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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을 빛낸 인물] 정우량(1692~1754)
오피니언 인천을 빛낸 인물

[인천을 빛낸 인물] 정우량(1692~1754)

뛰어난 글재주… 조선후기 손꼽히는 學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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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천지역을 대표하는 학인(學人)으로 꼽히는 정우량(鄭羽良, 1692~1754)은 인천 문학산 남쪽 동막에서 연일정씨 승지공 정여온의 6세손이자, 예조판서를 지낸 정수기(1664~1752)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호는 학남(鶴南)인데, 이는 그의 집이 학산(문학산) 남쪽에 자리잡은 데서 비롯됐다.

 

1723년(경종 3년) 문과 급제 후 승정원 가주서로 관직에 나선 정우량은 사간원 정언으로 관직자의 잘못을 서슴없이 지적하며 이름을 드날렸다. 이후 홍문관 부제학과 사원부 대사헌을 거쳐 1749년 우의정에 올랐다.

정우량은 글재주가 뛰어나지만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임금의 뜻에 부합하는 행동으로 통애를 받아 정승에 올랐다는 평가가 많았다. 1754년 그가 죽자 영조는 제사물품과 문충이라는 시호을 내렸다. 조선후기 인천지역은 연일정씨를 비롯한 서인과 소론계 세력이 우세했다. 정우량과 아우 정휘량 형제 모두 정승에 오르면서 권력과 학맥 모두 전성기를 이루었다. 인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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