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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돋보기] 을미년, ‘우리’를 한 번 돌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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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돋보기] 을미년, ‘우리’를 한 번 돌아보시길…

지난해부터 시작된 갑질 논란이 새해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대형 항공사의 상속녀가 보인 부적절한 행위가 문제 되더니 백화점 고객 모녀의 주차요원에 대한 언행이 언론의 포화를 맞았다.

가진 자들의 특권의식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서는 거의 모든 논쟁을 갑과 을의 관계로 해석하려는 시도마저 엿보인다. 한번 ‘갑’으로 낙인을 찍히게 되면 더 이상 그들의 변명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서초동에서 일어난 소위 ‘갑’에 해당하는 일류대 출신 가장의 가족살해 사건은 우리에게 매우 색다른 시각을 제공하였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언론사에서 필자에게 묻는 가장 많은 질문은, 대관절 통장에 일억 이상이 있었으며 서울의 잘 나가는 강남에 중형 아파트까지 있었던 일류대 출신인 자가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느냐는 것이었다.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으려면 사실 서초동 세 모녀 살인사건 피의자의 범행 당시 심정을 곰곰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피의자는 한때 틀림없는 ‘갑’이었다. 하지만 실직한 이후 그는 삽시간에 ‘을’의 처치로 추락하였다. 특히 2012년도부터는 거의 혼자 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였던 것 같다. 미래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과 자포자기의 심정이 아내와 아이들과의 동반자살을 선택하게 만든 것 같다.

끔찍한 가족살해를 동반자살로 미화시키려는 사회적 시각에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논쟁을 잠시 뒤로하고, 이 대목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사실은 다름 아닌 ‘갑’과 ‘을’의 경계선이다.

과연 ‘갑’이란 지위가 인터넷이나 유선방송에서 목청 높여 성토하는 것처럼 그리도 공고한 것인가? 서초동 사건은 결코 그런 주장이 맞지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무리 ‘갑’이라 할지라도 한순간에 ‘을’의 위치에 놓일 수 있으며, 누구에겐가는 ‘갑’인 사람도 자기 자신은 막상 ‘을’이라고 여길 수 있다는 점.

세상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양분시키려는 이분법적 논쟁은 이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오히려 이 가족의 병리에 대한 몰이해를 이끌었을 뿐, 설명의 논리로는 매우 부적절하였다.

장기적인 저성장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는 점점 더 고통받는 이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 이제는 중산층조차도 이 고통을 피해 갈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나도 금방이라도 절망의 나락으로 빠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각박하게 만들어 조금이라도 처지가 다른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적대감부터 갖게 만드는 것 같다.

영국 속담에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곧 이웃과의 고통분담이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임을 시사한다. 공동체의식,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모습, 그것이 대안이 될 것이다. 서로를 갑과 을로 나누어 싸우고 헐뜯기보다는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이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을 구제할 혜안이 될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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