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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 잃은 박찬호, 기회 잃는 한나라당
오피니언 김종구 칼럼

기회 잃은 박찬호, 기회 잃는 한나라당

김종구 논설위원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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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이 빼앗아간 코리안드림

다 버리는게 한나라당의 살길

코리안 드림이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우뚝 선 모습만으로 감동이었다. 집채만 한 거한들이 연신 헛손질을 해댔다. 그가 뿜어내는 시속 157㎞의 강속구 앞에 K(삼진)의 행진이 이어졌다. LA다저스 구장 외야에 태극기가 펄럭였다. 2001년 텍사스로 가면서 받은 돈은 6천500만달러. 일당 5천만원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다. 하지만 누구도 시샘하지 않았다. 그가 재미교포사회에 준 자긍심을 비하면 결코 아깝지 않은 돈이었다. 박찬호의 코리안 드림은 그렇게 완성됐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이길 때보다 질 때가 훨씬 많아졌다. 특유의 어퍼컷 화이팅은 사라졌고 고개를 떨구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모습이 계속됐다. 이후 5년간 그가 올린 성적은 22승이 전부다. 최고의 코리안 드림이 최악의 ‘먹튀’(먹고 튀기)로 전락했다. 현지 언론이 ‘Go back to Korea’(한국으로 돌아가라)라며 조롱했다. 국내 언론들도 그의 은퇴 필요성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버텼다. ‘동양인 최다승 신기록 달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잇단 방출과 부상에 2군 강등까지 겹쳤다. 그러기를 10여년. 2010년 10월에서야 목표가 달성됐다.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124승. 모두가 축하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그만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명분을 만들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과 일본 야구를 점령하겠다’.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그만의 명분이었다. 팬들은 불안해했고 결국 그 불안은 현실이 됐다. 올 시즌 1승 5패, 그리고 2군 강등. 구단 관계자는 한국 방송에 대고 ‘1군 복귀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망신을 줬다.

 

이제 그의 모습 어디에도 코리안 드림은 없다. 이 구단에서 저 구단으로 팔려 다니며 몸값은 깎일 대로 깎였다. 미국에서 방출되고 일본에서 추락하면서 레전드(전설)의 면모는 사라졌다. 94년부터 2000년까지 쌓아 올린 공을 2001년부터 10년째 갉아먹고 있다. 떠날 때를 놓친 영웅이 밟아가고 있는 초라한 뒷모습이다.

 

야구와 정치. 어떤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두 단어가 요즘 오버랩된다.

 

떠날 사람들이 떠나지 않았다. 바뀌어야 할 게 바뀌지 않았다. 총선은 필패라고 얘기하면서 혹시 모른다며 미적대고 있다. 30%를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그 속에 자기는 포함되지 않는다. 불출마의 각오를 해야 한다면서도 자신은 출마해야겠다고 버틴다. 바뀌어야 하지만 나는 아닌 것이고, 변해야 하지만 나는 아닌 것이다. 이게 한나라당식 개혁이고 변화였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소속 의원의 비서가 선관위 홈페이지를 공격했다. 입이 천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선거부정이다. 비서 개인의 범죄라고 둘러댔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한나라당에서 돈 받고 일하던 비서의 짓이고, 상대후보 낙선을 목적으로 벌인 짓이다. 진보는 물론 보수조차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들었다. 반쯤 돌아섰던 민심이 DDoS 공격 한방에 완전히 등을 보였다.

 

늦었다. 지도부 사퇴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당대표가 사퇴하고 지도부가 해체된다 해서 돌아설 민심이 아니다. 10.26 보궐선거 때 기회가 있었지만 ‘사실상의 승리’라며 놓쳤고, DDoS 공격 초기에 기회가 있었지만 ‘비서 개인의 짓’이라며 또 놓쳤다. 당직 사퇴카드로 기대할 수 있는 약발은 없다. 더 큰 희생과 더 확실한 결단이 나와야 한다.

 

당 내부의 얘기라면 관여할 일이 아니지만 자칭 한국 보수를 대변한다는 사람들 아닌가. 10.26에 실망하고 DDoS에 떨어져 나간 한국의 보수. 그러면서도 진보에 투항하지 못하고 중간지대를 맴돌고 있는 한국의 보수. 이들의 옷깃 하나라도 붙잡으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다 버려야 한다.

 

공천도 버리고 의원직도 버리고 당 간판도 버려야 한다. 버릴 여유가 아직 있으니 이 또한 기회다.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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