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243곳 중 11곳에서만 우세’. 불과 선거 보름여 전 J일보 톱 기사다. 대통령 탄핵의 역풍은 그렇게 참담했다.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씻으려던 한나라당의 자충수였다. 민심이 분노했고 표심은 돌아섰다. 각종 여론조사의 그래프는 열린우리당 판이었다. 선거는 해보나 마나였다.
이때 박근혜 대표가 등장한다. 그의 취임 일성은 ‘당사에 들어가지 않겠다’였다. 대신 여의도 공원 맞은 편에 천막을 쳤다. ‘쇼’라던 비아냥이 서서히 동정으로 바뀌어갔다. 이어 기다린 건 박 대표의 눈물이다. TV에 등장한 박 대표가 30분간 연설을 했다. “어머니를 잃고…아버님을 여의면서”. 연설 내내 눈물이 흘렀고 그는 한 번도 닦지 않았다.
4월 15일은 민주당과 자민련이 몰락한 선거였다. 전남에서 5석, 충남에서 4석을 건진 게 다다. 질긴 생명력의 정치인, 김종필도 이날 정계를 떠났다.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난 게 한나라당이다. 121석 획득은 분명히 기적이었다. 박 대표의 쇄신약속에 유권자가 답해준 표였다. 이후 ‘천막당사’는 정치쇄신의 고유명사가 됐다.
박근혜의 천막당사. 좋은 쇄신이었고 성공한 쇄신이었다.
이런 쇄신도 있었다. 1980년 11월 5일.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법 하나를 발표한다. 전문 12조와 부칙으로 구성된 이 법의 목적은 ‘나쁜 정치 몰아내기’다. 11월 24, 법에 기초한 567명의 명단이 발표됐고 여기에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 포함됐다. 이른바 나쁜 정치인 명단이다.
법의 목적은 “정치적 또는 사회적 부패나 혼란에 현저한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한 정치활동을 규제함으로써 정치풍토를 쇄신한다”다. 법의 이름도 ‘정치풍토쇄신을 위한 특별 조치법’이다. ‘쇄신’이라는 단어가 노골적으로 이름에 들어간 처음이자 마지막 법률이다.
쇄신? 사실상 인간청소였다. ‘쇄신돼야 할 대상자’로 찍힌 정치인은 산목숨이 아니었다. 본인이 출마해도 안 되고, 남을 지지하거나 반대해도 안 됐다. 정당에 가입은 물론이고 옆에서 도와줘도 안 됐다. 정치적 집회에서는 말만 해도 붙들려 갔다.
이랬던 5공화국의 정치 쇄신. 지금은 ‘신군부의 권력장악에 이용된 나쁜 쇄신’으로 정의돼 있다.
또 다른 쇄신이 있다. 1997년 3월 27일은 우리 정치사의 금기 하나가 깨진 날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출당요구다. 신한국당 의원 연찬회에서 나왔다. “김 대통령이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것도 국면 타개를 위한 방안의 하나다”. 발언자는 김윤환 고문이었다.
그의 정치 시작은 3공화국이다. 유정회가 첫 번째 금배지였다. 이후 전두환의 5공과 노태우의 6공에서도 그는 실세였다. 심지어 군부와 문민이 갈리는 격변기에도 살아남았다. 총재 YS가 내준 신한국당 대표 자리에 앉아 시대를 풍미했다. 그랬던 그가 ‘대통령 나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발언은 이후 한국 정치사에 못된 법칙 하나를 만들었다. ‘여당이 살려면 임기 말 대통령을 공격하라’. 여기서 배운 이상한 쇄신파들이 국민의 정부 말기에 DJ를 몰아세웠고, 참여 정부 말기에 노무현을 몰아붙였다. 분명히 배신이었지만 ‘쇄신’이라고 포장하며 그 짓을 했다.
‘변화의 달인’ 虛舟 김윤환. 그가 남긴 쇄신은 이렇게 이상하고 얍삽한 거였다.
MB 임기를 1년 남긴 지금, 여권이 또다시 쇄신론에 휩싸였다. ‘대통령이 사과하고 핵심공약을 폐기하라’는 강도 높은 연판장이 돌았다. 25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선봉에 섰다. 연이은 선거 참패, 떠나는 민심, 엄습해오는 총선패배의 공포…. 현실 정치인인 저들이 오죽하면 저럴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저잣거리의 평가는 이와 딴판이니 그게 문제다. ‘누가 누구를 쇄신하느냐’는 빈정거림이 더 많다. 면면에서 느끼는 실망감과 배신감 때문이다. 4년간 권력의 언저리를 맴돌던 얼굴, 한 달 전 TV에 출연해 MB 정책 홍보에 침을 튀기던 얼굴, 넉 달 전 최고위원 뽑아 달라며 한나라당 만세를 외치던 얼굴. 그들이 갑자기 ‘대통령 때리기’로 칼자루를 돌려 잡았으니 민심이 감동할 리가 있나.
2011년 11월의 한나라당 쇄신은 ‘이상한 쇄신’이다. 정치생명 연장의 꿈을 쇄신을 통해 이뤄보려는 ‘속내 보이는 쇄신’이다. 천막쇄신의 감동을 쫓아가려면 멀었다.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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