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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연의 ‘역설’
오피니언 임양은칼럼

끽연의 ‘역설’

하루에 담배를 두 갑 태운다. 애연가 소린 시대 착오다. 사회적 천덕꾸러기가 된 게 담배 피우는 사람이다. 사무실은 물론이고 개방된 곳에서도 공공장소 같으면 담배에 불을 붙이지 못한다. 예를 들면 전철 역구내 같은 데다. 손님은 왕이라는데 담배를 꺼내들면 야단치는 접객업소가 있다. 흡연을 야만시하는 사회 정서가 점점 노골화한다.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엔 과태료가 붙는다지만, 과태료가 겁나서 안 피우는 게 아니다. 금연 공간의 박탈, 금연 풍조의 확산이 사회적 합의로 두터워져 가는 눈총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웠던 적이 있다. 그것도 당당하게 피웠다. 버스 좌석엔 으레 재떨이가 붙었으므로 끽연은 권리였던 것이다. 가령, 담배를 안 태우는 여성이 몰려드는 담배 연기가 싫어 손을 내저으며 인상을 찌푸려도, 그건 그 사람의 사정으로 철저히 무시됐었다. 지금 만약 버스 안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다가는 승객들에게 치도곤을 당할 것이다. 기차도 금연칸 한 량을 따로 두고 나머지는 끽연칸이었던 것이 바뀌어 흡연칸 한 량 없이 모두 금연칸이 돼버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미래 건강사회에 대비한 효과적인 담배가격 정책 방향’이란 보고서가 있다. 이에 따르면 담배로 인한 화재·간접흡연·작업 손실액 등 흡연의 사회경제적 연간 비용이 5조6천396억원에 이른다. 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질병 사망률이 훨씬 높게 조사된 것은 더 말 할 것이 없다.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 등 유럽의 담뱃값 인상을 통한 소비 억제책 사례를 들어 지금의 갑당 2천500원에서 두 배 반 정도로 올린 6천119원을 제시한 점이다.

 

생각하면 담배소비세가 지방세에 크게 기여한다. 세원 창출에 푸대접받는 게 억울한 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식경제부 산하 담배인삼공사는 흡연을 조장하고, 보건복지부는 금연을 권장하는 정책 모순 또한 아니꼽다. 그럼, 국민 건강을 해치는 담배를 만들어 판 정부는 뭣이냐는 의문이 성립된다. 예컨대 담배로 인해 폐암에 걸린 사람 같으면 원인 물질인 담배를 전매품으로 판 정부의 유발 책임을 물을 수가 있다. 어떻든 담배에 이로운 것은 없다. 백해무익하다. 이토록 피우기 치사하고, 아니꼽고, 해로운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니코틴 중독 탓이다. 이래서 끊지 못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끊지 않는 이유도 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끽연의 천대를 받다 보니 새로운 발견을 터득한다. 이러므로 하여 끽연의 사회적 천대를 은근히 음미하는 것이다. 사실, 언제부턴진 확실히 몰라도 담배를 거부하는 혐연권의 사회적 성숙은 놀라운 변화다. 위대한 발전이다. 한 번은 어느 모임에서 담뱃갑을 꺼내들기가 바쁘게 옆사람이 “흡연이 대접받기가 어렵지요?” 하는 것이다. 이런 수모를 받고 상대에게 빙그레 웃어 보였다고 하면 멍청이라고 하겠지만, 나름대로의 연유가 있다. 혐연권의 놀라운 사회적 성숙이 그 사람으로 인해 거듭 확인된 사실이 반가웠기 때문이다.

 

담배 연기를 추방하는 이런 사회적 저력 같으면 우리도 앞으로 얼마든지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부패가 없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가능하다. 정치·경제·문화 분야도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만, 알고 보면 사회의 숙련도가 반대로 정치·경제·문화를 이끈다. 끽연을 혐오시하는 사회적 합의 의식이 정치·경제·문화로 확산돼 오순도순 살기 좋은 국가사회로 거듭나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가 달라져야 된다. 담배에 국한하지 않는 혐연권 같은 공중 의식의 변화가 사회 전반으로 파급돼야 한다.

 

행복한 사회가 돼야 행복한 나라가 된다. 담배 괄시의 보편화 저력은 행복한 사회의 불씨다. 이 불씨가 꺼지지 않고 더 활활 타오르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담배를 피워 홀대를 받으면서도, 되레 홀대를 반기는 이유가 이에 있다. 한마디만 더 한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은 담배를 끊길 당부한다.

 

/임양은 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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