폭격 소음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하면서 20여 년 동안 진행된 사격장 철폐운동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8월30일 사격장의 관리가 한국의 국방부로 이관되면서 미공군이 공군기지에서 철수했고, 주민들은 폭격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폭탄 파편을 수거하는 주민들. 경기문화재단 제공
폭탄 파편을 수거하는 주민들. 경기문화재단 제공

■ 매향리 스튜디오

2016년 12월 개관한 매향리 스튜디오는 버려지고, 방치돼 무너져 가던 매향교회의 옛 예배당를 활용해 경기문화재단 경기창작센터가 조성한 공간이다. 매향리마을의 상처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자,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1952년 세워진 매향교회는 오랜시간 주민들과 동거동락했다. 주민들의 사랑방과 아이들의 놀이방으로 자리하며 귀를 찢는 폭발음과 총알이 빗발치는 시간들을 함께 견뎌왔다. 그러던 중 미군의 오폭으로 지붕이 파손돼 새 예배당이 건립되면서 부터는 빈 공간으로 방치 돼 왔다. 점점 흉물스럽게 변해가는 이 곳을 경기창작센터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경기창작센터는 무너진 예배당을 새로 만들어 내기 보다는 앞으로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이에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인 이기일 작가가 로컬큐레이터로 기획단계부터 참여해 공간을 재생했다.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이후에는 매향리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획전을 비롯해 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개관전 <1951-2005 겨울 이기일 전(展)>은 매향리스튜디오가 가진 상징적인 의미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냈고, 기획전 <우리들의 농섬>은 매향리가 간직한 아픈 역사를 보여줬다. 마을의 치유와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한국적 모자이크>展과 매향리의 고통을 전국에 알린 전만규 씨를 모델로한 <청년 전만규>展을 선보이기도 했다.

오는 20일부터 내년 3월17일까지는 탈북 작가 선무(線無)의 개인전 <반갑습니다. Bangabseubnida. nice to meet you.>를 진행한다. 매향리 주민들이 겪어야 했던 암울한 현대사의 상처와 평화의 염원, 그리고 작가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줄 예정이다.

 

매향리스튜디오의 모습. 경기문화재단 제공
매향리스튜디오의 모습. 경기문화재단 제공

송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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