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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선의 半의 半이라도 닮았다면
오피니언 김종구 칼럼

정장선의 半의 半이라도 닮았다면

김종구 논설위원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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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불출마 선언이 시작됐다. 마이크 앞에 선 표정들이 비장하다. 저마다 폭력국회를 걱정하며 격정을 토로한다. 그런데 딱히 전해오는 감흥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예고됐던 정치 빅뱅이다. 불출마 러시는 정해진 수순이다. 뻔한 수순에 뻔한 얘기다. 거기에 무슨 감동이 있겠나. 그저 ‘또 한 번의 정치 이벤트’로 보면 그뿐이다.

 

그런데 딱 한 명이 다르다. 정장선의 불출마 선언은 예상 밖이었던 만큼 내용도 다르다.

 

첫 번째, 막장에 몰린 퇴장과 다르다.

 

6선의 실세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전혀 영예로워 보이지 않는다. 보좌관이 받은 뇌물이 무려 7억 5천만 원이다.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두 사건 모두에 관여됐다. SLS에서 6억 원, 제일저축은행에서 1억 5천만 원을 챙겼다. 그런데도 6선 의원은 버텼다. 언론이 불출마를 보도하자 ’너무 나갔다’라며 항의까지 했다. 그러다가 의원실 직원 4명이 돈세탁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고 검찰 소환설이 제기되는 마당에 이르러서야 불출마를 결정했다. 이건 ‘불출마’가 아니라 ‘출마 불가’다.

 

‘불출마’에 재미붙인 정치

 

두 번째, 낙선을 염두에 둔 정치쇼와도 다르다.

 

잘생긴 외모, 하버드 법대 출신의 초선 의원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신선해 보일 만도 한데, 여론이 안 좋다. 계류 중인 선거구획정안을 보니 그의 지역구 노원 병이 통폐합대상이다. 새로 맞닥뜨려야 할 상대가 하나같이 벅찬 상대다. 한 명은 진보의 ‘입’ 노회찬이고, 다른 한 명은 ‘나는 꼼수다’의 스타 정봉주다. 이러니 그의 불출마 성명서를 보며 ‘코피 난 김에 혈서 쓰느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거다. 4년여 전,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되던 호시절에 입성했던 그가 삭풍 부는 겨울이 되자 그냥 떠나는 거다.

 

세 번째, 정치일정에 기웃거리는 퇴장과도 다르다.

 

13일부터 19대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다. 정장선의 불출마 선언은 이보다 하루 앞선 12일이었다. 단 하루도 선거일정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 평택을은 사실상 ‘정장선 판’이다. 지난 10월 실시한 한나라당 지역위원장 선출이 수포로 돌아갈 정도로 그의 아성이다. 같은 당내 경쟁자가 있을 리 없다. 예비후보 등록 하루 전날 물러난 모양이 좋아 보이는 이유다. 후임자가 쓸 수 있는 선거 운동기간을 단 하루도 뺏지 않았다. 선거 막판까지 여론조사를 들춰보며 미련에 발목 잡히는 정치꾼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정장선에게 진정성 배워야

 

네 번째, 약속을 지키는 퇴장이라서 다르다.

 

그의 불출마 사유는 폭력국회다. “FTA 폭력사태를 막지 못했다. 내가 한 번 더 한들 국회는 나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4대 강 난장판 국회’ 직후 국민에게 약속했다. ‘폭력국회가 또 되면 불출마하겠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런데 그때 옆에 섰던 국회의원은 여럿 더 있다. ‘국회 바로 세우기 모임’ 소속 의원들이다. 경기 인천지역 의원도 6명이나 된다. 하지만 약속을 지킨 건 정장선 하나다. FTA 난장판은 폭력이 아니라고 본 건가? 아니면 최루탄은 주먹이 아니니 괜찮다고 본 건가?

 

누구는 의심한다. ‘정 의원이 차기 경기지사를 노리고 던진 승부수다’라고. 실제로 그는 차기 후보군 중 하나다. 3선이라지만 이제 나이 이제 쉰넷, 한창 때다. 이번 불출마를 정계은퇴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런 의심이 나오는 것도 무리랄 건 없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자.

 

경기도지사 자리가 어떤 자린가. 대권후보가 당선되는 자리고, 당선되면 대권후보가 되는 자리다. 이인재-임창렬-손학규-김문수 지사가 다 그랬다. 그를 포함한 지금의 후보군 역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다. 김진표, 남경필, 원혜영, 전재희, 정병국…. 만일 불출마 선언이 그 좋은 자리로 가는 지름길이라면 다른 후보군의 불출마도 있어야 맞다. 그런데 아무도 하지 않는다. 왜? 늘 현역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3선의 정 의원이 이런 공식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폭력국회를 버리고 평택으로 갔다. ‘불출마→도지사 공천’이라는 논리로 트집 잡기엔 그가 버린 게 너무 많다.

 

트집 잡을 때가 아니다. 정장선을 닮으려 해야 하고 정장선에 부끄러워해야 할 때다. 정장선의 반, 아니 반의반이라도 닮은 국회의원이 여의도에 반, 아니 반의반만 있었더라도 국회는 이렇게 안 됐다.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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