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로고
민주노동당, 변하는가?
오피니언 임양은칼럼

민주노동당, 변하는가?

북측 공산주의자들에게 ‘민족’ ‘자주’란 말은 원랜 금기사항이다. 1945년 8·15광복 직후, 좌·우익 진영의 이념 갈등이 한창일 때 민족보다 국제화를 우선한 게 좌익진영의 공산당이다. 이에반해 우익은 민족진영으로 구분됐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국가나 민족의 개념보단 크렘린궁을 정점으로 하는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신앙 시 했다. 국가는 다만 ‘1국1당’의 지역 개념에 머물렀다. 1945년 12월27일 모스크바 3상(미·영·소) 회의가 결의한 신탁통치를 좌익진영은 적극 찬동하고, 우익진영은 결사반대한 게 그같은 사상적 배경에 연유한다.

신탁통치는 한국(조선)은 독립할 자질이 미숙하기 때문에 5년간 강대국들이 맡아 통치한다는 것이다. 그 무렵 한반도는 일제로부터 해방은 됐으나 38선 이남은 하지 중장이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기까지 미군 군정을, 이북은 치스차코프 대장이 같은해 9월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까지 소련군이 군정을 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넘는 세월이 지난 오늘날, 북녘 사람들이 입장을 바꿔 ‘민족’ ‘자주’란 말을 신앙화하는 것은 1인 숭배의 김일성주의(김정일주의) 옹위에 불가피한 폐쇄사회를 위한 것이고, 주체사상은 그같은 폐쇄 체제를 무장화한 주술적 이론이다.

따라서 “남북 문제는 같은 민족인 우리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한다”, “남북 문젤 외세(국제사회)에 의존하는 것은 반민족적 행위다”라고 북측이 주장하는 ‘민족’과 ‘자주’의 말엔 우리가 뜻하는 동포애 차원과는 다른 정치적 함정이 깔려있다. ‘민족’과 ‘자주’를 마다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개방된 민족, 개방된 자주가 아닌 폐쇄된 민족, 폐쇄된 자주를 거부하는 건 폐쇄사회는 사람이 사는 사회가 아니고 번영으로 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는 상호 보완의 동반자 관계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세력은 불행히도 기형적 한계가 있다. 평양정권과 가까운 맹종성을 진보세력의 가치기준으로 아는 능사가 이같은 한계점이다. 이들은 평양정권을 비판하면 ‘꼴통보수’ ‘전쟁광’으로 몰아댄다. 한반도에서 그 참혹한 전쟁이 또 일어나길 누가 바란단 말인가, 6·25 경험세대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보수라 하여 북녘과 반목, 갈등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친북을 진보세력만의 것으로 여기는 것은 착각이다. 보수층도 친북이 아닌 건 아니다. 문젠 종속적 친북에 있다. 평양 사람들이 하는 것은 다 옳고, 이쪽에서 하는 일은 다 그르다는 식으로 보아서는 동반자의 관계가 되기 어렵다.

민주노동당은 대표적인 진보정당이다. 대표적인 진보정당이 태생적 한계를 보였던 것은 정말 유감이다. 이번 17대 대선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득표율은 고작 3%(71만2천121표)다. 지난 16대 대선 득표율 3.9%(95만7천148표)보다 떨어졌다. 민중의 외면이 싸늘하다.

‘(종속적) 친북당, 운동권 정당, 민주노총당 이미지와 단절하겠다’는 것은 신선하다. 심상정 민주노동당비상대책위원장의 이같은 당 쇄신 선언은 새로운 기대를 갖게한다. 개혁은 혁명이 아니다. 진보정당의 정책 목표 또한 혁명이 아닌 어디까지나 개혁이다. 이명박 차기정부의 친기업이 노동자를 박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친기업으로 인한 노동시장 홀대의 우려를 방어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이에 그치지 않는다. 친기업속에서도 노동자의 권익신장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는 불법파업으로 철도와 항공기를 멈추게하고 전기공급을 끊겠다는 민주노총의 위협은 노동운동이 아닌 혁명적 폭력이다. 민중이 이같은 폭거를 과연 원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불법파업의 다반사에 정치적으로 편승했던 과거를 청산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노총 또한 민주노동운동의 새 가치 정렬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진보세력이 민중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평양정권에 잣대를 맞추기에 바쁜 닫힌 생각을 버리고, 드넓은 세계속의 열린 생각으로 나아가야 한다. 세계의 진보세력도 ‘제3의길’ 노선 등 여러가지인 것은 그만큼 시대상에 맞는 진보의 정체성 확립이 어려운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보수층이 갖기쉬운 오만을 경계키 위해서는 진보층의 건전한 견제가 필수 요건이다. 민주노동당의 변화가 보수와 진보, 진보와 보수가 서로 공존하며 배우는 보혁동거시대를 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비대위의 (종속적) 친북당 탈피는 마르크스 경제학 유물인 유물사관적 잉여가치설을 아직도 신봉하는 혁명적 노동운동을 배척하고, 북녘이 기도하는 폐쇄사회 유혹의 ‘민족’과 ‘자주’의 함정에 이용당하지 않는 진보정당의 새 모럴을 제시할 것으로 믿는다. 세상은 시대따라 변한다. 보수도, 진보도 정체되어서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임양은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