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로고
[허성관 칼럼] 태종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오피니언 허성관 칼럼

[허성관 칼럼] 태종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인류 역사에서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 모두가 행복한 태평성대를 이룩하는 것이다. 이를 구현하는 정치가 백성을 위한 정치 소위 위민정치(爲民政治)다. 대한민국은 세계 20대 경제대국(G20)에 속하지만 태평성대는 요원하고, 위민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헬조선, 흙수저, 갑(甲)질, 비정규직 등은 실종된 위민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현들이다. 우리 국민들이 희망을 잃어버린 것이다. 비록 지금은 힘들지라도 희망이 있으면 사회적 역동성이 발휘되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희망조차 사라졌고, 위정자들이 이 사실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지 아니면 눈을 감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회원국 중에서 대한민국은 자살하는 사람의 비율, 노인 빈곤율, 흡연율, 가계부채 비율이 가장 높다. 반면에 출산율은 가장 낮으며, 노동시간과 출퇴근 시간은 두 번째로 길다. 양극화 심각성도 미국에 이어 2위다. 여기에 권력기관의 부패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최근 터져 나오는 검찰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영화와 연속극에는 정의로운 검사는 나오지 않는다. 청산하지 못한 일제잔재인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한 견제 받지 않는 검찰 권력의 부패와 전횡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검찰을 사회정의의 구현자로 생각하는 국민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장이 법원의 부패를 국민 앞에 사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가 현재의 법원을 양심의 최후 보루라고 신뢰할 수 있겠는가.

 

천문학적인 세금을 쏟아부은 4대강은 녹조라떼로 썩어가고 물고기도 살 수 없는 죽음의 강이 되었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공기업의 빚은 비상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이 빚은 모두 우리와 우리 자식들이 갚아야 할 부담이다. 살림이 빚 투성이니 정부가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사회의 공기라고 하는 언론은 지사(志士)의 역할을 포기하고 서생(鼠生)으로 추락하고 있다. 심판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신문들이 선수로 변신하고, 정파의 이익과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어 가고,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래서는 여론을 집약하고 선도해야 하는 신문 본연의 사명이 달성될 리 없다.

 

지금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물론 현 정권도 북한이 깨끗하게 두 손 들고 굴복하도록 하는 것이 정책목표로 보인다. 북한의 벼랑 끝 전략에 맞서 선제공격을 불사하겠다는 발언도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우리도 핵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북한이 걸었던 것처럼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고 핵무기를 개발해 국제사회로부터 온갖 제재를 받는 나라로 가자는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북핵 위기 고조에도 불구하고 증권시장에서 주가 폭락이 없다. 국민들이 냉정하다는 반증이다. 북한이 타도의 대상인지 관리의 대상인지 국익의 관점에서 치밀한 전략적 검토가 필요하다.

 

광복 71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는 자도 있고, 일제 식민지 시기가 살 만했다고 학문의 외피를 쓰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학파도 있다. 대일 항쟁기 애국지사들의 피어린 독립투쟁을 폄하하는 친일 매국노들의 후예도 준동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두어도 좋은가.

 

내년 대통령 선거까지 1년이 조금 넘게 남았다. 여러 정치공학적인 보도가 넘쳐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지금의 이 어려운 나라 현실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태평성대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미사여구로 포장한 우아한 대권 도전의 변과 이해득실만 따지는 정치공학으로 접근하는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어려운 현안에 허우적대다가 끝날 수밖에 없다. 태평성대라는 희망을 보기 위해서는 나라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적인 개혁이 있어야 한다. 기득권층의 저항이 거셀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나라 상황에서는 개혁에 저항하는 기득권층에 맞서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세종이 되고 싶은 대통령은 필요 없다. 태종이 친인척 비리를 처단하고 공신을 숙청하여 조선을 법이 지배하는 나라로 만들었기에 세종의 태평성대가 올 수 있었다.

 

태종이 되고자 하는 대통령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태종의 리더십을 갖춘 대통령과 깨어 있는 국민들의 올바른 선택이 대한민국의 태평성대를 열 수 있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