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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공천몸살’
오피니언 임양은칼럼

한나라당 ‘공천몸살’

한나라당이 공천 몸살을 앓고 있다. ‘투명하게 한다’ ‘공정하게 한다’ ‘개혁공천을 한다’는 것 등은 원론적 얘기다. 문제는 뭣이 투명하고, 뭣이 공정하고, 뭣이 개혁이냐에 있다.

공천심사위원회는 이틀동안 두 차례에 걸친 4시간40여분의 격론끝에 당규를 기준하기로 정했다. 뇌물 및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 비리와 관련, ‘유죄가 확정된 경우 공직후보자 추천 신청의 자격을 불허한다’는 당규를 원용키로 한 것이다. 사면 복권됐어도 공천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부정부패 비리와 아울러 또 한가지 파렴치범 전력자 등 식별은 공천심사위가 심사과정에서 사안별로 판단하기로 했다. 이외의 심사기준은 당선 가능성·전문성·의정역량·당 기여도 등이다.

반발이 안 나올 수 없다. 이미 공천받아 현역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데, 옛날 일로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안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위헌론도 있다. 헌법상 불소급의 원칙과 공무담임권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억울한 이들이 물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위헌론은 논리의 비약이다. 공천의 도덕적 청렴성 의지를 법률적 재단으로 삼을 대상은 아닌 것이다.

공천은 원래 잡음이 나게 마련이다. 아무리 그럴싸한 기준을 두어 객관적 심사를 한다고 해도 불만의 소리가 나온다. 붕어빵 굽듯이 틀에 맞추는 기계식 공천을 해도 그렇고, 손으로 만두 빚듯이 하는 사안별 심사의 수제식 공천을 해도 그렇다.

상향식 민주주의라 하여 지구당에서 정해 올리는 공천이 있었다. 참으로 그럴듯 하지만, 이야말로 참으로 토착비리의 전형적 온상이었다. 가히 제왕적 기득권의 횡포가 상향식 공천이었던 것이다. 선거구는 봉건 영주가 있어선 안 된다. 개방돼야 하는 것이다.

공천 심사에 비근한 예를 든다. 프로야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은 주심의 취향에 따라 높낮음 등에 야구공 반쪽 정도의 차이가 있다. 불공평한 것 같지만 이에 불평하는 타자는 없다. 주심은 자기 취향의 스트라이크 존을 타자를 보아가며 들쭉날쭉하게 적용하는 게 아니고, 모든 타자에게 하나의 잣대로 다 똑같이 적용하기 때문인 것이다. 잣대눈금이 좀 틀렸을지라도 다 똑같이 재면 공평한 것이다.

이런 예도 들 수 있다. 두 사람의 조퇴 허락을 요청받은 상사가 맘에 든 사람에겐 ‘암! 몸이 건강해야지’라며 허락하고, 맘에 안든 사람에게는 ‘무슨 소리야! 일이 우선인거야’하며 퇴짜놓는 식의 공천이 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정권 탈환에 힘입은 한나라당엔 이런 저런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든다. 국회의원 하겠다는 사람들 역시 어느 때보다 많다. 그런데 참 묘하다. 지역별 차이가 심하다. 수도권과 영남권에서는 상종가를 이룬 반면에 호남권에서는 하종가다. 충청·강원권은 보합세다.

공천 경합이 극심한 데가 상종가 지역이다. 수도권과 영남권에서는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말뚝을 세워놔도 당선될 줄 알지만, 그렇다고 유권자가 외면해야 할 말뚝을 몰라보는 것은 아니다. 하종가 지역인 호남권은 공천 경합은 커녕 공천 신청자만 있어도 반길 지경이다. 보합세 지역인 충청권에서도 대전과 충남은 한나라당 처지가 호남권과 별 다름이 없다. 충북·강원 지역에서만 어느 정도 해볼만 하다.

이렇듯 지역별 편차가 심하다 보니, 집권당으로서 원내 안정 의석을 얻기 위해서는 더욱 잘 해야 하는 것이 공천이다. 정권의 성패가 공천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또 기묘한 것은 후보를 보는 관점이다. 중후한 관록을 평가하는 반면에 참신한 신예를 평가하기도 한다. 이를 또 뒤집어 과거의 관록을 묵은 구시대 인물로, 새로운 신예는 검증안된 미지의 인물로 폄훼하기도 한다. 결국은 이도 사안별 심사 대상인 것이다.

짐작컨대 한나라당은 위기다. 공천 발표가 있고나면 한바탕 요동칠 것이다. 별의별 희한한 소리가 나올 게 분명하다. 공천을 잘해도, 못해도 그렇다. 탈당하는 사람들도 속출할 것이다. 정치권 한 켠에서는 이런 탈당 부스러기들을 주워 담을 투망을 곳곳에 쳐놓고 기다린다.

위기는 총선 후에도 도사린다. 4·9 총선이 정계재편을 가져올 것은 필연적 사실이다. 그 방향이나 폭은 총선 결과에 따라 풍향과 증폭이 다를 뿐, 정치권은 반드시 재편된다. 한나라당이 이에 얼마나 자유로울 것인가는 역시 총선 성적표가 관건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같은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당내 계보를 말한다. 계보가 없는 정당은 없다. 문제는 계보가 아니라 계보의 조화다. 조화는 원칙이 기준이다. 그리고 위기는 면모를 일신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한나라당의 4·9 총선 공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명박 차기 정부와 더불어 갈 여당이기 때문이다. 국정의 안정된 운영을 위해서다. 공천 몸살은 피할 수 없는 홍역을 앓고 있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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