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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관 칼럼] 예의염치와 국정농단
오피니언 허성관 칼럼

[허성관 칼럼] 예의염치와 국정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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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간의 아름다운 우정을 보여준 관중과 포숙의 관계를 나타나는 사자성어가 유명한 관포지교(管鮑之交)다. 관중은 제나라 재상이 되어 환공을 패자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천하질서를 바로 세운 사람이다. 이 관중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책이 관자(管子)다. 예의염치는 기원전 8세기에 관중이 제시한 나라의 지도자가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할 덕목이다. 정보화 시대에 왜 새삼스럽게 예의염치를 거론하는가?

 

예의염치는 정치의 근본원리를 논한 관자의 목민(牧民)편에 나와 있는 사유(四維), 즉 네 가지 강령이다. ‘예(禮)’란 절도를 넘지 않는 것이고, ‘의(義)’란 스스로 나서서 구하지 않는 것이고, ‘염(廉)’이란 잘못을 은폐하지 않는 것이고, ‘치(恥)’란 잘못된 것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의 의미로 예의염치를 풀이하면 정치 지도자는 사심을 가져서는 안되며, 매사를 투명하게 처라해야 하고, 바르지 않는 일을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국정농단이 왜 발생했는지 여러 사실들이 국정조사, 특검, 탄핵소추과정을 통해서 밝혀지고 있으나 그 근본 원인은 나라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예의염치가 없었거나 그것을 망각했던 것이다. 3천년 전에 관중이 갈파했던 예의염치가 지금도 정치의 강령으로 유효하기에 오늘에 되새기는 것이다.

 

관중은 갈파했다. “이 네 강령 중 하나가 무너지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무너지면 나라가 위태로워지고, 셋이 무너지면 나라가 뒤집어지고, 넷이 무너지면 나라가 망한다. 기우는 것은 바로 세울 수 있고, 위태로운 것은 안정시킬 수 있고, 뒤집어지는 것은 일으켜 세울 수 있으나 망한 것은 돌이킬 수 없다.” 작금의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망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3천년 전부터 전해온 예의염치의 중요성이 왜 이 정부에 들어와서 특히 무시되었을까? 아마도 대통령에게 예의염치 자체가 결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예의염치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서 형성된 보편적인 사회적 가치다. 특별한 삶을 살아온 대통령이 보편적인 인간관계를 별로 경험한 적이 없어 예의염치의 중요성을 부지불식간에 자각하지 못한 결과로 국정농단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계속 거짓말하고 말을 바꾸는 것은 예의염치가 없다는 직접적인 증거다.

 

이런 대통령과 함께 당연히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 당선시키고자 애쓴 사람, 당선된 후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사람, 고위 공직을 맡아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이 그들이다. 

대통령의 가까이에서 정치하면서 대통령의 예의염치가 어떠한지 전혀 몰랐거나 예의염치가 없음을 알고도 오늘날에 이르렀다면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깔끔하게 사라져야 하는 것이 예의염치에 맞는 처신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퇴한 국무위원이나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다. 참으로 걱정스런 예의염치가 실종된 현실이다.

예의염치가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에게도 책임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이 대통령의 예의염치가 어떠한지 판단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는 기본적으로 언론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물론 언론은 이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민이 투표할 때 고려해야 하는 대통령 후보의 예의염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언론은 별로 제공하지 못했다. 언론이 심판자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고 오히려 직접 경기자로 나선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이러니 언론도 예의염치를 지키는데 부족했다.

 

‘깨어있는 조직된 국민’이 나라의 예의염치를 바로 세우는 주체다. 이들의 힘은 바로 선거에서 투표로 집약된다.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 정파적 이익에 우선하는 사람, 국민을 개나 돼지 정도로 보는 사람, 아무런 죄책감 없이 공약을 커닝하는 사람, 보기에만 그럴듯한 사람, 역사관이 불투명한 사람, 말만 앞세우는 사람, 자신의 정체성도 없이 표만 쫓아 오락가락하는 사람, 정개개편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국민을 편가르는 사람, 별로 한 일도 없이 과거 높은 자리만 차지했던 사람, 이런 사람들은 대통령 후보조차 될 수 없도록 ‘깨어있는 조직된 국민’들이 나서야 나라의 예의염치가 바로 설 수 있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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