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로고
[경기 역사·문화를 기록하다] 5. 파주 선유리마을
문화 경기 역사·문화를 기록하다

[경기 역사·문화를 기록하다] 5. 파주 선유리마을

남북 잇는 기회의 땅… ‘한국의 뉴욕’ 부활 꿈꾼다

1960년대 파주 선유리마을은 ‘한국의 뉴욕’이라고 불릴정도로 부흥했다. 미군기지가 떠나고 난 자리에는 낡고 오래된 건물만이 남아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제2의 도약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1960년대 파주 선유리마을은 ‘한국의 뉴욕’이라고 불릴정도로 부흥했다. 미군기지가 떠나고 난 자리에는 낡고 오래된 건물만이 남아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제2의 도약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제공

경기북부는 한반도 중심에 위치하며, 남과 북을 잇는 관문이자 분단의 접경지역이다. 군부대와 개발제한 등으로 인한 독특한 지역정체성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경기문화재단 북부문화사업단은 경기북부 접경지역에 위치한 마을의 기록을 보존하고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해 ‘경기북부 마을아카이브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계속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는 시범사업으로 동두천 턱거리, 연천 신망리, 파주 선유리 등 총 세 곳의 마을을 살펴봤다.

작가와 기획자들은 문헌·현장·구술 조사와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 및 워크숍 등을 통해 마을 환경에 대한 기초조사는 물론 내·외부의 변화 양상을 포착하고 문화적 자원을 발굴했다. 특히 그동안 소외됐던 경기북부 접경마을들을 조명하고, 가치를 재발견했다는 점과 우리 이웃의 삶을 기록하고 공유했다는 부분에서 높은 성과를 가져왔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파주 선유리마을은 ‘달러가 날아다닌다’고 표현할 만큼 성황했던 곳이다. 캠프 게리 오웬과 캠프 자이언트 등 미군기지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에서 돈을 제일 잘 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도 했다. 이제는 미군이 떠난 자리에는 낡고 오래된 집만이 남아있지만, 마을사람들은 이것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한다.

■ 파주 선유리마을

파주는 한강과 임진강, 두 강의 흐름이 만나는 도시다. 동북에서 남서로 향하는 광주산맥과 휴전선 경계 너머 마식령산맥 사이에서 서쪽으로 황해와 맞닿아 있다. 임진강 유역에는 감악산, 칠중산성, 오두산성, 심학산, 월롱산성, 봉서산성 등 산봉우리들이 연결된다. 한반도 내서는 경기도 서북단에 위치하며, 서울과의 거리는 약 40㎞정도 떨어져 있다. 도내 31개 시·군 중 여섯번째로 면적이 넓다. 동쪽으로 양주시, 북쪽으로 연천군과 북한, 남쪽으로 고양시, 서쪽으로 임진강과 사천을 경계로 북한(개풍군), 서남쪽으로 한강을 경계로 김포시와 인접한다. 서울과 판문점을 연결하 는 통일로, 행주대교에서 한강과 임진강을 따라 임진각까지 연결된 자유로,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철도가 파주를 경유한다.

문산읍에 속한 선유리마을은 문산역을 남쪽으로 도라산역을 북쪽으로 하는 중간지대에 자리한다. 문산역은 경의선 파주구간 중에 하나로 도라산역을 종착으로 한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6대 간선도로 중 하나였던 의주로가 선유4리를 지나 관북과 관서지방을 잇는 뱃길이 시작되는 임진나루까지 이어졌다.

■ 역사의 산증인

휴전 이후 1960년대 한반도는 남북의 대치 상황 속에 놓인다. 남한의 최북단에 위치한 파주에는 대규모 미군병력이 주둔하게 된다. 이때부터 파주를 비롯한 접경지역은 전통적인 농촌 사회를 벗어나 크게 변화됐다. 휴전회담 당시 선유리마을이 속한 문산에는 유엔군 대표단 본부가, 인근 용주골에는 미군 휴양 시설이 설치됐다. 미군과 관련된 경제활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도 대거 파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선유리마을도 모든 경제활동이 미군기지인 캠프 게리 오웬(Camp Garry Owen)과 캠프 자이언트(Camp Giant), 캠프 RC4(Recreation Center #4)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1960년대 이렇다할 산업기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류, 의류, 화장품, 가전제품, 가구상, 미장원, 구멍가게 등이 생겨나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됐다. 또 지금도 흔히 ‘도깨비시장’으로 불리는 서울 남대문시장의 미제 물건 공급처가 바로 문산이었다.

마을 주민들의 기억에 따르면 1968년까지 서울과 문산을 오가는 경의선 증기기관차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PX물품들이 객차와 화차 밑에 숨겨져 서울역까지 운반됐다. 오죽했으면 기지촌 여자들이 한 달에 버는 돈이 1억원이라고 할 정도였다. 달러가 날아다니고, 한국의 뉴욕이라고 불렸다는걸보면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선유리마을의 쇠락은 1969년 미국 닉슨(Nixon) 대통령의 ‘괌 독트린(Guam Doctrine)’ 선언으로 주한 미군이 철수하면서 시작됐다. 1971년에는 문산 미 2사단이 동두천으로 옮겨가면서 미군 기지도 절반으로 줄게된다.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갔고, 가게들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옛 명성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록 점점 낙후돼 갔다.

여기에 1990년대 파주의 수도권 정비계획 실시되고 공장과 산업단지가 대거 들어서면서, 마을에는 또 다른 경계가 생겼다. 새로 들어선 산업단지와 아파트로 인해 사람들의 구성도 바뀌어 가면서 마을의 정체성도 잃어갔다.

하지만 선유리마을 주민들은 이것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한다. 교하, 운정, 금촌 등 파주의 신도시 지역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인구가 모여사는 곳이 된 만큼 또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더욱이 남북 교류 중심지로 파주가 우뚝 서면서 통일ㆍ안보 관광시설 유치 등 새로운 기회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옛 모습은 잊혀지고 있지만, 선유리마을 주민들은 잊지말아야할 과거와 새로 시작될 미래를 사이에 두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송시연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