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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학생 인권조례2
오피니언 목요칼럼

‘불량’학생 인권조례2

김종구 논설위원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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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붕괴 교권추락이 왜 인권조례 때문인가. 왜곡이다’. 김상곤 교육감이 일부 언론을 성토했다. “인권조례 시행으로 과도기적 시행착오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교육계가 치열한 노력으로 점차 정착되는 단계”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가 어떤 언론의 어떤 문구를 지목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따져 볼 건 학생인권조례의 ‘죄 없음’으로 전제한 조건들이 사실에 부합하느냐다.

 

먼저 ‘지금은 과도기적 시행착오가 나타나지만 점차 정착되는 단계’라는 부분이다.

 

대개의 제도가 과도기 때는 너그럽게 평가된다. 맞다. 그러나 ‘너그럽게 봐주겠다’는 관용의 주체는 행정의 수요자다. 학생·학부모가 교육청에게 베푸는 아량이다. 거꾸로 교육청이 학생·학부모를 향해 ‘과도기니까 참으라’고 윽박지를 일이 아니다. ‘과도기의 시행착오니 괜찮다’는 평가도 교육청이 아니라 학생·학부모가 내릴 일이다.

 

저주 받은 세대는 과도기때 온다

 

더구나 이 조례의 수혜자는 학생이다. 얘들에게 무슨 과도기가 있나. 1년이면 졸업하고 2년 3년이면 사회로 나간다. 지금이 전부고 지금이 끝이다. 교육행정은 그래서 실험이 있어서도 안 되고, 과도기가 길어서도 안 되는 거다. 과거 실험적 교육행정의 과도기때마다 무수한 학생들이 피해를 입었다. ‘저주받은 세대’의 대부분은 과도기에 만들어졌다.

 

김 교육감은 또 ‘교육계의 치열한 노력으로 정착되는 단계’라고 했다.

 

그만의 순진한 믿음이다. 그렇치 않다. 치열하게 노력하는 교사들에 반대쪽에는 그만큼의 교사들이 치열하게 저항하며 서 있다. 지난 4월 경기도교육정보연구원이 발표한 자료가 있다. 도내 교사 3천778명 가운데 학생인권조례 찬성률은 47.2%다. 절반이 넘는 교사는 찬성하지 않았다. 불과 두달여전 통계이고 이후 이들이 생각을 바꿨다는 통계는 보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교육현장의 절반은 지금도 비토세력이다. 여기서 김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의 창시자일뿐이다. 이 제도를 정착시켜야 하는 집행관은 일선 교사들이다. 집행관들의 절반이 삐딱하다면 그 제도는 산으로 가는 거다. ‘교육계가 치열히 노력한다’는 전제가 통계와 맞지 않았다. 그러니 ‘그래서 학생인권조례는 잘 되고 있다’는 결론도 맞지 않는다.

 

김 교육감은 또 ‘일부 학생의 문제를 학생인권조례와 연계하는 건 침소봉대’라고도 했다.

 

누구나 들었을 학교현장의 유행어중에 ‘법대로 하라’가 있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이 교사의 면전에 대고 퍼붓는 말이다. 그 애들이 말하는 법이 어떤 법인가. 고3, 중3짜리가 형법을 말했을 리 없고 민법을 말했을 리 없다. ‘나를 징계할 법’을 얘기한 것이다. ‘그 법대로 해보라’는 얘기다. 다분히 ‘내 몸에 손 대면 당신도 다친다’는 으름장이 깔려 있다.

 

여기에 허구헌날 들려오는 뉴스도 그 애들에겐 든든한 빽이다. 교육청이 5초 체벌 교사를 징계했느니, 떡매 학교는 아예 교장을 날려 버렸다느니…. 이런 주변 환경들이 학생인권조례를 불량학생인권조례로 둔갑시키는 엉뚱한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불량학생들이 유행처럼 써먹는 ‘법대로 하라’에서의 ‘법’. 이때의 법은 학생인권조례와 체벌금지규정이 맞다. 달라져야 한다.

 

학생인권 대 反인권으로 몰지마라

 

지금은 학생인권조례의 도입논란이 아니라 정착논란이 따져질 때다. ‘법’으로서 시행에 들어간지 벌써 3개월이다. 시행되기 전의 책임이 조례홍보에 있었다면 시행된 이후의 책임은 조례정착에 있다. 바꿔야 한다.

 

‘교육계가 치열히 노력하고 있으니 문제 없다’가 아니고, ‘치열히 저항하는 교사들을 훈육시켜 동참시키겠다’로 바꿔야 한다. ‘과도기의 시행착오가 있으나 괜찮다’가 아니라, ‘과도기에 따른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로 바꿔야 한다. ‘교권침해와 학생인권조례는 무관하다’가 아니라, ‘일부 불량학생들이 잘 못 이해하고 악용하지 못하도록 가르치겠다’로 바꿔야 한다.

 

왜곡? 눈 앞에 드러나는 시행착오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밥그릇 싸움에 눈 먼 이익집단의 목소리는 다른데, 자꾸 하나로 묶어 뒤섞으려 한다. 그래서 ‘학생인권’ 대 ‘反학생인권’의 이상한 구도로 끌고 가려 한다. 진짜 왜곡은 이거다.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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