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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양은 칼럼] 소와 쇠고기 雜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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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양은 칼럼] 소와 쇠고기 雜說

임양은 논설위원 ye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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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소가 지금 소에게 말했다. “귀에 박힌 그 번호표는 뭐니? 너희들은 놀며 하루 종일 먹기만하고 좋겠다” 지금 소가 대답했다. “어휴 말마쇼. 진종일 칸막이에 갇혀 있자니 들판에 나가 일 하는 게 되레 부럽소” 그렇다. 시속이 바뀌어 지금은 일소가 없다. 아니, 일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비육우뿐인 것이다. 다 자라 체중은 늘지 않고 사료값만 축내는 손익 분기점을 따져 도살하는 고깃소가 됐다

소는 세계적으로 분포된 동물이다. 인류는 소를 농경화에 이용할 줄 알면서 더욱 발달하였다. 기원전 3~4세기에 이집트 문명을 꽃 피운 것은 소의 농경화 이용 덕분이었다. 소의 품종은 많으나 일소였던 한우는 특이하다. 몸체는 유별나게 날씬하고 사지는 강건하며 털색은 적갈색을 비롯하여 여러가지가 있다. 성격은 온순하면서 인내심이 강하다. 한반도에 소가 들어온 것을 학계는 약 2천년 전으로 추정하는데 소의 오랜 토착화 과정에서 이같은 한우 고유의 품종이 형성된 것이다.

한우 일소에서 비육우로 팔자전환

여름에는 들의 싱싱한 풀을 먹고 겨울엔 따듯한 여물을 먹는 옛날 소는 사료만을 먹는 지금 소와는 다르다. 짚을 작두에 썰어 먹기 좋게 한 다음에 콩 몇 주먹을 섞어 사랑방 가마솥에 쑨 여물을 김이 모락 모락 나는 그대로 먹이기 시작 하는 게 초겨울 이맘 때부터다. 같은 한우도 옛날 소는 일소이고 지금 소는 고깃소지만,비육우 전문의 쇠고기 맛이 예전의 일소 때보다 못한 것은 이 먹이 때문이다.

일소의 노동력 제공은 절대적이었다. 논밭 갈이는 물론이고 달구지를 끌어 운반과 교통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소를 생구(生口)라고도 했는데 이는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한데 비유한 것으로 가족에 버금가게 여겼던 것이다. 일소와 농부가 인간애로 밀착된 사례는 일찍이 극영화를 겸한 실화 ‘워낭 소리’가 잘 보여 주었다. 워낭은 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방울로 가족들은 잠결에도 워낭소릴 듣고 소의 안전을 확인하였던 것이다.

농경문화시대는 물론이고 산업사회시대 들어서도 볼 수 있었던 일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정보화시대 들어서다. 경운기 보급이 보편화 되면서 농촌에 두 가지 특징이 일어났다. 하나는 일소이던 한우가 비육우로 바뀐 사실이고 또 하나는 지게로부터의 해방이다.

특히 젊은이들의 양 어깨를 짓누른 무거운 지게짐의 인고 강요는 젊은이의 탈 농촌을 부추겼던 것이다. 일소의 논밭갈이 운반교통 등의 역우(役牛) 이탈은 한우로선 충격이다. 수 천년동안 대대로 해 왔던 일을 일시에 빼앗긴 게 행복인지 불행인지?

생전엔 죽어라 하고 일만했던 소는 주인의 목돈 마련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눈물을 쏟으며 도살장으로 끌려가곤 했다. 주인이 처한 관혼상제의 길흉에 마지막 공헌을 남기고 가는 것이다. 이처럼 농가의 필수였고 보배였던 한우가 일소에서 비육우로 바뀌면서 팔자가 달라진 것이다.

지금은 놀고 먹이면서 어떻게 하면 빨리 자라 살찌는가 하고 연구한다. 한우 쇠고기 소비를 권장하는 광고를 종종 보았지만 굳이 광고 안 해도 호주나 미국에서 들여온 수입 소보다 나은 줄 다 안다. 어떻게 하면 젖소가 아닌 진짜 한우 쇠고기를 맛 보는가 하는 것이 미식가들의 생각이다.

소값 떨어져도 소비가격 요지부동

그런데 참말로 미스터리한 게 한우의 쇠고기 값이다. 산지의 한우 농가에서는 소 값이 떨어져 비명이 속출 하는데도 소비자의 한우 쇠고기 가격은 금값인 채 요지부동인 것이다.

듣건대 한우는 특히 산지와 소비자간에 물동 단계가 많아 마진으로 많이 나간다고 한다. 소비자의 마진 부담률이 약 40%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사실이면 생산 농가나 소비자나 적잖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유통 단계를 개선해야 되는 것이다. 농축산 당국의 제도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임양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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