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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관 칼럼]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오피니언 허성관 칼럼

[허성관 칼럼]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보수와 진보의 극심한 대립이다. 보수와 진보의 원래 호칭은 우익과 좌익이었다. 광복 후 좌우 대립으로 625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었기에 아마도 지금은 좌우익보다는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가 일반화 되었을 것이다. 

정치, 언론,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두 진영 간에 진지한 소통과 양보가 없다. 보수는 진보를 좌파 나아가서 종북으로 몰고, 진보는 보수를 수구 기득권층으로 보고 서로 적대시 한다.

 

상대의 존재가 엄연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현실이 극심한 대립의 근본 원인일 것이다. 서로의 존재는 서로에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제약요소다. 공자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듯이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서로 의견이 달라도 화합하는 사람은 군자이고, 같아도 불화하는 사람이 소인이다. 오늘날 우리 정치에 이 가르침을 적용하면 많은 정치인이 소인배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우리사회는 서로 다른 의견이 용납되지 못하고, 발전의 동력인 다양성도 발휘되지 못하고, 신뢰가 실종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려운 이웃을 위한 경제정책은 포퓰리즘이고, 기업을 위한 정책은 경제 활성화로 포장하니 신뢰가 구축될 리 없다.

 

상호간에 소통과 양보를 통해서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공유하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이웃, 정의, 국익, 민족의 미래, 인류의 평화는 보수와 진보가 공유해야할 가치다. 이들 가치를 공유한다면 주어진 제약조건 하에서 모두에게 최선인 방안들을 도출하여 보수와 진보의 벽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보수 진보라는 진영논리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지난 세월 어떤 사람들이 이런 가치들을 가슴에 새겨 세상을 살아 왔는지 자성해보면 답은 분명하다. 대일항쟁기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생명을 걸고 광복전쟁에 나선 이분들이 꿈꾼 세상은 정의롭고 따뜻한 공동체인 자주 독립국가, 언론과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어 문화가 융성하는 나라, 세계와 공존공영 하는 평화의 나라였다. 이분들의 꿈은 보수와 진보를 극복할 수 있는 공통된 가치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분들의 꿈은 지금도 유효하다.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대접받고 있는지 모두 진지하게 반성해 보아야 할 때다. 이분들의 정신은 광복 후 일제 잔재가 청산되지 못해 오히려 폄하되고, 그 후손들 중 많은 분들이 숨죽이며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길은 바로 이분들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 중에는 보수도 있었고 진보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중심에는 민족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족주의를 불온한 사상으로 사갈시 하는 무리들의 영향력이 크다. 우리 순국선열 애국지사들의 민족주의는 우리의 정체성을 바르게 확립하는데 있었지 다른 민족을 배척하는 국수주의가 아니었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설 수 없다면 보수는 애국보수, 진보는 애국진보로 진화해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를 폄하하는 무리들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 모두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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